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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 풍습 스크랩 이스라엘의 역사
모리아 추천 0 조회 103 13.03.09 11:5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이스라엘의 역사
 

지중해 동쪽 끝에 위치해 있는 중동의 국가.
이스라엘 /1991년 이라크의 지도자 사담 ...

 

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사람이 거주한 것은 적어도 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BC 10000년경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사육한 증거가 남아 있다. 고대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선형(線形)문자의 개발이다.
선형문자는 BC 2000∼1000년에 가나안인들이 창안한 것으로, BC 1000년경 페니키아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이 찾아냈다.

 


이스라엘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일출

 

이스라엘인(히브리인)들이 가나안으로 알려졌던 팔레스타인을 완전히 점령한 때는 BC 13세기말경으로 추측되며, BC 1550∼1200년에는 이집트인들이 지배했다.

 

해양 민족들의 출현으로 아시아 속국들에 대한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화되자 팔레스타인에서는 펠리시테인들이 유력한 세력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다윗 왕과 솔로몬 왕 시대에 팽창하는 이스라엘인들에게 정복을 당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은 BC 10세기 중반 솔로몬 시대에 최고의 번영을 이룩했으며, 최초의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했다.

 

그러나 솔로몬이 죽자 왕국은 이스라엘로 알려진 북왕국과
유다로 알려진 남왕국으로 분열을 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국은 BC 722년에 앗시리아인들의 침략으로 멸망했으나,

 

유다 왕국은 BC 625년까지 아시리아의 속국으로 남아 있었다.

 

BC 587년 바빌로니아인들이 유다 왕국을 침략했으며 많은 주민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유배생활을 했다
(→ 바빌론 유수).

 


키루스 2세(BC 550∼529) 때 페르시아인들에 의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을 재건했다.

 

그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략과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으며, 뒤이어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이 지역을 헬레니즘화하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도와 안티오코스 4세(BC 175∼164)의 성전 모독에 반발한

 

유다 마카베오가 반란을 일으켜 마침내 BC 141년 하스몬 왕조 때 이스라엘은 독립을 얻었다
.

 

그러나 BC 65년 왕족의 내분으로 내란이 일어나 로마 제국이 개입하게 되었는데, 로마 점령기에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던 그리스도는 AD 30년경 재판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2차례의 유대인 반란이 일어났으나 모두 진압되었다. 135년 마지막 반란 이후 팔레스타인의 유대 민족은 극소수 집단으로 위축되어 이스라엘은 더이상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란사, 로마사).

 


그뒤 팔레스타인은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도교 성지 보호로 인해 어느 정도 번영을 누렸다. 7세기에는 이슬람교도들이 이곳을 점령하고 691년 예루살렘에 바위의 돔을 세웠다. 그결과 예루살렘은 3대 주요종교의 성지로 남게 되었다.

 


이 지역은 1100∼1291년 이슬람교도들과 십자군에게 번갈아 점령되었으며, 1517년에 오스만 제국에 넘어갔다. 그뒤 1798∼99년 일시적으로 나폴레옹의 침략을 받았고 다시 이집트의 지배 아래 들어가 무하마드 알리의 통치를 받았다. 무하마드 알리를 통해 서유럽의 영향을 받던 팔레스타인은 1840년 다시 오스만 제국에게 넘어갔다.

 


19세기 후반 팔레스탄인에 유대국가를 세우려는 '시온주의'가 시작되어, 1882년 최초로 시온주의자들의 정착촌이 세워졌으며, 1917년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했다. 영국이 1918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1922년 국제연맹으로부터 위임통치를 승인받아 정치적 책임을 떠맡게 된 후 이 정책은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

 


1930년대에서 1940년대초 아돌프 히틀러의 박해로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가 늘어나면서 유대인과 아랍인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었다. 이에 유대인 지역과 아랍인 지역으로 분할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거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시온주의 국가를 배후에서 지원하는 가운데 1947년 국제연합(UN)은 팔레스타인 분할을 결의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되었고
,

 

이스라엘과 이집트·트란스요르단(뒤의 요르단)·시리아·레바논·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
(→ 색인 : 중동전쟁).

 

이스라엘이 1967, 1973년 전쟁에서 승리했으나 중동은 지금까지 계속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있다.

 

이스라엘은 1979년 이집트와 평화조약을 체결했지만 1967년 전쟁을 전후로 팔레스타인 국가와 그 영토 내의 이스라엘 점령지인 유대인 정착촌 문제로 여러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가 어려워졌다. 1982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에 속한 게릴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다.

 


1987년 이후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이 '인티파다'(intifadah : '봉기'라는 뜻)를 일으키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이스라엘 당국은 1992년 이후 아랍의 여러 국가와 팔레스타인 대표들과 직접 평화 교섭에 나섰다. 이듬해 이스라엘과 PLO는 5년 동안 웨스트뱅크와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의 자치를 점차 확대 이행한다는 데 동의했다. 이스라엘은 1994년 요르단과 평화협상을 맺었다(→ 색인 :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중동).

 


    ..........................

 

 

간추린 이스라엘의 역사  김태수 著

A. 이스라엘 역사를 위한 전이해

 


1. 이스라엘의 지정학적인 의미

 


고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에서 일어났던 역사의 전개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경제적 상관성이라는 밀접한 관계 속에서 상호작용하여 왔다. 근동의 비옥한 반달형 지역 남서단에 위치한 이스라엘의 중요성은 당시대의 양대문명인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교량적인 역할에 있었다.

 


이스라엘의 지리적인 여건은 지중해와 사막 사이의 좁은 해안을 따라 형성된 육상통로이다. 이 통로는 고대 근동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국제도로이었다. 그러므로 이 도로를 ‘해안길(Via Maris)이라 하였다.

 

해안길은 애굽의 고센지역에서 시작하여 시나이 반도의 해안지역을 따라 가사까지 이른다. 계속하여 이 길은 아스글론, 아스돗, 게젤, 룻다, 아벡, 므깃도에 이른다.

 

(므깃도에서 해안길은 뵈니게지방으로 가는 북상길과 사마리아로 내려오는 갈림길을 만나게 된다. 또한 므깃도에서 이즈라엘 평야를 가로질러가는 해안길에서 동쪽으로 구부러져 벳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길보아산 계곡을 거쳐 벳산에 이른다. 이 길은 계속해서 요단계곡을 건너 요단동편 고원지대를 지나 요르단의 왕의 대로와 만난다. 이와같이 해안길의 많은 지선길이 므깃도를 중심으로 퍼져 있다. 그러므로 중요한 국제통로였던 해안길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므깃도를 차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한다. 성경에서는 세계 마지막 전쟁이 이 곳 므깃도-아마겟돈에서 일어날 것을 요한계시록16:16에 예언하고 있다).

 


므깃도에서 이스라엘 평야, 와디 아르벨, 갈릴리 막달라 평지, 하솔, 단, 다메섹을 거쳐 바벨론에 이른다. 약 200km에 이르는 해안길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두 대륙을 잇는 중요한 국제도로이며, 이스라엘이 양대문명과 양대대륙을 사이에 위치한 중간 통로이다.

 


해안길은 국제간의 무역과 군사전략적인 면에서 국제적인 도로로서의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도로를 이용하여 외국의 사절단들과 국제무역 상인들이 오고 갔다. 또한 이집트,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오트만 터어키 등 세계 열강들은 힘이 강해질 때마다 이 길을 따라 세계 정복의 야심을 펼쳤다. 이러한 관계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성경에서도 해안길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있다.

 


1) 출애굽기13:17 -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2) 이사야9:1 -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참조-왕의 대로:요단 동편 고원지대를 남북으로 지나가는 대로이다.

 

다메섹에서 시작하여 바산, 길르앗산지, 암몬, 모압, 에돔, 에일랏에 이른다. 이 길은 에돔의 보스라와 아카바만의 에일랏에서 시나이 사막으로 갈라져 애굽으로 나아가는 통로가 된다. 이 길은 가데스바데아를 거쳐 가는 길인데,

 

민수기에서 이 길을 ‘홍해길’(“아말렉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지니라, 민수기14:25-정탐군의 불신앙에 대한 하나님의 조치)이라 말한다.

 

왕의 대로는 대략 BC3,000-2,000년 초엽으로 본다. 이 길은 일차적으로 아라비아 지역의 특산품인 향료를 수출하는 중요 무역로였다.

성경에서는 모세가 에돔왕에게 조용히 이 길을 지나갈 수 있도록 부탁한다. 그러나 에돔왕이 이를 거절한다. 결국 이스라엘은 다른 길로 돌아간다(민수기20:17).

2. 이스라엘의 명칭들

 


1) 가나안 땅(=팔레스타인)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이 땅에 정착하기 이전까지 불리어지던 명칭이다. 민수기에는 가나안 땅을 동으로는 사해, 서로는 지중해 대해, 남으로는 엘아리시인 애굽시내, 북으로는 레바론 베카 골짜기에 속하는 하맛어귀까지로 규정하고 있다(민수기34:2-12).

 


가나안이라는 단어는 ‘붉은 자주색’(reddih purple)을 의미하는 직조업의 전문용어에 관련된다. 또한 가나안의 다른 이름으로 ‘약속의 땅’(창12:7; 15:18-20)이 있다. 이 명칭은 실제 성경에서 사용된 말은 아니고 후대에 와서 성경에 내포되어 있는 말을 명칭화 시킨 것이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출3:8)의 명칭은 40년동안 이스라엘 민족이 가진 땅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표현한다.

 

 


이 약속의 땅에 대한 하나님의 인식은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을 통해 주신 이스라엘의 언약의 땅이며(창 12:1-2, 17:1-9, 시 105:1-11), 다윗을 통해 확인하신 이스라엘의 땅(삼하 7:1-16, 시 89편)이며, 예수님을 통해 완성하신 언약의 땅이다(눅 1:32-33, 히 1:8, 사 9:6-7).

 


2) 에레츠 이스라엘

 


에레츠 이스라엘(The Land of Israel)은 가나안 정착 이후 오늘까지 사용하는 명칭이다. 성경은 ‘이스라엘 땅’(삼상13:19-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대상22:2-다윗에 명하여 이스라엘 땅에. 대하2:17-전에 솔로몬의 부친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이라고 하였고 때론 ‘이스라엘 자손의 땅’(수11:22-이스라엘 자손의 땅 안에는)이라 불리운다.

 


이스라엘은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여 얻은 이름(창23:28, 35:10)이다. 그 후 이스라엘은 야곱의 12아들로 인한 12지파로서의 이스라엘 전체를 지칭하는 이름이었다.

 

솔로몬 이후 10지파로 형성된 북이스라엘로 호칭된다.

 

그리고 지금의 이스라엘은 1948년 새로운 나라가 탄생될 당시까지 나라명은 거의 ‘유다’이었으나 마지막 순간 ‘이스라엘’로 결정된(이사야11:13)이다. 에레츠 이스라엘과 더불어 ‘거룩한 땅’(슥2:12), ‘영화로운 땅’(단8:9, 11:16, 41), ‘아름다운 땅’(겔20:6, 15)등이다.


3) 팔레스타인 (=블레셋)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과 숙적이었던 ‘블레셋’에서 기원된 이름으로 이스라엘의 남서 해안지방을 의미하는 명칭이다(창21:34- 아브라함이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블레셋은 에게해의 한 민족이었던 ‘펠라스기안’(Pelasgian)과 관련된다.

 

팔레스타인은 BC 5세기에 헤로도터스에 의해 이스라엘이 포함되는 수리아 남부 지역의 명칭으로 처음 사용된다. 그 후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할 때 팔레스타인으로 불렀고, 중세기 십자군에 의해서도 사용된 이 명칭은 1922년 영국정부는 요단강 서쪽지역에 대한 공식 명칭으로 ‘팔레스타인’을 채택한다.

 


헬라시대 이후 이 명칭은 이스라엘의 이 땅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정치적인 의도에서 사용되었다. 지금은 이스라엘과 아랍인들 사이의 갈등 관계를 표현하는 명칭이 되었다.

3. 이스라엘의 지형

 


성서역사와 신앙적 의미의 중대성에 비하여 이스라엘 땅은 비교적 작은 땅이다. 남북의 길이는 약 320km이고, 동서의 폭은 56km로 좁은 지역과 여리고 근처에서는 약 88km, 사해 남단의 약 136km이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삿20:1)의 길이는 약 240km이다.

 


1) 해안평야(Coastal Plain)

 


이스라엘의 해안 평야는 지중해를 따라 남북으로 길게 띠모양으로 형성된 모래와 충적토의 지역이다. 이 해안평야는 (1) 악고평야(아셀평야, 스불론평야), (2) 돌해안(갈멜산 지역) (3) 샤론평야(가이사랴-욥바), (4)블레셋평야 지역이다. 이 지역의 특징은 낮고, 비옥하고, 개방적이다.

2) 중앙산지(Central Hill Country)

 


중앙산지는 북쪽의 갈릴리 지방에서 남쪽의 네게브까지 남-북으로 형성된 것이다.
(1) 상부 갈릴리 산지, (2) 하부 갈릴리 산지, (3) 이즈리엘 골짜기, (4) 베냐민 산지, (5) 에브라임(사마리아) 산지, (6) 유다 산지이다. 이 지역은 높고, 폐쇄적이고, 비교적 덜 생산적인 지역이다.

3) 중앙계곡(요단계곡)

 


중앙계곡은 이스라엘의 전체 지형을 현재와 같은 모양으로 형성되게 하였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중앙계곡은 지구상에서 가장 길고, 깊고, 넓은 단층 지구대로 알려져 있는 시리아-아프리카 지구대의 일부분에 해당된다. 이 지역은 (1) 훌레계곡(하솔, 단), (2) 갈릴리 바다, (3) 요단강 계곡, (4) 사해, (5) 아라바 계곡이다.

4) 트랜스 요르단 지역(요단 동편 지역)

 


이 지역은 거대한 지구대인 중앙계곡과 시리아-아라비아 사막 사이의 모든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헬몬산에서 홍해에 이르는 남북이 긴 산지이다.

 



B. 이스라엘의 역사 개요

 


1. 석기시대(BC 3,200년경까지)

 


이스라엘 지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인간 유골은 대략 BC 50만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형태는 여리고 성읍인데 약 BC8,000년 경으로 추정한다. 그 후 BC 4,000년에서 3,200년경 까지의 동석기 시대에 이스라엘을 비롯한 근동지역에는 도시 문명이 크게 발전하는 새로운 전환기가 시작된다.

2. 청동기시대(BC 3,200-2,100)

 


청동기 시대는 근동지역에서 처음으로 역사의 기록을 가지는 시대이다. 나일강이나 티그리스 - 유프라테스강의 거대한 강 근처에서는 문화의 발전이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이로 인하여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는 강력한 왕조가 형성된다. 이스라엘 지역에는 가나안인들의 도시국가 형태를 가진다.

3. 중기 청동기(BC 2100 - 1540) = 족장들의 시대

 


이스라엘 족장들의 시대로서 아브라함이 메소포타미아 지역인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 땅으로 이주해 온 시기이다. 갈대아는 바벨론의 동의어이다. 우르는 바벨론과 페르시아만의 중간 정도에 위치하고 고대 수메르의 수도이며 아브라함의 고향이다.

 

우르는 중요한 종교의 중심지로, 이 도시의 수호신은 월신이였던 난나(Nanna)이다. 또한 우르는 BC2050년으로 추정되는 우르-남무 법전이 만드어졌으며 이것은 함무라비 법전보다 300년정도 앞선 것이다.

 

메소포타문명이 가장 발달한 우르에서 데라는 아브라함과 가족을 이끌고 하란으로 이주한다. 그후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창세기12:1-5)에 따라 가나안으로 이주한다. 아브라함은 벧엘에 장막을 치고 단을 쌓아 하나님을 섬긴다(창 12:8). 그는 기근이 들자 애굽으로 내려간다(창 12:10-20). 그리고 부자가 되어 올라온다.

 

아브라함은 시날왕들에게 끌려가던 가족과 롯을 구출하여 오던 중 살렘(예루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 축복을 받고 십일조를 한다(창 14:18-20).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이삭(=이슬람에서는 이즈마엘)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비로서 믿음의 조상이 된다(창 22:1-19, 히 11:17-19).

 

이 때 하나님께서 준비한 이삭을 위해 주어야 할 어린양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는 브엘세바와 헤브론에서 살다 죽어 헤브론 막벨라 굴(헷족속-히타이타족-에게 산 굴) 장사된다(창 25:7-11).

 

이삭은 브엘세바와 네게브지역에서 생활하다. 이삭은 모리아 사건과 삶을 통해 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야곱은 브엘세바와 하란에서 살았다. 그는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서원한다(창 28:10-22).

 

야곱은 하란에서 20년동안 삼촌 라반의 종으로 살면서 부자가 된다. 그리고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에 얍복강에서 생명을 건 기도로 이스라엘(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하나님이 져 주셨다, 창 32:28)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간 후 야곱과 자손들은 애굽으로 이주하여(창세기 46장) 약 430년을 살았다.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위해 준비된 삶을 살았다(창 45:5).


4. 후기 청동기시대(BC 1540 - 1200)
야웨(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출3:14)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물에서 건져 냄-구원받음)를 지명하여 불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는다. 그리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종된 애굽에서 가나안 곧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출1-14장).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40년의 광야 생활을 걸쳐 가나안 땅으로 들어 와 정착하는 시기이다.

 

출애굽은 애굽에서 유월절(출 12:39-41)을 지키고 나와 시내산까지 이른다(출19:1,2).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고(출20:1-23:33) 하나님의 언약의 민족으로 계약을 맺는다(출24:1-8). 그리고 가데스바네아(신광야)에 이르러 정탐군을 보낸다(민13:1-33).

 

그러나 백성들은 여호수아와 갈렘의 신앙적인 보고보다 부정적인 보고에 마음을 같이 하여 불신앙을 가진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40년의 광야훈련을 시작한다(민14:20-35). 똑같은 상황을 보고 그것을 어떻게 신앙으로 해석하느냐는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한다. 하나님은 광야훈련을 통해 순종과 불순종이 삶을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보여 주신다. 여기에 숨겨진 하나님의 비밀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구원역사이다(민21:4-9).

 

모세는 므리바사건(민20:10-13)으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 모세는 그의 시종 여호수아를 새 시대의 지도자로 세운다. 모세는 요단동쪽 느보산에서 브엘세바에서 단까지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120살에 무덤도 없이 먼지로 사라진다. 이때 그는 눈이 흐리지 않고 기운이 쇠하지 않았다(신34:1-7).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다. 모세는 진정한 지도자이다. 혈기왕성하여 살인하였던 그가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가 된다(민12:3, 지도자의 성품).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아는 사람이다(출32:30-35, 지도자의 책임). 하나님을 잘 알고 백성도 잘아는 사람이다(출32:11-14, 지도자의 통찰력과 중재). 사람을 세우는 사람이다(민27:12-23, 지도자의 능력). 물러날 때를 알고 깨끗하게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진 사람이다(신34:1-7, 지도자의 인격) 이러한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를 우리는 산다.

 


메르넵타 통치시대(BC 1236-1223)의 한 비문에서는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성경 이외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이 언급되는 중요한 자료이다.

5. 초기 철기시대(BC 1200 - 1040)

 


초기 철기시대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시대이다 .가나안을 정복한 여호수아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한다(여호수아13-19장). 12지파에게 땅 분배(가나안과 요단동편 암몬, 모압, 에돔 땅)를 마친 후 도피성을 세운다. 도피성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하는 백성들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이다. 이 성은 부지중 사고를 저지른 살인자에게 충분한 변명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든 것이다(신19:23, 민35:15, 25-27). 6개의 도피성이 있는 지명과 그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카데스 - 거룩한 장소, 신성한 곳, 구별된 곳(납달리지역).
2) 세겜 - 어깨, 어깨에 메다, 진지하게 하다(에브라힘 지역).
3) 헤브론 - 결합, 일치, 교제, 함께하다, 교제를 나누다(유다지역-가나안).
4) 바산의 골란 - 기쁨, 환희, 기뻐 날뛰다(므낫세 반지파 지역).
5) 길르앗 라못 - 높은 장소, 오르다, 일어나다, 영화롭게 되다(므낫세 반지파 지역).
6) 베셀 - 요새지, 포도농원, 적을 막다, 안전지대(르우벤 지역-요르단 지역).

 


이 시대의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가 계속된다. 그리고 해양민족(Sea People)이었던 블레셋이 등장하여 가나안의 남부 지중해 해안지역을 연합하여 나라를 형성한다.

6. 왕국시대(BC 1040 - 586)

 


이 시대는 사울의 왕정시대를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이다. 사울은( BC1050-1002년) 이스라엘의 초대왕으로 기브아를 수도로 삼는다. 그는 믿음과 겸손의 사람으로 시작하였으나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좋은 가축과 아간왕을 살려두므로(삼상15장)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다.

 

사울왕은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싸우던 중 죽어 벧산 성벽에 매달린다(삼상31:8-10).

 

다윗( BC1002-962년) 헤브론에서 왕이된다(7년동안 통치). 다윗은 난공불락이었던 여부스족의 성을 기혼샘의 수로(WARREN'S SHAFT-발굴자)를 통해 함락하여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다윗성을 건축한다(삼하5:1-25). 예루살렘은 12지파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다윗은 길르앗여라임에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와 예루살렘 다윗성장막에 안치한다(삼하6:1-15). 이것으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속시킨다. 다윗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었으며, 회개(삼하12:5-7, 삼하24:10, 시51편)와 기도(시편57편), 그리고 찬양(삼하22장)의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겸손과 말씀에 순종하여 살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 행하는 사람이었다. 그 왕국은 하나님의 약속위에 세워진 나라였다(삼하7장). 그리고 다윗왕조의 영속성은 메시아론적인 종말사상의 원천이 되었다(사9:1-7, 11:1-16, 미가5:1).

 


솔로몬(BC962-927)이 왕위에 있을 때 이스라엘은 대왕국으로 성장한다. 그는 유프라테스 이편에서 가자, 에일랏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솔로몬은 겸손한 왕으로 시작한다(삼상2:12-46, 왕상3:7-종은 작은 아이입니다, 왕상3:9-지혜로운 마음으로 주의 백성을 다스리게 하소서). 그는 BC 960년경에 제 1성전(7년 동안, 궁전은 13년 동안)을 건축한다.

 


솔로몬은 나라의 방어를 위해 게젤, 므깃도, 하졸 요새를 만든다. 이 일로 무거운 세금과 강제노역을 백성에게 부과한다.

 

그는 말년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왕상11:4), 사치와 향락(부인-700명, 후처-300명), 그리고 이방신전을 지어(왕하23:13-예루살렘 동쪽산 오른편의 멸망산) 섬기므로 이방종교와 혼합종교로 여호와 유일신앙을 버렸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분열을 맞이한다.


# 예루살렘 성전(Mount Moriah, The Temple Mount)
예루살렘 성전은 아브라함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한 모리아산(창22장)이다. 이때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양을 주시고 잡게 한다. 그 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다(요1:29).

 

다윗이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기로 결심한다.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시고 다윗의 나라가 영원할 것이라는 언약을 세우신다(삼하7장). 다윗은 하나님이 원치않는 인구조사를 하므로 7년의 기근, 3개월의 전쟁으로 도망, 3일간의 온역 중 3일간의 온역을 선택하는 징계를 받는다. 이 징계로 7만명이 죽고 계속되는 징계를 위해 예루살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에 서있는 천사를 본다.

 

다윗은 하나님께 백성에게는 죄가 없으니 나와 나의 가족에게 벌을 내리시라고 회개한다. 하나님이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용서하신다. 다윗은 아라우나(의좋은 농부형제 이야기-볏단 더주기)의 타작마당을 은 50세겔에 사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는다(삼하24장).

 


솔로몬이 이곳에 제 1성전을 건축하여 봉헌한다(왕상5-6장). 그리고 대제사장 힐기야가 성전에서 토라를 발견한다(왕하22:8).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파괴에 대한 예언이 BC 587년 이루어진다. 이 성전은 스룹바벨에 의하여 제 2성전으로 성전이 파괴된 지 70년 후인 BC 516년에 재건된다(에스라4:24-6장). 헤롯대왕에 의하여 성전은 오랜 세월 미화되고 확장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1년중 삼대명절인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에 성전을 향해 올라 온다. 이때 그들이 부르던 노래가 시편 120편에서 134편까지이다. 아무리 먼 곳에 있던 사람들도 일년에 한번은 성전에 올라온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맥추절(오순절) 절기를 지키러 왔다가 오순절의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경험한다(행 2:1-13). 지금도 유대인은 죽어서도 성전 가까이 묻히기 위해 엄청난 비용을 드려 감람산 유대인 묘지에 묻히기를 소원한다. 그리고 눈물교회(감람산 중턱)에도 2성전시대의 유대인 납골당(뼈만 담아둔 관)들이 있다.

 


예수께서는 열두살 되던 해 유월절 절기를 따라 나자렛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 오신다(눅 2:41-52). 예수께서 금식후 사단에게 성전꼭대기에서 시험을 받으신다(눅4:9-12). 그리고 예수는 구약의 예언대로(시118:24-29) 베다니에서 오사 벳바게에서 어린 나귀를 타고 호산나 찬양을 받으며 성전으로 들어오시던 중 감람산 중턱에서 성전이 파괴될 것을 예언하신다(눅19:41-44). 그리고 Lion Gate를 통해 예루살렘성에 들어가신다(눅19:28-48). AD 70년에 성전은 로마의 디토장군에 의해 파괴된다.

 

하나님께서 왜 성전의 파괴를 허락하시고 회복시키지 아니 하시는가? 유대인들은 통곡의 벽에서 성전을 회복하여 제사를 드리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사 다시는 제사가 필요치 않으며(히브리서10:1-39), 완전한 죄사함의 은총을 믿는 자들에게 주셨다. 그리고 주님의 몸이 성전이며(요2:19-21), 부활을 통해 영원한 새예루살렘이 되셨다.

 


691년에 압드 알 말리크에 의하여 성전 자리에 모스크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이 세워져 오늘날까지 이른다.

 


오늘날의 성전이 같는 의미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과의 갈등이 아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세계 전회교인들과의 양보할 수 없는 종교 문제이므로 전쟁의 빌미가 될 것이다. ***

BC 925년경(=솔로몬 왕 사후)에 유다북이스라엘의 왕국분열이 일어난다.

 

여로보함은 10지파를 연합하여 북이스라엘을 건설한다. 북이스라엘BC 722년경에 신흥 앗수르에게 멸망한다. 앗수르는 혼혈정책을 펼쳐 유대인의 혈통을 말살하는 정책을 사용한다. 이 정책으로 유다사람들은 사마리아(북이스라엘의 수도)들과 상종하지 않는다(에스라 4:3,10, 요 4:9).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간 10지파의 행적을 찾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남유다르호보함이 왕으로 시작한다. 히스기야(BC715-687)는 종교개혁을 통해 여호와 신앙을 회복한다(왕하18:5-6). 그리고 앗수르가 침공하였을 때 기혼샘에서 실로암 못까지 히스기야 터널을 판다(왕하20:20, 대하32:30). 여호아만 의지하지 아니하던 남유다(이사야8:5-6)는 BC 586년경바벨론느부갓네살 왕에게 멸망한다. 이때 1성전은 파괴된다(대하7:16-22).

 

유대인들은 성전의 파괴를 슬퍼하며 금식한다(슥 7:3, 8:19). 유대인들은 성전파괴를 잊지말자고 지금도 결혼식에 유리컵을 신랑, 신부가 깨뜨리며 기억한다. 이 시기에 유대인은 디아스포라로 각처로 흩어진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바벨론 포로시에 회당이 생긴다.

 


이 시대는 위대한 선지자들의 시대이다. BC 9세기경의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를 시작으로 위대한 정치가며 설교가였던 이사야의 활동에서 그 전성기를 맞는다. 그리고 성전 파괴를 예언했던 예레미야와 바벨론 포로 중에 있던 에스겔예언자 시대의 종말을 보았던 선지자이다. 선지자들은 사회정의를 외쳤고, 우상숭배를 철저히 배격하였다. 반면에 일반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7. 페르시아시대(BC 586 - 336)  
바벨론 제 1차 포로귀환이 BC 539년경에 바벨론을 정복한 페르샤의 고레스왕에 의하여 BC 537년경에 이루어진다(사44:28-45:1). 스룹바벨에 의하여 BC 516년경에 제 2성전이 봉헌된다(렘29:10-14 말씀의 성취, 에스라6장). 그리고 2차 포로귀환자들을 이끌고 들어온 느헤미야와 에스라에 의해 BC 445년 경에 예루살렘 성곽이 재건된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잊지 아니하신다(시편137편). 이 시기의 선지자는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 말라기 등이다.

#. 예루살렘(JERUSALEM)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 뜻을 가진다. 이 성은 고대 살렘성(창 14:18-살렘왕 멜기세덱)이었으며, 가나안 정복시는 예루살렘(수 10:1-예루살렘왕 아도니세덱)으로 불리어졌으며 그 성이 견고하므로 정복하지 못하였다. 이 지역은 유다지파의 북쪽 경계이다(수15:8).

 

다윗은 난공불락이었던 여부스족의 성(시온산성)을 기혼샘의 수로를 통해 함락하여 예루살렘을 정치, 종교의 수도로 삼고 다윗성을 건축한다(삼하5:1-25). 예루살렘은 12지파 어느곳에도 속하지 않은 곳이다. 그리고 다윗은 길르앗여라임에 방치되어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옮겨와 예루살렘 다윗성장막에 안치한다(삼하6:1-15). 이것으로 다윗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결속시킨다.

 


예루살렘은 BC 587년에 바벨론에 의해 파괴된다(왕하 25장). 그리고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하여 재건된다(느 3장). 그 후 헤롯에 의해 확장되나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눅 21:20) AD 70년에 로마의 디토장군에 의해 파괴된다.

 

이사야는 새예루살렘에 대한 비젼을 선포한다(사 54:11-17, 62장). 지금의 예루살렘 성은 AD 1538년 오토만 터어키의 슐레이만 대제에 의하여 시온성이 제외된 채 건축된다. 이렇게 예루살렘성은 17번 파괴되고 18번 재건된다.

 


예루살렘성은 거룩한 성(느 11:1, 사 48:1-2), 터가 높고 아름다운 성(시 48편), 조밀하게 건설된 성(시 122편), 산들에 둘린 성(시 125편), 여호와 하나님이 택한 성(시 132편), 여호와께서 복 주시는 성(시 134편), 하나님이 절대로 잊지 아니하시는 성(시 137편)이다.

 


예루살렘은 수도로서의 조건을 갖춘 도시가 아니다. 첫째, 강이나 항구가 없으며, 교통 중심이나 상업지가 아니다. 둘째, 농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곡식 재배 지역이 없다. 좋은 조건을 지닌 세겜과는 비교가 안된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격리되고 황폐한 지역에 선지자들의 의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과 의에 근거한 영원한 기초,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위에 세워진 성이다(히 11:10, 12:22).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섬길때는 예루살렘성에 풍요로움이 있었으나 하나님을 떠나면 예루살렘성에 파괴와 고통이 찾아오듯(마 23:37-39) 황폐해진 자신을 보라고 교훈하는것 같다. ***


8. 헬라시대(BC 332 -166)
BC 332년경에 마게도니아(헬라지역)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하여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 당한다. 그러나 1년후 BC 323년 알렉산더대왕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헬라제국은 사등분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프톨레미왕조에 의해 통치된다.

 

프롤레미 2세 필라델푸스(BC283-246)는 예루살렘의 경건한 석학 70인을 청해 알렉산드리아 앞 파라오 섬에서 히브리어를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위하여 히브리 구약성경이 70인역 헬라어 성경으로 번역하게 한다. BC 200년경에는 안티오쿠스 3세에 의하여 지배되며,

 

BC 175 -166년경에는 안티오쿠스 4세의 헬라주의 문화주입 정책에 의하여 유대인들을 박해하고 제우스 신전을 세우고 섬기게 한다.


9. 하스모니안시대(BC 166 - 63)

 


BC 164년경에 마카비 혁명에 의하여 예루살렘성이 탈환된다. 그리고 성전이 재봉헌된다. 따라서 마카비의 가문인 하스모니안 왕가의 통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왕가의 분열로 인하여

 

BC 63년경에 로마의 폼페이에 의하여 로마의 종속국이 된다.


10. 로마시대(BC 63 - AD 324)

 


BC 40 - 4년경까지 이두메(에돔) 출신인 헤롯이 로마로부터 유대인의 왕위를 얻어 이스라엘을 통치한다. 이때 헤롯은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오랜 세월을 걸쳐 예루살렘 성전을 복원하고 미화한다.

 

예수님은 BC 3년 - AD 30년경까지 활동하신다. 유대인들은 AD 66-70년경에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디토 장군에 의하여 예루살렘이 정복되고 성전은 예수님의 예언대로(눅 13:31-35, 눅 19:41-44) 파괴된다.

 

디토장군실바장군(로마 10군단)으로 하여금 열심당원으로 구성되어 있던 마사다를 공격하게 한다. 3년동안의 포위하고 인공축대를 쌓아 마사다 정상으로 들어 가서 그들이 본 것은 960여명의 시체였다. 그것은 마지막인 것을 안 지도자 엘리아젤 벤 야일의 제안에 따라 로마의 노예가 되기 보다 스스로의 죽음의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마사다는 AD 73년경에 함락된다(요세푸스의 교회사).

 

그 후 티베리아에서 210년경에 토라의 해설집인 미쉬나가 최종 완성된다. 미쉬나의 13개 신조는 다음과 같다.

 


1) 창조자이신 하나님을 신앙한다.

2) 하나님의 절대적인 통일성의 신앙
3) 하나님의 무형성의 신앙

4) 하나님의 영원성의 신앙
5) 하나님께 대한 봉사와 예배의 의무

6) 예언이 성취된다는 신앙
7) 모세의 예언은 모든 것을 초월한다는 신앙

8) 율법의 불변성에 대한 신앙
9) 토라를 모세에게 수여했다는 하나님의 계시의 신앙
10)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는 신앙

11)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따라 응보하신다는 신앙
12) 메시야 강림의 신앙

13) 사자부활의 신앙


세계 각처로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가혹한 박해와 죽음의 위협속에서도 율법토라(미쉬나),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면서 살아왔다.

11. 비잔틴시대(AD 324-640)


서로마의 황제였던 콘스탄틴은 수도를 비잔틴(지금의 이스탄불)으로 옮기고, 주후 330년에 이름을 콘스탄티노플로 바꾼다. 그는 주후 325년에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한다. 그리고 그는 주후 326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한다.

 

그의 모친인 헬레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성지를 직접 방문하여 그리스도와 관련된 유적지를 성역화 한다. 헬레나가 세운 교회는 예수님 성묘교회, 주기도문교회, 베들레헴교회이다.

 

주후 390년에 예루살렘 탈무드가 완성된다.
탈무드는 박해와 고난중에 있던 유대인들에게 토라의 교훈으로 해석한 삶의 지혜를 갖게하는 책이라고 이해된다.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유전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신다(마 15:1-9). 유대인들은 토라모세오경율법책으로 인정하고 소중히 여긴다. 대신 선지서는 그들에 대한 책망때문인지 소홀히 하는 것 같다(마 23:29-36).

 

이스라엘의 현재와 미래가 선지서에 기록된 것을 깨달아 사람의 교훈에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기를 위해 기도한다.


12. 초기 아랍시대(AD 640-1099)


모하메드가 메카에서 메디나로 옮겨간 주후(AD) 622년은 곧 이슬람의 시작이다.

이스라엘은 우마야드왕조(661-807), 아바시드 왕조-천일야화가 칼립 하룬 알 라쉬드 왕때를 배경(807-969), 파티미드 왕조(969-1091)에 의하여 통치된다.


AD 691년에 압드 알 말리크에 의하여 성전 자리에 모스크바위사원(Dome of the Rock)이 세워져 오늘날까지 이른다.

 

아랍인들은 이스마엘의 후손들로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모슬렘들에게 있어 이 사원은 3대 메카중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모하메드 알리가 승천했다는 곳이며, 이 곳에서의 기도는 다른 곳의 7000번의 기도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13. 십자군시대(AD 1099-1291)


주후 1095년 교황 우르반 2세는 성지 해방을 위한 십자군을 창설한다.

 

우르반은 “거룩한 무덤으로 가는 대열에 서라. 성스러운 땅을 사악한 족속의 손아귀에서 뺏어내라. 그자들로 하여금 너희들 앞에 무릎을 끓게 하라. 세계의 중심에 자리잡은 그 고귀한 도시는 너희들이 와서 도와주기를 갈망한다. 너희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열렬하게 이 원정의 대열에 참여하라. 그러면 하늘에서 영원 무궁한 영광의 상을 반드시 받을 것이다”라는 연설로 십자군 원정을 시작한다.

 

십자군은 1099년 6월 15일에 예루살렘을 점령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슬렘과 유대인을 무자비하게 학살한다. 예루살렘 회당에 숨어있던 유대인들을 불을 질러 죽인다. 지금 그 회당자리는 아치만이 남아 그 때의 비극을 아벨의 피처럼 호소한다. 그리스도의 살해자라는 명분으로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있던 300,000명의 유대인 중 299,900여명의 유대인을 학살한다. 이 일로 인해 모슬렘과 유대인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 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용서하신(눅 23:34) 그들을 십자군은 예수의 이름으로 학살한다. 신앙의 편견(마 27:24-25 - 그 피를 그 자손들에게 돌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이 가져온 무지의 죄악이다. 우리는 유대인보다 성결한가? 스스로 물어야 할 것이다. 죄인은 죄인을 정죄할 수 없다. “죄없는 자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돌아가 새 삶을 살라”(요 8:11)는 주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유대인을 사랑의 눈으로 보자(눅 6:27-36).


1036년에 프랑스에서 유대인들이 10만명정도 사형되고 국외로 추방된다.

1218년에는 영국에서 처음으로 마긴 다비드(다윗의 별)를 유대인에게 뺏지로 구별하여 부착시킨다. 1235-1298년 사이에 독일, 영국, 프랑스, 헝가리, 오스트리아에서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는다.

십자군은 7회 원정을 가지나 그 끝은 실패로 돌아 간다.

움직이는 하나님의 역사를 멈추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14. 마멜루크시대(AD 1291-1517)


1260년에 애굽의 마멜루크에게 점령당한다. 그 후 260년간 예루살렘은 가장 황폐화 된다.

마멜루크는 중앙 아시아 지역에 살던 터키족 출신들이다. 이들은 이집트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동유럽에서는 1348-50년 사이에 페스트(흑사병)가 발병한다.

유대인들의 절반 가량이 이 병으로 죽자 유대인들의 복수를 두려워한 기독교인들이 유대인들이 수원에 독을 뿌려 발생했다고 소문을 퍼트린다.

이 일로 100만명 가량의 유대인들이 도처에서 학살 당한다.


1492년에 스페인에서 살던 유대인들이 ?겨서 팔레스타인으로 들어온다.

15. 오트만 터어키시대(AD 1517-1918)


오토만의 모하메드 2세1453년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키고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바꾼다. 포대를 갖춘 막강 화력의 오토만 터어키군은 1516년 예루살렘을 점령한다. 그리고 슐레이만 대제는 1538년 현존하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였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루터는 예수는 유대인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한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자신의 뜻대로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자

 

그는 “유대인들은 가장 혹독한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들의 회당과 집은 무너뜨려 집시처럼 텐트생활을 하도록 내어 ?아야 한다. 종교서적을 갖지 못하게 하고 랍비들은 율법을 가르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어떤 직업도 가지지 못하게 하고 가장 힘든 일과 지저분한 일만 시켜야 한다. 돈많은 유대인들에게서 재산을 뺏아 개종하는 유대인들을 돕도록 해야 한다. 이런 조치들이 효과를 못 거둘 경우 그들을 ?아 내야 한다(Baar, p. 21-데릭 프란스의 글에서 인용)”고 유대인을 비난한다.

 

이 글이 반유대주의 선전 문구로 사용되리라고 마틴 루터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모든 사람들이 성경을 볼 수 있도록 성경이 번역된 것은 새로운 신앙의 변혁을 가져왔다. 성경의 보급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말씀과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하게 된다. 성경을 올바르게 보기 시작하면서 영적인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이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사실을 믿게 되고 이일을 위한 헌신자들이 생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순종의 사람을 세워 일하신다.

 

종교개혁의 의미는 카톨릭에 대한 반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직접 보고, 읽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루터는 말년에 유대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돌이킨다.

그 후 1555년에는 로마 교황 바울 4세가 유대인을 케토(Getto)에 격리시킨다.


1) 1776년 영국에서 유대인 법적 평등권이 부여된다.
2) 1789년 프랑스 시민혁명으로 유대인에게 평등권을 부여 받는다.
3) 1799년 나폴레옹이 성지를 탈환하여 유대인에게 주기 위해 왔으나 악고에 패하여 돌아간다.
4) 1860년 예루살렘성 남쪽에 처음으로 유대인 마을 예민 모세가 건설된다.
5) 1875년 예루살렘성 밖에 하시딤 마을(메아 쉐아림)이 건설된다.
6) 1897. 8. 29-31일에 스위스 바젤에서 204인의 유대인 대표들이 소집되어 제 1차 시온주의 회의를 개최한다. 1902년에 ‘데오도르헤르츨’이 시온이즘을 정립한다. 그는 “만약 너희가 그것을 할 의무가 있으면 그것은 꿈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때까지도 하나님의 약속(예레미야 16:14-15)을 기억하거나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 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7) 1880-1903년 사이에 첫번째로 러시아에서 유대인 이민자가 들어온다.
8) 1904-9년에 두번째로 동부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9) 1914년 세계 1차대전이 일어난다.

16. 영국통치시대(AD 1917-1948)


영국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통치한다. 이 시기에 유대인 이민자들이 동부 유럽과 독일에서 들어 온다.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북방의 유대인들을 불러 독립을 준비시키신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뜻을 이루신다. 고난이 없다면 이스라엘은 회복될 수 있을까?


1) 1917년에 있은 발포아선언으로 영국이 유대인에게 독립을 약속한다.
2) 1919-23년에는 세번째로 동부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3) 1924-32년에는 네번째로 동부유럽에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이때 이스라엘내에 키부츠(아인 하롯)와 모샤브(나할랄)가 이스라엘 계곡에 설립된다. 이것이 이스라엘 발전의 모티브이며 지금도 각각 250여개의 키부츠와 모샤브가 있다. 1925년에 히브리대학이 설립된다. 히브리어가 공식어가 된다.


4) 1933-39년에는 다섯번째로 주로 나찌 독일에서 난민으로 구성된 유대인들이 이주해 온다.
5) 1939-45년에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이 때 히틀러에 의해 폴란드 아우스비치에서 600만 유대인 학살이 시작된다.

 

이 역사를 잊지않기 위해 이스라엘은 야드 바쉠에 홀로코스트(기념관)를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후손들에게 이렇게 교훈한다. “망각은 망국에 이르며 기억은 구원에 이른다.” 하나님의 말씀을 잊는 자는 자신을 지킬 수 없고 고통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이 홀로코스트로 인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조국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아랍연합국가와의 수십번의 싸움에서 패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은 택함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지면 자신들은 살 곳을 잃고 제 2의 홀로코스트의 역사만이 기다린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결의 때문이다.

 

일본의 지배역사를 지으기 위해 총독부 건물을 헐어 역사의 교훈을 묻어버리는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된다. 역사의식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


6) 1947. 11. 29일 UN은 영국의 신탁통치를 종식시키고 팔레스타인 지역을 유대계와 아랍계 두 개의 독립국가로 분할했다. 아랍계는 유대계 국가를 인정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전역을 무력으로 점령하겠다고 선언했다.

C. 이스라엘 건국 이후의 역사


1. 1947년 11월 이후 영국은 이스라엘의 독립에 여러가지 형태의 방해작전을 은밀히 진행한다. 영국의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기초해서 반드시 이스라엘이 세워지도록 노력한다.

 

1917년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을 위해 쉐입츠 버리경이나 발포르 경이 행동을 개시하며 발표한 것이 발포르선언이다. 그러나 영국은 국가 설립이 가까워 오자 정치적인 이유 곧 아랍의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아랍국가들을 지원한다. 그 후 영국은 지는 해로 변한다.


2. 1948. 5. 14 - 독립을 선언하고 이스라엘 국가의 탄생을 선포했으며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이스라엘의 건국은 철저한 하나님의 예비하신 계획속에 이루어진 땅(육적)의 회복에 대한 약속의 성취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회복의 시작이다.


1) 이사야 11:10-14 - 땅 사방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모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성취.
2) 이사야 43:1-7 - 사랑하는 백성을 동서남북 세계에서 부르시는 하나님
3) 이사야 48:10 - 고난의 불로 시험하였다.
4) 이사야 44:24-26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약속은 절대적으로 확실하다.
5) 이사야 46:9-10 - 하나님은 원하는 모든 것을 행하신다.
6) 예레미야 16:14-15 - 제 2의 출애굽은 유월절 출애굽과 다르다. 지금 이스라엘은 유월절 출애굽을 기념한 장막절을 지킨다. 영적인 소경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을 통해 이스라엘이 2,500년전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건국은 출애굽과 다른 온 세계에서 박해받던 이스라엘을 불러내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인 것이다. 이제 이스라엘은 출애굽하게 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계에서 불러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섬겨야 할 것이다.


7) 예레미야 18:1-6 - 이스라엘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 손 안에 있다.
8) 예레미야 30:1-7 - 환난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9) 예레미야 31:13-34 - 이스라엘의 영적인 회복
10) 예레미야 33:23-26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 적이 없다.
11) 예레미야 50:4-5 -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새언약
12) 에스겔 36:22-28 -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
13) 호세아 1:10 - 이스라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이다.
14) 아모스 9:14-15 - 이스라엘을 원상태로 회복하고 다시는 뽑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
15) 시편 24:1 - 땅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소유권.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나라에 주신다. 세계 역사는 이것이 내 땅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교훈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물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오늘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과의 땅에 대한 분활문제는 휴머니즘의 관점이 아니라 성경안에서 보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다시는 이 땅에서 ?겨나가는 역사는 없을 것이다.
16) 요엘 3:2 - 심판하시는 하나님
17) 창세기 17:7-8 - 하나님이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신 땅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회복하시는 것이다.
18) 마태복음 24:4-13 - 예수님의 예언. 이제 이스라엘에게 남은 것은 영적인 회복이다. 그 리고 예루살렘 땅으로 인한 3차대전과 구원, 마지막인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다.
3. 1948-1949년에 독립전쟁을 치룬다.
5월 15일 주변 아랍국가들(이집트, 트랜스요르단,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이 전쟁으로 60만명의 아랍인들이 난민으로 도망한다. 그리고 70만명의 유대인이 아랍국가에서 도피한다 1949. 1. 7일 독립전쟁은 휴전했다.(1949년 7월 휴전협정은 조인됐으나 아랍연맹은 이스라엘과의 국경을 봉쇄하고 이스라엘과의 영원한 전쟁을 선포했다.)
1) 49. 1. 25일 이스라엘은 처음 정식 선거를 실시했다.
2) 2. 17일 첫 국회가 예루살렘에서 열렸고 차임 웨이즈만을 첫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는 데이빗 벤구리온(1917년 영국군 상병으로 이스라엘로 온다)을 첫 수상으로 임명하고 첫 정부를 구성하도록 요청했다. 임시정부는 해산됐다.
3) 5. 11일 이스라엘이 UN에 가입했다.


4. 1948-51년 사이 유대인들의 집단 이주기간 중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이다.
1) 이스라엘 국회는 “귀환법”을 제정하였다. 그 법의 취지는 ‘모든 유대인은 이 나라에 이주해 올 권리를 가진다’.는 것이다.
2) 인구가 684,000명의 새로 온 사람들은 유럽에서 온 대학살의 생존자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회교극들에서 온 난민들, 예멘(43,000)과 이라크(113,000)에서 모두 함께 비행기로 옮겨온 유대인들이었다.
3) 이주해 온 다른 민족들 - 유럽의 아쉬케나지족과 동양의 세파르디족, 다양한 문화, 습관, 전통을 가지고 있음.
4) 이 새 나라의 당장 시급한 문제 - 주택, 식량, 일자리
5) 이스라엘은 삼 년 동안 78,000채의 집을 짓고 345개의 마을을 세웠다.(과거 70년 동안 293개의 마을을 세웠음.)
6) 서양의 유대인들은 큰 금액의 돈을 기부도 하고 대출도 해 주었으나 이 기간에 이주해 온 사람은 적었다.
5. 1951년 세계 시온주의 대회가 예루살렘에서 처음 열렸음.
6. 1952년 서독은 나치하에서 유대인들의 물질적인 손해에 대해 이스라엘 정부에 7억 1천 5백만불과 개인들에게 1억불을 지불하기로 하는 배상협정에 서명했다.


7. 1952년-56년 사이에 아랍인들의 적대행위가 계속되었다.
1) 아랍 게릴라에 의한 끈질긴 공격으로 400명 이상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고 900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음.
2) 아랍군과 이스라엘군 사이에 3천회의 무력충돌이 있었음.
3) 이집트의 자폭 전투기들이 이스라엘 영토 깊숙히 반복해서 침투하였음.
4) UN은 이스라엘의 보복행위를 비난하였다.
5) 이집트는 1949년 이스라엘 선박의 스웨즈 운하 통과를 봉쇄했다. 그 뒤 어느나라 선박이든 이스라엘로 향하는 모든 상품은 통과를 봉쇄했고 스웨즈 운하에 관한 UN의 결정을 무시했음.
6) 1951년 이집트는 남쪽 에일랏 항구로 향하는 이스라엘 선박, 특별히 석유를 실은 선박들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7) 1955년 이집트와 시리아는 군사협정을 맺었고 요르단(트랜스 요르단은 1950년 웨스트 뱅크를 점령하면서 요르단으로 이름은 바꾸었음)도 함께 서명하였다.


8. 1956. 10월 영국과 프랑스(이 두 나라도 스웨즈 운하 봉쇄를 염려했음)의 지원을 받아 아랍국가들의 전쟁위협에 이스라엘은 선제공격 “시나이 작전”을 개시했다.
9. 1957. 3월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로부터 철수한다. UN은 1967년까지 에집트로 하여금 더이상 게릴라 활동을 못하게 하였다.


10. 1958년 이스라엘이 탄생하고 10년이 지났다. 다음과 같은 분야에 많은 발전이 있었다.
1) 새로 이주해온 많은 사람들이 히브리어를 구사하고 일자리를 잡았다.
2) 동양계 유대인들(세파르디)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어 대부분 자립하게 되었다.
3) 농업의 자급자족이 관개시설을 한 지역이 400% 늘어났으며 많은 지역에 나무를 심었다.
4) 인구가 1백 80만으로 늘어났고 실업율은 1.4%였다. 15만 채의 집을 지었음.
5) 2세들의 100%가 학교에 다녔고 학생 수는 13만명에서 55만명으로 늘었다. 대학교는 4개였고 대학생 수는 만명, 1948년의 대학생 수는 1,500명이었다.
6) 유대인의 문화와 영적인 유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졌다. 예를 들면 정부는 예루살렘에서 세계 성경 대회를 개최했다.
7) 아랍인과 두루우즈족이 사는 지역이 많이 발전됨 - 농업 생산성 600%향상, 각종의 무료혜택 - 초등교육, 보헙사회 복지, 병원, 도로, 수도, 전기, 위생시설, 관개시절, 선거에 참여하며 국회도 대표를 보내고 있음.

11. 1958-59년 중의 이스라엘과 후진국들과의 관계
1) 이스라엘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의 후진국들에게 과학기술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농업분야와 그 나라들의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의 생활수준 향상을 위해 도움을 주었다.
2) 이에 대한 응답으로 많은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과 대사관계를 수립했고 UN에서 그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 1965년 로마교황 요한 23세“유대인에 대한 교회의 잘못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2차 대전 중 론칼리 대주교로 있으면서 많은 유대인들을 나치로부터 구하기 위해 힘썼다.

 

 “우리는 오늘날 깨닫고 있습니다. 수백세기 동안 우리의 무지가 우리의 눈을 가려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을 보지 못하고 그들의 얼굴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카인의 흔적이 우리의 손에 남아 잇는 것을. 수백세기동안 우리의 형제 아벨은 우리가 뿌린 피밭에 누워 있었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 버림으로 아벨은 우리가 자아낸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들을 유대인이라 부르며 저주했던 우리를 용서하소서. 그들의 육신 가운데 있는 당신을 또 한번 십자가에 못 박았던 우리들을 용서하소서. 주여,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 몰랐습다.”
(1965. 5. 15일자 토론토 데일리 스타에 개제됨)

12. 1965-66년 이스라엘에서는 다음과 같은 분야가 더욱 발전하게 되었다.
1) 농산물 수출 총계는 8,600만불에 달했다. 주로 감귤류의 수출이었다
2) 대수로(大水路)가 완성되어 요르단강 상유에서 남쪽의 네게브사막에 물을 끌어 들였다.
3) 생필품(냉장고, 라디오)산업이 발전하였다.
4) 다른 한편 이주민의 숫자가 줄어 들어 (1965년에는 3만명, 1966년에는 1만 6천명) 건설업과 관련사업이 침체하기 시작했다.

13. 1967년 6일 전쟁 바로 앞에 있었던 사건들
1) 팔레스타인 테러 단체인 알. 파타가 사보타지를 위해 훈련된 테러분자들을 이스라엘에 침투시킴.
2) 시리아갈릴리에 있는 키부트 마을을 폭격하였다.
3) 5월 16일 낫세르는 시나이에서 UN 평화유지군을 추방했다.
4) 5월 24일 낫세르는 아카바 만과 에일랏 항구의 입구인 타이란 해협을 봉쇄했다.
5) 5월 26일 낫세르는 “이집트는 이스라엘과 전쟁을 치를 준비가 완료됐다.”고 선포했다.
6) 5월 30일 후세인왕은 요르단의 군대를 낫세르 지휘로 넘겨주었다.
7) 6월 4일 이라크도 요르단의 뒤를 따랐다.

14. 1967년 6월 5일에서 10일까지의 6일 전쟁
6일 전쟁은 예루살렘과 약속의 땅을 회복(단 8:13-14, 사 65:17- 66장,눅 21:24)하는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육적인 회복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영적인 회복이 시작된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점령했고 곧 바로 그곳을 이스라엘의 영원한 수도로 선포한다.

유대인은 결코 예루살렘을 포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이해하는 키이다.


1) 6월 4일 이스라엘 방위군 소집, 노인, 부인, 어린이들이 직장을 지키고 추수를 하고 수출품을 실어냈다.
2) 6월 5일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의 비행장을 폭격하여 3시간만에 452대의 비행기를 파괴하였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시나이에 있는 이집트군을 향하여 네개지점에서 진격하였다. 이스라엘은 요르단의 후세인 왕에게 먼저 공격하지 않겠다고 통보하였으나 요르단군은 전 휴전선에 공격을 개시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UN본부를 점령하였다.
3) 6월 6일 이스라엘은 반격을 해서 옛성을 제외한 예루살렘 모두를 차지했다.
4) 6월 7일 이스라엘은 AD70년 이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의 옛성을 차지했다.
5) 6월 9일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요쇄화된 골란고원에서 시리아를 몰아냈다. 이스라엘은 시나이를 거쳐 스웨즈운하까지 밀고 들어가 가자지역을 점령했다. 해군은 홍해에 있는 샤롬엘 쉐이크를 점령함.
6) 6월 10일 모든 당사국들이 휴전에 동의함.

    6일 전쟁은 여러가지 면에서 독립전쟁과 같은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15. 1967년 6월에 이스라엘은 빼앗은 아랍 영토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책을 세웠다.
1) 세가지 종교의 성지의 자유로운 출입 보장.
2) 동서 예루살렘의 장벽 제거
3) 개방정책을 채택하였고 요르단의 센왕도 찬성했다.

유다 지역과 사마리아지역 그리고 가자지역 아랍인들은 아랍국을 자유롭게 오가며 요르단에서 물건을 사고 팔며 친척과 친구들이 마음대로 찾아올 수 있게 했다.
4) 전쟁중에 피난갔던 20만명의 아랍인들로 부터 귀향신청을 받겠다고 선포했다.(4만 4천명이 돌아왔다.)
16. 1968-73년 사이는 장기 소모 전쟁이 계속된다.
1) 이집트는 시나이 국경을 계속 괴롭힘.
2) 소련의 이집트와의 관계 증가, 소련 전투기와 소련 조종사 그리고 소련 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대공미사일 기지가 이집트에 많이 생겼다.
3) 시리아도 소련의 원조를 받았다. 소련제 케츄카 로켓트로 이스라엘의 북쪽 국경을 정기적으로 포격했다.
4) 팔레스타인 테러분자들이 레바논 국경을 통해서 북쪽으로부터 테러활동을 증가시켰다. 후세인 왕은 팔레스타인 테러분자 캠프를 폭격해서 1970년 그들을 요르단에서 내쫓았다.

그들은 납부 레바논에 옮겨 살았고 그곳을 “파타지역”이라 불렀다.


5) 이스라엘 밖에서 아랍인들의 테러가 늘어남. 비행기 납치. 1971년 뮌휀에서 이스라엘 선수들의 살해.


17. 1973년 10월 5일 욤 키퍼 전쟁 직전에 있었던 사건들


1)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는 휴전선에 대규모 공격을 시작하였다. 이스라엘은 욤 키퍼(속죄 주일)의 전날 비군을 동원하기 시작했다. 골다 메이어 수상은 “공격이 임박한 확실한 조짐”을 통보 받고 공격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하기 위해 선제 공습공격을 지시했다.


2) 10월 6일 이스라엘 내각은 그 속죄 주일날 회의를 갖고 곧 메이어의 결정을 승인했다. 이 회의를 하고 있는 동안 오후 2시에 아랍국들은 두 곳을 공격해 왔다. 남쪽에서는 이집트 전투기와 포병이 시나이에 있는 이스라엘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7만의 군대와 탱크 1천대가 스웨즈 운하를 건너 왔다. 북쪽에서는 1만의 군대와 탱크 8백대가 골란고원을 공격해 왔다.


3) 10월 7-25일 이스라엘은 2일만에 그 양쪽 공격을 막아냈으나 많은 회생을 치렀다. 소련제 대공 대전차 무기들이 이스라엘의 전투기와 탱크를 폭격했다. 이라크는 시리아 편으로 참전했다.

 

소련이 10월 10일 이집트와 시리아로 장비를 공수하기 시작하자 미국도 10월 14일 이스라엘에 탄약과 부속품을 공수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쪽의 휴전선 넘어로 12-15마일까지 밀고 들어갔다(다마스커스도 25마일 안으로 들어왔다.) 이스라엘 육군은 10월 16일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 들어 갔고 이집트 육군이 구축한 전선 뒤에 있는 미사일 기지와 군사시설을 폭격했다. 이스라엘 육군은 카이로에서 62마일지점까지 진격했다.

 

아랍국들이 전쟁에 지자 소련은 미국에 휴전을 제의했고 10월 23일 이스라엘은 이에 동의했다. 이집트와 시리아는 계속 폭격했다. 이스라엘은 12시간동안 참다가 반격했다.


4) 10월 25일 소련군에 비상이 걸렸고 이집트에서 개입을 준비했다. 전세계 미군에도 비상이 걸렸다.

5) 10월 25일에서 11월 사이에 휴전이 성립된다. 아랍국들과 이스라엘의 역사상 처음으로 직접 협상에 의한 휴전협정이 성립되었다. 이 휴전으로 OPEC은 석유가격을 1973년 1월 배럴 당 $2.59에서 12월 $11.65로 올렸다.
18. 1975. 9월 이스라엘은 시나이 점령지역으로부터 철수하였고 51년 이후 처음으로 수에즈운하로 이스라엘 선박이 운항한다.
19. 1973-1979년 이스라엘안에서 1575회의 테러가 있었다. 이 시기에 PLO의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곳에서 테러를 행한다.
20. 1975년 레바론에서는 기독교레바론인과 PLO간의 내전이 발생한다. 이 일로 2만명의 기독교인이 죽는다. 이들을 도와준 나라는 이스라엘뿐 이었다. 이스라엘은 국경을 열어 2,500명의 환자를 의료 지원해준다
21. 1977년 11월 이집트 안워드 사다트대통령이 베긴 수상의 초청으로예루살렘에 방문하여 평화협상을 시작한다.
22. 1979년 3월 26일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평화협상에 조인한다.
이 조인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한다.

 

시나이 반도는 이스라엘의 비행장과 자체 개발한 원전이 있었다. 이 원전을 포기함으로 원전국가에서 비산유국가가 되고 이집트는 산유국가가 된다. 대신 이집트는 이스라엘에게 석유를 정상가격에 공급할 것을 약속한다. 이 일로 이스라엘은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다.


23. 1993년 이스라엘과 PLO가 평화조약을 맺는다.
24. 1994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여리고, 가자지구)을 인정한다.
25. 1995년 이스라엘은 요르단과 평화협정을 체결한다. 이스라엘과 한국이 비자면제협정을 맺었다.
26. 1995년 라빈수상이 암살당한다. 그리고 그는 헤르츨 국립묘지에 묻힌다.

#. 이스라엘 국가: 하티크바 - 희망
공동체 가슴속에 우리 유대인의 희망이 진리로 고동치고 있는 한
저 멀리 동편(예루살렘)을 응시하고 우리의 눈이 시온(다윗성)을 지켜보고 있노라
2천년동안 간직해 온 우리의 희망 그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그 땅 우리의 나라 예루살렘과 시온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백성이 될 것이다.


D. 성경으로 본 이스라엘의 역사가 주는 교훈

1. 이스라엘의 역사는 철저한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절대로 잊지 아니하신다(시편 137:5-6).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회복하사 역사가도 정치가도 그리고 유대인들 조차도 생각하지 못한 건국(1948. 5. 14)을 허락하신다. 이 건국은 이스라엘의 땅의 회복(육적인 회복)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1967년 6월 5일에 시작된 6일 전쟁을 통해 2,000년간 이방인의 때가 찰때까지 이방인들(여러 나라들) 허락하신 예루살렘(눅 21:5-24)을 회복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마지막 고난의 역사는 아마겟돈(므깃도-계 16:16-21)의 전쟁일 것이다. 이 전쟁의 이유가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그분은 성경의 약속들을 이루어 가시고 계신다. 성경의 약속들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성취되고, 그리고 되어가는 것을 보는 눈이 복이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그 분의 역사를 이루셨듯이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를 결코 잊지 아니하시고 우리 안에서 그 분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고난 자체가 아니라 고난 뒤에 주시는 회복이다.

2. 하나님을 이스라엘을 모델로 세계를 다스리신다.


하나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순종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평화와 축복을 주신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면 수치와 고난의 광야로 내 모신다(신 28장). 이스라엘의 운명을 말씀의 잣대로 재시는 하나님이 세계와 우리의 역사를 그분의 잣대로 재신다. 이스라엘을 성서의 눈으로 보아야만 바르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유대인을 보면 내가 보인다. 이스라엘을 보면 세계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통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의 경제적 어려움은 어디에서 왔는가? 정치인의 잘못에서가 아니라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아니하고 물질과 성공의 우상을 ?아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겼기 때문이다. 이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듯이 우리가 지금 받는다. 한국의 현 상황을 성서안(삼상 15:23)에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서안에 해결의 키가 있기 때문이다.


신앙인의 고난은 절망이 아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훈련방법이다. 하나님이 욥에게 주신 고난은 하나님의 저주가 아니다(욥 1:13-10). 욥은 고난을 통해 비로서 하나님을 올바로 깨닫게 된다. 그때 하나님은 욥을 회복하시고 배로 축복하신다(욥 42:10-17). 고난의 비밀을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배울 수 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이스라엘을 정금같게 하시듯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방법이다(이사야 48:10-11). 이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하나님께로 돌아 가서(철저한 회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길 뿐이다(이사야 55:1-7).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시지만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신다.


이스라엘을 대적한 나라는 고통의 댓가를 치른다(이사야 60:14-15, 이사야 62장. 스가랴 12:3). 세계 역사가 이를 교훈한다. (애굽, 앗수르, 에돔, 암몬, 모압,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헬라, 그리고 유럽 등 이스라엘을 박해하던 나라들은 역사에서 대부분 사라지거나 고난을 받았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을 대할 때 어떤 유익을 바라지 말고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요 15:18-23). 주님이 아무 자격없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사랑하신것처럼 우리도 사랑함으로 섬기고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 주님의 친구가 된다(요 15:1-17).


유대인이 뛰어나고 지혜롭고 그리고 훌륭한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을 사랑하는 자에게 형통한 축복을 주시기 때문이다(시편 122:6-7). 또한 주님께서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용서하시고 부활하셨다. 유대인들을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신앙관계에서 볼 때에 우리는 그들을 사랑할 수 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벧전 2:1-10). 그러므로 유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사람들도 사랑할 수 있다(마 5:43-48).

4. 기독교인들은 육적인 회복을 이룬 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회복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에 대한 우리의 복음의 빚을 갚는 것이다(이사야 2:1-4, 이사야 40:1-2, 스가랴 12:1, 10-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날이 올 것이다 ;14:8-9). 예수님은 유대인으로 오셨다. 최초의 기독교인은 유대인이었다. 또 최초의 기독교 순교자도 유대인이었다. 주님은 유대인 선교사 바울을 통해 유대인이 넘어짐으로 돌아온 이방인의 복음에 대한 축복을 터어키, 그리스, 영국, 미국, 중국을 걸쳐 우상의 나라 우리에게까지 주셨다(로마서 11:9-11, 28-36). 주님도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낫다고 말하신다(요 4:22). 이것이 우리가 이스라엘의 영적 회복을 위해 선교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무지와 교만으로 잃어 버린 예수를 찾아야 한다. 예수의 부모가 자신들의 일에 열중하다 예수를 잃어 버린것처럼 우리도 예수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분명히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찌른 예수가 메시야임을 믿고 회게하는 영적인 축복을 주실 것이다(슥 12:1-14). 그리고 이미 그 일은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영적인 추수를 위해 한국교회를 일군으로 사용(마 9:36-38)하시기를 원하신다.


유대인들에게 전하는 복음은 새로운 복음이 아니라 주님이 전하신 회개의 복음(마 4:17)이며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다(행 2:14-42, 3:11-26, 7장). 한국교회는 이스라엘을 위로(이사야 40:1-2)하고 그리고 늘 이들을 위해 중보기도(이사야 62:6-7)할 사명이 있다. 주 안에서 참된 할례자 곧 하나님의 백성된 우리가 유대인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 예루살렘과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행 1:8) 주님은 말씀하신다. 시작은 곧 끝이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어디로 와야 끝일까?

5. 지금 멈추지 않는 역사의 시계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성경을 통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가올 역사에 대해 말씀(요엘 3:12-14, 이사야 60장, 스가랴 12-14장, 히 4:12-13, 살후 1:7, 10, 계22:12-17) 하신다. 지금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와 값없이, 돈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회복될 때이다.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때까지 잃어버린 예루살렘을 회복(1967년 6일 전쟁)한 후에 일어날 역사는 무엇인가(눅 21:25-33, 사 34:14)? 하나님은 역사의 시계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눅 21:34-36, 계 16:15, 마 24:29-51)?


구약은 신약을 이해하는 열쇠이며, 신약은 구약의 성취를 깨닫게 하는 열쇠이다(요 15:25). 구약을 모르면 신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신약만 즐기지 말고 구약을 통해 신약을 보고, 신약을 통해 약속의 성취를 보아야 한다. 주님께서 구약의 말씀대로 사셨고(요한 15:7-14), 약속의 말씀을 변질시킨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책망하셨다(마태 23장). 구약은 자신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율법의 거울이다. 성령께서도 우리의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책망하신다(요 16:4-15). 예루살렘은 율법으로 정한 공의와 진리를 행한자가 하나도 없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렘 5:1). 율법이 없으면 죄도 없다. 죄 없다하는 사람에게 예수는 어떤 분일까(눅 5:31-32)? 그러므로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많다. 우리는 주 예수를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다(엡 2:8-9). 이제 구원받은 자답게 새사람을 입어 하나님의 의와 진리를 행하며 살아야 한다(엡 4장, 벧전 1:13-25, 레 12:44-4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은혜안에서 율법은 올무가 아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기는 힘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은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요한일서 5:1-5). 그것을 사랑으로 지키며 사는 사람에게는 주님의 재림이 산소망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사야 40:6-8) 뿐이다.

“메시야가 오실 것을 나는 확실히 믿습니다. 그가 더디 오실지라도
날마다 기다리며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미리 맛보며 살겠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계시록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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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역사 (구약성경 요약) : 인보라 著


- 구약을 읽고 계신분들은 큰 도움이 될것같습니다.


제1장 서 언

1. 근원 자료

- 구약성경 : 이책은 이스라엘 조상의 배경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역사뿐만아니라 율법, 철학, 보고서, 설교 등도 포함되어 있다.
구약에서 제외된 부분을 채워주는 다른 자료가 있어서 일반적 배경을 보충해 주는데, 이 자료가 고고학적 연구이다

2. 이스라엘의 중요성

- 기본원리들은 법률가들에게 지침을 제공해 준다.
- 당시 가장 위대한 철학자들이나 저술가들은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속에 끼어 있었다.
- 이스라엘의 지혜문학에는 대화, 극, 시, 격언등이 발견된다.
- 구약성경의 영속적 가치는 주로 종교적, 도덕적인데 있지만, 그 예술적 특징도 간과 되어서는 안된다.

3. 이스라엘의 전략적 위치

- 서쪽으로는 지중해, 동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막, 남쪽으로는 나일강, 북쪽으로는 “초생달 모양의 기름진땅”이라고 불리우는 나라들이 놓여 있다.

4. 팔레스틴의 지리

- 팔레스틴은 블레셋인이 살았던 땅인 남서쪽만을 포함 했었다.
- 팔레스틴은 동쪽으로는 수리아, 남쪽으로는 사막같은 네게브, 서쪽으로는 지중해, 북쪽으로는 페니키아와 내륙쪽의 아람이 자리잡고 있다.

(1) 요단계곡

- 요단강 : 헤르몬산 기슭의 300피트 높이에서부터, 지구상의 가장 낮은 장소인 해저 1,200피트 지점인 사해로 떨어지고 있다.


요단강은 고기가 많으며, 잔잔한 수면이 끓는 솥과 같이 급변 하는 폭풍우로도 유명 하다. 요단 계곡은 갈릴리로 부터 사해까지 대략 70마일 퍼져있다.

(2) 트랜스 요단

- 트랜스 요단 : 고원지대로 초원으로 알려져 있다. 요당 계곡으로 부터 펼쳐지는 높은 산 마루는 공기를 차갑게해 상당한 분량의 강우량을 가져오게 한다

(3) 중앙 산맥들

- 북쪽구획 : 갈릴리
- 중앙구획 : 처음에는 에브라임 산지로, 나중에는 사마리아로 불렀다.
- 남쪽구획 : 유대

(9) 해변 지역

- 팔레스틴 본토 산맥들과 지중해 사이에는 해안 평야가 놓여있다.
- 지중해는 자연항구의 부족으로 팔레스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했다.

(10) 기 후

- 팔레스틴은 아열대지역에 속한다.
- 우기 : 11월 - 4월

5. 역사구분

- 첫째 : 족장 시기
- 둘째 : 애굽 시기
- 셋째 : 광야시대, 팔레스틴 정복시기
- 넷째 : 사사 시대
- 다섯째 : 단일 왕국 시기
- 여섯째 : 분할 왕국 시대
- 일곱째 : 포로시대, 포로이후 시대


제2장 족장의 배경

1. 역사적 정확성

(1) 이 름

- 한 가지증거는 창세기에 사용된 이름들이 고대자료에 나타나있는가에 관계하고 있다.
- 구체적인 성경의 이름과 지명을 나타내는 증거가 부족하긴 하지만 이것들은, 창세기 기록에 사용된 이름들이 당시의 술어들이라는 것을 나타내어 준다.

(2) 관 습

- 창세기 기록은 아들이 없을때 상속에 대한 그러한 걱정은 정상이었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누지자료는 바로이러한 경우를 보여 준다.
누지자료에 의하면 자손이 없는 부모는 종을 아들로 입양 할 수있는데, 친아들이 태어나지 않는다면 입양된 아들은 평생 그 부모를 섬기다가 임종시 그의 상속 자가 되는 것이다.
- 그때에 아들이 태어난다 해도 종과 입양된 아들은, 집 밖으로 쫓아 버릴 수가 없다고 지적 하고있다
- 누지자료는 또한 구두 축복이 계약으로 간주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팔레스틴의 상황

- 북쪽 세겜으로부터 남쪽 브엘세바까지 아브라함이 이동한 지역에 인구가 거의 없었다.
- 사해근처의 요단계곡이 많은 도시 지역이었다는 것은 고고학이 증거 하고 있다.

(4) 광범위한 이동

- 족장시대의 극동 지역에서 광범위한 이동이 존재 했다.
-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남쪽 가나안까지 1,000 마일 이상이나 여행 하였다.
- 야곱은 재산을 얻어 남쪽 가나안으로 돌아 왔다.
- 앗수리아 상인 들의 무역중개소가 힛타이트 속에 있었다.

2. 아브라함의 부름의 중요성

* 하나님은 오직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구분 하여 개별적인 지시를 하였다. 그 의도는 새로운 인간을 길러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여 나라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3. 아브라함의 연대

* 자유주의 학자들의 결론은 주전(BC)15세기 후반 부터 때로는 20세기 까지 다양하다.
보수주의 학자들은 그 이전연대를 주장 하여 아브라함의 출생을 22세기 중반부로 보고 있다.

(1) 성경적 증거

출애굽의 연대
출애굽의 연대라는 첫 문제는 보수주의 자들에게 거의 확실한 대답을 주고 있다.
보통 주전 1446년으로 보고있다.

애굽 체류 기간
체류기간은 43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보수학자들은 주장한다
첫째, 출애굽기 12:40 의 진술
둘째, ‘그 자손들은 타국에서 400년 동안 핍박을 받을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창15:13)
셋째, 스데반이 행 7:6에서 400의 숫자를 언급한 사실
넷째, 야곱의 가족이 실질적으로 430년 보다 짧은 기간에는 200만 백성의 국가로 증가할 수 없다는 사실

(2) 성경 외적 증거

①가나안의 상황
- 아브라함이 주전2166년에 태어났다면 그가 가나안에 75세 때에 도착 했으므로 가나안 도착 연대는 주전 2091년이 된다.
-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고모라 지역에 많은 인구가 존재 했다는 점에 일치한다.
- 이것은, 아브라함과 롯이 고지대가 멸망된 뒤나 요단 평야의 도시들이 멸망되기 이전에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애굽의 상황
- 주전1900년 경의 애굽 무덤 벽화에는, 야곱과 아브라함의 경우 처럼, 일단의 셈 족인 반 유목민이 애굽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 “요셉을 알지 못한”(출 1:8)바로의 존재 문제이다. 그는 요셉후에 일어난 사람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화 했다.

바로왕의 정체
- 다음의 네가지 요소가 모두 “요셉을 알지 못하는” 힉소스 왕조의 첫번째 왕이었을 가능성을 제시해준다

1▷ 바로를 위하여 노예화된 이스라엘에 의해 세워진 애굽도시 비돔과 라암셋은, 아모스가 살았던 제18왕조 전이나 후에 건축되었음이 틀림 없다.

2▷ 출애굽기의 “요셉을 알지 못한” 바로왕이라는 말은 바로왕이 제18대 왕조의 한 왕이 아니라 힉소스였다고 할 때 쉽게 이해 될 수 있다.

3▷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의 노예화가 뒤의 제18왕조라기 보다는 보다 일찍 힉소스 왕조때 일어난 것이라고 해야 더 어울린다.

4▷ 아시아족인 힉소스를 애굽에서 몰아 내는데 있어서, 왜 제18왕조는 아시아계 이스라엘 백성들을 몰아내지 않았을까 하는것이 이해하기 어렵다.

4. 아브라함이 살던땅

(1) 우르의 셋째 왕조

- 함무라비가 집권을 시작한 연대
→ ‘늦은 연대’ : 주전 1728년
→ ‘중간 연대’ : 주전 1792년
→ ‘빠른 연대’ : 주전 1848년
- 아브라함이 주전 2166년에 태어났고, 주전 2100년에 이주 했다고 하면, 이것은 늦은 연대를 기초로 할때 이 기간이 시작 되기 30년전에 아브라함이 우르를 떠났다는 것을 의미 하며, 중간연대나 빠른 연대를 기초로 할 때 이 기간 중에 살았으며 이주했다는것을 의미한다.

(2) 통치자

- 그들은 북방으로 앗수르까지 그리고 남방 메소포타미아 전부를 지배한 것으로 보인다. 5명의 연속 통치자가 알려져있다.
우르 남무(18년 통치)
→ 술기(48년 통치)
→ 아마르신(9년 통치)
→ 수신(9년 통치)
→ 이비신(25년 통치)

(3) 종 교

- 아브라함 시대의 사회는 종교적인 사회였다. 훌륭한 종교 건축물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4) 생활 환경

- 구데아 : 수메리아 언어가 최고조로 발전 했음을 알려주는 많은 송가와 기도문을 남김 둥근 판에 새겨진 많은 법령을 남김
- 10만개의 사업용 서류들은 곡물, 야채, 과일, 짐승, 노예, 그리고 다른 생활 용품의 거래에대해 가격과 사업 방법을 보여준다.
- 문화적 진보와 번영의 증거는 훌륭하게 새겨진 상당수의 돌도장(질그릇)과 고대에서 야금술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다수의 세련된 금속 장신구에서 나타난다.

(5) 아브라함의 부름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떠날것을 명령한 이유
→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방해할지 모르는 친구, 환경으로 부터의 격리
→ 출발은 앞으로의 신앙 발전을 나타내는 첫단계
→ 하나님의 역사적 중심을 가나안으로 옮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5. 출 발

- 출발을 주도한 사람이 아브라함의 아버지였다.(창11:31)
-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가야하는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지 못했다.

(1) 하란에서 멈춤

- 하란은 700 마일 되는 거리이며 전체거리의 3분의 2가 되는데 일행은 여기서 주거를 정하였다.
- 아브라함은 데라가 죽을때까지 여기서 머물렀다.

(2) 멈춘 이유

- 하란에는 그의 친척이 있었고 우르 에서 처럼 달신 숭배가 행해 지고 있었으므로 데라는 여기서 여행을 중단 하려고 아들을 설득 하였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신앙 또한 오랜 여행으로 인해 약해져 있었을 것이다.
- 또 다른 이유는 데라가 여행 도중 병을 앓아 하란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란이 우르와 종교적 연관이 있음을 알고 늙은 아버지에게 보다 익숙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서 원래 노선에서 60마일이나 노선을 바꾸었을 것이다.


제3장 아브라함

1. 새 땅

- 가나안은 시돈에서 남쪽 가자 지역까지, 동쪽 소돔과 고모라까지, 북쪽 라사에까지 퍼져있는 수리아 - 팔레스틴을 포함 하였다.

(1) 가 나 안

- 가나안은 이전 수세기 동안 번창하는 지역이었다
- 발굴된 유적은, 초기 청동기인들이 도시국가 통치형태로 놀라운 발전을 했었다고 보여준다.
- 주전 3천년대 후기, 아브라함이 도착하기 훨씬 전부터 가나안은 이땅으로 밀려오는 반 유목민에 의해 크게 변하였다.
- 새 주민들은 그지역에서 자유로이 이동 하며 반 유목민 생활에 만족했으나 차츰 정착하여 전에 파괴 되었던 많은 도시들을 다시 재건 하였다.

(2) 애 굽

- 애굽문화의 첫 황금기 : B.C 2600 - 2200
- 첫 중간 시기 : B.C 2200 - 2000 ; 어려운 때였음.
- 종교가 백성들 생활에 주 역할을 담당 했지만 애굽 전반에 걸친 통일적 힘은 아니었다.

2. 세겜, 벧엘, 애굽, 벧엘(창12:4-13:18)

(1) 세겜에 도착(창12:4-9)
- 아브라함이 세겜에 도착
- 창12:7 을 통하여서 아브라함에게 목적지에 도달 했음을 알려 주었음.

(2) 애굽으로 내려감(창12:10-20)
- 아브라함이 세겜에 도착한후 바로 기근이 닥쳤음으로 그는 애굽으로 건너갔다.
- 애굽에 도착 했을때 그의 부인 사래에 대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처음 우르를 떠날때 사용했던 속임수를 사용 한것은 그 책임이 신앙의 긴장에 있었을 것이다.

(3) 롯과의 분리(창13:1-18)
- 아브라함과 롯은 많은 가축으로 인하여 충분한 목장을 찾기 어려웠다.
- 롯은 도시와 목축이 성행 하였던 요단강 지역을 선택함.
- 아브라함은 비교적 외부 영향에서 벗어난 고지역에 남아 계속 하나님을 섬겼다.

3. 롯의 구출(창14장)

(1) 아브라함의 용감한 구출
- 아브라함은 그의종 318명과 그의 이웃 마므레, 아넬, 에스골의 도움을 얻어 그들을 쫓아 갔다.
- 이 작은 부대는 접전한 적을 단에서 물리쳤으며 포로들을 석방하고 많은 재물을 되찾아 왔다.

(2) 성경 외의 증거
- 아카드 자료 : 서쪽으로의 여행이 빈번 했음을 알려줌.
언급되고 있는 장소 뿐만 아니라 왕의 이름들도 당시 명명법에 잘 부합된다.
- 사사기때 단 자손이 이주할 때까지 라이스에 ‘단’ 이라는 이름이 붙여지지않은것은 사실이다. (삿18:29)
- 에돔과 미디안은 구리와 망간이 있는곳이었다.

(3) 소돔과 살렘의 왕들 (창14:17-24)
-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되찾아온 물품은 네가 갖고 백성들은 돌려 보내라고 촉구하였다.
- 다른 왕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영접 하였고 아브라함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인 그에게 물품의 10분의 1을 주었다.

4. 소돔의 멸망(창18:1-19:38)

(1) 롯을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
- 아브라함은 마므레에서 ‘세 사람’을 만난다. ; 둘은 천사, 하나는 ‘야웨의 천사’였다.
- 아브라함은, 소수의 의인이 있다면 - 몇명인가에 대하여 천사와 흥정 하였다 - 그 도시는 구원되어야 할것을 요구 하였다.

(2) 소돔에서 구출된 (창9장)
- 먼저 떠난 두 천사는 롯의 집에 들어간다. 그리고 롯과 그 부인, 두딸은 도시를 떠나도록 권유받았다.
- 후에 두 딸은 소돔 생활의 영향으로, 아버지와 근친상간을 범해 모압과 벤암미가 태어난다.

(3) 소돔의 멸망(창19:24-25, 27-28)
- 소돔의 멸망은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림으로 이루어 졌다.
- 전체 요단 계곡은 지구 표면에 거대한 단층을 구성하고 있는데 이 또한 지진의 조건으로 보인다.

5. 계 약

* 아브라함의 계약

1. ▷ 아브라함이 약속된 땅에 도달하기전(창12:1-3)
2. ▷ 아브라함이 롯과 결별한 후(창13:4-17)
3. ▷ 아브라함이 네 명의 왕 으로 부터 롯을 구출한 후(창15:1-21)
4. ▷ 소돔의 멸망 직전, 곧 아브라함이 99세였을때(창17:1-22)
5. ▷ 이삭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지난지 몇년 후(창22:15-18)

6. 약속된 아기를 기다림(창16:1-18:15)
- 아브라함이 큰 후손을 갖게 될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나이 75세때에 처음 이루어 졌다.
- 오랜기간을 기다리는동안 사래는 아브라함에게 하갈후처로 취하여 아이를 낳는 방안을 제시 하였다.=>이즈마엘(이슬람)
- 아브라함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었으나 당시 관습의 면에서 이해되고 판단 되어야 한다.
- 그들의 신앙은 기울어 졌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100세, 사래가 90세때 실제로 이삭이 태어났다.
- 하나님은 그들의 생애 에서 이 사건을 기념하여 이름을 바꾸게 하였다.

7. 아비멜렉과 블레셋 족속(창20-21장)

(1) 사라에 관한 두번째 거짓말(창20장)
- 이삭 탄생의 소식을 들은후 아브라함은 부인에 대해 그랄왕 아베멜렉 에게 또 거짓말을 한다.

(2) 초기의 블레셋 족속
- B.C 1190년경 애굽의 라암셋 3세에 쫓겨난 해상 백성으로서 많은 수의 팔레스틴 족속이 팔레스틴 땅에 들어온것은 사실이다.
- 족장시대 가나안 - 카프톨 사이의 교류가 있었다고 증명됨
1. ▷ 하솔과 우가릿에서 중기 미노아 둘째 옹기의 발견
2. ▷ 하솔왕이 카프톨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언급하는 18세기 마리자료에 의해.

8. 이삭의 번제 명령(창22장)

(1) 이삭이 태어남(창21:1-21)
-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부딪힌후 바로 이삭의 탄생의 약속이 성취됨(창21:1-8)

(2) 아브라함의 가혹한 시험(창22:1-14)
-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리아산까지 가게 함으로써 그의 신앙의 진실성을 나타내 보이셨다.

9. 사라의 죽음과 장례(창23장)
- 사라는 127세에 죽었다.(이삭 : 37세. 아브라함은 이후로 38년을 더살았음)
- 사라의 매장 장소로 아브라함은 막벨라 굴을 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전체땅에서 아브라함이 사들인 땅은 이것 뿐이었다.

10. 이삭의 신부(창24:1-25:11)

(1) 리브가를 발견함(창24장)
-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먼 여행길에 보내어 며느리를 구하게 하였다.
- 하나님의 축복과 인도로 그는 성 밖 우물가에서 물을 길러 나온 나홀의 손녀 리브가를 만났다.

(2) 아브라함이 그두라와 결혼함(창25:1-11)
- 아브라함은 그두라와 결혼 하였는데 이 이름은 그전에 알려진 바가 없다.
-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었으며, 이삭이스마엘은 그를 막벨라 굴의 사라 옆에 장사하였다.

11. 신앙의 사람, 아브라함

- 아브라함은 실로 뛰어난 신앙의 소유자였다.
- 아브라함은 롯에게 땅을 선택할 권리를 먼저 줄 정도로 관대 하였다.
- 아브라함은 롯을 구출 하기위해 훨씬 더 힘이강한 군대를 쫓아갈 정도로 용기가 있었다.
-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이로인해 ‘하나님의 벗’이라는 높은 칭함을 얻게 된것이다.


제4장 이삭, 야곱, 요셉

1. 이삭(창25:9-26:35)

- 그에게는 용감한 행적이나 특이한 공로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성경 전체에서 아브라함이나 야곱과 동등하게 평가 되고 있다.

(1) 야곱에서가 태어남(창25:21-34)
- 이삭의 신앙도 아브라함처럼 시험을 받았으나 그도 역시 계속 하나님을 믿었다.
- 쌍둥이들은 태어나기도 전에 리브가의 태 속에서 서로싸웠다.
- 자라면서 이 둘은 서로 닮은바가 적었다

(2) 블레셋과의 관계(창26:1-33)
- 이삭도 아브라함처럼 흉년을 만났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하나님이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경고하셨다.
- 여기에서 이삭은 그의 아버지 처럼 아내에 대한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 그랄왕 아비멜렉은 백성들에게 리브가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이삭으로 하여금 그 땅에 머물도록 허락 하였다.

(3) 도적질한 축복
- 이삭은 장자 축복의 예식을 에서에게 행하기로 결정 하였다.
   그러나 리브가야곱이 축복 받기를 원했다.
- 변장을 하고 들어간 야곱을 에서라고 생각항 이삭은 그에게 풍성한 식량을 받을 것과 그 어미의 후손과 열국을 다스리는 권한을 부여 받았다.

(4) 이삭의 인간성
- 이삭은 20년을 기다려 아이를 가질때까지 하나님을 계속 믿었다.
-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아내에 대해 거짓말을 범 하였다.
- 어떤 주도권이나 신앙이 발휘 되어야 할 상황이 그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 그는 바깥으로 공격을 나타내지 않는 은둔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는데 이것은 그 자체로 볼때 칭찬할 만한 특징이다.

2. 야곱(창28:1-36:43)

- 그는 아브라함과 같이 행동의 인간 이었다.
- 이삭 보다는 야곱에 대한 기록이 훨씬 더 많은 부분을 차지 하고 있다.

(1) 하란으로의 탈출(창28:1-29:13)
- 야곱이 리브가의 고향으로 떠나기 전에 이삭은 야곱을 불러 그에게 더한 축복을 내렸다.
- 이 당시 그는 정신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았고 집을 떠날때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2) 하란에서의 20년(창29:14-31:20)

야곱의 두 아내
- 야곱은 처음 부터 라헬을 더 사랑 했으며, 이 결혼을 위해 7년간 라반을 섬기기로 동으 하였다.

   7년이 다 되었을때 라반은 야곱을 속여 라헬 대신 큰 딸 레아를 주었다.
- 야곱은 다시 라헬을 얻는 조건으로 7년을 더 일해야 했다.

② 야곱의 자녀
- 레아를 통해 낳은 자녀 :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스불론, 디나(딸)
- 빌하를 통해 낳은 자녀 : 단, 납달리
- 실바를 통해 낳은 자녀 : 갓, 아셀
- 라헬를 통해 낳은 자녀 : 요셉, 베냐민

③ 마지막 6년
- 야곱은 자신의 새 품삯으로 전부 희거나 전부 검은것을 제외한 나머지를 달라고 제안 하였다.
- 장인 집에서의 야곱의 번영은 하란의 친척들에게는 좋은 인상을 줄 수가 없었으며 야곱은 곧 그곳을 떠나게 되었는데 이 품삯을 협정한 뒤 6년(총20년)이 흐른 뒤였다.

(3) 가나안으로 돌아옴(창31:21-33:20)

① 라반의 추적
- 라반은 야곱이 몰래 떠났음을 알고 몹시 분노 하였다.
  그는 하란에서 적어도 275마일 떨어진 길르앗 산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었다.
- 사건은 라반과 야곱 그 어느 누구도 서로 다시 해하지 않겠다는 언약으로 끝을 맺었다.

② 씨름의 상대
- 야곱은 하나님의 사자와 씨름을 하는동안 그의 적수가 인간이 아님을 깨닫고 따라서 그는 축복을 요청 하였다.
- 야곱은 하나님께서 계속 그와 함께 하신다는 보장을 받고 싶었고 사자는 이러한 보장을 약속 하였다.

③ 에서와의 만남
- 다음날 야곱은 하나님께서 실지로 그를 축복 하고 있다는 뚜렷한 증거를 얻었다.
- 그가 에서를 만났을 때 아무런 노여움도 나타나지 않았다(창33:1-17)

(4) 가나안으로 복귀(창34-36장)
- 세겜에서 그의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을 배반 하여 죽이는 결과를 가져 왔으므로 야곱은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 야곱은 이지역 다른 거주자들로 부터의 복수가 두려워 남쪽 땅으로 급히 이동 하였다.

(5) 변화된 인간 야곱
- 하나님을 충실히 따르는 자가 됨.
- 조용한 명상으로 생활을 함.
- 아들의 나쁜 행동에 대해 슬퍼함.
- 계약적 축복에 관한 하나님의 계시를 잘 받아들임.
- 블레셋 땅으로 돌아온 후의 그의 생애는 크게 본 받을만 하였다.

3. 요셉(창37-50장)

(1) 애굽으로 팔려감(창37장)
- 요셉은 아버지의 남다른 사랑과 그가 부모 형제들 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예언한 꿈 때문에 17세때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 갔다.

(2) 유다와 다말(창38장)
- 여기서 요셉의 이야기는 중단되며,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과 관계를 맺는 어두운 내용이 연결된다.
- 유다는 다말이 그를 속였음에도 불구 하고 다말이 자기보다 더 옳다고 말했다.

(3) 애굽에서의 요셉(창39-41장)

① 애굽에서의 불의
-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함으로 요셉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 요셉은 다른 사람과 구별된 행동을 함으로 다시 신임을 얻게 되었다.

② 애굽에서의 영광
- 바로왕의 꿈을 해석 하여주고 요셉의 충고에 따라 바로왕은 관리 자리에 요셉을 등용 하게된다.
- 이로 인해 요셉은 바로왕의 다음가는 권력을 얻게 되었다.

(4) 성경 외의 사항들
- 애굽에도 기근이 알려져있고 이 기근 동안 양식 분배의 임무를 맡은 사람의 내용이 무덤 비문에 새겨져 있다.
- 한 비문은 제3왕조(B.C2700년경) 때의 7년 기근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5) 야곱이 애굽으로 건너 가다(창42:1-47:11)
- 하나님께서는 그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 사건들을 한데로 모아 역사 하셨다.

요셉과 그의 형제들
-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베냐민에 대한 형제들의 태도를 알아 보기 위해 두번이나 형제들을 엄하게 대했다.
- 그러나 요셉은 더이상 자신을 억제 하지 못 하고 형제들에게 사실을 이야기 했다.
- 기근을 당했으니 가족을 다 데려오라고 했고 바로는 마차를 내어 주기까지했다.

② 야곱의 이주
- 블레셋 땅에서 야곱은 요셉의 소식을 듣고 기뻐 하였다. 그리고 바로는 그들을 고센땅에서 살게 하였다.
- 고센땅은 비옥 하였으며 나일강의 정기적인 범람으로 충분한 식량을 공급할 수가 있었다.

(6) 야곱과 요셉의 죽음(창47:27-50:26)
- 야곱은 애굽으로 온 후 17년간 더 살고 147세때 죽었다.
- 요셉은 야곱의 축복을 받기 위해 그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데리고 왔다.
- 요셉은 야곱이 죽은지 54년 뒤인 110세때에 죽었다.

(7) 성실한 인간 요셉
- 그는 성실하였다. 형들에게 배반을 당하고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 씌움을 당해도 모든일에서 하나님 뜻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았다.
- 요셉은 자신에게 주어진 지위를 잘 감당하고 분별 있게 행동 하였다.

(8) 족장 시대
- 요셉의 죽음과 함께 족장 시대는 종말을 고하였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게 꾸준하고도 훌륭한 삶을 요구 하셨다.
- 계약의 약속은 여러가지 수단으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반복 되었다.


제5장 애굽에서의 체류와 출애굽 연대기

1. 애굽에서의 체류기간

(1) 430년을 뒷받침 히는 증거

① 출애굽기 12:40
- 히브리어 맛소라 사본에서 출애굽기 12:40 에 430년으로 기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② 창세기 15:13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예언 하신 것을 보면 그의 후손은 「이방나라」에서 「객」이 될 것이며 그 나라는 “400년동안 그들을 괴롭힐 것이라”고 되어 있다.
- 성경의 400이라는 숫자는 대략의 숫자이다.

③ 사도행전 7:6-7
- 스데반이 산 헤드린 앞에서 창세기의 내용과 비슷한 말을 한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외국땅에서 괴로움을 당하리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인용하였다.

④ 인구의 증가
- 실제로 430년의 기간 보다 짧은 기간 안에서는 야곱의 가족이 2백만이 넘는 국가의 형태로 증가할 수 없다는것이다.

⑤ 『이스라엘 자손』(bene Yisra'el)이 430년간 체류했다고 한 출애굽기 12:40 에서 찾을 수 있다.

(2) 215년을 뒷받침하는 증거

① 4 대
- 215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세의 계보가 적혀있는 출애굽기 6:16-20 에서 모세가 레위 증손자임을 지적 한다.
- 여기에 나열된 이름은 레위, 고핫, 아므람, 모세 이다.

② 교부들
- 터툴리안(Tertullian)같은 초기 교부들은 가끔 215년의 견해를 주장 하는 사람으로 인용된다.
- 요세푸스는, 어떤곳에서는 215년으로 주장한다.

③ 갈라디아서 3:17
-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430년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고 말하고 있다.

- 이 선택을 하는데에는 다음의 사항을 염두에 두었으리라 생각된다.

1 → 바울의 요점은 율법이 그 전에 생긴 계약을 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2 → 독자로 하여금 요점을 파악 하는데 있어 마음이 분산되지 않도록 해야 했다.
3 → 게약은 아브라함에게 뿐만 아니라 이삭, 야곱 에게도 반복 되었으며 실제로 마지막 계약은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기 직전에 주어 졌다.

2. 출애굽 연대

(1) 직접적인 성경의 증거

① 열왕기상 6:1
- 초기 연대에 대한 첫번째 이유는 솔로몬이 성전을 짓기 시작한 때보다 480년 앞서서 출애굽이 일어 났다는 왕상 6:1의 진술이다.

② 입다의 진술
- 두번째 이유로는 입다의 진술을 들수 있는데 그는 그 날 까지 이스라엘이 블레셋 땅에 300년간 거했다고 말 하고 있다.

③ 사사시대의 길이
- 사사시대의 길이를 분석 해보면 후기 연대에서 계산된 것보다 더 많은 길이가 요구 된다는 것이다.

④ 역사적 상호관계
- 성경의 사건과 초기연대를 기초로한 애굽역사 사이의 상호관계에 있다.
- 이는 두가지 면에서 특히 주목된다.

1 → 이스라엘 사람 들을 노예로 삼아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 하게한(출1:11) 바로왕의 명령에 관한 것이다.
2 → 모세가 미디안에 있을 동안(출2:23-25) 죽은 왕이 누구인가 하는것이다.

(2) 성경외적인 고찰

비돔과 라암셋
- 13세기의 애굽역사와 성경 기록을 조화 시키는데에는 연대적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기 연대 주장자들은 출 1:11의 건축 명령으로 부터 그들의 증거를 찾고 있다.
- 출1:11에서, 왕이 건축 하라고 명한 도시 이름을 라암셋이라 한것을 보면 이 사람은 분명 라암세스2세일 것이다.
- 제 19왕조 훨씬 전에 라암셋이라는 이름이 힉소스 왕들에 의해 이미 사용되었다는것이다.

여리고

a. John Garstang 의 결론
- John Garstang의 주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 1. 여리고성은 아멘호텝3세(B.C 1414-1378)의 집권때에 무너졌다.
⇒ 2. 14세기 말경의 한 건물에서 발견된 자기류들은 모압와 에글론이 잠시 접령했을 때의 것이었다.
⇒ 3. ‘후기 청동기Ⅱ’와 ‘초기 철기Ⅰ’ 때로 여겨지는 그 이후의 몇몇 자기 조각들은 숫자가 몇 안돼는 거류민들의 것이었다.

b. Katheleen Kenyon의 탐사와 결론
- 그녀의 해석은 매우 다른 모습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 1. Garstang은 여호수아 앞에서 무너진 성이 “이중벽” 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것은 두개의 성 이었다.
⇒ 2. 구릉으로 된 이도시는 심하게 폐허가 “샘” 위의 구릉을 제외 하고는 후기 청동기 시대의 모든 유적이 없어 졌으므로 이기간에 힘이 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 3. Garstang 은 이 구릉 지대에서나 또는 무덤에서 발견한 자기들을 주전 1400년경의 아멘호텝 집권때로 계속 이어진다고 보고 있지만, 실제로 주전 1550년경의 ‘중간 청동기Ⅱ’때에 중단 되었다.

c. 평 가
- Kenyon 여사의 결론에서 첫째와 둘째 사항에 대하여는 분명히 그가 옳다.
- 세번째 항목에 있어서, Kenyon 여사는 Garstang보다도 더 후기 연대 주장자들과 맞서고 있다.
- 네번째 항목에 있어서는 Kenyon 여사의 설명보다 Garstang의 설명이 더 합당 하다고 볼 수 있다.
- 여리고는 므깃도에 비해 더 내륙쪽에 있으므로, 수입된 물품은 여리고에 더 늦게 도착했을 것이다.
- 아마도 수입된 물품이 므깃도에 풍부해진 후일 것이라고 기대되는데, 이것은 주전 1479년 이후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발견된 자기가 실제로 주전 1400년까지연장되었다는 중요한 증거를 제공하는것이다.

라기스, 드빌, 하솔

a. 13세기의 멸망
- 라기스는 오늘날의 텔 에드로 판명됨
- 두웨일과 텔 베이트 미르심에는 모두 주전 1400년경의 검은 재의 층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 하솔은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9마일 떨어진 텔 엘 쾌다이로 밝혀졌다.

b. 하솔에 있었던 초기 파괴
- 지층Ⅲ이 불에 의해 파괴 되었으며 아마도 새 왕국의 애굽왕인 아메노피스 2세나 투트모스 3세에 의해 파괴되었음을 말 하는것이다.

c. 여호수아에 의해 불사르지 않은 라기스와 드빌
- 수 11:13 에는 “하솔만 불살랐고 산 위에 건축된 성읍들은 여호수아가 불사르지 않았다”고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④ 요단 동편 지역에서 발굴된 증거
- 후기연대를 주장 하는데에 자주 인용되는 또다른 이유는 주전 1900년 부터 1300년 사이에 요단 동편과 네게브 지역에 정착민이 없었다는것이다.
- Lancaster Harding 은 힉소스 기간중 암몬 지역에 정착민이 있었다고 지적 하는데 이는 이곳에서 발견된 무덤 속에 매장 물질이 잘 보관되어 있으며 유목민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함.

애굽의 수도 위치
- 제18왕조 : 테베(Thebes)
- 제19왕조 : 아바리스(Avaris)

⑥ 아마르나 서판
- 아마르나(Amarna)서판에서는 하비루가 가나안을 침략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a. 증 거
- 서판은 1400년-1367년 에 가나안 족 도시왕들이 아멘허텝 3세나 아케나톤의 애굽 법정에 보내진 서한들이다.
- ‘하비루’와 ‘히브리’는 그이름이 동등 하므로 이 하비루를 여호수아의 침략 군대로 볼만하다.
- 그러나 최근 이러한 견해는 상당히 감소되었다.

b. 첫번째 가능한 설명 : 히브리인은 하비루 였다.
- 많은 초기 연대 주장자들은 남쪽 가나안에서의 하비루를 히브리인으로 보고 있다.
c. 둘째 가능한 설명 : 히브리인들은 하비루 보다 먼저 있었다.
- Meredith Kline 이 이 둘을 동일 하게 보지 않는 이유
1→ 히브리라는 용어는 민족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2→ 어원학적으로 ‘히브리’와 ‘하비루’를 동일하게 보기 어렵다.
3→ 아마르나 편지에서의 하비루의 행적과 여호수아 행적에서의 히브리인의 행적을 완전히 일치시키기에는 어려움이있다.

⑦ 세티1세와 라암세스2세의 군사원정
a. 증 거
- 세티1세와 라암세스2세의 군사원정에서 애굽의 군대는 팔레스틴땅을 통과해서 행군 하여야만 하였는데 이 땅에 실재로 이스라엘이 있었다면 그들은 이스라엘과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b. 설 명
⇒1. 메르넵타와 라암세스 3세에 의한 후기의 군사적 침략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간 다음에 행해진 것이다.
⇒2. 초기원정이건 후기 원정이건간에 이 원정이 사사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에 관한 것이다.


제6장 애굽에서의 생활

1. 애굽 통치의 4기간

⇒1. 주전 1991 - 주전 1786 : 제 12 왕조 ; 나라가 안정되고 왕은 최고의 권력으로 통치함
⇒2. 외국 백성이 애굽에 들어와 왕권을 잡았던 힉소스 왕조기간 ; 아바리스를 수도로 정함
⇒3. 제 18 왕조기간 ; 가장강한 시기 였음
⇒4. 제 19 왕조 기간 ; 전 팔레스틴과 남방 수리아를 총 지휘함

2. 애굽 사람의 생활
- 애굽 사람들은 나일강에 크게 의존 하여 이곳에 모여 살았다.
- 백성들은 많은 신을 섬겼는데 가끔 새나 동물들도 섬겼다.
- 국가신은 지방신만큼 개인 생활에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3. 애굽에서의 야곱의 후손
- 야곱과 그의 가족들은 제 12왕조때 애굽에 도착 했다.
- 비옥한 고센땅을 받은 야곱의 후손 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아 번성 하였다.
- 대부분의 야곱의 아들들은 모여 살았으므로 고센땅을 완전히 채우도록 그들의 소유가 증대되었다.

4. 압박(출1:8-22)

(1) 노예화됨(출1:8-14)
- 고센땅 거주자에게 속박이 주어진 이유
1) 새 통치자는 “요셉”을 알지 못하였다.
2) 이스라엘은 힉소스 왕 보다 “수도많고 힘도 강하게”나타났다.
3) 전 왕조와 군사적 동맹을 일으킬것으로 보였다.

(2) 남자아기를 죽이라는 명령(출1:15-22)
- 빠른 증가를 제지 하려는 또다른 방법이 바로 모든 남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이었다.
- 이 명령은 첫번째 단계인 히브리 산파들에게 모든 히브리 남자아이들이 출생 하는 즉시 죽이라는 명령이었고 두번째 단계로 모든 히브리 남자 아이들을 나일강에 던지라는 것이었다

5. 모세(출2:1-10)

(1) 초기의 가정(출2;1-10)
- 모세는 레위 자손인 아므람요게벳에게서 태어났다.
- 모세는 하나님의 아이로 표현된다.(출2:2-10)

(2) 바로의 딸 핫?수트(Hatshepsut)
- 투트모스1세와 아모스 사이에 태어남
- 여자였으므로 왕위를 직접 계승 할 수 없었다.
- 그녀는 강한 개성과 놀라운 지도력을 가지고 있었다.

(3) 궁궐에서의 모세
모세는 가장 훌륭한 선생을 제공 받았을 것이며 그의 지적인 능력은 배운것을 모두 소화해 낼수 있었을 것이다.

6. 모세의 선택(출2:11-25, 행7:23-29, 히11:24-27)

(1) 칭찬할 만한 결정(히11:24-27)
- 모세는 장성 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 하였다.
- 그는 속박되어있는 자기 백성들의 곤경을 돕기로 결정 하였다.

(2) 어리석은 행동(출2:11-22, 행7:23-29)
- 그는 애굽인 감독을 죽였다.
- 그는 도망하여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집에 도달 하였다.

(3) 투트모스 3 세(Thutmose Ⅲ)
- 그는 정치적 해정가로 능하였고 당시 경마, 궁도, 그리고 모든 운동에 능하였다.
- 그가 뛰어난점은 군사 전략가로 서였다

7. 애굽으로 돌아온 모세(출3:1-4:31)
- 야웨의 천사는 모세를 불러 애굽으로 내려가 오랜세월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인도 하여야 한다고 말씀 하셨다.
- 모세는 장인에게 인사를 하고 부인과 두 아들과 함께 애굽으로 떠났다.

8. 바로왕과의 투쟁(출5:1-12:36)
- 모세는 처음 바로에게 “사흘길쯤 광야로 가서 야웨께 희생제를 드리게 해달라”고만 요청하였다.
- 바로는 거절하였으며 이스라엘에게 더 심한 고통을 주었다.
- 하나님은 계시를 내려 그 다음의 지시를 설명 하였다.

(1) 열가지 전염병 (재앙;출7:14-12:33))

① 물이 피로 변함
② 개구리
③ 이
④ 파리
⑤ 악질
⑥ 독종
⑦ 우박
⑧ 메뚜기
⑨ 흑암
⑩ 장자의 죽음

(2) 바로왕의 박수들
- 고대의 박수들은 고도의 속임수를 가지고 있었다.
- 그들은 악마의 힘에 의해서 속임수를 수행하였다.

(3) 재앙에서 제외된 고센
- 넷째 재앙때 하나님은 고센과 애굽을 구분 하셨다.
- 다섯째 재앙때 바로는 고센으로 사람을 보내어 애굽과의 구분을 확인토록 했다.

(4) 서서히 변하는 바로의 마음
- 계속 하여 재앙이 심해지자 바로왕모세의 요청을 승락 하는쪽으로 기울어 지게 되었다.

(5) 재앙의 기간
⇒1. 어떤이는 니산월(Nisan,3-4월)의14일인 유월절에 관심을 둠
⇒2. 일곱째 재앙의 시기를 밝혀냄
⇒3. 나일강이 범람 했을때로 시기를 제시한다.
⇒4. 첫째 재앙의 시기는 물이 최고 높이에 달해 있을때 바로 직후인것으로 봄

(6) 재앙의 목적
- 바로왕을 설득하여 애굽을 떠나는것
- 하나님의 실재와 권능을 애굽땅에 보이는것

(7) 열번째 재앙
- 니산월의 열네째날 밤에 모든 애굽의 장자들이 죽었다.

(8) 유월절
- 그들은 당시 하나님께서 명한 유월절을 지킴으로 죽음을 면하였다.
- 지정한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령을 따랐고그들의 장자는 살아 남았다.

9. 애굽에서의 출발

(1) 애굽을 통한 경로

- 라암셋(니산월15일) → 숙곳(출12:37;13:20) → 에담 → 비하히롯(바알스본) → 얌 숲(Yam Suph).

(2) 백성들
- 이스라엘백성들은 430년을 애굽사람과 구별되어 있었던 세가지 요인.
1.⇒ 이스라엘사람들이 애굽 사람과 결혼 하지 않았음.
2.⇒ 애굽 사람들은 목자의 직업을 가증히 여겼음.
3.⇒ 이스라엘백성들이 250년간 노예로 멸시를 받았기 때문임.

(3) 얌 숲 에서의 곤경(출14:1-12)
- 넓은 수역으로 인해 전진이 어려움.
- 바로가 특별 병거로 이스라엘민족을 쫓음.

(4) 세가지 큰 기적(출14:14-31)
① 구름 기둥이 진 앞에서 진 뒤로 옮겨짐.
물이 갈라지는 초자연적인 능력을 행하심.(출14:21-22)
③ 애굽 사람들이 물줄기 자리의 한 가운데로 들어 왔을 때 다시 물이 합쳐짐.
④ 이러한 경험의 이유
- 광야로 들어가는 길고 지루한 행로에서 이러한 종류의 경험이 이스라엘에게 필요 했기때문.


제7장 이스라엘의 광야 생활

1. 이스라엘의 여행한 경로

- 이스라엘이 지나간 길은 홍해를 따라 남쪽으로 100마일이 넘게, 그리고 내륙으로 50마일 가량 시내산을 향해 뻗어 있다.
- 이 경로를 결정 하는 핵심은 시내산의 위치이다.

2. 시내산 까지의 여행(출15:22-18:27)

(1) 마라, 엘림, 신 광야(출15:22-16:36)
① 물을 예비 하심(출15:22-27)
- 이스라엘은 구름의 인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서 “마라”라는 작은 오아시스를 발견 하나 그물은 쓴 물이었다.
-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그 물에 나무 조각을 던지니 그 물이 달게되어 마실 수가 있었다.
- 백성들은 계속 해서 엘림으로 이동 하였다.
② 만 나
- 하나님의 섭리는 “작고 동그란” 형태의 양식으로 나타 났는데 “갓씨 같고 희고 달다”고 했으며 그것을 그들은 “만나”라고 불렀다.
③ 메추라기
- 만나가 나타난 첫째 아침 전날 저녁 메추라기를 통해 고기가 공급 되었다.
- 백성들은 이 메추라기를 통해 충분한 고기를 얻을 수 있었다.

(2) 르비딤과 시내산(출1:71-19:3)
① 바위에서 물이 나옴
- 르비딤에 이르렀을때 백성들은 물이 떨어졌다.
-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대로 바위를 치자 물이 솟아났다.
② 아말렉과의 싸움
- 모세는 신임 하고 있는 여호수아를 시켜 이 싸움에 참가할 사람을 선택케 하였다.
- 이스라엘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승리를 거두었다는 강한 교훈을 받았다.
③ 조 직
- 모세는 진을 방문한 장인 이드로의 충고에 따라 “천부장과 백부장 오십부장 그리고 십부장”을 임명 하였다.
④ 시내산에 도착함
- 이스라엘이 이곳에 도착한 때는 셋째달의 소위 ‘같은 날’이었다.
- 이 곳에서 중요한 율법이 주어 졌고 장막(Tabernacle)이 주어 졌다.

3. 율법을 주심(출19:3-24:18;32:1-34:35)

(1) 십계명을 주심
-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첫 소통은 십계명에 관한 말씀이었다.
- 삶의 10가지 기본 원칙이 하나씩 묘사 되었고 백성들은 듣고 두려워 하였다.

(2) 언 약 서
- 이제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은 “언약서”라 불리운다.
- 그 날 모세는 이 모든 말씀을 기록 하였다.

(3) 비 준 식
- 언약을 받은 다음날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이 정식으로 비준되어 효력이 발생한 날이다.
- 모세는 먼저 단을 쌓고 그 주위에 열두 기둥을 세웠으며 청년들을 지정 하여 소를 죽이고 화목제를 드리게 하였다.

(4) 율법이 깨짐
① 첫번 40일
-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산으로 올라와 40일의 계시기간을 시작 하라고 하셨다.
② 금송아지
- 40일째날 하나님은 모세에게 백성들이 우상으로 금송아지를 만드는 죄를 범하였다고 말씀하셨다.
- 이곳에 도착한 모세는 의의 분노로서 백성들 앞에서 두 새겨진 돌판을 깨고 금송아지를 산산히 부수었으며 이러한 범죄를 응낙한 아론을 꾸짖었다.
③ 모세의 훌륭한 정신
- 모세는 자신의 이익을 하나님과 백성들의 이익 밑에 두고 진으로 돌아가 심한 꾸중을 하고 , 다시 하나님께 간청 하기를 이스라엘을 계속 책망 하기보다 자신을 영원히 멸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④ 두 가지 행동
1.⇒ 자기를 위해 진 밖에 장막을 치고 그 안에 들어 갔을때 구름 기둥이 그 앞으로 와서 서게 되었다.
2.⇒ 모세는 하나님께 그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요청 하였다.
⑤ 둘째 40일
- 이제 모세는 두 돌판을 새기라는 명령을 받고 다음날 아침 산으로 올라 갔고 하나님은 40일 동안 그에게 율법을 나타내셨다.

4. 율법

(1) 도 덕 법
- 도덕법은 일반적으로 생을 살아 가는데 필요한 광범위한 도덕 규칙을 제공하고 있으며 보다 구체적인 민법이나 예식법에 대한 기초를 나타내고 있다.
(2) 민 법
- 매일매일의 사회 관계에 대한 구체적 지시를 담고 있다.
(3) 예 식 법
- 종교적인 일에 관계되는 것으로서 대부분은 장막에서의 제사장 역할에 관한 것이다.

5. 성막(출25-31, 35-40장)

(1) 설 명
- 가로 : 45.72m, 세로 : 22.86m
- 동쪽 : 구리 제단;아카시아 나무로 제작(넓이 : 2.28m, 높이 : 1.37m)
제단 건너편에 놋 대야가 있음
- 서쪽 : 성막;48개의 아카시아 나무로 둘려있음(가로 : 13.7m, 세로 : 4.5m, 높이 : 4.5m)
├→ 성소 : 등촛대, 진설병 상, 향제단
└→ 지성소 : 언약궤
(2) 위 치
<진 칠때의 위치>
므낫세 아
셀 단
납달리 잇사갈
에브라임
성 막
유다
베냐민
시므온 르우벤
스불론


<행진 할때의 위치>

유다
르우벤

에브라임


언약궤
잇사갈
성막 물품
(게르손, 므라리)
시므온
성막가구
(고핫)
므낫세
아셀

스불론


베냐민

납달리

(3) 예식을 거행함
- 이스라엘이 시나이에 머무른 기간동안의 임무는 성막을 세우는 일이었다.
- 다음일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로 하여금 성막에서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하기 위해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
- 이 거룩한 일주일이 지난후 제사장들은 그들의 직분을 시작 하였다.

(4) 나답과 아비후의 범죄
-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되는 영광을 받았으나 “디른 불”로서 분향을 드렸다.
- 이에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는 불을 다시 내어 두 사람의 생명을 앗아 가셨다.

6. 백성들의 수
- 인구조사는 2년 2월 첫째날에 행해 졌다.
- 인구조사는 시나이에서 행해진 마지막 일 중의 하나였다.
- 계산된 20세 이상의 남자들의 총 숫자는 603,550 이었다.
- 이들의 숫자에 같은 숫자의 여자를 더하면 120만이 넘게 되며 20세 미만의 어린이를 더하면 약 192만 정도가 된다.

7. 시나이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민10:11-17;33:16-19)

(1) 경 로
- 이스라엘이 가데스로 온길은 확실치 않으나 통과한 두 지역의 이름은 기브롯 핫다아와 하세롯만이 주어져 있다.

(2) 도중에서의 4가지 사건
1.⇒ 백성들의 심한 불평(민10:33-;11:1-3)
2.⇒ 장로 70인을 세움(민11:4-30)
3.⇒ 만나에 대한 불평으로 다른 메추라기를 가져옴(민11:31-34)
4.⇒ 아론과 미리암이 불복종의 태도를 취한것(민12:1-5)

(3) 땅에 들어가기를 거절함
-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위해 12명의 정탐군을 먼저 보내심.
- 이들의 보고는 그곳 사람들이 강하고 도시가 성으로 둘러 쌓여있어 정복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함.
-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멸하겠다고 하셨으나 모세가 다시 중개함.

8. 37년 6개월동안의 방황(민15-19장, 33:19-36)
- 이 시점에서 이스라엘은 시나이 사막에서 약 37년 6개월 동안 무익한 방황을 함.
- 이기간에 대하여는 기록이 없음.
- 이기간 동안 의 단 한가지 기록된 사건은 레위 자손 고라와 두 르우벤 자손 다단과 아비람이 이끄는 250명의 반란이었다.

9. 가데스 바네아에서 요단까지(민20-21장;33:37-48, 신2:1-3:14)

(1) 미리암의 죽음(민20:1)
- 가데스에 도달할 무렵 미리암이 죽는다. 이는 아론이 죽은 해 와 같은 해이다.

(2) 바위에서 물이 나옴
- 하나님은 모세에게 바위를 때리라고 하지 않고 단지 “명하라”고만 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바위를 때렸고 이로인해 하나님은 노하셔서 모세도 약속된 땅에 들어 가지 못하리라고 말씀 하셨다.

(3) 에돔 땅 통과의 요청
- 가데스에 있는동안 모세는 에돔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그의 땅을 통과하게 해 달라고 요청 하였으나 그는 거절 하였다.

(4) 아론의 죽음
- 아론은 123세의 나이로 호르 산에서 죽었다.
-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아론과 그의아들인 엘리에셀을 데리고 산 꼭대기로 올라가 아론이 죽기 전에 그의 옷을 아들에게 입혔다.

(5) 에돔땅을 돌아감
- 이스라엘을 멀리 남쪽으로 에돔땅을 돌아 가기 시작 했다.
- 식량과 음료수에 대한 불평으로 하나님은 또다시 이스라엘을 “불뱀”으로 징계하셨다.

(6) 북쪽으로 돌아 시혼과 옥을 물리침
- 에돔족과 다투지 말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이스라엘은 그들 지역의 동쫑 가장자리를 지나 다시 북쪽으로 향하였다.
- 시혼왕은 야햐스에서 그의 군대를 모았는데 모세가 이를 만나 격퇴 시키었다.

10. 요단에 머무름(민22-27, 31-32장, 신 31,34장)

(1)발람과 모압 자손(민 22-25, 31장)
- 모세는 여리고 건너편 요단강 근처에 진을 치게 되었다. 이에 모압왕 발락발람 선지자를 불러 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내리게 하였다. 그러나 발람은 이스라엘을 저주하기는 커녕 오히려 축복을 하였다.
- 발락에게 해고 된 후에도 발람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와 장래의 이스라엘의 축복에관한 놀라운 예언을 하였다.

(2) 요청이 허락 됨
- 르우벤, 갓, 그리고 므낫세 지파들은 많은 가축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곳 땅을 자기 본토로 삼게해 달라고 하였고 모세는 이를 수락 하였다.

(3) 앞을 내다본 정책
1.⇒ 인구조사를 재 시작함.(20세 이상의 남자 숫자가 601,730명이었음)
2.⇒ 슬로브핫의 딸들이 상속권을 제기함.
3.⇒ 새지도자를 임명 하는것(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임명 하심)
4.⇒ 모세는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 필요한 최종 훈계를 전달함.

11. 신명기
- 모세는 임종이 가까와 오자 신명기의 큰 메시지를 구두로 전달하고 이를 책으로 기록 하였다. 그는 새 세대를 위하여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의 개요를 포함하여 애굽을 떠난 이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 하셨나 하는것을 적었다. 그리고 그는 가나안에 곧 들어 갔을때에 관계되는 조항, 그리고 그곳에서 겪게될 정착생활에 관한 규정을 하나님으로 부터 받아 적었다.


제8장 정 복

1. 가나안 땅

(1) 이스라엘의 정복임무
- 가나안은 중앙 통치가 없었고 많은 도시들은 각기 자기의 왕을 갖고 있었다.
- 이 땅을 정목 하는것은 각 도시를 차례로 멸망 시키는 것이었다.

(2) 진보된 가나안 문화
- 가나안은 물질문화가 진보 하였다. 가나안은 애굽, 북방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구브롤를 포함한 외국나라들과 광범위한 무역을 하였다.
- 다음에 이어진 시기에서 이스라엘은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3) 공격 계획
- 가나안 공격 전략은 그 땅의 대략 중간 지점을 동쪽으로 부터 공격 하여 남과 북으로 나눈 다음 각 부분을 따로따로 정복 하는것이었다.

2. 땅으로 들어감(수2:1-5:12)

(1) 여리고 정찰
- 여호수아는 두 사람의 정탐군을 보내어 가나안을 정탐케 하였다.
- 가나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크게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라합을 통해 알게 되었고 여호수아는 큰 용기를 얻게 되었다.

(2) 요단 강을 건넘
-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강으로 나아갔을때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3,00피트의 거리를 두고 쫓아 갔다.
- 제사장들의 발이 물에 닿자 놀랍게도 물이 갈라 졌다.

(3) 길갈에 진을 침
- 이스라엘백성들은 길갈에 진을 친 후 세가지 중요한 일을 겪게 되었다.
1.⇒ 모든 남자에 대한 할례 시행.
2.⇒ 유월절의 준수(수5:10)
3.⇒ 만나의 정지.

3. 중앙 팔레스틴의 정복(수5:13-9:27)

(1) 여리고의 멸망
① 여리고
- 구약의 여리고 : 사해에서 북쪽으로 11㎞, 요단에서 서쪽으로 8㎞떨어진 텔 에스 술탄으로 판명된다.
- 구릉 지대는 약 만 여평 가량 펼쳐져 있다.
② 정 복
- 하나님의 계획은 ‘용사’들로 하여금 언약궤를맨 7제사장들의 인도를 받아 엿새 동안 하루에 한 번씩 그리고 7일째 날은 7번 성 주위를 돌게 하는것이었다.
- 라합과 그의 가족을 제외 하고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여호수아는 이성을 건축 하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렸다.

(2) 아이에서의 실패와 승리
① 실 패
- 아이성의 실패 이후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범죄한 사람을 조사하라고 명하셨다.
- 곧 아간이 지목이 되었으며 아간은 물품을 취하여 장막에 감추었음을 고백 하였다.
② 승 리
- 죄악을 징벌한 이스라엘은 승리 할 수 있었다.
③ 위 치
- 아이 : 벧엘의 서 남동쪽 2.4㎞ 떨어진 에드-텔로 추정
- 에드-텔이 정확한 아이의 위치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④ 벧 엘
- 이 성을 직접 공격한 기록은 없다 그 이유는 아마도이 성이 함락 될때에 벧엘의 세력도 없어 진것 때문인것 같다.

(3) 세겜에서의 예식
- 세겜 근처 에발산에서 여호수아가 제단을 쌓고 제사장들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4) 평화적인 충성
- 기브온, 그비라, 브에롯, 기랏여아림은 이스라엘의 성공 소식이 내륙으로 퍼지게 되자 이들은 평화적인 항복을 강구 하게되었다.
- 3일후 이들의 계략이 알려 지게 되자 여호수아와 장로들은 조약을 맺고 기브온 사람들로 하여금 “온 회중 가운데 나무를 패고 물 긷는자”로 봉사 토록 하였다.

4. 남방과 북방의 정복(수10-12)

(1) 남방 동맹의 패배
- 예루살렘 왕은 헤브론, 야므론, 라기스, 에글론과 동맹을 형성 하기 시작 하였다.
- 여호수아는 이들을 쫓아 내어 서쪽으로 벧호론까지 추격하였고 이 도망하는 군대는 하나님의 우박을 만나 죽게 되었다.

(2) 낮이 연장됨
- 여호수아는 기브온 근처 언덕에 올라가 “탱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 할지어다”라고 부르 짖었고 하나님은 여호수아의 훌륭한 신앙에 응답하여 그렇게 해 주시었다.

(3) 남방 도시의 정복
- 첫번 공격은 막게다 였고 다음은 립나였다.
- 여호수아는 계속해서 남쪽으로 라기스, 에글론, 헤브론의 세 동맹 도시로 내려 갔다.
- 여호수아의 군대는 가데스 바네아까지 도달 하였다.

(4) 북방 동맹의 멸망
- 하솔은 대도시로서 북방에서 주도적인 왕국으로 동맹을 형성 하였다.
-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대로 이 적을 접전 하기위해 전쟁에 지친 그의 군대를 이끌어 왔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작은 군대가 승리 하도록 이끄셨다.

(5) 정복의 줄거리
- 여호수아는 세일로 올라가는 할락산 근처의 남쪽끝에서부터 헤르몬 산아래 레바논 공짜기의 북쪽 끝까지 차지 하였다.
- 여호수아의 능력이 닿지 않은 주요 지역이 있었는데 그것은 지중해 해변이었다.

5. 땅의 분할(수13-22장)

(1) 요단 동편의 분할
- 남쪽 지역 : 르우벤 지파
- 중간 지역 : 갓 지파
- 북쪽 지역 : 므낫세 반 지파

(2) 유다, 에브라임, 므낫세 지파의 할당
- 유다 : 처음으로 제비로 땅을 할당 받음. 갈렙에게 이미 허락한 땅도 포함됨
- 에브라임 : 두번째로 제비뽑아 땅을 할당 받음
- 므낫세 반 : 세번째로 제비뽑아 땅을 할당 받음

(3) 분할이 중단됨
- 이유 → 가능한 한 빨리 성막을 세우고자 함.
- 나머지 지파는 땅 분배에 관심이 없어짐.
- 실로에 도착 하자 여호수아는 다시 분할방법에 관한 명령을 내림.

(4) 나머지 7 지파의 분할
- 베냐민 : 남쪽의 넓은 유다. 북쪽으로 요셉 지파 사이의 좁은땅을 제비뽑아 땅을 할당 받음
- 시므온 : 유다의 넓은 땅에 있는 도시들만 배당됨.
- 다음으로 스불론이 할당 받고 뒤이어 잇사갈이 할당받음.
- 다섯번째로 에셀 지파가 할당 받고 마지막으로 단 지파가 할당을 받았다.

(5) 간신히 싸움을 면함(수22:1-34)

6. 제 도

(1) 정부 제도
-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직접 자기에게 복종 하기를 원했다.
- 세목관할에는 장로들로 구성 하였다.

(2) 중앙 성소
- 성막은 백성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상징 하였다.
- 성막은 번제의 장소가 되었다.

(3) 제사장과 레위인
- 레위인아론늬 자손은 제사장으로 선언되었고 이 가족의 장자는 대제사장으로 지명되었다.
① 레위인과 도시
- 제사장과 레위인이 살던 특별한 도시는 각 지파당 평균 4도시로 똑같이 나누어져 전부 48도시가 되었다. 이중 6개는 『도피성』으로 지정 되었다.
② 교 육
-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침. → 레위 지파나 제사장들이 이일을 맡음.
③ 우림과 둠밈
- 이것이 ‘가’,‘부’의 형태로 제한된 소통방법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방법을 제공 하였다.

(5) 세 가지 큰 절기

유월절과 무교절
- 이절기는 연중 첫번째이며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칠칠절
- 아무노동도 하지 않았고 새 곡식으로 만든 두개의 떡을 포함해 많은 예물을 바쳤다.
성막절(초막절)
- 이 기간동안 백성들은 출ㅇ내굽하여 광야에서 살았던 방식을 기념하여 초막이나 장막에 거하였다.

(6) 이 외의 종교 행사
- 안식일, 월삭, 나팔절, 속죄의날, 안식년, 희년

(7) 선지자
① 설교가
- 그들은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가르치는 일에 더 충실 하였다.
② 계시의 수령자
- 하나님의 계시의 수령자였다.
③ 봉사자로 부름 받은자
- 선지자는 가계의 계승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인해 제사장과 레위인과 구분 되었다,
④ 숫 자
- 모세 시대때 부터 이스라엘은 많은 선지자를 갖고 있었으며 초기 왕국시대와 특히 분닫된 왕국시대에는 더욱 많은 선지자가 있었다.


제9장 사사 시대

1. 배경 문제

(1) 사사기
- 역사로서의 이 기록은 특별한 관점에서 쓰여졌다
- 이 책은 그들이 실패한 여러가지 모양을 기술하고 있다.

(2) 압 박
① 주변 적들에게 당함
- 사사기의 대부분의 기록들과, 이에 관련된 대부분의 시기는 여섯 차례의 계속적인 타민족 압박에 관한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그 시대의 강대국에 의한것이 아님을 주시해아한다.
② 가장 심각한 존재, 블레셋
- 이들은 아브라함시대에 소수가 내륙에 있었으나 사사시대에는 아주 거대한 숫자가 되었다.
- 블레셋은 이후 5개의 도시를 세웠다.

(3) 사사들

       이 름 / 압박 민족 / 참고 구절 /
1. 웃 니 엘 / 메소포타미아 / 3:7-11
2. 에 훗 / 모압 / 3:12-30
3. 삼 갈 / 3:31
4. 드보라와 바락 / 가나안 / 4-5장
5. 기 드 온 / 미디안 / 6-8장
6. 돌 라 / / 10:1-2
7. 야 일 / / 10:3-5
8. 입 다 / 암몬 / 10:6-12:7
9. 입 산 / /12:8-10
10. 엘 론 / / 12:11-12
11. 압 돈 / / 12:13-15
12. 삼 손 / 블레셋 / 13-16장


(4) 연대기적 문제
- 이 책에 나타난 숫자는 삼손의 시기를 포함 하여 총 410년이 된다.
- 410년으로 나타나는 사사기의 기간의 총합은 75년이나 더 긴 기간을 포함 하고 있다.

(5) 가나안의 종교
- 가나안 사람들의 중요한 신은 바알이었다.
- 아세라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바알의 반려자로 나타난다.
- 이스다롯 역시 구약성경에서 바알과 자주 연관되어 나타난다.

2. 완전한 땅 정복의 실패(삿1:1-3:7)
- 자신에게 할당된 전 지역을 점령하는데 어느 지파도 성공하지 못했다.
- 땅을 분배 할때 불평을 했던 에브라임도 서편의 게셀땅을 취하지 못하였다.
- 스불론은 기드론과 나할롤을 취하지 못하였고 납달리는 가나안 주민을 벧세메스 또는 벧아낫으로부터 쫓아내지 못하였다.

3. 메소포타미아 압박 시대(삿3:8-11;17-21장)

(1) 압박과 구원
구산 리사다임의 정체
- 이 침입은 실제로 주변 남쪽 나라에서 부터 온 것으로 생각해 왔다.
- Garstang은 의견을 달리 하여 헷 족속 왕으로 보고 있다.
② 정복과 구원
- 사사기는 이 정복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③ 연 대
- 이 첫번째 압박은 주전14세기의 2?4분기로 추정된다.

(2) 두 개의 대표적인 이야기
단 지파의 이동
- 이 이야기는 이 당시의 심각한 종교적 변질을 나타내고 있다.
- 단 지파는 그들의 할당된 영역에서 이동하고 사적인 신당을 세우며 남의 영역을 탈취함 으로써 잘못을 범하였다.
기브아의 분노
- 이 사건은 대부분 바알 제단의 영향으로 인해 생긴 도덕적 타락의 내용을 나타낸다.

4. 모압의 압박 시대(삿3:12-31)

(1) 압박과 구원
- 모압은 부분적으로 암몬과 아말렉의 도움을 얻어 여리고를 차지 하였다.
- 에글론이 그의 왕이었으며 여리고를 중심으로 18년간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았다.
- 하나님은 에훗을 통해 구원 하셨다.

(2) 80년의 평화 시대
- 모든 국가들은 애굽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았을것이고 그로인해 국부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3) 삼 갈
- “아낫(Anath)의 아들”이라 불리움
- 그는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어 이김
- 그는 소를 모는 막대기 하나로 600명이나 되는 블레셋 사람을 죽임.

5. 가나안의 압박 시대(삿4-5장)

(1) 압박과 구원
① 압 박
- 군대장관 시세라는 이스라엘을 송두리째 넣고 20년간을 지배 하였다.
② 드보라와 바락
- 드보라는 여선지자로 불리웠다.
- 드보라는 여자인 이유로 바락을 앞세워전투를 하게 하였다.
③ 구 원
- 바락은 그의 군대를 남쪽 다볼 산에 집결 시키고 기손 강변에 있는 므깃도 서쪽에서 시세라와 전투를 벌였다.

(2) 메르넵타와 라암세스 3세의 침공
- 메르넵타의 주요 활동은 지중해 근처였는데, 그가 이스라엘백성을 패배 시키기는 했지만 그들땅의 주요 부분을 점령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라암세스3세 역시 블레셋 지역에 한정된 전투를 보였다.

6. 미디안의 압박 시대(삿6:1-10:5, 룻1-4장)

(1) 압박과 구원
① 압 박
- 4번째 압제는 미디안 사람들에 의해 주어 졌다.
② 경 고
- 백성들이 부르짖을때 하나님은 무명의 선지자를 보내어 그들의 죄악을 경고 하셨다.
③ 구원자 기드온
-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내린 첫번째 명령은 우상을 파괴하는것이었다.
-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과 싸울 군대를 모집 하였고 32,00명중 300명만을 추려 내게 되었다.
- 이제 기드온은 대항할 준비를 하셨다.
④ 구 원
- 기드온의 병사들은 밤중에 모두가 동시에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림으로 횃불이 드러 나게 했다. 적들은 놀람과 공포속에서 수 많은 무리가 그들에게 몰려온다고 생각하고는 도망 치기 시작 하였다.
- 이 나라는 기드온이 살아 있는 40년간 평온 하였다.

(2) 패역한 왕 아비멜렉
- 기드온의 첩의아들.
- 그는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서 70형제중 1사람을 빼놓고 모두 살해 하였다.
- 그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무리를 쫓아 데베스로 갔을때 한 여인이 던진 멧돌에 맞아 죽었다.

(3) 돌라와 야일
- 돌라 : 에브라임 산지 샤밀에서 23년간 다스림
- 야일 : 요단강 건너 알려지지 않은 성읍에서 22년간 다스림

(4) 룻 이야기
- 룻의 이야기는 12세기 후반부에 일어난 것으로 기드온의 사사기간 중에 일어난 일이다.

7. 암몬의 압박 시대(삿10:6-12:15)

(1) 압박과 구원
- 암몬 족속의 압제는 주로 요단강 동편에서 행해졌다.
- 입다는 길르앗 북쪽의 돕(Top)땅에서 방랑무리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 입다는 르우벤에게 할당되었던 지역에서 민닛과 아로엘 사이의 20개 성읍을 점령 하였다.

(2) 입다의 맹세
- 입다의 맹세로 인해 그의 딸이 하나님께 드려지게되었다.

(3) 에브라임 사람들의 불평
- 암몬족에 대한 입다의 승리후 에브라임 사람들은 도움요청을 받지 않은 사실에 대해 불평하였는데 이로 인해 42,000 명이 전투장 또는 요단강 여울목에서 살해 되었다.

(4) 입산, 엘론, 압돈
- 입산 : 7년간 베들레헴을 다스림
- 엘론 : 스불론의 아얄론에서 10년간 다스림
- 압돈 : 에브라임에서 8년을 다스림

8. 블레셋의 압박 시대(삿13-16장)

(1) 압 박
- 마지막 큰 압박은 블레셋사람으로 부터 주어 졌다.
- 가나안 백성도 이스라엘백성과 똑같이 그들의 정복의 대상이었다.
- 블레셋은 40년간 이스라엘을 지배 하였다.

(2) 삼 손
- 단 지파 사람 마노아의 아들
- 하나님의 사자를 통해 출생이 예고됨
- 그는 나실인으로서 소라에서 태어남

(3) 삼손의 힘의 업적
① 삼손의 첫번째 힘의 과시는 딤나의 블레셋 여인과의 결혼에 연유되어 일어났다.
② 두번째 과시는 1년도 안되어 밀 추수 기간에 일어 났다(삿15:1-19)
이런일 이후 삼손은 보다 평화로운 생할 방식에 만족하여 20년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봉직하였다.
20년이 끝나갈 무렵 삼손은 가사(Gaza)에서 기생과 더불어 죄를 범하게 되었다.

(4) 삼손의 평가
① 특 징
- 칭찬할만한일 : 하나님은 삼손의 초자연적인 섭리를 두번이나 들어 주셨다.
- 비난받을만한일 : 여성에 대한 욕망.
② 하나님의 과제
- 하나님은 삼손으로 하여금 블레셋과 싸우도록 하셨다.
③ 영 향
- 삼손이 죄에 빠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반적인 행위는 이스라엘에게 이로운 것이었다.
- 삼손이 욕망의 포로가 되어 잘못된길로 가게된것은 크게비판 받아야 할것이나 이 점에서 다른 사람에게 큰 교훈을 주고있음을 간과 해서는 안된다.

9. 사무엘(삼상1-8장)

(1) 어린 시절
- 사무엘은 엘카나와 한나의 아들이었다.
- 엘리의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사악하여서 가나안 사람 성전에서 행해지던 방탕과 비슷하게 의식을 악용하고 성전을 더럽혔다.
- 하나님은 이러한 아들의 방탕을 허락한 엘리를 꾸짖으셨다.

(2) 비극적인 아벡 전투
- 징벌은 블레셋과의 비참한 전투를 통해 오게 되었다.
- 싸움터앞에 여호와의 궤를 가져다 놓으면 승리하리라고 잘못 생각한 백성들은 홉니와 비느하스가 이에 동의 하자 실로에 있던 궤를 23마일이나 떨어진 진중으로 가져왔는데 이로인해 홉니와 비느하스를 포함하여 30,00명의 이스라엘사람들이 거꾸러 졌고 궤를 빼앗기게 되었다.

(3) 인간 사무엘
① 착실한 준비
- 어렸을때 훌륭한 어머니의 영향과 박식한 엘리 제사장의 세심한 지도가 있었다.
- 성막의 부패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무엘은 백성들의 열렬한 종교적 필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② 일의 형태
- 성경에는 사무엘이 어떻게 이 일을 성취 했는가에 대하여는 말하지않고 그 결과만을 기록 하고 있다.
③ 훈련 학교
- 사무엘은 이러한 노력에 결부시켜 새로운 착상, 곧 젊은 선지자를 위한 훈련학교를 개척한 것으로 보인다.

(4) 미쓰바 전투의 승리
-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재생되어 여호와께서 그들을 승리하도록 축복 하신 것이었다.
- 사무엘이 하나님께 도운을 요청하자 하나님이 들어 주신 것이다.
- 이스라엘은 전투에서 승리할수 있었으며 40년의 압제는 끝이 났다.

(5) 언약궤의 복귀
- 하나님께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일련의 재앙을 일으켜 언약궤를 빼앗긴지 7개월만에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셨다.
- 그러나 그 땅에 돌아온 궤는 아직 놉에 있는 성막으로 보내지지 않았다.

(6) 백성들이 왕을 요청함
- 미쓰바 승리 이후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다시금 효과적으로 각기 자기일을 수행하게 되자 사무엘의 활동은 상당히 즐어 들게 되었다.
- 그들은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조직된 군대를 가진 왕을 원하게 되었다.
- 이는 하나님의 신정정치를 원하지않는 모습이었다.


제10장 사울

1. 기름부은 사울(삼상9-12장)

(1) 라마에서 기름 부음을 받다.
① 사무엘로 부터 기름 부음을 받다.
- 하나님께서는 베냐민 지파의 기스(Kish)의 아들 사울을 지명하셨다.
- 사울은 키가크고 놀라운 용모를 갖춘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중에 아무도 그보다 더 준수한 사람이 없다고 햇다.
② 확정의 징표
- 사울이 집으로 떠나기전 사무엘은 그에게 여행에 겪게될 세 가지 징표에 대해 말해 주었다.
- 이러한 사건들은 사무엘이 예언한 대로 일어 났는데 이는 의심할 바가 없이 사울은 마음 속으로 사무엘의 놀라운 발언을 확인 하게 되었다.

(2) 미쓰바에서 왕으로 뽑힘
- 사무엘은 미쓰바에 각 지파들의 대표를 불러 모았다.
- 그는 여기서 임의 대로 임명을 한것이 아니라 사전 선택이 없이 묻는 형식으로 진행 시켰다.

(3) 왕으로 세워짐
① 기다림의 기간
- 사울은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 질수 있도록 하기위해 자신을 증명할 기회가 필요 하였다.
② 야베스 길르앗에서의 뛰어남
- 암몬 사람들이 야베스 길르앗을 공격하여 왔고 사울이 왕으로 추대된 사실을 모르는 이 성의 주민들은 각 지파에 도움을 요청 하여 왔다.
- 사울은 소의 멍에를 벗겨 이를 쪼개어 각 지파에게 보냈다. 이를 전하는 사자들은 사울과 함께 야베스 길르앗의 요청에 응답 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으 소가 이런식으로 처해질 것이라 선언 했다.


사무엘의 권면사
- 즉위식에 이어 사무엘은 백성들에게 이별의 권면사를 전달하였다.
- 사무엘은 과거 그들의 과오를 상고 시키면서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할 것을 촉구 하였다.

2. 사울의 통치

(1) 단순과 검약
- 사울은 백성들이 정교한 국가를 세우는 일에 관심이 없음을 깨달았다.
- 백성들이 엄격한 규율을 부과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며 세금에 대한 사무엘의 경고가 받아들여 지기에는 시간과 교육이 요청 되어 졌을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단순하고 검약하게 유지 되었다.
- 사울은 수도를 그의 고향인 기브아로 정하였다.

(2) 기본적인 변화가 거의 없음
- 사울은 백성들의 생활양상을 눈에띄게 변화 시키는 정책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 백성들도 사울의 이러한 통치 방법을 좋아 했다.
- 백성들은 그들을 대신 싸워주는 상비군이 있다는것에 대해안정감을 얻을 수 있었다.

3. 사울의 배척(삼상13-15장)

(1) 첫번째 배척
- 블레셋 사람들은 요나단이 그 땅에 나와있는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한것에 대한 보복으로 공격준비를 하였다.
- 이 전쟁에서 7일간 제사장을 기다리던 사울은 제사장직을 대신하는 죄를 범하게 된다.
- 그러나 하나님은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통하여 사울이 승리 하도록 하셨다.
- 그러나 사울은 어리석게도 군대에 명을 내려 하룻동안 아무 음식을 못먹게 하였다.

(2) 두번째 배척
- 약20년후 사울이 아말렉과 싸울때 일어났다.
- 사무엘은 사울에게 모든 사람과 가축을 죽이라고 하였으나 사울은 아각왕과 가장좋은 양과 암소 몇마리를 남겨 두었다.
- 사무엘은 준엄하게 사울을 꾸짖었고 사무엘 자신의 손으로 아각왕을 죽였다.

4. 사울과 다윗(삼상16-20장)

(1)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심
-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게 되자 하나님은 곧 새 사람을 지명하시게 된다.
- 다윗은 그의 아버지와 형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스라엘의 둘째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된다.

(2) 사울의 심리적인 불안
-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자 심한 우울감이 그에게 닥쳐 왔는데 이는 주로 하나님의 배척으로부터 야기 된것이었다.
- 사울은 때때로 극히 노하여 미칠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 그의 빈번한 비정상적 행동이 알려지게 되자 백성들의 신임을 잃게 되었다.

(3) 다윗의 부상(浮上)
- 1 단계 : 사울의 궁중음악인이 됨
- 2 단계 :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굴복 시킴

(4) 사울의 질투
다윗을 죽이려 시도 하다.
- 다윗은 왕앞에서 하프를 켜다 두번이나 왕의 공격을 맞게 된다.
- 사울은 다윗을 죽이고자 결혼 패물로서 블레셋 사람 100명의 양피를 요구 하였으나 다윗은 200명의 양피를 가져왔다.
- 사울은 그의 신하들에게 다윗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다윗이 왕궁에서 도피하다.
- 다윗은 요나단에게 조언을 구하여 왕이 계속 그를 죽이려는 의도가 있는지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 결국 두사람은 다윗이 왕궁을 떠나야 한다는것에 동의를 하게 된다.

5. 사울의 말년(삼상22:6-19;28:1-25;31:1-13)

(1) 계속된 타락 행위
-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는 이유는 다윗이 진정 하나님이 정한 후계자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사울은 아무죄도 없는 제사장 85인을 죽였다. 그리고 여자와 아이들, 모든 동물들을 포함하여 놉성읍 자체를 멸하게 하셨다.

(2) 블레셋과의 마지막 투쟁
- 사울은 길보아산 에서 블레셋과 마지막 전투를 치르게 된다.
- 전투가 시작되자 비극적인 패배에 대한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다(삼상31:1-13)

(2) 사울의 평가
- 그는 시작은 좋았으나 부끄러운 종말을 고하였다.
- 사울은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 대한 본보기였다.
- 사울의 집권은 거의 끊임없는 좌절속에 무너 지고 말았다.

6. 망명자 다윗(삼상21-27,29-30장, 삼하1장)

(1)다윗의 상황
- 그는 왕에게 쫓김을 받는 추방객이었다.
- 다윗은 사울로 부터 자기자신을 지키는일과 장차 왕으로서의 그와 백성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
하지 않을 수 없었다.

(2) 다윗의 활동 경로
- 기브아를 떠남 → 놉을 찾아감 → 부하를 데리고 가드로 발길을 돌림
→ 본국으로 돌아와 아둘람 근처의 동굴에 거주함 → 군대를 모으고 부모를 모시고 동쪽의 모압으로 이주함 → 유다땅 “헤렛 수풀”에 거함 → 남쪽으로 내려가 헤브론 밑의 십(Ziph)지대와 마온(Maon)지대에 거함 → 동쪽으로 이주하여 엔 게디(En-gedi)에 거함 → 다시 마온 지대로
이주함.

(3) 시글락에서의 다윗
① 시글락으로 가다
- 다윗은 두번째로 사울의 모습을 살려준이후 블레셋땅으로 갔다.
-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에게 나아갔고 아기스는 다윗이 망명했다는사실과 다윗의 병사600명을 유용하게 쓸수있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다윗을 받아들였다.
② 시글락에서의 불안정한 활동
- 다윗은 그술사람, 기르스 사람, 아말렉 사람을 공격 하였다.
- 동시에 한편으로는 전리품을 남방 유다 성읍에 나누어 주었다.
이스라엘과의 투쟁을 모면하다
- 다윗은 사울과 대항하는 블레셋의 마지막 전투에 따라나서겠다고 하였으나 블레셋 사람이 이릉 반대하여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려 보내 졌을때 크게 안심을 하였다.
④ 아말렉 접전
- 아말렉 사람들이 초기 전투에 대한 보복으로 마을에 습격하여 많은 물품 이외에도 다윗의 부인과 군인들의 부인을 끌고 갔다.
- 그러나 다윗은 다시 그 진영을 습격 하여 부인들과 물품을 모두 찾아 왔다.
사울의 사망 소식
- 길보아 산에서의 이스라엘의 처참한 패배와 사울과 그의아들의 사망소식은 그곳에서 도망쳐온 사람에 의해 다윗에게 전해졌다.


제11장 다윗 왕

1. 헤브론에서의 다윗(삼하1:1-5:5)
- 다윗은 7년 반동안 유다를 다스리고 후에 33년동안 전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후에 33년동안 전 이스라엘을 다스려 전체 재임기간은 40년 반이 된다(B.C 1010-970, 삼하 5:5)

(1)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다
- 그는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승리자였고 그의 재능과 사랑이 그 성읍에 널리 퍼져 있었다.
- 다윗이 헤브론에 도착 했을때 유다 사람들은 재빨리 집합하여 그를 “유다족속의 왕”으로 기름 부었다.

(2)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 다윗을 잘 알지 못하는 다른 지파들은 사울의 남은 아들 이스보셋을 다음 왕으로 우선 생각하게 된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이스라엘이 분단된것에 대해 블레셋은 기뻐하였고 이제 곧 전 이스라엘을 차지할 수 있을것이라 생각했다.

(3) 다윗과 이스보셋의 투쟁
① 초기의 갈등
- 이것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6마일 되는 베냐민의 기브온에서 사소한 문제로 인해 발단되었다.
- 전투에서 결국은 다윗이 승리를 거두었다.
② 다윗의 세력이 증가 하다
- 날이 감에 따라 다윗의 통치가 계속 강력 해진 반면 이스보셋은 점점 쇠퇴 하게되었다.
- 아브넬은 다윗에게 사자를 보내어 자신의 안전과 높은 지위를 조건으로 모든 이스라엘을 다윗의 손에 넘겨 주었다.
- 아브넬은 여러 지파의 장로들에게 다윗에게 충성할 것을 촉구 하였으나 결국 요압에게 살해 되고 말았다.
이스보셋이 죽임을 당하다
- 아브넬의 통솔이 없어 지자 그 밑에 있던 이스보셋의 두 장군이 다윗에게 환심을 얻고자 이스보셋을 살해하고 그 머리를 다윗에게 가져 왔으나 다윗은 즉시 이 두 장군을 처형 하였다.

(4)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다.
- 다윗이 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정식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을때는 헤브론에서의 7년 6개월 통치가 경과한 후였다.
- 지파들 사이의 협정이 이루어 지고 조건이 수락되어 다윗은 자기 생애에서 세번째로 기름 부음을 받게 되었다.

2. 다윗이 이스라엘 왕국을 세우다(삼하5:6-8:18;10:1-19)

(1) 블레셋과의 투쟁(삼하 5:17-25)
① 첫번 전투
- 블레셋은 예루살렘 바로 남쪽인 르바임(Rephaim)골짜기에서 공격을 가했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승리를 보장 하시자 다윗은 숫자가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블레셋을 패배 시켰다.
② 두번째 전투
- 이들은 큰 군대로 다시 모여 비슷한 수법으로 이 골짜기를 다시 공격하였다.
- 그러나 하나님의 반격 계획으로 이스라엘은 또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2) 새 수도
다윗은 여부스 사람이 차지하고 있는 예루살렘을 수도롤 택하였다.
→ 유다와 이스라엘의 경계
→ 물공급지 : 기혼(Gihon)
→ 쉽게 방어 할수 있는 위치였음
종교적인 수도 역할을 겸하다
- 기럇여아림에 있던 궤를 이 성읍으로 가져오게 함
- 수행원 웃사(Uzzah)가 기둥이 아닌 수레로 가져오다 궤가 마차에서 떨어 지려는것을 막으려다 죽음을 당함
- 3개월후 다시 궤를 하나님이 가르쳐준대로 예루살렘에 준비한 장막으로 옮김

(3) 다윗의 정복
① 지파의 통합
- 성경에는 다윗이 이스라엘지파들을 하나의 중앙정부로 통합한 내용에 관하여는 거의 기록되어 있지 않다.
- 지파의 통합은 원래 할당된 땅뿐만 아니라 전혀 점령 하지 않은 땅을 획득하는데에도 연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다윗의 군대
다윗 망명때의 군사 600명
이 중 약간의 보충과 추가가 있었을 것으로 보임
가드사람, ‘용사’로 언급된 깁보림 과 같은 종류의 사람들 회전식의상비군 한달에 한 번씩 순번을 바꾸어 24,000명의 상비군을 유지케 함. 용병 외국 용병으로 그렛사람과 블렛 사람으로구성

외국 정복
- 본국이 견고하게 통합되고 효율적인 군대를 소유하게 되자 다윗은 필요할때에 외국과의 전쟁에 참가 할수 있었다.
a. 모압과 에돔
- 사해 동쪽에 있는 모압과의 투쟁 에서 승리함
- 사해 남쪽에 있는 에돔과의 투쟁 에서 승리함
b. 다메섹, 소바, 하맛
- 소바 : 하닷에셀로 부터 병거 1,000개 / 마병700 / 보병20,000 을 사로 잡음
다윗은 병거 100승의 말만 남기고 모두 죽였다.
- 다메섹 :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를 도우러 오자 이들도 격파하고 공물을 요구 하여 받았다.
- 하맛 : 하맛은 자진하여 공물을 보내 왔다.
c. 암몬과 소바
- 다윗은 암몬의 새왕 하눈(Hanun)에게 친절을 표시 했는데 이것이 오해가 되어 다윗의 사자들이 모욕을 당하였다.
- 다윗왕은 암몬의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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