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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6일 ~ 한정 수량
책소개
일본이 우물처럼 솟아나는 우리나라 금정광산(황금우물)의 금과 은을 착취하여 무기를 만들어 세계를 정복하려다가 패한 사실을 동화로 쓰고 영상 동화로 만든 (특별 컬러판)
저자 소개 (1명)
저 : 권도운 (權度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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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동화, 소설, 시나리오, 드라마 작가. 초등학교 5학년 무렵부터 동시를 배웠다. 일곱 살 때 태백산에서 아이들과 3년 동안 자란 얘기를 중2 때 동화로 쓰고, 만화 한 권을 그려서 신동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67년 파월 참전 중 동시 「산골물」, 동화 「산골 소년」, 단편 「병사의 일기」가 소년한국일보에 당선되었다. 67년 시조 조선일보 우수상을 수상하였으며 72년 신화, 환녀 영화 매거진에 당선되었다. 유현목, 하길종 감독 심사위원 및 師事, 75년 KBS 舞臺, 戰友, 라디오 드라마, 傳說의 故鄕 등 당선 및 다수를 집필하였다.
대학 도서관에서 근무했으며, 발명특허 사업을 했다. 모든 사람이 즐겁게 공부하고 좌뇌와 우뇌를 고르게 향상하게 하는 방법과 행복지수 향상을 연구하여 작법과 논문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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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 유래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金井). 금정(金井)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금광을 개발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금광에서는 금을 캐도, 캐도 끝없이 나오고, 물도 끝없이 나와 금을 캐는 것이 마치 우물 속에서 금을 길어 올리는 것과 같다고 하여 금정(金井: 황금우물)이라 불렀다 한다. 한반도에서는 함경남도의 함흥과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金井)가 삼국시대부터 금이 가장 많이 났다는 기록이 있다.
지은이는 어린 시절부터 이곳에 살며 일본이 수십만 명의 조선인을 동원, 금과 은을 착취하여 팔아서 무기를 만들어 세계를 정복하려다가 패망했다는 사실을 수십 년 동안 취재한 결과 밝혔다. 그 사실을 다음과 같은 캐릭터를 개발하여 동화로 써서 전설의 고향으로 방송했다.
큰 귀로 천 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돌과 콧바람으로 바위도 날려버릴 수 있는 코돌은 자신들의 재능을 나쁜 곳에 사용하여 스스로 함정에 빠졌다. 그 후 극본으로 집필하고 촬영하여 방송했다. 무더위 속에서 고생한 배우와 제작진에 감사한다. 특히 전설의 고향 프로를 가장 많이 연출하고 젊은 나이에 타계한 고 임웅빈 PD의 명복을 빈다.
- 취재 자료
금정 광산을 개발한 소남 김태원(1877-1950)은 한평생 독립운동에 몸 바쳐 만주에서 옥사하신 백산 안희제(1885-1943) 선생의 백산상회에 지배인을 맡고 있을 때 백산상회가 상하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송달한 것이 일경에 적발돼 관련자들이 문초를 당하자 증거물을 소각하고 쫓기는 몸이 되어 산으로 잠적하면서부터 피나는 노력으로 전국에 수많은 금은 광산을 개발하였다. 그는 전국의 광산에서 얻은 자금으로 마침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크고 가장 순도가 높은 금정광산을 사투 끝에 개발하였다. 백산 안희제 애국지사를 도와 백산상회를 주식회사로 키웠으며, 일본 연료 주식회사까지 설립하였다. 전국의 모든 광산과 재산을 빼앗긴 후에도 지속해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고, 만주 발해의 대규모 농장 구매에 거금을 지원하였다. 지역의 각종 단체에 기부해 주위를 놀라게 했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교육사업 등에 거액을 희사하였으며,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선행을 하다가 1950년에 쓸쓸히 죽음을 맞았다. 고령의 길가에 묻혔던 그의 유해는 1958년 그가 세운 대성초등학교에서 뜻있는 유지들이 모여 식을 치르고 동래 범어사 경내로 이장되었다. 그의 선행은 가문의 후손에게 반드시 좋은 일이 있으리라 믿는다. (논문의 일부)
- 생각 거리
이 작품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따라 태백산 깊은 산 속에서 큰 흑 구렁이(키보다 더 큰)에 먹힐 뻔했고 황소만 한 짐승에 먹힐 뻔했으나 지혜와 용기로 간신히 살아났다. 도시로 나와서 중학교 2학년 때 그곳 산 아랫마을 아이들과 함께했던 생활을 담은 이야기를 동화로 썼다. 그 후 30여 년 동안 취재하고 ‘전설의 고향’ 극본을 집필하여 장마로 촬영이 지연되었으나, 코로 바람을 일으켜 바위를 날려 보내는 코돌이와 큰 귀로 천 리 밖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돌이로 출연한 배우분들의 손오공 춤을 변형한 춤을 개발, 2개월 동안 연습, 작품 전편을 통하여 역사에 남을 만한 훌륭한 연기를 남기셨다. 다시 한번 무더위 속에서 연기에 구슬땀을 흘리신 배우분들과 제작진과 고 임웅빈 PD님의 노고에 감사한다. 그분들의 명연기와 명 연출을 되살려서 특별히 오늘의 어린이와 청소년과 어른들을 위하여 조상의 지혜와 슬기와 사랑을 듬뿍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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