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는 옛 음식은 전통음식 아니라 고유음식
안동 등 경북북부 유교권은 한식의 원형 간직한 곳 판박이 메뉴 갖고 전전하는 조리사 음식발전 걸림돌
우리 음식계에도 만사 제쳐두고 전국 식당을 주유산천하듯 돌아다니는 '못말리는 식객'들이 적잖습니다. '방랑식객'으로 방송에 소개된 산당 임지호는 경기도 양평에 '산당'이란 퓨전한식당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지난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백석동에 있는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63)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는 전국에 흩어진 전통음식 계보를 정리하기 위해 30여년간 전국을 나그네처럼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사비를 털어 미국에서 한국의 다양한 버전의 비빔밥 순회시식회를 열어주는 한편 진주냉면의 원형도 발굴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렸을 적 중농(中農)이었던 외갓집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다양한 의례음식을 접하며 자랐습니다. 각종 대소사 있는 날이면 과방(果房)을 정하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남자 어른들이 과방에서 음식을 괴는 것을 엿봤습니다. 월남전에 참전하고 제대 후 직장을 전전했으나 각종 의례음식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전국을 다니며 향토음식이나 전통음식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 6월에는 사라진 진주냉면 재현 프로가 KBS·MBC·SBS에 방송 된 바 있습니다. 현재는 경남대학교산업대학원 식품공학과 초빙교수로 있고 머잖아 경주에서 새로운 식문화를 퍼트릴 계획인가 봅니다.
- 고유음식, 전통음식, 퓨전음식을 개념정리해주세요.
"'전통음식( traditional Cuisine )'이 마치 '과거의 음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전통음식은 과거의 음식이 아니라 '고유음식(native Cuisine)'이 그 맥을 유지하면서 시대·환경·문화·사회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나온 것을 말합니다. 삼국·고려·조선시대에 있었던 음식 고요리서에 레시피로 남아 있는 음식, 즉 과거의 음식은 고유음식이죠. 향토음식(native local foods )은 한 지역에 독특한 조리법과 문화를 가진 음식을 말하며, 이 향토음식이 전국화 된 후 한 세기(100년)동안 그 맥이 이어져 내려오면 전통음식에 속하게 됩니다. 퓨전음식( Fusion Cuisine )은 말 그대로 서로 다른 문화권의 음식 재료와 요리 기법 등이 혼합된 음식인데 1980년대 미국 뉴욕·LA 해안 지방에서 시작된 요리문화의 한 장르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주로 발달한 요리 기법을 일컫습니다."
- 전국을 30년 다니면서 우리 한식의 원형이 붕괴되는 걸 목격했을 겁니다. 특히 한식의 일식화를 우려하시는데. 도대체 한식의 원형이 뭔지도 알려주세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요리책 '조선요리제법'을 집필한 방신영 선생은 일본 도쿄 영양학교를 졸업하였으며, '한국음식-역사와 조리'를 집필한 윤서석 명예교수(중앙대학교)는 일본 동경여자고(현 오쨔노미즈여대)를 졸업한 일본 유학파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의 모든 요리책이나 한식 레시피는 모두 이 두 분을 비롯한 일본이나 미국 등에 유학했던 1세대들이 만든 것을 기본으로 한 것입니다. 물론 이 두분들을 비롯한 1세대 영양학자나 조리학자들 모두 우리나라 식생활문화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지만 이 분들이 한식을 일식이나 서양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만드는법 1,2,3,4,5', 이런 식으로 한국음식은 결코 제 맛이 날 수가 없어요. 한국음식은 일식이나 양식처럼 조리가 간단하지 않고 복잡합니다. 한식 만드는 법이 복잡하다해서 일식이나 양식 레시피로 요리를 한다면 이는 결코 한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한식은 재료 준비. 양념의 조화. 가열법. 가열 후 처리 등 시간이 필요한 카를로 페트리니가 주창하는 슬로 푸드(Slow Food)의 진수입니다.
- 요즘 조리사들의 마인드가 갈수록 상업적이다 보니 식당 주인과 잦은 트러블을 일으켜 자리를 계속 이동하는데, 주인과 조리사의 좋은 관계 회복 어떻게 해야 될까요.
"먹는장사를 하는 업주들이 가게의 내부시설 등에는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정작 메뉴개발 투자는 아까워합니다. 고용된 조리사들조차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정된 메뉴 몇 개를 가지고 이집 저집 전전 할 뿐, 배우려 하지 않아요. 업주나 조리사 모두 변하지 않으면 현실과 미래는 암울합니다. 업주는 메뉴개발에 일정부분 투자를 해 자신만의 독특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조리사 역시 겸손한 자세로 끊임없이 배우지 않으면 앞으로 설 자리를 잃게 됩니다."
- 대구와 경북의 음식도 맛봤을 것 같은데 타지 사람들은 자꾸 맛이 없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대구와 경북의 음식이 타지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개선해야 될 점은 어떤 건지 알려주세요.
"고향이 충청남도 공주인 제가 경상도 지역에 관심을 갖고 오랜 기간 머무르고 있는 건 식생활문화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럴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림문화의 맥이 흐르는 경상도는 음식디미방, 수운잡방 등 고조리서가 발굴되는 전통음식 보고의 고장입니다. 경상도의 기본이 되는 반가음식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음식 하나하나 귀품과 맛의 깊이가 있습니다. 다만 경상도는 경상도 사람 특유의 '뭐 할라 꼬?' 하는 보수적 기질을 바꿔야 합니다. 특히 안동을 제외한 여타 지역에서는 향토음식이나 전통음식의 대중화 내지는 가치창출에 소극적이며, 경상도 내륙지방으로 갈수록 음식의 염도가 높은 게 흠입니다.
# 김영복 원장이 추천하는 전국 최고 맛집 ▷백촌막국수-강원 고성군 토성면 백촌리·(033)632-5422·동치미 막국수 ▷월성식당-강릉 주문진 시장통 먹거리길 13호·(033)661-9910·장치찜 ▷돌고래횟집-강릉 사천진리 해안도로 뒷섬 앞·(033)644-1237·성게물회 ▷영덕밥식해-영덕군 강구면 강구리(054)732-6770·밥식해 ▷요한수산-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예리·(061)275-9202·홍어삼합, 홍탁 ▷황복전문-경기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031)952-4059·황복회 ▷향림횟집-전남 무안군 무안읍 버스정류장 낙지골목·(061)453-2055·낙지비빔밥 ▷국제식당-전남 영광군 법성면 법성리·(061)356-4243·보리굴비 ▷단천식당-강원도 속초시 청호동·(033)632-7828·명태순대와 가자미식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