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比스님 유마경 강의 9
一品. 佛國品
((19)(20)삼십칠도품~수기심정하야 즉불토정이니라)
불자들의 이상이 불국토 건설이고 불국토 건설은 우리 불자들만의 이상이 아니라 사실은 부처님의 꿈이기도 합니다.
불교의 목적이다, 부처님의 꿈이 불교의 목적이다, 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죠.
그래서 여러가지 경전마다 견성(見性)이다, 성불(成佛)이다, 무슨 극락정토(極樂淨土)다, 해탈(解脫)이다, 또는 열반(涅槃)이다, 그런 불교 이상을 그렇게 표현을 하죠.
그런데 여기서는 불국토(佛國土)라는 그런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참 불국토라는 말이 소리도 부드럽고, 뜻도 좋죠 불국토(佛國土).
불국토 건설하는 데 어떤 조건들을 필요로 하는가
또 어떤 원인을 가지고 불국토를 건설하는가
불국토 건설에 필요한 원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살펴보는 그런 시간입니다.
저 앞에서부터 삼심(三心) 소개했죠.
곧은 마음이 보살의 정토니, 또는 깊은 마음이 보살의 정토니, 보리심이 보살의 정토니, 내지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이런 것이 보살의 정토다.
또 사무량심(四無量心)이 보살의 정토다, 사섭법(四攝法)이 보살의 정토다,
방편(方便)이 보살의 정토다,
이렇게 해서 쭉 설명을 해왔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三十七道品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念處, 正勤, 神足, 根, 力, 覺, 道 衆生이 來生其國하며
(삼십칠도품이 시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시에 념처, 정근, 신족, 근, 력, 각, 도 중생이 래생기국하며)
37도품이 보살의 정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에
염처, 정근, 신족, 근, 력, 각, 도의 중생에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며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이 보살의 정토다, 그랬어요.
숫자가 아주 많은데 보살정토(菩薩淨土)라고 하는 토(土)자가 잘못됐죠.
선비 사(士)자로 됐습니다.
밑에 것이 길어야 되겠죠.
삼십칠도품이 보살의 정토니, 예습해오셨어요 모두? 찾아 보셨어요?
삼심칠도품 찾아보고, 사념처, 사정근, 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 책에 딸린 사전에 다 나와 있는데,
꿀 먹은 벙어린가, 어떻게 하고도 말이 없는지, 안해서 말이 없는지 알 수가 없네요.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이, 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 또는 삼십칠조도품 이렇게 이야기해요.
도울 조(助)자, 도를 돕는 꺼리다, 이 말이죠.
품(品)이란 말은 꺼리라는 말이겠죠.
그것이 보살의 정토가 된다.
보살의 정토 원인이 된다, 이런 말이 됩니다.
그러면은 그런 것이 원인이 돼서 보살이 성불했을 때에는
사념처, 사정근, 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의 중생들,
또 그것을 잘 실천하는 중생들,
그런 것들을 사념처, 사정근 내지 칠각지, 팔정도를 잘 실천하는 중생들이 그 나라에 래생(來生) 와서 태어나며 그랬어요.
거기 또 사선을 그어야겠죠.
여기 중요한 거, 낱낱이 삼십칠조도품을 다 설명은 못하더라도 우선 중요한 거 사념처부터 처음에 꺼 사념처부터 한 번 보도록 합시다.
사념처(四念處): 네 가지 경계가 지혜로 관찰하는 곳이란 말이니
소승행인이 五정심관을 닦은 뒤에 수행하는 것.
①몸은 부정한 것으로 관하고
②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것으로 관하고
③마음은 무상한 것으로 관하고
④법은 내가 없는 것으로 관하는 것.
사념처는 몇 쪽에 있죠? (124쪽)
124쪽의 시옷 항의 두 번째 사념처(四念處)있죠.
네 가지 경계가 지혜로 관찰하는 곳이라는 말이다.
네가지 경계가 지혜로써 관찰하는 곳을 말하는데 소승행인이 오정심관(五停心觀)을 닦은 뒤에 수행하는 것.
그건데 몸은 부정한 것으로 관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몸은 부정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이예요. 관하고 이 말이예요. 관하고. 거기가 하나입니다.
그 다음에 받아들이는 것은 괴로운 것으로 관하고, 콤마를 찍어야겠죠, 또 마음은 무상한 것으로 관하고, 그리고 법은 내가 없는 것으로 관하는 것, 요게 이제 사념처입니다.
그걸 이제 사전적인 말로는 관심무상 그래요.
참 관신부정(觀身不淨) 몸은 부정한 것으로 관한다.
또 수는 관수시고(觀受是苦) 받을 수(受)자입니다.
받아들이는 것은 전부 괴로운 것이다.
그 다음에 관심무상(觀心無常) 그다음에 관법무아(觀法無我) 이렇게 이제 이야기해요. 요건 이제 풀어놓은 것인데.
이 몸뚱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우리가 좋다고, 애지중지하고 맨날 닦고 무슨 칠하고 그래쌌지만은 왜 이거 닦고 칠하겠어요, 부정하니까 닦고 칠하는 거예요 사실은.
요즘 사람들은 그 뭐 매일 목욕 안하면 못 견디죠, 습관이 돼가지고.
옛날 사람들은 뭐 잘도 견뎠는데. 그래서 몸은 이러나 저러나, 안으로나 바깥으로나, 뭐 땀이 있고 때가 끼고 하는 것만 아니고 내용도 사실은 따지고 보면 전부 부정한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것입니다.
몸에 너무 애착을 갖는 사람들은 그런 관법이 필요해요.
그래서 몸에 애착을 너무 가진 사람들에게 부처님이 가르치는 하나의 방법이라.
그렇게 생각을 해서 몸에 대한 좀 어떤 혐오감 같은 것도 좀 가질 수도 있어야 된다고요.
그리고 너무 그렇게 몸을 무시하고 학대해도 그것도 잘못이라,
불교는 늘 중도를 가르치거든, 중도(中道)
몸을 부정해도 이 몸뚱이 아니면 어떻게 수행을 해요.
또 그렇다고 몸에 너무 애착을 가지면 그것도 수행하는 태도가 아니고, 바로 보는 것도 아니다, 바로 보는 것도 아니라구요.
바로 보는 데는 사실 정관(正觀)인데 바로 보는 데는 부정한 것으로만 봐도 안되고, 너무 또 영원한 것으로 봐도 안된다.
그래서 이제 너무 이제 애착을 갖는 사람에게는 부정한 것으로 관하라.
그 다음에 수(受) 우리가 감지하는 것입니다. 받아들이는 거죠.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은 전부 괴로운 것이다.
그 다음에 마음, 뭐가 무상하다 세월이 무상하다 인생이 무상하다 해도 마음 같이 무상한 게 없어요.
우리가 조삼모사 그러지요, 또 조석지변 그러고, 마음이 빨리 변하는 건 여러가지 말들이 많잖습니까, 사실 그래요.
금방 이럴까 했다가 또 이럴려고 생각하면 그게 아니거든, 그래서 그럴 생각이 잘 안나고, 그래서 우리가 그럴 갖다가 ‘변덕을 부린다’ 그래싸요.
그게 본래 우리 마음이라, 변덕 부리는 게 본래 사람 마음이그렇게 돼 있는 거예요. 마음구조가 본래 그래 돼 있어.
그런데 변덕을 안부리면 그게 사람 마음이 아니예요, 또 사실은. 변덕을 부리는 게 사람 마음이라고.
그게 무상하니까 그래요. 무상 안하고 가만있음 변덕 안 부리지.
그럼 발전도 없고, 새로운 창의적인 생각도 못해. 창조적인 생각도 못해요.
그러니까 너무 변덕을 지나치게 부리는 것도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한결같은 마음을 가만히 가지고 있으면 그것도 못 봐요.
아니, 봄도 되고 했으면, 사람 마음도 좀 변하고 말이죠,
방도 좀 다시 꾸미고, 옷도 좀 갈아입을 줄도 알고, 어떻게 변화를 좀 이렇게 부려야 그래도 사람 사는 맛이 나지.
봄인지, 여름인지, 겨울인지, 겨울이 다 가고 봄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내- 겨울옷을 입고 있으면 그것 뭐예요.
어떻게 보면 한결같다, 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한결 같은 게 아니예요, 그건.
그렇게 변화해야 되요. 변해야 되는 게 또 마음이기도 하다구요. 그렇다고 또 너무 변해도 그것도 곤란해, 이 옷 입을까 하고 입고 나가다가 문 열다가 다시 또 들어와서 또 딴 옷 갈아 입으면 그것 또 뭣에 써요. 그거 곤란하거든.
그러니까 부처님이 중도를 이야기 하는 게 바로 그것이거든
너무 한곳에 치우쳐선 안된다. 치우치면은 괴로운 일이 생겨,
그래서 부처님이 치우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편협이거든, 편견이고, 그걸 이제 변견이라,
불교에서는 갓 변(邊)자 써가지고 변두리 생각이라 그러거든요.
그거 촌놈 생각이다 이런 말도 된다구요. 변두리에 변방에 산다.
그러면은 견문이 좁다, 이런 뜻이 되거든요.
그래서 마음은 무상한 것으로 관한다.
변하게 돼 있는 거니까 그 변한 걸로 알아야 돼.
그런데 왜 그렇게 무슨 뿌리 되도록 같이 어쩌자고 저쩌자고 약속은 해놓고 왜 변했느냐, 니 죽고 내 살자고 막 그렇게 칼부림을 그렇게 할 게 아니라구요. 변하게 돼 있는 거야, 이게. 변하게 돼 있어. 그렇다고 마음대로 변해 가라고 내버려 둬서도 또 안되지만은.
변했으면 변하는 걸 또 이해하는 것도 바람직한 거다,
그래 이해하라는 뜻이야, 관한다는 말은, 관한다는 말은 그렇게 본다는 말이야,
관찰한다 이 말이야 변한 것을 관찰한다.
세상이, 시절이 변하는 것은 우리가 잘 수용하잖아요.
아 봄됐구나 변한 걸 아주 기분 좋아하거든요.
아유 벌써 봄이라고 참 날씨 따뜻해서 좋다고, 그 변한 걸 오히려 더 좋아하면서,
왜 다른 거는 변하니까 또 싫어해, 사람이 그렇게 문제가 많은 거죠.
그런 것들이 이제 말하자면 잘 관찰하는 것이 하나의 지혜고, 정토를 실현하는데, 불국토를 실현하는데 말하자면 하나의 원인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 한 가지만 잘 우리가 실천을 해도요, 정토실현이 되는 것입니다.
불국토가, 불국토 건설이 가능한 거예요.
그 다음에 관법무아(觀法無我)라고 해서 모든 법은 아(我)가, 내가 없다 라는 말은 고정불변하는 주체가 없다 무아사상이죠.
불교에서 무아는 뭐 기본 아닙니까, 기본.
마치 파초와 같아서 파초를 벗기고 벗기고 우리 그 다마내기처럼 벗기고 벗기고 안에 뭐가 있을 것 같지만 계속 벗겨나가면 껍질, 껍질만 있지 안에 건 없다구요.
마찬가지라고 그 어떤 것도 분석해서 들어가면은 주체라고 하는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어.
나라고 하는, 내라는 말은 주체예요, 주체.
내라고 할만한 주체의 알맹이는 아무것도 없어. 모든 사람도 그렇고. 모든 마음도 그렇고.
마음 마음하지만은 마음도 이마음 저마음 말이죠, 수상행식이니 온갖 감정들 다 떼버리고 분석해 들어가면 텅 비었어요. 안에는 없다고요, 없어요. 무아예요,
내가 없어 나라고 하는 주체가 없다, 이게 이제 사념처관이다.
그다음엔 사정근(四正勤) 부지런히 열심히 한다.
부지런히 닦는다 하는 건데,
사정근은 거기서 한 장 넘겨서 127쪽에 위에서 세 째 항에 있네요.
사정근(四正勤) ; 네 가지를 부지런히 공부한다는 것이니
①이미 생긴 나쁜 짓은 부지런히 끊고,
②아직 생기지 않은 나쁜 짓은 나지 못하도록 부지런히 공부하고,
③아직 나지 아니한 좋은 일은 나도록 부지런히 공부하고,
④이미 생긴 좋은 일은 잘 자라도록 부지런히 한다.
사정근. 네가지를 부지런히 공부한다는 것이다 뭔고 하니
이미 생긴 나쁜 짓은 부지런히 끊고,
또 아직 생기지 않은 나쁜 짓은 나지 못하도록 부지런히 공부하고,
또 악에 대해선 그렇고 선에 대해서는 아직 나지 아니한 좋은 일은 나도록 부지런히 공부하고,
이미 생긴 좋은 일은 잘 자라도록 그 선한 일이 잘 자라도록 부지런히 한다.
참 좋은 말이죠. 이중에요, 하나만 해도 되요. 하나만 열심히 해도 됩니다.
하나만 열심히 해도 불국토 건설이 가능한 거예요. 정토실현이 가능한거야,
그러면 그거 하나 가지고도 불국토에 산다 이거야 나는.
악한, 이미 생긴 나쁜 어떤 일들 그건 없도록 없앤다.
또 이미 생긴 좋은 일은 계속 자라게 한다. 안 생긴 좋은 일은 새로 생기게 한다. 참 좋은 말이거든요. 이미 생긴 좋은
일, 아 이거 좋은 일이다 싶거든 계속 장려를 하세요. 장려, 계속 장려를 해요, 장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중요한 거예요.
그 다음에 사신족(四神足)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신족은 26쪽, 126쪽에
사신족(四神足) : 네 가지 신통의 발이란 뜻으로 몸은 발을 의지하여 서는 것같이 六신통이 이 네 가지 선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므로 선정을 발이라 하였다.
①욕(欲)신족이니. 가행(加行)하는 자리에서 이 선정을 일으키고자 함이요,
②근(勤)신족이니. 가행하는 자리에서 이 선정을 부지런히 닦음이요,
③심(心)신족이니, 가행하는 자리에서 일심에 머무는 것이요,
④관(觀)신족이니. 이치를 관찰함이라, 四여의족이라고도 한다.
(거 물 새요? 그 쪽 안에 거 잠궈요. 안에 밑에. 잘 고쳤다고 좋아하더니 (웃음) 걸레로 닦고 그냥 앉으세요.)
사신족은, 보죠,
네 가지 신통의 발이란 뜻으로서 몸은 발을 의지하여 서는 것같이 육신통이 이 네 가지 선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므로 선정을 발이라 하였다. 그랬어요.
사신족(四神足) 신통의 발, 네가지 신통의 발 그 말이죠, 사신족은.
첫째는 욕(欲)신족인테 가행(加行)하는 자리에서 이 선정을 일으키고자 함이요, 가행이라고 하는 것은 부지런히 실천한다 이 말입니다.
부지런히 실천한다. 또
이는 근(勤)신족이니. 가행하는 자리에서 이 선정을 부지런히 닦음이요,
또 심(心)신족, 가행하는 자리에서 일심에 머무는 것이요,
관(觀)신족이니, 이치를 관찰함이라, 四여의족이라고도 한다.
요렇게 이제 말하고 그 다음에 고건 뭐 좀 까다로운 교리죠.
그다음에 오근 오력을 보도록 하죠.
오근은 몇 쪽에 있죠, 139쪽에 있습니다.
오근(五根)
①三보, 三체를 믿는 것[信根],
②꾸준히 착한 법을 닦는 것[精進根],
③옳은 법을 생각하는 것[念根],
④마음을 한 곳에 머물러 산란하지 않는 것[定根],
⑤진리를 생각하는 것[慧根],
이 다섯 가지는 온갖 착한 법을 내는 근본이므로 다섯 뿌리라 한다.
또한 눈, 코, 귀, 혀, 몸도 五근이라 한다.
오근(五根), 밑에서 두 번째 항, 삼보(三寶), 삼체(三體)를 믿는 것 그랬어요.
신근(信根) 꾸준히 착한 법을 닦는 것 정진근(精進根),
또 옳은 법을 생각하는 것 염근(念根),
마음을 한 곳에 머물러 산란하지 않는 것 정근(定根),
진리를 생각하는 것 혜근(慧根),
이 다섯 가지는 온갖 착한 법을 내는 근본이므로 다섯 뿌리라 한다.
또한 눈, 코, 귀, 혀, 몸도 오근이라 한다.
요 오근은 생각할 게 없어요.
여기서 오근 오력 할 때는 여기서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오력(五力)은 바로 밑에 있죠.
오력(五力) ; 다섯 뿌리가 커져서 다섯 가지 장애 되는 것을 대치(對治)하는 힘을 말함이니,
①믿는 힘[信力],
②정진하는 힘[精進力],
③생각하는 힘[念力],
④선정힘[定力],
⑤지혜힘[慧力
다섯 뿌리가 커져서 오근, 위에 있는 오근. 거기서 다섯 가지 장애 되는 것을 대치(對治)하는 힘을 말한다, 그랬어요.
믿는 힘, 정진하는 힘, 생각하는 힘, 선정하는 힘, 지혜 힘.
이렇게 해서 오력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오력했고.
그 다음에 칠각지 (七覺支) 보죠. 칠각지.
칠각지(七覺支) ; 옳게 깨닫는 법을 일곱 가지로 나눈 것이니,
①지혜로 법의 참되고 거짓된 것을 가리키는 것,
②용맹한 마음으로 참된 법을 꾸준히 행하는 것,
③선한 법을 얻고 기뻐하는 것,
④번뇌 마음을 끊고 몸과 마음이 가뿐한 것,
⑤선정과 지혜를 항상 생각하는 것,
⑥한 경계에 마음을 머물러 두어 산란하지 않는 것,
⑦허망과 온갖 법을 버리고 마음이 시원하여져서 다시 생각하지 않는 것.
칠각지는 153쪽에 위에서 세째 항에 있습니다. 옳게 깨닫는 법을 일곱 가지로 나눈 것이다 그랬어요.
지혜로 법의 참되고 거짓된 것을 가리키는 것,
용맹한 마음으로 참된 법을 꾸준히 행하는 것,
선한 법을 얻고 기뻐하는 것,
번뇌 마음을 끊고 몸과 마음이 가뿐한 것, 그 다음에
선정과 지혜를 항상 생각하는 것,
한 경계에 마음을 머물러 두어 산란하지 않는 것,
또 허망과 온갖 법을 버리고 마음이 시원하여져서 다시 생각하지 않는 것.
고게 이제 칠각지고 그 다음에 팔정도인데
팔정도(八正道)는 156쪽을 넘기십시오.
거기서 한 서너장, 두장 넘기면은
팔정도(八正道)
①정견은 四제의 이치를 올바르게 보는 것
②정사유는 정견으로 본 四제의 이치를 올바르게 생각하여 늘게 하는 것
③정어는 진실한 지혜로 구업(口業)을 닦아서 옳지 못한 말을 하지 않는 것
④정업은 진실한 지혜로 신업을 닦아서 잘못된 동작이 없는 것
⑤정명은 三업이 청정하여 정당한 법으로 살아가는 것
⑥정정진은 진실한 지혜로 열반에 이르는 도를 꾸준히 닦는 것
⑦정념은 진실한 지혜로 정도를 생각하는 것
⑧정정은 진실한 지혜로 무루 선정에 들어가는 것.
팔정도는 너무나도 유명하죠.
우리가 고집멸도(苦集滅道) 이야기 할 때 도(道)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이라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정견(正見) 바른 견해 이런 말이죠.
그 다음에 뭐 정사유(正思惟) 정어(正語)는 바른 생각, 바른 말 그 다음에 정업(正業) 바른 직업, 바른 행동 그런 말이죠.
정명(正命)은 또 거기 자세한 것 삼업이 어쩌구 이야기 있는데 三업이 청정하여 정당한 법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정명이예요.
그 다음에 정정진(正精進) 바르게 정진하는 것, 정념(正念) 이건 이제 바르게 기억하는 것이라고도 하고 그럽니다. 진실한 지혜로 정도를 생각하는 것 그 다음에 정정(正定)은 진실한 지혜로 무루 선정에 들어가는 것. 선정(禪定)이란 정(定)자죠.
이런 것들이 말하자면 모두 해서 37인데 이 하나하나가 모두 도를 닦는 꺼리가 되고, 따라서 결국 도를 닦는다는 말은 도를 깨닫는다는 말이 되고,
그것은 곧 도를 깨달으면 뭐겠어요, 불국토 건설이고 정토 구현이다 이렇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서 불국토 건설의 원인들, 그것이 된다, 하는 것입니다.
1-(19)
廻向心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得一切具足功德國土하며/
說除八難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國土에 無有三惡八難하며/
自守戒行하고 不譏彼闕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國土에 無有犯禁之名하며 /
十善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命不中夭하고/
大富梵行하며 所言이 誠諦하고/
常以軟語하며 眷屬이 不離하고/
善和諍訟하며 言必饒益하고/
不嫉不喪하는 正見衆生이 來生其國하나니라
지은 공덕을 잘 회향(廻向)하는 것이 보살의 정토니 보살이 부처될 때에 온갖 공덕을 갖춘 나라를 얻게 되느니라.
팔난(八難)을 말하여 제하는 것이 보살의 정토니 보살이 부처될 때에 그 나라에 삼악도와 팔난이 없느니라.
스스로 계행을 지니고 다른 이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정토니 보살이 부처될 때에 그 나라에 계율을 범한다는 이름이 없느니라.
십선을 닦는 것이 보살의 정토니 보살이 부처 될 때에 단명 하지 않고 살림이 넉넉하며 깨끗한 행실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성실하며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하고 권속이 흩어지지 아니하며 다투는 일을 잘 화해시키고 말하는 것이 남에게 이익되며 남을 미워하지 아니하며 정견(正見)을 지닌 중생이 그 나 라에 와서 나느니라.
廻向心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得一切具足功德國土하며
(회향심이 시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시에 득일체구족공덕국토하며)
회향심이 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시에 일체 공덕을 구족한 국토를 얻는다
그 다음에 회향심(廻向心)이 이 보살이 정토니 그랬어요.
유의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향이 뭡니까. 전부 되돌린다 이 말이예요.
예를 들어서 기도회향 그러면은 기도를 해가지고 그 기도한 것을 되돌려가지고서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게 한다,
아니면은 그 기도한 것이 원인이 되어가지고, 보다 더 큰 기도, 보다 더 차원 높은 공부를 한다.
이게 회향의 뜻이예요. 회소향대(廻小向大)라고 그럽니다.
작은 것을 돌이켜서 큰 데로 향한다 이게 회향이거든요.
우리는 보통 회향은 ‘끝낸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끝내는 게 아니예요.
예를 들어서 기도를 끝냈다 이거예요, 그것도 회향이죠,
끝냈으면 그 한 기도를 그동안 한 기도를 어디에 쓸 것인가,
기도를 했으면은 뭘 위해서 기도를 했으면은 그 일을 열심히 해야 되죠 이제는,
원인제공이라고요 사실은.
준비 단계거든요, 준비단계 완료라는 뜻이라.
준비단계 완료됐으면 실천에 옮겨야죠. 그게 회향이라.
그래서 여기 보면 회향은 보통 내가 공덕을 많이 닦은 것,
그것을 누구에게 회향할 것인가, 누구를 향해서 그것을 베풀 것인가 이 뜻입니다.
그래서 회향심이 이 보살의 정토인데 보살이 성불할 때 일체 공덕을 구족한 국토를 얻는다.
모든 공덕을 다 구족한 그런 국토를 얻는다.
이건 예를 들어서 우리가 비근한 하나의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하자면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떡 태어났다 이거예요.
태어나니까 예를 들어서 A라고 하는 사람이 태어나니까 아무것도 없어.
집이 가난하고 말이지, 자기 집도 없고, 공부할 조건도 안 되고 제대로 먹고 살기도 힘들고, 그런 조건에 태어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태어나니까 모든 것이 다 구족해. 형제자매도 있고, 부모도 있고, 온갖 집도 생활도 넉넉하고 공부할 조건도 좋고, 그런 집에 태어날 수도 있다 이거야.
그런 집이 말하자면 두 번째 경우가 일체공덕을 구족한 국토.
일체 공덕을 구족한 국토 공덕이 구족한 집에 태어나.
우리가 예를 들어서 공덕이 구족하지 못한 집에 태어난 것은 또 그것대로의 원인이 있는데 그 원인이 뭐냐 우리가 회향을 잘 못했다. 이렇게 보면 되요.
여기 보십시오.
회향심(廻向心)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다
우리가 회향을 내가 닦은 것을 내가 쓰지않고,
다른 사람에게 회향하면 그 원인이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거예요.
나에게로 돌아오니까 내가 그런 환경속에서 살게 된다.
득일체구족공덕국토(得一切具足功德國土)
일체 공덕을 구족한 국토를 얻게 된다, 이런 말입니다.
그게 뭡니까. 뭐든지 잘 갖추어진 환경,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아유 좋은 집에 태어났다. 좋은 환경에 태어났다,
왜 그런 데 태어나겠어요.
자기가 그렇게 지어놨으니까 그런 데 태어나는 거죠.
회향이라고 하는 말과 득일체구족공덕국토라고 하는 말과의 관계성을 우리가 잘 생각하면 좋죠. 그다음에
說除八難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國土에 無有三惡八難하며
(설제팔난이 시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시에 국토에 무유삼악팔난하며)
설제팔난이 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할 때 그 국토에는 3악8난이 없다
설제팔난(說除八難)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다 그랬어요.
이건 여덟가지 어려움을 설명해서 제거한다,
제거하는 것이 이 보살(菩薩)의 정토다, 그랬어요.
보살이 성불(成佛) 할 때에 그 국토(國土)에는 삼악팔난(三惡八難)이 없다,
무유(無有) 있음이 없다 이랬는데 삼악과 팔난이 없다,그랬어요.
팔난을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팔난(八難) 154쪽 한 번 봐주세요. 154쪽 피읖에 보면 세 번째 팔난이 있죠.
팔난(八難) : 부처님을 뵈옵지 못하고 불법을 듣지 못하는 여덟 군데 장애의 어려움이 있는 곳이니, 지옥, 아귀, 축생, 북구로주(북쪽에 살기좋은 나라), 장수천,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들, 세상에 꾀쟁이 말쟁이, 부처님보다 먼저 나거나 뒤에 나는 이들.
부처님을 뵈옵지 못하고 불법을 듣지 못하는 여덟 군데 장애의 어려움이 있는 곳,
이렇게 했어요.
첫째는 지옥, 아귀, 축생, 요것은 삼악에 해당됩니다.
삼악도 되고 팔난 속에 세 가지도 되고 그래요.
처음에 삼악팔난(三惡八難) 했으니까 처음에 삼악(三惡)은 요거고,
팔난(八難)은 고 다음에부터 합해 가지고죠.
북구로주라고 하는 곳은 아주 북쪽에 굉장히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세계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북울단월(北蔚單越)이라고도 하고 북구로주라고도 하는데
그 나라에 태어나면 불법이 먹혀들지가 않는다는 거예요.
왜냐, 모든 것이 너무 풍요롭고 온갖 것이, 신체도 건강하고, 부족한 게 없기 때문에 그래서 도 닦을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기도할 생각을 안 하는 거야,
그래서 북울단월에 태어나면 안 좋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장수천,
여기도 굉장히 복 있는 사람들이 태어나는 곳인데 오래 사니까,
아주 생활이 풍요롭고, 굉장히 건강하고, 오래 사는데 뭐 불법이 그렇게 필요하겠어요.
누가 죽어가지고 아- 애석하다, 마음에 멍이 들고 말이죠,
마음이 아파가지고 그래 부처님한테 가서 의지하고, 천도라도 좀 지내줘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 말하자면 부처님을 찾게 되고 불교를 찾게 되거든요.
그 장수천은 오래 잘 먹고, 오랫동안 잘 살다가 싫증이 날 때, 정말 싫증이 날 때 그때 죽는다면은 뭐 싫증나서 죽었는데 천도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그런 국토도, 그런 세계도, 그것도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팔난 가운데 하나가 된다. 그 다음에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 요걸 하나로 칩니다.
이거 다 참 곤란하죠.
우리가 사는 이 사바세계는 음성으로써 서로 의사 전달하는데 귀가 멀었다 참 그거 어려울 거예요.
요즘은 점자가 있지만 그거 어디 쉽습니까 소경도 마찬가지예요.
못 본다면 그 얼마나 불교를 믿고 싶어도 불편하겠어요.
부처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경전의 그 글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다음에 벙어리 이거 귀머거리 되면 벙어리는 같이 따라온다고 하더만 벙어리가 돼도 귀머거리가 되고 그런다대요.
이 세 가지 안 된 것, 참 이건 정말 자다가도 일어나서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듯이 이건 또 우리가, 우리 신체의 모습으로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이와 같이 우리의 그 마음의 눈이 어둡고, 마음이 벙어리가 되고, 마음이 소경이 되면, 그것 또한 얼마나 참 답답하고 딱하겠습니까.
사실 부처님이 보기에는 우리들 중생이 그런 중생이예요.
우리가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 보고서 참 딱하다,
이렇게 생각하듯이 부처님이 우리 보고 그렇게 딱하게 여기는 거예요.
그래도 부처님의 깨달음의 말씀을 이렇게 참 귀로 스치는 그런 인연이라도 짓는 여러분들은 참으로 복이 많은 분들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데 대해서 눈 뜨지 못하고, 그런 데 대해서 마음에 어떤 가치를 느끼지 못하면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뭐겠습니까 그대로 귀머거리요,
소경이요 벙어리인거라.
‘그거 뭐 할라고, 무슨 재미가 있어서 불교 공부하느냐’ 고,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고 그런 사람들 많거든요, 사실은.
그 사람이 다름 아닌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야. 그런 이치가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게 납득이 안되니까.
참 사람 마음이라고 하는 게 천차만별이예요.
그게 이제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여덟 가지 조건 중에 들어갑니다.
우리 발원문에 뭐 있죠.
‘삼재팔난 만나지 않고 불법 인연 구족하여’
그런 말이 있잖습니까 거기에 팔난이라는 게 이겁니다.
여긴 삼악이라고 했지만 거기에선 삼재라고 그랬어요.
삼재라고 하는 것은 수재 풍재 화재를 말하지 아마?
그 다음에 세상에 꾀쟁이 말쟁이라고 이런 말을 했어요.
요건 이제 세지변총(世智辯聰)이라고 한문에는 그래 돼 있는데 세상의 어떤 꾀쟁이 말쟁이를 말하는데 이건 뭔 말인고 하니,
이건 꾀쟁이 말쟁이라고 하는 말은 그야말로 꾀쟁이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아니다, 하는 것입니다.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옳은 이치를 옳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고, 선의를 따르는 사람이고, 바른 진리를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예요.
그런데 머리를 막 굴려가지고, 자기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하고 저렇게 분석 해가지고 아 그까짓 거 별거 아니라고 부처님도 별 거 아니라고, 부처님의 깨달음도 별 거 아니라고, 이런 사람들이 또 있거든요.
자기 나름대로 자기 머리만 믿고 그걸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한문에는 세지변총(世智辯聰)이라고 하는데 여기는 꾀쟁이 말쟁이라고 그래요.
말은 번드르르 하죠. 그리고 자기 꾀가 있어가지고서 자기 꾀로써 전부 판단 다 해버려요.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가는, 그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절대 지혜가 그건 지혜가 아니예요.
지혜는 정도를 갈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이예요.
잘 못 안다고요,
보면은 그래 가지고
‘아휴 저 사람 지혜롭다’
고 지나치면 우리가 꾀가 많다고 그러죠.
꾀라고 하는 건 그건 좋은 게 아니거든요.
정도(正道)를 갈 줄 아는 사람, 모든 걸 바로 볼 줄 아는 사람, 이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보다 먼저 나거나 뒤에 난 이들,
이건 불전불후(佛前佛後)라고 해가지고 지금은,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오셨던 때는 삼천 년 전이지만 그래도 석가모니 부처님이 지금도 이렇게 버젓이 살아 있잖아요. 그러니 불후가 아닙니다.
불교가 있는 이 시대에 우리가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해당이 안되요.
그런데 이 불교가요, 어느 만치만 갑니다.
어느 만치만 가고 나중에 불교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가 있습니다.
그걸 불후라고 그래.
너무 일찍 태어나서 불교가 아직 이 세상에 있기 전에 온 사람은 불전이라, 불전 부처님 앞에 났다 이거야 그런데 불교 다 사라진 뒤에 태어나면은 그것도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하니까 부처님 이후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것이 이제 여덟가지 부처님 법을 만나지 못하는 장애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서 앞에는 설제팔난, 팔난을 설해서 제도한다.
그것이 보살의 정토다,
그것을 설명을 하고 그것을 우리가 이해를 해서 그것을 없애는, 그런 장애를 없애는 것이 보살의 정토다 그랬어요.
그러면 보살이 성불시에 국토에 삼악팔난이 없다. 그다음에
自守戒行하고 不譏彼闕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國土에 無有犯禁之名하며
(자수계행하고 불기피궐이 시보살정토니보살이 성불시에 국토에 무유범금지명하며)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방하지 않는 것이 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했을 때 그 국토에는 계율을 범했다고 하는 말이 없다.
자수계행(自守戒行)하고 불기피궐(不譏彼闕)이 시보살정토(是菩薩淨土)인데 이건 뭔 말이고 하니 스스로 계행을 지키고 불기피궐은 불기(不譏)는 비방하지 않는다는 말이고, 누굴 비방하지 않는고 하니 피궐(彼闕)을 비방하지 않는 것,
피궐은 뭔가 하니 다른 사람의 잘못, 궐(闕)은 빠졌다 이 말 아닙니까, 궐했다.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을 비방하지 않는 것 이거 중요해요
스스로 계행을 지키는 것 까지는 좋은데, 지켜 놓고 딴 사람이 자기보다 못하면은 그냥 비방을 퍼붓는 사람이 있거든.
그건 차라리 자기가 잘 못하는 것만 못해. 잘못하고 남 비방안하는 게 낫다고요.
조금 잘해놓고 남 못한거 비방하면 그거는 자기 잘 하는 거 하나마나야,
오히려 안하는 것만 못해.
차라리 잘못하고 남 비방안하는 게 낫지, 자기에게는 그게 낫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조금 해놓고 남 그렇게 못하는 거 비방하는 것 그거 감복하기도 보통 감복하는 게 아니죠.
우리는 습관상 남 조금 못하면 그냥 그 못한 것 지적하기가 일쑤고, 지적하기를 아주 재밌어 하고, 고소해 하고 그러잖아요.
크게 어떤 헛점만 노리고 있다가 언젠든지 잘못하면 팍 그 헛점을 찍어가지고, 들춰내가지고 공격하고 이게 중생들 습관이라구요.
그 습관을 버려야 돼 우리가. 자꾸 고쳐야지, 깜짝깜짝 놀래서 후회를 하고, 그런 일을 저지르면 후회를 하고, 아 이래선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는 생각을 자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방하지 않는 것,
이것이 보살의 정토인데 보살(菩薩)이 성불(成佛)했을 때에 그 나라는,
그 사람이 성불했을 때에 그 국토(國土)에는 무유범금지명(無有犯禁之名)이라,
계율을 범했다고 하는 그런 말이 없다 이 말입니다.
범금(犯禁) 금 했다, 금을 범했다, 그 금(禁)이라는 말은 계율이라는 말이거든요. 금하는 것을 범했다고 하는 이름이 없다.
그 말은 이제 계율을 범했다는 말을 듣지 않는다, 그 다음에
十善이 是菩薩淨土니 菩薩이 成佛時에 命不中夭하고
(십선이 시보살정토니 보살이 성불시에 명불중요하고)
십선이 보살정토니 그 보살이 성불했을 때는 요절하지 않으며
십선(十善)이 보살의 정토다.
십선.
그것이 보살의 정토인데 그런 사람이 성불(成佛)했을 때에는 요걸 잘 봐야 되요.
명불중요(命不中夭)하고 그랬어요.
이건 살생과 관계된 거예요.
십선이 여기에 다 해당됩니다.
살생을 많이 한 사람은 병이 많거나 빨리 죽습니다.
빨리 죽고 병이 많은 사람은 과거에 살생을 많이 했다 이래 알면 틀림이 없어요.
그래서 불교의 장수비결 건강비결은 뭐냐,
아픈 사람을 간호 잘 하고, 약 잘 대주고,
아픈 사람 잘 돌봐주고, 남의 약 잘 대주는 것.
그러면은 차라리 자기가 약을 먹는 것 보다 더 자기에게 빨리 건강효과가 더 빨라, 불교의 건강비결은 그거예요. 이거 믿을 지 안믿을 지 모르겠네 (웃음)
불교의 건강비결은 그겁니다. 딴 사람 아픈 사람들 건강하도록 하는 것, 간호 잘해주고. 그게 자기 건강해지는 거예요. 여기 보십시오.
명이, 빨리 죽는다고 했잖아요. 살생 많이 한 사람은.
그러니까 부처님 말씀임에 틀림없고 이치가 틀림없는데, 우리는 너무 그냥 우리들 생활 습관에 젖어가지고, 이런 말을 받아들이기를 겁내한다고요 겁내.
요건 이제 십선을 잘 닦으면 방생을 많이 하고, 예를 들어 살생문제 같으면 살생을 안하고, 그렇게 한 사람들은 명이 중간에 요절하지 않는다 이 말입니다,
명이.
명불중요(命不中夭)라는 말은 명이 중간에 요절하지 않는다, 요절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천수를 누리다가 죽는다는 거예요, 건강하고 천수를 누리다가 죽는다.
이게 살생하고 관계가 돼
그 다음에 보십시오
大富梵行하며 所言이 誠諦하고
(대부범행하며 소언이 성제하고)
크게 부자가 되고 청정한 행을 하고
말하는 것이 정성스럽고 진실하고
대부(大富) 크게 부자가 된다.
이건 뭐죠, 투도하고 관계되겠죠,
도둑질. 남의 물건 훔치기 좋아하면 그건 나중엔 결국은 자기 부당하게 남의 재산을 취했으니까 어떻게 해,
그만치 빚져 있을 거 아냐, 그럼 가난하지,
도둑질하고 이 대부라는 말하고 도둑질하고 관계가 되고
그 다음에 뭐예요
범행(梵行)하며 청정한 행이라,
이건 이제 살도음, 사음하고 관계가 되는거죠. 범은 청정한 행이니까.
그러니 사음한 사람은 청정한 행하고 비교가 되니까.
그 다음에 소언(所言)이 성제(誠諦)라 그랬어요.
성제, 정성스럽고 제는 진실하다 이런 말인데, 말하는 것이 정성스럽고 진실하다,
망어하고 관계가 된다, 이말이예요. 그 다음에
常以軟語하며 眷屬이 不離하고
(상이연어하며 권속이 불이하고)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하며 권속이 떠나지 아니하고
상이연어(常以軟語)하며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한다.
이건 악구의 반대말이예요, 악구, 악담. ‘발목떼기 부러질 놈’ 하는 거 (웃음)
그런 악담하고 반대되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연어하며, 부드러운 말하고 그랬어요.
그 다음에 권속(眷屬)이 불이(不離)하고 그랬어요.
권속이 떠나지 않으려면 양설을 안해야 돼.
양설, 두 가지 말해가지고 이간질 시켜가지고, 그러면은 어떻게 돼? 이간질 시켜서 두 친구를 갈라놓게 한다, 이거예요.
서로 비방하게 하고, 그렇게 만드는 것은 결국은 자기가 어떤 과보를 받느냐,
권속이 전부 떠나 살아, 전부 떠나 산다 이거예요.
그래 보고 싶어도 못보고, 그런 관계가 있습니다.
善和諍訟하며 言必饒益하고
(선화쟁송하며 언필요익하고)
다투는 일을 잘 화해시키며 말을 함에 반드시 남에게 이익되게 하고
그 다음에 선화쟁송(善和諍訟)한다,
이건 뭔 말인가 하니 쟁송하는 것 다투는 일을 잘 화해시킨다. 화해.
이건 기어(綺語) 비단결 같은 말을 해가지고서,
예를 들어서, 나중에 탄로나서 전부 타툼이 일어나고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일을 안할 것 같으면 다투는 일을 잘 화해시킨다. 선화쟁송이라
그 다음에 탐진치인데 언필요익(言必饒益)하고 말을 함에 반드시 요익한다.
남에게 이익되게 한다. 탐을, 탐심을 안쓰면 그런 일이 생긴다. 그 다음에
不嫉不恚하는 正見衆生이 來生其國하나니라
(부질불에하는 정견중생이 내생기국하나니라)
미워하지않고 성내지 아니하는 바른 소견을 가진 중생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
부질불에(不嫉不恚)한다,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않는다. 이건 진심하고 관계된 거죠.
그다음에 정견중생(正見衆生)이 래생기국(來生其國)하나니라 요거는 치심,
어리석음 하고 반대되는 거예요. 어리석은 것은 정견하고 반대거든요.
그러니까 이걸 정리해서 다시 해석을 하면 십선(十善)이
보살정토(菩薩淨土)니 보살이 성불했을 때에, 십선을 잘 했으니까,
명이 중간에 요절하지 않고,
크게 부자 되고, 또 청정한 행을 하고, 말하는 것이 진실하고,
항상 부드러운 말을 하고,
권속이 떠나지 아니하고 헤어지지 않고,
또 다툼이 있는 것을 잘 화해시키고, 말할 때 반드시 요익하게,
남에게 이익하게 하고, 또 미워하지 않고, 성내지 아니하는 바른 소견을 가진 중생들이 그 나라에 와서 태어나느니라, 이랬습니다,
여기까지가 불국토의 원인들을 쭉 소개를 했어요.
이 수많은 원인 중에 저기 직심(直心)에서부터, 직심이 근본이죠, 직심이.
직심이 그 주된 어떤 근본 역할을 하죠,
거기서 부터 여기에 정견중생(正見衆生)에 이르기 까지, 수 많은 그런 불국토를 건설 할 수 있는 원인들이 소개가 됐는데,
여러분들 마음에 드는 것 하나씩 골라잡아야 되요.
다 실천하려고 할 필요도 없고, 자기 평소에 좋아하는 것, 또 자기가 즐겨할 수 있는 것, 그거 하나만 집중적으로 잘 하면은 뭐든지 다 불국토 건설이 되고,
집안이 평안하고, 좋은 환경이 저절로 오게 돼 있는 거예요.
많이 소개했다고 해서 다 해야 된다,
삼십칠조도품 복잡한 거 그거 뭐 하나 할 거 없어요.
마음에 드는 것 그냥 하나, 뭐든지 하나, 사무량심 중에 하나 해도 좋고,
사섭법 중에 하나 해도 좋고 아까 사념처 중에 하나 해도 좋고 그런 것 중에 이제 그 원인들을 하나 마음에 딱- 아로새기면은 그걸로 불국토 건설이 실현된다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불국토 이야기가 계속 됩니다.
1-(20)
如是하야 寶積아 菩薩이 隨其直心하야 則能發行하고/
隨其發行하야 則得深心하고/
隨其深心하야 則意調伏하고/
隨其調伏하야 則如說行하며/
隨如說行하야 則能廻向하고/
隨其廻向하야 則有方便하며/
隨其方便하야 則成就衆生하고/
隨成就衆生하야 則佛土淨하고/
隨佛土淨하야 則說法淨하고/
隨說法淨하야 則智慧淨하며/
隨智慧淨하야 則其心淨하고/
隨其心淨하야 則一切功德이 淨하나니 /
是故로 寶積아 若菩薩이 欲得淨土인댄
當淨其心이니 隨其心淨하야 則佛土淨이니라/
이러므로 보적아,
보살이 그 마음이 곧으므로
좋은 일을 행하게 되며
좋은 일을 행하므로
깊은 마음을 얻으며
깊은 마음을 따라 조복되며
뜻이 조복되므로
말한 대로 행하며
말한 대로 행하므로
능히 지은 공덕을 잘 회향하며
회향심을 따라 방편이 생기며
방편을 따라 중생을 성취하며
중생을 성취하므로
불국토가 깨끗해지며
국토가 깨끗하므로
설법하는 것도 깨끗하고
설법이 깨끗하므로
지혜가 깨끗하며 지혜가 깨끗하므로
그 마음이 깨끗하고 마음이 깨끗하므로
온갖 공덕이 깨끗하여 지나니라.
그러므로 보적아 만일 보살이 깨끗한 국토를 얻으려거든 먼저 그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한다.
그 마음이 깨끗하면 불국토가 깨끗하여 지느니라.
如是하야 寶積아 菩薩이 隨其直心하야 則能發行하고
(여시하야 보적아 보살이 수기직심하야 즉능발행하고)
이와 같아서 보적아 보살이 그 곧은 마음을 따라서 능히 행을 발하고
이와 같아서 보적아 보살이 수기직심(隨其直心)하야 그 곧은 마음을 따라서 즉능발행(則能發行)하고, 곧 능히 행을 실천을 한다,
이 말이예요. 발행이라, 행을 발한다, 말하자면 실천한다.
직심이라는 말은 뭐라 그랬어요.
진여를 향한 마음이다, 그랬습니다.
또 더 쉬운 말로 하면 마음 닦는 마음이다, 그랬어요.
마음 찾는 게 불교의 근본이니까,
그것이 말하자면 모든 불국토 건설의 많은 원인들 중에서 가장 근본 되는 원인이다, 이렇게 본 것입니다.
隨其發行하야 則得深心하고
(수기발행하야 즉득심심하고)
그 행의 발함을 따라서 깊은 마음을 얻고
그 다음에 수기발행(隨其發行)하야 그 행 발함을 따라서
즉득심심(則得深心)하고 깊은 마음을 얻고
隨其深心하야 則意調伏하고
(수기심심하야 즉의조복하고)
그 깊은 마음을 따라서 생각이 잘다스려지고,
그 깊은 마음을 따라서 또 즉의조복(則意調伏)하고 마음이 생각이 조복된다,
이 밀이예요.
조복(調伏)이라는 말은 잘 다스려진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마음이 돌아간다 이거예요.
마음이 내 말을 안 들어가지고 말이죠,
말을 안 듣는지 마음을 안 듣는지, 하여튼 말을 안 들어 가지고 애를 먹죠.
隨其調伏하야 則如說行하며
(수기조복하야 즉여설행하며)
그 조복을 따라서 설한대로 실천하고
또 수기조복하야(隨其調伏)하야 그 조복, 말 잘 듣는 게 조복이죠.
그 조복을 따라서 즉여설행(則如說行)하며 설한 대로 실천하고
隨如說行하야 則能廻向하고
(수여설행하야 즉능회향하고)
그 설한대로 행하는 것을 따라서 능히 회향하고
여설행(如說行)을 따라서,
설한대로 행하는 것을 따라서 즉능회향(則能廻向)하고 곧 능히 회향하고
隨其廻向하야 則有方便하며
(수기회향하야 즉유방편하며)
그 회향을 따라서 방편이 있고
그 회향을 따라서 즉유방편(則有方便)하며 방편이 있고,
隨其方便하야 則成就衆生하고
(수기방편하야 즉성취중생하고)
방편을 따라서 중생을 성취하고
그 방편을 따라서 중생을 성취하고,
중생성취(衆生成就) 중생을 전부 사람 만든다, 이거예요,
중생을 사람 만든다는 것은 전부 부처 만든다,이말입니다.
隨成就衆生하야 則佛土淨하고
(수성취중생하야 즉불토정하고)
중생을 성취를 따라서 불토가 청정해지고
중생성취(衆生成就)를 따라서 어떻게 해.
즉불토정(則佛土淨) 곧 불토가 청정해진다.
그래요,
중생들이 제대로 사람이 되면은 그대로 불국토죠 뭐.
중생은 문제 있는 것을 중생이라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중생을 성취했다는 말은 중생에게 있는 모든 문제가 다 사라졌다, 이 말입니다. 그걸 성취중생 그래요. 중생을 성취한다 그러고.
중생에게 문제가 다 사라졌으면 뭐예요.
그걸 보살이라고 하고 그것을 부처라고 그러는 거죠.
그러니까 보살이 사는 곳, 부처가 사는 곳,
그게 뭐예요. 불국토다, 불토가 된다.
隨佛土淨하야 則說法淨하고
(수불토정하야 즉설법정하고)
불토청정을 따라서 설법이 청정해지고
불토가 청정해짐을 따라서 설법이 청정하고
隨說法淨하야 則智慧淨하며
(수설법정하야 즉지혜정하며)
설법의 청정함을 따라서 지혜가 청정하고,
설법의 청정함을 따라서 지혜가 청정하고,
隨智慧淨하야 則其心淨하고
(수지혜정하야 즉기심정하고)
지혜가 청정함을 따라서 그 마음이 청정하고
지혜가 청정함을 따라서 그 마음이 청정하고
隨其心淨하야 則一切功德이 淨하나니
(수기심정하야 즉일체공덕이 정하나니)
그 마음의 청정함을 따라서 일처공덕이 청정하나니
그 마음의 청정함을 따라서 즉일체공덕(則一切功德)이 청정하나니
보십시오 그 마음이 청정함을 따라서 일체공덕이 청정해진다,
是故로 寶積아 若菩薩이 欲得淨土인댄 當淨其心이니 隨其心淨하야 則佛土淨이니라
(시고로 보적아 약보살이 욕득정토인댄 당정기심이니 수기심정하야 즉불토정이니라)
그런 까닭에 보적아 서방정토를 얻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 마음을 청정해야하니
그 마음의 청정함을 따라서 불토가 청정해지니라
시고(是故)로 보적(寶積)아 그런 까닭에 보적아, 만약에 보살이 욕득정토(欲得淨土)인댄 당정기심(當淨其心)이니 수기심정(隨其心淨)하야 즉불토정(則佛土淨)이니라
줄 긋고 있어요? (네) 하하
욕득정토인댄 거기서부터 욕득정토(欲得淨土)인댄 당정기심(當淨其心)하라,
만약에 정토, 서방정토, 불국토, 좋은 환경을 얻고자 하거든 마땅히 그 마음을 마땅히 청정히 하라.
이건 아주 유명한 말입니다.
이건 뭐 조사스님들이 그저 언필칭 쓰는 말이예요.
그 청정한 국토를 얻고자 하거든 니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거야.
좋은 환경에 가지고 태어나고 싶거든 니 마음을 깨끗이 하라.
그 마음의 깨끗함을 따라서 어떻게 해? 불토가 청정해지니라 불토를 얻으려면 마음을 깨끗이 하라, 마음이 깨끗해 지면 어떻게 해? 불토가 이루어진다.
그건 뭐 너무나 당연한 말이예요.
그래서 요 구절은요.
욕득정토(欲得淨土)인댄 당정기심(當淨其心)이니
수기심정(隨其心淨)하야 즉불토정(則佛土淨)이니라
요게 결론 아니겠습니까.
지금까지 모든 그 불국토 청정을, 불국토 건설을 하는데 있어서, 불국토 실현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는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이 불국토라고 하는 말은요,
우리가 사는 이 땅은 범성동거토(凡聖同居土)라 그래요.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곳이다 범부와 성인이 함께 사는 곳이다.
그건 무슨 말이고 하니 이 땅에는 범부도 살고 성인도 살아, 부처도 살고 중생도 살아, 다 같이 살잖아요.
그러면은 우리가 보는 것 같이, 우리 범부들이 보는 것 같이 그렇게 이 땅이 꼭 같이 보이지 않아요.
부처님이 보면은 부처님의 세계로 보여요.
부처님은 또 이 세계를 부처님의 세계로 보지마는 우리는 또 그래 못 봐.
하나의 꽃을 가지고 보는 이의 감정 여하에 따라서 보는 게 다 달라, 느낌이 다 달라, 바로 그거예요.
이 땅도 마찬가지예요.
이 땅에 허물이 있는 게 절대 아니예요. 우리들 마음에, 이 땅을 수용하는 우리들 마음에 허물이 있어. 허물이 있다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