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3. 수지의 숏컷 그 후..

[유휴]

대학생이 된 수지의 옷장에 옷들은 긴머리에 어울리는 여성스러운 옷들 뿐이었다. 티셔츠도 핏되는 스타일에 청바지도 스키니진이었다. 수지는 곧장 옷가게로 갔다. 심플한 오버핏 티셔츠와 하늘색 남방을 사고 통이 넉넉한 바지를 샀다. 짧은 머리에 잘 어울리게 보이쉬하게 코디을 했다. 다시 어린 시절 수지가 생각난다. 그렇지만 이제 반장선거 0표를 받고 울던 굴욕의 수지가 아니다. 공부도 열심히해서 원하는 대학에 진학했고, 짧은 머리가 예쁘다고하는 남자친구가 있으니 수지는 본인이 있는 그대로 괜찮다 느낀다. 그렇게 새로운 헤어스타일과 어울리는 편한 스타일의 옷들을 구입하고 집에 온 수지는 자신의 스타일이 마음에 쏙 들었다. 주변 사람들 중에는 윤기나게 찰랑이던 수지의 긴머리가 너무 아깝다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숏컷도 잘 어울린다며 대체로 큰 변화에 놀라하면서도 긍정적이었다. 수지는 긴머리보단 지금이 마치 가발을 벗은 듯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짧은 머리에 편하게 옷을 입고 다니자 수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수지를 오해했다.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있던 남자아기가 수지 핸드폰에 관심을 보이며 수지에게 팔을 뻗자 아기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아가야 형 귀찮게 하지 마~ 죄송합니다“ 수지는 당황에서 ”아니에요 괜찮습니다;“라고 대답하고 황급하게 지하철에서 내렸다.

‘..내가 남자처럼 보이나?’ 수지는 머리를 짧게 잘랐어도 이제 성인 여자인데 누가 남자로 볼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또 한번은 남동생이 있는 수지네 가족이 다 같이 식당에 가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계산중이었다. 식당주인은 수지 부모님을 향해 “아들이 둘이라 아주 든든하시겠어요”라고 기분 좋게 말했다.

 수지는 단지 숏컷과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 뿐인데 사람들이 쉽게 자신을 남자로 오해하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저 여자인데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이 얼마나 미안하고 당황할까 싶어 조용히 지나갔다. 

 학교에서는 개강 초 수지에게 잘 보이려 애쓰던 남자동기들도 수지가 머리를 짧게 자르자 막 대하기 시작했다. 헤드락 걸며 장난도 서슴없이 쳤다. “야 이발 잘 됐네. 머리 어디서 깎았냐? “태우 형이 남동생 생긴 거 같겠다ㅎ” 수지는 머리스타일 하나로 주변에서 자신을 대하는 행동과 시선이 많이 달라짐을 느꼈다.

하지만 차츰 수지도 이런 달라진 반응에 적응했다. 대학생이 되서 외모는 여성스러워졌지만 원래 수지는 내숭도 부릴 줄 모르는 선머슴 기질이 다분한 아이였다. 결국은 금새 학교 남자선배들을 형이라 부르며 여자동기들보다는 남자동기들하고 더 잘 어울렸다. 수지는 그 사이에 있는게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수지는 숏컷을 하면서 남자들은 매달 이발소에 간다는 걸 알게됐다. 수지도 매달 미용실을 찾았다. 컷트에 2만원 넘는 돈을 매달 쓰려니 대학생인 수지는 부담스러웠다. “이번엔 조금만 더 짧게 잘라주세요“ 조금 더 짧게 자르면 미용실을 더 천천히 가게될 줄 알았지만 되려 자란 티가 더 나서 점점 그 텀이 더 짧아졌다. 머리 숱도 많고 머리가 빨리 자라는 수지는 매 번 뒷머리가 덥수룩해지는게 맘에 안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시간이 남은 수지는 ‘커트 6천원’이라고 쓰여있는 이발소를 보았다. ‘6000원에 커트라니 어짜피 짧은 머리가 거기서 거기 아닐까.. 별 차이 있겠어 돈도 아끼고 여기서 한 번 잘라볼까’ 그렇게 남자들만 찾는 이발소에 수지는 어색해하며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여기 커트 6000원 맞죠?” 무심한 듯 수지를 스캔한 이발사는 “여자는 8000원 입니다”라고 말했다. 수지는 요새 종종 남자로 오해를 받고 있어서 여자임을 알아봐준 이발사가 다행이었다. “아! 네 괜찮아요!” 미용실은 2만원이 넘는데 반값보다도 저렴했다. 그래도 처음 이발소라 수지는 심장이 떨렸다. 이발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라고 묻지도 않았다. ‘이발소는 원래 이런가?’ 수지는 작은 목소리로 용기내서 “지금보다 짧게 특별히 뒷머리 좀 많이 다듬어주세요”라고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베테랑처럼 보이는 이발사는 대답이 귀찮은 듯 빠르게 커트보를 씌웠다. 갑자기 ‘위이잉’ 소리가 난다. 바리깡을 꺼내든 이발사는 거침없이 수지의 뒷머리를 쳤다. 애초에 짧은 머리였지만 다니던 미용실에서는 한시간 가량 정성을 쏟으며 가위로만 잘라줬었다. 수지는 바리깡에 너무 당황했지만 이발사 아저씨의 포스에 눌려 수지는 아무말 도 못했다. ’설마.. 그래도 여자인 줄 알고계시니 알아서 잘 잘라주시겠지‘ 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지만 차마 보기가 무서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자 수지는 처음 느끼는 바리깡 소리에 온 감각이 집중됐다. 짜릿했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무뚝뚝한 남자의 투박한 손길에 흥분도 됐다. 하지만 금새 10분도 채 안된 거 같은데 스펀지로 툭툭 털며 이발사 아저씨는 “다 됐어 학생” 이라고 말했다. 수지는 설렘 반 걱정 반 실눈을 뜨며 거울 속 자신을 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망했다! 어떡해ㅠㅠ’ 수지는 최근에 아무리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아도 자신은 숏컷한 ‘여자’였다. 그래도 여전히 나름 어울리게 꾸미고 있었고 남자친구도 있는데..! 이건 그냥 운동부 남학생같은 모습이다. 수지는 울고싶었다. 미용실과 이발소 이렇게 차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게 이발소에서 크게 데인 수지는 너무 당황하여 황급히 8천원을 내고 그 곳을 뛰쳐나왔다. 진정하지 못한 채로 태우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먼저 도착해 앉아있는 태우를 수지는 울먹이며 불렀다  

“오빠..ㅠㅠ”

“수지야?!!”

수지의 짧은 머리를 좋아했던 태우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예쁜 얼굴로 귀엽고 상큼하게 숏컷을 소화해낸 수지였는데 바리깡으로 잘라놓은 모습에 태우도 할 말을 잃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자른거야?”

“돈 아끼려고 이발소에 갔다가..ㅠㅠ”

수지는 눈물이 왈칵 나왔다. 태우는 우는 수지를 달랬다. “괜찮아..머리는 금방 자라잖아” 

제대로 데이트도 못하고 금방 집으로 돌아온 수지는 큰 거울로 적응 안되는 자신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구렛나루도 너무 짧게 잘렸고 손으로 뒷머리를 만지니 바리깡으로 밀린 머리카락은 까슬까슬했다. 항상 본인을 예쁘다고 하는 남자친구마져 많이 당황한게 느껴졌다. 이 모습은 누가봐도 좋게 반응하기 어려웠다. 수지는 ‘미쳤지 왜 이발소에 들어갔을까’부터 ‘이제 학교는 어떻게 가지..’ 자신이 잘못한 선택에 후회와 걱정이 몰려왔다. 공들여 잘려진 숏컷에도 남자로 종종 오해받았는데.. 이젠 오죽할까싶다. 공중 화장실도 못갈 꺼 같고 완전히 남자가 되기로 했냐며 같이 입대하자 놀릴 동기들이 눈에 선하다. 특히 아는 사람들이 안타까운 시선으로 자신을 불쌍하게 바라볼 것만 같아 두렵다.

그러나 그 와중에 이발소에서 바리깡으로 사정없이 잘려나가던 그 순간이 떠오르며 수지는 잠시 혼란스럽다. 숨고 싶고 되돌이킬 수 없는 모습에 슬프면서도 낯선 자신을 거울로 바라보니 벌거벗겨진 듯한 기분이 든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거 같은 자신의 모습에 이상하게 흥분된다.. 수지는 눈을 감고 오늘 머리카락이 거침없이 잘려나가던 기분을 되감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