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후기
Lion Head(번개, 3-14-09)
보았노라, 감동했노라, 받았노라!
(인간의 손 때 묻지 않은 창조의 원형에서 숨쉬기를)
지난 2월 초 Mt. Lafayette(5260Ft)에 올라가니 저 멀리서 햇볕을 흠뻑 받고 백설과 얼음으로 빛을 발하며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미동북부 최고 높이의 Mt. Washington(6288Ft)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것 같이 느낀다. 이내 내 마음은 잔잔한 감동을 일으키며 아마 그곳에 서서 천지사방의 바람을 맞으면 우리의 숨과 영이 새롭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하였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설레는 마음으로 지도를 펴놓고 마음속에 산행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겨울 산행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인 체력, 장비, 날씨를 점검하다가 일기상황을 주시하다 보니 그곳은 하루 최고 온도가 보통 화씨(F) -0도 이하에 심한 바람으로 체감온도는 -20~-30도까지 내려가고, 다음과 같이 소개 되었다. "Bitter cold, dense fog, heavy snow, and record wind--- 6,288-foot mount Washington is the Home of the World's worst Weather. --- one of the planet's most extreme places." 그래서 생각한 것이 춘 삼월이었다. 이때가 되면 어느 정도 기온이 올라가리라는 믿음이었다. 지난 3월 7일 산사랑 정기 산행에서 나의 희망을 회원들과 나누게 되었고, 그 결과 친구들을 얻어 '동행 번개 산행'으로 3월 14일에 아직도 깊은 겨울로 백설에 잠겨있는 Mt. Washington을 향하게 된 것이다. 여고 시절부터 산을 즐기고 설악산을 제일 많이 다녔다는 이번 팀에서 홍일점이며 연장자이신 산골짜기님, 첩첩 산중 강원도 출신으로 산에 오르는 일만은 절대로 지치지 않는다는 산지기님, 그리고 북한산 자락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산을 안방 드나들듯 하셨다는 징검다리님, 필자를 포함하여 네 명이 산을 오르게 되었다.
들머리인 Pinkham Notch Visitor Center에 도착하니 오전 9:00시가 넘어간 시간, 그러나 이미 주차장은 만원을 이루었고 많은 이들이 산을 향하고 있었다. 일단 많은 그들을 보니 마음이 안심이 되었다. 우리 각자가 만만의 준비를 마치고 Center에 들러 오늘 걷을 Lion head Trail 재확인하며 여러 필요한 정보를 얻고 Tuckerman Ravine Trail로 나서니 오전 9:30분이다. 오늘 예정된 거리는 왕복 8.4마일, 소요시간은 7-8시간이다. 기후는 정상에서의 바람이 조금 걱정이 되긴 하였으나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햇볕, 그리고 온도가 18도F/9도F 예상이라니 이것은 덤으로 받은 선물 아니겠는가? 모두들 지난밤을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잠을 설치고, 아주 이른 새벽에 집을 나섰어도 어느 누구 하나 피곤함을 느끼지 않고 눈 길 위의 찬 공기를 가르며 겨울 산 냄새를 맡으며 힘껏 1시간을 올라가니 Lion Head Trail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철 Washington봉에 이르는 데에 가장 많이 사랑받고 덜 위험하다는 Lion Head Trail 오솔길에 들어섰더니 이제야 진짜 산에 들어 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들어서면서 곧 바로 우리를 맞이한 가파른 급경사는 우리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착용하고 있던 아이젠으로는 여간해서 통과하기가 어려울 듯 보였다. 통과할 거리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통과는 하더라도 내려 올 때에는 더 위험할 터인데 어떻게 하나? 집으로 돌아가야 하나? 다른 곳으로 변경할 시간이 되는가? 프로 장비를 갖춘 다른 일행들이 "그런 아마추어 아이젠으로 겨울 Washington을 찾은 것은 산을 모욕하는 것이 아니냐?" 고 충고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포기는 할 수 없는 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며 우리 일행 넷은 아무 말도 없이 제 자리에 멈추어 있었다. 드디어 침묵을 깨고 산지기님이 외쳤다. "힘을 내보십시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짧은 30분이었지만 묘기를 부리며 사력을 다한 끝에 지옥의 문을 통과하였다.
지옥의 문을 통과하니 왼쪽으로 Lion Head의 능선길이 보이며 정면으로는 Alpine Garden과 오른쪽으로는 Hungtington Ravine의 남벽으로 이루어진 백설의 평원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이 백설의 평원에서 부는 바람이 얼마나 신선한지 그 누가 알랴? 그러나 이때부터 곧 체감온도를 느끼기 시작하였다. 벗어 두었던 파카와 모자를 다시 뒤집어쓰고 거센 바람과 맞서 1시간 남짓 달아났더니 Lion Head이다.
멀리서 광채를 발하며 우뚝 서있던 Mt. Washington이 이제는 아주 가까워 보인다. Alpine Garden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Alpine Garden을 향하려 하니 지금보다도 훨씬 더 거센 바람이 우리의 길을 가로 막는다. 우리는 이 바람이 뜻하는 바를 직감적으로 알아 차렸다. 그것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고, 배우고, 즐기고 돌아갔다가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Tuckerman Ravine의 북벽(North wall/face) 위(5,000Ft이상)이고 저 절벽 아래에서 위로 들어보면 보면 사자의 머리 모양을 한 부분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진으로만 보았던 눈 덮인 Tuckerman Ravine의 서쪽 벽(Lawn Cutoff)과 남쪽 벽(Davis Path & Boot Spur)을 육안으로 보는 은총을 입고 있었다. 갑자기 우리는 선택 받은 자들이 된 것 같았다. 우리가 본 그 모습은 나의 짧은 어휘력을 가지고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만약 있다면 그것을 "창조의 원형"이라 부를 것이다.
우리는 인간의 손 때(인조 현대 문명) 하나도 묻지 않은 창조의 원형을 바라보며, 아니 바로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숨을 내고 들어 마시며 우리도 모르는 채 우리의 생명과 영을 새롭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왜 산에 오를 적마다 감동이 있는 가를 알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산에 오르는 중요한 이유이었다.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Because it is there." 이 말은 "당신은 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고 하느냐?"의 한 기자의 질문에 영국 등산가 George Mallory(1886-1924)가 대답한 말로 오늘날까지 명언이 되었지만 나는 한 가지 더 보충하여 거기에는 창조의 원형이 보존되고 있기 때문이라 답하고 싶다. 등산으로 메달을 따거나 주어 본 적이 없기에 무상의 스포츠, 무상의 행위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보상이 없는가? 아니다. 보상 중에 최고의 보상인 생명을 얻는 것이 산행이 아닐까?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게 숨을 다시 전환해 주는 것이 재창조이다. 재창조는 영어로 Re-creation이고 영어 Recreation은 우리말로 기분 전환, 오락이다. 아마 더 좋은 번역은 "바른 숨쉬기"가 아닐까? 각종 스포츠나 레저가 이 범주 안에 들 수 있겠으나 그것들이 타락하는 이유는 "창조"와 멀어진 탓이 아닐까? 민주를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가장 비민주적이고, 통일과 화해를 말하는 자들이 가장 비통일적이고 비화해적인 이유도 "창조"를 모르는 탓이 아닐까? 창조의 원형은 생명의 숨이 있는 곳이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보상이 눈에 보이는 보상이 없어도 때로는 악전고투하며 심지어 목숨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산을 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산에 오르려하는 것은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거룩한 원초적 본능이다!!! 이들에게 우리는 희망을 발견한다. 이 원초적 본능을 잃어버리고 있는 한 우리들은 노소, 빈부, 인종을 막론하고 모두가 모든 것을 가졌으나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이다.
우리는 보았노라, 감동했노라, 받았노라!
창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산으로 오시라!
숨과 생명을 재창조하는 곳으로 오시라!
감동이 있는 곳으로 오시라!
그곳에서 생명과 안식과 행복을 얻으시라!
우리 일행 넷은 아쉬움을 남긴 채 정상에서의 숨쉬기와 노래 부르기를 뒷날로 기약하고 하산을 결정하고 출발점에 돌아오니 오후 2:30분이었다. 다섯 시간 동안 우리는 생명의 숨을 내쉬며 꿈의 세계를 거닐고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Lion Head Trail을 초반 오르면서 걱정했던 하산 길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새로운 존재가 되어 내려 온 것은 아닐까?
차를 타고 내려오다 Conway의 전망대에 들러 우리 일행이 걸었고 숨을 쉬었던 그곳을 뒤돌아보니 감격과 감동이 다시 한 번 꽉 차게 밀려온다. 전체 Mt. White의 조형물 앞에서 산골짜기님의 White Mountain 사랑 20년 이야기를 들으니 산의 아름다움에 다시 매혹되고 산을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우리는 산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또한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가 됩니다. 시간이 한가해서 산에 오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창조의 원형에서 숨을 쉬어 본 사람은 바빠서 산에 오르지 못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쉼(안식)은 숨에서 오고 숨은 창조에서 오고 산은 창조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아! 우리가 순례의 길을 떠나야 하는 유일한 목적이 있다면 이젠 우리의 고향, 창조의 원형에 서서 숨을 쉬기 위해서입니다. Lion Head에서 얻었던 그 창조적 생명을 다시 한 번 Mt. Washington 정상에서 그리고 많은 White 산들에서 얻기 위해 우리는 곧 순례의 길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기다리며 애타게 부르고 있는 우리의 임의 초대에 나오는 자는 행복한 자가 될 것입니다.
첫댓글 수고하셔네 좋은 경험 하셔구나 난 올겨울 산행 한번도 못했지 아킬레스건 수술로 아직도 고생중
멋지군 ....가보고 싶다 그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