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시대의 광풍을 견뎠다
헤세는 이 소박한 집에서 시대의 광풍을 견뎠다. 헤세가 피하고 싶었던 것은 전쟁의 광풍이자 언론의 광풍이었다. 글이라는 것은 진검 승부와 비슷해서 내가 글이라는 칼을 내밀면 '본의 아니게 찔린' 온갖 사람들이 나서서 '네가 날 찔렀겠다. 그럼 너도 내 칼을 받아라' 하고 나서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 진짜 고수는 극히 드물다. 호사가들은 하이애나 떼처럼 달려들어 헤세를 욕하고, 그의 명성을 깎아내리고, 사소한 허점을 대단한 굴욕으로 포장해서 작가의 명예를 훼손하려 했지만, 헤세는 괴로움을 참고 꿋꿋이 쓰고, 그리고, 키웠다. 글과 그림과 꽃과 나무들을.
* "모든 사랑이 깊은 비극을 품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더 이상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헤르만 헤세의 [서간집] 중 ; 정여울 책 320쪽)
* "사람의 인격은 환경이 열악할 때에야 비로소 숨김없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정신적인 가치나 이상적인 가치, 냄새를 맡을 수도 만져볼 수도 없는 모든 것에 대한 개인의 태도 또한 외적인 삶의 지주가 사라지거나 깊은 충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 (헤르만 헤세의 <풍요로운 마음> 중 ; 정여울 책 325쪽)
* 괴로움을 참고 꿋꿋이 쓰고, 글과 그림과 꽃과 나무들을 키운 헤세!
12. 사랑의 힘
헤세는 젊은 시절 피렌체, 베네치아, 로마를 돌아보며 문학에 대한 열망을 키웠다. 단테가 [신곡]에서 그린 베아트리체의 모습은 헤세의 [데미안]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단테는 [신곡]에서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을 일생일대의 기적으로 묘사한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에게도 꿈같은 여인 베아트리체와의 만남은 기적이었다. 싱클레어는 이렇게 고백한다. 베아트리체에 대한 숭배는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고. 어제까지는 조숙한 풍자꾼이던 그가 성자가 되려는 희망을 품은 사원의 하인이 되었다고. 그는 오랫동안 몸에 젖어 있던 나쁜 생활습관을 청산했을 뿐 아니라 먹고 마시는 일이나 잡담이나 옷차림까지도 베아트리체의 이상에 부합되도록 신경을 쓴다. 아침마다 냉수마찰을 하고, 진실하고 품위 있는 행동을 하려고, 위엄 있게 걸으려 애쓴다. 단지 '그 사람과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으로 인해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분투하는 것. 사랑의 힘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정여울 책 326쪽)
* "사랑을 받는 것은 행복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것, 그것은 행복이다." (헤르만 헤세의 [클라인과 바그너] 중 ; 정여울 책 326쪽)
13.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고 실천하는 사람
자신의 미래를 예언하고 그 미래를 실천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헤세는 온화하고 낭만적인 사람으로 보이지만, 불굴의 의지를 지닌 강인한 투사이기도 했다. 그는 초년 시절에 쓴 [페터 카멘친트]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언을 당당히 남겼다. "서랍에는 내가 쓸 대작의 첫 부분이 들어 있다. 내 필생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너무 비장하게 들린다. 아마도 다시 시작하고 계속 써나가서 완성시킬 때가 한 번은 올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내 젊은 시절의 동경은 옳은 것이었고 나는 진짜 시인이었던 셈이다." 그는 평생을 다해 그 예언을 지키고 이루고, 증명해냈다. (정여울 책 330쪽)
* "이성과 마법이 하나가 되는 곳에 아마도 모든 숭고한 예술의 비밀이 있을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서간집] 중 ; 정여울 책 330쪽)
14. 마음의 공동체로 귀환
헤세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오직 '조국의 영광스러운 승리'만을 부르짖으며 아무런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던 군국주의자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더욱 끔찍한 홀로코스트를 저지르자 독일에 대한 믿음을 완전히 잃어버린다. 전쟁이 일어나도 텔레비전만 켜지 않으면 잘 모를 것 같은 몬타뇰라에서 그는 애증의 감정으로 얼룩진 조국 독일에 남겨진 친구들을 생각했다. 그는 독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도 '세계인의 문학광장'이라는 마음의 공동체로 귀환할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정여울 책 332-333쪽)
* 애증의 감정으로 얼룩진 조국 독일에 남겨진 친구들을 생각한 헤세!
15. 자연을 보고 경이롭게 여김
헤세는 '절대로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세 번이나 결혼을 했다. 온갖 장소를 전전하며 여러 번 이사를 했지만, 어디에나 정원이 있었다. 정원은 그의 힘겨운 영혼을 위한 안식처였다. 한때는 포도 농사로 생계를 꾸릴 정도로 그는 원예에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땅에서 오는 행복>이라는 글에서 50여 그루의 나무와 수많은 꽃들, 무화과나무와 복숭아나무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 바로 자신이 느끼는 행복의 기원이라고 고백했다. (정여울 책 334쪽)
* "자연을 보고 경이롭게 여김으로써 나는 다른 모든 시인들, 현자들과 형제가 되었다." (헤르만 헤세의 <나비에 대하여> 중 ; 정여울 책 334쪽)
16. 전원의 삶을 동경하고 작은 마을에 정착
헤세는 줄곧 전원의 삶을 동경했고 산과 호수 근처의 작은 마을에 정착하곤 했다. 헤세의 작품에는 유난히 자연에 대한 묘사가 많다. 그 많은 풍경 중에 구름은 가장 헤세를 닮아 있다. 그는 알고 있었다. 구름은 모든 방랑과 탐구, 노스텔지어의 영원한 상징임을. 헤세는 [페터 카멘친트]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름이 땅과 하늘 사이에서 망설이고 동경하고 저항하면서 자랑스레 걸려 있듯이, 우리 영혼 또한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 망설이고 동경하고 저항하면서 자랑스레 걸려 있다고. (정여울 책 336쪽)
* "이 드넓은 세상에서 구름에 대해 나보다 더 잘 알고, 나보다 더 구름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 세상에서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사물이 있으면 나에게 가르쳐다오!"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친트] 중 ; 정여울 책 337쪽)
17.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생각해보라
헤세는 <남쪽의 여름날>이라는 수필에서 이렇게 속삭인다. "고향의 친구들이여, 지금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당신들의 손에는 꽃이 들려 있는가, 아니면 수류탄이 들려 있는가. 자네들 아직 살아 있기는 한 건가. 내게 다정한 편지를 쓰려는 건가. 아니면 또다시 나에 대한 비난 기사를 쓰고 있는가. 친애하는 벗들이여, 자네들 마음대로 하라. 하지만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보도록 하라." 헤세는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두려워했다. 그는 아내 니논과 함께 숲으로 산책을 갔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집어 들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도 싱싱한 걸." 바로 그다음 날 아침, 헤세는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정여울 책 342쪽)
* "죽음의 부름은 곧 사랑의 부름이다. 우리가 그 부름에 긍정적인 방식으로 대답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영원한 생명을 얻고 완전한 변화가 일어나는 위대한 과정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죽음은 달콤해질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서간집] 중 ; 정여울 책 343쪽)
18. 나를 이해해주는 것은 니논 당신뿐
만성적인 관절염, 우울증, 치통 등 힘겨운 병마에 시달렸던 헤세가 가장 싫어한 것 중 하나는 치과였고, 좋아했던 것은 그림 그리기와 정원 가꾸기, 그리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일이었다. 헤세는 절친한 벗이자 자신의 전기 작가였던 휴고 발이 세상을 떠나자 연인 니논에게 '이제 이 세상에서 나를 이해해주는 것은 당신뿐'이라고 고백했다. 헤세의 묘지는 허례허식을 싫어했던 그의 평소 모습대로 놀라우리만치 소박하고 단출하다. 헤세의 팬들도 그를 닳아 지극히 단순하고 솝작하게 촛불과 그리스마스 장식으로 그를 추모하고 있다. (정여울 책 347쪽)
* "그들은 파괴했지만, 나는 건설한다. 그들은 흩어버렸지만, 나는 주워 담는다. 그들은 신을 부정하고 십자가에 매달았지만, 나는 신을 사랑한다." (헤르만 헤세의 <가늘 저녁, 서재에서> 중 ; 정여울 책 346쪽)
19. 헤세의 모든 짜증과 우울을 받아주려 했던 니논
헤세는 훌륭한 작가였지만 좋은 남편이나 좋은 아버지는 될 수 없었다. 니논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헤세와 평생을 함께하려 했다. 헤세는 결혼이라는 구속을 어떻게든 피하려 했지만 니논의 헌신적인 보살핌 또한 필요로 했다. 그는 글을 쓸 때 오직 '자기만의 공간'을 필요로 했고, 자신의 모든 짜증과 우울을 받아주려 했던 니논의 깊은 배려에 감사하는 시를 남기기도 했다. 두 사람은 죽어서도 나란히 한 묘지에 누워 몬타뇰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함께 느끼고 있다. (정여울 책 351쪽)
* "어떤 두 사람이 매우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들 사이에는 언제나 심연이 놓여 있다. 그 심연에 다리를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랑뿐이다." (헤르만 헤세의 [크눌프] 중 ; 정여울 책 350쪽)
20. 헤세의 분신들이 살아가는 몬타뇰라
헤세의 세 번째 아내 니논은 뛰어난 미술사학자이자 여행광이었다. 헤세를 몬타뇰라에 남겨둔 채 홀로 몇 달씩 여행을 떠나 그를 시무룩하게 만들었던 그녀는 커다란 박물관과 도서관이 즐비한 런던이나 비엔나 같은 대도시에서 살고 싶어 했다. 니논은 파리의 샹젤리제를 거닐며 헤세와 쇼핑도 하고 오페라도 구경하고 싶어 했지만 헤세는 떠들썩한 여행을 싫어했다. 젊었을 때 걸핏하면 가족을 버리고 혼자 여행을 떠나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베르누이를 힘들게 하더니, 만년에 자기보다 여행을 좋아하는 부인의 방랑벽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것이다. 헤세가 세상을 떠나자 니논은 그토록 도망치고 싶어 했던 몬타뇰라가 제2의 고향이 되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골목길 구석구석, 산자락 하나하나, 나뭇가지들과 꽃들까지도 모두 헤세의 분신처럼 느껴지는 몬타뇰라를 그녀는 결코 떠날 수 없었다. (정여울 책 353쪽)
* "당신의 영혼이 곧 온 세상입니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중 ; 정여울 책 3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