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의 에스테바리스가 출격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토리오케였다. 그의 얼굴에는 비릿한 조소가 떠올랐다.
'멍청한놈...... 네놈의 그 잘난 조종술을 어디한번 나에게도 보여봐라. 찬란했던 영광을 다시 보여줄테니.'
잠시 후, 토리오케의 에스테바리스도 출격했다. 아카츠키는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도대체...... 또 무슨짓을 벌이려고.......'
아카츠키가 짧은 말로 중얼거렸지만, 에리나는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에 똑똑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에리나조차도 아카츠키가 그들을 불러들인 이유를 확실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비록 아카츠키의 신분이 위험했다 치더라도 그들을 굳이 파일럿으로 불러들일 필요까지 있는 것인가를 생각했다. 한편, 한 기의 에스테바리스에 같이 타고 네르갈 기지를 나섰던 유리카와 아키토. 아키토는 지루해하며 빨리 돌아가자고 보챘지만, 유리카는 재미있다며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했다. 그러나 둘의 얼굴엔 웃음만이 가득했다.
'아키토, 아키토~ 저것봐! 곰이야~!'
유리카가 어린아이처럼 설레는 어조로 말했다. 아키토는 그런 유리카를 보면서 짧은 탄식을 하면서 흘려넘겼다.
'아, 그래.......'
'곰 처음보나...... 아무튼 아직도 애랑 똑같다니까.'
레이더에 빨간 점이 눈에 들어왔다. 아키토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기수를 레이더에 미확인 물체가 잡힌 방향으로 돌렸으나, 그 기체는 레이더망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뭐야, 저녀석...... 장난하자는건가? 왜 자꾸 따라오는거지? 이상해, 유리카. 돌아가자.'
아키토의 표정이 진지함을 띠자, 유리카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보였던 탓이다.
'크흣...... 잘난 지구놈들...... 잘도 그따위 짓을...... 특히 아키토 네놈은 더더욱 용서할 수 없지...... 함대를 박살낸 장본인이니.'
그는 계속해서 조소를 흘렸다.
'준씨, 루리를 찾는 일은......?'
비밀리에 진행되는 이야기인듯, 에리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하지만 토성에서 발견된 사람하고는 다를거라는 추측이.......'
'뭐가 말이죠?! 유적이? 아니면 그녀 자체가?'
에리나의 계속된 질문에 준은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그렇지만, 지구에 귀환할 때도 줄곧 함께 있었고...... 그녀 혼자서는 토성까지 갈 방법이 없잖습니까.'
준이 추측섞인 발언을 하자, 에리나의 의심의 눈초리가 짙어졌다. 과연 그럴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섞인 눈빛. 준은 그런 그녀의 눈빛이 의미하는 바를 알고 있었다.
'저도 아니길 바랍니다만.......'
그는 아니기를 바란다는말로 에리나의 눈초리에 대한 답을 했다. 그녀도 더이상은 묻지 않고 한마디만 한 후 돌아갔다.
'조심하세요. 이번에 회장님의 호위로 들어온 두 명...... 위험해요. 출신지도 불분명하고, 회장님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요. 아직 정확한 건 알 수 없지만, 조심하세요. 그게 당신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배려에요. 그럼.......'
준은 그녀가 의미하는 바를 알지 못해 한동안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대에게 답이 나오겠는가.
''세월은 사람을 낳는다'인가?'
준은 등 뒤에서 갑자기 기척이 느껴지자 움찔했다. 소리없이 다가와서 어느새인가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 놀라게 해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에리나씨와는 상당히 친하신가 보군요? 이런곳에서 밀회를 즐기시는 것을 보면...... 과연, 인생은 새옹지마로군요.'
'뭐야 이자식...... 그녀석인가? 에리나씨가 말한.......'
준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밀회라니...... 그런, 그저 우연히 만났을 뿐입니다. 저는 격납고로 가는 중이라서요.'
그의 눈이 커졌다. 아무래도 의심하는 모양이었다. 인적이 뜸한곳을 지나 격납고로 간다니, 네르갈의 상황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답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준으로서는 달리 급한 상황에서 변명할 거리가 생각나지 않아 우연히 답했던 것이다.
'우연이라...... 하긴, 세상에 반은 우연이라죠. 뭐, 저야 상관 없지만. 그럼 이만 실례. 참, 독수리의 발톱은 조심하는게 좋아요. 매도 무서워 하는 독수리 이니까요.'
의문의 사내는 그렇게 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얕볼 녀석이 아냐...... 정말인걸. 에리나씨의 말. 위험한 사람들이야.......'
유리카와 아키토의 기체를 계속해서 따라오던 의문의 기체가 순간 레이더에서 사라지자, 아키토는 당황했다. 무언가를 할 듯 하면서도 하지 않는 불안감을 조여오던 그 의문의 기체가 사라진 것이다. 돌아갈 수도 없었다. 레이더에서 사라진 이상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유리카는 걱정이 되지 않는다는 듯 아키토를 바라봤다.
'젠장...... 뭐지? 이 근처에 튤립은 없는데...... 맞아, 튤립은 벌써 사라진지 오래야. 5년 전인걸...... 그렇다면 그건...... 에스테바리스?!'
아키토가 결론어린 말을 내놓았을때, 둘이 타고 있는 에스테바리스에 한차례 강한 폭발음이 휘감기더니 이내 엔진에 불이 붙었다.
'뭐, 뭐야. 아키토?!'
유리카가 당황한 듯 소리쳤다. 아키토는 유리카를 안심시키며 말했다.
'괜찮을거야. 진정해 유리카.'
'크흣...... 괜찮지 않게 될거다. 동료들을 죽인 대가는 비싸거든? 어디...... 새로 이식받은 상전이포를 시험해 볼까?'
그가 말한 상전이포란 에스테바리스에 맞게 개량된 상전이포를 말했다. 네르갈이 전쟁의 종전 후, 종전부터 개발해 오던 소형 상전이포가 완성되어 토리오케의 에스테바리스에 처음으로 장착된 것이었다.
'그럼...... 간다!'
소형 상전이포가 얼음에 직격하자, 얼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얼음이 사라진 자리에는 쪽빛 바다의 파도만이 작게 일렁였다.
'뭐, 뭐야! 상전이포?! 설마! 에스테바리스가 상전이포를 쓸리가 없어! 그건...... 목성군도 모르는 일인데, 그렇다면 혹시 아군? 그렇다면 왜 공격하는거지? 상전이포를 쓸 수 있다면 분명히 에스테바리스일거야. 그렇지 유리카?'
'응, 분명히...... 하지만 왜 공격하는걸까...... 우리들, 뭔가를 잘못한거야?'
아키토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냐, 우리는 잘못한 것이 없어. 잠시 나갔다가 온다고 분명히 보고까지 했는걸.'
상전이포가 둘의 에스테바리스의 등 뒤에 있던 불이 붙어있던 엔진을 스쳤다. 운이 좋았는지 상전이포는 엔진만을 앗아간 후, 소멸했다. 그리고 아키토와 유리카가 타고 있는 에스테바리스는 북극 바다속으로 추락해 가고 있었다. 토리오케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 차가운 북극해 속에서 울고있을 동료를 만나보거라. 그리고 죽어가거라! 으핫핫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