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학교에 합격하다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공부도 해야 하고, 제기도 만들어 팔아야 하고, 블록도 찍어야 했다. 게다가 좀 우려가 되는 일도 생겼다. 겉으로 드러내놓고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속으로 성원을 해주시던 파출소장님이 바뀐 것이다. 이것은 정말 큰 근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만약에 새로 부임하는 파출소장이 무허가 집을 문제 삼을 경우 만사가 수포로 돌아가고 마는 것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우리 속담처럼, 겪어야 할 일이라면 이렇게 마음을 졸이고 있느니 일찌감치 치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부딪쳐 보기로 하고, 파출소를 찾아갔다.
“저는 이재식이란 고학생입니다.”
“으응? 이재식? 고학생?”
파출소장은 뜻밖의 방문에 한참이나 나를 의아스레 쳐다 보았다.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순간적인 느낌이었으나, 나는 왠지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파출소장의 인상은 훨씬 부드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심이 되었던 것은 내 말을 끝까지 들어보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 간의 자초지종을 상세히 말하였다. 그리하여 이제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등록금이 가장 큰 걱정이라는 말과, 힘들게 찍어놓은 블록이 있으니 집만 짓는다면 세를 놓거나 팔아서 등록금이 마련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과, 그래서 비록 무허가 집이지만 어려운 고학생 한 명 도와주는 셈 치고 선처해 줄 수 없느냐 하는 등의 말을 했을 것이다. 파출소장은 내 말을 끝까지 다 듣고 나서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이윽고 입을 열었다.
“학생,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책임질 수 있어?”
그것은 반승낙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나는 속으로 벌써 ‘하나님, 감사드립니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던 하나님이다. 과연 하나님은 내가 실망할 때마다 새로운 희망을 주셨고, 시련과 역경에 처할 때마다 위로의 손길을 베풀어 주셨다. 그때만 해도 대학생이 퍽 드물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이 기특하게 보아 후한 점수를 주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모든 일이 하나님의크신 은혜로만 생각 되었다.
나는 용기가 용솟음치고 모든 일에 의욕이 솟아 올랐다. 단 1초도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고, 오직 공부와 집 짓는 일과 제기 만드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것이 내 계획과 구상대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공사 진척이 느려져 이제 집은 막 상량을 올리고 있었는데 계절은 벌써 해동이 되고, 때는 입학시험 날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므로, 모든 준비가 미진하였지만 어쩔 수 없이 대학에 입학원서를 냈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원자력공학과. 나는 입학원서를 낸 이상 최선을 다했다. 내가 모진 결심으로 혹한 속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은 바로 대학에 진학하여 공부를 계속하고자 하는 데 있었다. 그 대학 입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니 한편으로 감개가 무량이였다. 그리고 노력한 보람이 있어 나는 대학에 합격하였다. 다시 대학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기쁨도 잠깐이었다. 도무지 등록금을 마련할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반쯤 올라간 집을 멍하니 바라보면서 참으로 세상 사는 일이 쉬운게 아님을 절감하였다. 산 하나를 겨우 넘고 나면, 또 다시 더 험하고 가파른 산이 나를 항상 가로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