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하룻동안 내린 비로 봐서는
도저히 그칠것 같지않던 비도
오늘 아침 새침떼기처럼
언제 그랬냐는듯 오리발을 내민다
어제 하루 내린 비의양만해도 130mm로
상상도 할수없는 물폭탄이 낙뢰와 함께 내린것이다
답사일정에 조금이라도 지장을 주지않을까
가슴 조이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역시나 뜬눈으로 지새고 말았다
이른아침 교대앞은 수많은 관광차와
관광을 떠나려는 인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반갑고 보고싶었던 답사팀의 멤버들을 싣고
속리산의 향기에 흠뻑 취해보러 떠나보자
몸도 마음도 넉넉한 한 학우님이
따끈따끈한 백설기떡으로 빈속을 따뜻하게 채워준다
학우님의 마음만큼이나 따뜻하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침햇살에 가을 들녁은
온통 황금빛으로 눈이 시리도록 부시다
버스가 구미를 지나자
지난번 불산가스 누출사고가 문득 떠올랐다
조그마한 실수 하나로 한 마을이
온통 폐허가 돼버린 현장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아팠던지...
과일이며 채소들이 온통 누렇게 타버려
인간도 동물도 먹을수 없는 농작물들을 보고
농민들의 마음은 또 얼마나 타들어갔을까?
그 마을 주민들의 건강만큼은
제발 영향을 끼치지 말아야 할텐데 걱정이다
말티재를 오르는 단풍길은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로
다들 눈을 떼지 못하고 탄성을 자아낸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을 행차할때 타고온
가마를 말로 갈아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구불구불 높은 고갯길은 마치
비단뱀 한 마리를 보는것 같았다
지리산으로 가는 함양 오도재와도
흡사한 정말 아름다운 길이었다
드디어 속리산 정이품송에 도착했다
속리산의 상징이었던 정이품송은
몇년전 태풍에 한쪽가지가 부러져
보는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더했다
정이품송 벼슬이 내려진 이 소나무는
세조가 신병 치료를 위해 이곳 소나무 밑을 지날때
자신이 탄 연(임금이 타는 가마)이 소나무에 걸린다고 말하자
신기하게도 늘어졌던 가지를 들어올려
왕이 탄 연이 무사히 통과하게 되었다고 해서
지금의 장관급에 해당하는
정이품송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이렇듯 말못하는 산천초목 까지도
왕의 말을 알아듣는걸 보면
세조의 왕권강화를 제대로 보여주는
산 증인이라 할수있겠다
가을 단풍의 향연에 초대받아 법주사로 향하는길.
초입엔 노오란 은행잎이 바람에 날려
황금비가 우수수 내리고 있었다
단풍보다도 더 고운 행락객들의 옷차림이 한데 어우러져
누가 단풍이고 누가 사람인지 분간하기 어려울만큼
가을산은 마치 불이라도 난것처럼
그렇게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호서제일가람인 법주사는
의신조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와 불도를 펼친곳인데
부처님의 법이 머무는곳이라하여
법주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박대통령께서도 증축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한다
경내에는 금동미륵대불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 팔상전(부처가 태어나서 부터 입적할때까지 8단계를 그려놓은 그림),
석연지, 마애불등 많은 국보급 문화재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특히 법주사 팔상전은 유일하게 5층 목조탑으로
석가여래의 일생을 8폭의 그림으로 그려 봉안되어 있으며
현존하는 탑중에서 제일 높은것이라고 한다
또한 금동미륵대불은 어마어마한 크기와 높이로
중생들을 내려보고 있었고
지하엔 또 다른 세계가 방문객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수천개도 넘는 아기부처가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각자의 소망을 빌고 있었기때문이다
워낙 넓은 경내에서 답사팀은 어디론가
뿔뿔히 흩어져 보이지 않고
해설도 들을수 없었지만
나는 나름대로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남은 멤버 3명이 미아가 되어 바쁘게 뛰며
경내를 나오는데 어찌나 아쉽던지
팔상전과 금동미륵대불에 눈도장을 한번 더 찍고
바쁜 와중에도 돌다리를 건너 돌탑도 쌓고
소원도 빌며 날다람쥐처럼 또 그렇게 뛰었다
정신없이 뛰어가는 내모습이 마치 1박2일 멤버들이
복불복 게임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공기를 가르며 뛰는 사이 코끝으로 와닿는
피톤치드의 은은한 향이 정신마져 맑게 해준다
점심은 속리산에서 채취한 산나물로 차려진
산채 비빔밥으로 깔끔하면서도 정말 맛있었다
보은에 황토대추가 유명한것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거리 곳곳에서 나눠주는 황토대추는
크기도 클뿐 아니라 맛또한 일품이었다
이렇게 행복한 점심식사를 하고 가을햇살을 받으며
보은집회가 열렸던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으로 가는길.
이곳 역시 붉은 단풍과 억새의 물결로
가을이 무르익고 있었다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며 최후의 격전지로 몰렸던 이곳
교조 최제우의 억울함을 풀고
인내천과 평등사상을 내세우며 종교집회이기 전에
사회정치적인 집회의 전환점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농민들의 희생이 있었겠는가!
아픈 역사의 현장을 뒤로 하고
오늘 마지막 코스인 삼년산성으로 향하는길.
사과밭엔 빠알간 사과가 주렁주렁,
감나무엔 달콤한 감이 주렁주렁,
대추밭엔 대추가 주렁주렁,
내 눈엔 행복이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삼년산성은 삼국의 국경지대로 신라때 축성한 성인데
3년동안 3천명이 쌓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성벽의 높이나 폭이
다른성에 비해 굉장히 높고 넓어 보였다
시골 농부 아저씨 차림에
메뚜기를 잡고 계시던 문화해설사님
우리를 보자 반가워서 얼른 뛰어 나오신다
삼년산성은 성 폭이 넓고 문밖에서
문을 열도록 설계 되어 있어서 150번의 전투에서
한번도 적에게 패한적이 없다고 한다
화살로 쏘아서 방어,
문여는데 창으로 2번째 방어,
저수지도 적을 방어 하는데 해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성벽 밑으로 있는 저수지는 김생이 이곳에 왔다가
억새의 흔들림이 마치 누에 눈썹과 같다 하여
'아미지'라는 이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해설사님을 따라 적을 유인했다는
치성에도 올라가보니 보은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성을 따라 한바퀴 돌다보니
오늘 운동 한번 제대로 한것같다
내려오는길에 간단하게 저녁겸 막걸리 파티가 열렸다
답사때마다 신경쓸 일도 많은데
항상 김치와 술안주까지 챙겨오는
회장님의 정성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진다
본인 짐하나 챙겨오는것도 힘들건데
세심한것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주시는
회장님! 감사합니다
몇년동안 모시고 답사를 같이 다녔던 교수님
무척 수척해진 얼굴에
머리에도 서리가 하얗게 내려
인생무상을 느껴보지만
건강에 해로운 구름과자는
이제 그만 끊으시면 안될까요?
스승님의 건강이 염려스러워서 그런답니다
이제부터 담배 피우면
브라우니(개콘에 나오는 개)
물어 물어 꽉 물어~(멍멍)
오늘 가을 단풍과 함께 답사를 마치고
극락왕생한다는 문장대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나이를 먹어 늙는게 아니라
잘익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것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단풍처럼 내인생의 가을도
곱게 물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실 오늘 지인의 결혼식이 있어
편치 않은 마음으로 답사를 왔지만
답사는 나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하루의 선물을 맘껏 부여해준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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