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지난 번 9월 이야기에 이어서 씀)
9월 12일 전체 연습일에 신수현 단원이 ‘사료’라며 내게 보여 준 것은 꾸깃꾸깃한 두 장의 전지였는데--지난여름 우리 합창단 창립 1주년 기념 ‘입곡’ 1박 2일 소풍 때, 누구의 제안이었는진 모르지만 ‘박종철 합창단 1년, 10대 뉴스’ 선정 시간이 있었던 모양. 그 얘기 잠깐만 해 보자. 말하자면 가장 인상에 남는 얘기를 풀어놓음으로써 1년 역사를 돌아봤다는 건데 도토리 키 재기지만 등수대로 열거해 보면,
(1) 20만 관중 앞 ‘랄랄라’ 사건
박근혜 퇴진을 향한 촛불 혁명의 와중이었던 작년 12월 초, 서면 로터리 20만 민주 시민 앞에서였기 때문이었나? 천하의 무대맨인 이창우 단원, <민중의 노래>를 부르는 어느 대목에서 그만 가사를 까먹었는데! 그런데 그는 적당히 입 다물고 있은 게 아니라, 용맹하게도 랄랄라~~로 능동적으로 대처했던 거디었다. 그 배짱, 그 민첩함!
(2)시 낭송과 정감 있는 노래로 우리 합창단의 격조를 한층 드높인 사내, 김정곤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 3월 1일 정발장군 동상 앞에서 <순이야>를 부르기 전, 위안부로 끌려갔던 ‘우리의 누이’를 향한 아픈 마음과 지금도 반성 한 번 제대로 않는 일본의 권력자들을 향한 분노를 일깨우는 연설로 청중들로 하여금 노래 <순이야>를 더욱 가슴 깊이 느끼게도 했었다.
(3) 겨레 하나 합창단과의 혼성 합창에 출석율 100%
4.16 세월호 3주년 추모 대회(부산역 광장)에서 행한 합창은 겨레하나 합창단과 함께 무대에 올라서 했다. 공동 연습도 두 번을 했는데 겨레하나 사무실에서였다. 어쨌거나 출석율 100%는 여인들과 함께 한 합창이었기 때문이라는 후문 때문에 뉴스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
(4) 사관의 탄생(?)
왜 이게 뉴스가 되었을까? 기록의 중요성을 다들 공감했다는 뜻?
(5) 스타의 탄생(!)
말 안 해도 알 거다. 천만 혹은 백만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에 직접 출연하거나 아바타를 내세워 간접 출연을 한 고호석 단원. 부림사건--노무현--고호석! 그러니까 송강호가 노변으로 나온 <변호인>의 젊은 대학생 주인공은 고호석 단원과 또 한 사람의 부림 사건 당사자를 포개어 놓은 인물이었고, <노무현입니다>에서 고호석 단원은 직접 출연하여 끝내 눈물을 보이었었다.
(6) 하재훈의 선물
무뚝뚝한 사나이, 정이 넘치는 사나이, 바른 말 잘 하는 사나이, 현학적인 농담도 잘 하는 하재훈 단원, 입곡 모임 때 모든 단원에게 멋진, 옷감도 적당히 고급인 티셔츠를 선물했다. 흰 바탕에 검은 색의 글과 그림은 화가 이창우 단원이 그렸으며 그걸 티셔츠에 찍는 작업은 장길만 단원이 했다는데.
(7)부터는 무순으로 나열해 본다.
전재일 단원 ‘야재 선생’으로 재탄생? 100만원을 내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는 평생 단원 4명. 남포동에서 있은 6월 항생 30주년 기념식장에서 한심한 하모 국회의원을 민주공원 관장인 김종세 단원이 점잖게 나무라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유투브에 올랐는데 그 조회수가 수만 회였다나 뭐라나. 이광호 단원인가, 2018년 5월 5일이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인데 그걸 기념해 공연을 하자는 이광호 단원의 제안도 역시 뉴스감. 그리고 또 있다. 감히 지휘자님에게 충고 내지 직언 내지 지적을, 유일하게, 세 번이나, 했다는 박신열 단원의 순진무구 거시기한 마음! 올 1월 14일 서면에서 있은 박종철 열사 추모제 행사 참여! 기타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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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물어본다.
8월에서 9월로, 또 10월까지 달려온 세월 속에서 박종철 합창단 사람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노래만 하고 살았던가? 그럴 리가 없지. 나물 먹고 물을 마시기도 했고 술 마시고 낭만적이 되기도 했고 별도 보고 사랑도 하고 운동도 하고 늘어지게 자기도 했겠지. 그럼 그러고는 다였을까? 이 또한 그럴 리가 없다. 문태준 시의 구절처럼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고 역사가 있었다고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인데---어쨌거나 내 눈이 보고 내 귀가 들은 만큼만이라도 그 이야기와 역사를, 생각나는 대로 더듬어 보기로 한다.
촛불 혁명으로 타락하고 폭력적인 정권은 일단 무너지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적폐는 그야말로 수십 년 묵은 적폐--정말 어마 무사시한 적폐 세력들은 내가 일하는 학교라는 작고 힘없는 단위에서부터 청와대를 뺀 모든 권력 기관 곳곳에서 버티고 있거나 웅크려 숨을 죽여 있거나 하며 때론 드러내 놓고 으르렁거리고 때론 음험하고도 교활하게 저항하고 있는 상황이다. 8월도 9월도 ‘박종철의 사람들’이 노래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 이유다.
① 사드 배치 반대 투쟁
9월 7일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성주 소성리에 사드 4기를 추가 배치한 것은. 김세규 단원의 ‘긴급’한 전언이 단톡 방에 날아들었다.
--국방부 2시, 기자에게 사드 반입 통보!
--경기 경찰 2시 출발. 충주휴게소 경찰버스 30대.
연풍 지역 경찰 통과, 한 시간여 후 도착.
--6시보다 더 일찍 소성리로 집결해주시기 바람!
9월 8일엔 “촛불 이후 다시 서면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았다는 정의당 소속의 이창우 단원의 연설문이 단톡방에 떴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실험과 6차 핵실험은 동북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무모한 도발입니다.” 로 시작된 연설은 “사드가 북한 미사일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지, “국방부나 군부에서도 수도권 방어는 불가능하다고 시인했음에도 왜 성주에 사드를 배치”하는지를 따져 묻고는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서는 “후보 시절 얘기한 것처럼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과 북한의 미사일, 핵실험 같은 추가적인 군사행동 중단을 쌍방이 함께 실천하고, 이어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함께 병행해 나가야” 함을 충고한 다음과 같이 끝을 맺었다.
“결론적으로 사드는 안보에 아무 도움도 안 됩니다. 그래서 사드는 가짜 안보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소통해야 할 상대는 미국 장사꾼 대통령 트럼프 보다는 성주 주민들입니다. 촛불로 탄생한 주권국가의 대통령답게 자주 외교를 해야 합니다. 동북아시아의 균형자로서 군사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외교를 해야 합니다.”
서면 집회든가 성주 소성리 집회에서든가 문재인 정부의 사드 추가 배치에 대한 박철 목사님의 규탄 메시지는 또 어땠던가?
“국제 깡패 미국의 미치광이 횡포가 판치는 국제사회가 야만사회다. 그 횡포를 저지하지 못하는 국제사회는 무법사회다. 유일하게 항거하는 북한을 비난하는 국제사회는 비겁한 사회이다.”
사드 배치로 하여 문재인 정부를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그의 비판은 뼈아픈 실망과 분노에서 솟아나왔을 것이다.
② 고리 원전 5,6호기 백지화 운동
지난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탈핵선언’과 함께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에 관한 사회적합의 도출”를 발표한 이래 이른바 핵마피아 집단과 조중동의 캐캐 묵은 거짓말투성이 원전 안전 홍보는 집요했다. 아주 전방위적이었다. 공론화위원회에 영향을 주기 위한 수작이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사계의 전문가인 김해창 단원의 여러 분투(이를테면 강연을 위해 포항이다, 함양이다 부르는 곳, 부르는 단체가 있으면 어디에도 그는 달려가는 모양이다.) 중에서도 대 언론 활동은 눈부시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일요일(9월 3일) 오전 8시 부산MBC 시사포커스 한번 봐주세요!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왜 해야 하는 지 널리 알려주세요!”
김해창 단원이 단톡방에 올린 메시지다. 그가 주요 패널로 등장해서가 아니라 신고리 5,6호기 백지화 여부는 향후 탈핵 운동의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한 그는 국제신문에 ‘김해창 교수의 에너지전환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데 그 중 몇 제목만 일별해 본다.
--‘원전마피아’의 팩트 비틀기, 사실은 이렇다
--경주지진 1년, 우리나라 원전 안전한가?
--원전은 테러나 전시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돼 있나?
--공론화에 오른 신고리5·6호기 건설, ‘졸속위법허가’ 무엇이 문제였나?
9월 9일은 토요일이었고 오후 내내 울산에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백지화 탈핵 집회가 있었다. 이민환 지휘자님을 비롯하여 박철, 김해창, 이창우, 안영철, 하재훈, 김미경, 전재일 단원(사진에서 확인한 인물들!)이 울산행 열차에 몸을 실었고 밤이 되어서야 부산으로 돌아왔다.
9월 16일 토요일 오후 5시 반. 김해창 단원과 안영철 단원이 해운대 노보텔 옆 백사장에서 ‘탈핵 버스킹’을 한다고 했다. 태풍의 조짐이 있던 날이었다.
“신고리5.6호기백지화지지부울경교수모임 탈핵 버스킹
<'엄마야누나야탈핵살자!'>
김교수와 안교수는 홍보를 많이 안 한 상태에서 한 행사라 청중은 많지 않았지만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며 연설도 하고 열창도 했다.
③ KBS, MBC 공영방송 정상화 투쟁
2MB(‘2메가바이트’라 읽는다)의 대담하고도 포악한 폭정의 하나인 공영방송과 문화계 장악의 전모가 낱낱이 밝혀졌다. 언론계, 방송계, 영화계 블랙리스트. 마음에 안 드는 배우, 탤런트, 가수, 연극인, 피디, 기자, 사장(정연주 KBS 사장) 할 것 없이 마구잡이로 몰아내고 사찰하고 협박하고 돈벌이 수단을 끊고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키고 전문 분야와는 아무런 상관
없는 곳에 발령을 내도록 했다. 누가? 놈들은 부정을 한다, 발뺌을 한다 어쩐다 하고 있지만 이명바기가 국정원, 국방부, 문체부, 재벌, 극우적 언론을 총동원했다는 건 그 놈들이 더 잘 알 터다.
9월 6일(수) 오전 11시 반, 남천동 KBS부산총국 앞에선 KBS, MBC 총파업 지지 부산시민사회기자회견이 열렸다. 백영제 단장을 비롯, 박철, 고호선, 신수현 등의 단원 (단톡방에 올라온 사진에서만 확인한 단원)이 거길 달려갔다.
9월 11일(금) 오후 7시 경엔 서면 쥬디스 태화 길거리에서 ‘돌마고국(돌아오라 마봉춘 고봉순 국제신문) ’ 부산 불금파티가 열렸다. 저녁 시간이라 많은 단원들이 출몰했고, 임시(!) 제반활동도 전개되었다.
④ 형제복지원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피해 생존자 <국토대장정>
출정 기자 회견 후 그들은 ‘대장정’을 떠났다. 수현c 단원과 백영제 단장님 그리고…….
8. 10월 8일, 일요일 낮 (사상 초유라는 10여 일 간의 추석 연휴도 내일이면 끝이 난다)
못다 쓴 8월과 9월의 이야기를 느릿느릿 쓰다 보니 10월이 왔다. 어리석다. ‘재앙과 불행과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김수영)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은. 그러나 어쩌겠는가. 나는 그것들을 아무튼 조금이라도 기억하고 싶은 것이다.
9. 9월 23일(토)
<10.4 남북정상선언 10주년 기념 열린 음악회>. 오후 3시에 새날 교회에 모여 한 시간 남짓 연습을 한 다음 우리는 양정 송상현 동상이 서 있는 공원으로 버스로 이동했다. 무대에서 간단한 리허설을 하고 나니 공연 때까지는 한 시간이 남았다. 무대 뒤편의 잔디밭에 파트 별로 모여 앉아 연습들을 하는 중에 이창우 단원과 하재훈 단원이 김밥을 배달해 왔다. 음악회의 첫 순서는 우리였다. <민들레처럼>과 <그날이 오면>! 음향 시설도 좋았다지만 어쨌거나 멋지게 잘 불렀다는 주변의 평이 없진 않았다. 제반활동은 양정 로터리에서 무슨 공업전문대 쪽으로 올라가는 길의 한 주막에서.
10. 10월 6일 금요일
“긴 연휴,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쉬는 것도 이제 힘들지 않습니까? 오늘 6시쯤 벙개를 제안합니다. 모인 김에 연습 쫌 하고 ‘추석 저녁’을 즐기는 제반활동 합시다. 5명 이상이면 실행하겠습니다.” 이것이 텔레그렘을 통한 지휘자님의 제안이었는데, 다들 묵묵하자 총명하신 미경 총무님, “에휴~~ 그냥 술벙개, 당구벙개면 반응이 올 건데 연습(^^)에 논치 보기 작전?” 이민환 지휘자님이 다시 왈. “조건 없이 나오실 분, 6시에 교회로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하신 것은 총무님의 위와 같은 애정 어린 한 마디를 날리셨기 때문이렷다. 그리하야, 백영제 단장님은 “간단한 연습 마치고 (‘번개 맞은 몇 안 되는 단원’들(하재훈과 박신열, 박철? 그리고 누구???)과 함께) 서면으로 이동합니다.”는 멘트를 날리게 끔도 되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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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연휴가 좋긴 해도 연습일이 빠지는 게 지휘자님은 자못 걱정이었을 터다. 10월 2일엔<그날이 오면> 테너2 녹음이 텔레그램 방을 통해 날아왔고, 어제인 10월 7일엔 <임을 위한 행진곡>과 <촛불이다 광장이다>가 날아왔다.
부산 민주 공원 무대에 서야 할 10월 16일(월)과 서울 시청 무대에 서야 할 10월 21일(토)이 물밀듯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