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회성을 통해 구축한 격조 높은 예술성
- <에세이포레> 가을호를 읽고 -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1.
수필의 경우, 문학성을 확보하는 한 방안으로 제일 먼저 우회성을 들 수 있다. 입체적 구성을 통해 주제를 의미화해야 완성도가 높아지는본격수필은 전략적 차원에서 표현의 우회성 기술을 매우중요시한다고하겠다. 이미 이러한 우회적 표현 방식은 ‘실감의 유리’와 ‘실감의 보수’라는 용어로 수필가와 친숙하다고 하겠다. 제한된 지면과 언어의 부피 속에 부푼 표현 욕망을 십오 매 내외의 원고지 안에 압축하는 데, 그것은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수필문장은 ‘소통성’보다는 ‘전달 차단성’을 추구해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현대수필의 잡문성이 바로 이 표현 기술의 부재에서 온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진단일까.
이번 계간평에서는 은은한 우회성과 저회성이 드러나 문예미학을 안겨주는 세 분의 수필을 집중 조명하려고 한다. <에세이포레> 가을호에서 좋은 수필을 선보인 권남희의 <양파 까는 날>과 신작수필을 통해 얼굴을 내민 김희자의 <떨켜>, 그리고 한상렬 평론가가 ‘탁월한 몽상가’로 명명한 조춘희 작가의 <제복>이다. 이들은 수필의 목적이 감동과 깨달음에 있다는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문학은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통해서 승화된 결과물이다.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사상과의 만남을 통해서 삶의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추구해 나갈 때에 그 자리를 견고히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이 문학적 기법을 통해 문예미학을 완성시킬 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수필은 ‘문악’이 아니라 ‘문학’이기 때문이다.
2
권남희의 <양파 까는 날>은 한마디로 훌륭한 수필이다. 공공의 관심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되었을 때, 우리는 교술의 한 갈래로서 의미있는 내용을 담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수필은 인생의 비극성을 ‘양파의 술폭시드’ 성분에 비유해서 해석해내고 있는 작품으로써 문학적 가치뿐만 아니라 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데, 정서를 표현함에 있어 ‘우회적 수법’을 잘 활용하고 있어, 미적 쾌감을 준다. ‘언제나 웃음 띤 얼굴인 채 밝아야할 뿐 마음 놓고 울만한 곳도 찾을 수 없는 세상, 양파 까는 날처럼 핑계 김에 울기좋은 날이 어디 있을까.’라는 설의법을 발단에 놓고, 작가는 ‘인생살이의 고단함’에 묻어나는 삶의 아이러니를 우회적 수법으로 지적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작가는 어디서 받은 양파 한 박스를 네팔 지진을 집중 보도하고 있는 텔레비전 앞에 쏟아놓고, 양파를 핑계로 눈물을 쏟는다. 몇 개를 깔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자제했던 눈물이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진다. 이런 진술과 함께 텔레비전에서 쏟아놓는 네팔의 지진 보도는 그녀에게 갈수록 비참한 풍경으로 클로즈업된다. 작가는 양파를 핑계로 눈물을 쏟는다하면서도 어미가 되고 나니, 울 일이 더 많아졌다며, 울음과 눈물의 원인이 양파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슬쩍 내비친다. 이 수필의 문학적 맛은 제재인 ‘양파’를 ‘울음’에 접목하는 비유적 기법을 쓰고 있는 데 있다고 하겠다.
전개부 다섯 번째 문단의 ‘양파 껍질이 쌓여갈수록 울음거리는 점점 늘어간다.’는 진술은 작가의 치밀한 문장 조직 능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플로베르의 ‘일물 일어설’이 생각날 정도로 작가는 구성적 비유에 성공하고 있다. 발단부 첫 문장, ‘양파 껍질 벗기기는 어느 누구도 울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에 이어지는 ‘우아하게 화장한 날은 양파를 건드리지 말 것이다.’란 진술에서 볼 수 있듯이 상징을 통한 함축은 우회적 수법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예술수필이란 상상력의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우아하게 화장한 날’은 ‘양파를 건드리지 말 것이다.’라는 진술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순간, 우리는 마치 죽은 아이가 되살아나는 듯한 기쁜 정서적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아하게 화장한 날’이 주는 상징성은 결말부에 가서, ‘뜨겁게 지지고 볶아 단맛 뽑아내는 재주가 약했던 내 인생’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언어를 수사법을 써서 비유적으로 제시하는 우회적 표현 능력이야 말로 모든 문학가가 먼저 가져야 할 소질이 아닐까. 권남희는 그런 능력이 충분해 보인다. 언어는 결핍의 표현인 것이다. 현재가 과거처럼 아름다울 수는 없는 법이다.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양파 껍질 벗기기는 경지에 올랐는데 양파는 영문도 모른 채 살점이 뜯겨나가고 내 눈물은 점입가경으로 얼굴을 뒤덮는다.’라고 쓰고 있다. 권남희는 결말부에 가서는 양파껍질에다가 자신의 상처를 덮어씌운다. 어찌 세상사의 눈물이 그녀 혼자만의 일이고, 세상사의 상처가 어찌 그녀 혼자만의 것이랴. 그녀는 ‘양파를 닮은 상처’와 ‘양파껍질로 환상한 아픔’을 다시 ‘세상 어미들의 눈물’로 승화시켜, 그것이 한 여자 개인의 상처가 아니라 세상 어미들의 상처로 의미화함으로써, 이 수필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김희자의 <떨켜>란 수필은 제재의 형상화가 대단히 잘된 작품이다. 이 수필은 제재를 통해 주제를 겨냥하는 것이 본격수필임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떨켜’라는 제목이 주는 생소함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담보하고 있다. 평자는 특이한 제재를 통해 주제를 잘 헹궈낸 수필임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리가 수필을 쓸 때,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이 주제의 통일성이다. 다시 말해 구성의 각도와 초점을 한 곳으로 모으는 일인데, 이 작품은 구성의 각도와 초점을 정확히 맞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재와 주제 중심의 문학이라는 수필의 성격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어서 수필의 맛을 준다. 제재를 통해 주제를 겨냥하는 수법도 그렇고, 모든 문단이 전체 주제를 향해 일사 분란하게 응집되고 있는 등 작가로서 갖추어야 할 문단 구성 능력이 탁월하다고 하겠다. 현실 체험이 상상력을 만나 햇살 같이 밝게 빛날 뿐만 아니라 사과 속의 영양분처럼 문맥에 녹아있음으로 해서 이 작품의 주제의식, ‘자연의 순리대로 살기’가 독자에게 아련한 메시지로 전달된다는 점은 이 수필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이 수필의 우수성은 한마디로 발견과 성찰이라는 수필의 기능에서 가치를 발한다. 작가의 시선은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던 울긋불긋한 나뭇잎의 내면’에 머문다. 주로 ‘버려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아는 나무의 비움’에서 의미를 찾는 일에 몰두한다. 그녀의내면에 놓인 문학적 그림자 형상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비움'이다. 작가적 현실 세계가 삶의 기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보편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키를 틀고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은문학적 향기를 발산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수필의 맛은 단순히 작가의 시선이 나무에만 향하고 있거나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데서 나온다.작가는 나무의 절정을 사람의 ‘은퇴’나 ‘완경’에 치환시켜냄으로써 문학성과 함께 사색이라는 자기 관조를 불러온다.
여기에 구체적인 인물의 경험담을 전개부에 삽화로 처리한 것은 자기 성찰에 구체성을 부여함과 동시에 보편성의 획득을 노린 전략적 구상이 아닐 수 없다. 나무의 ‘떨켜’가 ‘자연의 순리’라는 의미발견과 만나 문학적 수필의 옷을 입었다고 할 수 있다. 나무가 아름다운 이유를 ‘떨켜’라는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찾아내고, ‘그래서 단풍이 곱다’라는 명제를 뽑아낸 것 또한 쾌미다. 이런 발견은 작가 자신의 심사가 투영된 결과다. 그녀는 ‘사람들은 떨켜 없는 나무를 자아가 강해서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비유한다.’는 진술 속에주제를 잘 구체화했다. 결말부에 가서 다시 갱년기 언니를 나무의 비움과 상관화해서 불러들이고, 제재인 ‘떨켜’에 ‘용기와 결단’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자신의 내면에 연결시켜 ‘사랑과 욕망에 연연하지 않고 빈 가지로 만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으로 이미지화한 구성적 전략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한다.
조춘희의 <제복>도 앞의 두 분 수필과 마찬가지로 문학적 형상화가 빛나는 수필이다. 이 수필의 맛은 말 할 것도 없이 ‘제재인 ’제복‘이 담고 있는 의미를 작가가 발견해서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수필은 감동과 깨달음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다. 감동과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는 우선 주제화를 위한 전개 과정이 논리성을 가져야 한다. 조춘희는 <제복>에서주제의식을 겨냥하기 위한 첫 단계적 작업으로 지인의 아들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한 사실을 들고 나온다. 제재를 묘사한 대목에서 주제의식이 문학적으로 상상화되고 있는데, 작가는 지인의 아들이 제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감격하면서, ’하얀 제복에 금빛 햇살이 반사되어 파도알갱이처럼 부서져 내리고, 무언가 해냈다는 자신감이 동백꽃처럼 붉었다.‘라고 제복에 대한 느낌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이 수필의 문학적 성취는 그 느낌의 객관화에서 나온다. ’금빛 햇살‘과 ’동백꽃‘이란 비유와 함축 그리고 상징으로 된 진술은 ’무엇‘을 ’어떻게‘ 비유하느냐 하는 창작의 기본원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를 감동과 깨달음의 지름길로 달려가게 하는 장치라 하겠다.
수필은 자아와 자기를 찾아 나서는 작업이다. 자기 고백성과 반성적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서 자신의 과거를 잃고 현재에 묻힐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회상을 하는 가운데서 자신을 찾아 바로 세우는 일이 바로 수필적 생활이다. 작가는 한 때 제복에 갇혀 사는 또래 친구들이 눈물나게 부러운 적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학교에 갔다가 가방 안에 꿈을 가득 담아 오기면 하면 되는’ 친구들의 등하굣길 웃음 자지러지는 소리가 작가에게 큰 상처로 들어앉기도 했다고 한다. 사춘기 시절의 자신의 모습을가감없이 솔직하게 상처투성이로 재현해 낸 것이 공감의 확대를 가져왔다. 대단한 ‘고백성’이다. ‘교복 입는 일을 꿈도 꿀 수 없는’ 이란 진술에서 평자는 ‘제복’의 부재가 얼마나 작가의 젖은 슬픔을 무겁게 해주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장면은 평자에게 빈부격차의 애환을 담은 애련한 사진으로 인식된다. ‘제복’ 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은 꿈이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제복에 한이 맺힌 작가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제복을 입은 한 남자, 그녀는 경찰공무원을 만나게 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가버린 과거는 영원히 그 자리에 정지에 있다고 한 독일 시인 실러는 말했다.이 작품의 쾌미는 ‘제복은 그렇게 많은 책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진술에 녹아 있다고 본다. ‘제복’은 이 수필에서억압이나 통제 그리고 구속의 말이 아니라는 것으로 의미화되고 있다. 이 수필의 우수성은 단순히 제복에서 의미를 발견하는 일에서 더 나아가 작가가 제복에 현실의 밑그림을 담아 제복을 벗어버려 책임을 다하지 못한 세월호 사건의 책임자들을 비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결말부에 가서 ‘내게 주어진 아내, 어머니, 딸이라는 제복이 잘 입혀져 빛나고 있는지. 아들, 남편, 가장, 사회의 일원으로서 제복을 잘 착용하고 있는지? 화장대 앞에 놓인, 젊은 시절 제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고 부동자세로 찍은, 남편 사진이 담겨진 액자를 오늘따라 공들여 닦아본다.’고 한 마무리도 감동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하겠다. 상징과 비유 등의 수사법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주제를 상상화하고, 의미화하는 문학적 수법을 통해 그녀는 독자를 상상과 연상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진정한 문학적 감동은 여기 ‘우회성’에서 싹을 튀우는 것이다.
3.
언어인 말은 존재의 집이다. 인간은 누구나 말 속에서 산다. 마치 자연스럽게 다듬어진 홍도의 계란 같은 조약돌처럼 꾸밈이 없는 듯이 기교를 부려서 글을 쓴다면 분명 독자들을 감동으로 초대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폭과 깊이는 자신이 지닌 어휘의 깊이와 폭을 넘을 수 없다. 화장하는 것이 자신의 외면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이라면, 외면에 드러나지 않는 정신의 표현인 말을 ‘우회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문학하는 생활이다. 문학하는 생활은 자신의 정신을 변형시키는 내면의 화장이다. 외면인 육체는 다만 정신의 하수인일 뿐이다. 언어의 변화는 곧 정신의 변화요, 정신의 표현이다. 체험을 글로 표현함에 있어서 ‘우회성’을 살리는 것은 문예미학을 위한 수사적인 전략이다.
자기의 사상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수필에도 기교가 요구되는 것은 그것이 문학의 한 장르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수필이 문학의 한 장르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설명의 나열에 그쳐서는 안 되고 표현되어져야 하는 바, 그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서는 기교가 없는 듯하면서도, 실은 없는 듯한 기교가 내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필에 있어서 기교가 두드러지게 드러나 보이게 되면 수필답지 못한 것으로 이해된다. 꾸밈이 없는 자연스러움은 수필의 생명이요, 최대의 강점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작품들은 내용과 형식이 조화된 작품으로 은은한 향기처럼 배어나는 인생의 지혜를 잘 전달하고 있다. 이들은 ‘우회성’이란 기법으로 한 편의 수필을 격조 높은 예술적 산문으로 승화시켜 놓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