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 샐리 티스데일 지음
1. 한 페이지 요약 및 견해
“사기그릇은 언젠가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기그릇의 생명력은 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위태로운 아름다움. 우리의 고충이 여기에 있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영원할 수 없어 고귀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잊고 산다. (P14)
“섬뜩하지만 순식간에 스쳐 지나는 이런 통찰이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육신이 언젠가 소멸우리는 대부분 죽음을 아주 막연하게 생각하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바로 내가, 누구보다 소중하고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게 된다. 생각만 해도 한다는 걸 알면, 이승을 하직해야 한다는 걸 알고 나면, 우리는 달라진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과 달콤한 행복을 동시에 맛봤다. 사기그릇의 아름다움이 내안에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P47)"
우리는 과연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얼마나 인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쓴 저자 샐리 티스데일은 주변에서 일어난 지인들의 죽음과 완화의료 분야에서 활동하며 마주한 많은 낯선 이들의 죽음을 통해 깨달은 통찰을 독자와 함께 공유하려 한다. 그녀의 통찰은 간단하다. 우리 삶의 중심엔 늘 내일과 미래가 있지만 현실을 직시하자면 지금 뿐이라는 것, 즉 삶은 누구에게나 유한하며 비영속성이 고통과 즐거움의 핵심이라 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다 그렇듯이 나 또한 변하고 우리 모두 변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항상 죽음이 뒤따른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외면한 채 매번 계획만을 세운다. 씨를 뿌리고 열매가 맺기를 기다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계획을 세우기 전 우리가 얼마나 죽음에 대해 깊은 성찰을 가졌는가에 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정확히 무엇을 두려워해야 할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일까?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는 과연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전체를 관통하는 한 가지 주제는 ‘죽음을 대비하는 방법’이다. 세부적으로는 좋은 죽음, 죽음을 앞둔 사람과의 의사소통, 마지막 몇 달, 몇 주, 며칠, 임종 순간, 시신, 애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결국,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모두 죽는다. 이것은 우리의 본성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남의 일처럼 생각한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고? 그럼 나에게도?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세상에 대한 미련이 있기 때문이리라.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누구나 죽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자연스레 다음 질문을 하게 된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인가? 곧,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가?
아름답고 평화로운 숲속의 산장에서 편안하게 눈을 감는 모습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병원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축복받는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상상했을 수도 있다. 샐리 티스데일은 좋은 죽음이란, 죽을 때의 환경이나 여건보다는, 죽어가는 사람이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죽음이다. 조용하게 죽는다고 해서 좋은 죽음이 아니며, 병마와 싸우지 않고 자연사하는 것이 좋은 죽음이라고 할 수도 없다. 이 순간을 계기 삼아 당신에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 바란다. 책 뒤편에 있는 부록, ‘죽음 계획서’를 작성하며 죽음을 준비해보자. 죽음을 준비한다는 의미보다 ‘왜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내일은 없다. 내년도 없다. 오로지 지금만 있다.
둘째는 죽음을 앞둔 사람을 대하는 실질적 방법들이다.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우리가 꼭 눈여겨볼 내용은 죽음을 앞둔 사람과의 의사소통 방법에 관한 내용이다.
죽어가는 내 가족과 어떻게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몰라서 눈물을 훔쳤던 경험이 있는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죽음의 무게를 견디고 있는 친구에게 무슨 얘기를 건넬지 몰라서 입을 떼지 못한 경험이 있는가? 사실, 정답이 어디 있겠냐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가 좋은 참고서가 되어줄 수 있다. 의사소통 방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한 가지만 언급하겠다. 바로 ‘죽음을 앞둔 사람이 최우선’이라는 것. 그들의 말을 경청하되 함부로 지껄이지 마라. 전적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에 맞춰서 소통하라.
의사소통법에 이어 지막 몇 달, 몇 주, 며칠, 임종 순간 등의 상황에 대한 실질적 조언도 담겨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어떤 현상이 나타나고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상세히 다룬다. 예를 들어, 증상, 치료법, 의약품과 효과, 서비스의 종류, 호스피스의 단점, 왜 집에서 환자를 돌보는 것이 안 좋은지, 음식을 어떻게 먹이는 것이 좋은지 등이다. 특히 시신에 대해서 다루는 10장은 대단히 특별한 느낌이다. 시신을 처리하는 방법, 죽은 뒤에 시신에 일어나는 변화, 묘지와 시신 매장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실정에는 맞지 않는 사례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나 참고로 읽기엔 무리가 없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책을 읽고 나니 언제나 우리의 곁엔 죽음이 있음을, 그래서 오늘, 내일이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 살아있음을 언제나 감사하고 다가올 죽음 앞에 의연하게 설 수 있기 위해 나는 오늘 하루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려 한다.
2. 나를 확장시킬 책속의 내용
P12
요즘 아이들은 형제자매가 태어나는 모습을 지켜보긴 해도 시신을 보진 않는다. 그 점은 어른도 마찬가지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눈 앞에 둘 때까지 죽음을 좀체 보지 못한다.
P14
“사기그릇은 언젠가 깨지기 때문에 아름답다... 사기그릇의 생명력은 늘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다.”
위태로운 아름다움. 우리의 고충이 여기에 있다. 죽음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사라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영원할 수 없어 고귀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늘 잊고 산다.
P23
수행을 위해선 삶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변하고, 좀처럼 만족하지 못하며,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존재이며, 아울러 언젠가 죽을 운명에 처한 고통받는 존재이다. 우리도 변하고 우리가 아끼는 것도 변하고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도 모두 변한다. 오래된 불교 명상법에선 이 사실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본래 나이가 들 운명이다. 나는 본래 병이 들 운명이다. 나는 본래 죽을 운명이다. 나에게 소중한 전부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본래 변할 운명이다. 그런 운명에서 벗어날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P24
우리 삶의 중심엔 늘 내일이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내일은 빨래가 다 끝났을 때일 수 있다. 내일은 내가 은퇴한 뒤에 올 수 있다. 내일은 여름휴가를 시작하는 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식한다면 내일은 없다. 내년도 없다. 오로지 지금만 있다.(중략)
그런데 문제는 다음 여름이 약속되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다음 여름휴가를 계획한다는 데 있다. 현실을 직시하자면, 이러한 비영속성이 고통과 즐거움의 핵심이다. 일상 속 수행을 강조했던 스즈키 순류 선사는 이렇게 설파했다.
“우리는 왜 자신을 특별하게 대우하려 하는가? 탄생과 죽음을 (식물과 동물과 나무 등) 만물의 탄생과 죽음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세상 만물에게 해당되는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다.”
P25
인간은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던 먼 옛날부터 죽음의 본질을 궁금하게 여겨왔다. 죽음과 관련된 근대 문학에선 늘 키케로(Cicero)를 들먹이며 의미를 강조하곤 한다.
“철학적으로 사색한다면 죽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다.”
P27
그런데 며칠 뒤 캐롤이 전화로 불쑥 “암이래”하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복잡한 체계로 이뤄져 있지만, 그와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측면도 있다. (중략)
불치병에 걸린 사람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시점을 일종의 경계선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죽어간다는 사실을 진짜로 알기 전과 후로 인생이 갈렸다. 이론과 실제 사이의 경계선을 넘어가는 날이 오면, 초반엔 흔히 현실적인 노선을 취한다.
P29
우리가 죽음을, 우리 자신의 죽음을 고려할 수 있다면 (내가 죽는다고? 정말?), 다시 말해 우리가 죽는다는 사실에 익숙해질 수 있다면, 임종의 순간은 단 몇 분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중략)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습관을 형성하고 경험을 통해 배우고 약점과 강점을 파악하면서 자신의 미래를 바꿔나간다.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맞이하게 될 사람, 즉 미래의 나를 완성하고 있는 것이다.
P31
그때는 죽는 게 무척 두려웠다. 끔찍하리만치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오랜 시간에 걸쳐 죽음을 똑바로 보고, 만져보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기 때문이다. 경험이 중요하다. 직점 경험해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죽음 자체에, 당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에 좀 더 편해지고 싶으면, 그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
P47
섬뜩하지만 순식간에 스쳐 지나는 이런 통찰이 우리 삶을 변화시킨다. 육신이 언젠가 소멸우리는 대부분 죽음을 아주 막연하게 생각하다 어느 시점에 이르면 바로 내가, 누구보다 소중하고 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나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퍼뜩 깨닫게 된다. 생각만 해도 한다는 걸 알면, 이승을 하직해야 한다는 걸 알고 나면, 우리는 달라진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과 달콤한 행복을 동시에 맛봤다. 사기그릇의 아름다움이 내안에 있다니, 얼마나 멋진가.
P52
죽음은 부자연스러운 것이면서 동시에 자연스러운 것이다. 요청하지도 않았고 달갑지도 않으며 통제할 수 없는 외력에 의해 야기된다는 점에선 부자연스럽지만, 세상 만물에게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에선 극히 자연스럽다. “다윈과 프로이트가 숙고했던 점은 죽음 후의 삶이 아니라 죽음이 뒤따르는 삶이었다”고 심리치료사인 아담 필립스는 적고 있다.
P60
수용은 거부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이뤄진다. 죽음을 숙고하는 것은 실제로 저항을 숙고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도대체 어떻게 하면 죽을 준비가 될까? 우리는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한다. 우리가 두려워한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그 두려움을 오래, 아주 오래 검토해야 한다. 우리가 외면했던 진실, 즉 우리 모두 미래의 시신임을 인정하는 것부터 해야한다.
P77
내 죽음은 오로지 내 소관이며, 내 죽음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죽음이 우리 삶과 어울릴까? 우리가 살기 위해 애썼던 방식을, 살고 싶었던 방식을 죽음에도 반영할 수 있을까? 막연히 ‘좋은 죽음’을 바라지 말고, ‘적합한 죽음’을 고민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P80
우리는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괴로움을 감추고 싶어한다.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죽음이 멋지게 보이길 바란다. 당신의 마지막도 특별해 보이길 바라는가? 초월적이고 영적인 죽음이길 원하는가? 하지만 죽음은 그저 처절할 뿐이다. 죽은 뒤에 벌어지는 일을 생각해보라.
P116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 수만큼이나 많다. 우리는 대대로 내려온 습관과 전통에 의해 길들여진 존재이다. 심각한 질병은 개인의 내력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 내력을 학술적으로 탐구하겠다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는 타인이 우리에게 준 것들, 즉 유전과 역사와 관계와 경험으로 이뤄졌음을 밝히고 싶다.
P172
모든 게 변한다. 시간이 고무줄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든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것 같다가 돌연 마구잡이로 터진다. 그러다 또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함께 길을 걷다 헤어지는 것과 같다. 우리는 나란히 길을 걷거나 한사람이 앞서고 나머지가 뒤따르며 걷는다. 갈림길에 이르러서 우리는 한동안 서성거린다. 그러다 한 사람이 몸을 틀고 한쪽 길을 따라 걸어가면 남은 사람은 고개를 숙이며 배웅한다.
P176
환자는 죽음을 향해 치달리는데 당신은 환자가 살기를 바란다. 이러한 불가피한 이해 충돌 때문에 배우자나 가족이 결정을 다 내리는 건 좋지 않다. 당신의 머릿속을 꽉 채운 갈망을 무시해야 한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중략)
밤마다 달라지는 달이 어떻게 영원히 변치 않을 수 있을까? 밤마다 달라지는데도 달은 늘 달이다. 끊임없이 변하지만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찾아오는 죽음처럼.
P213
시인 마리 하우는 죽음의 순간을 어떤 것의 종료나 중단이 아닌 완성으로 여긴다. 삶의 총결산인 셈이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난 뒤에 맛보는, 피곤하지만 뿌듯한 늒미에 대한 영원한 기억이요, 예전엔 미처 몰랐던 만족감을 느끼는 순간이다. 마리 하우는 <죽음, 마지막 방문>이라는 시에서 죽음을 이렇게 묘사했다.
“마침내 / 누군가가 당신의 구두끈을 절대로 풀리지 않게 묶어주었다.”
P277
애통(grief)은 상실의 내적 경험이고, 한탄(mourning)은 상실의 외적 표현이다. 둘을 합쳐 우리는 사별(bereavement)이라는 멋진 표현으로 부른다. 그 뿌리는 ‘빼앗다’는 뜻의 고대영어 ‘berēfian'에서 왔다.
P292
우리는 내심 상처받을까 두려워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사랑을 자제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죽으면 더 이상 두려워할 게 없다. 가장 지키고 싶어 한 것을 결국엔, 결국엔 잃고 만다. 그러면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했던 인간적 두려움, 즉 남들의 시선에 대한 우려, 우리의 자존심, 체면 따위가 실은 별게 아닌 것으로 드러난다.
P298
우리는 나날이 빛나는 특별한 삶을 찬미한다. 하지만 태어난 모든 것에는 죽음이 따른다. 아무리 다정하고 완벽한 만남도 결국엔 헤어짐이 있다. 우리는 스러져가는 모든 것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바람, 뺨에 와 닿는 숨결, 물 한 모금, 힘없이 떨어지는 단풍,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 우리 자신의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