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代 여제자-60代 은사 아름다운 만남 |
"토끼뜀·뺑뺑이…그러나 사랑이 넘쳤어요"
15일은 스승의 날…"선생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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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여년 전 초등학교 선생과 제자로 만난 인연을 소중히 지켜오고 있는 홍판식 선생님과 제자들이 스승의 날을 앞둔 12일 오후 대구시 범어동의 한 음식점 정원에서 만나 정겹게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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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점수가 나쁘면 '우리는 바보' '우리는 0점이다'고 외치며 학교건물을 뺑뺑이 돌았잖아요." "선생님이 군대식으로 '헤쳐 모여'하면 운동장에서 토끼 뜀뛰기하는 날이었지요."
스승의 날을 앞둔 12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한 한정식집. 5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중년여성 5명이 한 노신사를 모셔놓고 철부지 아이들마냥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재잘거리다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1963년에 영덕군 기계면 기계국민학교(현 포항시 기계초등) 6학년4반을 다녔던 신옥선(57·부산시 영도구 봉래동)·공말순(56·경기도 남양주시 도농동)·이영자(54·대구시 수성구 수성1가)·손차호(55·마산시 양덕1동)·최영남씨(56·대구시 남구 봉덕2동) 등 5명과 당시 담임이었던 홍판식 선생님(65·2003년 칠곡군 가산면 가산초등 교장 퇴임)의 '아름다운 재회'에는 나이도 잊었다.
홍 선생이 기계초등에 부임한 것은 군복무를 마친 1962년 10월. 이듬해 24세의 청년 홍 선생은 6학년4반 '여자반'을 맡았다.
"군에서 바로 제대하신 탓인지 우리를 군대식으로 엄하게 다뤘습니다. 그러나 64명 학생의 집에 숟가락이 몇개인지 알 정도로 가정형편을 잘 아셨지요. 졸업 후 진학하지 못한 제자들 집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진로를 함께 상의하기도 했어요."
애틋한 사제의 정은 그 뒤 10여년간 이어졌다. 제자들이 잘못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선생님과, 철부지를 사랑으로 가르친 고마움을 잊지 못하는 제자들은 틈만 나면 편지를 주고 받았다. 그러나 하나둘 시집을 가고 홍 선생도 전근을 가면서 연락이 끊겼다. 그렇게 수십년이 흘렀다.
몇해 전 최씨가 고향에 가 공씨의 소식을 수소문 한 뒤 만난데 이어 2002년 인터넷을 통해 홍 선생이 가산초등에 근무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하나둘 연락이 닿아 그해 8월 소식이 끊긴지 20여년만에 사제간의 재회가 이뤄졌다.
자연스럽게 촌지나 학교 체벌이야기로 이어졌다. 당시 반장으로 반을 대표해 혼자 매를 맞기도 했다는 공씨는 "선생님의 매는 사랑의 매였다"면서 "요즘 체벌한다고 경찰에 고발하는 일은 분명 잘못됐다. 자식이 잘 되게 하려면 부모들이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부터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안 잔치라도 있으면 떡을 갖다드리고 가정방문 오시면 고구마나 계란을 삶아 대접하는 게 고작이었지만 정말 마음의 선물이었다. 우리는 오히려 선생님에게 돈을 꾸기도 했다"며 돈이면 뭐든지 된다는 잘못된 요즘의 촌지문화를 꼬집었다. 또 선생님의 "참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은 제자들의 좌우명이 됐고 자식교육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홍 선생은 1966년 이 특별한 제자들의 일기 123편과 편지 38편을 묶어 '마음에 꽃을 심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거기에는 홍 선생의 사랑과 제자들의 존경이 가득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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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야꼬야 수고했다^^ 고마워~~~
맨오른쪽 아래 빨간색 화살표 top 클릭하머 13일짜 영남일보 1면이 나온다. 그리로 가서 기사 밑에 꼬리말도 달고 오너라.
영자학생이 특종기사를 서울의 우기자 학생한테 뻬께뿌랬네...... 네가 먼저 신문보고 자료 제공했는데.... 나는 그날 깜짝 놀랐다. 배달온 신문을 받는순간 사랑하든 선생님과 추억속에 잊혀진 친구들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염남일보 특종기사로 1면에 장식하고 있었기에.....특종을 알려준 우기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나는 1961년에 한양으로 유학 왔으니 알수 없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