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민일보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자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돼지머리
장인수
동네 어른이 돌아가셨다
가마솥이 마당에서 끓고
돼지를 잡아 삶았는데
이놈 삶은 돼지는 키득키득 웃고 있다
아버지는 돼지의 웃음을 다치지 않게 썰고 있다
소주 한 잔 벌컥 들이켜며 웃음 한 조각을 먹는다
캬! 죽을 때는 요런 표정으로 죽을 수 있을까
접시마다 귀도 웃고 코도 웃고 눈도 웃고 있다
동네 분들과 문상객들이
낄낄낄 돼지 웃음을 먹고 있다
♦ ㅡㅡㅡㅡㅡ 어른이 어른대접을 받고, 이웃이 한 가족처럼 더불어 살던 시절이 있었다.
복(福)과 수(壽)를 누린 어른의 죽음을 호상(好喪)이라 칭하던 그 시절, 가난이 허용한 풍습이랄까, 함께 장례를 치르는 동네 사람들과 문상객들이 삶은 돼지머리처럼 웃는 얼굴이어도 흉이 되지 않았다.
돼지의 웃음을 다치지 않게 썰었다는 구절도 그렇고, ‘캬! 죽을 때는 요런 표정으로 죽을 수 있을까’ 썰어 놓은 웃음 조각과 소주잔을 들이키는 모습이 해학적이지만, 묵인된 웃음 뒤에 가려진 애수와 애도가 깃들어 있다. 가난을 벗고 편이에 길들여진 지금의 장례풍습과는 사뭇 다른 따스한 풍경이 아닌가.
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독거노인도 많아졌다. 미풍양속은 거추장스런 문화로 취급되고, 어른은 꼰대라는 별칭을 얻었다. 유치원보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많은 현대는 어떤 삶이 웃으며 죽을 수 있을까? 어떤 죽음 앞에서 웃을 수 있을까?
병사, 고독사, 자살, 전쟁과 자연재해 등등 사고사(事故死)가 빈번한 현대에 호상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죽음은 얼마나 될까. 얼마만큼의 업적을 남기고, 병치례 없이 백수를 넘긴 고인의 장례식은 웃음이 허용될까.
ㅡ 유진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