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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모습, 제 방엔 언제나 책이 그득합니다.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여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자의 행간을 톡톡, 밟아나가면서 만나는 사람과 문화, 그 모든 소소한 것들을 사랑합니다.
Q.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이하입니다. 시인이면서 생활인으로 바지런히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2005년 국문과 졸업반 당시 이주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시 「전화결혼식」으로 제 12회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하였습니다. 「전화결혼식」은 가리봉 공단에서 혼기를 훌쩍 넘긴 이주노동자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두고 온 여자 친구와 공단쪽방에서 국제전화를 걸어 결혼식을 하는 풍경을 담았습니다. 2012년에 실천문학사에서 출간된 『내 속에 숨어사는 것들』은 이렇듯 한국사회 안의 다문화가정과 중국과 내몽고 곳곳을 주유하면서 만난 소소한 사람들이자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일종의 여행시집입니다. 낯선 타지에서 만난 이질적인 사람들을 그저 관찰한 것이 아닌, 제 가난하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맞닥뜨려 공감하고, 종내는 극복하는 과정이기도 하였습니다. 차이를 존중하고 같이 기뻐할 수 있었던 치유의 도정이기도 하였습니다. Q. 본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된 계기와 현재의 심정을 이야기 해주십시오. 그렇게 시를 쓰면서 사람을 만나며 다니고자 했던 제가, 아이러니하게도 서른을 넘어서면서 현실과 환경에 타협하게 되었습니다. 열여섯 살 때 창신동 산동네에 살면서 병원비 걱정에 맹장인줄도 모르고 사흘 낮밤을 참다가 복막염이 되어 병원에 실려 간 적이 있습니다. 의사는 깨어난 저를 다그치면서 할복과도 같은 고통을 어떻게 참았냐고, 조금만 늦었으면 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던 저희 집에서, 2년 전, 이번에는 저희 아버지가 자식들 걱정할까봐 복통을 참으시다가 맹장에서 복막염으로, 종내는 피가 거꾸로 흐른다는 패혈증까지 가셨습니다. 아버지의 수술동의서에 사인하면서 다짐했습니다. 제 모든 꿈을 접고 오로지 돈을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고 살겠다. 하여 금융권이라는 보험회사 전략팀에 입사하여 이제는 교육팀에서 자본에 대한 강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중과 다문화, 평화와 연대에 대해서 얘기하던 제가 자본과 성공에 대한 강의를 마네킨처럼 쏟아내게 되었고 이제는 강원도에 교육실장으로 배치되어 지점장 발령을 앞두고 있습니다. 금융회사의 꽃이라는 지점장, 세계의 하얀 꽃이라는 시인, 서로 상존할 수 없는 두 모습 사이에서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살아가면서 이렇게 가다가는 마음마저 모자라 몸까지 무너져 모든 걸 잃을 것 같다는 절박함이 들었습니다. 현실 앞에 접어서 꾹꾹 쑤셔 박아 놓았던 시인과 여행자의 꿈, 그리고 사람에 대한 꿈을 다시 꾸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더는 주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러다가는 영영 스크루지 영감이 되어 제 자신을 숨긴 채 부정하며 살겠다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제 직업은 금융보험사 교육팀 직원입니다. 현재 강 원도에 발령받아 지점 사람들에게 자본과 성공을 가르 칩니다.
하지만 이게 자유로운 영혼인 저한테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이 모습은 제게 지킬박사일까요, 하이드일까요. Q. 마법의 요정 지니가 여러분 앞에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3가지 소원을 빌 수 있습니다. 어떤 소원을 빌고 싶으십니까? 1. 램프에 갇혀 있지 말고 같이 여행을 다니자고 하겠습니다. 2. 같이 다니는 모든 지역에 우물을 파 달라 하겠습니다. 3. 단, 북극과 남극만은 우물대신 얼음을 띄워 달라 하겠습니다. 여행을 떠나면 눈빛이 삐딱해집니다. 그 색다른 시선 으로 세상을 또 다른 관점에서 보고 다시 낯설게 끌어안고, 종내는 온몸으로 살아내기까지 끊임없이 장기 여행 자로서 떠나고, 또 떠나고싶습니다. Q. 현재까지의 여행 경험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십시오. 2000년 4월 한 달 간, 군 입대 전 배낭을 메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여행을 떠났습니다. 서울에서 목포까지는 도보여행, 제주에서는 자전거여행을 하였습니다. 2001년~2002년 1년 간, 최전방 철원 G·O·P에서 상병으로 진급하면서 군종 사병으로 차출되었습니다. 제가 맡은 일은 교회 군종으로 깜깜한 새벽에 더블 백에 차와 초코파이를 가득 담고 철책 길을 걸으며 초소에서 만나는 사병들을 위문하는 일이었습니다. 1년 여간 동쪽에서 서쪽으로 철원지역의 모든 철책을 배낭매고 여행자처럼 다녔던 그 경험은, 제게 그 어떤 여행보다도 갚진 경험이었습니다. 2006년 4월, 대학 졸업 후 베이징에서 시작한 배낭여행은 이후 내몽고와 상하이, 난징을 경유한 2년 6개월간의 장기 배낭여행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저는 여비가 떨어지면 한인마을을 찾아가 한국학생들에게 국어와 문학을 가르쳤고, 그 돈으로 다시 여행을 떠났습니다. 2008년 귀국해서 지금까지 계속 휴가를 얻을 때마다 4박5일 일정으로 제주 올레 길을 걷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배낭을 잔뜩 메고 산티아고 길도 순례하듯 걸어보고 싶습니다. Q. 현재까지 가보신 여행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여행지는 어디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상하이입니다. 한국 사회의 제도와 집단주의에 환멸을 느꼈던 저에게 상하이라는 공간은 왜 한국이 이렇게 되었는지, 근대의 상처를 돌아보게 하는 동시에, 서양문화의 면면을 동양적 시각에서 보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큰 치유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미시적인 것에 눈을 뜨게 되어 역으로 큰 눈과 큰마음을 갖게 된 시기였습니다. 그 때 찍은 사진과 시를 첨부합니다. 상하이의 몽환적인 마천루를 사랑한다 영국식 건물 한 켠에 자리한 올드 째즈바를 사랑한다 투박한 동방명주를 사랑한다 데미언 라이스의 잠 오는 팝송들을 사랑한다 그의 목소리와 어울리는 기타의 울림통을 매달리듯 부르는 캔 테이크 마이 아이스 어브 유를 사랑한다 너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 라는 해석보다 내 눈을 가져갈 수 없겠니 라는 오역을 사랑한다 아편 같은 안개를 사랑한다 나이든 여가수를 날치기들을 술주정과 패싸움을 흠 많은 영혼을 곡괭이 자국 찍힌 채 산벼랑에 판 박힌 불상을 사랑한다 귀신극과 귀신극 새에 기웃거리는 진짜 귀신들을 사랑한다 갓밝이 때 깨어 잠든 날 내려다보는 또 다른 나를 사랑한다 밤새 추던 춤을 멈추고 인형인 척 딴청을 피우는 이녁들을 마트로시카의 몸에 들어가 토막잠을 자는 혼백들을 사랑한다 미라의 붕대처럼 낡아 훅 바람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헌책방의 고서들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문자들을 행간에 남은 붉디붉은 얼룩들을 쓰면 쓰는 대로 사라지는 물글씨를 사랑한다 -이하 「귀신이 간다」 전문 Q. 본인에게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려고 할때,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던(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남산 N타워에서 기록했던 사진과 에세이에 덧붙여 쓰겠습니다. 어릴 때는 하늘을 나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무릎담요를 어깨에 두르고 슈퍼맨처럼 더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리는가 하면, 스파이더맨 처럼 누가 더 울퉁불퉁한 벽을 높이 올라가나 또래들과 시합을 하기도 했다. 유독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항상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곤 했는데 그만큼 굴러 떨어진 적도 많아서 내 머리엔 땜빵이 수두룩했다. 작은 녀석은 피가 나도 다시 기어올랐는데 그럴 때면 친구들은 무서워서 슬금슬금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단 한번 내가 무서워서 벌벌 떨었던 적이 있는데, 친구들과 누가 더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리나 내기를 했을 때였다. 계단 하나에서 옆으로 뛰어내리고, 계단 둘에서 옆으로 뛰어내리고, 계단 셋에서, 넷에서, 다섯, 여섯, 일곱에서 뛰어내리고. 열 개까지 올랐을까. 친구들은 저마다 포기해버리거나, 다리가 삐었다고 울면서 집에 가버렸다. 나는 혼자 으쓱해하면서도 열 번째 계단에서 두 팔을 쭉 펴고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그런데 순간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홉 개와 열 개의 차이가 이렇게 크다니. 그만 그 높이의 위협에 정신마저 아찔했다. 슬금슬금 주위를 살폈으나 남은 친구들은 내가 끝내 뛰어내릴까 손을 모은 채 주시하고 있었다. 갑자기 너무 무섭고, 외로워졌다. 짧은 순간 고독했다. 이제 다시는 저 계단을 걸어 내려갈 수 없게 된 것이다. 남산의 N타워에서 만난 '하늘을 나는 사람'의 형상과 눈이 마주쳤을 때 왜 그가 꼭 어린 시절, 그 열 번째 계단 위의 나와 같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의 텅 빈 눈이, 몸이 한없이 춥게 느껴진 것일까. 그의 온몸을 붙들고 있는 철사 줄이 눈에 들어온 것은 그 때였다. 그는 날고 있는 것이 아니라, 꼭두각시처럼 줄에 꿰어있었던 것이다. 사진기를 들어 그를 찍는 것조차 그만 무연해졌다. 왼쪽 가슴이 아려왔다. 해 지는 허공에 걸려 있는 그의 모습이 꼭 도화지 위에 함부로 스케치된 구조물 같아서. 가족들에게 취한 모습 보이기 싫어 이 추운 날 밖에서 비틀거리는 아버지들 같아서. - 장기 여행을 떠나며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에세이에서 표현했듯 이미 현실과 직장에서 ‘너무 높은 계단’까지 올라온 나머지 다시 뛰어내릴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하나입니다. 두 번째는 어느덧 환갑을 넘으신 부모님입니다. 하지만 제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최근에 아버지께서 서울의 한 구청에서 모집한 ‘시니어 배우’ 오디션에 통과하여 단역 배우 활동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교 때 엑스트라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아버지께서 십년 동안 하시던 신발 가게를 접으시고 따라오셨습니다. 그 때부터 엑스트라를 해오셨는데 최근 단역 활동도 시작하셔서 결실을 맺게 되었고 저 또한 이제는 제 꿈을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본인의 여행 경험 중 남에게 들려줄 만한, 행복한/황당한/어려웠던/극적이었던 에피소드는 무엇입니까? 2009년 가을 제주 올레에 여행을 갔을 때였습니다. 제 서른 번째 생일인 10월 2일, L·J·H라는 이니셜을 목걸이에 새긴 여자 올레 꾼을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났습니다. 여행자들끼리 파티를 하던 중 제 이니셜과도 같아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 순간 사람들이 저희 둘이 너무 닮았다며 남매 아니냐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저희들도 서로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친구와 제 꿈은 둘 다 글쟁이였고, 같은 기간 동안 중국에 체류했으며, 나중에 서울에 돌아왔을 때 사는 곳도 지하철로 한 정거장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안짱다리로 걸었고, 저는 팔자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서로 너무 닮아서 급속히 가까워졌고 이듬해 봄, 마침내 사귀기로 하였습니다. 더 놀란 것은 여름이 되어 서로 반팔을 입고 만났을 때였습니다. 그 친구는 왼쪽 팔에, 저는 오른 쪽 팔에 푸른 몽고반점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게 있어 몽고반점은 참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기에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삼신할머니가 세상에 나가기 싫어하는 우리를 오죽하면 엉덩이를 때리는 것도 모자라 팔로 잡아끌었겠냐고. 서로의 팔목을 엉겨 잡고 신기하고 또 무서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와 저는 같이 상하이에 다시 가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모든 준비를 해서 그 친구를 먼저 상하이의 중문과 대학원에 입학시켰고, 생활비를 보내면서 따라서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결국 저는 따라가지 못하였습니다. 이유는, 위에 ‘하늘을 나는 사람’ 사진에 썼던 에세이처럼, 너무 높이 계단에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저는 끝내 사랑에 모든 걸 걸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두고두고 제 자신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든 걸 내려놓고, 다리가 부러지더라도 떠나고 싶습니다. 뛰어내리는 순간 날개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될 거라고 말했던 한비야 씨처럼. Q. 장기 배낭여행자만의 독특한 문화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과연 무엇이 이들을 다른 여행자 혹은 관광객과 다르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장기 여행자는 그 나라의 땅과 문화 속에서 그 지역의 시간을 사는 거주자입니다. 그것은 곳 이전에 있던 곳에서 나는 죽고, 그 땅에서 다시 태어나 사는 것과 같습니다. 장기 배낭여행자는 그 거듭남, 환생과도 같은 삶을 사는 것에 매혹과 동시에 슬픔을 느낍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영원히 살고 싶지만, 그래서 삶은 더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동안 다른 사람으로 살다가 돌아왔을 때, 비로소 온전한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제도나 지위에 의한 에고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말입니다. 그것을 찾을 때까지 장기 여행자는 낯선 땅에서, 그러나 곧 익숙해질 땅에서 허물을 벗고 또 벗습니다. 죽고 또 죽습니다. Q. 장기 배낭여행으로 자신이 변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변화한다면 어떠한 변화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솔직히 아직은 그 모습이 어떨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장기 여행을 통해 비로소 원래의 제 모습이었던 ‘음유 시인’으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이제 죽을 때까지 시를 쓰며 장기 여행자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참-나를 찾아 언제까지고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죽고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마지못해 자신의 껍질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그를 통해 꿈을 나눠주고, 용기를 주는, 멘토의 삶을 살아나가고 싶습니다. Q. 이번 여행이 본인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평생 시인이냐, 평생 직장인이냐, 그 가슴 떨리면서도 두려운 줄타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선택과 달리 여행자에게 그것은 숨을 쉬며 사느냐, 죽은 체 사느냐,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글을 쓰며 다짐했던 삶, 제 스스로를 치유하고 감사하며 꿈꾸었던 삶,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끌어안고, 사랑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삶, 그런 삶을 사느냐, 그저 산송장으로 남느냐, 제가 걸 수 있는 마지막 도전입니다. Q. 본인의 여행 관심 순위를 정해 주시고 그 이유를 간략하게 적어주십시오. <보 기> 혼자만의 정리시간, 유적과 유물 탐사,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 대자연과의 교감, 현지 문화체험(음식, 음악 등) 1.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 - 그들과 소통하고 웃으면서 그들 자신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서. 2. 현지 문화 체험 - 온몸으로 그 땅을 사랑하고, 호흡할 수 있어서. 3. 유적과 유물 탐험 - 그 땅에서 떠나간 사람들의 숨결을 느끼고, 같이 죽을 수 있어서. 4. 대자연과의 교감 - 그곳에서의 정령들과 요정을 만날 수 있어서, 그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5. 혼자만의 정리시간 -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내면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어서. Q. 상황형 질문 "긴 여행의 마지막날, 생각보다 많은 돈을 아꼈던 당신은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기 위해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모두 하며 모든 돈을 다 사용하였습니다. 당신은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하였습니다. 장기간의 여행을 마치고 고국 한국으로 돌아가려는 그 순간, 당신은 공항세 00불을 지불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닿게 됩니다. 남은 비행기 시간은 2시간. 현재 수중의 돈은 0원. 당신은 카드/여행자수표 등 현금을 스스로 구할 방법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 1. 장기 여행을 통해 이미 그 나라가 고향이 되었기에 한국으로 돌아간 이후의 삶 또한 장기 여행이 될 것입니다. 느긋하게 비행기를 떠나보내고 현지에서 숙식을 제공하는 보름 또는 한 달 간의 아르바이트를 찾겠습니다. 제가 그렇게 2년 반을 중국에서 살았던 것처럼. 2. 입대하기 전에 제주도에서 실제로 이렇게 했던 적이 있습니다. 돈이 다 떨어져 제주 시청에 찾아가 관광과에 찾아가 제 사정을 이야기하고 비행기 값을 빌렸습니다. 관광도시라면 그만한 시스템이 있을 거라 생각했고, 신혼여행 와서 꼭 갚겠다고 하였습니다. 3. 기타를 빌릴 수 있다면 제가 유일하게 ‘삑사리’ 내며 부를 수 있는 서시를 부르겠습니다. 말이 전혀 안 통하고 기타도 없으면 깡통 하나를 앞에 두고 아리랑을 부르겠습니다. Q. 논술형 질문 여행을 하는 우리는 자연스레 관찰자가 되어 그들의 삶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그곳 사람들의 삶과 생활방식에 가까이 다가가 관찰하고 싶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 두가지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여행자 A : 나는 현지인들과 소통을 하며,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들과 손한번 잡고, 웃음을 나누며 그들의 삶속으로 들어가 그들을 관찰함으로서 그들의 생각와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할 숭 있습니다. 저는 여행자가 현지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것이 이들을 관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자 B : 나는 여행자는 투명인간이되어 그들의 삶을 관찰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과 엮이고 하나가 되어 그들 삶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비약입니다. 우리는 철저히 외부에서 온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되며, 가급적 그들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의 삶을 관찰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삶에 끼어들고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본인의 의견과 이유를 적어주십시오.
두 말할 필요 없이 여행자 A의 소통하는 여행을 원합니다. 앞에서 기술했듯이 장기 여행은 그 땅에서 다시 태어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그 지역의 문화와 풍습 뿐 아니라 그 지역 사람의 눈빛과 몸짓이 있어야할 것입니다. 저는 그 숨결 안에서 온전히 이전의 옛사람을 떠나보내고 이 땅에서의 새로운 몸을 입습니다. 그리하여 그 문화권의 사람은 한 가족이 됩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는 아무런 장벽이 되지 못합니다.
제가 한글로 시를 쓴다 해도 온몸으로 낭송하면 그들은 자신만의 영혼으로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를 쓰듯 그렇게 온몸으로 그들과 부대끼고 싶습니다. 하여 그 땅에서 제 묵은 몸을 또한 장사지내고 싶습니다. 그제야 또 한 번 죽고, 또 한 번 태어나겠지요.
장기 여행자에게 그것은 단순히 삶과 죽음, 환생의 고리를 끊는 해탈 이상의 그 무엇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기 여행자는 다음 생 또한 선택할 수 있고, 전생을 추억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 삶과 사람을 긍정할 수 있습니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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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행을 통해 꿈을 나눠주고, 용기를 주는, 멘토의 삶을 살아나가길..
응원하겠습니다^^
아.. 말씀만으로두 힘이 납니다.. 꼭 그렇게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 읽으면서 마음이 짠했어요. 당신의 꿈을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인터뷰 잘 마치구 집에가는 내내 혼자 실없이 웃고있습니다.. 이런 꿈을 꾸는 자체루요^-^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많으셨네요~ 문학적으로 풀어내셔서 그런걸까요?^^ 좋은결과 있으시길요! :-)
감사해요..! 이제 정리하고 퇴근하는 길이에요~ 마음만은 선정 여부를 떠나 벌써 출발했다눈^-^
그대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장기 여행자 이십니다.. 부럽습니다 . 응원합니다
이번 주 여름휴가는 제주도 대신, 삼척에 있으니 우산국 가려구요.. 촛대바위에 햇빛으루 불을 붙이고..
초등학교 때 했던 촛불의식 함 해보려구요~감사합니다! 돌돌김님도 이미 멘토이자 여행자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