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 선사가 감정한 노파
동봉큰스님 (월간불광 232호)
선문염송[禪門拈頌] 제 11권 [대산{臺山]조에 한 노파의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그녀가 어디 사람이며 몇 살인지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 한 그녀의 이름도 알 수 없다. 조주종심 선사[778~897]가 한 때 오대산 에 머물고 있었다. 큰스님이 오대산을 향해 몰려들었다.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언제부터인가 이름 모를 노파 한분이 앉아 있으면서 오대산으로 들어가는 스님네를 시험하고 있었다.
한 스님이 물었다. “오대산으로 가려면 어떻게 갑니까?” 노파가 대답했다. “곧장 가시오.” 그 스님이 노파의 말대로 서너 걸음 앞으로 내딛으니 노파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에이그! 멀쩡한 스님이 또 저렇게 가는구먼.” 많은 스님들이 당하고 나서 조주 선사를 찾아 뵙고 사실을 털어놓았다.
다 듣고 난 조주 선사가 말했다. “이 늙은 중이 그녀를 한 번 시험해볼 것이다.” 이튿날 이었다. 조주 선사는 단신으로 절 입구에 이르러 보니 과연 한 노파가 앉아 있었다. 조주 선사가 물었다. “오대산으로 가려는데 어떻게 가오?” 노파가 대답했다. “곧장 가시오.” 선사가 앞으로 서너 걸음 내딛자 노파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쯧쯧! 멀쩡한 스님이 또 저 모양으로 걷는구먼!”
선사는 오대산으로 돌아와 남자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내 오늘 그대들을 위해 그 노파를 감파하였다.” [선문염송]은 모두 30권으로 이루어졌으며 이 30권 속에는 1463칙[則] 의 공안이 수록되어 있다. 위의 내용은 [선문염송] 11권 [대산[臺山] 이라는 공안에 해당하여 일련번호로는 412번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 공안을 [조주감과]라는 공안으로 알고 있으며. 또 그렇게 전해지고 있다. 선문의 천칠백 공안 가운데서도 조주 스님으로부터 비롯된 공안들은 매우 유명한데 이 [조주감과]도 지금까지 납자들 사이에는 꽤나 거론되는 것 중의 하나다.
[선문염송]에도 무려 42명의 선사들이 이 [대산]즉 [조주감파]에 대해 송[頌]을 붙였고, 14명의 선사가 염했다. 그렇다면 그토록 중국 당대의 선사들의 시선을 모으고 이목을 집중시켰던 그 노파는 어떤 분이었을까. 선사들이 염송한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목암층[牧庵忠]이 염했다. “대중들이여! 말해보라. 조주가 노파를 감파한 곳이 어디인가를 자세히 알고자 하는가. 산승의 한 게송을 들으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송[頌]했다. 고금 [古今]의 오대산 길 평탄하거늘 오가는 이따라 혐하다 하네. 그대는 노파선[老婆禪]을 설명치 말라. 감파가 오히려 점검을 당함일세.
선사가 다시 대중을 부르며 말했다. “이미 감파해버렸느니라.” 진전문{眞淨文]이 상당[上堂]하여 이 이야기를 듣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대산에 왕래하는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아직까지 한 사람도 그녀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은 이가 없다. 오직 조주 한 사람만이 그녀에게 속지 않았을 따름이다. 조주는 말했다. ”오대산 아래 노파가 노승의 감과함을 당했다. “대중들이여! 조주가 비록 속지는 않았으나 아무리 점검해 보더라도 노파의 손에 들린 방망이를 맞은 것이다.
자. 말해 보라. 조주의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를. 만일 조주의 허물을 안다면 비로소 남에게 속지 않게 되었다 하리라. 귀종[歸宗]의 문하에도 남의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는 자가 있는가?” 그리고 할[喝]한 뒤 다시 할했다. 진정문은 다음과 같이 송했다. 미친 듯 미친 듯 조주 늙은이 범부인지 성인인지 아무도 몰라 시비와 장단을 멋대로 논한다만 노파가 조주의 감파를 받았네.
개암붕[介庵朋]이 송했다.
조주가 감파해버렸다 하니 이 늙은 선객을 웃기는구나. 원주는 눈썹이 빠지고 남전은 죽 그릇을 떨어뜨렸다. 조주가 감파해버렸다는 말 도리어 허물이 되었구나. 온 누리 중생들이 천 개요 또한 만 개구나. 죽암규[竹庵珪]가 상당하자 어떤 수좌가 질문을 던져왔다.
“오대산의 노파가 길을 가리켜 준 뜻이 어떠합니까?” 죽암규가 말했다. “금룡[金龍]이 한밤중에 맑은 못을 휘젓고 있느니라.” “조주가 말하기를 ”이미 감정해 마쳤다.‘고 하니 그 뜻은 또 무엇입니까?“ ”옥토끼가 아침에 붉은 노을을 따라 갔느니라.“ ”옥토끼가 아침에 붉은 노을을 따라 갔느니라.“ ”노파가 그로부터 다시는 납자들을 감파하지 못했다고 하니 그 뜻은또한어떠합니까?“ ”큰 달은 30일이요. 적은 달은29일이니라.“ 죽암규가 송했다.
안면에 세 주먹을 갈기고 뺨을 일곱 차례 때렸건만 온천하 사람들 통증을 알지 못하는구나. 설두녕[雪竇寧]이 소참법문때에 이 얘기를 듣고는말했다. “조주도 그렇게 갔고 다른 납자들도 그렇게 갔으니. 어디 한번 말해 보게. 자네들 감파한 곳이 어딘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내 게송을 들어보라.” 그리고 다음과 같이 송했다. 입술과 혀 까분 늙은 조주여 우주가 공해지니 할 말이 없네. 오대산 길이 이미 평탄하거늘 오히려 행인들을 헷갈리게 했네.
그렇다면 그 노파의 경지는 어느 정도나 될 것인가. 조주와 쌍벽을 이루는 노파, 그녀는 분명 부처였고 보살이었고 대선사였다. 그리고 불교의 혜명을 이어오게끔 한 그 바탕이었다. 지난 1월 조 목동의 큰절 법안정사를 찾은 일이 있었다. 지난 해 일요법회를 맡아 해온 인연도 있고, 또 오래도 법안정사의 일요법회를 맡아야 할 인연이 있었기에 새해 인사차 들른 것이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꽤나 연세가 들어보이는 노보살님이 힘에 겨운 듯 무릎을 지팡이 삼아 오르고 있었다. 내가 노보살님을 부축하며 물었다. “어디 계시는 보살님이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지금 .여기 있지요.”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으로 다음말을 찾으려 애를 썼다. 한 개 층을 오른 다음 3층을 올라가는 계단에서 내가 다시 물었다. “노보살님. 올해 연세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꽤나 힘들어 보이시는데요?” 그녀가 거침없이 말했다. “구구는 팔십일이라오.” “예?” 그녀가 나를 한번 쳐다보더니 다짜고짜 내 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멀쩡한 스님이 다리는 왜 절우?” “???” 내가 3층에 있는 법안정사 포교원장 현도 스님 방에 들렀다가 나와 보니 이미 그 노보살님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법당에도 지하에도 없었다. 도량 어디에도 노보살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는데 나는 지금도 그 노보살님의 대답 가운데 풀지 못하는 게 있다. 내가 나이를 물었을 때 구구는 팔십일이라고 한 그 말. 그녀의 나이가 99세란 뜻인지 아니면 81세란 뜻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아니, 내가 왜 그 노보살님의 말에 집착하고 있는지. 그러한 나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