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했던가. 연일 찜통더위가 계속되던 날, 날 잡아 창고 정리를 하기로 했다. 뭐든지 자주 쓰는 게 아니면 집어넣어 두다 보니 창고가 가득 차고 복잡해져서 필요한 것을 찾을 때면 한바탕 뒤집어야 한다. 자주 쓰지도 않고, 아예 앞으로 쓸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을 꺼내놓다가 선반 맨 위 한쪽에 동그랗게 반짝이는 것이 눈에 띄었다. 스테인리스 ‘요강’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이사 다닐 때 면 꼭 챙겨 새집으로 들여가서 언제나 창고 구석에 놓아두었었다.
‘내가 결혼할 때 어머니가 마련해 주신 것이었는데….’
‘요강’을 삼국시대에도 사용했다는 글을 보면, 여인네들이 밤에 밖에 있는 화장실 가는 것이 무서워 방에서 일을 보기 위해 생겨났다고 한다. 둥근 항아리처럼 생겨서 ‘야호(夜壺)’라고도 불렀다. 내가 대여섯 살 때만 해도 밤이면 하얀 항아리에 꽃무늬가 있는 요강을 사용했었다. 집집마다 가지고 있던 요강은 사기나 놋쇠, 스테인리스 등으로 만들어졌고 뚜껑이 있었다. 밤사이 채워지면 아침엔 비우고 깨끗이 씻어두는 게 여자들의 일이기도 했다.
‘라떼는~’ 요강은 깊은 밤에 바깥 화장실을 갈 수 없을 때, 아기를 기르는 집에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살림살이여서 시집보내는 딸에게 꼭 챙겨 보내는 혼수품의 하나였다. 그러나 시대의 변천에 따라 화장실이 실내로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요강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나도 딸이 결혼할 때 요강을 챙겨주는 것은 생각조차 안 했고 당연히 쓰일 일도 없었다.
이제 오랜 기간 창고에 처박혀만 있었던, 그러면서 어쩌면 한쪽에서 조용히 나의 삶을 지켜보았을 요강의 처리를 어찌해야 할지 고심해 봐야 할 것 같다. 나는 요강을 깨끗이 닦아 늘 놓아두었던 자리에 다시 올려두었다.
선반 하나하나를 정리해 내려오다 맨 밑바닥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 박혀 있는 분홍색 보따리를 꺼냈다. 이것도 용케 몇번의 이삿짐 속에서 떨궈지지 않고 지금까지 남아 있었나 보다. 보따리를 펼치자 고교 시절, 대학 시절 일기와 받은 편지들, 잡다한 행사의 프로그램들, 당시 친구들에게 돌렸던 앙케트 노트, 그리고 노랗게 사위어 곧 부서질 것 같은 대학신문들이 있었다. 빛바랜 푸른색 앙케트 노트를 펼치자 단발머리 친구들 얼굴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앙케트 설문도 꿈이 무엇인지, 애송시, 즐겨 듣는 음악, 좋아하는 계절 등 참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것이었지만 모두 성의껏 써주었던 글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금은 미국에서 살고 있는 단짝이었던 현정이는 ‘가슴 부푼 희망의 앞날이 두 팔을 벌리고 우리를 부르는구나. 우리는 소녀야.
앞으로 다가올 멋진 그날을 위해…’라고 써놓았다.한 묶음씩 들춰보는데 눈길을 잡아끈 것이 또 있었다. 대학 시절 내가 직접 악보를 그리고 기타 코드를 적어 연주했던 노트였다. 내 눈앞에 수업이 끝나면 무리 지어 풀밭에 모여앉아 통기타를 치며 포크송을 부르던 영상이 영화 필름처럼 풀려나왔다. <연가>, <조개껍질 묶어>, <아침이슬> 등등. 기타는 전문학원에서 배운 것이 아니고 몇 개의 코드만 익혀서 리듬기타나 아르페지오로 연주하며 떼창을 즐겼었다. 옛 생각에 당시의 애창곡을 흥얼거리며 노트를 넘기다 보니, 내게 기타를 가르쳐주었던 친구가 백지에 낙서하듯 기타 코드를 그려준 것이 끼어 있었다. F, C, Am7, D… 탄성이 나왔다.
나는 불현듯 생각난 친구에게 그 종이를 사진 찍어 카카오톡으로 보내며 참으로 오랜만에 안부를 물었고, 바로 답이 왔다.
‘오랜만에 친구 소식 들으며 추억에 잠깁니다. 독학으로 익힌 솔직한 기타 초보 실력이네요. 우리는 그렇게 세상에 나아갈 준비를 했죠. 그때 함께한 우리들 모두 건강하게 지내다 좋은 때를 기약하기로 해요.’ 대학 졸업 후 거의 잊고 지내다 주고받은 안부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었다.
땀과 먼지로 뒤범벅된 것도 잊고 나는 나의 꽃다운 시절로 돌아가 한껏 부풀었다. 거기엔 풋풋하고 반짝이던 젊음이 담겨 있었다. 이루어질 수 없었던 연연(娟娟)한 사랑, 수줍은 듯 당당했던 내가 있었다. 세월은 이만큼 흘렀는데 그 시절 가슴 부풀었던 희망을 우린 이루었을까. 그저 아쉽고 그리움만 남는다. 어머니의 손길을 느끼는 요강의 처리도, 먼지 덮인 추억의 보따리도 잠시 접어두고, 지금 내 앞에 맞닥뜨린 나이나 건강, 늘그막에 느끼는 소소한 외로움도 내려놓으리라. 그리고 뒤돌아서 보이는 나의 삶에서 젊음과 패기, 사랑과 열정으로 뭉쳤던 그 날로 돌아가 본다. 내게도 으스댈만한 찬란한 시절이 있었네~~.
그래. 얘들아. 나도 한때는 영롱한 미래를 꿈꾸는 프린세스였단다.
사진 신정자 편집인 ㅣ 글 신정호 편집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