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에 말하기를 높은 산이 낮은 땅에 붙어 있는 것이 박괘니, 윗사람(임금)이 본받아서 아래를 두텁게 해서 자신이 사는 집을 편안하게 한다. [剝卦 大象傳]
동물은 양이고 식물은 음이며, 머리는 양이고 뿌리는 음이다. 그러므로 동물은 머리를 근원으로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겨서 머리부터 생기게 하고, 식물은 뿌리를 근원으로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겨서 뿌리부터 생기게 한다. 동물은 머리를 다치면 죽고 식물은 뿌리를 다치면 죽는다. 가장 중요한 것이 먼저 생기므로 먼저 생긴 것이 다치면 죽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중요한 것을 먼저 보호하고 실천하는 것은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아는 본능이다. 그래서 <대학>에서도 “만물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마침과 시작이 있으니, 먼저하고 뒤에 할 바를 알면 도에 가깝다.”고 한 것이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본말의 경중과 종시의 선후를 지켜야 원활하게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밖으로 돌아다니는 동물은 안을 중시하고, 안을 다독이며 차분히 자라는 식물은 밖을 중시한다. 동물은 겉의 피부는 좀 다쳐도 살지만 몸 안의 내장이 상하면 죽는 것이고, 식물은 속안의 몸통은 텅텅 비어도 살지만 바깥의 껍질이 다치면 죽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각기 자신을 살게 해주는 기운의 근본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근본이 중요하지만 말단이 없으면 근본이 살 수 없다. 피부 없는 동물은 살 수 없고 몸통 없는 나무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근본은 말단 없이는 살 수 없고 말단도 근본 없이는 살 재간이 없다는 뜻이다.
사람의 얼굴에서 작용하는 일곱 구멍 중에서 입과 눈은 동적이라서 양이라 하고, 코와 귀는 정적이라서 음이라고 한다. 양은 하늘과 친하기 때문에 위로 향해야 맞고, 음은 땅과 친하기 때문에 아래로 누워야 맞다. 그런데 양에 해당하는 구멍인 입과 눈은 땅처럼 가로로 누워있고, 음에 해당하는 구멍인 코와 귀는 세로로 서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소강절선생은 그의 저서 <황극경세>에서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은 반드시 사귄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것은 세로로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가로로 있고, 뿌리를 땅에 둔 것은 가로로 있어야 하는데 도리어 세로로 자라니, 이 모두가 사귐이다.”라고 답했다. 입과 눈은 양으로서 계속 존재하기 위해서, 코와 귀는 음으로 계속 존재하고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각기 자신과 상대적인 성질을 가진 음양과 사귄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이 교류를 하지 않으면 인류가 존재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은 것이다. 본말의 질서도 중요하지만 서로 교감을 해야 보완이 되고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음양의 후예이다. 음과 양으로 몸체가 이루어졌고, 음양의 운행법칙을 따라 생로병사를 겪는다. 그런데도 음양의 서로 존중하며 교류하는 법칙을 무시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존재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서 易에서는 ‘높은 산도 결국 땅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듯이, 자신을 떠받들고 있는 아랫사람을 나의 편으로 많이 만들어야 내가 안전하고 편히 지낼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