며칠 동안 계속 내린 빗줄기가 조금 약해졌던 날, 서울에서부터 1시간 30분을 달려 경기도 평택호 관광지에 위치한 ‘제빵왕 김탁구’ 세트장에 도착했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한 거성식품가 촬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가운데 서인숙 역을 맡은 전인화의 호령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자신에게 줘야 할 중요한 편지를 남편 구일중 회장(전광렬 분)에게 잘못 전달한 공주댁을 혼내는 장면이었다. 목상태가 좋지 않다고 한 그녀는 “공주댁! 공주댁! 아~ 아~” 하면서 틈틈이 잠긴 목을 풀고 있었다.
비교적 간단한 장면이었지만 풀샷, 바스트샷 등 다양한 카메라 앵글로 잡기 위해 촬영은 약 40분 가까이 이어졌다. 그 장면이 끝나자 슈트를 차려입은 전광렬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그 잘못 전달된 편지로 인해 구 회장과 아내 서인숙이 약간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다. 화가 났으나 표현하지 않고 내내 저음 의 목소리를 유지하는 전광렬의 연기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배우들은 컷 소리가 난 후에도 감정을 추스르느라 혼자 대본을 보거나 조근조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오전부터 시작한 거성가의 촬영은 오후 늦게까지 계속됐다. 베테랑 배우들이 모인 현장답게 대사 NG는 많지 않았으나 현장 세트 상황이 촬영을 중단해야 할 만큼 좋지 않았기 때문. 세트 내부 곳곳은 간밤 계속 내린 장대비로 인해 물이 차 있었다. 진행팀이 한 시간 가까이 양동이로 물을 퍼냈지만 어림도 없었다. 결국 평택의 한 청소 업체를 불러 바닥 청소를 마친 후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 호화스럽게 꾸며진 재벌가 대저택에 비가 새다니 정말 현장에서는 별별 일이 다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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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부터는 팔봉가의 촬영이 이어졌다. 5분 거리 위치에 세워진 팔봉가 세트장에 들어오니 일단 냄새부터가 다르다. 팔봉가 사람들이 사는 집, 제과점 작업실 등이 마련된 세트는 비도 새지 않거니와 맛있는 빵 냄새가 솔솔 풍긴다. 작업실에는 오븐, 대형 냉장고, 제빵 기구 등이 완벽히 갖춰져 있었는데 실제로 사용을 하고 있었다. 킁킁거리며 한참 빵 냄새에 취해 있는데 어디선가 음식 냄새가 났다.
김탁구를 비롯해 팔봉가 가족들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장면을 촬영 중이었다. 구마준 역의 주원이 나란히 앉은 김탁구 역의 윤시윤을 곁눈질로 흘깃 보는 장면인데 밥 먹으랴, 시선 맞추랴, 대사하랴 아직 카메라가 익숙하지 않은 주원에게는 간단하지 않은 장면이었다. 주원의 연기가 흡족스러우면 또 다른 신인인 윤시윤이 NG를 내기도 했다.
감독이 ‘컷’을 외치며 “다 좋았는데 탁구가 마준이 얼굴을 가렸어. 한 번 더 해야겠다”라고 말하자 한참 동안 말없이 밥만 먹고 있던 다른 연기자들이 일제히 “어우~”라며 귀여운 항의를 했다. 이는 거성가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반응. 이한위, 박상면, 박성웅 등은 극 중 비중은 작지만 촬영장을 편안한 분위기로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인 듯했다. 팔봉가 사람들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대기 시간 틈틈이 서로 어울려 수다도 떨고 맛있는 음식도 한턱씩 쏘면서 즐겁게 여름을 나고 있었다.
‘제빵왕 김탁구’, 이것이 궁금하다
1_혹시 만화가 원작이 아닐까 ‘제빵왕 김탁구’의 흥행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초반 아역 배우들의 선전, 중년 연기자들의 호연, 만화 같은 흥미진진한 시나리오 및 입체적인 캐릭터 등. 이 중 여러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시나리오다. 초반 막장 요소를 제외하고는 거성식품 구일중 회장집에서 계모에 의해 쫓겨난 탁구가 우연히 만난 스승 팔봉 선생 집에 들어가 빵 하나로 성공을 이뤄낸다는 이야기는 전형적인 만화 같은 스토리다. 게다가 정의에 불타는 남자 캔디 김탁구, 독백을 즐기는 ‘빵신동’ 이영아 등 입체적인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시청자들이 만화 원작이 따로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제빵왕 김탁구’는 ‘호텔리어’‘오! 필승 봉순영’ 등으로 유명한 강은경 작가의 내공이 빛나는 100% 창작물이다.
2_드라마에 등장하는 빵은 누가 만들까 청주에 위치한 한 제과점에서 단팥빵 100개, 슈크림빵 50개, 식빵 20개, 초콜릿 케이크 5개 식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 대량 주문해 촬영하고 있다. 또 바로 구운 따끈따끈한 빵이 필요할 때에는 항상 대기 중인 파티셰가 즉석에서 구워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촬영을 마친 후 그 많은 빵은 어떻게 할까. 향기로운 빵 굽는 냄새에 취한 연기자와 스태프들이 바로 구운 빵을 하나 둘 집어 먹을 때도 있고 냉장고에 보관하기도 한다고.
3_갤러리에서 빵집으로 잠시 업종 바꾼 팔봉제과점 드라마 속 주요 장소 중 하나인 팔봉제과점은 청주 수암골에 위치한 W갤러리를 리모델링한 곳이다. 1층은 빵집, 2층은 카페로 촬영이 없는 날은 빵을 판매하기도 한다. 소보르빵, 크림빵, 단팥빵 등 종류는 단 세 가지. 드라마에 협찬하는 빵집에서 납품받은 빵도, 이곳에서 직접 만든 빵도 아니지만 관광객들이 많이 사 간다.
4_거성식품 구일중 회장은 대통령급 구일중 회장의 집으로 등장한 으리으리한 대저택은 지난 2003년 일반 대중에게 개방된 청남대다. 이곳에서 지난 5월부터 한 달간 촬영했다. 청남대는 KBS ‘부자의 탄생’, MBC ‘황금물고기’에 이어 올해만 벌써 세 번째 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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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년, 작품을 요리하는 배우 전광렬
전광렬은 제작 발표회 당시 “이 드라마는 성공할 것”이라며 확신에 찬 모습을 보였다. 촬영장에서 만난 그는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표정은 밝았다.
이 드라마에서 전광렬은 주인공 김탁구의 아버지이자 각 인물의 중심이 되는 ‘구일중’을 연기하고 있다. 전광렬조차도 스토리 자체가 워낙 흥미로워 재미있게 촬영 중이란다. 실제로도 그는 웬만한 빵은 만들 줄 안다. 이번 작품이 끝나면 피자 잘 만들기로 유명한 셰프와 함께 이탈리아에 가서 이탈리아 피자 비법을 전수받고 올 예정이다. 짧으면 한 달, 길면 세 달 정도 예상하고 있단다.
전광렬은 항상 진화를 꿈꾸는 배우다. 올해로 데뷔한 지 30년이 됐지만 여전히 그의 시선은 더 넓은 곳으로 향해 있다. 그는 배우로서 다양한 연기를 하려면 무엇보다 감성이 메마르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젊었을 때는 반항적으로도 살아보고 30대에는 배우로서 자만심이나 매너리즘에 빠진 적도 있었죠. 또 40대 들어와서는 여느 가장처럼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하는 등 여러 삶에 적응해 왔어요. 전 배우로서 진정으로 연기를 사랑하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혈기 왕성한 스무 살 청년 때부터 배우로 30년을 살았고, 앞으로 또 30년이 흐른 뒤 백발이 성성해 있을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정답은 나폴리의 조그마한 음식점 주인이다. 그는 “요리사와 배우는 공통점을 지녔다”며 “똑같은 레시피를 놓고도 요리사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만들어진 음식의 맛과 향이 다르듯 똑같은 대본이 주어져도 배우에 따라 연기가 달라지지 않느냐”고 말한다. 재료만 달라질 뿐 현재도, 30년 후에도 전광렬은 요리를 하고 사람들 앞에 작품을 내놓을 것이다.
후원금 12억 이상 모은 뜨거운 눈물의 힘
인터뷰 내내 바른 생활 사나이 같던 전광렬은 정성모가 뒤늦게 촬영장에 합류하자 의외의 모습을 보였다. 인테리어 조명을 정성모 곁으로 직접 옮겨 놓는 등 사진 촬영 도우미로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엉뚱한 모습이 재미있어 웃으니 “저 원래 안 진지해요. 마술도 보여주곤 하는데요?”라며 그 역시 웃는다. 그러고 보니 지난 7월 3일 방영된 ‘희망 로드 대장정’에서 한국전쟁 지원국 중 최빈국인 라이베리아로 봉사 활동을 간 전광렬은 마을 주민들 앞에서도 마술을 선보였었다. 이 프로그램은 오는 11월 열리는 G20 서울 정상회의 개최를 앞두고 KBS가 마련한 프로젝트이다. 화면 속의 그는 충격적인 현지 상황에 가슴 아파하며 내내 눈가가 젖어 있었다. “방송이 나간 후 무려 12억원 이상의 후원금이 모금된 걸로 알고 있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 모금에 참여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고 싶어요.”
특히 이번 봉사 활동에는 아내 박수진씨와 영국에서 공부 중인 아들 동혁(14)군도 함께해 더욱 의미가 컸다. 동혁군은 봉사 활동을 마친 후 학교에서 사진 전시회를 열고 모금을 해 라이베리아에 전하기도 했다. “오물로 뒤덮인 해변가의 판자촌을 다녀온 날, 아들이 숙소로 돌아와서는 아무 말 없이 ‘아빠’라고 부르면서 저를 꼬옥 안더라고요. 백 마디, 천 마디 말보다 뜨거운 가슴을 저한테 직접 전해 줄 때 감동적이었어요.”
전광렬은 앞으로도 라이베리아에 지속적인 도움을 줄 계획이다. 더불어 직접 기획한 두 가지 다른 봉사 프로젝트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곧 실행에 들어갈 첫 번째 프로젝트는 일본, 프랑스 등 각 요리 분야의 유명 셰프들과 양로원이나 고아원 등을 방문해 함께 요리를 만들기도 하고 맛있게 나눠 먹는 일종의 재능 나눔 봉사다. 또 다른 하나는 일명 ‘어글리 맨&어글리 우먼’ 프로젝트. 얼굴이 기형으로 생겼으나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자는 의도에서 기획했다.
“개인이 준비하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해 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생각만큼 방대하지 않아요. 뜻 맞는 사람들이 벌써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걸요. 곧 시작하니 함께해 주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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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여섯 전인화의 악녀 본능
‘제빵왕 김탁구’가 ‘막장’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성공을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쓰고,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걸 풀어가는 작가의 리얼한 스토리 전개와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드는 중견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 덕분이다. 데뷔 25년 만에 처음으로 현대극에서 악역을 선보이는 전인화가 일등 공신.
“자신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 점점 악하게 변해 가는 서인숙의 캐릭터에 당위성이 느껴져 마음에 들었어요. 악역이지만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극 중에서 그녀가 맡은 서인숙은 정략결혼한 거성그룹의 회장 구일중을 사랑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사랑으로 외로워하는 인물. 한때 사랑했던 비서실장 한승재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세우기 위해 계략을 꾸미며 스토리를 이끌어 나간다. 사극 ‘왕과 나’ ‘여인천하’ 등에서 강렬한 카리스마를 보여주었던 그녀가 이번에는 완벽한 팜므파탈로 변신한 것. 그녀는 연기의 범주를 넓히기 위해 의무감으로, 자부심으로 작품에 임하는 듯하다.
“마흔 살 이전에는 제가 연기하기 편한 역할만 했다면 지금은 어떤 역이든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아졌어요. 악한 역할이 불편하기보다는 연기의 새로운 재미를 느끼게 해주거든요. 비뚤어진 야심이기는 하지만 인숙을 연기하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는 부분도 있고요. 친정 식구들은 제가 다른 사람 같다고 하더라고요.”
연기 변신만큼이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레트로 패션 스타일. 첫 회부터 1970년대 에지 있는 사모님 룩을 선보인 그녀는 시크한 헤어스타일까지 선보이며 마치 클래식한 바비 인형을 연상케 한다.
여전히 20대 못지않은 피부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명품 피부와 몸매를 자랑하는 건 자기 관리를 그만큼 철저하게 하기 때문. “배우의 몸은 대중의 것이기 때문에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며 완벽주의를 고수하는 그녀. 일에 있어서만큼은 완벽하고 빈틈없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다정하고 평범한 엄마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소풍, 운동회에 가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부끄러워 움직이지 못했어요. 하지만 애들이 점점 크면서 내 직업 때문에 아이들이 자신감이 결여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이제는 어딜 가서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요. 학예회, 급식 당번, 운동회도 한 번도 안 빠지고 갔어요. 운동회 때는 공굴리기, 과자 따먹기도 했어요. 집에 있을 때는 그냥 평범한 주부예요.” 그녀는 좀 이른 나이인 스물네 살 때 결혼해 일과 직업의 안정을 찾았다. 때문에 혼란스러웠던 20대보다 30대 이후의 시간이 훨씬 편하고 아늑하다.
“어렸을 때는 해야 하는 일에 매달렸고, 억압받는 것 같았는데 서른다섯 살을 넘기니 가정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제가 대장이 된 것 같더라고요. 엄마로서, 여자로서, 배우로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누구보다 그녀를 지지해 주는 사람은 남편. 그녀는 남편 유동근을 두고 “정신적인 지주”라고 표현했다. 남편 앞에서는 숨겨뒀던 약한 모습을 모두 드러내는 천생 여자가 된다는 것.
“남편이 드라마 보고 헤어는 이렇게, 메이크업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 줘요. 누구보다 연기자로서의 심리 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제가 작품을 할 때는 편안하게 작품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집안일에 더 많이 신경 써주고 배려해 주죠. 남편의 조언을 들을 때면 앞으로 막 달려 나가다가도 멈칫하며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힘이 생겨요.”
인생에서 서로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연륜이 쌓이면서 더욱 원숙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것 역시 남편의 무한 지지 덕분이 아닐까. 그녀는 과거보다 지금이 더욱 아름답고, 지금보다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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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강동원, 주원의 비상
주원은 ‘제빵왕 김탁구’로 드라마 첫 신고식을 치렀다. 2년 전 뮤지컬로 데뷔한 뒤 스타성과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제4회 뮤지컬 어워드’ 신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으나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건 이번 드라마를 통해서다.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얼굴 도장을 찍은 그는 ‘리틀 강동원’ ‘포스트 강동원’이라는 닉네임도 얻었다.
“영화 ‘늑대의 유혹’부터 ‘전우치’까지 강동원 선배가 출연한 작품은 다 볼 정도로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선배를 닮았다고 하니까 기분은 좋지만 한편으로는 선배한테 누를 끼치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해요(웃음).”
극 중 주원이 연기하는 구마준 역은 거성식품의 후계자였다가 아버지 구일중의 친자인 김탁구 때문에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는 인물. 피해 의식을 품고 김탁구를 불행하게 만들려다 스스로 파국으로 치닫는다. 드라마 첫 데뷔작치고는 비중 있는 인물을 맡았지만 신인이라고 하기에는 제 역할을 야무지게 해주고 있는 듯하다.
“스케줄 없는 날에는 시윤이 형이랑 영아 누나랑 발효 빵이나 케이크 시트 굽기 같은 제과제빵 수업을 듣고 있거든요. 제빵을 배우니까 인물과 훨씬 더 친해질 수 있고 대사를 이해하는 것도 수월해요.”
신인인데도 주눅 들거나 어려워하기보다 현장을 즐기고 선배 배우들과 충분히 대화를 나누면서 해결점을 찾기 때문일까. 브라운관에서 구마준의 눈빛에는 당당한 힘이 들어가 있고, 신인답지 않은 노련함이 느껴진다. 그는 ‘제빵왕 김탁구’를 만나기 2년 전 뮤지컬 ‘알타보이즈’로 데뷔한 이후 ‘스프링어웨이크’ ‘그리스’에서 파워 넘치는 노래와 연기, 댄스를 선보이며 뮤지컬 배우로 활동을 했다. 그가 갑자기 무대를 드라마로 옮긴 이유는 뭘까.
“뮤지컬 공부를 오래해 왔기 때문에 더 자신이 있는 건 분명하지만 장르를 구분하고 싶지는 않아요. 뮤지컬을 하든 드라마를 하든 가장 중요한 건 연기라고 생각해요. 저만이 소화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주는 것. 이 드라마를 통해 얻고 싶은 건 단 하나, 대중에게 ‘주원’이라는 배우를 알리고 싶어요.”
그의 목표는 뚜렷하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롯이 ‘배우 주원’을 새기는 것. 그가 대중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사람은 다름 아닌 어머니. 강수연, 이미연, 장동건 등 국내 톱 탤런트들의 분장사로 활약했던 어머니는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며 냉철하게 모니터링을 해주는 최고의 비평가이자 선생님이다. 한때 배우가 되겠다는 아들의 뜻에 반대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연기 코치부터 스타일링 코디까지 꼼꼼히 챙겨주고 있다.
“제가 성장하는 과정을 작품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아기 같다’ ‘사춘기 소년 같다’는 평을 많이 해주시는데 나이가 들수록 멋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욕심 많은 그의 야무진 꿈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화려한 필모그래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주원은 ‘제빵왕 김탁구’ 이후의 행보가 더 궁금해지는 신인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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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찍한 이영아의 솔직 토크
“이건 반죽을 섞는 도구가 아니라 이렇게 볼 주변을 긁는 주걱인데요?”
‘제빵왕 김탁구’에서 파티셰로 출연 중인 이영아에게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 좀 잡아달라고 도구를 건네며 제안했다가 한 소리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드라마 촬영에 들어가기 전 윤시윤, 주원 등과 함께 제빵학원을 다니며 공부했다더니 야무지게 배운 모양이다. 촬영 중 대역 없이도 케이크 시트 만들기는 물론 아이싱 작업, 크림 짜기, 장식까지 척척 해낸다.
지난 2008년 ‘일지매’ 이후 2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이영아는 절대 미각을 가진 ‘빵 신동’이지만 엉뚱한 면을 지닌 양미순 캐릭터가 마치 맞춤옷을 입은 듯 잘 어울린다. 지난 6월 초 제작 발표회 당시에만 해도 “데뷔할 때처럼 떨린다”고 했던 수줍은 여인은 온데간데없다.
“처음에는 신유경 역할에 눈이 가더라고요. 쉬었으니까 대대적인 변신을 하고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유경이란 역할이 안 맞는 그릇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에 원래는 유경 역할 때문에 작가 선생님을 만났다가 저는 미순 역에 더 잘 어울린다는 조언을 듣고 미순 역할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양미순이 앙칼지고 똑 부러지는 캐릭터였대요. 그런데 제가 맡으면서 엉뚱한 성격으로 바뀌었어요(웃음).”
실제의 그녀는 좀 무뚝뚝한 성격이지만 여자 한 명이 남자들 틈에 있으면 어떨까 고민 끝에 지금의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그러다 보니 항상 몰려다니는 윤시윤, 주원과 친하다. 두 살 연하인 윤시윤은 평소 그녀한테 ‘형’이라고 부르며 장난을 칠 때도 있다. 주원의 경우는 주변에서 워낙 “착한 애가 어떻게 그런 역을 맡아 잘하고 있느냐. 잘 챙겨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챙겨주려 노력한다고. 처음에는 두 사람 모두 연하 같지 않고 서먹하더니 지금은 동생같이 편하다.
“연기를 시작한 지 7년이 됐잖아요. 5년 동안 열심히 하고 2년 정도 쉬고 돌아와 보니 제 밑에도 후배가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예전보다 촬영장에서 혼이 덜 나나 싶어요(웃음). 무엇보다 기분이 좋은 건 가끔 시윤이나 주원이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느냐고 물어볼 때가 있어요. 제가 잘 모르는 것도 있긴 한데 그래도 물어봐주는 게 참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카메라 보는 법, 서는 위치 등 두 사람이 잘 모르는 부분에 대해 제가 아는 건 다 가르쳐주려고 해요. 두 사람은 물론 여러 배우들과 같이 밥 먹으러 다니며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아까도 시윤이랑 같이 먹고 왔어요.”
2년 동안 쉬고 현장으로 돌아오니 일하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촬영장에서 만난 한 스태프는 “그녀는 촬영이 끝날 때마다 일일이 출연자들과 스태프를 찾아가 인사를 건넨다”며 “그녀가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내면 현장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영아에게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통통 튀는 매력이 있다.
“다른 연기자들도 하는 걸 저도 할 뿐이에요. 2년 쉬면 이렇게 착해져요(웃음). 쉬는 동안 뮤지컬도 보고 여행도 많이 했어요. 네덜란드와 영국의 조경 분야, 일본의 애견숍 등을 돌아봤는데 참 재미있었어요. 저는 꽃, 강아지 이야기가 나오면 말이 많아져요. 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게 마당에도 제가 좋아하는 꽃을 마음대로 다 심어 놓았어요. 요즘은 능소화가 그렇게 예쁘더라고요.”
원래 식물과 동물 좋아하는 사람 중 심성이 곱지 않은 사람이 없는 법이라고 전하자 “제가 착한지는 시윤이랑 주원이한테 물어보세요”라며 머리가 뒤로 젖혀질 정도로 까르르 웃는다. 그러자 요즘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그녀의 커트 머리가 가볍게 흔들린다. 일등 며느릿감이었던 ‘황금신부’나 한복을 입었던 ‘일지매’에서 보았던 이영아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저는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아요. 하기 싫으면 못하니까 2년을 쉬었겠죠? 그때는 제가 지금보다는 좀 더 어리기도 했고요. 어리니까 먹고 살 궁리 대신 하고 싶은 거 하러 다녔던 것 같아요. 아, 그나저나 저는 나중에 잡지 나와도 이 인터뷰 기사 안 읽어볼 거예요. 별 이야기를 다 해서 어떻게 나올지 걱정이다~ 하하.”
마지막까지 톡톡 튀는 멘트를 날리는 이영아. 그녀는 조만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단다. 데뷔 초 그녀를 알리는 데 한몫했던 다이어트에 대해 책을 내자는 제의가 들어왔지만 아직은 고민 중이고,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을 찾아 테마 여행을 다녔을 만큼 지적 호기심이 많은 터라 관심 분야에 대한 정보만 모아 책으로 엮을 계획도 있다. 어떤 형태가 되었든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이영아는 ‘제빵왕 김탁구’ 이후 더 바빠질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