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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의 손톱 위의 꽃물은 단풍의 색깔이었다
내장산 ^^ 전북 정읍, 순창 전남 장성 / 11월
탐방안내소 -일주문 - 백련암 -서래봉 - 불출봉 – 망해 봉 - 연지봉 –까치봉 -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 –내장 사 - 동구리
논둑으로 밭둑으로 감나무 한 구루씩 서 있다. 가을빛 말랑말랑하게 홍시로 익어가지만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다. 너댓새 폭설이 내리는 절기가 되면 이 과실은 산까치와 청솔모와 다람쥐가 주인이 될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나뒹구는 홍시는 멧돼지가 차지할 것이다.
내장사 일주문을 들어섰다. 가을빛으로 익어가는 단풍나무가 절집 돌계단까지 모두108그루란다. 덩치 큰 모과나무가 나오면 원적암이고 백련암으로 가는 길이다. 더 깊숙이 계곡을 지나면 비자나무 숲이 시야에 들어온다. 내장산 천지가 단풍으로 물들고 있는데 비자나무는 푸른빛 청일점이다. 제주도 구좌읍 평대리에만 있는 줄 알았던 비자나무가 여기서도 기운차게 살고 있었다. 너덜겅을 지난다. 내장산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바위들이 구들장처럼 깔린 산길이다. 이 너덜겅을 지날 때는 더딘 걸음으로 사뿐히 가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 너덜길을 걸을 적에 작은 소리라도 나지 않게 걸을 수 있다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귀한 자식도 얻는다는 전설이 구전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너덜길을 소리 내지 않고 걷는다는 게 쉽지 않기에 이르는 말일 것이다.
백련암에서 서래봉을 올려다본다. 대웅전 뒤란으로 대숲이 있고 능선을 타고 단풍이 갑절로 타는데 서래봉의 잿빛 암봉이 하늘에 걸려있다. 사방으로 전개되는 내장산의 풍광에 초입부터 정신이 몽롱하다. 가파른 계단에서 땀을 뻘뻘 흐리고 난 후에야 서래봉 암봉에 설 수 있었다. 내장사의 아늑한 경내가 보이고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면 정읍 시가지가 조망된다. 불출봉에서 망해봉으로 간다. 정상까지 이어지는 계단은 하늘에 걸린 것처럼 아득하다. 망해봉 정상에서 서쪽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산 정상으로 바다가 밀려온다. 고창과 부안을 연결하는 줄포만이다.
내장산 하면 앙증맞도록 자잘한 단풍이 매력이다. 이 자잘한 단풍이 물들 때에는 산 전체가 노란 기운으로 채워진다. 어느 계곡, 어느 구릉지, 어느 능선이라고 다를까 싶지만 내장사를 둘러싼 경내의 단풍이야말로 운치가 삼삼하다.
내장산의 자잘한 애기단풍을 볼 적마다 어린 시절의 누이가 생각난다. 장마가 끝나갈 무렵이 되면 큰누이부터 막내 누이까지 네 누이는 봉당 위에 자리를 잡는다. 헛간 언저리에서 따온 봉숭아꽃을 둥글넓적한 돌 위에 올려놓는다. 둘째누이는 꽃물이 핏빛으로 흐를 때를 기다리며 봉숭아를 찢는다. 손톱위의 봉숭아꽃물은 아주까리 입으로 골무를 만들어 하얀 실로 묶는다. 골무가 빠지지 않도록 잠도 예쁘게 자야했다. 이튿날이 되면 누이의 손톱마다에는 빨간 봉숭아꽃물이 들고 석 달 보름이 지난 셋째누이의 생일이 되던 날에는 누이의 열 손가락이 초승달로 뜨고 있었다. 애기단풍이 누이의 손이었고 누이의 손은 애기단풍을 닮았었다.
내장산의 단풍은 설악 흘림골 단풍처럼 진홍빛으로 강렬한 인상을 주지는 않는다. 연분홍에 노랑 물감을 천천히 섞은 듯한 온화한 색채다. 설악의 단풍잎이 길쭉길쭉 손을 벌린다면 내장산의 단풍은 오밀조밀 자잘한 단풍이다. 그러기에 내장산은 가을 녘의 단풍도 그만이지만 봄볕이 간지러운 절기에 애기 손처럼 오목조목 커가는 모습도 매력적이다. 단풍이 어디 가을만의 세상이더냐?
연자봉에서 하산을 할까 싶지만 능선 하나 더 넘어야겠다. 가을 햇살 넉넉한 구릉지에 등을 대고 누웠다. 서어나뭇잎 어깨춤 추며 떨어지고 상수리나뭇잎 제멋대로 가슴위로 내려앉는다. 물푸레나무, 붉은병꽃나무, 소나무 마른 잎이 한꺼번에 떨어진다. 촉촉이 내리는 보슬비 소리를 듣는 것 같다. 하얀 박꽃위에 가느다랗게 숨죽이며 내리는 보슬비의 촉감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산악대장이 말을 건다.
"형님, 시장하시죠. 저 능선을 넘어야 점심을 먹을 수 있을텐데 이거나 드시죠."
노랗게 익은 바나나였다.
"어제 테니스 경기를 봤거든요. 러시아의 샤라포바가 경기 도중에 바나나를 먹더라고요. 아마 이 바나나가 요기가 되는 모양이지요."
그렇다. 등산을 할 때는 행동식이라는 게 있다. 산행을 하면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준비하는 간편식으로 초콜릿과 사탕은 필수품이고 과일도 빼놓을 수 없지만 오이는 수분을 흡수하는데 그만이다. 바나나는 포만감을 주고 기력을 향상시키는데 최고의 행동식이다.
"형님요."
대꾸를 하지 않으니 또 말을 건다."
"형님요. 말 좀 해보세요."
"왜 행님아?"
이 친구의 이름은 정광선이지만 산행에서의 닉네임은 '행님아'다.
언젠가부터 산행을 할 때는 본명보다 닉네임을 부르는 것이 보편화가 되어있다. 누구나 그를 '행님아' 라고 부른다. 형님이라고 듣기니 이 친구 닉네임을 고를 때 고민 많이 했을 것이다.
"행님아, 같이 가자."
서래봉을 시작으로 불출봉을 거쳐 망해봉, 연지봉, 까치봉, 신선봉, 연자봉, 장군봉에 이르기까지 여덟 개의 봉우리를 종주하고 내장사 경내로 간다. 일주문에 걸린 주련의 글귀가 의미심장하다. ‘역천겁이불고(歷千劫而不古) 긍만세이장금(亘萬歲而長今)’ 천겁의 과거도 옛일이 아니며 만세의 앞날이 오더라도 늘 지금이다. 나옹화상의 서왕가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일주문을 나서는데 가을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장롱을 열어 목화솜 이불 한 채 꺼내 덮어야겠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미리 날을 잡아놨을 때 비가내리면 우중산행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일단 떠나면 산행은 시작되지만 시야가 흐려지고 조망은 형편없다. 일기가 불순할 때는 구태여 종주할 생각을 버리고 서둘러 하산하는 것이 상책이다. 아무리 코스가 짧더라도 산행을 할 때는 겸손이 우선이다.
평생 한 번은 오라는 봉정암
설악산 봉정암 ^^ 강원 인제 / 시월
백담사 - 영시암 - 수렴동 대피소 - 쌍폭 - 봉정암
가야동 계곡 - 오세암 - 영시암 - 백담사
인제를 막 지나면서 방태산 계곡으로 안개가 자욱하다. 용대리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요기를 하려는데 문지방 너머로 최 박사 부부일행은 아침식사를 끝내고 있었다. 엊그제 영암 월출산에 동행했던 산객인데 그들 역시 사흘을 못 참고 설악에서 이렇게 또 만난 것이다.
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백담사행 셔틀버스가 있다. 대부분은 백담사를 찾는 불자들이거나 관광객들이다. 후미진 굽이길이여서 셔틀버스만 오갈 뿐, 백담사의 불자라는 증명서를 제시하지 않으면 얼씬도 못하는 좁은 길이다. 가는 곳마다 길을 넓히는 시대에 아직도 좁은 외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고요하고 조용한 백담사가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일 것이고 백담사를 운행하는 마을버스의 일감이 없어지는 것 또한 문제였을 것이다.
백담사를 지척에 두고 강물이 흐른다. 설악의 가야동계곡과 구곡담에서 흘러든 물이 합수되는 백담계곡이다. 절집 앞을 흐르는 백담계곡에는 불자들과 산객들이 오다가다 쌓은 돌탑이 소원의 강을 이루고 있었다. 금강소나무와 전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가을빛이 들어차서는 강물 속으로 풍덩 빠진다. 복자기가 발그레 물들고 엄나무 잎이 노랗고 개옻나무 잎이 진홍빛이며 당단풍도 새빨갛게 물이 든다.
백담사에서 출발했던 사람들이 쉬어가는 곳은 영시암 너른 마당이다. 인가목이 피어난 영시암 마당에서는 누구나 배낭을 내려놓는다. 봉정암으로 가는 불자도 대청봉으로 가는 산객도 여기서 약수 한 모금 마시고 간다,
아무 말 없이 산길을 가는 스님을 만났다. 낡은 재색의 두루마기에 진한 쑥색의 바랑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앞질러가는 것이 예의가 아닌 듯싶어 천천히 보폭을 늦추지만 외려 스님과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님이 걸음을 양보하는 눈치가 분명했다. 얼른 다가갔다.
"스님, 바랑이 제 등산배낭보다 더 예쁩니다. 어디까지 가시나요?"
피식 웃는다.
"오세암으로 갑니다."
"아, 그러세요. 저희는 봉정암을 들려서 그쪽으로 하산을 할 계획입니다만."
젊은 스님은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하산시간이 빠듯해 보이는데 부지런히 가셔야겠습니다. 내려오시는 길에 출출하시면 저녁공양이라도 하고 가시죠?"
"아, 네 말씀만 들어도 배가 부릅니다. 스님."
과연 스님의 바랑 속에는 뭐가 들었을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고 스님과 헤어졌다. 주말이 아닌 탓에 봉정암으로 가는 가을 숲길이 한가해서 좋다. 시원한 폭포 아래서 배낭을 또 내렸다. 계곡을 지나칠 때마다 만나는 폭포는 가슴을 시원하게 아래로 밀어낸다.
봉정암으로 가는 길은 한참동안이나 계곡과의 동행이다. 두 갈래로 떨어지는 폭포는 쌍룡폭포다. 여기서부터 구곡담계곡은 시작이고 가파른 암릉도 시작이다. 숨을 할딱이며 깔딱고개를 오르는데 땀이 온몸을 적신다.
나무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가는 할머니 한 분을 만났다. 올해 예순다섯이 되셨다는 할머니는 나무지팡이를 짚고 있었는데 몹시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할머니 봉정암까지 가시는데 힘이 많이 드시지요?”
“마산에서 이까지 왔다 아인교 가 봐야지예.”
어제 용대리에서 자고 아침같이 올라왔다는데 더는 못 가겠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노인네 걸음은 제쳐두고 먼저 가라지만 잠시 동무가 되어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런데 불심이었을까, 어느새 할머니도 기운을 차렸는지 젊은이도 힘에 부친다는 깔딱고개 중턱을 넘어서고 있었다.
설악산 봉정암이다. 풍수지리는 잘 모르지만 항시 봉정암엘 들어설라치면 뭔가 범상치 않음을 느껴왔다. 대청봉에서 흘러내린 설악의 산기운이 봉정암 뒤란으로 흘러들어 법당과 경내에 스며든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이 있는 절집이다. 법당에는 좌복(방석)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부처를 모시지 않는 대신에 서북으로 난 적멸보궁의 창을 통해 5층 진신사리탑을 부처로 모시는 절집이다. 이른바 기도하는 대로 얻어가는 암자로 유명세를 타는 봉정암이다.
봉정암 마당에서도 점심공양이고 봉당에서도 미역국을 먹는다. 올 때마다 늘 미역국이다. 얼른 공양간으로 가서 미역국과 주먹밥을 받아 들었다. 스님들의 공양시간과 때를 맞춰 봉정암에 도착하면 불자든 산객이든 누구나 같이 점심공양을 할 수 있는 암자다. 후식으로 토마토를 먹고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목 주위가 따끔따끔하다. 물을 적신 수건으로 닦아내는데 버석버석 소금기가 묻어난다.
봉정암과는 벌써 세 번째의 만남이다. 봉정암사리탑이 몇 해 전에 국가보물 제1832호로 지정되었다. 무릎을 꿇고 큰절로 일백여덟 번의 절로 참배를 했다. 불가에서의 일백여덟이라는 숫자는 번뇌를 뜻한다고 들었다. 등산객도 절을 올리고 불자들도 치성을 드린다. 여기서는 대청봉으로 올라가는 등산객과 오세암을 거쳐 하산하는 등산객이 헤어지는 지점이다. 밤샘 기도를 드리는 불자들만이 남을 뿐이다. 설악의 산기운과 봉정암의 기도빨을 받았으니 이제 오세암으로 하산이다.
진신사리탑 아래는 용아장성이 용의 이빨을 드러내고 그 너머로 귀때기청봉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공룡능선이다. 그 아래 울산바위도 보인다. 한참을 내려오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물줄기를 따라 아래로 향하는 게 아니고 거꾸로 큰 산을 몇 개 더 넘는 기분이 든다. 다섯 개의 산을 넘고 개울을 건너야 만난다고해서 오세암이라던가?
흔히들 백담사 절집 하면 만해 한용운을 떠올리지만 실은 이곳 오세암 역시 만해와 인연이 깊은 암자다. 만해가 백담사에 머물면서 깨달음과 번민으로 숙고할 때, 오세암을 자주 찾았다. 만해의 오도송도 오세암에서 썼다.
영시암을 내려서는데 어둑어둑 설악의 큰 산들이 무서워진다. 용대리로 나가는 막차가 저녁 여덟 시라는데 벌써 일곱 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막차를 놓치면 용대리까지 시간 반은 또 걸어야한다. 걸음을 재촉하는데 먼발치로 백담사의 불빛이 보인다. 용대리로 향하는 셔틀버스에 오른 시각이 저녁 일곱 시 오십분이었다. 두 다리를 쭉 펴는데 모두 내 세상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봉정암은 웬만한 체력이 아닌 사람은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에는 무리일 수 있는 산행길이다. 암자에 미리 연락을 취하면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 다만 산사에서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가는 후회막급이다. 기도처이니 꼬박 앉아서 밤을 새우면서 정진한다.
관악산 정상은 연주봉의 응진전
관악산 ^^ 서울 관악 경기 과천, 안양 / 1월
호압사 – 장군봉 – 국기봉 – 거북바위 – 무너미고개
깔딱고개 – 연주암 - 관악산 – 마당바위 – 전망대 관음사
호암산문을 들어서면 관악산으로 이어지는 산행길이다. 호압사의 일주문인데 호압산문이 아닌 호암산문인 것은 호압사가 있는 삼성산을 호암산(虎岩山)으로도 불렀기 때문이다. 경내에 세워진 노송아래 동자승과 눈인사를 했다. 눈 덮인 호압사를 벗어나자 한가한 소나무 숲길이다. 흔히 겨울산행은 추운 날씨와 산행 중 일어날지 모를 사고를 염려하여 꺼리게 되는 경향이 있다. 엄두를 낸다는 게 쉽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심설산행에 맛을 들이다보면 겨울산행처럼 뜨거운 산행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보라. 새순이 돋는다는 것은 결실을 위한 다짐이다. 꽃이 핀다는 것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것이고 훗날이 되면 틀림없이 다짐의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 식솔이 너무 많으면 간혹 가지가 부러지기도 한다. 그러나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제 몸을 간수할 수 없을 지언정 가지마다 주렁주렁한 과실을 내려놓지 않는 것이 나무다. 도저히 이겨내지 못할 지경이 돼서야 부실한 놈만을 골라 땅바닥에 내려놓는다. 단순한 것 같지만 자연의 순리고 섭리다.
수풀로 가득했던 절기를 생각하고 숲을 보면 겨울은 여백이 많다. 끝이 안 보이던 숲도 오간데 없고 잎을 솎아낸 허전한 나무들 뿐이기에 너무 조용해서 빈사 상태의 겨울로 여기지만 그렇다고 전혀 볼품이 없고 삭막한 것도 아니다.
겨울 산 속에 들어서면 산이 살아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겨울의 산하는 소리 소문 없이 절제의 시간으로 때를 기다린다. 곤충은 곤충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새들은 새들대로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겨울나기를 한다. 추위에 몸을 사리지 않고 비바람을 견디면서 언 땅을 부여잡고 봄날을 기다린다. 자연은 겨울에도 숨을 쉬고 있다. 다만 휴식의 시간일 뿐이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 산을 올라보라. 그대는 이미 동화속의 주인공이 되어있을 것이다.
수도권의 산이기 때문인지 여기저기 샛길도 많고 갈림길도 수없이 이어진다. 멍청히 뒤를 쫒다보면 자칫 원하지 않던 하산길이 나타날 때도 있다. 산행친구들이 흔히 말하는 이른바 아르바이트 숙제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샛길이 많은 산이다. 암벽을 돌아 장군능선의 국기봉에서 잠시 배낭을 풀고 행동식을 먹는다. 눈이 또 내린다.
학바위 능선길에서 소나무 한 그루에 눈길이 멎었다. 수백 년 나이든 노송도 아니고 명품 소나무는 더더욱 아닌 매양 보고 지나치는 그렇고 그런 소나무였다. 뭉개진 탐방로 끄트머리에 쓰러질 듯 서 있는 소나무였다. 산객가운데 누군가가 부목 세 개로 고정시켜서 묶고는 나이론 끈으로 나무의 정강이와 허리를 감아 놓은 모습이다. 그냥 지나치지 않은 관심이 너무도 고맙다.
팔봉능선에 이르러서는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쏟아진다. 소머리바위를 돌아서는데 연주대로 향하는 산책로가 북적이고 걸음도 빨라진다. 관악산 정상의 암벽이 보이고 벼랑에 기댄 응진전이 아슬아슬하다. 걸작의 조각품이다. 촛대를 묶어서 세워놓은 것 같기도 하고 장수가 쓰던 여러 벌의 창을 세워놓은 것 같은 벼랑이다. 이른바 화강암 절리현상이다.
효령각을 지나면 관악산 암봉으로 정상석이 있고 미로처럼 패인 바위 틈새를 빠져 내려가면 50미터 낭떠러지에 나한법당이 있다. 지붕이 약간 낮은 세 평 남짓의 암자인데 옹색한 대로 법당의 구색은 갖추고 있었다.
악산은 경기오악의 명산이다. 개성의 송악산을 비롯해 화악산, 운악산, 감악산 그리고 이곳의 관악산이 있어 경기오악이다. 하산이다. 사당능선으로 한참을 내려서면 관음사 지붕 너머로 남현동과 사당동 그리고 방배동이다. 눈이 그치고 햇살이 든다. 눈에 반사된 햇살이 창날처럼 꽂히고 있었다. 관악산 능선에서 서울 사람들의 바쁜 모습을 봤다.
한국지면요람 (건설부 국립지리원 1983)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관악산을 오르다보면 가끔 토끼를 만날 수 있다. 과연 산토끼인가 싶지만 수해 전에 토끼를 대량으로 방사했다는 사실이다. 아직 적응을 못한 때문인지 가까이 다가가는데도 도망갈 눈치가 아니다. 집토끼가 야성을 찾아 산토끼가 될지는 의문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함백산
함백산 ^^ 강원 태백, 고한 / 1월
화방재-> 수리봉-> 만항재-> 깔 닥고개-> 함백산정상-> 주목군락지-> 중함 백-> 샘터-> 정암사-> 은대봉-> 두문동재
아침 햇살을 받은 눈밭이 보석 알갱이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하얀 피부의 자작나무는 내리는 눈을 맨몸으로 받아내는데 노간주나무는 눈의 무게를 주체하지 못해 비틀거린다. 함백산이 힘겨워하니 벌써 숨이 가쁘다. 만항재에서 사방천지를 보지만 능선이고 계곡이고 구분이 어렵다. 며칠 전 가을걷이로 바쁠 때에도 함백산에는 함박눈이 내렸다. 달포 전 싸락눈이 심술을 부릴 때에도 이 산에는 필시 함박눈이 찾아 들었을 것이다. 간밤에도 그칠 줄 모르는 눈발이 종일토록 퍼붓는다. 협곡이고 능선이고 구릉지고 사방이 광활한 흰색의 꽃밭이다.
하얀 조팝나무꽃이 바람에 날리던 백운산에서의 재작년 봄이 이러했던가, 만개한 산벚꽃이 봄바람을 타고 쏟아지던 지리산의 노고단능선길이 이러했던가. 꽃잎인지 눈발인지 도통 구분이 어렵다. 함백산에 또 눈이 내린다. 막무가내로 퍼붓고 있으니 앞을 볼 수가 없다. 온 세상이 조용하고 침묵의 시간은 길어 만진다.
함백산 정상의 방송사 송신탑을 등지고 계곡을 내려선다. 중함백과 샘터 능선을 따라 아름드리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한반도 최대 주목군락지가 태백산이라고 하지만 함백산도 만만찮다. 주목이 지천이다. 눈의 무게에 짓눌린 나무들은 마치 하얀 무채의 무시루떡을 연상케 한다.
함백산 계곡으로 휙 하고 칼바람이 인다. 켜켜이 쌓인 눈 무덤에서 윙윙 소리를 낸다. 뒤따라 눈보라도 쌩하고 지나간다. 샘터삼거리에서 곧장 걸으면 은대봉인데 왼쪽으로 꺾어지는 계곡길을 타고 정암사로 간다. 국내 5대 적멸보궁이요, 정암사 수마노탑은 불자들이 치성을 드리는 기도도량의 천년고찰이다.
눈길을 미끄러지며 한참을 내려온 보람으로 수마노탑과 친견을 할 수 있었다. 종루에도 무량수전에도 자장각에도 삼성각에도 눈이 쌓였다. 수마노탑 아래의 적멸보궁 지붕에는 눈이 한가득이다. 아늑하고 고요하다 못해 적막하다. 작은 바람소리도 들리고 눈발이 흩어지는 소리도 들린다. 노스님과 동자승도 요사채 들창을 두드리는 바람소리를 들었을 테지만 두문불출이다. 정암사 역시 적멸보궁의 절집이다. 적멸보궁에는 석가모니의 사리를 봉안 했기에 불상을 따로 모시지는 않는다. 두문동재를 날머리로 정했으니 다시 함백산 중턱으로 올라가야 한다. 가파른 오르막 계곡도 불심의 도움이 전해지면 거뜬할 것이다.
주목군락지를 다 빠져나오면 3쉼터, 2쉼터, 중함백산 그리고 은대봉을 거쳐 1쉼터에 이르면서 산객의 끈기를 시험한다. 먼저 길을 터준 고마운 산객이 없었다면 눈밭을 치고나가는 러셀의 작업도 문제였을 것이다.
오늘도 함백산은 그야말로 폭설이다. 배낭을 풀고 초콜릿 하나를 꺼내 입에 넣었다.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을 했다. 잿빛 구름 사이로 내려 쬐는 햇발이 고마워 하늘을 본다. 눈구덩이로 반사되는 역광이 눈부시다. 흰 눈에 반사된 빛을 오랫동안 쐬면 시력이 망가진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얼른 고개를 돌렸다.
지난여름의 함백산은 산 전체가 야생화로 가득했던 산이었다. 동강할미꽃이 먼저 피고 술패랭이가 자리한 능선으로 타래난초와 큰제비꼬깔. 산박하, 도라지모싯대 같은 수백 종의 야생화가 피고 또 지고 또 피는 일을 반복했으리라. 유명한 사진작가들도 이때는 산꾼이 되고 등산가가 된다. 해마다 백두대간함백산야생화축제가 여기서 열린다. 은대봉쯤 내려서는데 목덜미로 흐르던 땀이 식어간다. 보폭이 느리다는 신호다. 눈이 그쳤나 싶은데 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능선을 넘어온 눈보라가 실성한 듯, 이쪽으로 덮쳐 와서는 빨갛게 상기된 볼을 때린다. 한참 을 지나서는 두 뺨이 아리다 못해 터질 것만 같다. 은대봉을 넘어서던 산악대장은 뒤쳐진 일행의 배낭을 넘겨받고는 하산을 재촉한다.
겨울산행에서 폭설을 만나면 산행은 몇 곱절로 힘이 들게 마련이다. 한발 올려놓는가 싶으면 되레 반발 뒤로 미끄러진다. 내리막에서는 반대로 한 발 내딛으면 서너 보폭은 저절로 미끄러져 내려간다. 저절로 하산하는 것 같지만 발목과 종아리에 팍팍한 힘이 주어지는 근력을 감내해야한다. 허벅지까지 올라오던 등산로는 이제 배꼽까지 차오른다. 폭설이 내린 눈길에서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내딛기가 쉽지 않다. 야금야금 걷다보면 정상은 보인다. 눈길에서는 왕도가 없다.
부산에서 왔다는 어느 새댁은 엄청난 함백산의 눈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워메 눈이 엄청시리도 마이 왔네."
꼬박 여섯 시간을 달려왔다는 부산의 어느 새댁은 앞 머리칼에 고드름을 잔뜩 매달고 기가 차다는 표정이다.
"머리에 온통 고드름이네요?"
"강원도 산에 왔다는 훈장 하나는 달고 가야되지 않겠능교."
말은 그렇게 여유가 있는척하면서도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어디서 오셨는데요?"
“부산 임더!”
"그 먼 부산 말이지요?"
"하무요."
배시시 웃는 양 볼 사이로 모락모락 더운 김이 번지고 있었다. 지금껏 겨울산행을 하면서 머리칼이 고드름으로 어는 모습은 처음 본다.
강원도의 겨울산행이라 여섯 겹의 옷으로 단단히 무장을 했다는 부산새댁이다. 은대봉을 오르는 대가로 고드름을 얻은 기억은 길이길이 보전할 것이다. 배낭 옆 주머니에서 손난로를 꺼내는데 새댁은 벌써 알아 챈 듯 손을 내밀고 있었다. 추위에 무슨 체면이 필요하던가.
날머리인 싸리재까지 다 내려왔는데 사나흘의 폭설로 포장도로가 눈 속에 파묻혔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두문동재 터널입구까지 또 걸었다.
함백산은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계방산 그 다음으로 높은 산이다. 해발 1,572미터높이의 대간동맥으로 음력 오월까지도 눈이 녹지 않는다. 인적도 드문 두문동재를 내려서는데 겨울햇살은 이미 저만큼 도망치고 차가운 산그늘이 찾아든다. 골이 깊으면 밤도 서둘러 찾아오는 법이다. 정선 읍내에서 뜨끈한 콧등치기국수를 시켜 먹을까 싶다, 양념간장에 비벼먹는 곤드레나물밥도 정선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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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강설량이 많기로는 울릉도 다음으로 함백산일 것이다. 함백산에서의 겨울산행은 철저한 장비를 확보해야만 산행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육산의 지형이라 험한 산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눈이 많이 내린다. 예정된 시간보다 하산은 서둘러야 한다.
해남을 아직도 땅끝이라고 믿느냐
두륜산 ^^ 전남 해남 / 12월
오소재 – 오심재 – 노승봉 – 가련봉 – 만일재 – 구
름다리 –두륜봉 – 진불암 – 표충사 – 대흥사 – 유선
관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토막잠에서 일어났더니 정신이 몽롱하다. 새벽별을 보며 이른 아침을 먹는다. 시래기와 뼈를 고아 우려낸 시래기된장국에 밥을 말고는 깍두기와 고사리나물이 담긴 접시도 손에 들었다. 체면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바닥에 털썩 앉는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입천장이 데는 줄도 모르고 뚝딱 한 그릇을 해치운다. 야간산행은 언제나 이렇게 밥을 먼저 먹어야 시작된다.
동백나무 숲은 캄캄한 밤일수록 더 어둡고 침침하다. 다른 나무와 다르게 동백나무 잎은 아래부터 윗가지까지 넓게 자리를 차지한다. 주변에 다른 나무는 얼씬도 할 수 없을 만큼 방어를 하며 자신의 영역으로 살아가는 나무가 동백이다. 칠흑 같은 동짓달 그믐 밤에 빼곡한 동백나무 길을 걸어보면 밤의 숲이 사나운 것을 안다. 지심도에서 지낸 첫날밤은 얼마나 섬뜩했던지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다.
별이 총총한 밤에 북두칠성은 유난히 밝은 빛으로 떠 있다. 예전 사람들은 이 북두칠성의 별자리를 보고 북쪽과 남쪽의 방향을 가름하였다. 그러나 오늘 만큼은 구태여 북두칠성을 보고 방향을 찾을 필요는 없다. 믿을 만한 일행이 선두에 있기 때문이다.
길눈이 밝은 사람을 앞세우고 중간대열에 끼여 조심스럽게 노승봉을 오른다. 남쪽지방의 겨울이 뭐 대수일까 싶지만 새벽바람은 용서가 없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섶의 산죽에 맺힌 이슬이 사정없이 바짓단에 차인다. 이때였다. 너덜지대로 이어지는 구릉지를 오르는데 여기저기서 감격에 가까운 탄성이 들린다. 땅의 끝인 두륜산자락에서 맞는 일출이다.
저 멀리로 남해 바다를 붉게 물들이는 여명의 몸짓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금씩 또 조금씩 바다를 박차고 오르는 붉은 기운은 구름을 물들이고 작은 섬까지도 붉게 삼킨다. 낮게 깔린 구름까지도 온통 붉게 번지는 아침이다. 가파른 너덜바위에 배를 깔고 오르던 일행이 슬쩍 뒤를 돌아보는데 얼굴은 선홍빛이다. 아침해가 싱그럽게 떠오른다.
햇살이 퍼지면서 서서히 시야가 확보된다. 바위 모서리에 발을 올리고 참나무 등걸의 허리춤을 힘껏 잡았다. 완전히 올라섰다고 생각했는데 또 나타나는 벼랑이다. 암벽을 타고 두 개의 밧줄이 내려진다. 뭉툭하게 매듭으로 묶인 밧줄이 튼튼해 보였다. 수월하게 암벽을 통과한다. 몇 개의 바위를 지나 잠시 숨을 고르려고 하는데 노승봉 정상이다.
내던지듯 배낭을 풀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방이 훤하게 트인 암릉으로 주봉인 가련봉이 보이고 고개봉도 조망된다. 나무계단을 오르고 조망데크에서 저 아래의 바위능선을 내려다본다. 동쪽으로 천관산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완도의 상황봉, 서쪽은 진도가, 북으로는 월출산이 조망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무등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눈짐작만 할뿐이다. 아주 가까운 산이 주작산과 덕룡산인데 우측 날개가 해남 땅이고 몸통과 좌측 날개 대부분은 강진 땅에 걸쳐있다. 가련봉으로 가는 정상의 길은 더욱 험한 암릉이다.
만일재를 오르는 길은 잡목이 우거진 겨울 숲이다. 까치박달나무와 산사나무 사이로 보이는 능선의 여백이 여유롭다. 무성했던 잎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죽은 듯 고요하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나무다. 곤한 겨울 잠에 취했을 뿐이다.
만일재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구릉지대를 돌아서면 기암괴석으로 버티고 있는 구름다리를 만난다. 큼직한 암벽이 양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서 잘록한 허리를 만든 절묘한 작품이다. 누구든 여기서 산행의 흔적을 남긴다.
일찍이 다산이 월출산 허리를 돌아 두륜산을 등지고 강진으로 유배되던 삼거리 길목에서 시 한 수 읊고 떠난다. "아, 여기가 해남이니 뭍의 끝이고 강진이 저만치니 귀양살이 길이로다“ 라고 장탄식을 했다는 해남이다.
진불암 포장길을 따라 내려서면 복장나무 노거수 아래로 개울이 흐른다. 뱀이 지나간 것처럼 휘어진 산길을 걷는데 노송 사이로 검은색 기와지붕이 보인다. 천년고찰의 대흥사다. 우리나라 도처의 명산은 산행의 끄트머리에서 절집을 만나는 경우가 많은데 꼭 불자가 아니라도 절집의 토담을 돌아서며 듣는 풍경 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 대흥사 천불전 앞에서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한다. 양쪽 기둥에는 황룡과 청룡이 서로 기 싸움을 하는데 막 승천할 것처럼 꿈틀거린다.
두륜산은 국토의 남쪽 끝자락에 우뚝 솟았다고 하여 한듬산이라고도 불렀다. 또한 한듬산 아래에 있는 절이라고 하여 한듬절이라고 헸다. 한때는 대둔산의 지명을 그대로 옮겨 대둔사로 불러 지다가 지금의 대흥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대흥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국보급 문화재가 많기로도 유명한 대찰이다.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이 북미륵암 경내에 있고 금동관음보살좌상, 삼층석탑, 천불전 등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유서깊은 절집이다. 서산대사탑은 부도로서는 드물게 보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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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의 산이 모두 그렇지만 두륜산 역시 산행을 하면서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하산 길에 대흥사의 대웅전에서 합장을 하면 피로가 말끔히 씻어질 것이다. 국내 최대의 부도전에는 서산대사의 부도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부도와 이에 얽힌 설화 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대흥사북미륵암마애여래좌상은 국보급 문화재로 대단한 걸작이다.
산호초 눈꽃의 계방산
계방산 ^^ 강원 홍천, 평창 / 2월
운두령 - 쉼터 - 정상 - 주목 군락 – 옹달샘
이승복 생가 - 속사
기록으로만 따지자면 계방산만큼 유명세를 치르는 산도 드물 것 같다. 높이만으로도 1,577미터이니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 다음으로 정상의 높이가 다섯 번째에 드는 산이다. 산 중턱까지 도로가 난 함백산처럼 1,087미터에 이르는 운두령까지 포장도로가 연결된 산이요, 명산순위 60위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겨울만 되면 7위까지 치솟는 요술을 부리는 산이 계방산이다. 바람이 거칠고 눈이 펑펑 쏟아져야만 산객이 더 찾아드는 설국의 세상이다. 그래서 바람을 만나고 눈꽃을 보러 계방산은 겨울이 더 뜨겁다.
가지마다 가파른 나무계단은 겨우내 쌓인 눈으로 미끄러웠다. 스패츠를 조이고 아이젠을 신었다. 비탈이 심한 능선을 오르는데 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절기로 우수가 지났지만 기세가 야멸차다. 원래 오는 겨울보다 돌아서는 겨울이 더 매정하다더니 날씨 한 번 고약하다. 안부에서도 쉬고 1,496전망대에서도 배낭을 풀며 넉넉히 지체하면서 여벌옷을 덧대 입고 행동식도 먹어둔다. 빼꼼히 내민 두 볼이 시리고 눈동자가 뻐근하다. 눈보라가 치면 반대방향으로 몸을 돌려 바람을 피한다. 콧물에 눈물까지 흐른다. 체면이 말이 아니다.
쉼터에서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바람이 더 거칠다. 졸참나무 가지에 매달린 눈송이가 어여쁜 꽃으로 피어난다. 국수나무 끝에서 얼어버린 상고대가 진주알처럼 맑고 곱다. 가느다란 바람이 불어온다. 화살나무 상고대가 얼굴을 부딪치고 좀작살나무의 눈꽃이 상고대로 자라 바람이 불 적마다 파이프오르간의 마이스터가 된다.
계방산은 온 산이 상고대 천지며 설화의 만발이다. 9부 능선이 다 되도록 잔가지에는 봄날의 하얀 조팝나무 꽃처럼 피어나고 주목의 잔가지에는 바다 속 산호초의 모습으로 상고대가 주렁주렁 열렸다. 온도와 습도와 바람이란 3박자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져야 상고대는 생성된다. 햇살에 반사되는 겨울나무들은 세상천지가 죄다 보석이다. 무채색의 세상도 이렇게 화려하다.
옛날부터 홍천 내면이라는 동네는 오지 중의 오지로서 운둔의 산이었다. 이렇게 깊은 오지가 6,25 전란 시에는 격전지로 유명하여 아직도 당시의 박격포 탄이 발견되는 산이라고 한다. 1968년의 울진, 삼척지역으로 무장공비가 출몰한 지역 또한 계방산 자락이었고 반공방첩의 포스터가 난무하던 시절에 이승복 어린이가 여기서 태어났다. 한때는 이승복 웅변대회가 전국적으로 열렸고 초등학생들이 버스로 찾아오는 반공교육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분위기는 딴판이다. 반공 이데올레기가 시들해진 요즘에 와서는 이승복 생가터를 찾는 이가 거의 없다.
어쩌다 계방산을 찾는 등산객들만이 오며가며 빼꼼히 집안을 들여다 볼 뿐이다. 지금은 영동고속도로 속사 나들목이 생겨 우리와 가까워진 산이지만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화전민이 돌서덜 밭뙈기를 일구며 삶을 꾸려가던 깊은 산이었다. 두릅과 고사리가 지천으로 나고 송이에 능이며 노루궁뎅이버섯도 흔하다. 깊은산 약초도 최고로 치는 상품이며 계방산과 태기산의 산나물은 어디서든 알아준다.
계방산의 지명은 계수나무 향기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실은 계방산에는 계수나무가 자생하지 않는다. 까치박달나무와 산벚나무와 굴참나무와 자작나무 같은 잡목이 무성한 산이다. 고산지대에 사는 주목도 많다.
주목 군락지를 만나면 정상은 가깝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에 마지막 기력을 다 쏟아 계방산 정상에 섰다. 누가 쌓은 돌탑인지 알 수 없으나 정상을 정복한 성취감으로 자그마한 돌무더기를 만들고 떠난 것 같다. 설악의 대청봉과 가칠봉이 보인다고 말하는데 오늘은 날씨가 흐린 탓에 오대산의 비로봉과 호령봉만 확인할 수 있었다. 들머리부터 속사 입구까지 눈길이다. 심설산행의 묘미가 그만이다. 산불감시원도 겨울은 완장을 벗는 시간이다. 산불 염려는 없을테니까.
하산 길 군데군데서 만나는 주목은 서있는 자태만으로도 기골이 장대하고 늠름하다. 이승복 생가 터에 다다르자 날씨는 더 꾸물거린다. 낙엽송 마른 가지를 흔드는 겨울바람이 아직은 춥다. 누군가 말했다. 겨울 내내 눈밭을 돌아치면 삼 년은 감기에 까딱없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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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하의 어딜 가도 멧돼지나 고라니는 쉽게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지금처럼 숲이 우거지게 된 계기는 연료의 개선이었다. 누구도 땔감을 구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계방산 역시 멧돼지가 흔한 오지의 산이다. 혼자 떠나는 산행은 절대 금물이다.
밤열차를 타고 떠나는 번개산행
태백산 ^^ 강원 태백 / 12월
유일사 – 천제단 – 장군봉 – 부쇠봉 – 문수봉
소문수봉 -당골광장
태백으로 가는 밤열차를 탔다. 산행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산꾼들이다. 급조된 번개산행인데 이틀 만에 스물네 명이 모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미 사나흘 눈이 내린 태백에 오늘밤부터 다시 폭설이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다. 버스를 타거나 승용차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산행의 이동수단이지만 오늘은 기차를 타고 떠난다.
선잠을 털어내는데 제천역을 지나고 있었다. 온 세상이 눈으로 덮이다 보니 밤열차가 지나가는 기찻길 옆이 훤하다. 밭두렁과 논배미가 하얗고 성황당을 지키는 마을 앞 느티나무도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다. 마을 뒷산의 하얀 소나무 숲이 차창 너머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이름 모를 간이역에 기차가 섰다. 우유 빛 연기를 피우는 굴뚝 뒤란으로 빨갛게 익은 홍시가 눈을 맞고 있었다. 오래도록 보고 싶은 동화속의 그림 같은 마을이다. 산행만 아니었으면 다음 역에서 무조건 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래서 이 열차를 낭만열차라 부르는가보다.
지난여름 채송화와 맨드라미와 백일홍을 키우던 시골 간이역 화단에는 겨울 꽃이 하얗게 피어났다. 기차가 영월의 동강과 서강을 달린다. 반쯤 쌓인 눈과 반쯤 흘러내리는 강줄기의 밤풍경은 곧 추억속의 흑백영화를 보는 것 같다. 기차는 천천히 완행의 보폭으로 태백을 향해간다. 바쁘다고 보채는 사람은 이 기차를 타지 않는다.
산행 때마다 뒤를 따르던 후배가 귀엣말을 남기고는 따라오라고손짓을 한다. 열차카페였다. 태백산 정상에서 마시려고 준비한 정상주라며 딱 두 잔씩만 마시자며 술을 꺼낸다. 낭만야간열차에 취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과메기와 중국술인 계림삼화주를 펼쳐 놓는다. 딱 두 잔만 마신다는 게 약속과는 다르게 석 잔을 마셨다. 속이 짜르르하다. 갑자기 기차 안으로 익숙한 유행가 한 곡이 들려온다. ‘바람에 날려버린 허무한 맹세였나. 첫눈이 내리던 날...’ <여기는 안동역입니다.> 기차는 안동역을 지나고 있었다.
유일사 매표소 마당에서 아이젠을 찼다. 태백산 산행의 초입은 낙엽송 밭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펑펑 눈이 쏟아진 날 아침의 낙엽송 숲이 이렇게 멋들어진 풍경화인줄은 몰랐다. 덩치 큰 밑동은 가만히 있는데 꼭대기의 잔가지는 바람이 부는 대로 일렁인다.
낙엽송 밭 아래를 지나간다. 머리에 들쳐 업은 눈두덩을 한꺼번에 쏟아 붙기라도 하는 날에는 뒤따르던 사람은 난데없는 눈 폭탄을 맞게 된다. 누구는 혼비백산인데 뒤따르던 일행은 까르르 웃는다. 산책로가 비교적 넓은 편인데도 주말을 맞아 밀려든 등산객으로 탐방로는 인산인해였다. 구릉지와 계곡을 예닐곱 번 꺾어 돌면 태백산 입구에서 문지기 역할을 하는 큼직한 주목 한 그루를 만난다. 씽하고 바람이 불면서 싸락눈이 내린다.
8부 능선쯤 오르면 탐방로 좌우로 주목군락지가 펼쳐진다. 천년을 넘긴 주목이 수두룩하다. 수백 년을 태백산과 인연을 맺고 민족의 흥망성쇠를 지켜보며 살아온 영산의 거목들이고 역사의 산증인들이다. 살아 천년이고 죽어 천년이라고 했다. 배배꼬이다가 비틀어지고, 휘어지다가 꺾어지고, 늘어지다가 올라서고, 오그어들다가 말라버리는 나무가 주목이다. 속이 텅텅 빈 것 같은데 모진 게 주목의 생애다.
초겨울부터 쏟아진 눈이 주목의 어깨에 백설기 시루떡처럼 엉겨 있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거센 바람이 일자 눈덩이에 부딪치는 소리가 앙칼지다. 이쪽 나무에서 잉잉, 저쪽 가지에서 윙윙, 다시 씽씽, 태백산 정상은 지금 태백준령을 무대로 송년콘서트를 연주하고 있었다.
태백산은 국보급 주목 군락지로 사계절 탐방객이 찾아오는 명산이지만 추운겨울이 더 뜨거운 산이다. 한겨울 눈꽃이 만개할 때 태백산엘 가보라. 가슴까지 차오르는 눈의 기세에 기겁을 하게 되고 눈꽃에 홀려 길을 잃는 일도 걱정을 해야 한다. 잘생긴 주목은 잘생겨서 제멋에 살고 못생긴 주목은 특이한 생김새로 시선을 받는다. 멋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낙엽송도 가만히 살펴보면 산 전체와 하모니를 이루는 산의 일원이다. 못난 나무가 있어 잘난 나무가 돋보이는 법이다. 인간의 세상사도 이와 다르지 않다.
태백산에서는 개천절인 10월 3일에 천제를 지낸다. 신라 초기 때부터 태백산을 신산(神山)으로 여겨 제의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산 정상의 천제단을 중심으로 북쪽 뒤에는 장군단이 있고 남쪽으로는 하단이 있다. 장군봉쪽 능선으로 잿빛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은데 또 눈보라가 몰아친다. 솔개 한 마리 천제단 하늘 높이 솟구쳐 날아오르더니 깊은 계곡으로 날개를 편다.
태백산은 명산이자 영산이고 민족의 성지이자 젖줄이다. 아득한 옛날부터 천제를 지낸 곳이 바로 태백산이요, 태백산을 의지하면서 살아왔던 민족이다. 우리민족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태백에서 발원한 물을 먹고 살았다. 태백산 준령의 금대봉 기슭은 한반도 젖줄의 발원지다. 거기 검룡소의 물은 땅속 수맥을 따라 황지연못까지 이어지고 이 물은 개울을 만들어 한강으로 흐르고 흐른다. 또 다른 능선의 구문소 샘은 삼천이백 리를 굽이쳐 낙동강에 이르러서는 을숙도를 거쳐 남해로 흘러내린다.
북쪽으로는 한강으로, 남쪽으론 낙동강으로, 동쪽으로는 삼척 오십천을 흐르니 한반도 곳곳을 태백산 샘이 적시고 있는 것이다. 태백산은 민족의 영산이고 성지이다. 당골의 산신당을 지나는데 태백한우전문식당의 버스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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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의 시작은 교통편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장 보편화 된 것이 산악회에 가입하고 정해진 요일에 떠나는 산행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용한다. 잠을 설치면서 비박하는 종주 산행도 있지만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여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몇 사람이 그룹을 이뤄 떠나는 번개산행도 재밌다.
진도에 불쑥 솟아오른 동석산
동석산 ^^ 전남 진도 / 11월
종성교회 – 미륵좌상 - 전망대 – 칼날능선 – 동석산 정상 – 삼각점봉 – 가학 재 – 작은애기봉 – 큰애기봉 – 셋방낙조휴게 소
영암도 멀고 먼데 벌써 해남 땅을 지나쳤다. 울돌목 거친 물살을 거슬러 진도대교를 건너면 더 먼 진도 땅이다. 땅끝 마을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해남보다 결코 가깝지 않은 서해바다 끝자락의 섬이 진도다. 울돌목 좁은 바닷길 건너에 있기 때문인지 좀처럼 섬으로 느껴지지 않지만 진도는 분명 섬이다.
밋밋하게 미끄러져 바다로 이어질 것 같은 섬 속의 거대한 암릉이 솟아오르니 동석산이다. 너른 벌판에 어기영차로 불쑥 튀어 올라 화강암의 암릉을 만들었다.
거대한 암릉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작은 교회의 골목이 들머리다. 교회의 담장과 벽채의 칠이 많이 벗겨진 것을 보면 개척교회는 아닌 것 같은데 교회를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싶다.
키 작은 신갈나무숲을 빠져나오면 거대한 암벽이 가로막는다. 멀리 미륵좌상암굴을 바라보며 바위봉우리를 향해간다. 수직에 가까운 철제계단의 꼿꼿한 사다리를 오르면 다시 펼쳐지는 암릉 군상들이다. 올라온 벼랑 끝을 보면 하삼동 너른 땅에 대파 밭이고 오른쪽으로 봉암저수지가 시원하다. 또다시 이어지는 철제계단이다. 작은 바위능선을 오르면 더 크고 웅장한 바위가 버티고 섰다.
동석산의 웅장한 산세는 마이산을 능가한다고 해서 바다의 마이산이라고도 부른다. 10여 년 전까지는 일반 등산인들은 도저히 접근을 할 수 없었다. 암벽 등반가들의 독무대로 명성이 높았던 산이었다.
매듭으로 묶여진 밧줄을 잡고 정상에 닿으면 건너편 바위능선을 이어주는 구름다리가 앙증맞게 걸쳐있다. 조심스럽게 칼날바위능선을 지나치는데 오른쪽으로 여귀산이 슬금슬금 따라오고 신금산과 첨찰산 능선이 보폭을 맞춘다.
동석산 정상이다. 멀리 영암 월출산이 보이고 동북 방향으로 해남의 달마산이 또렷하다. 지나온 능선도 아득한 암릉이고 가야할 석적막산 능선도 온전히 기암절벽의 암릉이다. 오랜 세월 다듬어진암릉미가 그만이다. 기묘한 바위군상이 연이어 뻗어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멀리 다도해의 숱한 섬들 사이로 마지막 그물을 건져 올린 고깃배가 작은 포구로 향해 물살을 가르는 한가로운 저녁나절이다.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룬 가학재를 빠져나오면 큰애기봉까지도 역시 소사나무숲 오솔길인데 세방낙조전망대로 내려오는 하산 길은 동백나무가 빼곡하다. 능선과 계곡이 다를 뿐이건만 동백은 섬을 더 좋아하고 바다를 더 좋아하는가 보다.
불도가 앞에 서성이고 양덕도의 발가락섬과 주지도의 손가락섬이 점점 가까이 다가온다. 가사도, 광대도, 성남도, 백야도, 상갈도 등의 조도면 백여든일곱 개의 섬들이 오밀조밀 숨바꼭질하는 그 뒤로 신안의 하의도가 선명하다.
워낙 멀기 때문에 큰맘을 먹지 않으면 갈 수 없는 섬이지만 일단 진도에 오면 모든 것이 온화해서 좋다. 남도의 햇살이 고와 사계절이 따뜻하다. 산이라야 그만그만하게 어깨를 부딪치며 바다에 떠 있다. 금골산, 첨찰산, 여귀산이 한나절에 하산할 수 있는 산이고 돈대산과 신금산에 오르면 조도군도의 숨겨진 풍광에 가슴 설렐 것이다.
진도대교 울돌목 회오리 물살을 내려다보면 명량해전 그날의 현장을 돌아보게 될 것이며 해상 무대에서 펼쳐지는 ‘얼씨구 좋다 남도소리여행’에 취하면 누구라도 빠른 장단의 알레그로템포로 진도아리랑을 부르게 되리라.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음 응 음’
진도의 감동을 더 진하게 느끼고 싶은가. 진도 서쪽의 그 끄트머리에 세방낙조전망대로 가라. 간재미회에 듬북국을 시켜놓고 다도해의 섬과 섬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환상적인 일몰을 보는 것이다.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말이다.
간재미회를 서너 점 먹고 있을 무렵, 회는 노을을 다 보고 먹어야 제 맛이라며 간재미아낙이 밖으로 내좇는다. 아, 해넘이다. 섬과 섬 사이로 빨려드는 붉디붉은 일몰은 사람의 넋을 잃게 만든다. 멀리 하의도로 넘어가는 붉은 광채가 세방의 앞바다까지 번진다. 뭉클한 흥분이 가실 줄모르니 이대로 잠들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하룻밤 더 묵기로 했다. 내일은 첨찰산을 등정하리라. 내려오는 길에 운림산방을 찾을 것이고 수묵담채의 대가인 소치 허련의 흔적을 확인할 것이다. 진도라는 섬은 진도아리랑의 우리 가락이 있고 소치의 산수화를 만날 수 있으니 작은 섬이지만 큰 예향의 고장이고 보석 같은 섬이다.
- 한걸음 더 들어가는 멘트 -
동석산은 들머리에서 날머리까지 온통 바위산이라 산행시간에 여유를 두는 게 좋다. 사방으로 전개되는 바다의 조망으로 넋을 잃기에 충분하다. 암릉과 암릉은 구간마다 밧줄과 계단의 연속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온전히 집으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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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