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폐소생술 예방교육 현수막~
대정119센터 응급조치 예방교육
심폐소생술 골든타임 4분!!
2016년 8월7일 세인사랑오르미동호회
제주특별자도 무공수훈자회 베트남참전 전적지견학
3부~
필 그리미지 리조티에서 아침을 연다. 평면TV가 LG전자 라 기분이 어쩐지 좋다. 수영장 2층이 식당인데 수영장의 물색깔이 에메랄드 옥색빛으로 아름답다. 아침과 커피한잔으로 가볍게 먹고 황색적기가 휘날리는 후에성 입구에 도착하여 전통카트에 탑승하여 성입구까지 다달은다. 이곳 후에성이 80만평이고 밖에까지 120만평에 이른다고 하니 놀랄수 밖에 없다.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단체기념 사진을 찍는데 옆에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진기사도 우리를 찍는다. 후에성문에도 아직 월남전투 총탄이 여기 저기에 남아 있다.
베트남 국기를 가이드 설명이 황색적기로 들었는데 금성홍기이다.
1976년 베트남 통일 때, 종래 북베트남 국기인 금성홍기를 통일국가의 국기로 정하였다. 빨강은 혁명의 피를, 황색별 5개의 빛은 노동자·농민·지식인·청년·군인의 단결을 나타낸다.
후에는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딴 호아(Than Hoa)로 불렸으며,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우옌 왕조(1802~1945)의 수도가 된 이후부터 현재의 지명이 되었다. 그러나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의 최대 격전지가 되어 왕도 대부분이 황폐해졌다. 1990년대 들어 지방 정부가 후에의 가치를 자각하기 시작해 관광지로 개발하기 시작했으며, 199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1687년 후에에서 5km 북동쪽에 있는 바오 빈(Bao Vinh) 마을에 도시의 성곽이 건설된 이후 1744년 응우옌 씨(阮氏)를 가문으로 하는 남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1802년 프랑스의 도움으로 응우옌 왕조를 건국한 쟈롱 황제가 후에를 수도로 정하였다. 1885년 프랑스는 통킹 지역에 대한 종주권을 왕실로부터 거부당하자 후에를 포위했다. 프랑스 측 자료에 따르면 3일간 지속된 후에 공격에서 왕궁 장서각을 파괴했고, 고가의 귀중품을 훔쳤다고 한다. 또한, 베트남 전쟁 당시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이 차례로 후에를 탈환하면서 무고한 국민들이 살해되는 살육의 현장이 되기도 하였다.
후에는 정확한 위치로 말하자면 17도선이며 대한민국의 38도선의 중앙부분으로 그 당시에 치열한 전투가 있었음을 가름 할수가 있다.
면적이 너무 넓어 카트차로 이동하여 출발지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 마이갓~~
그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진기사가 어느새 사진을 사람수 만큼 뽑아 놓아 한장에 완달라~
장사하는 수단이 기가 맥힌다.
티엔부 사원
입구에 가는동안 이린아이가 바나나를 들고와 완달라~하면서 달라 붙는다. 끈질게 굴면서 울멱인 목소리로 완달라 한다. 마음좋은 우리 미쓰 깡 2달라 주고 산다.
민 망 황제는 1820년부터 1841년까지 재임하였으며, 베트남 왕조를 설립한 응우옌 왕조의 기아 롱Gia Long 황제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황제에 오르고 6년 뒤, 자신의 무덤을 구축할 계획을 했다. 그러나 묘는 그가 52세의 나이에 병으로 죽고, 그의 아들 티에 트라이 황제Thieu Tri에 의해 완공됐다. 그는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작업을 계속하였고, 1841년 8월에 민 망의 시신이 부 탄Buu Than에 안장됐다. 민 망의 시신이 옮겨지고 2년 후인 1843년에 이르러서야 민망의 묘가 완공됐다.
민망의 묘는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로 유명하다. 이 기간에 건설된 다른 무덤들과 비교하여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외관 벽, 세 개의 문((Tam Quan Gate), Salutaion Court, 철제로 지어진 집, 사원, 호수, 파빌리온, 정원 그리고 묘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가 세 가지 주요 병렬 축에 따라 배치되고, 가운데에 탄 다오Than Dao 길이 놓여져 있다. 다이 홍 몬 문(The Dai Hong Mon Gate)은 묘로 들어가는 중요한 출입구이다. 이 출입문은 황제의 관(棺)이 묘로 운반될 때만 열렸고, 그 이후 굳게 닫혀 있었다고 한다.
가는날이 장난이라는 말처럼 문은 굳게 닫아 있어 발길릉 돌릴수 밖에 없었다.
응후엔 왕조를 일으킨 최초의 황제 민망왕릉~
왕릉 중에서 규모가 크고 장엄하며 가장 아름답다는 민망 황제릉 으로 간다.
민망 황제릉 은 연못 위에 놓인 다리를 지나 길쭉한 계단을 걸어가면 묘가 보이는데,
왕릉이 크고 넓으면서도 연못이며 전각과 무덤등 무척 짜임새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1,802년 응우옌 왕조 가 건국되어 1,819년 쟈롱왕이 죽자 이듬해 즉위한 이가 여기
민망 황제로..
그는 청나라로 부터 책봉을 받으면서 베트남 Viet (越南, 대월) 이란 국호를 쓴다.
그는 베트남을 통일하고 캄보디아 와 비엔티엔(라오스) 까지 세력을 펼치면서 황제
라는 호칭을 사용했으나.....
백성들의 삶은 고단하고 전 왕조의 잔존세력의 반발로 230 회의 반란이 있었다고 한다.
응후엔 마지막 천황인 카이딘 왕릉~
가이드 설명에 죽기전에 묻일 자리를 7년을 공사하고 사후에 4년을 더 공사해 70m 매장되었다 한다. 1,885년에 베트남은 프랑스 식민지로 속국이 되었는 데 여기 카이딘은
1,916년부터 1,925년까지 제위했으니 조선의 고종 말기나 순종과 같은 처지~
바부댕이 왕~~
오늘의 일정을 빨리 마치고 리조트에서 쉬기로 한다.
수영복을 가져와 수영장에서 물놀이로 피로를 풀어 본다.
*.전체적으로는 베트남 고유의 양식이 아니라 굳이 권하고 싶지는 않은 곳이다. 마치
서울 광화문이나 덕수궁에 석조전을 보는 듯 하다.
그는 응우옌 왕조 13명의 왕들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1,848년부터 1,883년까지
35년간을 통치했다는 데....
재위중인 1,864년부터 3년간 3천명의 인력을 투입해 능을 완성하고는 아예 여기서
왕궁인양 살았다고 하네?
하여 겸궁이라 부르는데 청나라 황제처럼 50명의 요리사가 50가지 요리를 만들게
하여 미식을 탐했으며....
또 100명의 후궁을 거느리고 미색을 즐기면서 밤새 연못의 연꽃에 맺힌 이슬로 차 를
끓여 마시는등 호사를 부렸으나....
그가 죽은지 불과 2년만인 1,885년에 나라는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어 속국으로 떨어
지는 것이다.
제주특별자도 무공수훈자회 베트남참전 전적지견학
4부~
마지막날인 다낭의 바니산국립공원과 다낭박물관을 둘러보고 몸풀기 샆에서 피로를 풀고
한인식당에서 삼겹살 저녁을 마치고 다낭공항에 귀국길에 오르는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베트남 남중부 지역의 최대 항구도시이자 상업 지역인 다낭은 다낭의 인구가 90여먄명 베트남의 다섯 직할시 중 하나로서 베트남에서 호치민. 하노이 그리고 하이퐁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큰 강의 입구"라는 뜻을 지닌 다낭은 예전부터 참족의 중요 거점으로 번영을 누렸으며
1847년, 선교사 구출작전으로 프랑스 함대가 칩입한 이후 1858년 당시 프랑스 황제인 나폴레옹 3세는 베트남과의 전쟁을 선포, 그 결과로 다낭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이후 다낭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5대 도시의 한 곳이 되었으며 미군과의 전쟁 때는 미군의 중요 공군기지로 활용되어 그로 인하여 항구 설비가 대폭 개선되었고 그것이 오늘날 다낭의 번영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역사적인 바탕에 의하여 다낭 및 인근 지역엔 고대 참족의 유적물과 프랑스인들에 의한 서구 건축물 등등이 산재되어져 있다.
마지막날에 오늘은 그런 다낭의 볼거리 중에 첫째로 바나산을 들려본다. 바나산은 정부로부터 국립공원으로 지정된곳으로 다낭 시내에서 차량으로 약 40여분 소요되는 지천에 있다. 그곳엔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케이블카와 1.500여미터 산 정상에 놀이동산과 공원이 있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케이블카를 두번 갈아타야 바나힐스 정상에 이른다. 이러한 시설은 150여년전 프랑스인들이 무더운 베트남 날씨를 피하기 위한 휴양지로 개발한것이 시초이다. 그런 탓에 바나산에 이르면 마치 유럽에 어느 성곽으로 착각할 정도이며 그런 이유로 인해 웨딩촬영 장소로도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각종 원시림과 야생동물이 가득한 생태공원과 5.801미터 길이의 케이블카가 해발 200미터에서 1.487미터까지 오르 내리고 해발 5.801미터 바나산 정상에 건설된 바나힐스... 세계에서 가장 긴 케이블카를, 세계에서 두번째로 높은 케이블카를 이용하기에 이른다. 두번째 케이블카로 도착한 곳은 바나힐은 다낭의 온도가 35도 안팎일 때도 15에서 25도 사이를 유지하는 쾌적한 곳으로 해발 1.500미터 산 정상에 조성된 테마공원인데... 이 모든 것을 지배를 하는 프랑스인들을 위하여 지배를 당하는 베트남인들이 오르내렸을 터인데 아픈 역사다. 그런 아픈 역사를 잊고 현지인은 프랑스풍의 전경에 그져 좋아들하고만 있다. 정상에 놀이동산이 있다는 것도 특이한데.규모도 작지 않다. 자이로드에 3D극장. 주라기 공원에 슬라이드레일까지...
바나힐의 왕복입장료는 베트남 600.000동 (우리돈
30.000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