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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에 난 구멍 타살흔적 여부 관심경찰, "7대의혹 중점적으로 수사할 것" | |||||||||||||||||||||||||||||||||||||||||||||||||||||||||||||||||||||||||||||||||||||||||||||||||||||||||||||||||||||||||||||||||||||||||||||||||||||||||||||||||||||||||
[오마이뉴스 2002-09-26 07:20] | |||||||||||||||||||||||||||||||||||||||||||||||||||||||||||||||||||||||||||||||||||||||||||||||||||||||||||||||||||||||||||||||||||||||||||||||||||||||||||||||||||||||||
유골 발견 4일째인 29일,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맡고 있는 수사본부(본부장 조선호 대구시경 차장)은 향후 수사방향과 관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인규명에 나설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고 "앞으로 7대 의혹을 중점적으로 수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이 발표한 7대 의혹은 다음과 같다.
1)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음에도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2) 아이들이 지형에 익숙하고 다섯명이나 되는 인원이 왜 길을 잃어버렸나.
3) 유골 발견 현장까지 아이들이 온 이유는 무엇인가.
4) 600m 거리에 고속도로가 있어 밤에도 불빛을 감지할 수 있었다는 주장.
5) 마지막 발굴된 유골(김영규 추정)에서 나타난 옷소매 등이 묶여진 이유는.
6) 발견 현장 주변으로 탄두 등이 다량 발견돼 유탄에 맞았을 가능성은 없나.
7) 왜 무거운 돌 밑에 유골 등이 깔려 있었나.
한편, 경찰은 이날 지금까지 의문을 낳고 있던 현장 발견 당시 사진을 언론과 유족에 공개했다.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 직원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진에는 유골 한점, 의류로 보이는 물체, 그리고 바로 옆과 위쪽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네모난 돌 등이 찍혀 있었다.
또 이날 오후 2시 30분에는 아시안게임 참석차 부산에 내려가던 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과 조순용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이 발굴 현장을 찾았다. 이 장관 등은 이날 현장을 찾기에 앞서 수사본부(성서파출소)에 들러 수사 진행상황을 들었다.
이날 이 장관 등이 현장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족 대표인 김현도(김영규 아버지)씨가 "제가 말씀한 마디 올리겠다"고 운을 뗀 뒤 "처음에는 가출로 몰아 수색을 제대로 안하더니 이제는 자연사로 몰아붙이고 있다"면서 지금까지 수사과정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이어 "사인규명을 위해 열심히 애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장관 일행은 "사인규명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바쁜 일정 탓인지 만남을 가진지 약 3분만에 자리를 뜨고 말았다.
한편 이날 현장 발굴팀은 탄두 20여점과 함께 발굴 지점에서 근접한 거리에 비닐 재질의 빵봉투(콘티빵-단팥빵/ 30원 표시) 한 점을 발견해 정밀 감식에 들어갔다.
발굴 두개골 일부 상처 의심부분 보여 91년 수색미비 이어 ‘자연사 추정' 구설수 - 28일 발굴 중 현장 주변 54개 탄두 등 추가 발견
50평 남짓한 실습실 중앙으로 5개의 테이블에는 각 소년들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과 옷 등 유품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대부분의 유골 및 유품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옷가지의 비닐 재질의 부분은 전반적으로 벗겨져 있거나 색이 바래있어 11년 세월의 깊이를 보여줬다.
법의학팀 한 관계자에 따르면 “지금까지 중요한 단서가 될만한 유골 등은 거의 발굴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날 실습실을 찾은 유족들은 진열된 유골을 보자 가슴이 북받치는 듯 눈물을 흘려 아직도 가시지 않는 아픔을 내비쳤다. 한 유족은 알 수 없는 말을 되풀이하며 한숨만 내쉬는가 하면, 또 다른 유족은 붉은 줄무늬 T셔츠를 보자 “이건 아들 옷이 맞다”고 말하기도 했다.
법의학팀 채종민 교수는 “발굴시 옷에 붙어 있던 유골을 분리하고, 착용했던 옷과 뼈의 크기 등 특징적인 것을 나눠 따로 정리해 둔 것”이라면서 “육안으로 살펴봤을 때는 아직까지 유골 등에서 특별한 상처 흔적이 발견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타살여부, 사인규명 가능성에 대해서는 “검사중”, “알 수 없다”고 간단히 답했다.
발굴된 5점의 두개골 중 한 개가 좌우 양측(약 1cm, 4cm정도)에 구멍이 나 있었던 것. 이에 대해 법의학팀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총알을 맞은 두개골의 관통 부위에서 골절현상이 나타나고 탄알이 지나간 안쪽과 바깥쪽의 모양이 틀려지기 때문에 이 두개골에 나타난 구멍은 탄알에 의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왜 구멍이 생긴 것인지에 대해선 즉답을 피했다.
또 같은 두개골에서 좌측상단 부분에서 발견된 약 2cm크기의 움푹 파이고 갈라진 흔적도 발견이 됐다.
이에 앞서 발굴 첫날 발견된 4개의 두개골 중 하나는 갈라지거나 떨어져나간 흔적도 있었다. 이에 대해 법의학팀은 "두개골도 관절로 연결돼 있는데 세월이 지남에 따라 관절이 약해지면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이 두개골의 훼손된 상처 흔적이 사망 전에 입은 상처로 밝혀질 경우 타살 증명에 결정적인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처로 의심되는 부분에 대해 법의학팀 관계자는 "(돌 등 부딪혀) 유골이 훼손됐을 수도 있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어 정밀 검사를 진행해 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의학팀은 법치 의학적 검사 등을 완료한 상태로 현재는 사체가 옮겨졌을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곤충학 검사를 진행하고 있고, 방사선 촬영을 추가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의학팀은 최종 신원확인을 위한 종합판정이 내려지기 전까지는 약 3-4주가 더 소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 91년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 직후 수색작업 미비 등 당시 경찰의 수사에 문제점이 지적된 가운데 이번에는 유골 발굴 당시 자연사로 추정한 경찰 당국의 ‘섣부른’ 발표가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지난 26일 유골이 처음 발견된 직후부터 다음날 2차 발굴이 있을 때까지 경찰은 ‘저체온’ 현상에 의한 자연사에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이는 1차 발굴이 끝난 달서경찰서에서 작성한 수사상황 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이 보고서에서 경찰은 “실종 당시 두 끼를 거른 상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비를 피하기 위해 유골이 발견된 지점에 모여 있다, 기온이 급히 떨어지므로 저체온 현상으로 사망 또는 암벽이 무너져 매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물론 당시 경찰은 ‘단정적인’ 언급은 피하고 “국과수 등의 합동 감식이 있어야 정확한 사인이 판단될 것”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하지만 유골의 발굴이 모두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내린 사건추정이 ‘화근’이었다. 다음날 유족들은 “경찰이 사건 수사를 빨리 매듭짓기 위해 자연사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발끈했다.
결국 장기 미제사건에 대한 해결에 급급한 나머지 자연사로 결론지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야했다. 유족들은 “최초 발견자가 유골이 큰 돌에 눌려져 있었다고 증언하고, 발견 지점에 대해 과거에 유족들이 찾아본 적이 있었던 점 등 의혹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면서 “그런데도 경찰이 저체온으로 인한 자연사로 추정하고 언론에 흘리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자연사 추정이 유족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데다, 2차 유골 발굴 과정에서 실종자의 옷이 묶여진 채 발견되고 탄두 · 탄환이 다량 발견되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사인규명에 나설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28일 대구지방경찰청 조두원 수사과장은 “이번 사건이 국민적 관심사이기 때문에 11년 전 수사기록을 면밀히 재검토하고, 다양한 가정을 두고 전문가들의 세밀한 판단을 바탕으로 사인 규명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조 과장은 “당시 제보 중 허위 제보인 부분도 있고, 애매한 부분도 많다”면서 “허위라는게 확실치 않으면 면밀히 재수사 할 것”이라고 밝혀 경찰의 전면적인 재수사 의지가 어떻게 구체화될지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10신:28일 오후 1시 30분> 와룡산 '개구리소년' 3일째...추가 유골 발굴 없어 감식팀, 유골 X선검사 마쳐...조만간 결과 발표
개구리소년들의 유골, 유품 발굴작업이 3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경찰은 28일도 현장에서 발굴작업에 나섰다. 이날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반 관계자 5명은 28일 오전 9시 30분경부터 현장에서 추가 발굴작업을 펼쳤다.
이날 경찰은 실종된 어린이 중 한 명의 상의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유족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추가 발굴에 나섰으나 이날 정오 현재까지 별다른 수확은 거두지 못했다.
경찰은 또 지난 27일 유골이 발견된 현장 인근에서 탄환이 무더기로 발견됨에 따라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또다른 탄알이 묻혀있는지 여부도 조사했으나 추가로 탄환을 발굴하지는 못했다.
이날 발굴 현장에는 대구경찰청 관계자를 비롯해 이승재 경찰청 수사국장이 서울서 내려와 참석했으며, 취재진과 동네 주민 등이 발굴작업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 경북대 법의학팀은 이날 현장에서 발굴된 소년들의 유골에 대한 X선 검사를 마쳤다. 법의학팀은 회의를 거쳐 조만간 감정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한편 수사본부는 오늘 오후 4시 브리핑을 갖고 그동안 발굴작업과 향후 수사방향에 대해 설명할 예정이다.
<9신:28일 오전 11시 20분> 경찰, 개구리소년 수사본부 확대 개편 50사단 "이번 사건은 군과 무관" 해명
와룡산에서 발굴된 유골이 지난 91년 실종된 개구리소년들의 유골이라고 잠정 결론내린 경찰은 각 유골의 신원규명 작업과 함께 이들의 정확한 사망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수사본부를 확대 개편, 원점에서 다시 수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대구지방경찰청은 28일 조선호 차장을 수사본부장으로 새로 수사본부를 꾸렸다. 수사인력도 기존 16명에서 43명으로 늘리고 유골발견 현장 부근인 성서파출소에 수사본부를 차리는 등 본격적인 사인규명 작업에 착수했다.
경찰은 지난 91년 '개구리소년' 5명이 실종된 이후부터 그간 축적해 온 각종 수사자료와 현장감식 결과 등을 토대로 이들의 사인 규명작업에 수사력을 모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찰은 유골발굴 과정에서 탄두와 실탄 등이 무더기 발견된데다 어제 옷소매와 바지에 묶인 흔적이 있는 점을 중시, 이들의 타살가능성에 대해서도 집중 수사할 방침이다.
이번 경찰의 수사팀 확대개편은 소년들의 사인을 둘러싸고 타살 의혹들이 곳곳에서 불거진데다 유족들의 강한 반발 때문에 여론에 밀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 당초 경찰의 '자연사' 추정은 설득력이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개구리소년들의 유골 발굴현장에서 다량 발견된 탄두, 탄환 등으로 인근 군부대의 사격장이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해당 관계 군당국이 해명에 나섰다.
과거 유골 발굴 현장 인근에 자리하고 있던 군부대인 육군 제50보병사단은 27일 의혹이 불거지자 보도자료를 각 언론사에 배포·해명하는 등 공식입장을 밝혔다.
50사단은 "(유골발견 지점은 당시) 사격장에서 250m 정도 이격된 거리로 사격방향에서는 시계방향으로 45도(동쪽, 2-3시 방향) 정도 빗겨간 장소"라고 설명했다. 또 "오발일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사격장과 발견지점에는 당시 약 150m 높이 능선이 가로막혀 있어 유탄에 맞을 가능성은 없다"고 반박했다.
이외에도 바위나 콘크리트 구조물에 맞은 유탄의 경우 탄두형태가 변형된다는 점, 사건 당일인 91년 3월 26일은 임시공휴일(지방선거)로 사격을 실시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을 들어 유골 발굴 현장에서 발견된 탄두 등과 군은 관계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50사단 공보관계자는 "사격 상황이 기록된 부대일지가 보존기한 5년이기 때문에 정확한 근거를 공개하기는 어렵다"면서 "당시 근무했던 이들의 증언과 임시공휴일이었다는 것을 본다면 사격은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 관계자는 "유탄으로 인해 사망했다 하더라도 5명이 어떻게 한꺼번에 죽을 수 있는냐"고 주장하고 "탄두 등이 발견됐다는 이유만으로 언론이 군부대를 이번 사건과 연관시키는 것은 억측"이라고 말했다.
50사단은 지난 94년 대구 북구 학정동으로 사격장 등 군부대를 이전한 상태이다. 91년 당시 50사단은 유골 발굴 현장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반자동화, 자동화, 사거리 20m의 영점 사격장을 운영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50사단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문은 아직 남아있다. 특히 50사단이 운용하고 있던 사격장에서 주한미군들이 사격 연습을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공휴일도 사격이 없었다"는 단정은 어려워 보인다.
또 군 사격장 인근에서 다량의 탄두와 탄환 등이 발견됐고, 유골 발굴 지점과 그리고 약 5m, 10m 거리에 떨어진 곳에 퍼져 있었다. 따라서 아이들이 소지한 것으로 추정해 "군은 전혀 무관하다"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8신:27일 오후 8시 30분> 경찰 "발굴된 유골은 개구리소년들 것" 잠정 결론 자연사-타살 여부 놓고 유족-경찰간 논쟁 이어질 듯
대구 달서구 와룡산 속칭 세방골에서 발견된 유골들에 대해 경찰이 '개구리 소년'들의 유골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수사본부가 마련된 대구 달서경찰서의 김용판 서장은 "이틀동안 유골을 발굴한 결과 수습된 두개골의 갯수, 신발 등 유품을 통해 확인했다"고 밝혔다.
김 서장은 또 "개구리소년들의 가족이 직접 유품을 소년들의 것으로 확인했으며, 특별한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골 정밀감식에 참가한 경북대 법의학교실 곽정식 교수도 "유족들이 유골을 실종자들의 것으로 확인했기 때문에 이후에는 개별적인 신원파악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11년간 미제사건으로 남아온 이른바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은 당사자들의 유골, 유품이 발굴됨에 따라 생사여부를 둘러싼 문제는 일단 막을 내리게 됐다.
그러나 '개구리 소년'들이 어떤 경위로 사망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아 또다른 숙제로 남게 됐다. 경찰은 이들의 죽음을 '자연사'로 추정하는 한편 유족들은 여러가지 정황을 들어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유골발굴 인근에서 대량의 탄환, 탄두가 발견된 것은 이 일대가 과거 군부대 사격장이었다는 점에서 일면 수긍이 가는 점도 없지 않다. 그러나 현장에서 양팔 소매가 뒤로 묶인 체육복이 발견된 점 등은 타살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따라서 향후 경찰의 수사는 이 점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7신 대체:27일 오후 5시> 양팔 소매 뒤로 묶인 체육복 발굴돼 '주목' 주변 지역에서 다량의 탄두·탄환 발견
점심식사 후 재개된 대구 와룡산 현지 유골 발굴작업이 오후 4시 40분께 잠시 중단됐다. 발굴작업 도중 양팔 소매가 뒤로 묶인 기이한 형태의 체육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상의 체육복의 양팔을 빼고 머리 위로 옷을 끌어올려 머리 부분에서 뒤로 묶은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26일부터 현재까지 유골 발굴작업을 진행한 결과 어제 두개골 4개(부분적으로 떨어져 나간 두개골 1개)에 이어 오늘 두개골 1개가 추가로 발견됐다.
한편 '개구리 소년' 추정 유골 발굴 현장에서 탄두와 탄환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된 후 발굴 현장에서 다소 떨어진 지역에서 탄두가 다수 발견됐다.
경찰이 금속 탐지기를 동원해 발굴 현장 주변으로 수색한 결과 두 세 군데의 지점에서 다양한 종류의 탄두 10여 개가 추가로 발견됐다.
주민들은 유골이 발견된 지점 부근에 군부대의 사격장이 있었다고 증언한 적이 있다. 오늘 추가로 발견된 다량의 탄두, 탄환들은 사격장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개구리소년' 5명이 실종된 다음해인 92년 당시 인근 군부대 신병교육대에서 훈련을 받은 한 예비역 병장(회사원, 32)은 "당시 미군들도 와룡산 훈련장에 와서 더러 사격을 하고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탄두' 이어 '탄환' 발견돼...타살 가능성 제기 유족들, 경찰의 '자연사' 추정에 거칠게 항의해
개구리 소년들로 추정되는 유골의 정밀감식 현장에서 탄두로 추정되는 쇳조각이 발견된 데 이어 오후 1시 40분경에는 현장 인근에서 '탄환'으로 보이는 물체가 발견됐다.
길이 4cm 가량의 물체는 원통형 모양을 띠고 있으며 '탄두추정 물체'와 달리 매우 누렇게 녹슬어 있는 상태이다. 탄두에 이어 탄환으로 추정 물체가 발견되자, 오늘 오전 타살을 강력히 주장해오던 개구리 소년들의 가족들이 '자연사’에 비중을 두던 경찰에 대해 더욱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오후 2시 30분 현재 대구 와룡산 유골 발굴 현장에 투입된 국과수 관계자 등이 점심식사를 위해 산을 내려가 현장에 대한 정밀감식도 잠시 숨을 고르게 됐다. 개구리 소년들의 가족들 역시 산을 내려와 인근 식당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오늘 추가로 발견된 신발 2점과 어제 발견된 신발 8점, 총 5켤레의 신발이 발굴돼 실종자의 수와 동일하다는 점이다. 또 그 어린이용 운동화 형태와 색깔이 개구리 소년들과 일치해 심증을 굳히고 있다.
또 박찬인(당시 성서초등학교 3학년) 군이 실종당시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상인초등학교’(박 군은 성서초등 이전에 상인초등학교를 다니다 당시 전학을 온 상태) 체육복이 유품 중 발견돼 김군의 가족은 나머지 유품이 발견되길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신원확인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다. 반면 사인을 둘러싼 경찰과 가족들의 이견차로 양측간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일부 유족들은 유골이 발견된 후 경찰이 ‘자연사’로 단정하는 듯 보인다면 반발하고 있었다. 특히 이날 현장에서 탄두와 탄환 추정 물체가 발견됨에 따라 가족들의 ‘타살’에 대한 믿음은 깊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자연사’에만 무게를 둔다는 것이 가족들의 불만이다. 박찬인군의 어머니 김임자(41)씨는 “탄두와 탄피가 동시에 나왔는데도 경찰 관계자로 보이는 이가 말하는 것을 들으니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지닌 채 죽었을 수도 있지 않냐’는 말을 하고 있다”면서 “만약 자신들의 자식이라면 쉽게 그런 말이 날이 나올 수 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편, 이날 정밀감식은 국과수 박희경 법의학과 실장, 경북대 채종민 법의학교실 교수 등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며, 1차 신원조회 결과는 내일(28일) 오후에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박찬인군의 어머니 김임자씨와의 인터뷰 요지.
“탄두와 탄피가 동시에 나왔는데도 경찰 관계자로 보이는 이가 말하는 것을 들으니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지닌 채 죽었을 수도 있지 않냐’는 말을 하고 있다. 만약 자기 자식이라면 쉽게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나.”
- 아이들이 자주 가지고 놀았을 수 있지 않나.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 평상시에 동네 아이들이 탄두, 탄환 등을 가지고 논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나. “보지도 못하고 들은 적도 없다.”
- 발견된 유골이 아들의 것으로 보이나. “TV를 통해서 어제 발견된 ‘상인(초등학교)’가 찍힌 체육복을 봤다. 아직 직접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찬인이의 옷인 것 같았다. 지금은 찬인이가 체육복 겉에 입었던 청잠바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다.”
- 경찰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경찰 분들도 수고를 많이 한다. 하지만 서로 솔직하게 대해 줬으면 좋겠다.”
<5신 대체:27일 오후 12시54분> '탄두' 추정 물질 검출.... 타살 가능성 제기
11년 전 실종된 '개구리 소년들'로 추정되는 유해 발굴 현장에서 탄두로 추정되는 물질이 검출돼 소년들의 타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7일 대구 와룡산 셋방골에서 현장 검식을 진행중인 국과수와 경찰은 발굴작업 중 12시32분경 유골들 사이에서 탄두로 보이는 쇳조각을 발견했다. 길이 1.5cm, 직경 6-7mm의 쇳조각은 은색을 띠고 있다.
아직 경찰의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은 가운데, 현장에 동행한 기자들과 유족들은 이 쇳조각을 놓고 "탄두가 아니냐?"는 논란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이 쇳조각이 설사 탄두로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발굴 지역이 과거에 예비군 훈련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무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인근의 한 주민은 "유골이 발굴된 현장 뒷편 산등성이 너머에 5, 6년 전까지 50사단 M1 사격장과 권총 사격장이 있었다"고 말했다.
국과수는 이날 오전 10시40분부터 정밀감식을 진행하고 있는데, 총 5켤레의 신발을 발굴해 유해들이 사라진 5명의 개구리 소년일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4신:9월27일 오전 9시 40분> 가족들 오열, 경찰·언론의 '자연사' 추정에 불신 표출
침울한 표정으로 현장을 찾고있는 가족들은 경찰과 언론이 '자연사'로 몰아가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특히 김영규군의 아버지 김현도(56)씨는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언론에서 자연사로 몰아가고 있는데 기가 찰 뿐이다"라면서 "더 이상 기자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김정식군의 작은아버지 김질규(45)씨도 "밝히려면 제대로 밝혀야 한다"면서 "아이들이 자주 놀러오던 산에서 어떻게 길을 잃어버릴 수 있겠느냐"면서 경찰의 자연사 추정을 일축했다.
김씨는 또 "어제 유골 발견 시각보다 4시간이 넘어선 3시 이후에야 통보를 받고 현장에 올 수 있었다"면서 "처음에는 유품을 보여주는 것을 꺼려하다 마지못해 정리된 유품만 보여주었다"며 의아해 했다.
개구리 소년들의 어머니들은 한곳에 모여 부둥켜안은 채 오열하면서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철원군의 어머니 장명자(41)씨는 눈물을 글썽이며 "밤새도록 잠을 못 잤다"면서 "기가 차고 살이 떨려서 참지 못했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오전 10시부터 유골발견 현장에서는 국과수 관계자 1명, 경북대 법의학팀 교수 2명과 유족들이 참가한 가운데 정밀감식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ADTOP2@ <3신:27일 오전 8시>국과수, 유골 발견 현장 감식
경찰이 현장 조사 이틀째인 오늘, 중점적으로 다룰 부분은 발견된 유골들이 개구리 소년들의 것과 같은지 즉 동일성 여부이다. 이미 발견 당일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품들에 대해 일부 실종자 가족들에게 보여 확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들 사이에서도 다소 이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정확한 신원 확인을 위해서는 DNA 조사 등을 위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DNA 조사의 경우 늦게는 3주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만약 유족들의 확인이 어려울 경우 신원 확인에는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다.
특히 이날 현장 조사는 이외에 발견된 유골들의 사망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에도 집중한다. 현재까지 개구리 소년들에 대한 수사 방향은 ▲가출 ▲타살 후 암매장 ▲사고사 등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따라서 동일성 여부를 떠나 타살과 사고사 등에 대한 판단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자료수집도 병행하게 된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유골만 남은 상태로, 타살의 경우는 유골의 훼손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시 교살과 독극물에 의한 살인 등의 사인규명에는 어려운 점도 있다.
<2신:9월26일 밤 11시> 개구리 소년 추정 유골 발견
26일 밤 11시 현재 '개구리 소년'들로 보이는 유골이 무더기로 발견된 현장에는 취재진들이 거의 빠져나가 정적만이 감돌고 있다. 단지 10여 명의 경찰들이 현장 주변에서 발전기를 가동시켜 불을 켠 채 유골과 유품 등 현장 상태를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경찰은 이날 유골 발견 10시간 후인 오후 9시 30분 경 임시 수사본부가 마련된 대구 용산파출소에서 관할 경찰서인 달서경찰서장이 주재하는 가운데 향후 수사계획 등에 대해 논의했다.
현재까지 경찰은 발견된 유골과 유품 등으로 봤을 때 발견된 유골이 개구리 소년들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경찰은 발견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길을 잃어 헤매다 추운 날씨에 '저체온'현상으로 사망한 것에 비중을 두고 있다.
경찰 관계자들은 "실종 당시 두끼를 거른 상태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당일 비가 오자 비를 피하기 위해 유골이 발견된 현장에 쪼그려 앉아 있다 변을 당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또 변을 당한 후 마사토 등 흙과 암벽이 무너지면서 깔렸을 것이라는 추정들이 나오고 있다.
반면 경찰은 타살 가능성은 극히 미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달서경찰서 김용판 서장은 "상식적으로 봤을 때 타살 흔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고 말해 타살 가능성이 희박함을 내비쳤다.
하지만 경찰은 '단정적인' 언급은 자제하고 있다. 일단 서울에서 급파될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의 정밀감식 결과가 나온 이후에야 가능하다는 것. 따라서 27일 오후 늦게나 되어서야 발견된 유골들과 소년들이 일치한지 등 '동일성 여부'와 사망 원인들의 그나마 구체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골이 발견되고 사태가 급진전을 보이자, 개구리 소년들의 가족 반응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가족들은 유골 발견 소식이 전해지자 개별적으로 현장을 찾아 일부 유골과 유품들을 확인하기도 했다. 당시 현장을 찾은 가족들의 반응은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유품 확인결과도 다소 이견이 나오고 있다.
한편 현장에 대한 정밀 감식은 27일 오전 9시부터 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과 해당 경찰서 관계자들이 합동으로 벌일 계획이다.
뒤늦은 11년만의 추정 유골 발견,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골 발견과 관련된 각종 의문점들도 쏟아지고 있다.
특히 연인원 32만명(산악수색 7만명)이 동원돼 대규모 수사를 벌였음에도 찾지 못하다, 실종 11년이 지난 지금에야 추정 유골이 발견됐냐는 것이다. 91년 실종 직후 경찰은 '가출'로 수사방향을 모으다 실종된 지 6개월 후부터 와룡산 일대에 대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여나간 바가 있다.
또 수색 집중 지역과는 다소 거리가 멀어 경찰의 관심에서 배제된 지역이었다는 점도 원인으로 보인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수색 집중지역은 최종 목격자의 증언에 따라 불미골 입구를 중심으로 한 지역으로 현장과는 약 4km정도 떨어진 지역이었다는 것. 따라서 산등선을 경계로 와룡산 정상 쪽으로 집중했던 수색에서 그 반대편인 유골 발굴 현장은 수색이 소홀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90년대 후반 용산지구 개발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유골 발견 현장이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싸여 있어 외부인의 발걸음이 거의 없었던 지역이라는 점도 유골 발견이 어려웠을 가능성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또 발견 현장 주변으로 상수리, 아카시아 등 수목이 울창하게 자라 접근이 용이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장기 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이 추정 유골의 발견으로 확인된다면, 당시 경찰의 수사 허점 여부도 여론의 도마에 오를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신:26일 오후 7시>개구리소년들 추정 유골 발견
현장에서 확인된 유골은 4구 가량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인근에 신발 8점과 옷가지, 유품으로 보이는 시계 등이 모여 있는 것으로 보아 다른 곳으로 유골 일부가 흩어졌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유골과 유품들은 작은 골짜기에서 10㎝, 더 깊게는 40cm 깊이로 묻혀 있었으며, 일부는 노출돼 있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유골, 유품들이 한군데에 모여 있었으며, 최근 폭우로 인해 일부가 노출된 것으로 생각된다"면서 집단으로 암매장 당했거나, 추위를 견디지 못해 모여 앉아 있다가 동사했을 가능성을 동시에 수사하고 있다.
오후 6시30분 현재 유골들을 대부분 수습한 상태이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관계자들이 내일 오전 본격적인 현장 정밀감식과 추가 발굴에 들어갈 예정이다. 또 인근 용산파출소에 사건 전담 수사본부가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갔다.
한편 유골발견 현장에는 50여명의 기자들이 모여들어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한때 방송사 헬기까지 등장하는 등 취재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개구리소년 5명은 지난 91년 3월 26일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성서초등학교에 다니던 우철원(당시 13세.5년), 조호연(12세.5년), 김영규(11세.4년), 박찬인(10세.3년), 김종식(9세.3년)군 등으로 인근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간 뒤 지금까지 11년 동안 실종됐었다.
이승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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