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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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자
골 1:1-8
골 1: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과 형제인 디모데가, 2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실한 형제자매들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 4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해서 여러분이 품고 있는 사랑을 전해 들었습니다. 5 이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두신 소망에 근거합니다. 이 소망은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곧 복음을 받아들일 때에 이미 들은 것입니다. 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7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와 함께 종이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서 배웠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위해서 일하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우리에게 알려 준 사람입니다.
지난 금요일 101세가 되신 목사님의 장례 예배 설교를 했습니다.
갈렙교회 정성길 장로님의 부친이십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100세가 되면 어떤 마음이실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릴 때 보던 세상, 청년이 되고 보는 세상, 결혼할 때 보는 세상, 열심히 목회하던 40대 때 보던 세상, 60이 넘어 보는 세상이 다름을 느낍니다. 나이 들어야 보이는 것이 있고 그제야 깨달아지는 것이 있습니다. 그 말은 지금은 잘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70세가 되면 달라지고 80세가 되면 달리 보이고 100세가 되어서야 깨달아지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이 다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고 두고두고 후회가 될 일을 남겨서도 안 됩니다.
그렇지만 나이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다면 후회만 남지 않겠습니까?
나이 들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주님과 동행하고 살아야 후회가 없다는 것입니다.
새해 국민일보 [예수동행] 첫 칼럼으로 ‘오직 한 가지 소원’이란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제게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 거창하지도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습니다. 혼자 있을 때든 누구와 함께 있을 때든, 식사할 때든 예배드릴 때든, 기쁠 때든 슬플 때든 화가 날 때든, 높아질 때든 낮아질 때든, 칭찬을 들을 때든 비난을 들을 때든, 보이지 않으시는 예수님을 보이는 분처럼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도 새해, 예수님만 바라보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만큼은 정말 잘 믿어보아야 하겠습니다.
새해는 주일예배 때 골로새서 강해를 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골로새 교회가 초대 교회 중 건강하고 모범적인 교회 중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번 강해를 준비하면서 골로새서를 우리 교회에 주시는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그래서 골로새 교회를 선한목자교회라고 바꾸어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그렇게 좋은 교회였던 것은 사도 바울이 :3에서 골로새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면 감사부터 나온다고 했음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걱정부터 되는 교회도 있는데 감사부터 나온다니 얼마나 좋은 교회였겠습니까? 그 이유는 :4-5에 보니 골로새 교회에 믿음 사랑과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에 대한 최고의 칭찬일 것입니다.
여러분에겐 믿음 소망 사랑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으면 더 이상 걱정 염려가 없으며 소망이 있으면 항상 기뻐하며 사랑이 있으면 원수도 사랑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과 교회를 찾기 참 힘듭니다.
그러면 어떻게 골로새 교회 교인들은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6 이 복음은 온 세상에 전해진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전해졌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듣고서 참되게 깨달은 그날로부터,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온 세상에서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우리도 다 복음을 들었고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가진 성도와 교회를 찾기 힘든 까닭은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아는 복음이 정말 복음인지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골로새서 강해를 통하여 무엇이 열매 맺는 생명의 복음인지 분명한 답을 얻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골로새 교회에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고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단들의 미혹과 공격이었습니다. 골로새 교회 당시에는 신약 성경도 없었고 체계적인 교리도 확립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교인들이 거의 다 이방인이었기에 이단에 흔들릴 위험성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골로새 교회에는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증명된 생명의 복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글래디스 아이워드라는 자그마한 키의 중국 여선교사가 있었는데, 중국이 공산화된 후. 기독교에 대한 대대적인 핍박이 가해졌을 때, 그녀가 전도한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300명 정도 남았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광장에 그들을 끌어내어 인민재판을 했습니다. 그들은 19살 된 가녀린 여학생을 지목하여 세웠습니다. 그녀에게 두 달여 간의 정신적인 고통을 준 후였기에 이제 말만 시키면 예수를 부인할 정도가 되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계속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면 죽이려고 단두대까지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대중들 앞에 고백하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말했습니다. ‘공산당에 세뇌를 당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러자 공산주의자들이 분노하여 그녀의 목을 잘라버렸습니다. 그 모습을 아이워드 선교사를 비롯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지켜보았으나 한 명도 배교하지 않고 다 순교하였습니다.
아이워드 선교사는 선교사 파송을 받으려고 찾아간 선교단체에서 학력미달이라고 받아주지 않아 선교사 식모라도 하겠다고 나온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아주 단순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중국까지 온 것입니다. 그녀에게는 능력이 없었지만 생명의 복음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동일한 생명들을 열매 맺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볼 때, 건물이나 교인 수보다 생명의 복음이 있는지 살펴야 하겠습니다.
제가 이전에 목회하던 교회에 괴팍한 성격으로 교인들을 힘들게 하는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가르쳐도 안 되고 꾸짖어도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심각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문제로 고민하며 기도하는 중에, 문제의 원인이, 교인들이 그 권사님을 싫어하고 심지어 미워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 권사님은 우리 교회의 사랑을 점검하는 기준임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오직 사랑만 하자고 부탁하였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시든 사랑만 하려고 했습니다. 그제야 악신이 역사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골로새 교회가 진정 생명의 복음을 가졌다는 증거는 복음의 증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실체가 없이 떠도는 개념이 아닙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으로 인하여 드러납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그 증인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사람이 에바브라였습니다.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두란노서원에서 사역할 때 에바브라가 바울 사도에게서 전도 받고 복음으로 양육을 받은 후 돌아와 개척한 교회였습니다.
이 에바브라가 훌륭한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7에서 사도 바울은 에바브라를 신실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정확히 알았던 사람이었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8에 보니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골 4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를 쓸 때 에바브라가 함께 있었습니다.
골 4: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에바브라가 로마 감옥에 사도 바울을 문안하러 갔던 것 같은데, 그 때도 늘 골로새 교회를 위해 기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골로새 교회가 이단들로 인하여 겪는 어려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로마 옥중에 있던 사도 바울에게 이 문제에 대하여 상담하였을 것이고 사도 바울이 그 대답을 편지로 써서 보낸 것입니다.
골로새 교회에는 에바브라 말고 복음의 증인인 성도가 또 있었습니다. 빌레몬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예배당이 있지 않았기에 어느 성도의 집에서 교회가 모였는데, 골로새 교회가 바로 빌레몬의 집에서 모였습니다.
몬 1:2에 나오는 "네 집에 있는 교회"가 바로 골로새 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를 쓰면서 동시에 빌레몬에게도 따로 서신을 보냈습니다.
사도 바울이 빌레몬에게 서신을 보낸 것은 재산상의 손해를 입히고 도망친 종 오네시모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 믿음의 형제가 되었으니 그를 받아 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빌레몬은 바울 사도의 권면을 따라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받아들였으며 그를 신앙으로 잘 양육하여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게 하였고 빌레몬은 그 교회의 집사였다고 합니다. 이 소문은 소아시아 전역에 퍼졌고 복음이 전파된 곳마다 이런 역사가 계속 일어났습니다. 유명한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도 노예였으며, 안디옥 감독으로 유명한 익나티어스도 노예였습니다. 이것이 생명 있는 복음의 능력입니다.
노예 출신 감독은 성도들의 발을 씻겨주는 자세로 목회하고, 성도들은 감독의 노예시절을 감추어주고 섬겼습니다. 폴리갑이 타오르는 장작더미 위에서 순교하면서 마지막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하나님! 얼굴에 화인 맞아야 할 이 노예, 평생 짐승노릇이나 해야 했을 이 종을 주의 종으로 삼아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저는 평생 종으로 하나님과 성도들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로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주께로 가지만 하나님이여! 우리 서머나 교회를 지켜주옵소서. 가난한 자나 부자나 지식자나 무식자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서머나 교회에 와서 구원을 받게 하시고 계속해서 서머나 교회가 한 믿음, 한 사랑, 한 희생으로 한 몸을 이루게 하옵소서."
최근 한국 교회는 보수와 진보로 갈라지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끼리 정치 신념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고 서로를 비난합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기에 보수주의자나 진보주의자를 다 품으십니다.
그러므로 정치적 신념이 다르더라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될 수 있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 만났다가 정치적인 신념 때문에 갈라진다면 그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예수님이 그 정도 밖에 안 되십니까?
골로새 교회 안에서는 주인과 종이 하나가 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지금 우리가 겪는 보수와 진보의 갈등과 비교할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아는 복음이 진정한 복음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단들의 공격을 견딜 수 있게 해준 능력이었습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살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주위에 복음으로 사는 사람을 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예수 믿는다 하면서 교회의 중직이요 심지어 목회자라 하면서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삶을 사는 이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읽고 설교 듣고 성경공부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자신이 믿음과 사랑, 그리고 소망으로 살아야 합니다. 오늘 임명받는 임원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결신하고 교회에 온 이들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골로새 교인들은 빌레몬의 집을 드나들면서 예수님을 믿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소망 가운데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실제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그렇게 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모든 속회가 이런 속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12명 전후의 믿음의 지체들이 공동체가 되어 집에서 모임을 갖고 서로의 믿음을 격려하고 사랑하며 실패할 때 일으켜 세워주는 것입니다. 그 때 복음의 열매가 풍성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풍성한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어 우리 마음에는 기대가 큽니다. 그러나 정말 기대만큼 잘 살 수 있을까, 어려움이나 시험은 없을까,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막연한 미래만 내다보지 말아야 합니다.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제 아내가 사모님들과 말씀기도를 하는데, 새해, 욥기를 읽을 차례가 되었답니다. 새해인데 욥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마음이 무거웠는데 말씀기도하면서 놀라운 반전이 있었다면서 말씀기도한 것을 전해 주었습니다.
‘욥을 사탄에게 내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는 욥을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마음이 가득한 것을 느꼈습니다. “이봐라. 욥은 어떤 상황과 여건 때문에 내게 신실한 것이 아니다!! 봐라. 욥을 봐라. 나의 사람, 나의 자녀를 봐라.” 이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지금도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사람과 교회를 찾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향하여 “리부가를 보아라.” “인자를 보아라.” “옥선이를 보아라.” “미욱이를 보아라.” “선혜를 보아라.” “현숙이를 보아라.” “은숙이를 보아라.” “진이를 보아라.” “채선이를 보아라.” “지은이를 보아라.” 하심을 느꼈습니다.’
(다 말씀기도하는 사모님들 이름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만 믿고 순종합시다.
새해 첫 주일 성찬을 받겠습니다. 주님과 하나 되어 새해를 시작하는 축복의 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살과 피를 주시면서 함께 하겠다 하시는 약속입니다.
새해, 주님만 바라보며 순종할 때, 우리 교회는 골로새 교회처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세워지고 여러분은 복음의 증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