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1>
나는 1년 재수하고 대학에 들어갔다.
그래서 84학번이 되었다.
대학 1학년을 마치고 '자원입대'하여 해병대에 다녀왔다.
복학 후 2학년부터 졸업 시까지 내리 6학기 동안 과대표를 맡았다.
그리고 캠퍼스를 떠난 뒤 지금까지 34년째 회장 역할을 하고 있다.
'장기집권'도 이런 '장기집권'이 없다.
친구들은 내가 죽는 날까지 '종신제'로 하라고 아우성이다.
매년 친구들의 '결혼 기념일'을 챙겨주고, '애경사'는 물론이거니와 '상,하반기 과 M.T' 진행, '부부동반 해외여행', 창업이나 퇴직, 병환 등등 크고 작은 일들까지 세세하게 챙기고 관리하다 보니 그리 되었다.
2년 반 전에 친구들에게 고지했었다.
2024년도가 우리들 '입학 40주년'이라고.
해외로 '부부동반 M.T'를 떠나자고.
친구들이 적극 동참해 주어 매달 10만원씩 '도토리'를 모으기로 했다.
매달 도토리를 각출하는 게 번거롭다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5-6명 정도는 행사 때 일시불로 내겠다고 했고, 10명이 매달 도토리를 냈다.
몇 달 전에 시작한 것 같은데 벌써 26회 차다.
세월은 늘 이렇듯 번개 같다.
한 친구에게 통장을 개설하라 부탁했고 그 통장을 내가 건네받았다.
나는 관리만 할뿐 '비번'도 모르고, '인터넷 뱅킹'도 할 수 없다.
대신 관리는 철저히 한다.
매달 초일 아침 07시에 ATM기에 통장을 넣고 전월에 입금된 도토리 내역을 정리한 뒤에 엑셀 파일에 기록한다.
그리고 통장 정리화면과 함께 단톡방에 올려 친구들에게 '도토리 현황'을 보고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매달 첫쨋날 아침시간에 '도토리 보고'를 어겨본 적이 없었다.
내가 해외에 나가 있었던 2번을 제외하고는.
'신뢰'는 처음 약속을 묵묵하게 지키는 데서 자란다.
말이 중요한 게 아니다.
입은 닫고 실천하면 된다.
절대로 이유를 대지 말고, 비가 오나 파도가 치나 하기로 했던 일을 꾸준하게 하면 된다.
금년 11월에 도토리를 내는 친구들에게 모이자고 했다.
24년도 '입학 40주년 이벤트'의 일정과 컨셉을 결정해야 한다.
준비하는 자의 입장에선 시간이 항상 타이트한 법이니까.
모두가 동의했다.
전라도, 경상도에 살아도 다 온다.
적극적으로 동참해 주는 '과 친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까지 몇 명이 먼저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마도 입학 50주년 땐 더 많은 친구들이 떠났거나 병석에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모두가 '만수무강'하기를 바라지만 어찌 인생이 우리의 바람이나 소망대로 되는 영역이던가.
건강할 때,
신께서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셨을 때,
감사의 마음과 열정으로, 서로에게 유익이 되고 기쁨이 되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내 논'에만 물을 대는 것이 아니라 '들판 전체'에 물을 대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실천하면 되리라.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때때로 힘들고 피곤할지라도 그리 기도했다면 그리 살자.
그것 뿐이다.
<준비 2>
어제 퇴근 후 '사당역'에서 친구를 만났다.
우리는 매년 상,하반기에 한번씩 '과 M.T'를 간다.
금년 봄엔 내 고향 '군산'으로 친구들을 데려갔었다.
가을엔 '원주'로 간다.
어제 저녁, 노동청에 근무하는 원주 출신 친구와 추어탕을 먹었다.
식후에 카페로 이동해 10월 중순에 있을 '원주 M.T'에 대해 초안을 잡았다.
많은 논의를 한 끝에 일박이일 간의 여정과 컨셉을 완성했다.
'청량리역'에서 ITX를 타고 왕복하며 현지에선 승합차를 렌트하여 왕래할 예정이다.
매번 그랬다.
'원주 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아직 건강하셔서 찾아뵙고 선물과 용돈도 드리기로 했다.
부모님이 계시다면 여행 시작 전 인사부터 드리는 게 우리의 '전통'이다.
'군산'에 갔을 땐 내 부모님이 안 계셔서 그리 하지 못했다.
애석했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계수의 나주.
안진이의 상주.
은성이의 금산.
창훈이의 김제 등등 앞으로 갈 데가 많다.
이미 2년치 번호표도 뽑힌 상태다.
서두르지 않되 차근차근 가면 된다.
열심히 근로하여 돈도 벌어야 하지만 친구들과의 추억도 소중하고, 자식된 도리를 다 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들이 건강하게 살아 있다는 자체가 축복이자 감사다.
내주부터 '원주 엠티'를 위해 준비모드에 돌입해야 한다.
누군가는 바쁜 시간을 쪼개 열차를 예매하고, 렌터카 부킹하고, 숙소 잡고, 식당 알아보고, 동선 짜고, 원주 특산물 구입(아내들을 위한 선물, 매번 현지 특산물을 구입했음)까지 하나 하나 신경써야 한다.
어느 땐 솔직히 힘들고 귀찮을 때가 있다.
하지만, 한겨울에 눈이 내렸을 때 누군가가 새벽에 일어나 동네 어귀까지 눈을 쓸고 치웠다면, 동네 사람들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한 평생 그런 마음으로 살면 되지 싶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조금 손해보는 듯하게 살고, 내가 먼저 져주면 되지 싶다.
'모태신앙'이었던 나는 신앙심도 약하고, '주일성수'도 안 하지만 소싯적부터 그리 기도했던 건 사실이었다.
'교회'는 잘 다니지 않아도 새벽시간에 '큐티'를 빼먹진 않았다.
교회나 사찰이나 그 안에 깊숙이 들어가 보면 종교인들의 '탐욕'과 '이전투구'가 장난이 아니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여러번 '환멸'을 경험했다.
'사목'의 정의는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권과 권력 앞에서 초연한 종교 지도자들을 별로 보지 못했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냄새나고 부패해 오히려 사람들의 '영혼'이 죽어나갔다.
나는 매일 새벽 04시에 기상해 홀로 기도하며 나만의 '신앙의 길'을 가자고 다짐했다.
새벽시간의 '묵상'과 '기도'는 내 영혼과 삶의 기반이었다.
그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서원'과 '소명'이 조금씩 자랐다.
오늘은 종교 얘기를 하자는 건 아니니 여기서 그만.
가을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 멋진 10월 하순 어느날.
'원주'에서 '과 친구들'과의 추억도 중요하지만 '원주 부모님'께 인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내겐 더 기쁘고 감사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뵙고 인사를 드릴 수 있겠는가.
어르신들껜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가던 길을 멈추거나 하던 일을 안 하면 그건 '시스템'이 아니다.
'시스템'은 영속성과 일관성에 뿌리는 둔다.
좋은 전통은 계속 이어 가자.
모두가 웃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들판 전체에 물을 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과 친구들'에 대한 글을 잠간 써보았다.
금년 F,W(가을,겨울)에도 여러 모임에서 다양한 행사가 있다.
'헌신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차근 차근 임하면 된다.
오늘 큐티시간에도 '소,공,추'를 위해 기도했다.
가을 느낌이 조금씩 난다.
모두에게 행복하고 기쁨 가득한 가을이 되기를 소망한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