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간>
채린이 오곡 시리얼을 가지고 왔다.
채린: 이거, 엄마가요, 저 아침 못먹었다고 싸주신 거예요.
채린에게 한 그릇 퍼다주자, 아이들이 나도 달라고 성화다.
아참, 그렇지, 이것이 비록 오곡 시리얼일지언정,
아이들 입장에서는 과자 간식에 준할 터.
하지만 채린의 표정이 영~
쌤: 채린아, 이거 해우오빠랑 세연이도 나눠줘도 돼?
요즘 산돌 아이들, 싫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해 줄 줄 아는 그 뭔가가 생겼다.
내건데, 하던 채린이, 네, 나눠주세요, 한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책상에 나란히 앉아 오곡 시리얼을 먹는 것으로 시작했다.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꾸려볼까.
오후엔 비가 온다고 했는데,
그럼, 오전에 바깥활동을 하고 오후에 성품훈련을 해야겠다.
(고, 생각했는데,
점심을 먹고나서도 비가 안오자,
옥수수반, 또 밖으로 나가겠다고!!
암튼 그래서 또 다른 좋은 일이 생기긴 했지만 뭐...)
성품훈련 시간이 20분으로 되어 있지만
지난 주에도 근 한 시간 정도 걸렸었기 때문이다.
오늘 쌤이 계획했던 것은
친구가 세 개의 보물을 각각 다른 장소에 숨겨두고
다른 친구에게 오직 말로써만 전달해 준 뒤 그 보물을 찾아보기였다.
친구의 말을 잘 듣고
그 말을 믿고
따라보면 값진 보물을 발견할 수 있다.
아, 좋은 생각이 났다.
이번주에 못했으니 다음주에는
아예 친구에게 정말로 줄 수 있는 것 (사탕이든, 작은 선물이든)을
준비하게 해서
보물을 잘 찾아서 그것을 가져갈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옛이야기>
쌤은 요즘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좋다.
탈무드나 옛이야기나, 주기철 목사님... 등,
이야기 시간이 되면 아이들이 활발하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잇새로 재물이 샌다"였다.
얘들아, 근데 말 많은 세 사람을 사람들이 왜 싫어했어?
늘 손을 가장 먼저 드는 것은 세연이다.
아니, 항상 손을 들고 있어서 채린으로부터 채근을 당하기 일쑤~
세연: 말이 많아서요.
해우: 너무 말을 많이 하니까 친구들이 말을 못해서 불편해서요.
채린: 다른 사람은 말을 못하니까.
세연: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걔들이 끼어드니까.
근데 그 산신령은 왜 그 세 사람에게 황금 열매를 입에 물고 있으라고 했니?
해우: 그걸 입에 물고 있으면 그게 말을 모샇게 하니까 그게 습관이 되어서 말을 못하게 되어서, 다시 입에서 꺼내면 다시 말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러면 말을 적게 하니까 말을 적게 하려고. (굉장히 길게 얘기했다.)
그러자 채린이 울상이 되었다.
채린: 어어, 해우오빠가 말한 거 내가 말할려고 했던 거예요.~~
세연: 열매가 썩은 사람은 입밖에 꺼내놨으니까. (?)
근데 왜 두 친구는 끝까지 열매를 입에 물고 있지 못했지?
채린: 답답해서 (정말 답답한 느낌을 그대로 전달했다)
해우: 그러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해서 말을 많이 못하니까.
세연: 말 많이 하던 게 습관이 되어서 말을 안 할 수가 없어서.
근데 한 친구는 어떻게 끝까지 열매를 물고 있게 되었니?
세연: 다른 두 사람이 얘기하는 거는 딴 사람이 잘 들어줬는데 그 사람 얘기는 귀를 안 기울여줬기 때문에.
채린: 그 사람은 그 말 많은 걸 고치고 싶어서.
말이 많으면 왜 재물을 모으지 못하지? / 잇새로 재물이 샌다, 무슨 뜻일까.
채린: 말이 없으면 일을 하니까.
세연: 말이 없으면 행동을 하는데.
해우: 말이 없으면 재물을 모은다.
<냇물>
점심을 먹자마자 해우 왈,
해우: 어, 보세요, 밖에 아직 비 안와요. 우리 나가서 놀아도 돼요?
응, 돼.
라고 이야기할 때는 한시까지 잠깐 놀고
어제 못한 냇가 지도를 그리기 위해 냇가 쪽으로 한바퀴 돌고
들어와서는 성품훈련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두시반까지는 한 시간 오십분이나 남겨놓은 상황이었으니까.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데리고
냇가로 가자, 냇물이 어디서 흘러서 어디서 만나서 어디로 가는지,
그것만 보면 돼.
아이들은 네~ (요며칠 대답들을 잘 한다*^^)
하고는 함께 냇가로 갔다.
어제 빤 채린의 운동화가 덜 말라서
채린은 하는 수 없이 구두를 신고,
쌤의 손을 잡고 둑을 건너뛴다.
뚝을 넘어서 모래와 갈대가 뒤섞인 곳을 걸어가면
어제 놀던 자리가 나온다.
그쪽으로 걷던 아이들,
해우와 세연 : 선생님, 우리 여기서 놀아도 돼요?
한 일초 정도 고민이 됐다.
여기서 놀게 할까,
아님 그냥 들어가자고 할까.
아, 그래, 놀자.
오늘은 채린까지 함께 오질 않았나.
응, 놀아도 돼.
양말 벗고 놀아도 되요?
응, 맨발로 놀아도 돼.
이렇게 해서 오늘은 채린이까지 양말을 벗었다.
그리고는 참방거리며 물에 들어가 어제 아이들이 하고 놀던 그 같은 놀이에 동참했다.
함께 둑을 만들고 모래를 날라와서 쌓고
하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논다.
해우는 물이 들어오는 곳과 나가는 곳을 만들고,
물이 지나가는 터널도 만들었다.
세연과 채린은 모래를 계속 날라서 물에 뿌리기도 하고
높이 쌓아올리기도 했다.
쌤은 중간중간 바지춤과 소매를 걷어주고...
삔공주가 물로 가버리니
쌤이 심심했다.
해서 쌤은 건너편 밭으로 가서 삽과 곡갱이를 들고 땅을 갈아엎어 밭을 좀더 만들었다.
이제 채린도 서서히,
아니 급속도로
자연학교의 맨발 청춘 대열에 합류했다.
<새똥치우기>
아, 기억났다.
오늘 있었던 일 중에서 또 한 가지.
오늘의 새똥 및 먹이갈기 당번은 채린이었다.
이 시간만 되면 아이들이 아으,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도
한 번도 똥치우기를 안한 친구가 없었다.
세연은 처음엔 문 뒤에 숨기도 하고
연신, 나는 절대 똥 안치울건데, 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쌤이 부르면 와서
아유, 냄새, 하면서도 똥을 치우곤 했다.
채린은 늘 똥을 잘 치웠는데,
오늘도 뭐, 그냥 평범하게
으, 냄새, 하면서 똥을 치우고 있었다.
쌤이 똥받는 신문지를 돌돌 말아주면
그걸 받아서 쓰레기통까지 가져다가 넣으면 똥치우기 끝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이 똥 신문지 마는 일도 하게 되겠지)
그때였다.
세연: 내가 대신 똥 치워줄까?
채린(코를 감싸쥐며): 응. 고마워.
쌤은 귀를 잠시 의심했다.
그간 세연이 여러 모로 힘들지만 노력을 해온 것은 아는데,
똥까지 치워주겠다고 할 줄은 몰랐다, 기대도 한 적이 없다.
세연은 선뜻 똥신문지를 들고는 갖다 버리고 왔다.
ㅎㅎ
뿌듯, 흐뭇한 광경.
물론
이런 풍경만 펼쳐지는 건 아니다.
피아노학원에 가는 길,
어제는 세연의 말대로 피아노 학원안까지 바래다 줬다.
채린은 1층 현관까지만 바래다달라고 하고 세연은 2층 학원 안까지 바래다 달랬다.
그래서 그건 어쩔 수 없이 가위바위보로 정했는데, 세연이 이겼다.
대신 다음날은 채린, 그 다음날은 세연의 원대로 해주기로 했다.
왜 그런 일에서는 양보를 안하는지 모르겠지만(할 날도 오겠지)
굉장히들 예민하게 신경을 세웠다.
오늘은 1층 현관을 들어서는데,
채린이,
오늘은 내 말대로 해주는 날이잖아요,
잊고 있던 약속을 환기시킨다.
오, 맞다, 그랬지?
하는데 세연이 인정을 안 한다.
쌤이 세연에게 오늘은 채린이 말대로 해주기로 했었지?
하는데, 세연이 막 우긴다, 2층까지 바래다 달라고.
그러자 채린이 삐졌다.
아, 왜에~, 어제는 니 맘대로 했잖아~~
그러자 세연의 마음이 울그락푸르락(세연은 아무리 화가 나도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다,
쌤은 세연의 피부색이 늘 부럽다. 쌤은 아무 일도 아니라도 얼굴이 잘 빨개진다... )
해졌다.
해서 쌤이 세연에게 조용히,
우리 채린이하고 약속한 것도 지켜주자,
했더니,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쌤과 잘 헤어지는가 했는데
계단을 막 뛰어오르는 소리,
그리고 채린이 지르는 소리,
선생님이 계단에서 뛰지 말라고 했잖아, 왜 뛰어~~~~
감사한 것은 이런 풍경은 이제 아주 낯선 풍경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아이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규칠을 잘 지키고 있고,
중요한 건 어떤 강제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공동체성을 터득해가고 있다는 점일 거다.
규칙을 어김으로써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려고 하거나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력을 확인하려고 하는
그런 언행은
우리 학교에서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중이다.
쉽지 않았을 텐데도
그렇게 자신을 성숙시키려 "애"쓰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가시는 하나님,
유 아 소 원더풀~~~!!
산돌지기...
첫댓글 아옹다옹 싸우고 험담을 일삼는 정치인들도 산돌자연학교 댕겼으면 ㅋㅋ
ㅎㅎ 다 오라고 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