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한글) 상식 되돌아보기 퀴즈 28 문제
출제: 김슬옹
* 정답 25문제 이상: 최우수/ 20문제 이상: 우수/19-15문제: 보통/14-10문제: 노력 필요/9-0문제: 치열하게 노력할 필요
* ‘한글’의 좁은 뜻: 1910년 이후의 현대 한국어를 적는 고유 문자
‘한글’의 넓은 뜻: 세종대왕이 1443년에 창제하고 1446년에 반포한 ‘훈민정음’부터 오늘날의 ‘한글’ 모두를 아우르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고유 문자 명칭
<문제>
◐ 1영역<물>: 한글(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배경과 의미
1)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만들었다. ( )
2) 우리는 한글(훈민정음) 창제 날짜와 반포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 )
3)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창제했다. ( )
◐ 2영역<나무>: ≪훈민정음≫ 해례본
4)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과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이 함께 지은 책으로 한글 반포용으로 간행된 책이다. ( )
5) 세종대왕이 1446년에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설서(해례본)는 현재 간송본(전형필 소장)과 상주본(배익기 소장) 두 권이 남아 있다. (*상주본이 원본이라 인정할 경우. 아직은 비공개라 확실히 알 수 없음) ( )
6) 한글은 세계 기록 유산이다. ( )
7) 북한에는 남한과 같은 한글날이 없지만 ‘훈민정음 기념일’은 있다. ( )
8) 최만리 외 6인은 갑자상소를 통해 한글 창제를 반대했고 조선시대 양반들도 많은 상소문을 통해 한글을 반대했다. ( )
◐ 3영역<불>: 한글 명칭과 의미
9) 한글은 조선시대 때 주로 ‘언문’이라 주로 불렀고 세종대왕도 이 용어를 사용했다. ( )
10) ‘한글’이란 명칭은 분단 이전부터 있던 말이므로 북한에도 쓴다.( )
11) 'ㄱ, ㄷ, ㅅ‘에 대한 명칭이 남한은 ’기역, 디귿, 시옷‘이고 북한은 ’기윽, 디읃, 시읏‘이다. ( )
◐ 4영역<쇠>: 한글 제자 원리
12) 한글 자음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습을 본떴다.“라는 말은 한글 창제 원리를 정확히 보여주는 문장이다. ( )
13) 세종대왕이 창제한 자음과 모음을 만든 기본자는 8자이다. ( )
14) 15세기 훈민정음 기본자는 28자이다.( )
15) 현대 한글 기본자는 모음자 14자, 자음자 10자 모두 24자이다.( )
16) 실제 쓰이는 현대 한글 자음자와 모음자를 모두 합치면 40자이다.( )
17) 현대 한글에서 받침으로 올 수 있는 낱글자는 겹받침 포함 27자이다. ( )
18) 현대 한글 자모로 조합할 수 있는, 실제 쓰이고 있는 글자 수는 11,172자이다. ( )
◐ 5영역<흙>: 한글 역사와 발전
19) 한글은 조선시대 고종의 국문 칙령이 반포 되기 전에도 공식문자(공용문자)이었다. ( )
20) 한글을 주류 문자로 선언한 것은 고종 임금이 1894년에 내각에 지시하고 1895년에 반포한 국문 칙령이었다. ( )
21) 연산군은 한글을 무조건 못쓰게 했다. ( )
22) 한글은 조선시대 때 주로 하층민과 여성들에 의해 발전했다.( )
23) 주시경의 수제자로 한글전용의 최대 공로자는 북한은 김두봉, 남한은 최현배이다. ( )
24) 일반 공공 문서에서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한 것은 독립신문(1896)에서였다. ( )
25)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와 같은 위대한 실학자들은 한글을 즐겨 썼다.( )
26) 구운몽, 서포만필 등 한글 소설을 남기고 한글을 나랏글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는 허균이었다. ( )
27) 한글 반포 후에 중국은 조선의 훈민정음이라는 새 문자를 주목했다. ( )
28) 한글의 우수성을 책을 통해 해외에 최초로 알린 이는 하멜이고 학술 논문을 통해 알린 이는 헐버트다. ( )
<답과 풀이>
◐ 1영역<물>: 한글(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배경과 의미
1) 세종대왕이 우리말을 만들었다. (X) *풀이: 세종대왕이 만든 것은 우리글, 한글이다.
2) 우리는 한글(훈민정음) 창제 날짜와 반포 날짜를 정확히 알 수 없다. (0) *풀이: 훈민정음은 1443년 음력 12월에 창제되었다. 정확한 날짜 기록은 없다. 대략 10여년 이상의 비밀 연구 끝에 28자를 완성한 뒤 일부 신하들에게 알린 것이므로 무슨 특허 발명품처럼 특정 날짜를 드러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종실록 1443년 음력 12월 30일자 기록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한글 반포 날짜도 정확히 알 수 없다. 1443년 음력 9월 상한(상순)에 반포되었다. 상순은 1일부터 10일 사이를 가리킨다. 그래서 상순의 마지막 날인 9월 10일을 기준으로 정한 것이 한글날 10월 9일이다.
3) 한글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창제했다. (X) *풀이: 공동 창제설은 하나의 설로도 성립될 수 없는 잘못된 견해다. 공동 창제는 공개 연구를 했다는 것인데 그 자체가 불가능하다. 1443년 창제 후에 한글 반포를 위한 연구를 집현전 일부 학사들과 함께 하여 <훈민정음> 해례본을 신하들(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과 함께 펴내다 보니 공동 창제설이 널리 퍼졌다. 더욱이 아주 많은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공동 창제로 그려 잘못된 속설이 더욱 널리 퍼졌다. 공동 창제 주창자들이 공동 창제자로 여기는 훈민정음 해례본 공저자들은 개인적으로는 한글을 쓰지 않았다. 공동 창제자라면 안 쓸 리가 없다.
◐ 2영역<나무>: ≪훈민정음≫ 해례본
4)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대왕과 ‘정인지, 최항,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이개, 이선로, 강희안’이 함께 지은 책으로 한글 반포용으로 간행된 책이다. (0) *풀이: 반포식은 안했지만 책 간행은 반포와 같은 공식 정책이다.
5) 세종대왕이 1446년에 직접 펴낸 훈민정음 해설서(해례본)는 현재 간송본(전형필 소장)과 상주본(배익기 소장) 두 권이 남아 있다.(*상주본이 원본이라 인정할 경우) (X) *풀이: 발견된 것이 두 권이다. 어딘가에 또 남아 있을 수 있다.
6) 한글은 세계 기록 유산이다. (X) *풀이: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세종대왕이 1446년에 펴낸 <훈민정음>이란 책으로 흔히 ‘훈민정음 해례본’이라 부른다.
7) 북한에는 남한과 같은 한글날이 없지만 ‘훈민정음 기념일’은 있다. (0) *풀이: 남한과 같은 한글날은 없다. 대신 1월 15일을 조선글날 또는 훈민정음 기념일로 삼아 기린다. 남한은 반포를 기준으로 북한은 창제를 기준으로 기념일을 삼았다.
8) 최만리 외 6인은 갑자상소를 통해 한글 창제를 반대했고 조선시대 양반들도 많은 상소문을 통해 한글을 반대했다. (X) *풀이: 28자의 창제는 1443년 음력 12월이고 최만리 외 6인이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1444년 음력 2월 20일이다. 그러므로 창제를 반대했다기보다는 반포를 반대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최만리 혼자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아니다.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 여섯 명과 함께 올린 7명 연명 갑자상소였다. 최만리는 당시 집현전 부제학으로 최고의 학자요 청백리로서 뛰어난 학자였다. 갑자상소 덕에 우리는 훈민정음 창제 동기와 과정 등의 여러 문제를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한글을 반대했다고 해서 지금의 시각으로 나쁘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반대 상소는 실록에 의하면 갑자상소 외 단 한 건도 없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한글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1446년 정식 반포 이후 단 한 건의 반대 상소도 없었다. 다만 2류 문자로 철저히 무시했다.
◐ 3영역<불>: 한글 명칭과 의미
9) 한글은 조선시대 때 주로 ‘언문’이라 주로 불렀고 세종대왕도 이 용어를 사용했다. (0) *풀이: ‘훈민정음’은 특별한 때만 쓰였고 실제로는 주로 ‘언문’이라 불리다가 1910년 이후 ‘한글’이란 명칭이 널리 퍼졌다. ‘언문’은 원래는 훈민정음을 가리키는 보통 명칭이었지만 사대부들이 깔보다 보니 낮춤말이 되었다. 세종대왕도 ‘언문’이란 용어를 사용하였다. ‘정음’이란 명칭은 실제 얼마나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훈민정음’을 특별한 때만 사용한 것으로 보아 역시 학술 차원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정음’이란 명칭을 쓴 듯하다.
10) ‘한글’이란 명칭은 분단 이전부터 있던 말이므로 북한에도 쓴다.(X) *풀이: ‘한글’이란 명칭은 분단 이전인 1910년이후부터 쓰이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이 용어를 남한의 용어로 규정하고 쓰지 않는다. 북한에서는 ‘조선글’이라 한다.
11) 'ㄱ, ㄷ, ㅅ‘에 대한 명칭이 남한은 ’기역, 디귿, 시옷‘이고 북한은 ’기윽, 디읃, 시읏‘이다. (0) *해설: 최세진이 훈몽자회(1527)에서 ’ㅣ, ㅡ‘를 붙여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등의 자음 명칭을 정리하였으나 그 명칭을 한글로 적지 않고 한자로 어거지로 적다 보니 ’기역, 디귿, 시옷‘이라는 ’ㅣ, ㅡ‘ 규칙에 어긋난 명칭이 관습처럼 굳어졌다. 남한은 그 관습을 존중해 그대로 따르고 북한은 관습을 원칙대로 바꿔 서로 다른 명칭이 되었다. 관습도 중요하지만 지나친 예외 명칭으로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한테 고통을 주므로 남한도 북한처럼 바꿔야 한다.
◐ 4영역<쇠>: 한글 제자 원리
12) 한글 자음 ‘ㄴ’은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습을 본떴다.”라는 말은 한글 창제 원리를 정확히 보여주는 문장이다. (X)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혀가 윗잇몸에 닿는 모습을 본떴다고 했다. ‘는/은’ 등을 발음해 보면 그 모습을 정확히 알아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직선과 같은 간결한 도형만으로 상형했다는 점이다. 그대로 본떴다면 곡선이 되었을 것이고 매우 불편하고 비과학적인 문자가 되었을 것이다.
13) 세종대왕이 창제한 자음과 모음을 만든 기본자는 8자이다. (0) *풀이: 상형 기본자는 8자이다. 모음 상형 기본자는 ‘·,ㅡ,ㅣ’은 각각 하늘, 땅, 사람을 본떴다. 하늘은 양성, 땅은 음성, 사람은 중성을 뜻하는 것으르 우리말에 있는 음양의 기운과 양성모음(ㅏ, ㅗ)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ㅓ, ㅜ)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는 모음조화의 특성을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자음 상형 기본자 ‘ㄱ,ㄴ,ㅁ,ㅅ,ㅇ’은 발음 기관 어딘가에 닿아 나는 자음 특성을 살려 만든 글자이다.
14) 15세기 훈민정음 기본자는 28자이다.(0) *풀이: 자음 17자, 모음 11자 모두 28자였고 이 중 네 글자가 안 쓰이거나 변형되었다.
15) 현대 한글 기본자는 모음자 14자, 자음자 10자 모두 24자이다.(X) *풀이: 자음자가 14자, 모음자가 10자이다.
16) 실제 쓰이는 현대 한글 자음자와 모음자를 모두 합치면 40자이다.(0), *풀이: 자음자는 기본자 “ ㄱ(기역) ㄴ(니은) ㄷ(디귿) ㄹ(리을) ㅁ(미음) ㅂ(비읍) ㅅ(시옷) ㅇ(이응) ㅈ(지읒) ㅊ(치읓) ㅋ(키읔) ㅌ(티읕) ㅍ(피읖) ㅎ(히읗)” 14자에 “ㄲ(쌍기역) ㄸ(쌍디귿) ㅃ(쌍비읍) ㅆ(쌍시옷) ㅉ(쌍지읒)” 다섯 자를 더 해 19자, 모음자는 기본자 “ㅏ(아) ㅑ(야) ㅓ(어) ㅕ(여) ㅗ(오) ㅛ(요) ㅜ(우) ㅠ(유) ㅡ(으) ㅣ(이)” 10자에 “ㅐ(애) ㅒ(얘) ㅔ(에) ㅖ(예) ㅘ(와) ㅙ(왜) ㅚ(외) ㅝ(워) ㅞ(웨) ㅟ(위) ㅢ(의)” 11자가 더 쓰여 21자이니 ‘19+21’ 40자다. 영어 알파벳 기본자 26자보다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한글도 기본자는 24자이고 중요한 것은 규칙적으로 확장되어 40자가 되었다는 점이다. 영어도 두 개의 자음이 결합하여 하나의 음을 나타나는 글자 포함하면 40자보다 훨씬 많다.
17) 현대 한글에서 받침으로 올 수 있는 낱글자는 겹받침 포함 27자이다. (0) *풀이: 한국어 받침은 홑받침은 ‘ㄱ, ㅋ, ㄲ’, ‘ㄴ’, ‘ㄷ, ㅌ, ㅅ, ㅆ, ㅈ, ㅊ’, ‘ㄹ’, ‘ㅁ’, ‘ㅂ, ㅍ’, ‘ㅇ’ 16개이며, 겹받침은 ‘ㄳ’, ‘ㄵ, ㄶ’, ‘ㄺ, ㄻ, ㄽ, ㄾ, ㄿ, ㅀ, ㄼ’, ‘ㅄ’ 11개이다. 받침소리로는 ‘ㄱ’, ‘ㄴ’, ‘ㄷ’, ‘ㄹ’, ‘ㅁ’, ‘ㅂ’, ‘ㅇ’ 7개로만 나므로 이를 문법에서는 ‘음절 끝소리 현상’이라 부르고 한국어 받침의 대표음이라고 한다.
18) 현대 한글 자모로 조합할 수 있는, 실제 쓰이고 있는 글자 수는 11,172자이다.(x) *풀이: 받침 없는 글자 수는 (19자×21자=)399자가 되고, 받침 있는 글자 수는 (399자×27자=)10,773자가 된다. 둘을 합치면 11,172자가 된다. 이러한 놀라운 숫자는 한글의 과학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그만큼 말소리를 받아쓸 수 있는 영역이 넓다는 증거가 된다. 11,172자 가운데 실제 쓰이는 글자 수는 2,500자 안팎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는 말소리가 없어져 쓰이지 않는 글자가 많지만, 이런 글자를 응용해 모든 인류의 다양한 말소리를 적을 수도 있다. 이처럼 한글은 잠재적 실용성이 뛰어난 문자다.
◐ 5영역<흙>: 한글 역사와 발전
19) 한글은 조선시대 고종의 국문 칙령이 반포 되기 전에도 공식문자(공용문자)이었다. (0) *풀이: 당연히 공식문자였다. 다만 한자가 주류(제1) 공식문자였고 한글은 비주류(제2) 공식문자였다. 공식문자란 공적 주체가 공적 상황 속에서 제도나 법률에 의해 공표되고 시행된 문자를 말한다. 한글은 공적 주체인 임금(세종)이 만들고 나라에서 펴낸 각종 문서에 사용되었다. 조선 최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서는 하급 관리 과거 과목으로 설정하였고 ‘삼강행실’과 같은 국가 윤리를 한글(언문)으로 풀어 백성들에게 가르치도록 규정하였다. 고종의 국문 칙령은 비주류 공식문자로서의 한글(국문)을 주류 공식문자로 선언한 것이다. 그런대도 고등학교 교과서와 대다수 국어사학자들은 공식문자가 아니었다고 잘못된 지식을 가르치고 있다.
20) 한글을 주류 문자로 선언한 것은 고종 임금이 1894년에 내각에 지시하고 1895년에 반포한 국문 칙령이었다. (0) *풀이: 내각에 지시한 것도 법적 효력을 갖는다. 고종은 국문(한글)을 본을 삼고 한문 번역이 국한문 혼용문을 함께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1894년에는 내각에 지시하고 1895년에는 전국에 반포했다. 이 칙령 자체가 한문과 국한문 혼용으로 발표되어 온전한 주류 문자의 면모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주류 문자로 선언한 것만은 분명하다
21) 연산군은 한글을 무조건 못쓰게 했다. (X) *풀이: 16세기 초인 1504년에 연산군은 자신을 비판한 한글 벽서에 분노하여 한글을 배우거나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한문을 한글로 번역한 책은 예외로 하였고 궁녀들에게 한글로 노래 가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22) 한글은 조선시대 때 주로 하층민과 여성들에 의해 발전했다.(X) *풀이: 하층민은 ‘평민’이하를 가리킨다. 조선시대에 하층민은 문자생활 자체가 힘들었다. 한글을 만든 것도 지배층이고 이를 널리 보급한 것도 지배층이었다. 물론 하층민과의 소통을 전제로 만든 것이므로 하층민이 한글 창제와 발전의 계기가 된 것도 분명하다. 여성들이 한글 발전에 가장 큰 구실을 한 것은 맞다. 왕실 여성들과 양반가 영성들의 공로가 더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규방가사와 같은 한글 가사를 쓴 수많은 여성 문학가들도 있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생활 속에서 한글로 얼마나 문자생활을 했느냐가 중요하다. 왕실 여성들은 공문서에 한글을 써서 한글의 가치를 높였고 양반가의 여성들은 끊임없이 각종 분야에 한글을 사용하여 한글 발전의 주춧돌 구실을 했다.
23) 주시경의 수제자로 한글전용의 최대 공로자는 북한은 김두봉, 남한은 최현배이다. (0) *풀이: 한글의 중시조라 추앙받는 주시경은 1907년부터 본격적으로 상동교회에 조선어강습원을 열었고 여기서 배출된 많은 인재 가운데 김두봉, 최현배가 수제자들이다. 김두봉은 1919년 3.1운동에 참여한 뒤 만주로 망명해 중국계 사회주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해방 후 북한의 부수상이 된다. 김일성과 함께 한글전용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남한 쪽은 최현배가 한글학회와 더불이 가장 앞서 한글전용 운동을 펼쳤다.
24) 일반 공공 문서에서 띄어쓰기를 처음으로 한 것은 독립신문(1896)에서였다. (0) *풀이: 공공 매체에서 띄어쓰기를 한 것은 독립신문이 처음이다. 일반 문서가 아니라면 독립신문보다 20여년 앞서 영국인 목사 존 로스가 1877년에 펴낸 <Corean Primer>(조선어 첫걸음)에서 띄어쓰기를 하였다.
25)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와 같은 위대한 실학자들은 한글을 즐겨 썼다.(X) *풀이: 정조는 한글 편지와 한글 윤음서 등을 남겼으나 즐겨 쓰지는 않았다. 정약용과 박지원은 한글 사용을 싫어하였고 사용 자체를 하지 않았다.
26) 구운몽, 서포만필 등 한글 소설을 남기고 한글을 나랏글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는 허균이었다. (X) *풀이: 김만중이다. 김만중은 한글 소설도 남겼지만 평론집인 <서포만필>에서 한글을 국서(나랏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로는 혁명과 같은 주장이었다. 물론 허균도 홍길동이라는 걸작 한글소설과 한글 표기 시를 남겼다.
27) 한글 반포 후에 중국은 조선의 훈민정음이라는 새 문자를 주목했다. (X) *풀이: 조선은 새 문자 창제 사실을 중국에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중국 한자음 표기에 대한 두 권의 책을 공식 출판했다. 동국정운(1448)과 홍무정운역훈(1455/단종3년)을 펴냈다. 특히 홍무정운역훈은 8권이나 되는 방대한 책으로 명나라 태조의 명으로 펴낸 <홍무정운>의 한자음을 한글로 표기한 책이다. 이는 중국이 천 년 이상 그들의 발음을 온전하게 표기하지 못한 것을 정확하게 표기한 그 당시 한자 문화권의 지각변동과 같은 혁명과 같은 책이었다. 그런대도 중국(명나라)은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철저히 무시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몰랐을 것이라고 하지만 위 책들이 공식 출판되었으므로 아예 몰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위 책들이 중국에 얼마나 전해졌는지 알 수 없고, 세종대왕이 운명했을 때 중국에 알린 부고(세종 32년/1450/02/20_세종실록)에 나열한 세종대왕 업적에 훈민정음 관련 내용이 없고 중종 34년인 1539년 세종실록 11월 22일자 기록에 주양우가 한글을 중국인에게 가르쳐 준 사건이 드러나 기밀 누설죄로 처벌을 받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아예 당시 조선 훈민정음 반포 사실을 숨겼다는 설도 있다.
28) 한글의 우수성을 책을 통해 해외에 최초로 알린 이는 하멜이고 학술 논문을 통해 알린 이는 헐버트다. (0) *풀이: 하멜은 효종 임금 때인 17세기, 13년간 조선에서 억류당하다 탈출하여 네덜란드에서 하멜표규기를 출판하였다. 이 책에서 “문자와 인쇄_조선국에 관한 기술”에서 “문자를 쓰는 데는 세 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 첫 번째 것은 주로 쓰는 방식인데 중국이나 일본의 글자(한자, 괄호 인용자)와 같다. 조정과 관계된 공식적인 국가 문서뿐만 아니라 모든 책들이 이런 식으로 인쇄된다. 두 번째 것(이두, 인용자)은 네덜란드의 필기체처럼 매우 빨리 쓰는 문자가 있는데 이 문자는 고관이나 지방관들이 포고령을 쓰거나 청원서에 대한 권고를 덧붙일 때 쓰며 서로 편지를 쓸 때에도 사용한다. 일반 백성들은 이 문자를 잘 읽을 수가 없다. 세 번째 것은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문자로 배우기가 매우 쉽고, 어떤 사물이든지 쓸 수 있다. 전에 결코 들어 보지 못한 것도 표기할 수 있는, 더 쉽고 더 나은 문자 표기 방법이다. 그들은 이 글씨들을 붓으로 매우 능숙하게 빨리 쓴다. - /김태진 옮김(2003). 하멜표류기. 서해문집. 136-7쪽.”라고 기술했다. 세 번째 문자가 한글이다. 헐버트는 24살인 1886년에 육영공원 영어 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크게 두 가지에 놀란다. 첫째는 이미 강대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있는 작은 나라에 영어 알파벳보다 더 과학적인 우수한 문자가 있다는 사실에 그는 놀랐고 둘째는 그러한 놀라운 문자를 지배층과 지식인이 제대로 쓰지 않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헐버트는 개인교수를 통해 3년간 한글과 한국어를 온몸으로 배운 끝에, 조선에 온지 4년만인 1891년(고종 28년) 스스로 한글전용 인문지리 교과서인 <사민필지>를 펴냈다. <사민필지>를 펴낸 지 2년 후인 1892년에는 그는 학술 차원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The Korean Alphabet Ⅱ'란 논설로 세계에 알렸다. 헐버트는 이 글에서 “문자사에서 한글보다 더 간단하게 더 과학적으로 발명된 문자는 없다.”라고 평가하였다. 한글이 가장 높은 단순성과 가장 높은 수준의 표음성을 결합한 완벽한 문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슬옹(2013). ≪세종 한글로 세상을 바꾸다≫. 창비.
김슬옹(2007).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아이세움.
김슬옹(2011).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개정판)≫. 지식산업사.
김슬옹(2018). ≪훈민정음 해례본 입체강독본(개정증보)≫. 박이정.
김슬옹(2017). ≪한글혁명≫. 살림터.
김슬옹 글/지문 그림(2017). ≪역사가 숨어 있는 한글가온길 한바퀴≫. 해와나무.
김슬옹 글/강수현 그림(2015). ≪누구나 알아야 할 훈민정음, 한글이야기 28≫. 글누림
김슬옹(2015). ≪퀴즈 세종대왕≫. 한글파크.
김슬옹‧김응(2017). ≪한글 대표 선수 10+9≫. 창비.
김슬옹·김응(2016). ≪역사를 빛낸 한글 28대 사건≫. 아이세움.
김슬옹(2013). ≪열린 눈으로 지식의 무지개를 펼쳐라≫. 글누림.
김슬옹(2018). ≪웃는 한글≫. 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