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물쇠 /박찬희
'안거가 일이라고 단단히 가부좌를 틀어
오가는 바람도 굳어 서 있다'
'하필이면 벼랑 끝에 걸어놓은 맹약
효험이 낭설이기 십상이기도 하고
굳이 풀어 들여다볼 상당한 이유가 없어도
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잡다한 호기심만 늘어
없는 설명서를 찾아 읽는다'
‘맹약의 해피엔딩은 녹슬고 녹아 서로에게 귀속되는 것’
'애지중지 닫아걸 별 이유는 없어도
그냥 습관인 까닭에
벽을 치고 들어앉아 음과 양을 저 혼자 맺고 풀면서
맞지도 않은 열쇠를 깎는 일
어쨌든 그것도 수고라면 수고지'
'결속과 해지는 엎어 치나 매치나 한가지여서
틀림없는 쌍방의 일
자물쇠든 열쇠든 서로에게 맞출 수밖에
옳으니 그르니 해도 꼭 들어맞는 짝은 있게 마련인데
내가 너를 열 수 있을까'
'시도 때도 없는 옥쇄 앞에서
밤낮 우물쭈물, 나만 속절없이 녹슬어간다'
출처 : 퍼블릭뉴스(https://www.psnews.co.kr)/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https://www.p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42747
‘제2회 중부광역신문 신춘문예 공모’···박찬희 시인 ‘자물쇠’ 당선 영예 - 퍼블릭뉴스
\'안거가 일이라고 단단히 가부좌를 틀어 오가는 바람도 굳어 서 있다\'\'하필이면 벼랑 끝에 걸어놓은 맹약효험이 낭설이기 십상이기도 하고 굳이 풀어 들여다볼 상당한 이유가 없어도그저 보는 것만으로는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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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 천불천탑/ 김준경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그 누구도 떠밀지 않았다
저마다 한손에 정을, 다른 손에 망치를 들고 찾아왔다
운주계곡 조용한 골짜기를 따라 돌을 쪼는 소리가 이어진다
하나의 고통을 담아 한번의 망치질, 하나의 괴로움을 담아 쌓은 한층
사바세계로부터 깎여나간 마음 부여잡고 눈앞의 돌을 깎아 나간다
참아낼 수 없는 아픔을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눈이 나오고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귀가 나오고
벗어날 수 없는 원망을 돌위에 올려 깎아서 내버리면 입이 나온다
고해의 파도 속에서 멈추지 않고 들리는 돌 쪼는 소리
고통이 모여 돌을 가루로 만들고 괴로움이 쌓여 탑을 이룰 무렵,
돌속에서 웅크려 있던 부처님이 들꽃같이 환하게 피어난다
풀내음을 품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 앞의 민초를 맞이한다
투박하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렇기에 누구보다 가까운 그 모습
그 거친 어깨 끌어안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조용히 울고 싶다
고해의 파도에 깎여나간 마음 쥐어짜내 입술 깨물고 울고 싶다
마음의 부스러기가 섞여 나온 눈물을 부처님께서 가사자락으로 닦아주면
지나간 괴로움을 땅에 내려놓고 다가올 염원을 부처님께 올린다
염원이 모여 천개의 석탑이 되었고, 천분의 석불이 되었다
천가지 괴로움과 천가지 염원으로 세워진 민초들의 작은 불국토
같은 모양없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저마다의 위치에 서서 정토세계를 꿈꾼다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409448
[2024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시 ] 김준경 ‘운주사 천불천탑’ - 불교신문
운주사 천불천탑김준경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고 그 누구도 떠밀지 않았다저마다 한손에 정을, 다른 손에 망치를 들고 찾아왔다운주계곡 조용한 골짜기를 따라 돌을 쪼는 소리가 이어진다 하나의 고통을 담아 한번의 망치질, 하나의 괴로움을 담아 쌓은 한층사바세계로부터 깎여나간 마음 부여잡고 눈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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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다 / 맹재범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
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
뒤꿈치와 바닥 사이에도 있는
나는 투명인간이다
앞치마와 고무장갑이 허공에서 움직이고
접시가 차곡차곡 쌓인다
물기를 털고 앞치마를 벗어두면 나는 사라진다
앞치마만 의자에 기대앉는다
나는 팔도 다리도 사라지고 빗방울처럼 볼록해진다
빗방울이 교회 첨탑을 지나는 순간 십자가가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쪼그라든다
오늘 당신의 잔고가 두둑해 보인다면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는 것, 착각이다
착각이 나를 지운다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혀 거리의 색을 바꿔놓을 때까지 사람들은 비가 오는지도 모른다
사무실 창문 밖 거리는 푸르고 흰 얼굴의 사람들은 푸르름과 잘 어울린다 불을 끄면 사라질지도 모르면서
오늘 유난히 창밖이 투명한 것 같아
커다란 고층빌딩 유리창에 맺혀 있다가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있었다
나는 도마였고 지게차였고 택배상자였다
투명해서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 없다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밖으로 내몰린 투명인간들이
어디에나 있다 사람들은 분주히 주변을 지나친다
나를 통과하다 넘어져 뒤를 돌아보곤 다시 일어서는 사람도 있었다
너무 투명해서 당신의 눈빛을 되돌려줄 수 없지만
덜컥 적시며 쏟아지는 것이 있다
간판과 자동차와 책상과 당신의 어깨까지
모든 것을 적실 만큼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
출처: 경향신문
[2024 경향 신춘문예 당선작 - 시 부문 맹재범] 여기 있다
접시와 접시 사이에 있다식사와 잔반 사이에 있다뒤꿈치와 바닥 사이에도 있는 나는 투명인간이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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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편 / 한백양
집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다
오랫동안 빌라를 떠나지 못한
가족들이 한 번씩 크게 싸우곤 한다
너는 왜 그래, 나는 그래, 오가는
말의 흔들림이 현관에 쌓일 때마다
나는 불면증을 지형적인 질병으로
그 가족들을 왼손처럼 서투른 것으로
그러나 아직 희망은 있다
집의 왼편에 있는 모든 빌라가
늙은 새처럼 지지배배 떠들면서도
일제히 내 왼쪽 빌라의 편이 되는
어떤 날과 어떤 밤이 많다는 것
내 편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직 잠들어 있을 내 편을 생각한다
같은 무게의 불면증을 짊어진 그가
내 가족이고 가끔 소고기를 사준다면
나는 그가 보여준 노력의 편이 되겠지
그러나 왼편에는 오래된 빌라가 있고
오른편에는 오래된 미래가 있으므로
나는 한 번씩 그렇지, 하면서 끄덕인다
부서진 화분에 테이프를 발라두었다고
다시 한 번 싸우는 사람들로부터
따뜻하고 뭉그러진 바람이 밀려든다
밥을 종종 주었던 길고양이가 가끔
빌라에서 밥을 얻어먹는 건 다행이다
고양이도 알고 있는 것이다
제 편이 되어줄 사람들은 싸운 후에도
편이 되어주는 걸 멈추지 않는다
♧출처:동아신춘문예
https://n.news.naver.com/article/020/0003540084?sid=103
[2024 신춘문예]두렵기 때문에 앞으로도 쓰고 또 쓰며 살아갈 것이다
기쁨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 나는 늘 기대를 저버리는 편이었다. 비록 운 좋게 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좋은 시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아꼈지만 빛을 보지 못한 시들이 있다. 심사위원분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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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 추성은
죽은 새
그 옆에 떨어진 것이 깃털인 줄 알고 잡아본다
알고 보면 컵이지
깨진 컵
이런 일은 종종 있다
새를 파는 이들은 새의 발목을 묶어둔다
날지 않으면 새라고 할 수 없지만 사람들은 모르는 척 새를 산다고, 연인은 말한다
나는 그냥 대답하는 대신 옥수수를 알알로 떼어내서 길에 던져두었다
뼈를 던지는 것처럼
새가 옥수수를 쪼아 먹는다
몽골이나 오스만 위구르족 어디에서는 시체를 절벽에 던져둔다고 한다
바람으로 영원으로 깃털로
돌아가라고
애완 새는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
차라리 그런 것들에 가깝다
카페에서는 모르는 나라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언뜻 한국어와 비슷한 것 같지만 아마 표기는 튀르크어와 가까운 음악이고
아마 컵 아니면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 천장이라는 제목일 것이고
새장으로 돌아가라고……
아마 그런 의미겠지
연인은 나 죽으면 새 모이로 던져주라고 한다
나는 알이 다 벗겨진 옥수수를 손으로 쥔다
쥐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컵은 옥수수가 아니라는 것
노래도 아니고
격자 창문과 백지 청진기도 아니고
진화한 새라는 것
위구르족의 시체라는 사실도
새의 진화는 컵의 형태와 비슷할 것이다
그리고 끝에는 사람이 잡기 쉬운 모습이 되겠지
손잡이도 달리고 언제든 팔 수 있고 쥘 수도 있게
새는 토마토도 아니고 돌도 아니기 때문에 조용히 죽어갈 것이다*
카페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건 어디서 들어본 노래 같고 나는 창가에 기대서 바깥을 본다
곧 창문에 새가 부딪칠 것이다
깨질 것이다
출처: 조선일보
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4/01/01/AAKRQWAKTFBS5FRIR7VYDNEIFA/
take / 김유수
쓰레기를 줍는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를 쓰레기라 불렀다
쓰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추운 거리를 그것이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 속은 차갑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그것의 코트가 차갑다
쓰레기와의 동일시는 어떻게 줍는 것일까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을까
어떤 부부가 예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직장인이 따분한 쓰레기를 주워 간다 어떤 시인이 터무니없는 쓰레기를 주워 간다 그러한 쓰레기의 용도는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이었다
지나가는 그것이 코를 틀어막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눈을 질끈 감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이 옷을 건네주고 간다 지나가는 그것을 코트로 덮어버렸다
지나가는 그것이 무덤, 이라고 말한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의 자리를 탐내고 있다 나는 자리나 잡자고 이 거리의 쏟아짐을 목격하는 자가 아니다 이 거리의 행려는 더더욱 아니었다
행려는 서울역 앞에서 담배꽁초를 줍고 있다
담배꽁초에 나의 시간을 투영하고 있다
그것이 서울역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서울역의 시계가 서울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출처: 한국일보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22611040004000?did=NA
[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take'
쓰레기를 줍는다 나는 쓰레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그것이 나를 쓰레기라 불렀다 쓰레기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추운 거리를 그것이 배회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 속은 차갑다 지나가는 그것의 입술은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그것의 코트가 차갑다 쓰레기와의 동일시는 어떻게 줍는 것일까 너는 왜 나처럼 쓰레기를 줍지 않을까 어떤 부부가 예쁜 쓰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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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운전 /강지수
날 때부터 앞니를 두 개 달고 태어난 아이치고 천성이 소심하다 했습니다
가장 부끄러운 기억이 뭐예요?
종합병원 의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발가벗고 있는 나를 내려다보았을 때요
그게 기억나요?
최초의 관심과 수치의 흔적이 앞니에 누렇게 기록되었지요 나와 함께 태어난 앞니들은 백일을 버티지 못하고 삭은 바람에 뽑혀야 했지만, 어쩐지 그놈들의 신경은 잇몸 아래에 잠재해 있다가 언제고 튀어 올라 너 나를 뽑았지, 우리 때문에 너는 신문에도 났는데, 하고 윽박을 지를 것 같더란 말입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대大자로 뻗었을 때 혹은 동명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천성이란 무엇인지, 왜 어떤 흔적은 흉터로서 역할하지 못하고 삭아져버리는지
당신, 당신은 한 번 죽은 적 있지요
아뇨 아뇨 하고 뒤돌아 도망치다 보면
잔뜩 눌어붙은 마음에 칼질을 해대는 것
한 가지 알려줄까요
무 이파리가 시들해서 죽은 줄 알고 뽑아보면
막상 썩지는 않은 경우가 많답니다
싱싱하지 않을 뿐
살아는 있어요
매운 향을 뿜으며
가끔 손등을 깨물어요 그러면 삐죽 튀어나온 앞니 두 개가 찍힙니다 나는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어요
내가 어딘가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자국이거든요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피부까지도
저 멀리 보이는 친구를 피해 길을 돌아갈 때 혹은
다시 태어나서도 나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할 때
그럴 때에는 앞니를 떠올려보곤 하는 겁니다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천성
나와 분리된 조각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리워하는 겁니다
발가벗고도 이를 내보이며 웃었던 날
출처: 매일신문
https://www.imaeil.com/page/view/2023121515001633336
[2024 신춘문예 당선작] 시운전
일러스트 : 손노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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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현달을 정독해 주세요/박동주(본명 박현숙)
햅쌀을 대야에 가득 담아요
차고 푸른 물을 넘치도록 부으면
햅쌀은 물에서 부족한 잠을 채워요
쌀눈까지 하얗게 불었을 때
당신을 향한 마음이 몸을 풀어요
상현달처럼 떠오르는
마음을 알아차렸다면 속삭여 주세요
도톰한 떡살에 소를 넣어요
당신을 향한 비문은 골라내고
꽃물결 이는 구절만 버무려 소를 만들어요
당신 생각으로 먹먹해지는 마음이
색색의 반달로 차오르도록
한밤중이 되었을 때
서쪽 하늘을 골똘히 보아주세요
반죽을 작게 떼어 양 손바닥 사이에 넣고
가을볕이 등을 쓰다듬듯 잔잔히 궁글려요
이야기를 담은 소를 가운데 넣어
가을 한나절을 빚은 색색의 상현달들
떡살에 별자리가 뜨기도 해요
비껴간 당신을 향해
밤하늘 높이 상현달을 띄워요
이야기가 스며든 여러 빛깔의 편지지
하얀 송편에는 첫 마음을 써요
어떤 송편에는 첫 눈이 내리고
첫 발자국 첫 속삭임이 들어 있어요
출처 : 농민신문
https://www.nongmin.com/article/20231226500363
[신춘문예-시 당선작] 상현달을 정독해 주세요-박동주(본명 : 박현숙)
[시 당선 소감] “나의 시로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수 있었으면” 당선 전화를 받는 순간 명치를 얻어맞은 것처럼 멍했습니다. 그동안 반짝거리며 다가왔던 시들이 부옇게 지워졌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슬픔의 정수리에서도 시는 늘 든든하게 저를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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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극빈/ 김도은 (본명 김정미)
그 많은 소란과
발걸음과 악다구니들을 겪고도
골목은 여전히 휑하다
그늘이 묻은 소매 끝에
삶은 돼지머리 냄새가 가득하다.
이마를 풀어헤친 나무의 복선사이로
저기, 좁은 골목 끝으로
환한 끝이 보인다.
그 끝으로 얼마나 많은 이쪽을
저쪽으로 끌어들였나.
기울어진 지붕 끝으로 끌어 내린
저 어둑한 그늘들은 누구의 뒤끝들인가
더는 새것이 찾아오지 않는
양쪽을 둔 사이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제
아무도 이쪽 또는 저쪽에 속지 않는다
한때 유일한 재산이었던 포물선들은
조금만 펴거나 휘어도 뚝 부러지고 말 것 같은데
군데군데 구멍 난 혁명가를 입은 노인은
질긴 옛날 노래를 잇몸으로 부른다
극빈은 출렁이는 극한의 자세
팔꿈치에 휘감은 불안은 바짝 마른 저수지보다 컷다.
여전히 붙잡아두고 싶은 것들은 아름답지만
이 극빈도 조만간 헐릴 것이라는 말들
그래, 함께 헐리면 편하지
지탱이 지탱을 업고 하는 말들은 그마저도
죄다 빌려온 말들이란 것
돌려줄 곳도 없는 말들이라는 것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는
어둑한 한 평의 미궁들엔 다행히도
무더위가 웅크리고 있다는 것
들어올 것도 없이 여미는 겨울보다는 낫다는 것
홀로, 깊은 안쪽이 되는 것이다
출처: 영주신문
http://yeongjunews.co.kr/front/news/view.do?articleId=ARTICLE_00027484
[영주신문] 영주신문 2024년 갑진년(甲辰年) 역동적인 신춘문예 수상작 발표
영주신문 2024년 갑진년(甲辰年) 역동적인 신춘문예 수상작 발표 - 영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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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가/홍다미
우리는 즐거움을 쌓기 시작했죠
딱딱한 어깨를 내어주며 무너지지 않게 한 계단 한 계단 다짐을 쌓았죠 대나무가 마디를 쌓듯 빌딩이 올라가고 집값이 올라도 내일 모레 글피 그글피를
오지 않는 내일을 오늘처럼 지금처럼
바람 무게를 견디려면 마스크
쓴 계절도 빙하 녹는 북극도 쌓아야 하는데
밤하늘이 별빛을 빼내고 있었죠
쌓기만 하는 뉴스는
싫증나고요
거꾸로 가는 놀이를 해볼까요
쌓아놓은 블록을 하나씩 빼내는 놀이
장난감을 빼버리면 아이는 자라서 부모 눈물을 쏙 빼버리고 최저임금을 빼내면 알바는 끼니를 빼먹고 잠을 빼내면 기사님은 안전이란 블록을 빼내고야 말겠죠
언젠가 도심 백화점도 한강 다리도 이 놀이를 즐기다 쏟아졌고
모닝 키스도 굿나잇 인사도 기념일도 블록으로 빼내면 연애도 와장창 무너지겠죠
한순간 한 방이면 끝나는 게임
손끝의 감각을 믿기로 해요
쌓아 올린 우리가 와르르 무너질까봐
우린 서로의 빈틈을 살짝 비껴가는 중이죠
출처: 무등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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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치가 필요한 시점 / 김해인
짜장면과 짬봉 앞에서 고민하는
나를 절단해 줘요
불가마에 단련된 최초의 연장이 되느냐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나오는 레디메이드 툴이 되느냐
이것도 중요하지만
선택 후의 방향은 어디인지 알 수 없어요
차라리 한 끼 굶을 일을
어느 시궁창에 빠질지 모를 일입니다
오른쪽 손과 왼쪽 손이 친척이라고 생각하나요
나를 꾹 눌러서 이쪽저쪽으로 갈라줘요
이쪽으로 가면 강의 상류 끝에 서 있는 물푸레나무를 만나고 싶죠
저쪽으로 가면 바다의 시작,
흰 치마를 펼쳐서라도 항해하는 게 로망인 걸요
밸런스게임은 사양할게요
이쪽으로 가면 파란 대문이 열려 있고
저쪽으로 가면 녹슨 대문이 부서져 있다거나
이쪽으로 가면 왕이 되고
저쪽으로 가면 거지가 된다는 동화 같은 거 믿으라고요?
차라리 사지선다형으로 바꿔주세요
검은 셔츠와 흰 셔츠 중 뭐가 필요하냐고요
지금은 펜치가 필요한 시점이에요
♤출처 :부산일보
https://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4010116281760284
[2024 신춘문예-시] 펜치가 필요한 시점 / 김해인
삽화=류지혜 기자 birdy@busan.com 짜장면과 짬봉 앞에서 고민하는나를 절단해 줘요불가마에 단련된 최초의 연장이 되느냐컨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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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 성욱현
몸에 맞추어 옷을 만들던 시절은 지났다
우리는 만들어진 옷속에 몸을 끼워넣는다
입지도 않는 옷을 산 걸 후회했고
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옷이 쏟아지다니, 이게 뭐니
창고에 갇힌 미싱은 소리 없이 울면서 혼자 돌아갔겠다
할머니가 늙어가는 소리처럼
소리 없이 할머니를 입는다
미싱을 배울 때가 좋았어
할머니는 사라질 것만 같은 쵸크 선을 따라서
엉킨 실을 풀며 매듭을 새기며 몸에 맞는 옷을 만들었겠다
미끈하고 곧게 선 재봉틀 위를 걸어가던 할머니는
두 발을 가지런히 하고 누워 계신다
열여덟 살 소녀가 누운 나무 관, 삐걱거린다
새 옷에서는 차가운 냄새가 난다
몸은 언제나 헌것이라 옷보다 따뜻한 것일까
치수를 재어
나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며
할머니는 오래된 치마처럼 낡아가며, 얇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의 손이 내 허리를 감싸
나를 한 벌의 옷으로 만들었다는 걸
도무지 알 수가 없었고
거실 한쪽으로 미싱을 옮긴다
미싱 가마에 기름칠을 하던 할머니도
오래도록 팔꿈치가 접혀 있었다
여기 앉아보세요
눈발이 창에 드문드문 박음질을 하고 있어요
출처: 영남일보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231227010003927
[2024 영남일보 신춘문예] 詩 당선작 - 미싱
몸에 맞추어 옷을 만들던 시절은 지났다우리는 만들어진 옷속에 몸을 끼워넣는다입지도 않는 옷을 산 걸 후회했고세상에 이렇게나 많은 옷이 쏟아지다니, 이게 뭐니창고에 갇힌 미싱은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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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에서/박유빈
눈이 간지러워서
해변으로 갔다
화창한 날씨
눈부신 바다
환한
사람들
수평선만큼 기복 없는 해변의 감정
너무 밝다
해변을 산책하던 나는
반짝이는 모래알 사이에서 보았다
그것은 눈알
실금 없이 깨끗한 눈알
바다에서 떠밀려온 유리병도 아니었고
피서객이 흘리고 간 유리구슬도 아니었다
파도가 칠 때마다 움찔거리는 그것은
오점 없이 깨끗한 눈알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햇살에 인상을 찌푸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제 화창하지 않다
내가 만든 그늘서 눈알은
부릅뜨기 좋은 상태
그러나 내 뒤로 사람들이 지나갈 때
눈알은 움찔거렸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을까
해초처럼 누워서 왔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유언일지도 모르고
그때 배운 것 같다
사랑하지 않고도 빠져 죽는 마음
떠오른다
어떤 이의 어리숙한 얼굴
꼭 죽을 것만 같았던 사람
아니 그것은 죽은 것
혹은 벗어놓은 것
떠밀려온 것
유유자적
흘러온 것
눈알은 하나뿐이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걱정될 뿐이다
메마를 것 같다
언젠가
미끈한 눈웃음 짓던
사람을 사랑한 고래가 그랬듯이
모래사장을 맨발로 걷다 보면
무언가 밟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세상에 막 내던져진
작은 눈빛
오늘은
어느 때보다 화창한 날
어디에도 흐린 곳 하나 없다
너무 밝다
최선을 다해
기지개 켜는
눈알의 의지
출처: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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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신춘문예] 시 당선작- 해변에서 /박유빈
눈이 간지러워서 해변으로 갔다 화창한 날씨 눈부신 바다 환한 사람들 수평선만큼 기복 없는 해변의 감정 너무 밝다 해변을 산책하던 나는 반짝이는 모래알 사이에서 보았다 그것은 눈알 실금 없이 깨끗한 눈알 바다에서 떠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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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아오른 지하/황주연
몇 겹 속에 갇히면
그곳이 지하가 된다
4시 25분의 지상이 감쪽같이 4시 26분의 지하에 세상의 빛을 넘겨주는 일, 언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지상의 지하화가 도모되었을까 땅을 판 적도 없는데 다급한 말소리들은 지표면 위쪽에들 있다 조금 전의 당신의 양손과 두 볼이, 주름의 표정과 웃음이, 켜켜이 쌓인 말들이 들춰지고 있다 기억과 어둠이 뒤섞인 지상은 점점 잠의 늪으로 빠져드는데 누구도 이 어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다
몸이 몸을 옥죄고 있다 칠 층이 무너지고 십오 층이 무너졌다 그 사이 부서진 시멘트는 더 단단해지고 켜켜이 쌓인 흙은 견고하게 다져졌다 빠져나가지 못한 시간이 꽁꽁 얼어붙는 사이 아침과 몇 날의 밤이 또 덮쳤다 이 깊이 솟아오른 지하엔 창문들과 쏟아진 화분과 가느다랗게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뒤섞여 있다 뿔뿔이 서 있던 것들이 무너지며 모두 하나로 엉킨다
이 한 덩어리의 잔해들은 견고한 주택일까 무너진 태양은 나보다 위쪽에 있을까 부서진 낮달은 나보다 아래쪽에 있을지 몰라 공전과 자전의 약속은 과연 지금도 유효할까? 왁자지껄한 말소리들이 하나둘 치워지고 엉킨 시간을 걷어내고 고요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데
백날의 잔해가 있고 몸이 몸을 돌아눕지 못한다
검은 지구 한 귀퉁이를 견디는 맨몸들,
층층이 솟아오르고 있다
출처 : 경상일보(https://www.ksilbo.co.kr)https://www.ks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988691
[2024 경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시]솟아오른 지하 - 황주연 - 경상일보
솟아오른 지하 - 황주연몇 겹 속에 갇히면그곳이 지하가 된다4시 25분의 지상이 감쪽같이 4시 26분의 지하에 세상의 빛을 넘겨주는 일, 언제부터 서서히 시작되었을까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아주 천천히 지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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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그잔/박태인
물이 되려는 순간이 있어요 얼굴을 뭉개고
입술 꾹 다물고
자꾸 그러면 안 돼
차를 마시기 위해 물을 끓여요 나는
물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떨어지고 싶어요
창틀에 놓여있던 모과의 쪼그라든 목소리가 살금살금 걷는 듯한 아침
어김없이 당신의 그림자는 식탁에 앉아 있어요
뜨거운 것으로 입을 불리면 조금 더 따뜻한 사람이 될 것 같은 생각을 해요, 조금 더 따뜻한
우리는 언제쯤 깨질 것 같나요? 이런 말은 슬프니까
숨을 멈추고 속을 들여다보면 싱크홀 같거나 시계의 입구 같거나 울고 있는 이모티콘 같아요 두 손에 매달려 쓸데없이 계속 자라는 손톱처럼 똑똑 자르면 될 것 같은 시간을 말아 쥐고 있는 기분
나는 내 손을 스스로 잘라 버릴지도 몰라요
언젠가
바깥이 나를 꺼내다 마는 것처럼 어둠으로 찬장 문을 닫아버리거나
빛으로 나가지도 못 하게 해요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요
햇살이 손바닥을 통과해 더 깊이 가라앉는 동안
내 손은 가끔 바깥에서 들어와요
집을 통째로 들어 물처럼 몸이 출렁일 수 있도록
흔들어 보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이면 매일 보고 만지는 머그잔이 어째 좀 수상해요
나는 또 물로 그린 그림이 되죠
오늘은 당신의 그림자를 좀 젖혀봐도 될 것 같아요
출처: 경남신문
https://m.jjan.kr/article/20231226580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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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한백양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페에선
어깨를 굽히고 다니란 말을 듣는다
네 어깨에 누가 앉게 하지 말고
그러나 이미 앉은 사람을
박대할 수 없으니까
한동안 복숭아는 포기할 것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 누구에게 잘하진 못한다
나는 요즘 희망을 앓는다
내일은 국물 요리를 먹을 거고
배가 출렁일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걸 잊을 거고
옷을 사러 갔다가
옷도 나도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잔뜩 칭찬을 듣는 것
가끔은 진짜로
진짜 칭찬을 듣고 싶다
횡단보도 앞 노인의 짐을 들어주고
쉴 새 없이 말을 속삭일 때마다
내 어깨는 더욱 비좁아져서
부모가 종종 전화를 한다 밥 먹었냐고
밥 먹은 나를 재촉하는 부모에게
부모 없이도 행복하다는 걸 설명하곤 한다
출처:세계일보
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3890326?sid=103
신춘문예 - 시 [2024 신년기획]
웰빙 - 한백양 웰빙 한백양 힘들다는 걸 들켰을 때 고추를 찧는 방망이처럼 눈가의 벌건 자국을 휘두르는 편이다 너무 좋은 옷은 사지 말 것 부모의 당부가 이해될 무렵임에도 나는 부모가 되질 못하고 점집이 된 동네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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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로 가는 나무 / 김문자
달의 범람으로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땅은
다섯 개의 줄기로 자라는 은행나무의 품이 되었다
보름달 상현달 하현달 초승달 그믐달을 키우는
인천 장수동 사적 562*번 800년 된 은행나무
처음부터 약성이 쓴 뿌리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나무는 달에서 왔다
달이 몸을 바꿀 때마다 은행나무의 수화는 빠르다
전하지 못한 말들은 툭 떨어지거나 노랗게 익어갔다
은행나무는 자라면서 달의 말을 하고
은행나무 이야기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바닷물이 해안까지 차오르는 슈퍼 문일 때
남자는 눈을 감고 여자는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의 우듬지는 800년 동안 달로 가고 있다
소래산 성주산 관모산 거마산을 거느린 장수동 은행나무
달빛이 은행나무 꼭짓점을 더듬는 농도 짙은 포즈
은행나무는 품을 여며 폭풍과 폭설을 견디는 새집이 되었다
큰 나무의 덕을 보아도 큰 사람의 덕을 못 본다는
무서운 격언을 새가 쪼아 먹을 때
뒷산까지 뿌리가 뻗은 은행나무를 뽑으면 산이 무너질까 봐
사람들은 새가 세 들어 사는 나무에게 빌었다
빙하기에도 살아남아 풍년과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7월과 10월의 보름이면
은행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지아비 달이 걸린다
그때, 꿈이 많은 아이가 은행나무를 오르고 있다
심사평
"활달한 어법·거침없는 상상력… 읽고나면 가슴이 두근"
[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김명인 시인·김윤배 시인
팬데믹을 거치면서도, 불황의 늪에 빠지면서도 시심이 있기에 견디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경인일보 2024년 신춘문예 시 부문 심사를 했다.
응모편수가 예년에 비해 줄지도 않았고 수준이 낮아지지도 않았다. 응모작품의 성향은 역사적이거나 문명의 진화이거나 하는 거대 담론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사유의 깊이가 보였다. 소소한 일상을 아름다운 서정의 그물로 건져 올리거나 내면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 것이 특징을 이루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시각이 좀 더 깊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시인은 사물의 보이지 않는, 숨겨진 특성을 살필 줄 알아야 감동이 살아 있는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작품들이 독자에게 감동과 전율을 준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은 심사할 작품들을 택배로 받아서 우수한 작품들을 선정하는 예심을 거쳐 지난달 20일에 경인일보 심사장에 모여서 당선작을 조율했다. 열 분의 작품을 놓고 몇 번씩 돌려 읽으며 새로운 어법인지, 표절은 없는지, 시어들은 울림이 있는지, 본질에 닿으려는 노력이 보이는지 등을 검토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이 김문자의 '달로 가는 나무'다. 어법은 활달하고 상상력은 거침이 없으며 희망을 준다. 희망을 준다는 것이 중요하다. 발표지면이 새해 둘째 날이어서 그렇다.
첫 행은 '달의 범람으로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다섯 개의 줄기로 자라는 은행나무의 품이 되었다'로 시작된다.
마지막 행은 '그때, 꿈이 많은 아이가 은행나무를 오르고 있다'로 되어 있다. 읽고 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당선자의 문학의 꿈이 까마득한 은행나무를 기어코 오를 것을 믿는다.
http://m.kyeongin.com/view.php?key=20240102010003411
[2024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김문자 `달로 가는 나무`
달의 범람으로 하늘의 문이 열리면서 땅은다섯 개의 줄기로 자라는 은행나무의 품이 되었다보름달 상현달 하현달 초승달 그믐달을 키우는인천 장수동 사적 562*번 800년 된 은행나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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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외계인* /최서정
분홍장갑을 남겨놓고 지상의 램프를 껐어요
눈 감으면 코끝으로 만져지는 냄새
동생은 털실로 짠 그 속에 열 가닥 노래를 집어넣었죠
온종일 어린겨울과 놀았어요 어느 눈 내리던 날
장롱 위에서 잠든 엄마를 꺼내 한 장 한 장 펼쳤죠 (우리 막내는 왜 이렇게 손이 찰까)
그리우면 손톱이 먼저 마중 나가는
어린, 을 생각하면 자꾸만 버튼이 되는 엄마
눈사람처럼 희고 셀러리보다 싱싱한 이제는 나보다 한참 어린 엄마
소곤소곤 곁에 누워 불 끄고 싶었던 적 있어요
그녀 닮은 막내가, 바닥에서 방울방울 웃어요
놓친 엄마 젖꼭지를 떠올리면 자장가처럼 따뜻해지던 분홍
그녀, 마지막 밤에 파랗게 언 동생 손가락을 털실로 품은 걸까요
반쯤 접힌 엽서를 펼치듯 창문을 활짝 열면
어린 마당에 먼저 돌아와 폭설로 쌓이는 그녀
더는 이승의 달력이 없는, 딸기 맛처럼 차게 식은
별똥별 나의 엄마
꼬리 긴 장갑 속에서 씨앗처럼 동그랗게 잠든 동생의 손이
주머니 속 캥거루처럼 쑥쑥 늙어가요
*엄마는 외계인 - B회사에서 판매하는 아이스크림 이름 중 하나
출처 : 전북도민일보(http://www.domin.co.kr)
http://www.domin.co.kr/1452401/
[2024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엄마는 외계인’ - 전북도민일보
엄마는 외계인*분홍장갑을 남겨놓고 지상의 램프를 껐어요눈 감으면 코끝으로 만져지는 냄새동생은 털실로 짠 그 속에 열 가닥 노래를 집어넣었죠온종일 어린겨울과 놀았어요 어느 눈 내리던 날장롱 위에서 잠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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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살표의 속도/황주현
화살표의 속도는
걷고 달리고 날아가는 속도다 화살표는 정지해 있으면서도 계속 이동 중이지만 뒷걸음질 치는 기능이 없다
화살표에서는 왜 짐승의 울음소리가 날까
궤적에서 공격성이 자란다 사활을 건 뾰족한 모양이 머리인지 입인지 코인지 궁금해 한 적 없지만 그것이 가끔 말을 하거나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기도 한다
화살표는 계속 어디론가로 날아가고 도망가고 사라지려 한다 몇몇 동물들은 그런 화살표와 비슷한 외모를 노력 끝에 얻었지만 지금은 멸종의 위기에 처해 있다
화살표를 발명한 사람들
혹은 진자운동처럼 0과 0 사이에서 태어나고
그 사이를 무한 반복한다
꼬리에 두느냐 머리에 두느냐를 고민하는 동안은 이미 한참이나 날아 온 거리다 어떤 사람에게선 이미 녹이 슬거나 그 끝이 뭉툭해진 화살표가 무더기로 발견되고 또 어떤 사람에겐 마치 새싹처럼 이제 막 돋는 일도 있다
빗나가는 과녁을 가진 것들도 많겠지만
명중이라는 끝을 두고 있다
공중에 초록을 박아 넣고 이리저리 여진을 앓고 있는
저것들, 혹은 그것들
지금도 화살표를 가로 막거나 되돌려 놓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단체가 있을지도 모른다 화살표를 조종하는 또 다른 화살표를 개발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지만
여전히 화살처럼 관통하는 날이다
출처 : 경남도민신문(http://www.gndomin.com)
http://www.gndom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78056
2024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 경남도민신문
경남도민신문과 시와편견이 문화와 예술의 도시 진주에서 지역 문학의 자긍심을 드높이기 위한 ‘2024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를 공동으로 개최했다.‘2024 경남도민신문 신춘문예’는 시와 디카시 두 부문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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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 스터디/강지수
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
그게 진짜 목소리라고 한다
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
그러자 방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허리를 숙인 채
아 아 아 소리를 낸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진짜 목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이제 그 음역대로 말하는 겁니다
억지로 꾸며낸 목소리가 아닌 진짜 당신의 목소리로요
엉거주춤 허리를 편 사람들이 첫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저는 대전에서 왔고……
멋쩍은 미소를 짓고 몇 번 더듬기도 하면서
말을 하다가 불쑥 허리를 접고 다시 아 아 거리는 이도 있다
나는 구석에 앉아 이 광경을 바라본다
선생님이 손짓한다
이리 와서 진짜 목소리를 찾아보세요
쭈뼛거리며 무리의 가장자리에 선다
허리를 숙인다 정강이가 보이고 뒤통수가 시원하다
아 아 아
낮지도 높지도 않은 미지근적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옆집 아이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어색하게 안부를 물을 때
보다는 낮고
지저분한 소문을 전할 때
보다는 높다
언뜻 저 사람과 그 옆 사람의 목소리하고 똑같다
우리 셋이 동시에 얘기하면 참 재미있겠죠
진지한 모임에서 그런 말은 할 수 없어서
그저 소리만 낸다
아 아
교실은 소리를 머금은 상자가 되고
이가 나간 머그잔에 물을 담아 마시다가 바닥에 흘렸다
닦아내려고 허리를 숙인 찰나
물 위로 번지는 그림자가 보였다
진짜 같았다
고개를 들었다
진짜사람들이 진짜미소를 지으며 진짜 멋진 진짜옷을 입은 게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다 합격할 수 있을 거예요
진짜행복이 밀려왔다
출처: 문화일보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24010201032633000001
면접 스터디 - 강지수[2024 신춘문예]
■ 2024 신춘문예 - 시허리를 반으로 접고 아 소리를 내면그게 진짜 목소리라고 한다진짜 목소리로 말하면 신뢰와 호감을 얻을 수 있다고그러자 방에 있던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제각기 허리를 숙인 채아 아 아 소리를 낸다복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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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실/이실비
그 사람 죽은 거 알아?
또보겠지 떡볶이 집에서
묻는 네 얼굴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이상하지 충분히 안타까워하면서 떡볶이를 계속 먹고 있는 게 너를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게
괜찮니?
그런 물음들에 어떻게 답장해야할지 모르겠고
겨울이 끝나면 같이 힘껏 코를 풀자
그런 다짐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코를 흘리고 있다
손톱이 자라는 속도가 손톱을 벗겨내는 속도를 이기길 바랐다
다정 걱정 동정
무작정
틀지 않고
어두운 조명실에 오래 앉아 있었다
초록색 비상구 등만
선명히 극장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이것이 지옥이라면
관객들의 나란한 뒤통수
그들에겐 내가 안 보이겠지
그래도 나는 보고 있다
잊지 않고 세어 본다
출처: 서울신문
https://m.seoul.co.kr/news/newsView.php?id=20240102500119&cp=seoul
조명실/이실비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 시]
그 사람 죽은 거 알아?또보겠지 떡볶이 집에서묻는 네 얼굴이 너무 아름다운 거야 이상하지 충분히 안타까워하면서 떡볶이를 계속 먹고 있는 게 너를 계속 사랑하고 있다는 게 괜찮니?그런 물음들에 어떻게 답장해야할지 모르겠고 겨울이 끝나면 같이 힘껏 코를 풀자그런 다짐을 주고받았던 사람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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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날라우 베이커리/신재화
팔장을 끼고 조화造化로운 정원으로 나온다. 어깨와 어깨 사이 매듭이 풀릴 때 옷소매로 팔이 나오지 않았다. 사라진 팔을 찾아 서성거리는 곳, 빅아일랜드에 나는 가자.
여보 조심히 다녀오세요.
남편이 먹다 남은 커피잔과 어제 구워 팔다 남은 빵 부스러기를 치운다. 이른 새벽 발렛 일 나가는 남편의 입술은 바다향 품은 시큼한 코나 커피 향으로 가득하다.
화산을 먹어야 한다
음, 여보 오늘은 주말이라서 바빠질 거야 (나빠질 거야)
한쪽 뺨에 키스를 한 후, 손해를 본 건 뺨일까 입술일까, 궁금함으로 나는 가자, 빅아일랜드의 빅브라더처럼, 한 손에 알로아 포즈를 취한 다음 차에 오른다. 빅매치
가 종을 울린다.
두 볼 상기된 발렛 아내
코나 커피 향 가득한 엉덩이 스텝을 치며 빵 구우러 버려진 부엌으로 나는 향한다. 복화술- 속옷 바람으로 대문 밖으로 쫓겨나던 소녀의 입안 구체를 말한다. 돌돌
녹여 먹는다. 나는 움직일 수 있는 관절만 사용하면 된다. 비겁한 말이 저주의 말을 낳을 때마다 사라진 팔뚝이 움직인다. 소녀들의 관절을 숨긴 아버지, 한 움큼 금발의 나라로 가자, 눈썹이 하나 둘 질식이다.
차량 많은 주말 거리를 뚫고 가풀막을 향하여 머리에는 빵을 이고 간다. 화산 속에 사라진 팔을 던지고 내일의 팔짱은 내일로 가자.
거울 뉴런/박기준
봄빛이 창문 틈에 끼여 헐떡거리던 거실
거울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강남스타일 노래에
아빠의 말춤을 따라 하는 천사
거울이 춤을 춘다
어머니의 늘어진 하품이 할머니 품으로 들어간다
텔레비전 귀여운 여인을 바라보며
햇살 품은 얼음같이 녹아내리고
웃음이 전염되어 온다
지옥의 문에서 향기가 솟아나고
나락의 늪에서 꽃이 피고
도파민이 만든 또 다른 세계
천지를 집어삼킬 듯 휘몰아치는 광풍
문장 속에 고립된 작은 집
식량처럼 줄어드는 단어와 안개처럼 사라지는 감정
버리지 못해 잊지 못하는 것
기억으로 포화한 행간
기록되지 않은 기억은 불완전하여 믿을 수가 없다
태곳적부터 모방의 천재
닮고 싶어 하는 욕망, 세포가 필사하는 시
늙은 베르테르가 어설픈 시어에 잡혀
시인 흉내 내다 심연 속으로 사라진다
광장 속의 거울
옆으로 늘어선 나를 흘끔 쳐다본다
나의 모습은 진짜일까
노을 낀 망각보다 무서운 거울 뉴런
깨진 거울, 부서진 조각마다 내가 갇혔다
자폐, 시
[심사평]
신춘문예는 문학 지망생에게는 모두가 설레는 자리이면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자리이다. 그러기에 이를 심사하는 심사자들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예심을 통과해 올라온 작품을 여러 번 읽으면서 이들이 표출하는 내용들이 모두가 오늘의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심사자들은 여기서 한두 가지 조건을 더 염두에 두었는데 가장 유념한 것은 신인다운 패기와 도전 정신이었다.
다음으로는 이 시인이 시 창작을 하는데 얼마만큼 지속가능한 정신을 가지고 있느냐 였다. 단순히 작품만을 보고 다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기준을 놓고 볼 때 다음의 두 작품에 눈길이 갔다. 하나는 신재화 씨의 「푸날라우 베이커리」였고 다른 하나는 박기준 씨의 「거울 뉴런」이었다.
「푸날라우 베이커리」는 오늘을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과 꿈이 부부를 통해 가볍고도 상쾌하게 전개되고 있다. 생업에 쫓기는 그리 밝지만은 않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긍정의 메타포가 생기있게 시상을 이끌어가고 있다. 모더니티를 지향하면서도 비판보다는 화해의 동일화를 추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되었다.
「거울 뉴런」의 작품을 통해 시적화자는 “지옥의 문에서 향기가 솟아나”는 세계를 보여준다. 이 시적 상상력은 그리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흡입력이 있다. 광장에 만약 어마하게 큰 거울이 있어 거기에 우리의 기억들이 재생된다면 광풍과 작은 집과 감정 사이의 어느 모습이 과연 우리의 참 모습일까? 정상의 말 흐름을 방해하면서 시적화자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점이 두 작품에서 다 새롭다. 문제는 틈 사이가 잘 맞지 않아 삐꺽거림이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조만간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하였다. 두 작품을 가작으로 밀어 올린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 예심 최성경(문학박사), 류호국(시인) ‧ 본심 이지엽(경기대 교수, 문학평론가, 대표집필)
“예술적 경험 속에서 예술가는 자기 사진을 객관적 대상으로 만나게 된다.”라는 조루조 아감벤의 말이 떠오릅니다.
http://m.oryuk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984
2024오륙도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
●2024오륙도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발표 ■시 부문 가작1 푸날라우 베이커리 신재화팔장을 끼고 조화造化로운 정원으로 나온다. 어깨와 어깨 사이 매듭이 풀릴 때 옷소매로 팔이 나오지 않았다.사라진 팔을 찾아 서성거리는 곳, 빅아일랜드에 나는 가자.여보 조심히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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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엄지인
잔디를 깎습니다
마당은 풀 냄새로 비릿합니다
잔디가 흘린 피와 눈물이라는 생각
우린 서로 피의 색깔이 달라
참 다행이지 혈통이 아주 먼 사이라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잘린 끝을 만져보는데 아프지 않습니다
심장과는 아주 먼 거리일까요
손 뼘으로 잴 수 있지만
누군가는 머리에서 심장까지 전력을 다해 뜁니다
머리카락 입장에선 불행일지 모른다는 생각
골목 밖에선 길냥이의 울음소리가 날카롭습니다
고양이는 사람에게만 소리 내 운다고 하는데
축축한 여기 그냥 좀 내버려두라고
배가 헐렁한 동물에게 보내는 우호적인 경고라는 생각
다치지 않게 손톱 칼로 조심히 군살을 깎지만
소스라칩니다
가장자리에서 바깥으로 밀리지 않으려는 비명
TV에서는 기상 캐스터의 주의보가 쾌속으로 지나갑니다
암거북들이 짝을 잃고
더운 바다를 피해 육지로 돌진합니다
거울에 목을 비춰보니
빗물이 빗장뼈 안으로 고여 흘러넘칩니다
쇄빙선이 얼음을 부수고 지나간 듯
물살이 온통 파랗습니다
출처: 광주일보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04207600762558007
[2024 광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시] 파랑- 엄지인
잔디를 깎습니다 마당은 풀 냄새로 비릿합니다 잔디가 흘린 피와 눈물이라는 생각 우린 서로 피의 색깔이 달라 참 다행이지 혈통이 아주 먼 사이라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잘린 끝을 만져보는데 아프지 않습니다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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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전라매일신춘문예 시 당선작
외롭다 사람아/ 천선필
트라이앵글을 두드리면
떨리는 음들이 챙그렁 챙그렁 눈을 뜬다
아파트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나는 창가에서 악보가 없는 음악을 연주한다 트라이앵글의 흰 뼈에서 흘러나온 음들은 외롭다 사람아
인간은 사랑을 이해하는 데 일생을 바치다 슬픔의 대지에 자신을 가두고 혼자 아파하는 음악이 된다 외로움이란 사랑의 장례를 치르는 시간, 이 세상의 악보들은 가장 투명한 눈물로 쓰여진다 내 어머니는 평생 고독을 연주하다 한 줌 재가 되었다
제 몸속에 잠들어 있는 음악이란 없다 내 생의 안쪽에는 아직 울지 못한 음들이 글썽이며 가득 매달려 있다 슬픔을 달래다 고요를 잃어버린 입술처럼 트라이앵글이 차갑게 떨린다
누군가 아파트 창가에 오래 서 있다 환한 방안에 불 꺼진 전등처럼, 내가 만일 당신이라고 부르면 창문이 온통 은빛으로 출렁일 것 같아 나는 한쪽 끝이 열려 있는 트라이앵글의 텅 빈 내각에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떨어뜨린다
당신의 외로움 위에 내 외로움이 닿을 때까지
나는 밤마다 트라이앵글을 연주한다
2024 전라매일신춘문예 시 당선작
[심사평]
새로운 인식과 심미적 표현
해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응모자가 늘어났는데 올 들어 경제 사정 때문인지 응모작이 줄어 들었다. 최종심에 오른 시인은 연지윤, 우길선, 천선필 씨 세 분이었다.
새로운 인식과 상상력, 심미적 언어, 밀도 있는 구성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우길선 「너머의 너」는 풍부한 상상력이 돋보였으나 ‘잡히지 않는 너를 향해 ~ 떠 있는 것들을 잡는 것이 아니라/ 손을 흔들어 주는 것임을 알았을 때, 나는/ 까치발을 내려놓았다’와 같은 인식과 표현의 평이성이 아쉬웠다.
연지윤의 「사각」 , 「사무실을 돌리다」 그리고 반 지하 그늘에서 수도권을 맴돌며 살아가고 있는 영세민들의 고단한 삶의 궤적을 ‘A4용지 두 장에 압착되어’ 나오는 전출입기록에 비유한 「수도권」은 주제 의식과 표현의 참신성 등이 좋았으나 「수도권」에 ‘가팔랐던 언덕배기 길까지/ 기입되기에는 칸이 좁다’, ‘생활이 나아진다는 건/ 꽉 찬 트럭 위에 남은 짐 덧 싣는 것은 아닐 텐데/ 그 때는 왜 덜어내지 못했을까’ 와 같은 애매한 산문이 섞여 있어 안타까웠다.
이에 비해 천선필의 응모작 네 편은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본과 경쟁의 심화로 궁지에 내몰린 현대인의 단절감을 ‘트라이앵글의 흰 뼈에서 흘러나온 ~ 악보 없는 음악’ 에 비유, ‘당신의 외로움 위에 내 외로움이 닿을 때까지/ 나는 밤마다 트라이앵글을 연주한다’(「외롭다 사람아」)는 포지티브한 지향성과 ‘내가 만일 당신이라고 부르면 창문이 온통 은빛으로 출렁일 것 같아’라는 유려한 문장을 나직한 율조에 그러나 절절하게 노래하고 있어 이를 당선작으로 선했다.
김동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