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계간문학》2020 겨울 신인문학상 수상자
◎ 시부문 수상자 - 안재학
◎ 안재학 당선소감
엊그제까지 풀숲 저만치에서 쓰르라미떼가 연신 구슬픈 곡조를 노래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조석으로 옷깃을 여미는 쌀쌀한 바람이 가슴 속을 파고든다. 이 초겨울에 시 몇 편을 공모에 신청해 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2014년도에 수필로 등단을 했지만 시 부문에는 전혀 문외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틈틈이 시 습작을 해왔다. 여러가지 부족한 점이 많다고 보아 크게 기대를 안 했던 게 사실이다.
그동안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경구 속에 짬짬이 아름다운 봉사단이라는 봉사단체에서 약 2,000시간을 집수리 봉사와 매월 노인 무료급식 봉사, 그리고 경로잔와, 매년 12월 독거 노인 김장 봉사를 하며 작지만 어려운 분들을 위해 노력해 왔다. 코로나 19로 인해 몇 명만이 참여한 가운데 지난 11월 말 독거 노인들에게 나누어 드릴 김장준비를 하고 있던 중, 뜻밖에 시 부문에 당선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끼고 있던 고무장갑을 벗어 던지며 환호성을 지르는 저의 해프닝을 보고 몇몇 동료 봉사단원이 의아해했을 것으로 본다. 코로나 -19 때문에 단체 봉사활동에도 제약을 받고 집과 사무실에서 종종 시를 읽으면서 사색에 빠졌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음악이 없으면 삶이 황량하듯이 시 한줄에 응축된 뜻과 내용은 나의 소원했던 정신세계 마저 새로운 세상으로 끌어내는 신선한 청량제가 되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42.195km를 완주한 뒤 마시는 달콤한 물 한잔이 그러하듯이. 내게는 더없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본다. 어린 시절 추운 겨울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뒷 마당에 묻어 둔 무와 고구마를 가져다 깎아 먹던 맛이랄까?
내 고향 강원도에도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고 타향 부산에서 한때 사랑과 이별의 공간이었던 낙동강 을숙도에 떨어지는 붉은 낙조를 바라보며, 줄지어 날아가는 고니떼는 과연 어디로 날아가는 것일까. 잠시 생각에 잠기곤 한다. 어설프지만 작은 피조물과 같은 자신이 이제 첫 걸음마를 띠는 심정으로 이뤄 나가리라. 그리고 이 영광을 7년간 치매로 고생하시다 3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니 영전에 바치고 싶다.
아무튼 시의 초년생인 저를 다듬어 주시고 이끌어 주신 청파 이복수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제 부족하지만 시 속에 작은 씨앗 하나를 뿌리는 심정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아울러 그동안 곁에서 묵묵히 격려해 준 가족과 구인문학회 동인님들과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끝으로 부족한 저의 작품을 천거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 심사평
장엄하면서도 섬세함을 잃지 않는 완성도 높은 시
안재학 님의 시에는 장엄함과 숭고함이 있다. 거대한 역사를 오가는 보폭에 따라 시의 숨결은 광활한 광야를 달리는 말처럼 거침없다. 그러면서도 가만히 피어있는 한 송이 꽃에 가뿐 호흡을 가다듬으며 달려온 시간들을 내려다보는 순례자의 혜안이 번뜩이기도 하며, 일상사의 소소함이 가지는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는다.
먼저 <청령포 관음송>에서 ‘장구한 세월/ 혈혈단신 풍상에 시달리며/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너’로 첫 연이 시작되고 있다. 독자들은 이미 한 편의 시를 읽었으리라. 집약적인 아름다움이 시의 풍미를 한껏 돋우며 깊은 사유로 들어서게 한다. ‘가을밤 솔잎 사이로/ 수줍은 듯 초승달이/ 새하얀 얼굴 내민다’에 이르러서는 각양으로 달려갔던 상상이 안도하며 생의 진실함에 귀착한다.
<고향의 풍경 소리>에서는 <청령포 관음송>과는 결이 다르지만 고향의 소리들에 흐르는 세월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세월’은 생성에서 소멸로 가는 허무의 시간이 아니라 생성에서 더 큰 생성으로 나가는 ‘창조’의 시간으로 이해된다. 이는 ‘자치기 하던 어린 동무’가 ‘강심장 청년’이 되거나 ‘동네 처녀’가 ‘아기 업은 아낙’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는 <세월의 무게>가 보여주고 있는 작가의 ‘시時 의식’이기도 하다.
‘세월의 무게’에 비유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가. ‘나지막이 흐르다 산 중턱에 걸린 구름’이거나 ‘헛개나무 숲새로 스며드는 짧은 햇빛’이거나 ‘두어 번 구르다 아무렇게 멈춰선 바윗돌’이다. 세월의 무게는 곧 이러한 심상이 가지는 ‘무게’에 상응할 터, 존재의 아름다움이거니와 존재하는 그 자체가 우리로부터 비롯되지 않는 ‘선물’이다. 이러한 의식은 ‘하얗게 밀려오는 즈믄 달을 사랑하겠노라’는 다짐에 잘 드러나고 있다. 시적 형상화가 아름다운, 완성도 높은 작품이 아닐까 싶다.
한편 <쑥부쟁이꽃>과 <붕어빵>에서는 작가의 따뜻함이 웃음과 함께 재미있게 그려지고 있다.
‘가이없이 나는 홀로 피었지만// 옹달샘아! 차라리 머물지 말고/ 무심한 가재도 이웃처럼 사랑하렴’의 <쑥부쟁이꽃>이나 ‘그날 붕어빵도 웃고 아주머니도 웃었다’는 <붕어빵> 원석처럼 숨어 있는 삶의 아름다움이 은은히 빛난다.
이렇듯 안재학 님의 시는 장엄하면서도 섬세한 안목으로 시대를 통찰하며 삶의 지향성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소소한 일상의 기쁨과 더불어 시적 형상화를 이루어내고 있는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아마도 이는 수필가로 글쓰기에 천작한 결과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더욱 정진하여 시인으로서 성취를 이루어가며 독자와 함께 기쁨을 누리길 바란다.
심사위원
이근배 (시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허형만 (시인, 목포대 명예교수)
이복수 (수필가, 한림성심대학교 교수)
성광웅 (소설가, 한국문학협회 이사장)
박종래 (시인, 문학평론가, 한국문학협회 대표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