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바다, 숲이 환상적이었던 노자-가라산 남파랑길(#23)

[靑山]

하늘, 바다, 숲이 환상적이었던 노자-가라산 남파랑길(#23)

2023. 6. 18 (일) 날씨 : 맑음 기온 : 섭씨 23~27도

거리 : 10km 5시간 동행 : 10명

학동고개-노자산 전망대-가라산-다대산성-저동고개-저동항

<아는 사람>

내 고향 남해 길,

여섯 시간 반을 같이 가는 사람.

여섯 시간 반을 같이 오는 사람.

식사 후 졸릴까 봐 몇 마디 하지만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 곧 입을 닫는다.

이젠 그가 누군지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

물처럼 같이 흐르고

바람처럼 같이 다니다

안개처럼 같이 사라질 우리.

좁은 차 안에 앉아 천 리 길 가고 오지만

가장 잘 아는 한 사람 내 옆에 있으며

언제나 충분하다.

-정용철

<하늘, 바다, 숲>

거제 굴 삼합(보쌈)은 싱싱한 거제산 생굴과 야들야들한 수육에 굴 김치를 함께 싸 먹는 환상의 조합을 말한다.

목포의 삼합은 홍어, 수육, 막걸리를 일컫는데 우린 노을 거제도의 진정한 삼합인 바다와 하늘 그리고 섬의 보배인 숲을 묶어 거제도의 삼합이라고 말하련다.

학동고개에서 시작되는 오늘의 산행은 바닷가 걷기의 남파랑 길에서 순수한 산길을 걷는 힘든 여정이다.

23코스가 시작되는 학동고개는 매바위, 선녀봉이라 불리는 뫼 바위에서 볼 때 매가 산중에 올라앉아 내려다보는 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학동인데, 이 이름의 유래는 모두 학과 연관되어 있다.

바다를 둘러싼 산의 줄기가 학이 날아가는 형상이라는 설과 따뜻하고 소나무가 울창해 가을철마다 학이 찾아왔다는 설이 전해진다.

안내판을 가로막고 있는 승용차를 피해 간신히 인증사진을 찍고 이내 산허리를 오르는 산꾼들은 모두 각개전투하듯 쏜살같이 언덕을 오른다.

거제도 산 길의 숲

탑포마을과 다도해

느리게 오르기로 작정하고 천천히 오르막을 한 발 두 발 숲으로 들어선다.

노자산 가는 방향의 전망대를 목포로 우측으로 들어섰는데 무척 험하고 경사가 큰 비탈길이다.

쉬다 가기를 반복하며 겨우 전망대에 올랐는데 조망이 환상적이다.

노자산 케이블카가 개통되어 많은 사람이 전망대에 올라 주변 경치를 즐기고 있다.

거제도는 우리나라 두 번째로 큰 섬이어서인지 산줄기가 제법 길고 능선도 우람하다.

곳곳에 봉우리가 우뚝하고 멀리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흡사 덕유산 능선을 연상하게 한다.

전망대에서 보이는 주변 시계는 섬과 능선 그리고 움푹 팬 듯 늘어선 바다의 절경으로 눈이 부시다.

남동쪽으로 학동 몽돌해변과 외도 멀리 갈곶도, 바람의 언덕, 우제봉, 학동동백림이 지척으로 보이고 가라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미려함과 웅장함으로 우뚝하다.

서쪽으로 보이는 탑포마을과 죽도, 용초도, 추봉도, 한산도의 옹기종기 떠 있는 다도해의 멋진 풍광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노자산 전망대

불로초와 절경이 어우러져 늙지 않고 오래 사는 신선이 된 산이라 하여 노자산(老子山)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는데 거제도의 동남쪽 동부면 구천, 부춘, 학동을 끼고 있다.

해발 565m로 남쪽으로는 거제 수봉 가라산(585m)과 연결되어 있다.

가을 단풍이 절경인 이곳에는 여러 종류의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세계적으로 희귀조인 팔색조가 서식하고 있어 신비의 산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학동 몽돌밭에서 바라다보이는 정상의 기암괴석도 일품이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이는 춤추는 듯 솟아 있는 다도해의 비경은 보는 이의 가슴을 울렁이게 한다.

등산코스는 자연휴양림에서부터 개설된 등산로를 따라 산행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온 산이 단풍으로 불붙는 가을이면 동부 부춘 마을에 있는 혜양사 뒤편으로 산행하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갈림길에서 이정표를 본다. 노자산 1.4km, 학동고개 1.7km, 가라산 3.5km, 저구 삼거리 7.1km.

능선은 비탈과 오솔길 그리고 가끔 시야를 트게 하는 조망 바위를 오르내린다. 감탄사를 외치며 설치된 난간에서 외마디를 치며 아찔함을 즐긴다.

파노라마로 선경을 찍으며 나 홀로 즐거워하는데 남쪽으로 길게 뻗은 가라산 가는 길은 한없는 먼 길로 다가온다.

녹색 정원 같은 숲이 계속되고 조망 바위에 서면 파란 하늘이 머리에 아찔한데 눈앞의 드넓은 바다는 가슴 한가득 평화로움과 안정을 느끼게 한다.

갑판 난간에서 찍는 거제도 한 바퀴 파노라마 촬영은 모처럼 진정한 사진 구도를 멋지게 읊조리게 한다.

산과 바다, 하늘이 만드는 기막힌 구도는 사진 촬영의 뷰 포인트로 최고다.

전망대에서 본 가라산 가는 산줄기

파노라마 사진

노자산 가는 산줄기

학동 몽돌해변

조망 데크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선경이 따로 있을 리 없겠지만 이처럼 녹색의 풍요가 가득한 숲도 드물다.

바닷바람으로 닦인 잎새가 윤기가 절로 나고, 새들이 집을 짓고 노니는 음습한 숲은 적막과 고요를 보여준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기막힌 되풀이는 산길을 걷는 게 쉬운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일깨우고, 이내 바람의 언덕처럼 절벽에 서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외치고 싶은 절규의 감정이 용솟음친다.

가라산 가는 능선 길

망산에 가려 보이지 않는 여차 홍포 해안은 해변을 따라 명사해수욕장으로 가는데 대병대도, 소병대도 등 여러 섬에서 야영하며 낚시를 즐길 수 있다. 

물이 맑고 깊어 낚시터로 주목받으며 드라이브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팔색조가 찾아오는 학동동백림도 조망터에서 잘 보인다.

국내 팔색조 번식지이며 동남아시아의 말레이반도에서 살다가 여름에 학동동백림을 찾아오는 여름 철새이다. 귀여운 요정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편안하고 아늑한 낙원처럼 숲이 계속되다가 문득 아찔한 봉우리가 눈앞에 다가온다.

잠시 머물며 방울토마토와 매실 물을 마시며 보았던 경쾌한 산줄기는 어디 가고 높다란 봉우리의 가라산이 숨이 막히게 한다.

진마이재에서 멀리 바람의 언덕이 보인다. 도장포마을 북쪽에 있는 언덕으로 거제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탁 트인 바다 전경이 일품이다.

원래 지명은 ‘띠밭 늘’로 불렸으나, 2002년부터 바람의 언덕으로 명명되어 알려졌으며, 각종 TV 드라마의 촬영지로 소개되었다.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관광공사 선정 2019-2020 한국 관광 10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거제해금강도 보이는데 원래 지명은 갈도(葛島)인데 자연경관이 빼어나 1971년 명승 제2호로 지정되어 등재되었다.

사자바위, 미륵바위, 촛대바위, 신랑바위, 해골바위 등으로 둘러싸인 해금강은 서복(서불)이 중국 진시황제의 불로초를 구하러 왔다 하여 약초 섬으로 불린다.

수십 미터 절벽에 새겨진 만물상과 열십자로 드러나는 십 자 동굴 및 사자바위에서의 일출이 장관이다.

쉼과 오르기를 여러 번 지난 끝에 가라산 정상에 섰다.

가라산은 거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원삼국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이다.

이름의 유래에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경관에서 온 것으로 ‘사계절 변화가 뚜렷하고 아름다워 비단에 별들이 수많이 모여 수를 놓은 듯이 보이는 산’이라는 뜻이다.

다른 하나는 금관가야의 국경이 북으로 해인사 뒷산(가야산), 남으로 거제도의 남쪽 끝 산까지였는데, 남쪽의 가야산이 가라산(加羅山)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라산 봉수대 : 한양의 목멱산 봉수로 신호를 전달하는 경상도 직봉 2로 중 간봉 2로의 초기(初起) 봉수로,

조선 초기에는 미륵산 봉수로 신호를 전달하였지만,

조선 중기에 계룡산 봉수가 신설되면서 계룡산 봉수를 거쳐 미륵산 봉수로 전달하였으며,

이후 거제의 치소를 거제면으로 이동하면서, 계룡산 봉수가 폐지되고 한배곶 봉수가 신설되어

가라산→한배곶→미륵산 봉수로 연결되는 노선으로 변경되어 조선시대 말까지 유지되었다.

조망바위에서 본 노자산 방향 산줄기

가라산은 동쪽으로는 동부면, 서쪽으로는 남부면을 접하고 있는 거제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노자산과 연결되어 있으며, 학동 오지막 계곡을 좌우로 하여 가라산과 노자산으로 구분한다.

숲이 울창하고 단풍나무가 많아 사계절 변화가 뚜렷하여 비단길이 아름답다고 가라산으로 불린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가라산 남쪽 10리에 송변현(松邊縣)이 있었다고 한다.

가라산 봉수대는 남해안을 경계하는 전초 기지로 해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거제의 주봉인 계룡산 봉수대와 한산도 봉수대에 알렸다.

가라산 남쪽 중봉에 다대산성이 있으며, 고려시대 축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산성은 외침을 막기 위해 축성된 성이라 전해온다.

산 정상 남쪽은 천 길 절벽이며, 이 절벽 아래 신라 시대 견암사(見岩寺)란 절이 있었다고 한다.

거제도 숲

조망터에서 본 동쪽

남동쪽 조망

가라산을 내려오다 문득 돌무더기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산성을 만났다. 거제 다대산성인데 남부면 다대리의 봉우리에 있는 돌로 쌓아 세운 성이다.

성벽은 긴 벽돌 모양으로 다듬은 성 돌을 이용하여 바른 층 쌓기 방식(돌쌓기의 일종으로 돌의 면 높이를 같게 하여 가로줄눈이 일직선이 되도록 쌓는 방법)으로 세웠다.

이는 신라의 전형적인 성을 쌓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다.

문지(문이 있던 터 혹은 문 터) 3개소를 비롯하여 성안에 집수(한 곳으로 물이 모이게 하는 것) 터 1개소, 건물터 2개소, 서낭당 터가 있다.

다대리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송변현이 설치되어 있었던 곳이다.

다대산성의 입지, 성을 쌓는 방법, 출토 유물 등을 감안해 볼 때 송변현(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다대리 일대에 있던 옛 고을)의 치소((어떤 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아보는 기관이 있는 곳)

의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되기 때문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다대산성은 입지상 남쪽과 서쪽으로 대한해협과 한산만이 보이는 탁월한 조망권을 가지고 있다.

북동쪽에는 가라산 봉수대, 북쪽에는 탑포 산성과 율포 산성이 가까이 있는 거제 남부지역의 군사적 요충지 역할을 한 곳으로 추정된다.

다대산성의 축성 시기는 고려시대로 알려졌지만 조사 결과 다대산성은 삼국 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축성기법이라는 점이 발견되어 이 성이 통일신라시대 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기존 성벽의 둘레가 395m로 알려졌지만, 정밀 측량 결과 성벽의 둘레는 이보다 49m 더 긴 444m로 조사됐다.

진마이재에서 본 가라산

다대산성 축성(성 돌)

가라산 중봉 261m의 9부 능선을 따라 테를 두르듯 만든 테뫼식 산성인 다대산성은 자연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게 만들어져 남쪽에서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기 유리하게 지어졌다.

특히 다대산성 내부와 외부에선 모두 4곳의 채석장이 발견됐는데, 학계에선 고대산성의 산성축조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료로 주목하고 있다.

문지는 동쪽을 제외한 북ㆍ남ㆍ서문지가 발견됐다. 특히 북문지에서 확인되는 개구부는 경남지역 산성에서 잘 확인되지 않는 구조물로 산성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다대산성 위치도

다대산성을 둘러보고 오늘 산행의 마무리가 너무 좋았다.

숲과 하늘 그리고 바다를 보며 걸었던 산길에서 문화유산 다대산성까지 보는 행운을 얻었으니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오랫동안 산성과 정자에 빠져들면서 역사의 그늘과 진실이라는 묘한 감정을 알게 되었다.

책을 통해 얻을 수 없는 현장의 생생한 자취는 향토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조그마한 산성이 마을 뒤편 어딘가에 허물어지고 있지만 거기에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힘들게 고생했던 백성의 애환이 서려 있음에 놀라곤 했다.

산기슭에 쌓은 성 돌의 허물어짐은 등짐을 지고 오르내렸던 그 시대 백성들의 울부짖음을 느끼게 한다.

저구 삼거리

저구 고개에 내려서자 반기는 수국들의 화려한 마중은 오늘 산행의 백미다.

매년 이맘때 열리는 저구항 수국 축제가 바로 지금인데 길가에 핀 꽃들의 멋진 광경이 반갑다.

보건소에서 땀을 씻고 마시는 맥주와 시원한 수박의 환상 조합은 뜨거웠던 노자산과 가라산 종주로 힘들었던 육체에 청량감을 주는 최고의 묘약이었다.

남파랑길 여정의 산길 걷기가 악재가 아닌 청량감과 시각적 특효약으로 변신한 하루였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숲의 향연이 가득했던 노자-가라산 걷기는 한동안 잊을 수 없는 멋진 노정이었다.

저구항에서 본 가라산

[쪽빛]

오늘도 한권의 지리.역사책을 읽은듯 선연히 풍경이 그려지네요.성을 쌓기위해 등짐으로 돌을 날랐을 선조들의 노고어린 모습을 절절히 표현해 주신 덕분에 과거로 시간여행도 잠시 다녀옵니다. 개인사로 인하여 함께하지 못한 여정을 사진과 세세한 설명을 곁들인 글로 인하여 직접 걸은것보다 더 생생하게 공감을 해봅니다. 무척 감사한 마음으로 즐감했습니다.

[靑山]

15년 전 팔팔했던 시절에 계룡산-노자산-가라산-망산 종주가 생각납니다.
완주를 위해 오르막과 내리막을 정신없이 달렸던 그 시절에는 하늘도 바다도 숲도 지나치던 시선에선 없었습니다.
힘이 들어도 엊그제 걸었던 거제의 산길에서는 바다, 하늘 그리고 숲이라는 대자연을 보는 선물을 받았네요.
산성과 정자를 보면 언제나 마음이 설레곤 하는데 다대산성은 역사의 현장을 만나는 의미있는 탐방이었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