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 목 : 사적 제346호
명 칭 : 무장현관아와읍성(茂長縣 官衙와 邑城)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지
수량/면적 : 205,997㎡
지 정 일 : 1991.02.26
소 재 지 : 전북 고창군 무장면 성내리 149-1외 일원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고창군
관 리 자 : 고창군
무장읍성은 1417년 무장진의 병마사에 마을을 다스리는 기능을 주어 무장진 병마사 김노(金蘆)가 쌓은 길이 약 1.2km의 평지성이다.
읍성의 남문인 진무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이며, 동문터도 잘 남아 있다. 성 주위를 둘러싼 물길인 해자는 폭 4m·길이 574m 정도로 그 흔적만 남아있다. 성 안의 건물로는 객사·동헌이 있다. 『문종실록』에 의하면 읍성의 둘레는 1,470척(약441m)·높이 7척(약2m)이며, 해자의 둘레는 2,127척(약638m)이고 문는 2개가 있으며, 성의 규모를 넓혀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무장읍성은 조선시대 옛 읍성의 모습을 연구하고 살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988년이래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무장읍지에는 현재까지 옛 고을(읍치)에서 2대 핵심 건물이던 객사와 동헌이 공존하고 있고, 또 읍성(토성)이 남문 및 동문(옹성)지와 함께 그 외주(外周)의 해자와 나란히 병존하고 있어서 다시 말해 객사와 동헌, 성곽과 해자가 같이 남아 있어서 심히 드물게 보는 중요한 유적지임이 분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향청(鄕廳)· 연청(椽廳)· 내아(內衙)와 성황당· 사직단· 여단 등 여러 공존시설의 원위치도 옛 지도나 고노(古老)들의 증언을 통해 거의 확인할 수 있어서 1991년 2월에 사적 제 346호로 지정하였다. 더욱이 무장읍지는 신문물 전래이후 다른 고을의 경우와는 달리 성밖의 고창 ∼ 영광 간 대로변으로 신시가지가 형성 개발되고, 성내에 상기(上記) 여러 아사(衙舍)와 객사를 개조한 국민학교· 면사무소· 경찰지서 등 공존건물과 20호의 민가가 있을 뿐 현재 거의가 국공유(國公有)의 야산 (野山) ·농지(農地)· 운동장 등으로 남아있다. 위와 같이 여러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무장읍지는 오늘날 전국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옛 우리 읍치(고을)의 전형을 조사 복원하는데 가장 알맞은 적지(適地)이다.
도로변에 바로 진무루(鎭茂樓)가 있다.
읍성의 남문인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이층누문(二層樓門)으로 건평 4평이다.
광해군 4년(1612)에 개건(改建)되어 여러 차례의 개수를 거쳤다 하고, 1984년에 크게 중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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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곽은 조금 남아있을뿐이고, 복원한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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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성곽이 있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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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편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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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성 안으로 들어왔다. 진무루의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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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루 뒤로는 객사다.
객사(客舍) - 사두봉(蛇頭峰)남록(南麓)의 거의 읍내 중심에 자리잡고 있으며 정면 11칸, 측면 3칸, 건평(建坪)80평, 기단석축(基壇石築)고(高) 80㎝이다.
관명(館名)은 송사관(松沙館)(무송(茂松) 장사(長沙)의 약(略))이고 조선후기에 지어졌음은 확실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수년 전까지 면사무소로 사용된 까닭에 특히 내부구조의 변형이 심하였는데, 1990년에 원형에 가깝도록 일대수리(一大修理)를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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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건물의 높이가 본관보다 낮은이유는, 격을 낮추기 위함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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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앞에있는 진무루가 웅장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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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자 (垓字)의 흔적같다.
흔히 성지(城池) 혹은 성호(城濠)라 하는 바와 같이 해자(호)는 방어목적(防禦目的)의 성곽(城郭)에 필히 병설(倂設)되었던 것인데도 현재 성과 함께 해자가 남아있는 예(경우)가 심히 드물다. ○무장해자(茂長垓字)는 남문의 동서 약 150m만 없어졌을 뿐, 폭(幅) 약4m로 , 길이 약574m에 이르는 흔적이 성 둘레에 완연(宛然)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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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앞에있는 국민교육헌장이다.
아직도 남아있는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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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東軒)
당호(堂號)는 취백당(翠白堂)이고 성내의 서남쪽 현(現) 무장초등학교 교사(校舍)뒤편에 위치하며 정면 6칸, 측면 4칸, 건평 45평, 석축기단 고(高) 45㎝이다. 인조(仁祖) 13년 (1635)에 창건되어 수차(數次)의 개건(改建)을 거쳤다 하고, 1983년에 크게 중건(重建)되었다. 일정(日政) 초(初) 모든 고을에서 거의 종전(從前)의 동헌(여러 아사(衙舍)의 중심건물 )은 군청 또는 면소(面所)로, 객사(客舍)는 학교로 개조 사용되었는데 무장의 경우는 그 반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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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서 보이는 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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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된 돌들. 복원때 쓰일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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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뒷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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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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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과 선정비가 오랜 세월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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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객사쪽으로 나왔다.
좌우 건물이 격을 위해 낮춘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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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루가 역광의 실루엣으로, 당당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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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사용한 흔적이 좌우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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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이래 여러 차례의 조사를 통해 무장읍지에는 현재까지 옛 고을(읍치)에서 2대 핵심 건물이던 객사와 동헌이 공존하고 있고, 또 읍성(토성)이 남문 및 동문(옹성)지와 함께 그 외주(外周)의 해자와 나란히 병존하고 있어서 다시 말해 객사와 동헌, 성곽과 해자가 같이 남아 있어서 심히 드물게 보는 중요한 유적지임이 분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향청(鄕廳)· 연청(椽廳)· 내아(內衙)와 성황당· 사직단· 여단 등 여러 공존시설의 원위치도 옛 지도나 고노(古老)들의 증언을 통해 거의 확인할 수 있어서 1991년 2월에 사적 제 346호로 지정하였다.
더욱이 무장읍지는 신문물 전래이후 다른 고을의 경우와는 달리 성밖의 고창 ∼ 영광 간 대로변으로 신시가지가 형성 개발되고, 성내에 상기(上記) 여러 아사(衙舍)와 객사를 개조한 국민학교· 면사무소· 경찰지서 등 공존건물과 20호의 민가가 있을 뿐 현재 거의가 국공유(國公有)의 야산 (野山) ·농지(農地)· 운동장 등으로 남아있다. 위와 같이 여러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무장읍지는 오늘날 전국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옛 우리 읍치(고을)의 전형을 조사 복원하는데 가장 알맞은 적지(適地)이다. - 문화재 정보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