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은 나의 몸, 나의 인생"
김영희 씨가 닥종이를 만지기 시작한 건 5살 무렵이었다.
해마다 봄이 되면 그녀의 엄마는 문에 창호지를 새로 붙였고
이 때 뜯어진 헌 종이들은 모두 그녀의 차지가 되었다.
"강아지도 만들고, 꽃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그랬어요.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들을 종이로 만드는 일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나중에는 인형을 만든다고 엄마한테 혼이 많이 나곤 했죠."
김영희 씨의 어머니는 딸이 정치가나 외교관이 되길 바랬기에
그녀의 뛰어난 손재주가 내심 불만이었다.
결국 모녀가 서로 양보해 타협을 본 것이 미대에 입학하는 것.
김영희 씨가 미대 조소과에 가면 계속 인형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어릴 적에 왜 그리 종이가 좋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종이와는 꽤 질긴 인연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이젠 '아이들(닥종이 인형)'은 바로 '나' 자신이란 생각을 해요."
닥종이 인형은 그녀에게 형제이자 자식인 동시에 그녀 자신이기도 하다.
그녀는 또 인형을 통해 희망을 발견하고, 용기를 얻었다.
대학에 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남편을 잃고,
독일에서 또 다른 삶을 이어가는 그 모든 순간에 닥종이 인형은
그녀 곁에서 삶의 시련을 잊고, 이겨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 최고의 친구였다.
"나만 나이를 먹는 게 아니에요. 인형도 나와 같이 성장하지요.
예전의 스타일로 인형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그게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그녀의 인형이 처음부터 지금의 모습과 같았던 것은 아니다.
서양인을 모델로 하여 서양의 미적 기준에 따른 인형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면서 자신이 한국인인 만큼 자신의 느낌을
가장 아름답게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한국인의 모습'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부모라 해도 자신의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할지는 모르는 법이잖아요.
인형도 마찬가지에요. 지금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면
내 인형들이 나쁘게 자랄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잘 자라 주었어요.
그래서 인형들을 보면 내 진짜 아이들을 보듯 흐뭇해요."
요즘 김영희 씨는 인형들에게 형형색색의 화려한 옷을 자주 입힌다.
마음이 불안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작품에 흰색을 주로 사용하는데, 요즘은 자꾸 알록달록한 색만 보이고
그 색들이 자신을 써 달라고 아우성치는 듯 예뻐 보인다고.
'나이가 들어 화려한 색이 좋아진 것 같다'고 말하지만
그보다는 그녀 스스로 자신뿐 아니라 타인에 대해서도 긍정할 수 있는
내공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그녀에게 세상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에너지와 지혜를 가져다 준 것이다.
나이 60, 축제의 시작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건만
그녀는 하루에 8시간을 꼬박 작업실에서 보낸다.
모든 직장인들이 하루에 8시간 정도 일을 하는 만큼 자신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하지만 8시간의 노동이 그녀에게는 어떤 것보다도 즐겁다.
"집착이 강한 것 같아요. 작업을 한번 시작하면 완성하기 전까지는 외출도 마음대로 못해요.
하던 작업이 자꾸 눈에 어른거려서 빨리 완성을 해 예쁘게 만들어 줘야 하거든요."
평생 닥종이 인형을 만들어 오면서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는 그녀.
명예를 얻기 위해 시작한 일도 아니고, 경제적인 부를 이루기 위해 시작한 건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꿈과 이상을 위해 선택한 것이고,
운명처럼 인형을 만들어 온 것이기에 작업실에서 작품을 만드는 일 자체가 너무나 행복하다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 가는 과정도 즐겁고 그걸 완성하고 바라볼 때는 더욱 만족스럽죠.
요즘의 예술 작품들은 직접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점차 잊어 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제 손으로 조형물을 완성할 때의 느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어요."
첫 남편과 사별하지 않았다면 그냥 평범한 주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을 거라는 그녀는
인생이란 물처럼 자연스레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만함을 버리고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환갑을 맞이했다는 것이 마냥 기쁘단다.
"환갑은 나에게 있어 해방의 시간이에요. 딸, 엄마, 아내의 의무감에서 벗어나
인간 '김영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하죠."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하며 틈틈이 시간을 쪼개어 작품 활동을 하던 그녀는
이제 온전히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이 다가왔음에 기뻐하고 있다.
고국에서 장기간 전시회를 할 수 있고, 그
동안 시간이 없어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다 해보고 싶다며 자신의 꿈을 풀어 놓는다.
"난 진짜 꿈이 많아요. 정식으로 장편 소설도 쓰고 싶고, 퍼포먼스를 하고… 또 지금하고는 전혀 다른 작업을 시도해보고 싶어요. 물론 소재는 닥종이죠."
19살 소녀와 같은 눈빛으로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시간들에 설레는 그녀. 세월의 흐름에, 마음이 가는 방향에, 자신을 내맡
겼던 그녀가 환갑이란 나이에 또 다른 자아를 찾아 길을 떠나려 한다. 그러나 처음 그녀가 자신의 삶을 선택했던 10대와는 다른
밝고 가벼운 발걸음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과 이상을 그녀는 명징하게 알고 있기에…. 그녀가 말한다. "난 행복할 의무가 있어요"라고.
T i p : : 김영희의 닥종이 조형전
닥종이 인형작가 김영희 씨의 작품은 예전의 우리 일상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한 풍경을 전해 준다.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에서부터,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
어머니의 온유한 품을 형상화한 그녀의 작품이 고국의 무대에 올려진 것.
더욱이 이번 전시는 아이들이 몰랐던 엄마, 아빠의 추억, 점차 잊혀져 가는
유년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기에 더 없이 좋다.
5살 때부터 한지를 물들이고, 접고, 붙이며 닥종이 예술의 길을 걸어온 김영희 씨.
그녀가 환갑을 맞이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갖는 전시인 만큼 그 의미는 더욱 크다.
전시는 갤러리 현대에서 오는 2월 15일까지 열린다.
입장료 _ 일반 3,000원, 할인 2,000원(3세 이상 고등학생 이하) 휴관 _ 월요일 문의 _ 02-734-6111
[SAMSUNG] DIGIMAX 350SE (1/70)s iso100 F2.6
와인을 일곱 잔 마셨다 음식을 준비한 푸드 스타일리스트가 염려의 눈빛을 보낸다
경매 회사 여직원들이 전부 출동을 하였나 열심으로 작품을 판다.
그들이 이 작품을 얼마나 알까?
그들이나 처음 본 나나 별만 차이가 없다
왜 이 작품은 고가에 형성이 되는가?
뭔가 스치는 단 하나 그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은 모든 인간들의 화두다
작품들마다 느끼는것은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결코 넘 볼 수 없는 이미지가 흘러 나온다
닥종이...닥나무로 만든 종이를 물에 불려 손으로 주물러 철사 뼈대에 세심히 부치고
모양을 만든 다음 겉 옷을 한지로 입히고 색을 입히는 단순 작업이지만
이것은 김영희표 작품이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나는 수 많은 작품 중에 가을을 표현 한 작품의 가격을 물었다 1200만원!
놀라운 가격대다
와인으로 약간의 취기가 발동했고 비싼 이유를 잘 모르니...모르면 무한이 성립된다
여직원들은 각 작품 가격을 전부 책정해 매겨 놓고 있었다
65살 먹은 작가가 머나먼 타국으로 떠나 30년만에 아니 꾸준히 쉴 사이 없이...
그는 전 세계에서 70여회 전시회를 했고 한국에서도 4-5회 전시회를 하여 그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한지는 그 생명이 천년을 가니...10여년 후에 그의 작품은 2-3배로 뛰는 것은 자명하다
저 작품을 산 사람들은 작가가 빨리 사라져 주길 바랄 지도 모른다 어차피 투자이니...
60여점 작품에 노란 스티커가 붙은 작품은 4개가 있었다 오늘은 오프닝 행사를 한 것이니 여기 있는 작품은 전부 팔려 나갈 것이고 중간에서 거래를 중개하는 회사 마진을 주고 김영희씨는 다시 독일로 떠날 지 모른다
하지만 김영희는 작품에 변화를 주고 있었다
백남준이 그랬듯이 김영희는 사진을 이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배경이 정해지면 그 배경 앞에 자기 작품을 앞에 세우고 그 배경과 어울리게
사진을 찍었다
그는 자기 작품으로 말하기 이전에 사물을 이용하려 한다
순수는 약간 멀어졌지만 아무도 시도 하지 않은 그의 작품은 후에 평론가들의
아니 관객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식지 않은 그의 열정도 중요 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과 교류와
홍보가 더 중요 한 날이 다가 온 것이다
김영희 그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진도 찍고 닥종이 공예도 하지만
그는 작품에 힘을 쓸 수 밖에 없는 강한 인간이다
그가 한국에 들어와 살면서 좋은 작품 많은 감각을 후배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 <작가의 말> 젊은 예술가의 초상 예술이란 무엇인가? 여자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이 나이까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찬란한 바바리아의 초여름날 무성한 장미 덩굴의 그림자 아래 나로서는 대단한 답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흔하게 떠도는 사랑이란 단어가 유행가 가사 속에서 또는 영화의 한 장면 속에서, 한 권의 시집 속에서도 녹아드는 달콤한 그 단어를 나는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인생의 옹골진 씨앗이었습니다. 그 씨앗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싹을 틔우고 찬란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사랑은 거짓이 없습니다. 순수한 사랑은 흐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투명하게 비치는 고운 햇살 아래 흐르는 맑은 시냇물 같습니다. 맑은 시냇물가에는 많은 꽃새들이 목을 축이려 몰려듭니다. 사랑은 결코 시들지 않고 싱싱하게 늘 다시 태어납니다.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보니 고향에 대한, 떠나온 내 나라에 대한 또다른 형태의 사랑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랑의 꽃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붉고 진하게 피고 있습니다. 예술가의 가슴속에 피어나는 그 향기 나는 꽃을 여러분에게 자랑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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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64)씨가 서울 태평로 조선일보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김씨는 남편과 사별한 후 닥종이 예술에 매진해 왔다. 30대 후반에 열네 살 연하의 독일 남자와 결혼, 독일에서 활동해왔다. 최근에는 에세이집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를 16년 만에 재출간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번 개인전을 계기로 5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자녀를 키우듯 하나하나 소중하게 제작한 닥종이 인형 30여점과 함께 사진작품 30여점도 선보인다. 김씨는 현지에서 사진작가로도 자리잡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작가와의 대화시간도 마련된다. 하지만 본인이 말을 붙여야 한다는 거....전시 기간 중 매일 오후 2~4시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만난다. 02-724-6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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