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열린 음악회와 까페 “그대로 그렇게”
2004년 설날 특집 열린 음악회에서 7080이란 이름으로 그 시대의 그룹 사운드를 초대했습니다. Fevers 이름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무대에 다시 설 기회가 주어졌으나, 막상 연락이 되어 모일 수 있는 사람은 이명훈, 문장곤, 정원찬 3명 밖에 없었습니다. 베이스와 키보드 그리고 노래만으로 그룹사운드의 음악을 할 수 없기에 좀 난감했지요. 그런데, 문장곤 군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내 놓았습니다.
문장곤 군은 2년전부터 Fevers Junior라는, 자신의 아들과 그 친구들이 만든 그룹사운드를 길러왔습니다. Fevers Junior가 뒤에서 반주를 하고 왕년의 fevers 셋이 앞에 서서 노래를 하자는 문장곤 군의 아이디어에, 모두 찬성했습니다.
먼저 Fevers Junior가 ‘그대로 그렇게’와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을 맹렬히 연습했습니다. Fevers Junior가 연습을 마치면 우리와 함께 맞추는 연습을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명훈 군은 부산에, 문장곤 군은 서울에, 저는 대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연습 시간을 맞추는 것도 힘이 들었습니다. 결국, 일요일에 제가 와서 Fevers Junior와 연습을 하고, 그 다음에 이명훈 군이 따로 연습을 맞추는 것으로 했지요.
Fevers Junior를 처음 만나던 날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김용휘, 이민형, 이범섭, 박수연, 김지환, 문지환, 김주형(당시 임시멤버?)으로 이루어진 Fevers Junior는 20대의 풋풋한 젊음과 함께 탄탄한 음악 실력을 갖추고 있는 수준 높은 팀이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대부분 와 있었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멤버도 있었습니다. 제가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그때도 연습에 꼭 늦는 멤버가 있었는데, 늦는 사람은 꼭 신경질 내며 들어오더라” 라고 했지요.
아무래도 늦으면 미안하니까 ‘서울의 교통이 문제’라든지 ‘집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누가 전화를 해서 그랬다’든지 하면서 기분 나빴다는 표정을 짓지요. 그러면 아무래도 남들이 덜 나무라거든요.
그런 얘기하고 있는데 늦게 도착한 Fevers Junior 멤버가 툴툴거리며 들어왔습니다.
그것을 본 김용휘 군이 “쟤도 신경질 내며 들어오네요. Fevers 전통인가 봅니다.” 라고 하여 웃었습니다.
Fevers Junior와는 재미있게 연습을 하였고, 화음 연습도 함께 하였습니다. 각자의 실력이 탄탄했고, 연습벌레 문장곤 군의 지도로 맹연습을 한 팀이라, 참 잘들 하였습니다. 저는 정말로 오랜만에 그룹 연습을 하며 감개무량하더군요.
2004년 1월 20일은 열린음악회 특집 7080 그룹사운드 녹화일이었는데,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서울로 올라와 KBS 홀에서 이명훈 군과 문장곤 군, 그리고 Fevers Junior 들을 만났고, 오후 내내 무대 연습과 카메라 리허설을 했습니다.
연습을 하면서 방송국이 많이 발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PD 한 명에 심부름하는 사람 한두명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프로그램을 제작했는데, 열린음악회 녹화를 보니 책임 프로듀서는 객석에 있고, 많은 보조 PD들이 일을 나누어 맡아 자신의 일을 처리하더군요.
카메라 팀과 조명 팀, 사운드 조절 팀도 지휘하는 사람 한 명씩과 이를 보조하는 여러 사람이 일을 나누어 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녹화 진행에서도 대기실에서 시간되면 출연자들 내 보내는 사람, 출연자들이 해당 위치로 가서 준비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 마이크 높이만 전문적으로 맞추는 사람 등 빈틈없이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특히 그 공연은 많은 그룹사운드들이 출연하는 음악회였기 때문에 이동식 무대가 3개 준비되었습니다. 한 팀이 연주하고 있을 때 다음 팀은 다음 무대에 올라가 준비하고 있다가 앞 팀의 연주가 끝나면 이동하는 무대와 함께 바로 연주를 시작하였습니다. 옛날 같으면 무대가 하나 뿐이라, 한 팀 연주 마치고 다른 팀 올라와 준비하고 사운드 맞추고 하면, 연주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겠지요.
연습하고 기다리고 하면서 함께 출연하는 다른 그룹들과 만나 인사도 하고 옛날 이야기도 했지요. 모두들 나이가 들어 중년 아저씨 같은 모습들이었으나, 오랜만에 해보는 방송 출연에 약간씩 들떠 있었습니다.
7080 그룹사운드 특집에 특별히 사회자로 초청된 배철수 형도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이었지요. 같은 해변가요제 출신이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은 금새 알아보시고 반가와 하시더군요.
또한 Black Tetra, Oxen 80, Linus, Locust가 모여서 만들었다는 B.O.L.L 이라는 팀이 있었습니다. 모두 사회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모여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한다고 하더군요. 공연은 구청의 구민회관 같은 곳에서 많이 하는데, 수익금을 모두 결식아동 돕기를 위해 내놓는다는 얘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모든 팀이 갖가지 가요제에서 입상한 경험이 있기에, 저희는 대기실에서 “가요제에서 노래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기분이다”라고 하기도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고, 녹화 끝나면 함께 어딘가로 이동하여 술 한잔 하기로 했습니다. 모두들 젊은 시절 음악에 미쳐 활동을 했고, 오랜만에 무대에 올라 옛 기억을 되살리는 흥분된 상태였기 때문에, 밤새도록 함께 얘기를 해도 모자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7시 30분.
녹화가 시작되고 저희 차례가 되어 Fevers Junior는 뒤의 이동 무대에 있고, 이명훈, 문장곤, 정원찬 3명은 무대 앞쪽으로 걸어나갔습니다. 보통, 무대는 밝게 객석은 어둡게 해 두기 때문에, 무대에 서면 객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열린음악회는 객석도 환하게 해 두어,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표정을 모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무대에 나가 그 관객들의 얼굴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찡하게 울려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저와 비슷한 나이의 중년분들이고, 일반적으로 그 연령층은 굳은 얼굴표정으로 무게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분들의 얼굴은 가득 웃음을 띄우며 정말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에 가득찬 모습들이었습니다.
“아, 이 분들이 정말로 행복해 하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그대로 전해왔고 동시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처음 방송 출연 얘기를 들었을 때는 단지 친구들과 오랜만에 무대에 함께 선다는 것에 재미있겠다는 생각만 있었는데, 그분들의 표정을 보고는 저희가 무슨 보람있는 일을 하는 것 같은 행복감이 밀려온 것이지요.
그 행복감을 갖고 무대에서 열심히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 관객들의 표정을 최대한 많이 보아 두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그 분들의 모습이 모두 저희에게 기쁨으로 전해져 저희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힘이 되었습니다.
2시간도 안되는 녹화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70년대 같으면 1시간 20분짜리 프로그램 녹화하는데 3시간 넘게 걸렸을텐데, 방송 진행 시스템이 완벽해서 그런지 거의 생방송 정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대기실에서는 모든 팀들이 지루한 줄 모르고 남의 연주를 들으며 즐거워 하였지요.
녹화를 마치고 보니 밖에는 세찬 바람과 함께 거센 눈보라가 몰아치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맑은 날씨였는데, 녹화가 시작될 무렵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더군요.
출연자들끼리 어디 가서 한 잔 하기로 한 것은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고, 모두 뿔뿔이 집으로 돌아갈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이야 한없이 컸지만, 눈보라 속에 차들이 시속 20km 정도로 설설 기어가고, 차를 잡기도 힘드는데 함께 어디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저희 그룹도 문장곤 군과 Fevers Junior는 연습실로, 이명훈 군은 강남으로, 저는 여의도에 근무하는 친구를 찾아서 각자 헤어져 갔습니다. 30년 전에 만나 뜻을 합쳐 음악을 함께 했던 친구들이 25년 만에 한 무대에 서서 함께 노래했는데, 다시 함께 했던 시간이 너무 짧았고, 그 행복했던 시간에 비해 너무 아쉬움 많고 허무하게 헤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명훈 군, 문장곤 군과 함께 악수를 하며, “이제 좀 자주 연락하며 지내자”라고 했습니다만, 속으로는 ‘또 1년에 한번 정도나 전화가 오려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설 연휴 전날 눈보라치는 차가운 밤 거리에서, 헤어지는 친구들의 웅크린 뒷모습들이 안타까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귀성객들 틈에 섞여 대전으로 내려와 KBS 열린음악회 인터넷 게시판을 열어보니 벌써부터 공연을 본 사람들의 글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1월 25일 방송이 나간 후부터는 열린음악회 게시판의 대부분이 7080 중년층 세대가 올린 글로 도배되었습니다. 방송 후 1주일 만에 약 1천 개의 글들이 올라왔는데, 그 연령층에 컴맹이 적지않다는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 후 3월 말까지 약 8주 동안 약 400개의 글이 올라온 것과 비교해 보면, 그 당시 얼마나 폭발적인 호응이었는지 알 수 있지요.
게시판에는 방송을 보신 분들의 글들도 많았지만, 방송을 보지 못한 분들의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거센 재방송 요청에 KBS에서는 이례적으로 재방송을 편성하고 1월 31일 토요일 오후에 재방송을 내보냈습니다.
그 글들에 나온 말들 중 가장 많았던 내용들은,
“옛 추억이 생각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가요제 출신들이어서 그런지 세월이 지났어도 실력들이 아직 남아있다.”
“고정적으로 이런 프로를 만들자.”
“젊은 음악 아니면 모두 트로트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우리도 우리가 좋아하는 노래 들을 권리가 있다.”
“조금 보고 있으려니 아이들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라.”
“나에게도 젊은 날이 있었고, 그 방송을 보며 앞으로 더 씩씩하게 살아갈 힘을 얻었다.”
이런 내용과 함께, 학생들이 올린 글 중
“부모님이 TV를 그렇게 열심히 보시는 것 처음 봤다.”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그 글들을 보면서 저는 KBS홀 관객석에서 보았던 그 분들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아마 전국에서 그 방송 보시던 분들의 얼굴이 그렇게 행복하고 환한 얼굴이 아니었을까요?
열린음악회 게시판에는 Fevers에 대한 글도 많았습니다. 저는 그 글들을 모두 읽었는데, 특이한 글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이명훈 님이 좋아서 팬클럽에 가입하고 싶다”는 글과 그 댓글로 “’다음’에서 ‘그대로 그렇게’라고 치면 나오는 까페가 있다”는 글이었습니다.
호기심에 ‘그대로 그렇게’ 까페를 찾아가 보았고, 그냥 글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회원 수가 10명 남짓한 까페였지요. 그 날은 다른 일 때문에 잠시 둘러보다 그냥 나왔습니다.
다음 날 ‘그대로 그렇게’ 까페를 다시 찾아가보니 “정원찬 이란 분이 다녀가셨어요”라는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그대로 그렇게’ 작곡자인지 모르겠다면서…
까페에 등록을 하고 까페 주인장과 대화를 했습니다. 까페 주인장은 2003년 여름부터 까페를 만들고 언젠가는 이명훈 군이 이 까페에 찾아올 거라고 기다리고 계셨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명훈 군과 문장곤 군에게 알리고 데려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때 기뻐하던 주인장의 모습 (사실은 대화창에서의 글)이 잊혀지지 않네요.
다음 날 이명훈 군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리고 까페에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문장곤 군은 스스로 알고 잘 찾아왔더군요. 이렇게 우리 세 명은 ‘그대로 그렇게’라는 까페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인장과 회원들 모두 기뻐하던 것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까페의 회원수도 많이 늘고, 서로를 알리는 글도 많이 오고 가면서,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기억해주며 25년을 기다려 준 분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많이 놀랐습니다. 이에 용기를 얻어 이명훈 군은 재기를 다짐하게 되었고, 까페 회원님들의 성원에 힘입어 현재 차근차근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5년이라는 세월도, 열린음악회 녹화 후 헤어져가는 친구들의 등을 춥게 만들었던 그 폭설도, ‘그대로 그렇게’ 까페 회원들의 변함없는 사랑과 뜨거운 열기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나 봅니다.
Fevers를 만든지 26년.
이제 전혀 다른 형태의 음악이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 저희가 했던 음악은 일부 사람들의 먼 기억 속에서만 희미하게 존재할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희가 했던 활동은 철없었던 그러나 순수했던 열정뿐이었다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KBS 홀 관객석에 앉아 손뼉치며 노래를 따라하시던 분들의 행복한 얼굴들,
1주일만에 올려진 천 여 건의 글들,
특히, ‘방송을 보며 힘을 얻었다’고 하신 글,
‘그대로 그렇게’ 까페에 모이신 여러분,
그런 모습들은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와 저희 음악이 아직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까지는 무대에서 노래와 연주를 하며 여러분들게 음악을 들려드렸지만,
이제는 그 음악이 메아리되어 저희에게 되돌아옴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메아리는 아주 커다랗게 증폭되어 저희 가슴에 자리잡고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잊혀질 줄 알았습니다.
시간과 함께 희미해질 줄 알았습니다.
젊은 한 때의 바람이라 여겼습니다.
우리의 정열은
우리의 열기는
그렇게 지나는 바람인 줄 알았습니다.
좋은 음악은
예고없이 불쑥 우리의 입가에서 흥얼거려지듯이
좋은 사람 또한
우리의 삶 속에서 그렇게 떠올려지는가 봅니다.
오선지에 악보를 한 땀씩 그려나가고
굳은 살이 배기도록 연주를 하고
목이 쉬도록 노래부르는 그들의 음악은
아직도 우리를 그 추억에서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말하겠습니다.
거기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소리없이 자릴 지키던 우리들
한소리로입을 모아
다시 한 번 그들의 노래를 부르겠노라고
내 정열과 내 열기를
이곳에서 가꿔 보겠노라고…
노래하는 그들을 우리가 사랑하듯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는 우리를
그들도 사랑해 주길
그대로 그렇게 우리는 여기 있겠습니다.
(‘그대로 그렇게’까페 대문에 올려진 글 중에서…)
첫댓글 저도 1등을 이렇게 해보구요.... 원찬 형님 저 파란별 기억하시겠어요... 그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치 제 옛 일기처럼 정말 재미있게 봤습니다.
감동............. 한권의 대작을 읽은 듯 합니다. 어쩜 이리 글도 잘 쓰시는지....원찬오빠, 동안 넘 수고 많으셨구요, 마지막회라 증말 아쉽네요. 저희는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여기 이렇게 자리 지키고 있을 겁니다.
휴우~~ 이제 집에 도착햇읍니다~~!!! 이명훈씨와 즐거웠던 만남을 마치고 집에오자마자 원찬님의 글부터 봅니다 고대하던 휘버스의 히스토리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 하시는지 궁금했었읍니다~~ 역시 차분하신 마무리 감사합니다 님들이 그자리에 영원히 계실수 있도록 우리도 변치않고 우리의 자리를 지키렵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구요, 읽는 내내 감동이였답니다, 늘 건강 하시고, 세분의 변치않는 우정이 계속돼기를 바랍니다.
원찬님과 경미님의 처음대화때 원찬님이 명훈오빠 를 데려오신다 했을때 우리 경미님 얼마나 기뻐했을까를생각하니 또 눈물이 나네요.. 그날 경미님 잠은 잤을까요??저는 얘기만 들어도 이렇게 가슴이 미어 지는 느낌이 드네요...너무 행복합니다.
가슴이 뭉클해서 무슨말을 해야할지...원찬오빠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저두 이순간 너무 행복합니다...
원찬오빠............말을 잇지 못하겠어요...25전전의 일부터 현재까지 한편의 장편영화를 본 듯 합니다. 제 눈앞에 그동안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갑니다...감동, 그 자체입니다. 그리구, 정말 마지막인가요? 오빠의 계획은 정말 여기까지인가요? 제2부, 제3부를 기다리겠어요...'마지막회'글자가 왜 일케 커보이죠?
정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너무너무 좋았는데,
휘버스는 우리의 추억입니다. 그래서 늘 가슴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지요. 아름다운 원찬님의 글 정말 감사합니다. 명훈님이 재기를 결심한 동기를 제공한 이쁜경미님,, 정말 큰일하셨습니다 너무 고마워요,. 명훈님 사랑합니다. .
원찬오라버니,,,저 울본지 알고 계셨군요. Oldies But Goodis...전혀 다른 음악이 판을 치고는 있지만, 아마 젊은세대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그 때는 순수한 열정이 가득했으니까요...좋은 것은 누가봐도 명품이니까요...회원님들...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내 낭군도 아니지만, 정말 이 말씀 아낄 수가 없군요...사랑합니다~~휘버스님들...
우리집에 컴터가 생기구 전 매일 명훈오빠 이름을 검색란에 써 넣구 검색을 했답니다..이명훈...지금도 후를 친후엔 저절로 ㄴ 을 칠 만큼 수십번 아니 수백번을 넘게 두들겼습니다...하지만 만족할만한 검색 결과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카페에 회원 가입을하구 다시 카페 검색란에 이명훈을 또 검색했지요.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어요..저는 컴퓨터에 거의 백치에 가까웠기에 그때는 명훈오빠 노래만 있어도 무저건 가입을 했구요...하지만 저처럼 명훈오빠를 그리워 하는 사람 만나지지가 않더군요.그래서 어쩔수 없다 싶어서 컴맹에 가까운 제가 이 카페를 2003년 5월 30일에 개설했구 회원이 몇분 되지 않는상태에서
별 활동없이 몇달을 보냈답니다..그리구 2004년 1월 25일 울 카페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지요. 그토록 오매불망 기다리던 휘버스 오빠들이 다시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하는것이 방송된겁니다..전 정말 놀랬어요...명훈오빠 찾아다니다 발견한 모 사이트에 휘버스 오빠들 앨범 사진밑에 다시 원년멤버가 뭉쳐서 공연했으면
좋겠다는 글을 남겼었는데...어쩌면 제 바램이 이루어졌다고 말 할수도 있을겁니다...그렇게 방송을 보구 열린음악회 게시판으로 갔어요..원찬오빠 말씀대로 게시판이 난리가 났더라구요...예전처럼언니를 비롯해 많은 분들이 휘버스 오빠들을 애타게 찾았고 전 그밑에 그대로 그렇게로 찾아오라는 댓글을 남겼지요...
한분두분 회원이 늘었습니다..그리고 원찬오빠 장곤오빠 그리고 명훈오빠 들이 다 가입을 하시고 또다시 70 80 보고싶다란 방송이 만들어지며, 울카페 회원들은 얼굴을 맞대고 환호하며 녹화장에 서있었습니다..첫 정모도 치뤘구요...
경미님덕분에 저도 우리카페 모든분들 알게되어 너무고맙구요... 앞으로도 지속적인 카페활동열심히하겠읍니다..
처음엔 명훈오빠만을 그다음엔 휘버스 오빠로 그리고 지금은 모든 우리 그대로 그렇게 회원들을 경미는 정말로 사랑합니다..........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을 만나게해주신 명훈오빠 정말 정말 고맙습니다.....당신을 볼 수 있다는것 만으로도 경미는 행복합니다.
경미씨, 명훈오빠 이하 우리 그대로 그렇게 님들 모두 경미씨 정말 사랑하고, 감사하고 있어.. 그거 알쥐?
원찬오빠의 마지막 넘 감동이고.. 이쁜경미님의 명훈오빠에 대한 깊은 애정도 감동입니다...^^ 휘버스오빠들 넘 사랑해요~~~~♡ 그리고 원찬오빠 4월10일 공연 꼭 갈려구요... 이궁... 아무래도 원찬오빠 얼굴 보러 가야 겠어요...ㅎㅎㅎ
원찬오빠...사랑해요.....오늘 하루종일 울기만 하네....어제 모임 못가서 울고....오빠 글읽고 울고....경미언니랑 명훈오빠랑 안고 뛰던 모습 생각 나서 또 울고,,,,,,울어도 울어도 나는 좋아라....그대로 그렇게......사랑해요.....^^
정말 가슴 뭉클하네요...그뒤.. 이제겨우 두달남짓인데도 많은일들이 있었지요....그날..눈이내리던 차가운 날씨속에 쓸쓸히 집으로 돌아갔을 오빠모습이 눈에 선합니다...이젠 저희가 있어 내내 행복하시기를..정원찬님..마지막 글까지 정말 잘읽었습니다..
보잘것 없는 제 글로 마무리를....이보다 영광적일 수가...글 너무 잘 읽었구요. 아쉽네요...앞으로도 기대하면 안될까요?
저도 기대할께요,, 열린음악회 그후,,,,,, 꼬리말만 읽어도 눈물이 납니다.
경미님 넘넘 고마워하는거 알죠? 오빨 찾지못해 카페만들고 기다리고 참 대단해여...원찬오빠의 글도 잘 읽었어요... 눈물날려구 하네요... 이제는 원찬님도 명훈오빠도 더이상 쓸쓸한 뒷모습은 없을거예요... 글쵸?
정말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원찬오빠!! 모든글들 너무 너무 잘읽었습니다.그리고 이카페를 만드신 경미님 경미님 덕분에 오빨만날수 있는 영광이 나에게도 왔고 너무 좋으신 님들 만날수있었습니다..앞으로도 우리카페 나날히 발전하길 바라고 우리모두 명훈오빠에대한 애정 영원하길 바랍니다...그대로그렇게 카페 화이팅!
원찬오빠 화이팅!! 장곤오빠화이팅!!! 그리고 울 명훈오빠 와이팅!!!!
20부작 미니시리즈가 끝난다니 아쉽군요, 새글 기다리는 낙에 살았는데. ... 원찬님 그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연구하야, 글쓰랴. 80년대엔 그냥 노래만 죽장 들었는 데 20년후에 비하인드 스토리를 마스터 했으니 강의 할 일만 남았네요.
앞으로도 휘버스가 추억속의 그룹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살아 숨쉬는 그룹으로 발전하길 30-40 세대들과 함께 기원해 봅니다. 원찬님의 명곡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동박새님 말씀에 100표 드립니다...
정 박사 동의 없이 휘버스 주축 명훈이외 2 후배님들 위한 서울 "배명고 홈" 글 올립니다. 이해해주세요,
원찬아 그동안 수고했다!~~ 우리 다음에 만나면 소주한잔 진하게 하자 ~~~일등공신을위해!!
가슴 진한 감동과,,,,벅차 오름,,,넘 느끼고 간답니다,,,^^힘내세여~~
마지막회라 아껴 두었다가 오늘 봤어요.너무 슬픈 결말은 덮어버리고 싶듯이 이 이야기가 마지막이라니 정말 섭섭해요.원찬오빠는 정말 메모리 용량이 큰 가봐요.각 회마다 무슨 이야기를 쓸지 타이틀만 정해 놓았다고 하더니 이렇게 마무리가 되는군요.
바쁘시겠지만 앞으로 공연이라든지 특별한 행사가 있었으면 글을 올려주세요.여기서 마무리 되는 건 너무 아쉬우니까요.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꾸벅^^
원찬오빠글을 우리 문집으로 내어서 영원히 남겨두어야 할까봐요. 그냥 보고말기엔 너무 아까워요
맘이 너무 따뜻해집니다.
전 끝내 눈물울 흘렸습니다. 유치할까봐 울지 않으려고 참고 참았는데 결국은 절 울리시는 군요. 두 줄기 눈물속에서 벅찬 감동은 대단한 카타르시스 였습니다. 글 정말 잘 적으시네!!!! (이제 좀 감정이 정리 됐슴)^^
Fevers가 창단되던 26년전에는 저도 스무살 꽃띠였는데..... 이제 같은세월을 가는 그 모습도 정겹고 내모습같고 그러네요. 겉모습은 변할지라도 마음만은 영원히...
제 18번이 '그대로 그렇게' 인데 대학 다닐때 과축제때 한번도 빼놓지 않고 부르곤 했답니다. 사랑합니다. 휘버스
아직도 눈물이 나네요...
~~~~~.................^^^^^^^^^^^^^$$$$$$$$$$$$-------------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우후~! 이제야 겨우 다 읽었다. 짬짬이 읽느라 시간이 많이 결렸어요.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자취를 남겨야죠.^^*
이틀에 걸쳐 복습하는 자세로 다시 읽었습니다. 처음 읽을 땐 쑥쓰러워 꼬리말 남기지 못했는데...... 정원찬님!! 명훈오빠와 저희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전해주신 휘버스 이야기.... 가슴 한켠 잘 쌓아두겠습니다.....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
정말 맨 마지막에서는 눈물이 다 나네요 특히 잊혀질줄 알았습니다 부분~~ㅠ.ㅠ
가슴이 찡해서 눈물이 나네요...저는 최근 추석 즈음 7080방송을 봤는데 그때 휘버스 노래 따라부르면서 너무 반가워서 그때도 눈물찔끔 했답니다...이명훈님 노래 따라부르면서 (그래 이 노래야~~~)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