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里마을 |
임란 때 土城을 쌓아 倭城이라 하였는데 넓은 등성이 들판이라 번득이라 하여 광 리마을이 되었다. |
見乃梁마을 |
조수간만 때에 조류가 냇물처럼 흘러간다. 그래서 붙인 이름이 ‘갯내’다. 즉 바다의 냇물이라는 뜻이다. 다른 이름은 고려의종 24년(1170.10.2) 정중부의 경인란 때 거제도로 추방되어 오면서 왕이 이곳을 건넜다하여 전하도(殿下渡)라고도 한다. |
新村마을 |
1971년 4월8일 거제대교가 개통되자 논밭이던 이곳이 버스정류장과 관광객이 몰려들어 새로운 마을이 형성되어 新村 이라 하였다. |
구거제대교 |
통영과 견내량을 잊는 다리로 1965.5.30 기공하여 1971.4.8 존공하였다. (10m☓18m, 740m) 현대건설 기술진이 건설했으며 박정희대통령의 휘호가 새겨져 있다. |
신거제대교 |
1992.10 기공하여 1999.4.22일 개통. 총길이 940m, 폭20m, 높이 20m이다. |
광리 왜성(廣里 倭城) |
광리 서남쪽 둔덕면과 접하는 바닷가에 임진왜란 7년 도안 일본군이 土城을 쌓아 견내량목을 감시하던 곳으로 번득의 왜성이라고 한다. 원래 둘레는 350m였으며 상당히 높이 쌓아 올려져 있었으나 1970년대 밭으로 변해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
~아사 학산 술역에서 아직도 역사의 숨결이~
광리마을지나면 바로 학산리이다. 학산은 폐왕성 아래 飛鶴山 밑이라 하여 학산이라 하였다. 학산마을은 학산마을(영등마을)과 아사마을로 구분한다. 거제대교에서 약4km 진행하면
아사마을이 나오고 길옆에 학산리지석묘 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원래 지명에 따르면 아사지석묘라 해야 할 것이다. 청동기시대 만들어진 곳으로 거제에서는 청곡지석묘와 함께 원형이 잘 보존된 곳이다.
그 바로 옆에는 영공방 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곳은 학산분교였으나 2000년 대우조선 다니던 박영종씨가 배모형제작을 위해 설립한 회사이다. 우리나라에서 목재로 만들어지는 배는 모두 이곳에서 만든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은 그 규모가 확대되어 우리 배 뿐만 아니라 거북선시리즈, 한옥시리즈, 경복궁시리즈, 교육용시리즈, 각종모형소품, 장난감 등 다양한 제품이 나오며 주로 인터넷으로 판매되고 있다. 영공방에는 야외전시물, 실내전시물, 제작공장, 어린체험교실 등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주로 유치원과 초등학생 그리고 가족단위 체험교실이 운영되고 있어 언제 어느 때나 관람 및 체험이 가능하다.
이순신의 첫해전의 승리를 가져다 준 거제도, 그래서 양대조선소가 들어서고 조선거제로 발돋움하고 있는 이즈음, 배와 관련된 영공방도 무궁한 발전을 할 것을 기대해 본다. 그리고 오늘이 있기까지 모진 고난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거제를 빛낸 얼굴이기에 힘찬 박수를 보내고 쉽다.
학산마을 못가서 냇고랑 있는 곳이 아사마을인데 옛날 이곳에 영등진의 관청이 있었으며 동헌터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학산마을 입구에서 고추밭에 유기농약을 손수 제조하여 살포하는 이형만씨를 만나 영등포만호비가 부둣가의 제한석씨 댁에 있다고 하여 찾았다. 2기의 비석은 현재 3/4정도가 매물된 채로 넘어져 잇고 나머지 1기는 마모가심하여 판독이 힘들다. 이 비석은 영등포만호비 비석인데 누구인지는 비문이 마모되어 확실하지가 않다. 거제도 문화재의 관리가 이렇게 방치해도 되는 건지 가슴만 아파온다. 특히 올가을 이집을 수리하면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하는데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긍금???
여기서 재미있는 마을이름 한 가지---.
거제대교를 지나면 신촌마을(대교)-광리-아사-학산(영등)-내평-술역-호곡-녹산-하둔이다. 학산에는 영등포진이 있었다. 1470년 거제 7진중의 하나인 장목면 구영의 구영진은 1623년 이곳 영등포(현재 학산)로 옮겨와 수군만호를 두고 병선과 수군을 배치시켰다. 영등포진과 동헌터가 있었다고 하나 찾을 길이 없다.
약500m 지나면 내평과 술역이란 동리가 나온다. 술역천을 따라 처음만나는 지점이 내평이다. 마을 안길을 따라 바닷가에 도달하면 내평숲과 부둣가에는 조선소 협력업체의 공장이 보인다. 바닷가 부두에는 내평숲이 있다. 100~200년 쯤 되어 보이는 내평숲은 20여 그루의 느티나무가 들어서 잇고 지금은 중앙에 게이트볼장이 들어서 있다. 이 숲의 내역이 적인 안내판은 보이질 않는다. 부두에는 어선들은 별로 없고 조선소 협력업체 공장이 들어서 미관을 해치고 있다. 거제도는 주민들의 반대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선단지가 모여 있지를 못하고 여러 부두에 흩어져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망치고 있다. 고랑을 이웃하여 술역이란 마을이다. 옛날 이곳에는 통영시와 농수산물과 공산물을 공급하여 바다의 역이라 하여 水驛이라 하였으나 의종왕이 귀양 올 때 많은 문무관들이 드나들던 곳으로 입출항이 계속 늘어나므로 이을술(述) 클역(亦)자로 바꾸어 술역이라 하였다. 지금은 부산 마산등지로 수송수단이 바뀌어 흘러간 옛 마을로 전략하였으나 역사의 흔적은 남아 있다. 왜 이곳이 수역으로 지정되었는지 생각해보니 통영과 거리가 가깝고 넓은 평야 때문일꺼라는 생각이 든다.
다음은 호곡(虎谷)마을이다. 호곡마을 바닷가에는 옛날에 절벽에 굴이 많이 있어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으며 지금도 둔덕수산 있는 곳에 범바위가 있다. 범바위 부근에 있는 둔덕수산은 정상욱씨 소유로 아버님께서 하시던 양식장을 물러 받아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의 가두리양식장을 경영한다고 한다. 육상에서는 광어축양을 해상에서는 농어와 참돔을 축양하고 있다. 16개월 된 광어는 1kg에 13,000워 정도, 30개월 된 능성어는 1kg에 25,000원 정도라고 알려 주었다. 하루에 지출되는 비용이 3천만원 정도라고 하니 가히 짐작이 간다.
축양장 주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국국적의 인부와 대화를 해봤다. 월수입은 130만원 정도이며 매달 일백만원을 집에 붙여준다고 한다. 동남아 근로자가 몇 명이 있는지는 알아보지 못해도 근로자 중 상당수가 외국인인 모양이다. 우리나라는 모두 대학을 나와 3D업종에는 종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미국도 거의 마찬가지이다. 고급인력은 자국민이 하고 3D업종에는 남미 쪽의 근로자들이 차지한다고 한다. 그러하니 미국이나 한국이나 고급인력이 남아도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간이 편리해지고 있으나 점점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으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는 실정이다.
다시 몇 분을 달리니 길가에 둔덕열차라는 간판이 보인다. 차와 식사를 하는 곳으로 옛날 토토로와 함께 거제의 명물이었으나 근자에 들어 현대적 미각을 갖춘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점점 사양길에 들어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들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바닷길로 내려가면 전복판매라는 간판이 보이고 거제에서는 유일하게 전복양식을 하는 곳이다. 10kg에 50,000원이라고 하니 가격도 저렴하고 싱싱하여 한번 방문하여 사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은 생산판매만 하지만 올 연말쯤 가게를 열어 여기서 직접 판매를 하고 싶다고 하였다. 주인장께서 이 상품은 바다에서 직접 잡아 올리는 전복에 비해 그 맛이 떨어지지 않으니 한번 맛보라고 하였다. 전복을 먹어 본지가 넘 오래되어 두 가지를 구별하기가 쉽지는 않다. 거제 곳곳에는 지역에 기반을 두고 열심히 사업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홍보 부족으로 거제시민들이 이용을 많이 하고 있지 않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일은 물론 시청공무원과 생산자의 역할도 있겠으나 나와 같이 거제를 사랑하고 알리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도 해본다.
호곡 앞에 보이는 섬은 花島 로 봄이 되면 섬전체가 진달래로 붉게 물들므로 화도라 하며 2009년까지 화도분교에 한명의 학생이 있었으나 2010년 폐교되었다. 화도는 둔덕면에 속해 있으나 도선은 통영과 연결되고 둔덕에는 정기 도선이 없다.
호곡마을을 지나면 鹿山마을이다. 이곳에는 숭덕초등학교가 있으며 앞에 있는 섬은 小鹿島이다. 녹산마을은 소록도의 명칭을 따서 녹산(鹿山)이라 하였다. 옛날에는 이곳에 여객선 부두가 있었다.
<술역리/학산리 지명소개>
鶴山마을 |
폐왕성 라래 飛鶴山 밑이라 하여 영등을 학산이라 하였으나 원래는 영등이다. |
衙舍마을 |
학산 북쪽에 영등진의 관청이 있었던 곳이며 지석묘가 산재한 역사 깊은 마을이다. 1623년 장목면 영등진의 관아가 이곳으로 옮겨와 관아가 있었던 곳이라 하여 아사라 한다. |
述亦마을 |
옛날 이곳에는 통영시와 농수산물과 공산물을 공급하여 바다의 역이라 하여 水驛이라 하였으나 의종왕이 귀양 올 때 많은 문무관들이 드나들던 곳으로 입출항이 계속 늘어나므로 이을술(述) 클역(亦)자로 바꾸어 술역이라 하였다. |
內坪마을 |
술역 북쪽 안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내평이라 하고, 부둣가에는 내평숲이 있다. |
내평숲 |
먼 옛날부터 육지와 왕래하는 곳으로 水驛이라 하였다가 의종이 이곳으로 피신하면서 자연히 우마차와 사람들이 봄비는 해안성시가 이루어졌다. 그 뒤 방리개편 때 (1769)술역리라 부르게 되고, 그 대 이 마을 주변에는 말먹이는 목장과 말을 매는 사람들의 휴식터인 숲이 조성하게 되었다. 지금은 내평숲 중간에 게이트볼장이 있어 미관을 해치고 있다. |
鹿山마을 |
옛날 여객선이 다니는 부두가 있었고 바로 앞에 딴녹섬 또는 小鹿島가 있어 鹿山이라 한다. |
虎谷마을 |
술역에서 고개를 넘으면 바닷가 절벽에 굴이 많이 있어 옛날 호랑이가 살았다 하여 범굴이라 불렸다. |
花島마을 |
봄철이면 진달래가 피어 온통 붉게 물들고, 봉화불이 비쳐주니 붉섬으로 화도라 한다. |
放火島 |
화도 서북쪽에 장고모양의 봉화대가 있는 곳으로 등대가 있어 등대섬이라고도 한다. |
영공방 |
숭덕초교 학산분교 자리에 우리나라 최대의 배모형제작소가 있다. 여기서 제작된 거북선은 우리나라 전역에 배치되어 있다. |
학산지석묘 |
구거제대교에서 약1km가다보면 광리지석묘가 있고, 다시 조금더 가면 아사마을이다. 이 아사마을 입구에 학산리(아사)지석묘군이 있다. 모두 5기인데 길옆에 있으므로 쉽게 찾을수가 있다. |
영등포만호비 |
둔덕면학산리 123번지 제한석씨댁내에 있다. 1682년에 세워진 이 비석은 변치헌영등포만호비이다. |
지석묘군/유물산포지 |
광리, 영등, 학산, 술역 등지에는 각종 지석묘군과 삼국시대 및 고려시대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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