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과 영암 아리랑

[아우성]

월출산과 영암 아리랑

                                                                                                                                          샘물 강 기 옥

나주 평야에 이어 열린 영암 들녘은 아련한 그리움으로 내달리다가 갑자기 예쁜 수석 하나를 밀어 올렸다. 수반에 단봉으로 앉은 수석(壽石). 그것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힘찬 기세를 드러내 비범한 경석(景石)의 자태를 드러내는 신비의 산수경석(山水景石)이다. 끝없이 밋밋하기만 할 것 같은 남도의 열린 풍경 속에서 갑자기 솟아난 이 산수석(山水石)은 지루한 눈망울을 휘둥그레지게 한다. 달이 뜨는 산, 달이 솟아나는 산, 아니 솟아나는 달이 아름다운 산, 그것은 다름 아닌 월출산이다. 그래서 영암은 월출산으로 통하고 월출산은 영암의 상징이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 영암 고을에 달이 뜬다.

달이 뜨는 장면을 알리는 “영암 아리랑”의 도입부분이다. 하춘화의 늘어진 목소리에 맞춰 서서히 달이 떠오르면 월출산 천황봉은 온통 달빛에 취해 잔치를 벌인다. 느릿한 가락에 애절한 사연을 토해낼 것 같은 노래 도입부의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흥겨운 가락으로 바뀌면서 달뜨는 월출산은 어느 새 임 보는 산으로 바뀐다. 노랫가락에 취한 달도 꼭 임을 만나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고 달을 맞는 사람 역시 달빛에 취한 임을 만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래서 그 순간은 솟아오르는 달이 임이요, 달빛에 멱감는 산봉우리가 임이요 , 달빛에 젖은 산야가 임이다. 모든 것이 임이 되어 환상적인 기쁨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 월출산의 달뜨는 풍경이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내가 70년대 초 장흥에서 경지정리 작업을 하고 있던 큰형님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 때 보았던 월출산은 쟁반 위에 잘 다듬은 돌을 올려놓은 조형물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우연히도 80년대 들어 작은형 가족과 완도로 여름 여행을 떠나면서 영암에서 하루 묵은 것이 어렴풋이나마 월출산의 정체를 알게 된 계기였다. 달뜨는 월출산과 영암의 내력은 그렇게 1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쟁반 위의 돌이 단봉의 수석(壽石)으로 변하여 내 가슴에 안긴 것이다.

* 영암의 내력

영암(靈巖)은 신령한 바위라는 뜻이다. 그 깊은 사연을 말하지 않더라도 언뜻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월출산 자체가 바로 신령한 바위덩어리다. 북에서 남으로 내려가면서 보면 좌우 대칭으로 균형이 잡힌 단봉의 수석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보면 매끈하게 보이던 산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산임을 알게 한다. 그래서 가까이 가면 갈수록 험상한 바위와 계곡들이 전설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으리라고 직감하게 한다.

월출산 정상에는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같은 동석(動石)이 세 개가 있었다. 이 바위 때문에 조선에서 큰 인물이 난다고 알게 된 중국인들이 이 동석들을 산 아래로 굴려버렸다. 그러나 그 중 하나가 다시 정상으로 올라와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바위 때문에 조선에서 인물이 난다고 하여 영암(靈巖)이라 했단다.

단순히 웃어 넘길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 전설의 이면에는 중국에 대한 우리 문화의 왜소증을 극복하려는 민중의 심리가 깔려 있다. 항상 중국에 눌리고 살았던 조선의 민중은 사대(事大)의 대상인 중국과 감히 정치적으로 맞설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학문에서만큼은 밀리고 싶지 않았다. 그 핵심이 바로 인물론이다. 내 나라에서 더구나 내가 사는 지방에서 훌륭한 인물이 났을 때 그에 대한 신망과 기대는 한없이 커져 강대국의 인물을 능가하는 것으로 확대된다. 눌린 자의 심리이자 왜소 본능의 콤플렉스를 떨쳐버리고 싶은 심정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우선 월출산의 정상이 천황봉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중국의 황제에 대한 견제심리라 할까 아니면 중국의 명산에 대한 견제심리라 할까. 우뚝 솟은 봉우리는 그런 심리적 요인까지 끌어안고 천황봉이라는 이름으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더구나 천황봉(809m)에서 도갑사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오면 구정봉(738m)이 있고 거기서 십여 분을 비켜 내려오면 국보 144호의 마애불이 세상을 지켜보고 있어 형언할 수 없는 평화의 경지에 빠져들게 한다. 어마어마하게 덩치 큰 인공물을 만드느라 민초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중국의 황제에 비해 속세에서 지친 심신을 편안히 쉬게 하는 마애불상은 자애로운 조선의 왕을 황제로 견주어 표현한 것이라고 보기에 이름조차 천황봉이라 한 것이리라. 그래야 흔들바위까지 굴러 떨어뜨린 중국인의 우월감을 압도할 수 있고 영암의 인물이 장차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미륵신앙과도 같은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월출산을 그렇게 영암의 자랑이자 조선심(朝鮮心)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 월출산과 백제인

영암은 남녘에 자리하고 있어 기온이 온난하다. 더구나 영암천, 도갑천, 송계천 등이 영산강으로 흘러들면서 쌓은 토사가 충적평야를 이루어 농사짓기에도 좋은 곳이다. 소위 산이 아름다우면 그 산으로 하여 빚어진 강 또한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영산강은 남도 지역의 젖줄이자 삶의 터전이기에 다량의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굴되고 주변에 고인돌도 많이 보인다. 선사시대 이래 지금까지 역사가 그대로 살아 있어 사람 사는 모습을 탐구하기에 좋은 곳이다.

영암은 다른 지명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세조에 의해 파평이 파주가 되고 영주지방의 큰 고을이었던 순흥이 작은 면소재지로 바뀌듯 정치적으로 격변을 겪지 않았다. 시대적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지명이 바뀌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월나군(月奈郡)으로 불리다가 통일신라시대 경덕왕대에 전국의 지명을 중국식 한자로 표기하면서 영암군(靈岩郡) 바뀌어 영암이라는 이름이 시작되었다. 고려 성종 15년(995년)에는 관제를 개정하면서 군사적 지휘체계를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전국을 안동도호부(경주) 안서도호부(해주) 안남도호부(전주) 안북도호부(안주) 등 4대 도호부로 나누어 전국을 관할하다가 전주, 경주의 안남도호부와 안동도호부를 없애고 안변도호부(등주) 안남도호부(수주) 안동도호부(안동)로 개편하여 5도호부제로 운영한 적이 있었다. 이 때 영암은 잠시 낭주로 불리다가 현종 9년(1018년)에 다시 영암으로 환원되어 지금까지 영암으로 불린다. 그래서 영암에는 지금도 낭주라는 지명이 있다. 가수 하춘화가 바로 낭주골 아가씨인데 그녀는 일찍이 낭주에 고등학교를 설립한 후 이를 국가에 헌납하여 사립학교로 시작한 낭주고등학교가 지금은 공립고등학교로 바뀌어 이 지방의 인재를 길러내고 있다.

백제시대에 불린 월나군(月奈郡)은 백제인의 자연에 대한 서정적 감각을 읽을 수 있게 한다. 그렇게 험한 골산(骨山)에 달을 끌어들여 이름을 지을 줄 아는 백제인의 멋은 선운산가나 무등산가에서 흔적을 볼 수 있지만 정읍사에서는 그 극치를 이룬다.

하 노피곰 도샤 /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긔야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  드욜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어느이다 노코시라. / 어긔야 내 가논  졈그셰라.

어긔야 어강됴리 / 아으 다롱디리.

달님이시여 높이 좀 돋으셔서 어긔야 멀리 좀 비춰주소서.

저자거리(시장)에 가 계신가요. 어긔야 진 데를 디디실세라.

어느 곳에나 놓고 쉬십시오. 어긔야 내 가는 데 저물세라.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망부석 설화와 같은 아름다운 전설을 낳을 만큼 백제인들은 그렇게 기다림의 미학을 서정적인 노래로 읊었다. 그런 수준의 감상이 있었기에 평지에 돌출하듯 솟아있는 이 산을 달뜨는 산, 월출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월출산을 삼국시대에는 월나산(月奈山),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했고 조선시대부터 월출산(月出山)이라 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달[月]과 관련이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은 반드시 달밤에 영암 들판을 달려 봐야 한다.

들판 한 가운데 우뚝 선 봉우리 위에 달이 걸리면 영암 천지는 온통 달빛뿐이다. 쏟아져 내린 달빛에 영암의 들녘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 달은 그 야말로 신비의 대상이다. 필자가 오대산의 주인은 달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곳의 달은 숲 속에 열린 선녀의 세상이라면 이곳 영암에 펼쳐진 달빛 세상은 임을 맞는 벅찬 희열의 열린 세상이다. 그래서 영암은 달로 인하여 더 신비로운 바위[靈巖]이 되었고 월출산은 달이 돋는 월나산이었다가 달을 탄생하는 월생산이 되기도 한 것이다.

여기에서 백제인의 정감이 살아있는 이름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즉 백제 시대에 이 지방 사람들은 靈巖을 影巖이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다. 아무래도 풍수의 대가 도선 국사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에 풍수와 관련이 있는 靈巖으로 굳어졌겠지만 달이 뜨면 월출산의 그림자는 또 하나의 서정 세계를 열어 놓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백제인들은 그들의 정서를 반영한 影巖이라 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어느 기록에서도 그림자와 관련지은 影巖을 찾아볼 수 없다.

* 영암의 인물

신령한 바위의 기를 받고 사는 사람들, 그들 중에는 분명 시대를 초월하는 남다른 인물이 있을 것이다. 백두대간이 남쪽으로 힘차게 뻗어 내리다가 소백산에서 남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정읍과 장성 사이의 노령(蘆嶺)에서 다시 두 줄기로 갈라진다. 담양의 용추봉에서 발원한 영산강을 사이에 두고 동쪽의 순창 회문산, 광주 무등산, 영암 월출산, 해남 대둔산을 거쳐 제주도로 맥이 이어져 있고 서해안 쪽으로 영광 불갑산, 나주 금성산, 무안 승달산을 거쳐 목포 유달산으로 맥을 이었다. 산은 인물을 낳고 그 산의 기를 받고 태어난 인물은 한 시대를 풍미한다는 이치를 따지고 보면 영암에도 그럴만한 인물은 충분히 배출되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아스카 문화의 비조가 된 왕인 박사와 비보풍수의 비조 도선국사, 고려초기의 최지몽, 조선초기의 최덕지, 3당 시인으로 칭송받던 최경창, 최근세의 김준연 등 수없이 많은 인물이 배출되어 이 나라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최경창은 『파주』편에서 살펴보았기에 여기에서는 왕인박사를 집중적으로 조명해 보고 도선 국사와 연촌 최덕지의 생애도 간략히 살펴 본다.

1. 왕인 박사

(1) 왕인 박사와 영암

영암은 왕인 박사의 탄생지로 인식되어 군에서는 대대적인 왕인 문화재를 거행하며 국제적인 행사로 발돋움하는 시도를 하여 크게 성공한 축제로 각광받고 있다. 백리 벚꽃 길도 조성하여 관광객이 모여드는 봄으로부터 월출산을 찾는 등산객과 구림 마을과 영보 마을의 전통적인 취락구조를 찾는 답사객 등 수도권에서 먼 남도(南道)치고는 제법 사람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암이 많은 국민들로부터 각광을 받으면 받을수록 꼭 해결해야 한 문제가 있다. 왕인 박사와 도선 국사의 설화가 겹친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하고 왕인 박사의 출생지를 밝혀야 하는 문제다. 역사는 추론에 의해 묻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진실을 밝힐 수 있는 것은 밝혀야 한다. 분명하지 않은 것도 오랜 세월이 가면 그것이 진실인 양 호도(糊塗)돼버리기 쉽고 가담항설(街談巷說)도 세월 속에 묻혀 재미있게 각색되면 민중은 오히려 그것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왕인에 대해서 배운 것은 ‘백제인으로 천자문과 논어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미개한 일본을 깨우치고 유학을 가르쳐 아스카 문화의 비조가 되었다’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얻은 것은 무엇인가. 일본에 대한 우월감인가, 한민족으로서의 자부심인가? 왕인으로 하여금 우리 민족이 일본 사람보다 우수하다고 우쭐거리려면 그만큼 왕인 박사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왜냐 하면 일본인이 알고 있는 왕인 박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수준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일본은 내선일체(內鮮一體) 사상을 주입하여 조선의 항일의식을 잠재우려는 수단으로 왕인박사를 연구했고, 심지어 1932년에는 영산포의 일본계 사찰 본원사(本願寺) 주지로 있던 靑木惠昇이 왕인 박사의 동상 건립을 추진하면서 만든 문서에 왕인 박사의 업적과 출생지 등을 밝혀 놓을 만큼 열성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일본에 있는 왕인의 사당을 가보면 속이 상할 만큼 초라하다. 그들의 조상과 관계가 있는 신사는 그렇게 화려할 수 없고 내방객을 위한 도로도 잘 닦아 놓았는데 왕인 박사의 사당은 찾아가기조차 힘들다.

왕인 박사의 기록은 어디에 있을까? 삼국사기, 아니면 삼국유사? 아니다. 그 어느 역사책에도 왕인 박사의 기록은 없다. 이를 신채호 선생의 역사관에 대입해 보면 혹시 패자의 역사라서 의도적으로 기록에서 빠지지 않았나 하는 추론이 가능하다. 김부식의 장난이었는지, 아니면 승자 신라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배려였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백제 사람이었다는 것만은 확실한데 다른 기록은 없다.

우리나라 문헌에 나타난 왕인의 기록은 『해동역사(海東繹史)』에서 찾을 수 있다. 정조 때 한치윤(韓致奫1765-1814)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외국서적 550여종에서 자료를 뽑아 기전체(紀傳體)로 기록한 역사서다. 이 책 67권의 왕인 아직기 편에 아직기와 왕인의 관계 및 왕인의 업적이 나온다.

- 아직기가 일본으로 건너가 15대 應身天皇의 皇子 道稚郎子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천황이 아직기에게 백제에 더 훌륭한 학자가 없느냐고 질문해오자 아직기는 왕인을 추천하였다. 이에 왕인은 천자문과 논어를 가지고 일본에 건너가 皇子 道稚郎子의 스승이 되어 논어 효경 등을 가르쳤는데 이 후 일본에는 유학이 성행했다. 거기에 왕인은 난파진가(難波津歌)라는 와카(和歌)를 읊어 歌父로 일컬어졌고 사후에 書首等의 시조가 되었다.-

아쉽게도 한치윤은 일본의 역사서 『和漢三才圖會』의 내용을 인용했다고 밝혀 놓았다. 『화한삼재도회』는 『일본서기』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기 때문에 위 내용은 결국 일본서기의 내용을 옮긴 것이나 다름없다. 다만 『일본서기』에 없는 왕인의 가계를 밝혀 놓은 것과 내용을 조금 각색한 것이 다를 뿐이다. 왕인 박사가 도일한 후 해동역사가 나오기까지 무려 천여 년 동안 왕인은 우리에게 닫힌 역사였고 일본의 역사서를 통해서만 읽을 수 있는 전설 같은 이야기였다.

『일본서기』는 720년에 완성한 순한문의 편년체의 역사서다. 여기에는 백제와 관련된 기사가 많으나 신공황후(神功皇后)가 신라를 정복하였다는 터무니없는 기록이 있어 우리 사학계로부터 僞書라고 폄하받기도 한다. 더구나 연대가 백제의 역사와 약 120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진위가 의심스러운 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왕인 박사의 단서를 제공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이와 더불어 일본과 백제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책이 『일본서기』보다 8년 앞선 (712년) 『古事記』다. 나라를 세운 신의 이야기부터 스이코 천황[推古天皇]의 이야기까지 신화와 전설 등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3권으로 상권에는 신들의 이야기, 중권 하권에는 초대 진무천황[神武天皇]에서부터 제34대 스이코 천황(628년)까지의 계보(系譜)와 천황, 황태자들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자의 음과 훈을 딴 일본 고어와 한자를 혼용하였기 때문에 문장이 난해하다. 그러나 그 내용과 문자는 역사적 어문학적 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고고학이나 신화, 민속학 등의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일본 고대사와 고대문학 연구 및 고대 한일관계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쓰이는 문헌이다.(두산세계대백과)

고사기의 내용은 두산세계대백과사전을 인용하여 소개했는데 맨 마지막 부분이 눈에 띈다. 바로 한일 고대사 연구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다. 어찌 보면 우리의 『삼국유사』와 성격이 비슷한 책인데 그 속에 왕인 박사의 내력이 실려 있다. 다만 일본서기에는 직접 『王人』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비해 『고사기』에는 이직기를 『阿知吉師』 왕인을 『和邇吉師』로 표기하였지만 두 사람 모두 귀한 사람, 또는 큰 어른에게 사용하는『吉師』의 존칭이 붙어 있다.

『일본서기』의 『王人』과 『고사기』의 『和邇』를 우리는 “왕인”과 “화이”로 읽지만 일본인은 모두 “와니(わに)”로 읽는다. 그래서 모두 왕인이라 해석한다.

(2) 왕인 박사의 탄생지

일본 아스카 문화의 비조가 된 왕인, 그의 탄생지가 영암이라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사실인가. 우리의 역사서는 물론 일본의 역사서에도 왕인의 탄생지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물론 한치윤의 해동역사에도 없다. 지금도 학계에서는 그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연구를 계속하고 있지만 문헌적 자료가 없어 추론만 무성할 뿐이다.

왕인이 영암 구림에서 태어났다는 것을 처음 발표한 문서는 1920년대 李秉延이 편찬한『朝鮮寰與勝覽』이다. 그 후 1934년에 편찬된 『湖南誌』의 영암군 고적 편에서 다시 왕인이 영암의 구림에서 태어났다고 서술하였다. 그 당시는 일본인의 시각에서 그렇게 발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왕인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왕인을 부추겨 조선족의 구심체 역할을 하게 할 의도였다. 더구나 나주는 영산포에 큰 배가 드나들 수 있어 미곡을 일본으로 빼돌리는 데 적격이었다. 군산이 미곡 수탈의 현장이었다면 나주는 수탈과 회유의 현장이었던 셈이다. 그렇기에 일본 현지인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고 그들 중 지도층에 있던 사람은 일제의 속셈을 이루기에 좋은 구실을 찾아 왕인 박사를 이용한 것이다. 그것이 왕인 박사와 영암이 연관을 맺은 시작이었고 이를 발전시키려는 계획에 의해 1932년에는 왕인 박사의 동상 건립까지 추진하게 되었다.

영암에는 도선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전설이 있기에 왕인 박사와 오버랩 시키기에 적격이었다. 성천(聖泉)과 상대포와 돌정고개는 지정학적으로 이용하기에 용이했고 문수암은 문수재로, 도선 국사가 새겼을 것으로 추정하는 문수보살상은 왕인상으로, 기도처로 사용했을 굴자리는 책을 보관했다는 책굴로 변신하여 역사적 사실처럼 적용시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렇다면 왕인 박사는 일제에 의한 조작이었단 말인가?

우리의 행정이 중앙집권적일 때는 지방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지방문화가 그 어느 때보다 꽃을 피우려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과거 큰 인물이 잠시만 머물다 갔어도 『000유허지』라 하여 관광객을 유치할 만한 시설을 만들어 놓는데 하물며 왕인 박사와의 인연을 버릴 수 있을까. 그것은 또 그것대로 안 될 일이다. 더구나 왕인 박사의 탄생과 관련이 있는 그 어느 곳도 나타나지 않았고 영암 말고는 알려진 것도 없다.

늦은 일이지만 왕인 박사가 그렇게라도 영암과 관련을 맺어 후손에 의해 재탄생되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비록 일본 역사서에 의존하여 발굴했다 할지라도 우리 역사는 우리 것일 수밖에 없고 한 지역으로 묶어 그 출생과 생전의 업적을 추론해 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영암을 찾을 때면 반드시 왕인 박사의 책굴에 들어가 짧은 신문 한 구라도 읽어볼 일이고 고국을 떠나기 전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왕인의 모습을 연상하며 왕인상 앞에 서 보기도 할 일이다. 그래서 더 비약한다면 왕인 박사의 『와카』(홍윤기박사 발굴)에서 시작된 짧은 시『하이쿠』가 세계적인 시라고 칭찬받는 것을 생각하면서 그보다 더 훌륭한 우리의 시조 한 수라도 읊어볼 일이다. 아직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시조(時調)를.

일본에는 왕인 박사의 행적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왕인 박사가 하사받아 살던 오사카에는 아직도 “백제현”이라는 지명이 그대로 남아 있고 백제사, 백제 우체국, 백제역 등 백제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어 당시 백제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백제가, 아니 우리 조상이 자랑스러워지는 역사의 현장에 서면 왜 그렇게 우리에게는 역사적 진실이 소멸되어 있는지 작아지는 가슴을 움켜잡는다. 더구나 일본인들이 “백제(百濟)”를 “백제”라고 읽지 “쿠다라”라고 읽는 것을 만감이 교차한다. 굳이 그들의 발음대로 “하쿠사이”라 하지 않고 “쿠다라”라 읽는 것은 과거 백제가 문화를 전해줬기 때문에 “큰 나라, 학문을 가르쳐 준 스승의 나라”라는 감사의 뜻이 담긴 용어다. (우에다 마사키 박사) 그래서 영암을 답사할 때면 왕인 박사가 더 생각나고 문화적 우수성을 지키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된다.

2. 도선 국사

신비의 인물, 전설 같은 인물, 과연 실재했던 인물인지 궁금하게 하는 인물이 도선 국사(826-898)다. 그의 탄생을 봐도 박혁거세의 난생설화와 같은 신비감에 가려있다.

한 과년한 소녀가 성기동 계곡에서 빨래를 하다가 물에 떠내려 오는 오이를 주워 먹고 임신했다는 이야기나 애비 없이 태어난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산모퉁이에 버렸더니 비둘기들이 둘러싸고 키웠다는 이야기는 바로 한 인간에게 신성성을 부여하는 일종의 제의적 행위다. 견훤의 어머니가 지렁이와 관계하여 견훤을 낳았다는 이야기를 생각게 하는 예다. 견훤은 큰 왕국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용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면서 왕건을 위협할 만큼 한 세상을 풍미했으니 그에 맞는 예우로 지렁이와의 관계로 나타난 것이다.

도선 국사의 탄생 설화는 그의 출생을 신비롭게 하여 성모 마리아와 같은 신성성을 부여하며 아울러 도선의 비범함을 강조한 설화라 할 수 있다. 처녀가 오이를 먹었다는 것은 바로 남성과의 성관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사생아로 태어난 “도선”이라 하는 것보다 얼마나 문학적이고 신화적인가. 더구나 성기동 계곡에 가면 그 유적들이 증거물처럼 남아 있으니 도선의 위대함은 배가되는 것이다.

도선 국사는 우리나라 비보풍수(裨補風水)의 비조다. 그 비보풍수란 중국의 이론풍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명당의 요건을 갖춘 땅은 별로 없기 때문에 허한 부분을 보충하여 쓰면 된다는 논리다. 맞는 말이다. 사신사(四神砂)의 완벽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땅이라도 그 부족한 곳을 보완하여 사용하면 그곳이 바로 명당이라는 이론은 우리에게 푸근한 위로를 준다. 좋은 자리는 힘 있는 자들이 권력이나 금력을 동원하여 이미 다 차지해버렸으니 내 조상의 묘를 모신 자리는 별수 없이 보완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도선 국사가 무려 35년이나 주석했던 광양 백운산의 옥룡사 터도 주변에 동백나무를 많이 심어 비보했고 여주 신륵사도 전탑을 법당 앞에 세우지 않고 강가에 세워 비보풍수의 좋은 예를 보인다. 지면 관계상 도선 국사 이야기는 여주 신륵사 편에서 상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ㄴ 영암의 인물이라는 정도에서 소개를 마친다.

3. 연보정과 최덕지

최덕지(崔德之, 1384~1455)는 본관 전주, 호가 연촌(烟村), 존양(存養)으로 조선전기의 문인이자 학자다. 태종5년(1405년)에 문과에 급제한 후 한림원과 삼사의 요직을 두루 역임한 후 사관이 되어 활동하다가 감찰 등 삼사의 관직을 두로 역임하고 김제와 남원 등 여러 고을의 수령이 되어 다스렸다. 남원부사를 끝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나 영암의 영보촌으로 낙향하여 전주최씨 영암의 입향조가 되었다. 1450년에 문종이 최덕지를 불러 예문관 직제학을 제수했으나 다시 1년 만에 치사(致仕)하고 이곳에 내려와 존양루(存養樓)루에서 후학을 가르치다가 7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그가 직제학을 그만 두고 물러날 때는 성삼문, 김종서, 정인지, 신숙주 등 당대의 쟁쟁한 정치인들이 노량진 나루터까지 나와 전송했으며 성삼문은 이별의 시로 아쉬움을 나눴다. 존양루에 남아 있는 그 시는 그들의 친분을 엿보게 한다. 특히 문종이 하사한 연촌의 영정은 보물 58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는 조선 초기의 가장 오래된 영정으로서 당시의 복식과 의관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보물 1305호로 지정된 김완 장군 영정과 함께 이 고장의 인물을 연구하는 자료이기도 하다.

歸田非隱計 / 出處政如斯 / 漢主思疏廣 / 唐朝重孔揆

江山應有喜 / 魚鳥亦相知 / 終始能全義 /如公我所師

고향으로 가는 것이 은퇴가 아니며/물러날 때는 이와 같아야 함이라

옛 한나라 임금은 소광을 생각했고/당나라에서는 공규를 소중히 여겼네

강산에 응당 기쁨이 있으며/고기나 새도 서로 알고 있다네

끝까지 의를 지켜 왔으니/그대가 곧 나의 스승이 되리 - 성삼문의 시

이후 연촌의 영정은 내외손(內外孫)들이 선조11년(1578년)에 존양루에 봉안하였고 제사도 내외손들이 모두 모여 지냈다. 연촌을 구심점으로 혈연이 결속된 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러나 내외손들이 암께 모여 제사지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연촌과 더불어 거창신씨의 영암 입향조가 신후경(愼後庚) 때문이다. 신후경이 연촌의 사위이니 옹서간에 영암에 세거지를 정하여 각 성의 입향조가 된 셈이다. 연촌은 영암의 평양조씨 조안정(趙安鼎)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더구나 장모는 조정에서 정문을 내린 열녀로서 명문 가문이었다. 지방의 호족 평양조씨와 조정에서 높은 벼슬을 한 그 집안의 사위 전주 최씨. 그래서 최덕지는 영암에 뿌리내리는 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며 그를 따라 이곳에 정착한 신후경도 쉽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이들은 다시 장암의 남평문씨 등과도 인척이 되어 혈연을 넓혔다. 그래서 연촌의 제사는 이곳 유림들이 합동으로 지낸다.

여러 문중과 깊은 혈연관계가 있다 하여도 전주최씨는 특히 거창신씨와 남다른 관계를 유지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영보정이다. 영보정은 1987년에 전라남도기념물 제104호로 지정된 문화재로 정면 5칸, 측면 3칸에 단층 팔작지붕이다. 작은 건물인데도 네 귀퉁이의 추녀를 받치는 활주가 있어 안정감을 준다. 현판은 한석봉의 친필인데 형제봉의 나지막한 산기슭에 자리한 영보 마을에 세운 정자라서 영보정이라 했다. 연촌과 신후경이 함께 세운 이 영보정은 두 가문 화합의 상징이다. 지금의 건물은 퇴락했던 것을 연촌의 8세손 최정(崔珽)과 신후경의 6세손 신천익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건한 것이다. 영보정과 관련된 유물로는 전주최씨와 거창신씨가 중심이 되어 발간한 《영보정동계자료》 8책이 있다. 이는 조선 후기 영암지방 향토 사회의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다.

누각은 주로 공적인 기관에서 집무를 위해 지은 것이고 정자는 사대부들이 강학이나 후진 양성을 위해 산 좋고 물 맑은 곳에 지은 것이다. 그러나 영보정에 들어서면 그렇게 외경(外境)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차라리 정원에 산수를 끌어들인 느낌이다. 세월을 한 몸에 이고 있는 소나무와 작은 연못, 굳이 흐르는 물이 없어도 큰 바위와 산이 없어도 사대부가 학문을 연구하기에는 이만하면 족하다는 여유를 보인 공간이다.

영보정은 사적인 공간이었지만 공적인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이 남다르다. 일제 시대였던 1921에 이 정자에 영보학원을 설립하여 자라는 새싹들에게 항일정신을 심어 주고 구국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쳤다. 그 결과는 10년이 지난 1931년에 나타났다. 이곳에서 배운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영암 농민 운동을 펼친 것이다. 즉 1931년 5월 1일에 영보 형제봉에서 영암면을 비롯한 구림, 장암, 영보, 모산 등의 소작인 130여 명이 모여 만세를 부르고 일본인은 우리의 논과 밭은 내놓고 이 땅에서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친 소작쟁의 사건이다. 교육의 힘은 그렇게 위대하다. 민족정신을 교육한지 10여년 만에 이렇게 위대한 정신을 살릴 수 있다는 것은 영암사람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인간정신의 발로라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영암에는 구림마을에 회사정이 있다. 1646년 그림대동계의 집합 장소로 창건되었다가 1654년에 대규모로 중건하였다. 지금의 건물은 6.25때 불탄 것을 1985년에 중건한 것이라서 중후한 맛보다는 깔끔한 느낌이 드는 건물이다. 영보정이 문중의 손에 세운 정자라면 회사정은 공공의 필요에 의해 세운 공공의 장소라는 데 의의가 있다. 마을 한가운데로 흐르는 작은 하천 주변에 세월을 안고 서 있는 고송들이 회사정의 분위기를 살려준다.

구림은 영보와 함께 영암을 대표하는 고을로서 그 역사성이 짙다. 죽정서원, 죽림정, 간죽정 등이 제법 유장한 맛을 느끼게 하기도 하지만 구림도기 가마터는 이 고을이 범상한 곳이 아니었음을 알게 한다. 바로 도선 국사가 태어난 곳이다. 처녀의 몸으로 해산한 처자는 아이를 산모퉁이 대밭에 버렸는데 비둘기가 모여 키웠다는 전설로 인해 구림(鳩林)이라 한다. 그 곳에 왕인박사의 탄생설화까지 겹쳐 더욱 신성시 되는 곳이 바로 구림(鳩林)이다.

영암의 문화재

영암에는 국보가 둘, 보물이 여덟 개나 있다. 두 개의 중요 민속자료와 한 개의 천연기념물 이 있고 기타 여러 개의 도지정문화재와 지방 문화재가 있으며 민속자료와 기념물 등이 있다. 이들 국보와 보물은 대부분이 월출산이 품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강진 무위사의 국보까지 포함하면 국보와 보물을 품은 월출산은 오지랖이 더 넓어진다. 그 중에서 국보 두 점만 소개한다.

1. 국보 50호 도갑사 해탈문

도갑사 하면 먼저 도선 국사가 떠오른다. 이는 신라 말기에 도선 국사가 창건한 절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같은 도(道)자 돌림이라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된다. 안내하는 답사객들에 물어봐도 같은 대답이다. 이상하게도 도선 국사가 세운 절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는 누구에게나 공통된 생각인 모양이다.

도갑사 자리에는 원래 문수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신라 말에 도선 국사가 절터에 도갑사를 창건하였다. 해탈(解脫)은 사람이 타고난 근본적인 아집(我執)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인도 사상이다. 불교는 이것을 종교와 인생의 궁극 목적으로 생각하여 탐욕, 분노, 어리석음 등의 번뇌에서 해방이 곧 구원이라고 하여 사찰에 해탈문을 세운다. 이는 불이문(不二門)의 별칭이기도 하다.

해탈문은 1960년 중수공사 때에 종도리 장혀에 신미(信眉), 수미(守眉) 두 스님의 발원으로 성종 4년(1473)에 입주(立柱)를 하였다는 상량문의 기록이 발견되어 그 확실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 이 건물은 주심포계의 맞배집의 양식으로 간결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을 준다. 이런 계열의 다른 건물에서 볼 수 없는 특징이라면 주심에 소로를 놓지 않고 공포재를 결구시킨 점이다. 이로 보아 주심포계 건물이 다포계 건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공법이 사용되었다. 즉 주심포식 건물에 다포식 공포를 결구한 건축술의 변용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문화사적 가치가와 건축사적 가치가 인정되어 국보 50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금강역사상을 봉안하여 사찰의 정문역할을 한다. 건물에 들어설 때는 월출산도갑사(月出山道岬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반대편에는 해탈문(解脫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물 164호의 청평사 회전문에 비교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도갑사 영내에는 지방유형문화재인 대웅보전(大雄寶殿)과 보물 89호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 보물 1395호인 도선수미비, 그리고 팔각석등대석(八角石燈臺石)와 3층석탑, 5층석탑,석제(石製) 구유 등이 있고 도선 및 수미대사의 영정(影幀)이 봉안되어 있다.

2. 국보 144호 월출산 마애여래 좌상

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오백여 미터 떨어진 암벽에 깊이 감실을 내고 그 안에 몸길이 6m, 어깨폭 2..6m,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1972년에 국보 제144호로 지정되어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은 이불상은 전체 높이가 무려 8.6m나 된다. 광배(光背)까지 잘 갖춘 이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높이 86㎝의 예불하는 동자상을 조각하여 사뭇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육계처럼 보이는 머리와

목에 삼도까지 새겼고 옷 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하여 신체의 탄력과 굴곡을 느낄 수 있다. 어깨가 떡 벌어져 육중한 느낌을 주는 한 편 허리가 잘록하여 신체의 비례를 맞추려 애쓴 흔적이 보이나 팔이 좀 가는 것이 흠이다. 특히 색다른 것은 옷주름을 대좌까지 조각하여 다른 불상에서는 볼 수없는 푸근함이다.

손은 흔히 볼 수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렸다.

광배(光背)는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을 따로 구분하여 조각하였고 그 안에 연하문과 당초문을 새겨 불꽃이 이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장중하고 안정적인 느낌,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 등이 돋보이나 신체에 비하여 큰 얼굴과 경직된 표정, 비례에 어긋나는 가는 팔, 그리고 고려 시대에 나타나는 거불(巨佛) 양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보인다.

영암은 벚꽃이 필 때면 가히 환상적인 꽃길을 열어 놓는다. 관광 위주로 영암을 찾는다면 봄과 가을이 재격이겠지만 문화재 답사를 주목적으로 한다면 아무래도 겨울이 제 맛이다. 꾸밈없이 보여주는 진솔한 맛과 찬바람 맞으며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그릇, 문화를 가꿔온 영암 사람들의 생활모습까지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암에서는 월출산에 올라 마애여래 좌상도 만나보고 천황봉에서 백제인의 심정이 되어 나지막히 열려 있는 영암 들녘을 감상해야 한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아침 이슬 내린 영암 덕진의 녹차 밭도 거닐어 보고 가을이면 갈낙탕을 봄이면 짱뚱어탕의 진미도 맛보고 영암의 특산물인 세발낙지와 무화과 맛도 충분히 음미해야 영암을 답사했다고 할 수 있다. 영보 마을의 대나무 숲길에서 인간다운 삶을 부르짖은 민중들의 숨결을 느끼면 더없이 귀중한 여행이 되리라 생각하기에 독자 여러분께 영암 답사를 권한다.

참고문헌

- 단행본

1. 이병도역주『삼국사기』 1989

2. 김희영 『이야기일본사』1987

3.홍윤기 (1999) 『일본 문화사』서문당

4. 홍윤기(2002)『일본 속의 한국 문화유적을 찾아서』서문당

5. 홍윤기 (2000) 『일본천황은 한국인이다』효형출판

6. 김현구(2006)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창비

7. 『답사여행의 길잡이 5. 전남』 -돌베개

8. 『한국의 발견. 전라남도』 - 뿌리 깊은 나무

-논문

1. 문안식(조선대 강사)

「百濟의 對倭交涉과 靈岩 鳩林 上臺浦의 位相 」

-王仁博士의 구림 出生說에 대한 檢討를 중심으로-

2. 김병인(전남대학교 호남문화연구소 연구원)王仁의

「지역 영웅화' 과정에 대한 문헌사적 검토」

3. 정근식

「한국전쟁경험과 공동체적 기억」

- 영암 구림권을 중심으로

4. 박찬승(충남대 국사학과)

「20세기 전반 동성마을 영보의 정치 사회적 동향 」

5. 김창민 (전주대 교양학부)

「영보의 친족 조직과 친족집단간의 관계」

- 기타

* 영안군청 문화관광과 및 영암 문화원 홈페이지

[박병란]

영암 월출산 산행을 하던날이 떠오르네요.....새벽에 출발해 산행하고 다시 돌아왔던 제가 산행을 많이 하던 그때가....감사해요 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