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목사님
(나훔 2:3-4) 3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 항오를 버리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하는도다 4그 병거는 미친 듯이 거리를 달리며 대로에서 이리저리 빨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도다
원어중심 성경강의 나훔 27번째, ‘레케브’, ‘병거’ 첫 번째 시간입니다.
다음 시간까지 두 번에 걸쳐서 마무리할 예정이고요, 여기 3절, 4절을 오늘 볼 텐데요. 3절 4절은 창을 번쩍이면서 침략해 오는 약탈자들의 무서운 모습이 나타나고 있죠.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요. 예언인데 굉장히 그림을 그리듯이 아주 자세하게 묘사를 하고 있죠. 그리고 다음으로 넘어가면 5절, 6절에서는 니느웨의 군사들이 자기 성을 방어하기 위해서, 막 허둥대는, 급하게 지키려고 애를 쓰는 그런 모습이 나와요. 그렇지만 마침내 함락된다 이런 내용이 나오고 있죠.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고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그의 용사들의 방패는 붉다’라고요. 그의 용사들, ‘용사들’은 ‘깁보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방패, ‘방패’는 ‘마겐’이라고 하고요, ‘붉다’라는 말은 ‘아담’입니다. 아담이라는 명사가 있지만, 동사도 아담이라고 발음이 같고요. 이 붉다라는 말이 아담인데 이게 푸알 분사형이에요. 그래서 ‘붉은 용사의 방패’가 되는데요, 이게 ‘메앗담’이라고 해요, 푸알 분사형이라서. 그래서 푸알형이라는 거는, 수동태인데 강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매우 붉어진 용사들의 방패다’이렇게 얘기하는 거죠. 그러니까 ‘방패가 붉다’라는 거는 전투를 통해서 대적들의 피에 의해서 붉게 되었다는 그런 의미도 있는 거고, 그리고 만약에 붉은 빛의 방패를 보게 되면 굉장히 두려움을 주는 그런 색깔이 되겠죠. 그리고 옷도 붉다고 하죠, 무사들의 옷도 붉다, 시뻘겋고. 그러니까 굉장히 두려운 군대가 몰려오는 그런 모습을 이렇게 연상할 수가 있는 거죠.
(렘 5:15)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집이여 보라 내가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민족이라 그 나라 말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그러니까 '한 나라를 먼 곳에서 오게' 해요. 여기 예레미야서에서도 오게 하는 그 민족, 강하고 오랜 민족이라고 하는데 이게 바벨론이잖아요. 나훔서에서도 역시 바벨론이에요. 그러니까 바벨론이 니느웨 앗수르를 멸망시키고 남유다까지 멸망시키는 거죠.
'보라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보라', 보라라는 말이 나와요, 먼저. ‘헨’이라고 하죠. ‘자 보라’ 감탄사예요. 먼 곳에서, ‘먼 곳’에서 ‘메르하크’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바벨론이니까 먼 곳에서 오는 거예요. 오는데 지금 표면적으로는 바벨론이지만, 영적으로 보면은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거죠. 그러니까 지금 역사적인 사건을 들어서 우리에게 지금 성경이 설명을 해요.
그러니까 바벨론이 앗수르를 무너뜨리고 또 남유다를 무너뜨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들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말씀을 우리에게 주시고 계시지만, 그거는 결국 우리 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안에, 먼 곳에서부터 한 민족이 온다, 한 나라가 온다라고 하는데, 멀다라고 하는 거는 우리에게서 멀다는 거예요.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서 멀리 있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 나라와 멀리 떨어진 존재다’라고 하는 거예요, 먼 곳에서부터 나라가 온다라고 하는 것은. ‘나라’는 ‘고이’라고 하는데 ‘민족’이라고도 하고 ‘국가’라고도 하죠. 바벨론이에요, 바벨론이지만 하나님 나라란 말이에요, 영적으로 보면. 그 나라를 너희에게로 오게 한다, 그러니까 지금 침략군이 쳐들어와서 너희를 멸망시킨다라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오는 거예요. 그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와서 우리의 옛 사람을 멸망시키는 이야기를 지금 성경이 하고 있단 말이죠.
(사 13:5) 무리가 [먼] 나라에서 하늘 끝에서 왔음이여 곧 여호와와 그의 진노의 병기라 온 땅을 멸하려 함이로다
'먼 나라, 하늘에서 와서 온 땅을 멸하려고 한다'. ‘땅’, ‘에레츠’, 나란 말이에요. 온 땅이라고 하는 건, ‘나를 완전히 멸망시키려고 한다’라고 하는 거죠. 하나님 나라에서 와서 나를 완전히 멸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병기라고 해요. 그럼 진노의 병기는 뭐겠어요? 나를 멸망시키는 병기니까, 나를 죽이는 것은 말씀이죠, 말씀으로 나를 죽이는 거죠.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한다'. ‘~에게로’ 할 때는 ‘알’이라는 전치사가 있어요. ‘알’이라는 전치사가 ‘~위에’ 그리고 ‘~ 대하여’라는 의미라고 했죠. against의 의미, 그러니까 너희를 대적하기 위해서 온다, 너희를 멸하려고 온다라고 하는 거죠.
'곧 강하고 오랜 민족이라'. ‘강하다’라는 말은 ‘에탄’이라고 하는데요. 이게 ‘영원한’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오랜 민족이다’라고 하는데 ‘올람’이에요, 역시 ‘영원’이에요, ‘영원의 나라다’라고 하는 거예요. ‘영원의 나라가 너희에게 온다’라고 하는 거죠. ‘그 나라 말을 네가 알지 못하며’, 진리 모르잖아요. 우리가 하나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우리의 두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봤잖아요. 그게 하나님 나라를 그 말을 알지 못하는 거죠. 그리고 그 말을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뭐가 뭔지 모른다는 거죠.
니느웨를 침략하는 군대는 표면적으로는 바벨론 군대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들은 빨갛게, 붉은색으로 지금 묘사가 되고 있는데 실제로도 바벨론 군대는 붉은색 군복을 입었다고 해요, 역사적으로.
(겔 23:14) 그가 음행을 더하였음은 붉은색으로 벽에 그린 사람의 형상 곧 갈대아 사람의 형상을 보았음이니
갈대아가 바벨론이죠. 붉다, 뭐 이렇게, 그러니까 피를 연상하게 하는 거죠. 피칠갑을 한 거죠, 전투를 많이 해서. 그러니까 잔해하는 그러한 군대인 거죠. 본문으로 가서요,
그의 용사들의 방패가 붉다 라고 해요.
'깁보르', 그의 깁보르의 '마겐'이, 아담, 붉다. 근데 이 용사가 복수로 나와요, 그래서 용사들이 되는데. 방패는 마겐인데 이건 단수로 나와요. 그러니까 용사들이 많은데, 방패가 하나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같이 복수여야 되는데, 이거는 어떤 효과를 주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이렇게 쓴 거예요. 그러니까 방패라는 단어를 강조하려고 하는데, 이게 히브리어에서 분산적 용법이라고 해요, 분산적 용법. 영어로는 Distributed Use 라고 해요, Distributed Use. 그러니까 이거는 붉은색으로 입혀진 하나하나의 방패를 개별적으로 강조하는 그러한 효과를 주는 그런 표현인 거죠.
(창15:1) 이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예, 하나님이 내가 너의 방패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방패는 이게 ‘가난’이라는 말에서 왔어요. ‘마겐’이라는 말이 ‘방패’인데, 이게 가난, ‘가난’이라는 말이 ‘방어하다, 지키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지키는 것, 지키는 분'이 되는 거죠, 지키는 것, 지키는 분. 앞에 ‘멤’이 붙어서 마겐이 됐는데, 그래서 ‘내가 너를 지키는 자다’라고 하는 거죠.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방패라고 표현하는 말이 많이 나오죠. 시편에 제가 두 편 더 소개를 해놨는데,
(시 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시 119:114)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하나님이 너희의 도움이시고 너희의 방패시다’, 그리고 ‘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이렇게 계속 굉장히 많이 나온단 말이에요, 하나님이 방패라는 말은.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는 분이라는 거예요. 그리고 '가난'에서 나온 말이 '간'이라는 말이 있어요. ‘간’이 ‘뜰, 정원, 동산’이라는 말이에요. 이 동산은 에덴 동산을 뜻하는 거죠, 간이라는 말이.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키시는데 뭘 지키시냐면 동산을 지키시는 거예요.
동산는 천국의 모형이죠. 천국은 우리 안에 있잖아요.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를 지켜주시는 분이다라는 그런 의미로 하나님이 방패다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언어 자체로 하나님의 어떤 구원을 설명해 주고 있는 거죠.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그 동산을 지키시는 분이다라는, 그런 의미가 이 언어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는 거죠.
(잠 6:10-11) 10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면 11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날도 춥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힘드셨죠,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이게 보통 일은 아니죠. 가깝지도 않고 엄청 멀리서 이 추운 날씨에 오시느라고 고생들 하셨는데, 흔히 사람의 어떤 게으름, 게으름에 대한 어떤 경계를 주는 그런 성구로 많이 쓰이는 그런 구절이죠, 그래서 좀 더 부지런해야 된다. 특히 자녀분들한테 이런 구절 많이 들려주고 했잖아요.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른다'라고 하는데, 이 군사가 ‘이쉬 마겐’이에요. 마겐, ‘방패의 사람’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기 앞에 '케' 전치사가 있어요, 그래서 방패의 사람처럼. ‘케’란 전치사가 ‘~처럼’이라는 뜻이죠, 방패의 사람처럼, 이런 의미가 되는데, 한번 볼게요.
‘내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내 곤핍이 군사같이 이른다’라고 해요. 빈궁, ‘빈궁’이라는 말은 여기에 ‘레쉬’라고 해요, ‘가난 궁핍’이라고 하는데, ‘궁핍이 강도같이 온다’라고 해요. 그러니까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너를 완전히 다 뺏어버리는 자가 된다’라고 하는 거죠. 근데 성경에서 말하는 가난한 자의 의미를 우리는 알고 있잖아요.
‘가난하다’라는 거는 ‘두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일 때, 그걸 가난하다’라고 한다고 했죠. 지금 게으른 자와 이 가난이라는 말이 연결되고 있는데, 가난의 의미를 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가난하다라는 건, 두 마음이 아니라 한 마음인 거, 두 마음이면, 선악의 두 마음이면, 내가 두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 부자라고 한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한 마음이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 하나, 그걸 내가 깨닫고 그 마음을 내가 받으면, 그러면 그는 가난한 자란 말이에요. 그러면 게으른 자는 뭐라는 거예요, 게으른 자는 누구라는 거예요? 성도를 말하는 거예요, 게으른 자는. 그러니까 이 심령이 가난한 자, 심령은 ‘프뉴마’,‘성령’이니까 성령의 갈급한 자, 또 성령은 진리의 영이고 진리의 말씀으로 치환해서 읽자고 했으니까, 진리의 말씀에 갈급한 자가, 가난한 자고 성도란 말이죠. 그가 게으른 자란 말이죠, 그 가난, 그 갈급함이,
'강도같이 온대요', 할라크. ‘할라크’의 피엘분사형이에요. 피엘분사형인데 거기에 ‘케’라는 전시사가 또 앞에 붙었어요, 그래서 ‘키므할레크’라고 키므할레크. 그러면 피엘형이니까 ‘반드시’잖아요, ‘반드시’ 넣어서 하잖아요. 그리고 할라크의 분사형이니까 '오는 것, 오는 자'가 되겠죠. 그러니까 ‘키므할레크’는 ‘반드시 오는 것처럼, 오는 자처럼’ 이렇게 되는 거죠. ‘반드시 오는 것처럼 온다’라고 하는 거죠. ‘보’, ‘온다’라고 하는 거예요, 가난이. 강도 같이 온다라고 하는 건, 반드시 오는 것처럼 온다. 뭐가 오는 걸까요? 반드시 오는 것은? 조금 더 넘어가서 볼게요.
(출 5:8)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그들이 게으르으로'. 여기서 ‘라파’라는 말이 쓰였는데요. 이렇게 ‘가라앉다, 떨어지다’ 이런 의미예요.
(삼상 15:1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가만히 계시옵소서] 간 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말씀하소서
‘가만히 계시옵소서’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게 '라파'예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는 거를 게으르다라고 지금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게으르다의 의미는 가만히 있는 거예요. 그래서 홍해를 건널 때도 ‘하라쉬’라는 말을 쓰잖아요. ‘너희는 가만히 있어라’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그래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보라’라고 하죠. 가만히 있는 거라고 하는 거죠, 그거의 의미가 게으르다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간밤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신 것을 왕에게 말하리다’라고 하죠. ‘가만히 있어야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 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다시 말하면 게을러야, 게으르다는 뜻이니까, ‘게을러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라고 하는 거에요. 예
(출 5:8)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라고하죠
그러니까 게으르니까 어떻게 해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거란 말이죠. ‘소리 질러 이르기를’이라고 할 때는 '차아크'라고 해요. ‘차아크’, ‘소리 지르다, 소리치다, 부르짖다’ 이런 뜻인데, 이 차아크는 이 율법이 떠나가는 소리란 말이죠.
(막 3:11) 더러운 귀신들도 어느 때든지 예수를 보면 그 앞에 엎드려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라고 하죠.
‘부르짖어’, ‘크라조’라고 해요. 신약이니까 헬라어는 '크라조'인데, '차아크'와 같은 말이에요. 그러니까 더러운 귀신이라는 거는 율법을 이야기한다고 했죠. '더러운 말', '프뉴마 아카달토스'라고 했잖아요. 프뉴마는 영이고, 거룩한 말씀이란 말이에요. 말씀인데 더러운 말씀이니까 더러운 영, 더러운 말씀이니까 율법을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그 율법이 주님을 보고 부르짖고, 그러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외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마귀들, 율법이란 말이에요, 마귀들이 부르짖을 때, '크라조'라는 말을 쓴단 말이죠. 주님도 크라조 하신 적이 있어요.
(마27: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이 율법으로 죽으시는 거잖아요, 십자가에서.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이 장면. 죽으신단 말이에요, 십자가에 박혀가지고 꼼짝 못하고 죽는단 말이에요. 이게 가장 게으른 자의 모습인 거란 말이죠. 꼼짝 못하는 거, 하나님의 그 뜻, 그 뜻이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거, 이게 게으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경에서 말씀하는 게으름이라는 거는, 할 일 안 하고 농땡이 피우는 거, 이걸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 율법적 행위, 이거를 멈추는 거, 거기에 대해서 열심 내지 않는 거, 이걸 게으르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걸 보이는 대로 보면 이 교훈이 되겠죠, 사람을 위한 교훈. 그래서 부지런해야 된다라고 그래야 일찍 일어난 새가 벌레를 잡을 수 있고 뭐, 그런 교훈으로 가게 된다는 거죠. 즉,
(출 5:8)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요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라고 하죠.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게으르기 전에, 게으르기 전에 했던 일이 뭐였어요? 벽돌 만드는 거였단 말이에요. 성경이 지금 그거 가르쳐주는 거예요. 벽돌을 만들어서 뭘 해요? 성 쌓는 거죠, 국고성 비돔 쌓고 라암셋 건축하고, 그러니까 바로의 성 짓는 일이란 말이에요. 바로, 세상 왕, 나, 나의 율법의 성을 짓는 율법적 수고를 열심히 하는 거, 이게 게으르지 않는 건데, 근데 이 성전 짓는 열심을, 성경은 '부지런하다'라고 하고, 그걸 멈추는 걸 '게으르다'라고 하는 거란 말이죠.
(시 127:2)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예, 지금 부지런한 자,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부지런한 자죠, 그를 뭐라고 해요? '헛되다'라고 한단 말이에요, 수고의 떡을 먹고 있고 헛되다. '수고의 떡'이 뭐예요? '율법적인 떡', 율법의 말씀 먹는다는 거죠. 그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잠을 주신다. '잠', 잠은 '죽음'의 은유잖아요. 죽음을 주신다, 십자가 죽음을 죽게 한다는 거죠. ‘헛되다’, ‘샤우’라는 말이에요. 이게 ‘공허, 헛됨’인데 ‘거짓’이라는 뜻이 있어요, 거짓. 율법이란 말이에요. 율법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보면 가장 게으른 일이, 십자가 죽음이란 말이죠. 죽음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고 안식의 상태란 말이죠.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는 말은
곤핍, ‘곤핍’은 ‘마흐소르’라고 해요. 이게 ‘필요한 것, 부족한 것’이란 말이에요. 그게 '군사같이', ‘이쉬마겐’ ‘방패의 사람’, ‘주님처럼 오신다’라고 하는 거죠. 필요한 것은 우리의 구원이고 진리의 깨달음인 거죠. 그게 반드시 온다고 하는 거죠. '그의 무사', 본문이에요
그의 무사들의 옷도 붉으며 라고 해요.
'군사들도 붉은 옷을 입고 있다'고 하고 있는 거죠. ‘무사들’이라는 말은 '에노쉬 하일'이라고 해요, 에노쉬 하일. 그러니까 ‘능력의 사람’이라는 거죠. ‘에노쉬’가 ‘사람’이잖아요, ‘인간, 사람’. 능력의 사람, 그가 ‘붉은 옷을 입고 있다’라고 하는데 이게 ‘탈라’라는 말이에요. ‘진홍색 옷을 입고 있다’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이 본문에서 ‘그의 무사’라고 했죠. 근데 원문을 보면은 ‘그의’라는 말은 없어요. '그의'라는 그런 소유격은 없고, 그냥 '에노쉬 하일'이에요. '능력의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누군가의 무사가 아니라, 그 에노시 하일, '그가 붉은 옷을 입고 있다'라고 하는 거죠.
(룻 2:1)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라고 해요.
‘유력한 자’, 이게 ‘이쉬 깁보르 하일’이라고 해요. 깁보르라는 말 아까 나왔죠, 용사. 그리고 '하일', '능력'이 되는 거죠. 그리고 '이쉬', 이쉬가 '사람'이죠. 그러니까 '에노쉬'와 같은 말이에요, '이쉬'나 '에노쉬'나. 그러니까 능력의 사람, 비슷한 맥락의 말인 거죠, 강한 능력의 사람. 그러니까 보아스는 룻의 기업 무르는 자죠. '기업 무른다'는 말이 '가알'이에요. ‘가알’이 ‘되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하다’. 이 가알, 기업 무르는 자를 가알의 분사형, ‘고엘’이라고 하는 거예요, 고엘. 그래서 고엘 제도라는 게 있어요, 이스라엘에. 고엘 제도라는 거는 친족이 자기들이 받은 그 땅을 잃어버리면 찾아주기도 하고, 그리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갚아주거나 보상을 받게도 해주고, 그리고 자식이 없을 때 자식을 잇게도 해주고, 그렇게 해주는 게 고엘이죠. 고엘은 그리스도의 모형이란 말이에요. 속량하는 자, 구속하고 속량하는 자가 그리스도신 거죠.
(룻 3:9) 이르되 네가 누구냐 하니 대답하되 나는 당신의 여종 룻이오니 당신의 옷자락을 펴 당신의 여종을 덮으소서 이는 당신이 기업을 물을 자가 됨이니이다 하니
기업 무르는 자기 때문에 '옷자락을 펴서 여종을 덮으소서'라고 하는 거예요. ‘옷자락’은 ‘카나프’라고 해요, ‘날개’예요. 날개라는 의미고, ‘편다’는 말은 ‘파라스’예요. 그러니까 날개를 펴는 거예요. ‘옷자락을 편다’는 말은 ‘날개를 편다’는 말과 같은 말이에요. 그래서
(신 32:11) 마치 독수리가 자기의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의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날개를 펴서 새끼를 보호하는' 거죠. '새끼 위에 너풀거린다'는 거는 ‘라하프’죠. ‘성령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는’ 그것과 같은 단어란 말이에요. 그리고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다’, '우리를 날개로 업어서 인도하셨다'라고 하잖아요, 출애굽기에서.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내가 너희를 업어서 내게로 인도했는지 너희가 보았다', 이렇게 말씀하신단 말이죠. 그러니까 이렇게 보아스가 그리스도의 모형이고, 고엘의 전형인 거죠. 그러니까 보아스가 '이쉬 깁보르 하일', '능력의 사람'이라는 거는, 구원의 능력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거고, 그러니까 '무사들의 옷이 붉다'라고 할 때, 그 무사, '무사'는 '에노쉬 하일', 그것도 역시 능력의 사람, 구원의 능력이 있는, 그리스도를 가르쳐주는 그런 표현인 거란 말이에요. ‘그가 ‘탈라’,’진홍색 옷을 입었다’.
(계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차적으로는 바벨론 군대를, 붉은 옷을 입은 바벨론 군대를 말하고 있지만, 그 속의 내용은 우리 안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 이야기하는 거고, 주님이 죽으시고 피 흘리면서 죽으시고, 우리를 구원하는 그 이야기가 담겨 있단 말이죠. 그러니까 주님이 쳐들어오시는 거예요. 바벨론 군대가 우리 앗수르에 쳐들어오는 이야기는, 주님이 우리 안에 쳐들어오시고, 우리의 옛 사람, 율법을 진멸하는 그 이야기란 말이죠.
본문이에요. 그 항오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노송나무 창이 요동한다 라고 해요.
‘항오를 벌인다’라고 할 때, ‘항오를 벌인다’는 말이 ‘쿤’이라는 말이에요, 쿤. 쿤은 ‘확고하다, 준비하다’라고 해요. 그래서 원문을 보면 ‘욤 하키노’라고 해요. 쿤의 부정사 연계형이에요. 그래서 ‘욤 하키노’라고 하는데 이걸 직역을 하면 ‘그의 준비의 날’이라고 흔히 말하는 거예요, 다른 성경들을 보면. 준비의 날이라고 항오를 벌이는 날보다는, 준비의 날이 더 오히려 원문에는 가깝죠.
그 준비의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인다’라고 하는 거죠. 쇠가 번쩍인다, 이게 '철의 불 안에 있다' 그런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철이 반사돼서 번쩍번쩍하는 그러한 의미로 보통은 이해하는 그런 장면이죠. 그러니까 준비의 날이라고 하는 거는, 이 군대가 전쟁을 하기 전에, 전투를 벌이기 전에 군사들을 효과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도록 전술에 따라서 잘 배치하는 거, 보병은 어느 쪽에 기병은 어느 쪽에, 또 궁수는 어느 쪽에, 이렇게 배치하는 거, 이거를 준비의 날이다, '욤 하키노'라고 또 해요.
나훔 2장 5절에도 보면은 '쿤'이라는 말이 나와요. 지금 보고 있는 성경 바로 본문의 바로 다음이 되겠죠.
(나훔 2:5) 그가 그의 존귀한 자들을 생각해내니 그들이 엎드러질 듯이 달려서 급히 성에 이르러 막을 것을 [준비하도다]
이렇게 '준비하다'가 '쿤'이란 말이죠.
(수 3: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라고 해요.
여기에 '굳게 선다'라고 할 때 '굳게', 굳게가 '쿤'이에요.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언약궤는 '아론 베리트'라고요. '아론', 아론이 '궤, 상자'고 그리고 '베리트', 베리트가 '언약'이죠. 그래서 언약의 궤예요. 그걸 '맨 제사장'이라고 하는데, '맨다'는 말은 '나사'에요. 나사는 '십자가 든다'는 이야기죠, '들어올리다'. 그걸 든 '제사장' '코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언약궤를 맸다'라고 하는 거는 십자가를 맨 주님을 가르쳐준 그런 모형인 거죠.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요단', '야르덴'이에요. '야르덴'은 '야라드'에서 유리했다고 했죠. '야라드', '내려오다'. 그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그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만난 여호와께서 '내가 내려가서 너희를 그 아름다운 땅에 인도하겠다'라고 하잖아요. '내려간다', 이때 '야라드'란 말이에요. 그렇게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내려오신 분 그분이 이제 야르덴이란 말이에요.
말씀이 육신되어 오셨으니까 율법으로 오셨죠. 예, 율법의 강이란 말이에요. 그 야르덴이 마른 거예요. 마르면은 '하라바' '마른 땅'이 되는 거죠. 그 마른 땅이 구원의 땅이라고 하죠. 거기에 '굳게 섰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십자가가 선 곳 그곳이 구원의 땅인 거죠. 주님이 언약궤를 지었다고 했잖아요. 그 언약궤 십자가를 지고 굳게 선 것, '선다'는 말이 '아마드'죠.
그리고 '굳게'라는 말은 '쿤'이라고 했죠. 쿤이 부정사로 쓰였어요. 히필형이에요. '쿤'은 '확고하다, 준비하다, 확립하다' 이런 의미잖아요. 그러니까 서는데 부정사란 말이에요, 히필 부정사. 그러니까 '확실하게 확립되기 위하여 섰다'라고 하는 거죠. 확실하게 확립되기 위해서 십자가로 섰다. '아마드'가 '십자가로 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아마드 하켄', '확실하게' '하켄'이 '쿤''의 히필 부정사용이에요. '아마드 하켄'은 이제 확실하게 십자가로 확립되기 위해서 섰다라고 하는 거죠. '주님이 먼저 십자가로 서셨다'는 말이 그러한 은혜로 온 이스라엘이 율법의 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거죠.
'약속의 땅으로 들어간다'는 말은 '약속의 땅이 된다'라는 그런 의미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이게 구원이다'라는 걸 지금 가르쳐주고 있는 거예요. 그러한 그림으로 이스라엘이 강을 건너서 약속의 땅을 들어가는 그 그림으로 우리가 어떻게 약속의 땅이 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단 말이에요. 알기 쉬운 그림으로 히브리서 9장 4절
(히 9: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라고 해요.
그러니까 그 언약궤 안에는 돌판이 있고 만나 담은 항아리가 있고 그리고 아론의 지팡이가 들어있는 거죠. 그것들은 전부 뭐예요? 돌판, 만나 그리고 지팡이. 이건 전부 그러니까 일단 돌판이니까 돌판, 말씀이잖아요. 만나도 말씀이죠. 그리고 지팡이도 십자가 진리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전부 말씀이고 진리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게 전부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가 있는 거죠. 주님의 의미가 있는 그러한 내용들이 그 언약궤 안에 들어있어요. 창세기 50장 26절 보면요.
(창 50:26) 요셉이 백십세에 죽음에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관에 넣었어요. '관'이 '아론'이란 말이에요. 언약궤를 뜻하는 아론의 관, 그게 관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을 뜻하는 소재들이 어디에 들어가냐면 아론 그 관에 들어가는 것처럼, 지금 뭐예요? 요셉, 주님을 뜻하는, 모형하는 요셉이 양식의 주였잖아요. 양식의 주인, 요셉이 언약궤 안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그림이란 말이에요. 그게 관이란 말이에요. 죽어서 들어간다는 거죠. 그러니까 관은 곧 무덤이라는 의미가 되는 거예요. 무덤이고 또 무덤은 또 십자가라고 했잖아요, 그리고 그게 전부 우리 안 이야기고. 그러니까 주님이 죽어서 장사되는 것 그게 지금 요셉이 이관하는 거나 석판 만나 지팡이가 언약궤에 들어가는 거나 지금 같은 일이란 말이에요.
그렇게 십자가에 죽어서 장사되고 그리고 부활해서 그리스도로 우리 안에 오시는 것 이게 '베리트' '언약'인 거죠. 그러니까 언약궤는 다름 아닌 주님의 죽음을 가르쳐주는 그런 소재인 거고 그렇게 죽으시는 게 언약이다라는 걸 가르쳐주고 있는 거죠.
그 항호를 벌이는 날에 병거의 쇠가 번쩍이고 라고 해요.
'병거', 병거는 '레케브'라고 합니다. 오늘 주제가 '병거'인데 병거에 대한 내용은 좀 내용이 좀 많아서 다음 주까지 연결해서 계속 보겠습니다.
전투의 '병거'는 지금으로 치면 거의 탱크잖아요. 그래서 고대의 전투에서 병거는 굉장히 중요하죠. 그리고 굉장히 위력적인 큰 위력을 발휘하고 그래서 또 굉장히 빠르기도 하고 벤허 같은 영화를 보면 그 옆에다 칼날 같은 거 달아가지고 옆에 있는 그 병거를 바퀴를 막 이렇게 살 바퀴살을 자르기도 하고 막 그랬잖아요. 그래서 바퀴가 빠져버려가지고 뒤집어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굉장히 경주신을 보면 굉장히 병거가 빠르게 달리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죠. 그렇게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렇게 달릴 때 막 불꽃을 내는 그런 이미지가 나올 수가 있는 거고 그런 것들을 통해서 지금 먼 곳에서 오는 군사들의 어떤 위력이라든가 위용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거죠.
그리고 '병거'를 '레케브'라고 하고 '쇠'는 '펠라다'라고 하는데요. 펠라다라는 말은 여기서 딱 한 번만 나와요. 그리고 이제 철병거라는 말이 많이 나오죠. 성경에서,
(수 17:16)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난한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예, '레케브', '바르젤'이라고 해요. 바르젤이 철인데, 그래서 레케브가 병거니까 '철병거'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사기에도 보면은,
(삿 1:19)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 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라고 하죠. 여호수아도 지금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라는 말은
사사기에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말과 연결되는 말이죠. 철병거 때문에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하는 거예요.
가나안 전쟁, 가나안 정복 전쟁이라는 거는 이게 우리 안에 영적 전쟁을 이야기한다고 했죠. 말씀의 전쟁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이제 '철병거 때문에 쫓아내지 못한다'라는 거는 그럼 무슨 의미겠어요? 철병거 때문에 그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한다라는 거. 이사야서 31장 1절부터 합독시겠습니다.
(사 31:1-3) 1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이스라엘이 왜적의 어떤 침략의 위협을 느낄 때마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갔죠. 애굽 사람들은 병거가 많이 있었고 그리고 기병대도 아주 강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저들이 도와준다면 그러면 그 왜적들을 이길 수 있겠다, 국난을 극복할 수 있겠다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지금 우리도 이스라엘이 애굽을 의지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우리도 뭔가 문제가 생겼을 때 또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때 무슨 생각부터 해요? 하나님 이게 무슨 뜻이에요? 이리로 안 가잖아요. 바로 어떻게 해요? 이거 어떻게 해결하지 일단 머릿속으로 궁리를 하고 그래서 잘 안 되면 이걸 누가 도와줄 수 있지를 먼저 생각하잖아요. 그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 사람한테 도움을 받으면 이거 잘 해결할 수 있겠는데 뭔가 쉽겠는데... 그걸 주신 하나님의 뜻은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라는 거는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는 거 그걸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 이거 도와주세요, 해결해 주세요, 이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도와주세요, 해결해 주세요'라는 거는 뭐예요? 일단 먼저 그걸 판단하고 있다는 거잖아요.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게 아니라 내 판단을 하는 거고 두 마음으로 판단해서 이거 마음에 안 든다라는 결정을 내린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거 해결해 주세요, 도와주세요, 그러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거, 먼저 구하는 거 그게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거고, 이거 어떻게 해결하지? 이게 내 생각, 나의 두 마음으로 판단하고 '이거 안 좋은 거야'라고 일단 결론 내린 거, 이것부터가 나의 율법의 힘을 의지한 거란 말이에요. 내 안의 율법, 다른 외부의 다른 사람을 이전에 나의 판단, 나의 율법 그게 나의 판단이 나의 율법이죠. 그걸 의지하는 걸 '애굽 의지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남 얘기하는 게 아니라 전부 내 얘기예요. 내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느냐 아니면 내 판단, 두 마음으로 그것들을 보고 있느냐 그 얘기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였다'라고 하는 거죠.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되는데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보이는 대로 보고 자기 생각대로 바라보고 그래서 내 뜻대로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는가를 궁리했다라고 하는 거죠. 그걸 '애굽의 도움을 바란다'라고 '구한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병거는 말이 끄는데 그 말은 영이 아니라 육체라고 하는 거죠. 육의 두 마음, 육은 지금 전부 율법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바사르' 그러니까 '영이 아니다'. '프뉴마',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율법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말이. 우리가 의지하는 그 말, 말을 타고 우리가 어딘가를 가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하고 그러죠. 그걸 타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철병거라는 거는 내 안에 율법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내 안에 율법이 이끄는 무기고 그게 그걸로 내가 어떻게 대적에 맞서볼까라고 하는 나의 판단 이야기하는 거죠, 두 마음. 결국 이스라엘이 철병거 때문에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고 있다라고 하는 거는 자기가 하나님보다도 더 의지하는 자기 율법, 자기 두 마음 때문에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고 있다라는 그런 의미인 거죠.
(삿 9:53) 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의 두개골을 깨뜨리니
이 맷돌이 '레케브'예요. '아비멜렉'은 '아비, 나의 아버지'죠. 나의 아버지가 멜렉 왕이다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내 아버지가 왕이다라니까 이 사람은 왕의 아들이죠. 아들이에요. 아들이 맷돌에 맞아서 머리에 맞아서 두개골이 깨져서 죽는 거죠. '굴골레트'라고 해요. 굴골레트 '두 개골' 이 굴골레트가 신약으로 가면 '골고다'하고 같은 뜻이에요. '해골산, 해골 머리'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머리이신 아들이 골고다에서 죽는다는 거죠. 그게 머리가 깨지는 일인 거예요. '머리가 깨졌다'라는 게 머리이신 아들이 왕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왕의 아들이 골고다에서 죽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랬더니까 어떻게 돼요? 사사기 9장 55절
(삿 9:55)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비멜렉이 죽는 것을 보고 각각 자기 처소로 떠나갔더라
'죽는' 거 '무트'란 말이에요. 무트를 보았어요, '라아'. '라아'라는 거는 '보고' 깨닫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아들의 죽음의 의미를 보고 깨달아서, 각각 자기 처소로, '마콤'이란 말이에요, 마콤. 마콤이 '쿰'하는 곳, 십자가란 말이에요. '십자가로 가더라'라고 하는 거예요, 그 의미를 알아서 십자가로 가더라. 자기 십자가 들고 골고다로 가서 죽더라라고 하는 거죠.
스가랴서 6장 1절부터 합독 하시겠습니다.
(슥 6:1-5) 1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 산이더라 2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3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내가 또 눈을 들어본 즉 내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온데 그 산은 구리산이더라 첫째 병거은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은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매었는지라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까 하니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내 바람인데 온 세상에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내가 또 눈을 들어본 즉 네 병거가'. 병거, 네 병거는 '아르바 메르카바'라고 해요. 이게 아까 '병거'는 '레케브'였죠. 이게 같은 글자예요. '멤'이 앞에 붙은 거예요. 그래서 '메르카바'라고 하는데, '수레, 병거'라는 뜻으로 쓰여요. 그리고 '아르바', 아르바가 '넷'이죠. 그래서 '네 병거'예요. '아르바 메르카바', '아르바'라는 말은 '기럇 아르바'에서 우리가 봤던 단어죠. 아르바가 넷이고 기럇, '기럇'이 '키르야'. 키르야인데 그래서 네 성읍이라는 의미죠. 사사기 1장 10절에 보면
(삿 1:10) 유다가 또 가서 헤브론에 거주하는 가난한 족속을 쳐서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죽였더라 헤브론의 본 이름은 기럇 아르바였더라
'기럇 아르바'가 '헤브론'이고 거기에서 가나안 족속을 치는데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가 죽었다'라고 해요. 그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라는 인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죠. '세새', 세새가 '셰사이' '고귀한, 흰'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고귀하고 흰 분'이라는 의미죠. 그래서 요한계시록 1장 14절에 보면
(계 1: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라고 해요.
그러니까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갖고 눈 같으며', 흰 분이란 말이에요. 고귀하고 흰 분, 예수 그리스도시고. '아히만'은 '내 형제'죠? '아흐'가 '형제'고 '아이'니까 '내 형제'. 내 형제가 '만' '만나'다라고 하는 거예요. 하늘로부터 내려온 그 양식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내 형제가 이스라엘 살리는 그 양식의 형제라고 하는 거죠.
그리고 '달매'는 '탈마이'라고 하는데, 이게 어원이 '탈남'이에요, 탈남. 탈람이 '부수다'라는 거예요, 부수다. 부순다는 의미가 있는 이름이 '탈마이'예요. 그러니까 세새, 새샤이, 그 희고 거룩한 어떤 분이 만나로 생명의 양식으로 주어지는 나의 형제이신 그분이 '기럇 아르바'에서 죽어요. 부수어진단 말이죠. 부수어짐으로써 유다가 쳐 죽였다 했잖아요. 가나안 족속을 쳐서 죽였다. 그게 '나카'란 말이죠. 반석을 쳐서 죽이듯이 죽인 거란 말이죠.
이렇게 이스라엘이 넷의 성읍, 넷으로 완성되는 성전 그걸 얻게 해 주셨다라고 하는 거죠. 그 기럇 아르바가 넷의 성전을 의미하는 거고, 그 넷의 성전의 그 이름, 헤브론의 본 이름이 기럇 아르바였다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헤브론과 기럇 아르바는 같은 이름이고, 본 이름이라고 할 때는 '보는', '파님'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이는 거는 길라아르바라는 성읍이지만 그거의 의미는 그 속의 내용은 헤브론이다라고 하는 거죠.
'헤브론'은 '하바르'에서 온 말이에요. '하바르', '연합하다' 연합이라는 의미죠. 그러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셨단 말이에요. 죽으심으로 연합을 이루어주고 하나님과 하나 되게 화목하게 해 주시는 그런 주님의 모형을 그 아들들이 보여주고 있는 거죠.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온다'라고 해요. 그리고 '그 산은 구리 산'이래요. 구리는 '네오셰트'라고 해요. 네오셰트가 '청동, 놋쇠'라는 뜻인데, 이게 네오셰트가 율법의 의미잖아요. 네오셰트란 말 자체는 네 글자지만 오른쪽에서 세 개만 보면 '나하시'예요. 나하시, '뱀'이란 말이죠. 율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율법의 산, 율법의 성전인 거죠. 율법의 성전에서 네 병거가 나오는 거예요. 그 성전을 이루는 넷의 성전을 이루는 병거가 나오는 거죠.
그러니까 '율법 안에서 진리의 성전을 이루는 그 병거가 나온다'는 거는 '율법 안에 진리가 있고 그 진리가 우리를 성전으로 지어진다'라고 하는 거예요.
(슥 6:4) 4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바람', 바람은 '루아흐', '성령'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병거는 곧 뭐라는 거예요? 내 병거가 내 바람이니까 병거는 곧 성령 '루아흐'란 말이지요. 그러니까 성령은 말씀이니까, 아까 '율법의 병거'였잖아요,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애굽을 의지할 때는. 그러니까 성령에 의지할 때는 이게 우리의 말이 율법이었던 거고 그게 이제 병거였던 거고 그걸 우리가 힘 삼았던 거고 두 마음으로 판단하면서 힘 삼았던 거고, 그걸 병거라고 지금 말씀하신 하시는 거고 그리고 이 병거를 바꿔주시는 거란 말이에요. 성령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그 성령 의지해야 된다라고 하는 거죠.
하나님이 일상에 주시는 모든 말씀을 우리가 이 땅을 위한 말씀, 세상 살이를 위한 말씀으로 보게 되면 말씀은 율법이 되는 거고 그게 내 힘이 되잖아요. 그걸로 내가 살잖아요. 그래서 그걸로 힘내고 그걸로 사는 거지 나의 두 마음으로 차곡차곡 쌓은 벽돌처럼 하나하나 쌓아올린 내 성이 굳건하게 서 있잖아요. 그거 허물어뜨리기 되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걸 너무 어렸기 때문에 죽음이라고 하는데, 당초 안 죽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굳건하게 잘 쌓았는지.
이게 애굽을 의지하는 거고 말과 병거 의지하는 일이 되는 거고, 그러면 내 안의 진리 그 이스라엘이 내 안의 율법 그 철병거 쫓아내지 못하는 그런 일이 되는 거죠. 그렇지만 그 병거 네 바람의 성령의 병거 그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그 말씀을 바꿔주시면 그 말씀이 우리의 능력이 되는 거죠.
(왕하 2:11)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두 사람을 갈라놓고 회오리바람으로 올라간대요. 그 회오리바람을 '사아르'라고 하고, '폭풍, 태풍'인데
(욥 38:1) 그때 여호와께서 폭풍우 가운데서 욥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게 이 '폭풍우'는 역시 '성령'을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죠. 그 성령 가운데서 '불의 수레', '수레'가 '병거'예요, '레케브'란 말이죠. 그게 '사르' 진리의 그 말씀으로 인해서 하늘로 올라갔다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엘리아가 하늘의 진리를 깨달아서 하늘이 됐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올라갔다'는 말이 뭐냐면 '알라'라고 한단 말이에요. 이 알라가 번제로 올라가는 걸 그 '올라'라고 하죠, 번제를. 번제로 올라가는 걸 알라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건 엘리아는 십자가의 죽음을 죽었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를 십자가의 죽음을 죽은 거를 하늘로 올라갔다, 승천했다라고 하는 거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요. 다음 시간에 마무리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의 방패되시고 병거 되시고 마병되시는 주님을 찬송합니다. 우리의 그 굳건했던 그 율법의 병거 무너뜨려 주시고 네 바람의 그 성령의 병거, 회오리바람 속에서 온전한 그 진리의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그리고 하늘로 지어지는, 그래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