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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아비가일처럼 해보고 싶다(2152.2022.8.28) 삼상25:23-3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정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입니다. 홈 스위트 홈입니다. 가정은 사랑의 보금자리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아내... 가장 사랑으로 존경하는 부모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가정의 희망인 자녀들이 함께 아우러 사는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행복한 곳이고 또 행복해야 할 곳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해야 할 가정에 먹구름이 끼고 천둥이 치면서 불행이 엄습하는 가정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불행의 먹구름은 외부에서 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정 안에서 피어나는 먹구름입니다. 가족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분노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가정에서 부부싸움을 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홧김에 석유를 뿌리고 집에다 불을 질렀습니다. 가족이 모두 불에 타죽고 집도 타버리고 전부를 잃었습니다. 분노는 일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합니다. 사람이 분노하게 되면 흥분을 하며 과격해집니다. 이성을 잃어버리게 되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 격한 감정에 빠지게 됩니다. 격한 분노는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입니다.
50년을 함께 산 부부가 있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어느 날 미닫이 문(門)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에게 욕설을 퍼붓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밖에서 욕설을 퍼붓고 있던 아내의 목소리가 뚝 끊기고 조용해졌습니다. 남편은 자기가 이겼다는 생각에 고무되어 기세가 등등해져서 더욱 심하게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지났는데도 아무런 대답이 없자 노인은 자기 부인이 혹시 밖으로 나가 버렸는가하여 미닫이 문을 열어보니 아내는 거기 쓰러져 죽어있었습니다.
평소에 심장이 약하던 아내가 극도로 화가 나서 욕을 하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켰습니다. 그 제서야 ‘이런 바보 같으니 방금 까지 기세 좋게 싸우다가 죽어 버리는 사람이 어디 있나 바보 같은 사람, 바보 같은 사람’하며 울부짖어 보았지만 숨진 아내는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50년 부부생활의 끝맺음치고는 너무나 불행한 끝맺음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분할 일도 많고 또 분노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가족으로 인하여서, 직장 일로, 이웃으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서는 공격을 하고 가는 사람, 출근했더니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교인 중에서도 터무니 없는 말로 마음에 상처를 주고 분노케 만드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운전을 하고 가는데 갑자기 옆에 있는 차가 끼어 들었습니다. 그 때 어떻게 합니까? 분노가 생깁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가 생기지만 참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개 아들 하면서 욕을 해대며 운전대를 상대방의 목으로 알고 비틀며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창문을 열고 ‘집에 가서 애나 봐라’고 욕하다가 그것도 분이 안 풀려 앞에 차를 세워놓고 한 바탕 하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저 무덤 덤 하게 무시하고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급한 일이 있겠지 하며 사고 나지 않도록 기도해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님들은 어떤 스타일입니까? 우리는 늘 분노 할 수밖에 없는 삶의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는 분노의 지뢰밭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는 화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봅니다. 체면, 억압문화 때문에 분노를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속 깊이 품고 있다가 결국 분노의 노예가 되어 그것이 병이 되어 사는 사람들입니다. 분노를 스스로 다스리지 않으면 결국 그 사람은 분노의 노예가 되고 분노 때문에 병이 들고 큰 일을 저지르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잠19:11절‘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잠16:32절‘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것 보다 나으니라’남의 허물을 덮어주고, 노를 발하지 아니하고, 혹시 분노한다 하여도 해가지기 전에 푸는 것은 남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오히려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분노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가정이 행복해지려면 가정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다스리고 완화 시킬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는 지옥문 입구까지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래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을 잘 다스린다면 승리자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비가일’이라는 여인으로부터 분노를 잠재우는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따라서 합시다.‘나는 오늘부터 아비가일이다’, ‘나는 오늘부터 아비가일이다’ 다윗의 분노를 잠재운‘아비가일’의 이야기를 통하여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에 아비가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비가일은‘아버지가 기뻐하신다’는 뜻의 이름입니다. 아비가일은 이름 그대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짧은 기록이지만 아비가일의 이야기를 읽노라면 참으로 감동스럽습니다. 미련은 살 사람도 죽이지만 지혜는 죽을 사람도 살린다는 교훈입니다. 이 시간 아비가일을 통해서 구원의 비밀을 점검해보고 나도 아비가일 처럼 해보고 싶다 말씀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나발은 예의와 도리를 저버리고 오히려 망언을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10-11절‘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이 말은 어리석은 나발의 말입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고 있었습니다.
다윗을 따르는 사람은 약 400명이었는데 매우 배가 고팠습니다. 다윗이 나발의 목자들에게 많은 보호를 베풀었던 것을 생각하며 갈멜에 사는 나발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마침 그 날은 목자들의 축제일인 양털 깎는 날이었습니다. 나발은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도리어 다윗을 불량배 문외한 취급하며 모욕하고 비난하는 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화가 나 나발을 죽이려고 군사를 이끌고 가게 됩니다. 이게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배은망덕하고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하나님 형상을 따라 가장 귀하게 지으시고 모든 피조물을 그 손에 맡기셨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사탄의 말을 따라 반역의 길을 갔습니다. 그러므로 악하고 미련한 나발이 바로 우리 인간입니다. ‘나발’이란 ‘미련한 자’라는 뜻입니다. 미련은 악과 친구입니다. 그래서 미련하고 악한 종입니다.
롬1:21절‘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했습니다. 요3:36절‘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못났어도 예의와 도리를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어디를 가든지 간에 예의 범절을 잘 지키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에게 쫓기는 다윗이 마온 광야에 있을 때 그 곳에서 큰 부자인 나발의 일꾼들이 가축을 먹였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군대가 주둔하는 지역에서 가축이나 먹을 것을 탈취하지만 다윗의 부하들은 오히려 보살펴 주었습니다. 종종 몇 십명씩 떼를 지어 약탈하는 아람 사람들이 출몰했으나 다윗이 막아주었습니다. 나발의 재산을 지켜주었습니다.
양털을 깎을 때 주인은 큰 잔치를 열어 일꾼들을 먹이고 주변의 가난한 자들에게도 나누어 줍니다. 나발은 왕의 잔치 같은 큰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런 기회에 도피 생활을 하느라 먹는 것이 변변치 못했던 군사들에게 다윗은 별미를 한번 먹이고 싶어 사자를 보내 정중히 ‘내 소년들로 네게 은혜를 얻게 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 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말처럼 존대어가 없는 외국어를 그대로 번역해서 말을 놓고 있지만 실제는 아주 높여 말하고 있습니다.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 원하노라’ 이 말은 ‘당신의 아들 같은 다윗에게 좀 주시기를 원합니다’란 말입니다. 불과 두서너 살 위인 나발에게 다윗이 이렇게 겸손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발은‘다윗이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즘 자기 주인을 떠나는 종들이 많다더라’하였습니다. 나발이 다윗을 잘 알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말투입니다. 불레셋 장군 골리앗을 쳐서 나라를 구하고 사울에게 쫓겨 다니는 사정을 알고 있습니다. 특히 아람 사람의 손에서 자기 가축을 보호해 준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이 사울을 배반하고 도망 나온 나쁜 종 취급을 했습니다.
나발이 한 말을 좀 쉽게 하면 ‘내가 내 일꾼들을 위하여 준비한 음식을 어떤 인간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에게 줄 수 없다’하고 망언을 한 것입니다. 부자가 양털을 깎을 때 가까이 있는 군사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것이 도리입니다. 골리앗을 죽여 국가에 공을 세운 다윗이 자기 가축을 보호해 주는 은혜를 생각해 다윗의 군사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것은 예의입니다. 나발은 예의와 도리를 저버리고 오히려 망언을 했습니다. 나발은 인간의 도리도 은혜에 대한 예의도 없이 불량하고 무례하였습니다. 다윗이 나발의 소행에 분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멸하려고 나섰습니다. 미련하고 불량한 사람은 이렇게 망할 길을 자초합니다.
2.신앙과 지혜로 똑똑한 아비가일입니다.
나발의 집에서 일하는 소년 하나가 나발의 처 아비가일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실을 알렸습니다. 다윗의 군사는 우리가 들에서 양을 칠 때에 우리를 보살펴주어 아람 사람들의 약탈도 막아 주어 가축을 잃거나 상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자를 보내 잔치 음식을 조금 달라고 하는데 무례하고 대험한 말을 해서 쫓아버렸습니다. 다윗이 군사를 일으켜 무례한 나발의 집을 멸하려합니다. 당신 남편인 나발은 불량한 사람이라 말을 못하였으니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알아서 하십시오. 하였습니다.
남편이 저지른 미련하고 불량한 일을 알게 된 아비가일은 급히 먹을 것을 나귀에 싣고 소년들을 앞세워 다윗을 찾아갔습니다. 나발을 치겠다고 오던 다윗이 아비가일을 만나 ‘내가 나발의 소유물을 광야에서 지켜 하나도 손실이 없게 한 것이 진실로 허사였다. 나발이 악으로 나의 선을 갚았다. 내가 그에게 속한 모든 남자들을 아침까지 남겨두지 않고 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이 다윗이 진노하여 다가온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 합니까? 18-19절에 그때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이 이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다윗이 요구한 것을 들어줍니다. 군사들에게 줄 양식, 떡 200덩이, 포도주 두 가죽부대, 잡아 준비한 양 5마리, 복은 곡식 5자루, 건포도 100송이, 무화과 200뭉치를 당나귀에 싣고는 분노하여 칼을 들고 달려오는 다윗을 향해 나아갑니다.
다윗이 요구한 그것을 가져왔습니다. 27절‘여종이 내 주에게 가져온 이 예물로 내 주를 쫓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옵시고’라고 말합니다. 엄청난 양의 음식들을 재빠르게 준비해서 다윗에게로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지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손놀림도 빨랐습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이 요구한 것들을 준비해서 그를 만족시켜 준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왜 분노합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때에 분노가 일어나던가요? 자기의 요구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때 분내고 화를 냅니다.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는데 화를 내는 사람이 있다고 하면 정신병자입니다.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힌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에게서 우리는 가정의 화평을 만드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남편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고 들어주십시오. 남편들은 아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세심히 살피고 그것을 들어주십시오. 부모님의 요구를 들어드리고, 자식들의 요구를 들어주십시오. 그리하면 평화가 있는 가정이 됩니다. 요구하는 것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에 가족들에게서 분노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을 들어 준 것입니다. 분노하는 자의 마음을 들어주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무시당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더욱 분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분노하는 자와 논쟁을 벌립니다. 사실 그래야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랬을 경우 더더욱 분위기가 험악해져만 갑니다. 서로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리고는 돌이킬 수 없는 깊은 골을 만들고 맙니다. 가족간에 그리고 교인간에 그렇게 되면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느니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분노하는 자의 소리에 마음을 열고 들어준다면 최대한 그의 요구에 따라줄 수 있다면 더 중요한 평화를 잃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에 귀를 기울입시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너더러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가주고 속옷을 달라거든 것 옷까지 벗어 주라’그리하면 서로에게서 평화를 얻게 된다는 원리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만나 그 앞에 무릎을 끓고 엎드려 절하면서 분노한 다윗을 달래며 분노를 풉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아비가일의 청을 듣고 노를 풀고는 양식을 받고 나발의 집을 살려 줍니다. 다윗은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만나 피를 흘리지 않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은 어떻게 다윗의 분노를 풀게 되었을까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이 아비가일의 지혜를 배우므로 교회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어나는 분노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를 배우므로 교회를 행복하게 가정을 행복하게 우리의 일터를 평화롭게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아비가일은 분노하는 다윗을 향하여서 그것은 ‘나의 죄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3-24절‘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그 얼굴을 땅에 대니라 그가 다윗의 발에 엎드려 가로되 내 주여 청컨대 이 죄악을 나 곧 내게로 돌리시고 여종으로 주의 귀에 말하게 하시고 이 여종의 말을 들으소서’아비가일은 이 모든 일들이 이 난리가 ‘자기의 허물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그녀와 상관없는 남편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죄로 돌립니다.
다윗은 놀랐을 것입니다. 이 당돌한 여자가 와서는 자기와 상관도 없으면서 나의 죄이오니 나를 용서해달라고 할 때 다윗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다윗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분노가 가라앉는 것을 느낍니다. 아비가일의 아름다움에 다윗의 분노가 가라앉은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내 잘못이니 용서해 달라고 한 말이 다윗의 분노를 가라앉게 만든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가라앉히는 비결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남편이 혹은 아내가 또는 부모님이 무슨 일로 화를 내시면 이렇게 말하십시오. ‘모두가 제 잘못입니다. 용서하십시오’그리하면 상대방의 분노는 햇빛에 눈 녹듯이 사르르 녹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분노한 사람이 오히려 미안 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니가 잘했느니,내가 잘했느니, 하고 따지고 맞붙어서 화를 내게 되니까 그만 큰 싸움으로 번지게 되고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했습니다’이 말은 패자의 고백이 아닙니다. 큰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기억하세요. 가정이든지, 교회든지, 그 어디든지, ‘내 탓입니다’ 라고 말하는 죄인이 많은 세상은 천국이요.‘네 탓이다’ 라고 말하는 의인이 많은 세상은 지옥입니다. 분노하는 일이 일어날 때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나의 죄 때문입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그렇게 말하며 삽시다. 그러면 여러분은 Peace-maker 가 될 것입니다. 주님은 마5:9절‘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원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철저히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용서의 팔인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죄인임을 슬퍼해야 하나님께 거룩하게 하심을 받습니다. 이사야가 그랬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자기의 죄를 발견했습니다. 사6:5-7절‘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했습니다. 이 시간 여러분도 성령의 불로 악을 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오순절에도 그랬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예루살렘 사람들이 가슴을 치면서 회개했습니다. 행2:37-38절‘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했습니다. 그러나 요일1:8-10절‘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한 것처럼 죄를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용서를 청한 아비가일의 모습입니다. 27-28절‘여종이 내 주께 가져온 이 예물을 내 주를 따르는 이 소년들에게 주게 하시고 주의 여종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아비가일이 다윗에게 한 말 중에 ‘주’라는 단어만 해도 얼른 세보면 28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여종이라는 말도 여러 차례 나옵니다. 당시 사람들은 왕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어리석은 자기 남편의 용서를 구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노를 풀고 뽑았던 칼을 거둡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나의 주로 삼으면 구원입니다. 입으로만 주가 아니라 진실로 주를 높이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겸손해야 은혜를 주십니다. 약4:6-7절‘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했습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분노한 다윗 앞에 엎드려 ‘내 주님은 이 죄악을 저에게 돌리고 인간 갖지 못한 나발을 개의치 마십시오. 내 남편의 별명이 나발입니다. 그 별명대로 되먹지 못하고 미련한 인간입니다. 제가 당신이 보낸 사자들을 보지 못해 나발이 불량한 짓을 막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실 당신이 그까짓 인간 나발을 죽여 손에 피를 흘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발 같은 하찮은 인간을 죽여 놓고 마음 아파하시지 말고 차라리 여호와께 맡겨버리십시오. 그리고 후일 여호와께서 당신을 후대하여 왕이 되시거든 이 여자를 생각해 주십시오’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남편의 잘못을 변명하지 않고 솔직하게 불량한 것을 인정하였습니다. 비록 남편 나발은 불량하고 미련하여 도리도 모르고 예의도 모르는 짓을 했지만 당신은 앞으로 이 나라의 왕이 되실 분이니 내 남편을 죽여 더러운 피를 손에 묻히지 마십시오. 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에 감동을 받습니다. 아비가일의 말에 감동을 받은 다윗은 아비가일을 보고 ‘네 집으로 평안히 올라가라 네 말을 듣고 네 청을 내가 허락해 주겠다’하고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아비가일의 지혜로운 말은 남편과 집안을 구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갈 수 있습니다.
3.아비가일은 다윗의 부인으로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높여 주었습니다. 아비가일은 말합니다. 28-31절까지를 보십시오. 참으로 다윗이 깜짝 놀랄 말들을 던져줍니다.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30절‘내 주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신 때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실 것이라고 믿는다는 것입니다. 아비가일은 다윗을 높입니다. 다윗이 이제까지 선하게 살아왔던 것을 자랑스럽게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이 언제까지나 지키실 것을 확신시켜 줍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나라의 지도자임을 일깨워줍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어찌 대단치도 않은 나발 같은 이를 죽여서 오점을 남기려고 하십니까? 큰일을 하실 분이 어찌 그런 작은 일로 흠이 생겨서야 되겠습니까? 이쯤 되면 분노를 멈추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 사람은 자기를 높여주면 조용해집니다. 아니 기뻐합니다. 사람 안에 있는 자긍심을 키워줄 때 당당해집니다. 여유를 갖게 됩니다. 감정의 그릇을 충족시켜 줄 때 너그러워 집니다. 이런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는 다윗이 뭐라고 대답합니까?
32-33절‘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 할지로다 오늘날 내가 피 흘릴 것과 친히 보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그녀의 지혜로운 말에 다윗은 하나님을 찬송까지 하고 있습니다. 멋진 사람 만났다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멋진 사람 만났다고 이렇게 찬송해 본적이 있으신지요. 남편을 보고 찬송이 나옵니까? 아내를 보고서 찬송이 나왔습니까? 찬송하는 만남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청년 여러분, 이런 여자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모님들이여 이런 찬송이 나오는 사위,며느리 얻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하세요. 아비가일 같은 여자, 며느리, 사위 만나게 해달라고. 이런걸 기도해야지, 피부 고와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세요. 얼굴 예쁜 여자 만나기를 기도하지 마세요. 요즘 우리 한국의 여자들 70%이상이 성형미인들이라고 합니다. 한참 살다보면 얼굴이 이상하게 돌아갑니다. 눈까풀 수술 한 여자들, 잠잘 때 눈도 감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죽을때도 눈이 감기지 않아서 유가족들이 애를 먹는다고 합니다. 예쁜 여자들 콧대만 높고 인물값 하느라고 피곤합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을 만났듯이 그런 찬송이 나오는 사람 만나기를 기도하십시오.
만일에 다윗이 그때 아비가일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쩌면 다윗은 성경에 쓰여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만한 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이 한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시겠습니까? 아비가일은 다윗을 붙들어 준 여자입니다. 다윗에게 꼭 필요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발이 죽자 다윗이 아비가일을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시는 성도여러분, 아비가일에게서 화평을 만드는 비결을 배우세요. 분노하는 사람을 높여주세요. 그의 감정의 그릇에 사랑을 채워주세요. 성도는 가정과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분노를 잠재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암을 연구하는 의사들의 보고서에 의하면... 암병이 어디에서 발생하느냐? 그것은 나쁜 감정 분노의 감정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막을 수 없는 감정 섭섭한 일, 억울한 일, 분한 일 때문에 잠을 못 이루고, 울분을 터뜨리는 감정이 응어리져서 암병으로 표출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의사가 암 환자를 상담할 때 과거를 묻습니다. 그래서 과거를 추적해 보면 자기도 모르게 멍든 상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마음속에 불타는 원한이나 분노가 있으면 지금 풀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지금 풀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똑똑한 아바가일처럼 대처를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발이 죽습니다. 36-38절에 술에서 깬 나발은 아비가일의 말을 듣고 너무나 놀라 몸이 돌 같이 굳어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니 죽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변화되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미련한 옛 마음입니다. 영으로 기도하고 마음으로 기도한다 했듯이 예수 믿어 거듭났어도 우리 마음 역시 바꾸어져야 합니다.
39-42절에 지혜로운 아비가일은 이렇게 후일 이스라엘 왕이 될 다윗의 부인으로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 남편의 잘못을 시인하고 대신 용서를 비는 현숙한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기름을 부음 받은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될 것을 믿은 신앙의 사람입니다. 목숨을 걸고 다윗을 찾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남편에게 시비를 분명하게 하는 정직한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여인을 위해 불량한 남편 나발을 죽이고 다윗의 아내가 되게 하여 존귀케 하였습니다. 아비가일은 지혜와 믿음으로 다윗 왕의 부인이 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는 지혜로워야 합니다. 신앙으로 지혜롭게 행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높이십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나발의 죽음은 아비가일에게 유익이 되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존귀하게 됩니다. 아비가일은 먼저 자기의 허물을 아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의 기름을 부음 받은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한다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불량한 남편의 생명을 다윗의 칼에서 구했습니다. 아비가일은 이렇게 지혜와 신앙으로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들도 똑똑한 아비가일 처럼 신앙과 지혜로 존귀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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