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 광명 화신
다. 결과가 원인을 규정한다 - 결과 중시(정토원의 삶 21/정목스님/2003.9.8.)
예전에는 종자 즉 원인을 중요시 여겼는데, 현대인의 사고는 결과를 중시하는 풍토로 변하고 있습니다.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닙니다. 어렸을 때 아무리 말을 안 들었어도 성장을 하고, 서울에 가서 회사 사장도 하고 자가용 타고 내려오면, “저놈이 참 말을 안 들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뭔가 있었어”라고 합니다. 결과가 원인을 규정하는 경우입니다. 결과가 잘되면 원인을 전부다 좋게 평가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에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했는데, 자꾸 사업에 실패를 하고 내려옵니다. 그럼 옆에서 뭐라고 하냐하면 “저 놈은 어렸을 때 공부는 잘했는데 돈도 많이 쓰고, 문제가 있었어” 라고 해버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렇게 현대인의 사고는 결과로써 원인을 규정해 버리는데, 이것은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입니다. 욕망이 넘쳐서 눈 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과도 물론 중요하지만 원인과 과정을 결과 속에 묻버리는 것은 위험합니다.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건전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전문 옮김)
KBS 아침마당 목요특강(강사 고미숙)
'남자이야기'에서 들은 참으로 멋진 말씀 새기며,
내 주변에 그런 사람 누구 있나
stop & think (止觀) 해보았더니.......
있습니다. 있었어요.
그것도 더 차원 높은 분이!!!
근데 그 분께서는 책을 '쓰기'까지 하십니다.
정조대왕께서 하신 말씀이랍니다.
'하늘 아래 책을 읽는 것 보다 더 고귀한 일은 있는가!'
또 정조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우주사에 3가지 통쾌한 일
1. 고전을 읽고 진리를 탐구한다.
2. 내 인생의 문제를 그 진리에 비추어 푼다.
3. 호방한 문체로 내 철학에 대한 글을 쓴다.
누군지 다들 짐작하실 것 같습니다.
저 정토원에서 '원인론' 마지막 교정 중이신 스님.
우주사에 통쾌한 일을 하시는 스님.
어제 진이 빠지도록 집필하시는 모습에,
전 생명을 바치시는구나-이런 감동 받았습니다.
바로 그 '원인론' 손에 드는 날,
얼마나 눈물날 것인가,
벌써 부터 떨립니다.
방송 강의 중에 예를 든 남자들-
정조,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동시대를 함께 산 멋진 분들!
우리나라에도 정말 멋진 분들이 많았었구나.......
새삼 불꽃같은 열정과 평온한 지혜로 살다간
사람들을 더 알고 싶은 지적욕구가 생깁니다.
원효성사의 위대한 한국 불교 되살리고자
혼신의 진액을 다 바치는 스님께서도
참으로 멋진 우리나라 스님이십니다.
우주사에 멋진 일을 하는 분들을 본받고 싶습니다.
아래 글은 아트 & 스타디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이 글을 옮기는 이유는 맨 마지막 부분때문입니다.
종교의 본질인 '믿음과 구원'을 생각하게 합니다.
'매일 주인이 나타날 때마다 먹이를 얻어먹은 칠면조는 "주인이 나타나면 먹이를 주는구나"라고 이해한다.
이 믿음은 추수감사절 전날 주인이 칠면조 요리를 위해 칠면조를 죽이러 나타나기 전날까지만 옳은 것이다. '
'귀납으로 뒷받침된 보편적 언명은 언제나 거짓으로 판명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흄(David Hume, 1711~1776)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데, 간략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그래 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라는 것이다. '
귀납, 관찰로 정당화되는 원리
거칠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베이컨이 제시한 '새로운 도구' 이후 우리가 과학적, 혹은 상식적 태도로 삼는 기준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편견 및 선입견 없는 "관찰"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관찰된 결과를 이론으로 만드는 데 사용되는 "귀납"이다. 즉, 개별적인 사례들을 편견 없이 관찰, 누적해서 보편적 일반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옳은 태도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귀납'은 '연역'이 아닌 논증법들을 모두 일컫지만, 베이컨 식의 '좁은 귀납'은 이렇게 하나하나의 경우를 모두 나열해 보편적인 결론을 내리는 열거적 귀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귀납을 '소박한 귀납'이라고도 한다. 소박한 귀납에 필요한 것은 우선 다양한 범위, 다양한 조건에서 필요한 대상에 대해 수집된 최대한 많은 관찰 결과다. 그리고 모든 관찰 결과에서 대상이 똑같은 속성을 갖고 있음이 확인되어야 하며 여기에 반대되는 결과는 없어야 한다. 가령 "모든 고니는 흰색이다"라는 보편적 언명이 있다. 이 보편적 언명은 인류 관찰의 역사에 있어, 조명의 색이나 기후 변화, 고니 서식 지역이나 먹이 등 다양한 조건에서 관찰된 수많은 고니가 다 흰색이라는 관찰 결과들에 따라 '고니의 속성'을 표현하는 보편적인 진실로 차츰 인정받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보편적 진실이 되려면, 예외 사례는 없어야만 하며 진실로 '모든' 고니에 대해서 참이어야 한다.
귀납이 갖는 문제
쉽게 예상할 수 있지만, 이러한 귀납에는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귀납으로 뒷받침된 보편적 언명은 언제나 거짓으로 판명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흄(David Hume, 1711~1776)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는데, 간략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그래 왔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러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라는 것이다. 귀납이 확보한 사례는 그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지금까지 존재한 고니'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던 모든 고니를, 단 한 마리도 빼놓지 않고 관찰했다고 할지라도, 이 관찰 결과가 미래에 태어날 모든 고니에 대해서도 해당할 것이라는 주장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실제로 호주 대륙에서 검은 고니가 발견되었고, 이 때문에 '모든 고니는 희다'는 보편적 언명은 거짓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문제를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은 유명한 '칠면조의 비유'를 통해 이야기한다. 매일 주인이 나타날 때마다 먹이를 얻어먹은 칠면조는 "주인이 나타나면 먹이를 주는구나"라고 이해한다. 이 믿음은 추수감사절 전날 주인이 칠면조 요리를 위해 칠면조를 죽이러 나타나기 전날까지만 옳은 것이다.
'일심정토 염불수행' 또한 그러하다는 생각이 읽으며 들었습니다.
'일심정토 염불수행'을 모르는 한국 불자들의 불교는
'일심정토 염불수행'을 알기전날 까지만 옳은 불교 아닌가?
한국 불교는 귀납적 오류에 빠진 것이 아닐까?
결과중시의 귀납적 오류에 빠진 한국 불교를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금방 연상되었기 때문에 옮겨보았습니다.
'보편적 진실이 되려면, 예외 사례는 없어야만 하며 진실로 '모든' 고니에 대해서 참이어야 한다.'
불교는 상식과 인식을 초월하지 않는다.-란 스님의 강력한 주장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 力說(말씀 설), 力設(베풀 설) 하시는 '일체경계 본래일심'이
귀납이 갖는 보편적인 불교의 오류를 깨는 '진리'임을 믿습니다.
일심정토 염불수행에 오늘 스님께서 올리신 글 일부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본인은 원효의 <기신론소> <무량수경종요> <아미타경소>를 통해
불교의 교학을 관철하였고
염불수행을 통해 교학과 계합되는 이치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알든지 모르든지, 믿든지 깨닫든지
일심, 광명, 화신이라는 것입니다.
염불수행을 통해 뛰어난 불자들이 출현하는 시대가 매우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반드시 바른 길을 보아야 하고, 그 길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인생에 혁명이 일어남을 추호도 의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혁명은 곧 불교의 혁명입니다.
나무아미타불 '
인생의 혁명, 자신의 혁명, 불교의 혁명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_()()()_
*일체경계 본래일심
일체가 아미타불 화신이다.
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첫댓글 일심.광명.화신.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는 선법행님 항상 감사한 마음으로 보고있습니다.
일체겅계 본래일심 일체가 아미타불 화신이다.모든 인연에 감사하고 보은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일심.광명.화신.
감사드립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_()()()_
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 아미타파
귀납과 연역으로 스님의 위대한 일심정토 염불사상에 대한 증명을 이끌어 내시다니요,
전 귀납과 연역 ,아리송한 서양사 철학시간에만 다루는줄 알았습니다,
일심정토 염불수행을 읽기 전까지만 옳은 불교가 아닌가?
저도 스님과의 인연이 없었다면
국자맛만 보고 진짜 국맛은 느껴보지 못한 불교로 막을 내릴수도 있다는것에 생각이 멈추면 더러는 아찔합니다,
부처님의 지혜를 그리고 종교가 무엇인지를 스님은 보탬없이,왜곡됨없이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복잡한 이 현실을 잘 헤치고 살아갈수 있도록
편안하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또한 현대적 사고와 해석으로 이끌어내주시는것은 분명합니다,
불교는 생산적인 道이다-단순한 언어에
그친다면 역시 문자로만 부처님 지혜를 받아들이는 결과를 낳을것이고
실제로 생산적인 道가 되도록 그 활용을 염불을 통해서 하게 된다면
염불행자는 감성이 풍부하고 열정으로 늘 넘치게 되고 ,웃는 날이 많게 되고,
예뻐보이는 주변이 많아지게 되고,그리고 내 생활에 장애가 알게 모르게 점차로 줄어들게 되며
무엇보다 때로는 근거없는 듯한 자신감이 나를 일렁이게 할 때는 혼자 실실거리기도 합니다,
귀납적 방법으로 일심정토 염불수행을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법의 길을 가는 우리에게
지침이 되도록 선봉에 우뚝 세워주신 보살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반의 중요성을 확실히 알겠습니다,
상쾌하게 여는 아침이 좋습니다.
보살님 글솜씨 저!또한감동입니다. 보살님의 수준높은 전법 포교 활동 이십니다.
불교 혁명 담당하시고 계신 선법행보살님 저희들의 모범이십니다.
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똑똑하신 도반님들과 사이버 공간을 공유하게됨을 감사드림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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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법행님 글 감사합니다.
스님을 존경하시는 마음, 이런글 쓰시는 선법행님도 대단하십니다.
원인론이 기대됩니다.
스님의 피와 땀으로 결실을 맺은 원인론
한국불교의 혁명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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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광명.일심.화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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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청정한 세계여! 무량광며이옵니다.
감사합니다.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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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정토염불수행이전까지는 모든 염불이 같은줄 알았습니다, 이전까지는 세계관과 사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자신의 혁명은 곧 불교의 혁명이다
일심광명화신.
감사합니다. 아미타 아미타 아미타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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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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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일심 광명 화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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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 광명 화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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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일심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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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광명.화신.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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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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