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정선배랑 전주에서 영화도 보고, 카페도 가고, 대만 음식점도 가고, 전주책쾌도 갔다. 주차 자리를 찾느라 객사를 차 안에서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객사를 돌아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옛 간판들과 전주의 정취를 느끼기에 좋았다. 주차한 근처 한쪽 벽면에 흐드러지게 내려 핀 능소화가 보였고, 우리의 마음을 흔들었다. 작년 능소화는 이맘때쯤 국립중앙박물관 근처를 혼자 걸으면서 거울못 근처에서 본 것 같은데 그때 혼자 걸었던 날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곳도 내려 핀 능소화가 아름다워 발길을 멈추고 사진을 찍은 나만의 추억이 있다. 작년 그날은 무언가를 시작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꽤나 의지로 가득하였고 행복했던 발걸음으로 걷기만 해도 리듬감이 생기었는데 요즘은 또 그렇지는 않군.
밥을 먹기는 시간이 일러서 잠깐 걸어보자 하고 걷는 중에 전주책쾌 안내 포스터를 발견했고, 걸음마다 붙여져 있는 바닥의 안내판을 따라가다 보니 북적거리는 곳에서 우리는 함께 책을 고르고 있었다. 상업 출판이 아닌 독립 출판이라는 점,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응원하는 마음으로 찬찬히 둘러보게 되었다. 책 한 권을 제작하기 위해서 처음인 기획부터 끝인 출판과 홍보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을지 가늠이 안 되고, 구매하지 않더라도 반짝이는 눈으로 자신의 책을 다정히 소개해 주시는 분들뿐이었다. 역시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반짝인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런 마음에 감동했고... 우린 그곳에서 2시간을 넘게 있었지롱... 정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나눈 작은 대화들이 너무너무 간직하고 싶고 기분이 좋았다. 처음 간 부스 ooog에서 표현력/ 어휘력/ 상상력 단어집을 구매했는데 작고 귀엽지만 유용하기까지... 꼭 선물하고 싶은 친구가 있어서 구매했다. 나는 그림을 굉장히 못 그리기 때문에... 꽃이라는 글자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을 전시한 부스가 있었는데 더더욱 눈길이 갔고 그곳에서 나눈 대화도 좋았다. 내 반응이 너무 좋다며 ㅋㅋㅋ 동영상으로 찍었어야 했다면서 엄청나게 좋아해 주셨다. 히히히 평소 영혼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이번에는 진심이 잘 전달된 것 같아서 좋았다. 다른 부스에 계신 분은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서 주인공의 시점으로 편지를 작성하고, 여러 영화를 엮어 '레터스 프롬 무비'라는 책을 집필했다. 너희에게도 꼭꼭 소개해 주고 싶었어... 나도 영화를 즐겨 보는 취미가 있어서 친구들과 이 영화는 어땠는지 뭐가 좋았는지 아쉬웠는지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기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영화에 창작을 더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구매할 걸 아른거리네. 힝 그분은 내게 커넥트라는 영화를 추천해 주셨고 편지의 필체 또한 고심했다며 설명해 주셨는데,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설명을 들으니, 눈에 들어오더라. 이렇듯 많은 분들이 책을 집필하면서 세밀하게 신경 쓴 부분이 많았을 텐데, 더 깊게 들여다보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하는 나 자신이 아쉬웠다.
가장 좋았던 점은, 사람이 많아서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없거나 길이 좁아서 멀어지기 마련이었는데 북새통같이 소란스러운 틈에서 언니를 찾다 보면 저 멀리 책을 고르며 즐거워하고 있으니 그런 모습을 보는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
이렇게 시간을 보내고 언니 덕분에 맛있는 대만 음식까지 처음 먹어보았다. 선택지가 흐린 나를 이끌어주는 정선배 최고. 후에 차를 타고 세병공원에서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에 누웠을 때는 구름이 너무 많아서 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가, 막 떠들다 보니 하나둘 눈에 들어왔고 자세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면 여러 별이 흐리지만 촘촘하게 많이 떠 있었다. 우리는 누워서 10년 뒤에 뭐 하고 있을지 이야기도 하고... 같이 풀벌레 소리도 들었다. 누워서 맞는 선선한 바람과 어둑하지만, 저 멀리 있는 다른 사람들의 랜턴 불빛이 좋았다. 누우니 하늘만 보이고 아파트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도. 언니랑 보낸 분홍색 돗자리에서의 저녁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고 꼭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기에 오늘도 이렇게 주절주절 적어본다. 다시금 읽어보니 좋은 일만 있는 소중한 하루였네. 하트하트
정선배 알라뷰
첫댓글 여름이 주는 행복을 함께해서 영광이에요
ㅋㅋㅋ 제가 더 영광입니다.
여름은 능소화의 계절…//
여름은 슈랑 놀러가는 계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