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식 인문학 칼럼] 이름으로 찾아가는 김시습
시인 전인식 gyeong7900@daum.net 입력 2023/05/02 18:05수정 2023.05.03 19:32
0
글씨를 작게
글씨를 크게
프린트
공유하기
시인 전인식
김시습을 이르는 이름들은 많고 다양하다. 자(子)는 열경(悅卿), 호(號)는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췌세옹(贅世翁), 벽산청은(碧山淸隱), 법명(法名)은 설잠(雪岑), 시호(諡號)는 청간공(淸簡公)이다. 이처럼 많다는 것은 그의 삶이 평범하지 않고 우여곡절이 많다는 것이다.
시습(時習)이라는 이름은 이웃에 살던 최치운이라는 사람이 지어주었다. 『논어(論語)』의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김시습은 다섯 살 때부터 그를 수식하며 따라다니는 유명한 이름이 오세(五歲)이다. ‘김오세’ 또는 ‘오세신동’으로 불렀다. 태어나서 여덟 달 만에 글을 알았고, 세 살에 시를 짓기 시작했다는 소문에 정승 허조가 찾아와 시험 삼아 ‘늙을 노(老)자’를 이용해 시를 짓게 하니 김시습은 ‘늙은 나무에 꽃이 피었으니 마음은 늙지 않은 것이다(老木開花心不老)’라는 시를 지었다. 그의 명성이 마침내 세종 귀에도 들어가 승정원을 통해 시험해보게 한 후 비단 50필을 하사하기도 했다.
그의 자(子)는 ‘열경(悅卿)’이다. 자는 성인이 된 뒤에 가지는 이름으로 본명을 대신하며 보통 하나만 짓는다. 기쁘게 벼슬한다는 뜻의 열경(悅卿)은 왠지 그의 삶과는 맞지 않고 김시습도 스스로 포기한 이름이다.
호(號)는 스승과 제자 사이 또는 우정을 나눈 친구 사이에서 이름 대신 부르는 것으로 별명과 같다. 김시습의 호는 다양하다. 스스로 짓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지어준 것도 있다.‘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동봉(東峰)’, ‘췌세옹(贅世翁)’, ‘벽산청은(碧山淸隱)’...... 이러한 호들은 모두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있는 이름들이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부르는 ‘매월당(梅月堂)’은 경주 남산에서 『금오신화』를 지을 무렵 스스로 내건 당호(堂號)에서 비롯되었지만, 의외로 그가 지은 많은 저술 활동에는 사용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맑고 춥다는 뜻의 ‘청한자(淸寒子)’는 야인으로 청빈한 생활과 깨끗한 정신세계를 표방하는 것으로 「유관서록」을 지을 무렵부터 사용하였다. 푸른 산속에서 은거하여 산다는 사람이라는 뜻의 ‘벽산청은(碧山淸隱)’과 동쪽 봉우리에 산다는 뜻의 ‘동봉(東峰)’은 수락산에 은거하면서 사용하였다. 사마귀처럼 세상에 붙어사는 무용지물이라는 뜻의 ‘췌세옹(贅世翁)’ 등 이처럼 많고 다양하지만 하나같이 자연 속에 더불어 사는 사람의 이름을 갖고 있다.
김시습의 시호(諡號)는 ‘청간공(淸簡公)’이다. 시호는 공을 세운 자에게 나라에서 내려주는 이름인데 벼슬을 하지 않고 방외인(方外人)으로 산 김시습에게 시호가 있다는 것이 의외이다. 이는 후대 사람들에게 추앙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만큼 공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이 된다.
그의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1455년 삼각산 중흥사에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 소식을 접하고 읽던 책을 불사르고 스스로 머리를 깍고, 설잠이라는 법명으로 출가했다. 삭발에 수염을 기르고 검은 승복을 걸친 걸승, 유랑승, 운수승, 두타승으로 강산을 유랑했다. 떠돌 수밖에 없던 것이 그의 삶 존재 방식이었다. 방랑의 시편들을 모아 「유관동록」, 「유관서록」, 「유호남록」, 「유금오록」등 사대유록을 집필할 수 있었다. 전국 어디를 가던 김시습과 관련되어 전해지는 이야기와 흔적들이 많다. 신라인들의 불심으로 가득했던 경주 남산은 떠돌던 발걸음을 붙잡아 세우기에 충분했기에 7년을 머물며 『금오신화』를 탄생시켰다. 10년 가까이 머문 수락산 자락에서는 『십현담요해』, 『조도오위 요해』, 『연경별찬』 같은 불교 관련 책들을 저술하였다.
이외에도 그의 글에 등장하는 별칭들이 몇 개 있다. 비구의 산스크리트어 발음인 ‘비추(比芻)’, 스님을 높혀서 부르는 상인(上人)에 자신의 법명 설잠을 가져와 ‘잠상인(岑上人)’은 서거정에게 보낸 서신에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김시습의 이름이 많은 것을 두고 뒷날 연암 박지원은 ‘진정한 은자라면 세간의 영욕이 둘러붙은 이름에 집착해서는 아니 된다’며 김시습의 이름이 많음에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많은 이름 가운데에서도 김시습이 듣고 싶어 하는 이름은 따로 있었다.
百歲標余壙 (백년 후에 내 무덤에 표시할 때는)
當書夢死老 (꿈을 꾸다 죽은 늙은이라 써주시게나)
庶幾得我心 (행여나 내 마음 아는 이 있다면)
千載知懷抱 (천년 뒤에 속마음 알 수 있으리)
- 김시습의 시 我生(나의 삶)중 일부
시에서 잘 나타나 있듯 자신을 ‘꿈을 꾸다 죽은 늙은이’로 불러주기를 원했다. 한참 생각이 머무는 이름이며 불러주고 싶은 이름이다. 하지만 뜻과 달리 김시습이 입적한 부여 무량사 부도에는 ‘五世 金時習之墓’ 라고 새겨져 있다. 설잠과 매월당도 아닌 다섯 살 때의 별명을 마지막까지 가지고 갔다.
최근에 필자도 존경하는 은사이신 덕봉 정수암 선생님으로부터 ‘문보(文步)’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문학의 길 열심히 걸어가라는 격려가 담긴 멋진 이름이다. ‘한눈팔지 않고, 흐트러짐 없이 똑바로 열심히 걸어가겠습니다’라고 다짐하며 내다보는 창밖 이팝나무들이 눈이 부실 만큼 환하다. 경건한 마음으로 건너가는 계묘년 봄날이다.
시인 전인식 gyeong7900@daum.net
[시론] 기준금리 또 동결…경기·가계부채 대응 손발 맞춰야
[사설] 포용하고 뭉쳐야 산다…아차하면 다 죽는다
[아침을 여는 詩] 상사화
저작권자 © 경북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AD
많이 찾는 뉴스
최신주간월간
1
트와이스 지효, 윤성빈과 열애설..."1년째 교제 중"
2
[임자 건강칼럼] 간경변, 간암의 이유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활성산소다
3
[서형숙 문화칼럼] 알게 되면 보이나니
4
1112회 로또, 1등 10명 28억씩…모두 자동 판매점은?
5
'바람의 손자' 이정후, 또 2안타 폭발…시범경기 타율 0.414
6
구미시, 관광캐릭터 ‘ 낭만토미’ 선정…낭만을 찾아다니는 거북이
7
동포항·광양중앙 로타리클럽, 백운산 둘레길 환경정화 봉사
8
[22대 총선 누가 뛰나] 강명구 구미을 후보, ‘열정캠프’ 개소식 열어
9
청송군, 2024년 경북·대구권역 ‘전국 고등축구리그’ 개막
10
70년 세월 풍산시장 명물 된 뻥튀기 장인 '이재화 할아버지'
헤드라인 뉴스
더보기
경북 민간투자 활성화 신호탄 ‘지역활성화 펀드 1호사업’ 출범
이철우, 국토부 장관에게 ‘신공항 화물터미널 복수 설치' 강력 건의
한영태 민주당 경주시 후보, "상대 후보 캠프 당직자에 발길질 당해" 주장...27일 기자회견 예고
PC버전
회사소개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찾아오시는길
PDF지면
기사제보
로그인
회원가입
대표이사 : 박준현 주소 :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북로 345(동천동 945-3) 경북신문 빌딩 3층
사업자등록번호 : 505-81-52491 편집·발행인 : 박준현 고충처리인 : 이상문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상문 청탁방지담당관 : 이상문 문의 : 054-748-7900~2
이메일 : gyeong7900@daum.net 등록번호 : 경북 아 00275등록년월일 : 2013.9.30
대구본사 : 대구광역시 동구 동부로 22길 명문빌딩 6층 / 053-284-7900
포항본사 :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이로 9번길 24 / 054-278-1201
Copyright ⓒ 경북신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