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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언젠가부터 눈팅족이 되어버려 오랜만에 인사 드리네요. 이번달과 다음달, 2회에 걸쳐 대한수의사회에 발표할 에세이를 썼는데 여러분이 꼭 함께 읽어주셨으면 하는 아이에 관한 이야기라서 카페에 올립니다.
믹스견인 '미코'는 2014년 11월 팅커벨 프로젝트 워크숍 때, 저와 몇몇 분들이 함께 구조한 아이입니다. 팅커벨 프로젝트의 재정사정이 어려울 때라 카페에 구조 요청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구조했지요. 미코는 다솜언니 댁에서 1개월, 저희 집에서 1개월 임시보호를 했고 밍밍님 댁으로 입양이 결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입양을 일주일 앞둔 2015년 2월 3일 제 품에서 갑작스럽게 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대한수의사회지에 팅커벨 아이들에 관한 글을 연재하면서 언젠가는 미코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아픈 기억이라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평소 같으면 하루도 안 걸렸을 원고를 며칠에 걸쳐 쓰면서, 팅커벨 회원 분들께도 꼭 미코를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비록 이미 별이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팅커벨 아이로 받아들여지기를, 그래서 많은 분들이 미코를 기억해주기를 바라서입니다. 2회에 걸친 분량이라 200자 원고지로 40매가 넘는 긴 글입니다. 단편소설의 절반 정도 되는 양이다 보니 온라인으로 보기엔 아주 길게 느껴질 거예요. 그래도 꼭 끝까지 읽고 미코를 위해 기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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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묻다 ― 미코
전화벨이 울리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휴대전화를 들고 시간과 발신자 번호를 확인했다. 아침 7시, 전날 밤 미코를 입원시킨 동물병원에서 온 전화였다.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던 것 같은 기분과 예상치 못한 일에 맞닥뜨린 것 같은 기분이 동시에 들었다.
“미코 보호자님 되시죠? 미코가 많이 위급해요."
위급하다는 단어를 모르지 않는데도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위급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 미코가 많이 고통스러워 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의식이 없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일까. 미코가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거의’ 죽을 것 같다는 뜻일까.
잠들 때 입었던 옷 위에 다급히 파카를 걸쳤다. 현관에 놓인 신발 중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신발을 신고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집 앞 이차선 도로를 건너자마자 택시를 탔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동물병원이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지하주차장에 머물러 있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새도 없이 나는 비상계단을 뛰어올랐다. 전화를 받고 미코에게 가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는 위급하다는 말의 의미를 몰랐다. 위급하다는 말은 10분 안에 미코에게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간호사는 나를 크고 밝은 방으로 데려갔다. 각종 의료기기가 놓인 그 방은, 내가 이 병원에 수십 번 드나드는 동안 한 번도 들어와 보지 못한 곳이었다. 미코는 그 방의 한가운데 놓인 진료대 위에 누워 있었다.
“미코야….”
내가 다가가도 미코는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꼬리를 흔들지 않았다. 미코의 감긴 눈을 보고, 뻣뻣해져가는 몸을 만지고, 그제야 알았다. 이미 미코의 의식은 이곳에 있지 않았다. 모든 감각이 너무나도 생생했다. 미코의 몸을 쓰다듬는 내 손이 떨리는 느낌도 생생했고, 내 손바닥을 스치는 털의 부드러운 감촉도 생생했다. 눈물이 솟구치는 느낌과, 눈물이 눈동자 위로 차오르며 어룽거리는 느낌과, 눈물이 뺨 위를 흐르다가, 턱 끝에 잠깐 맺혔다가, 결국 미코의 얼굴 위로 툭 떨어지는 것까지 내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게 하는 생생함,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라고 강요하는 생생함이었다.
“아직 심장은 뛰고 있지만 의식과 호흡이 없어진 지는 한참 되었습니다. 지금은 기계에 의존해서 호흡하는 거구요."
그때처럼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위급하다는 말도 이해하지 못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간 이야기들은 더욱 이해하지 못했다. 실제로 그날 의사 선생님이 미코의 상태에 대해서 해줬던 이런저런 말들은 거의 내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다. 이해하지 못한 말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나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들은 뒤 물었다. 미코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냐고. 의사 선생님은 말했다.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이 희망을 뜻하는지 절망을 뜻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서 나는 그냥 울기만 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다. 오후 1시경 미코의 몸에서 모든 호스가 제거되었고 약 3,4분 후 미코의 심장이 멈췄다. 1년이 될까 말까 한 짧은 생이었다.
구조 직후 다솜언니 집에서 첫날, 미코
두 달 전 나는 팅커벨 프로젝트의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 장소로 예약해둔 산장에 도착하자 주차장에 나와 있던 바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맞았다. 강아지는 적막한 산골마을에 찾아온 사람들이 반가운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였다. 누구라도 다가오면 꼬리를 흔들며 배부터 보여주는 아이였다.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들처럼 샴푸 냄새가 나지는 않아도 행색이 깔끔하고 예쁘게 생긴 바둑이였기 때문에 우리는 산장에서 키우는 강아지라고 생각했다. 생후 몇 개월이나 되었을까, 마침 강아지는 첫 생리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방 안으로 들이려 하자, 강아지는 갑자기 겁먹은 얼굴을 하고 현관 앞에서 완강히 버텼다.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는 몇 번쯤 집 안으로 따라 들어가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혼쭐이 났을 것이다. 우리가 괜찮다면서 방 안으로 데리고 가자 강아지는 어리둥절해하면서도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마냥 기쁜지 이 사람 저 사람 쫓아다니며 애교를 부렸다. 우리가 토의를 시작한 뒤에는 눈을 반짝이며 얌전히 앉아 있었다. 잠깐 봤을 뿐이지만 눈치도 빠르고 말귀도 잘 알아듣는 영리한 강아지였다. 하지만 두어 시간 후, 불편한 것은 없냐며 찾아왔던 산장 주인은 강아지가 방 안에 있는 것을 보고 기함을 했다.
“아니, 더러운 개를 집 안에 들이면 어떡해요!”
“여기 산장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아닌가요?”
“아니에요. 새끼였을 때 누가 버리고 간 애예요. 저기 산 속에 있는 빈 집에 혼자 살면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더러운 개라구요.”
산장 주인은 발을 쿵쿵 구르며 강아지를 향해 나가라고 소리쳤다. 강아지가 애처로운 얼굴로 우리를 돌아보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었다. 강아지는 목을 잔뜩 움츠린 채 현관문으로 걸어 나갔다. 집 안에 들어온 뒤 쉬지 않고 흔들어대던 꼬리는 어느새 뒷다리 사이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창밖으로 강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11월의 밤은 추웠고 산 속은 칠흑같이 어두웠으며 가랑비마저 내리고 있었다. 강아지는 겨울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어둠 속으로 터덜터덜 사라졌다.
그날 밤 몇몇 회원들은 워크숍 프로그램에는 없던 사항을 하나 더 논의했다. 그 강아지의 구조 방식이었다. 중성화되지 않은, 막 성견이 되려는 어린 암컷 강아지. 유기견 어미가 유기견 새끼를 낳고, 주인 없는 믹스견들이 시골마을을 떠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일을 당할지 보지 않아도 뻔했다. 우리는 팅커벨의 재정 상황을 감안하여 정식 구조요청은 하지 않되, 조금씩 돈을 추렴하여 중성화수술과 건강검진을 진행하고 개별적으로 입양처를 찾기로 했다. 다음날 강아지는 아침밥을 얻어먹기 위해 비를 쫄딱 맞으며 우리를 찾아왔다. 우리는 강아지에게 먹을 것을 주고 빈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상자에 담아 차에 태웠다. 그게 미코였다.
미코는 워크숍 때 차량 이동을 맡았던 회원의 댁에서 한 달 가량 머문 뒤 우리 집으로 왔다. 입양 전까지 우리는 가족으로 함께 지낼 것이었다. 모든 어린 강아지는 이런 건지, 아니면 미코가 특별한 건지, 미코는 내가 본 어떤 강아지보다 밝고 맑고 천진했다. 하루 종일 우리 집 강아지 피피를 쫓아다니며 장난을 쳤고, 피피가 귀찮아하면 장난감을 갖고 시간 가는 줄 모르며 놀았다. 자택근무를 하는 내가 방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탁, 탁, 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미코의 꼬리가 바닥이나 벽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미코는 쉴 새 없이, 정말이지 거의 하루 종일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새로 생긴 가족, 누군가와 함께 사는 집, 강아지 친구, 놀이와 산책, 그 모든 것이 즐거워죽겠다는 듯이.
일을 하거나 책을 읽다가 어디선가 탁탁 소리가 들리면, 집 안 어딘가에서 혼자 신바람이 난 채 꼬리를 흔들고 있을 미코 때문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코는 세상이, 삶이, 모든 날이, 매 순간이, 행복한 강아지였다. 미코는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낙천성을 가진 아이였고, 그래서 미코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들은 기꺼이 그 아이를 가족으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아직 어린 미코는 앞으로 무수히 많은 날들을 행복하게 보낼 것이다. 함께 워크숍을 갔던 팅커벨 프로젝트의 이사님에게 미코의 입양이 결정되었을 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었다.
팅커벨 프로젝트 워크숍.
검은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뒷모습이 저이고, 제게 안겨 있는 강아지가 미코입니다.
미코가 입양 가기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 내가 외출을 하고 돌아왔을 때만 해도 미코는 여느 때와 똑같았다. 미코는 자기보다 한참 작은 피피를 거의 쓰러뜨릴 듯이 젖히며 달려 나왔고, 피피보다 자기를 먼저 안아달라고 깡충깡충 뛰며 매달렸다. 고기를 삶아주자 바닥까지 핥아먹었고, 밥을 먹은 뒤에는 피피를 쫓아다니며 장난을 치다 잠자리에 들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그 후였다. 미코는 방석에 누운 채 몇 번 구역질을 하더니 거실로 달려갔다. 곧이어 웩, 웩, 구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미코를 따라 나가면서도 나는 큰일이 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미코는 건강한 아이였지만 조금만 급하게 먹거나 반대로 끼니가 늦어져 공복이 길어지면 종종 구토를 하곤 했다.
나는 한 손으로 미코의 등을 쓸어주며 다른 손으로 입가의 토사물을 닦아주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그때였다. 앞발이 풀썩 꺾이더니 미코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내가 미코를 안아들자 똥을 주르륵 쌌다.
“미코야!”
나는 깜짝 놀라서 미코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미코는 흐릿해진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더니 스르르 눈을 감았다. 나는 토사물과 똥으로 범벅된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미코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뛰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미코는 내 품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괴로운 신음소리를 냈다가 다시 정신을 잃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전날까지, 아니 몇 시간 전까지, 누구보다 활기차고 건강했던 미코였다.
미코가 떠나고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는 그날 내가 외출한 동안 미코가 뭔가를 잘못 먹은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집에는 그럴 만한 것도, 그랬던 흔적도 없었다. 미코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도 아무 문제가 없었고, 밤 12시경에 구토를 하기 전까진 이상증세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놀라긴 했으나 미코에게 큰일이 생길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24시 동물병원 응급실에서 미코가 의식을 되찾는 것을 본 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절대 그곳에 미코를 혼자 남겨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다음날 미코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건강하고 활기차고 쉴 새 없이 꼬리를 흔드는, 살아 있는 미코와 함께.
“잠깐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세요.”
의사가 말했다. 나는 진료대 위에 누워 있는, 이제는 그저 털과 살과 뼈와 근육일 뿐인 미코의 육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게 울었는데도 미코의 심장이 멎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또 눈물이 솟구쳤다.
응급실을 나와 복도를 걸어가는데 비상계단 아래에서 통곡하는 울음소리와 함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웬 아주머니가 슈나우저 한 마리를 안고 계단을 뛰어올라오고 있었다. 얼핏 본 슈나우저는 이미 살아 있는 것 같지 않았다. 네 다리는 뻣뻣하게 굳은 채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경련하고 있었고 몸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과 놀란 듯 커다랗게 벌어진 동공도 더 이상 움직임이 없었다.
“아이고, 누가 우리 애 좀 봐주세요!”
아주머니는 내가 열어준 문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쳤다. 간호사가 슈나우저를 받아들고 응급실로 들어가자,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오열하기 시작했다. 슈나우저가 지나간 자리에 피가 점점이 떨어져 있었다. 잠시 후 대기실로 돌아온 간호사는 아주머니에게 무슨 이야기를 했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나는 바닥에 앉아 있는 아주머니를 일으켜드리려 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내 손을 잡은 채 목소리를 높여 우시더니 급기야 어린아이처럼 발버둥 쳤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손을 잡힌 채 응급실 쪽을 바라보았다. 불투명유리에 시야가 막혀 그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같은 방에 누워 있을 두 마리의 강아지를, 이미 무지개다리를 향해 가고 있는 한 강아지와 곧 그 뒤를 따라갈 또 다른 강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오열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나도 저렇게 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낼 때 미코입니다.
남자친구가 놀러오자 애교 부리는 모습이에요.
미코는 빨간 담요에 싸여 나왔다. 팅커벨 프로젝트의 황동열 대표님이 미코의 장례식에 동행하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나는 간호사가 안내해준 작은 방에서 대표님을 기다렸다.
전면이 통유리창으로 된 방에 앉아 나는 창밖의 풍경과 내 품에 안긴 빨간 담요 속 미코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겨울이 다 떠나지 않은 2월 초였고 오랜만에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었다. 창밖에는 강아지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고, 내 품에는 미코가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하염없이 미코를 쓰다듬었다. 미코의 짧고 부드러운 털과, 매끈매끈한 배와, 항상 처져 있던 작은 귀와, 물기를 머금은 스펀지처럼 촉촉한 코를, 이제 잠시 후면 이 모든 것을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이 여전히 믿기지 않았다.
직계가족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 죽음은 낯설고 먼 것이었다. 그토록 모호하고 관념적인 죽음이 실재가 되는 것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죽었을 때뿐인지 모른다. ‘개 한 마리 죽었다고…’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도, 죽음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어떤 상실에서 중요한 것은 동물이냐 사람이냐가 아니라 내가 사랑했던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 것만이 의미 있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들은 낯모르는 이의 부고, 얼굴만 알고 지냈을 뿐인 지인의 장례식, 그 순간들은 내게 죽음에 관해 어떤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내가 처음으로 죽음에 관해 생각했던 순간은 죽은 미코를 품에 안고 병원 창밖을 내다보던 그때가 유일했다. 그때 내 눈엔 어제와 똑같은 세상이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보였고, 나는 준비도 예고도 없이 낯선 세계에 내던져졌다고 느꼈다.
김포의 애견화장장으로 가는 길, 나는 대표님에게 물었다.
“미코가 제게 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살아 있을까요?”
모든 게 내 잘못인 것 같았다.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르기 때문에 더욱 자책하게 되었다.
“이건 그냥 사고예요.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이렇게 갑작스러운 죽음은 교통사고랑 비슷한 거예요. 누구 잘못이 아니에요.”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었다. 사고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잊히지만, 사건은 내가 다른 세상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일이기에 잊히지 않는다.
미코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라면 내 눈에 비친 차창 밖 풍경이 이렇게 이상해 보이지 않을 것이었다. 거리를 걷고 있는 사람들,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강아지들, 담장을 거니는 길고양이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이 이상해 보였다. 다들 어제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 있는데 미코만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불가해하게 느껴졌다. 미코는 없고 나는 달라졌고 그런데도 세상은 똑같고 나는 그 같음과 다름의 간극을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미코의 죽음이 내게 사건이라는 증거였다.
제가 일을 하고 있으면 미코는 항상 이렇게 옆에 와서 놀거나 자곤 했어요.
전날 밤 내 품에 안겨 집을 나섰던 미코는 다음날 오후 4시경 한 줌의 가루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식탁 위에 유골함을 올려놓았다. 이제 다 끝났다고, 비로소 혼자가 되었다고 생각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냉장고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었다. 병원에서, 화장장에서, 오가는 차 안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지만 한 번도 큰소리로 울지 못했다. 나는 흐느끼는 대신 소리를 질렀고, 다리에 힘을 주고 온몸으로 버티는 대신 마음껏 발버둥 쳤다. 슈나우저를 떠나보낸 그 아주머니처럼 나는 오열하고 소리 지르고 바닥을 뒹굴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언젠가는 아프다. 특히 동물을 사랑하는 일은 거의 언제나 그렇다.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떠난다. 우리는 그들보다 이 세상에 더 오래 머무른다. 하지만 왜, 어리고 건강한 미코가 이렇게 서둘러 떠나야 했을까. 그날 하루 종일, 그리고 그 후로도 오랫동안 되뇌었던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맑고 밝은 미코에게는 이 세상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더 어울리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가 아니면 나는 미코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미코와 함께 첫 산책 간 날.
갑작스럽게 떠난 영혼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미코가 떠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꿈을 꾸었다. 나는 미코와 함께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 운전을 하던 남자는 내게 이번 정류장에서 내리라고 했다. 미코는 자기가 잘 데려다줄 테니 걱정 말라고 했다. 나는 그가 누구인지, 미코를 어디로 데려다주겠다는 말인지 몰랐지만 그가 시키는 대로 미코를 두고 버스에서 내렸다. 어느 시골 정류장이었다. 버스가 흙먼지를 날리며 사라지자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꿈에서조차 또 한 번 미코를 잃어버린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버스를 쫓아갔지만 이미 버스는 떠나고 없었다. 잠에서 깨었을 때 나는 울고 있었지만 슬프지만은 않았다. 미코, 천국으로 잘 찾아가고 있구나.
* * *
몇 개월이 지났을 뿐이지만, 내게 남은 미코의 기억은 미코와 내가 보낸 한 달 가운데 일부분뿐이다. 남은 기억들의 대부분도 미코를 떠나보낸 마지막 하루에 치중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행복하고 즐거웠던 시간은 훼손되었고 아프고 슬펐던 마지막 몇 시간만이 또렷하다. 어쩌면 이것이 기억의 속성인지 모른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이름들을 불러본다. 미코, 달래, 밤이, 태희, 복돌이, 리타, 왕자, 노을이, 세미, 까미, 크림이, 방울이, 금동이, 행복이, 그리고 팅커벨….
이 아이들 모두 팅커벨 프로젝트를 통해 구조되었고, 이 아이들 모두 행복해지기 직전 마지막 문턱 하나를 넘지 못하고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내가 종종 미코와 함께 이 아이들의 이름을 입속말로 불러보는 이유는 기억하기 위해서다. 나는 공설보호소에서 살처분 당하는 저 수많은 유기견들을 기억할 수 없지만, 산골마을에 버려져 내 품에서 죽은 한 마리의 유기견을 기억할 것이다. 거기에서 또 다른 미코를 구하는 일이 시작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작은 말티즈 팅커벨의 죽음을 기억했던 몇몇 사람들이 있어 팅커벨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처럼.
사랑하는 미코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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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후로도 오래, 차라리 그날 입원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지막 밤을 함께하지 못했던 게 마음에 맺히지만, 똘똘이님 말씀처럼 미코가 예쁜 추억만 안고 떠난 거라면 좋겠어요.
미코의 사망원인이 무엇이었는지 지금이라도 알고싶네요..
피피님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해질수 있다면..
피피님 탓이 아니에요 아니었어요 아시죠?
왜 이런 말씀을 드리냐면..
우리 제리가 떠났을때.. 그리고 가끔은 지금에 와서도..
전 제리의 죽음이 꼭 제 탓 같았거든요..
미코는 마지막에 행복한 기억을 안고 갔을 거에요..
그날 밤에 온갖 검사를 다했는데 정확한 원인은 찾질 못했어요. 이유를 몰라서 더 죄책감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젠 어떤 자책이나 후회보다 미코와 행복했던 기억을 더 자주 떠올리려고 해요. 페어리엘프님, 정말 고맙습니다.
피피님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신 건가요...
준비된 이별에도 후회와 상처가 남는 법인데 갑작스러운 이별에 얼마나 큰 자책을 하셨을지...
탁,탁,탁 왠지 저에게도 미코의 행복한 소리가 들리는 듯해요..
미코를 알지 못했지만 사진 속 미코는 정말로 행복한 아이 같아요
저는 미코를. 피피님 곁에서 짧지만 그래서 더욱더 행복하게 살다간 예쁜 아이로 기억할게요...
치즈님, 치즈님 댓글은 항상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짧았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행복을 제게 주고갔던 반려견으로 저도 미코를 기억하려구요.
엉엉 울어버러습니다
가슴이 너무아픈사연입니다
김명선님, 공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미코, 기억해주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고등어님, 따뜻한 말씀 고맙습니다. 고등어님 말씀처럼 너무 짧은 생이었지만 사람들과 처음으로 함께 보낸 마지막 두 달이 미코의 먼길에 행복한 추억이 된 거라면 정말 좋겠어요.
입원을 안했어도 후회와회한은 두고두고 남았을겁니다. 입원시켰으면 어땠을까하고,
피피님 글읽고 저도 많이 아팠습니다.
저도 깊숙이 묻어둔 이야기가 있어서, .
미코이야기를 쓰시면서, 얼마나 힘드셨을지, 중간에 쓰지말까, 하고 망설이기도 하셨을거 같아요.
미코가 이렇게 두고두고 피피님 가슴에 살아있는거, 그거만으로도 미코가 행복한거라 생각합니다.
너무 많이 힘드시지 않기를, 너무 많이 아프시지 않기를 바래요.
모모애님, 맞아요. 쓰기 전에도 망설였고, 쓰면서도 몇 번이나 덮어버릴까 생각했고, 쓰고 나서도 미코의 사랑스러움, 미코에 대한 제 마음이 잘 표현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코를 많은 분들께 알리고 싶다는 바람을 실천할 수 있어서 맘이 많이 편해졌답니다. 시간이 지나면 모모애님의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눈물겹게 아름다운 사랑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의 의미를 주고받은 두 영혼의 이야기. 무엇이 그보다 깊고 클 수 있을까요. 슬프기보단 숙연해집니다. 생사를 통해 미코가 다시금 맺어준 피피님과 유기동물들과의 강력한 인연..... 피피님 손길 통해 구해질 수많은 아이들 생각하며 미리 감사합니다. 피피님이 사랑을 주는 모든 아이들이 미코겠지요. 미코는 슬프지 않을것같아요. 피피님이 미코와의 격렬한 추억을 되새기며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도와줄지 알고 있을 것 같거든요.
피피님, 미코, 감사 드립니다. 큰 아픔을 아름다운 사랑의 힘으로 승화시켜 나아가시는 것에!!
젤다님, 이렇게 위로해주시고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팅커벨을 통해 해나갈 일들이 하늘나라의 미코를 기쁘게 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어요.
미코.......너무나도 이뻤었네요...
네, 미코는 말로 다 못할 만큼 사랑스러운 아이였답니다.
지금 저 울고있어요... 기억하겠습니다 미코를...그리구 팅커벨아이들을...
마음이 무척 아프네요 뭐라 말할수없는 슬픔이 밀려오네요 우리집에도 네녀석을 키우고 있어요 다 저마다 사연이 있는 녀석들이죠 그런데 사랑이라는 것이 정말 만병 통치약인것은 맞는가 봐요 눈치보고 힘들어 하는 녀석들을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고 하니까 아이들 표정이 바뀌더군요 아마 미코도 마찬 가지였을 거예요 짧은 생 이었지만 사랑받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 생을 마쳤으니 피피님에게 고마워 할거예요 그리고 네녀셕들중에 우리 코코가 다리가 많이 아파 늘 더 챙기고 마음 아파 한답니다 그 아이도 제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피피님 이제 미코 떠나보내주세요 그래야 미코도 마음이 편할 거예요
이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울적하네요... 미코 참 이쁜 아이였네요....
참 예쁜데 ~~~~마음에 안고 살아야지요. 마음이 먹먹해 옵니다.
에구...올린 지 몇년 지난 글을 저는 이제야 읽고 댓글을 달아요.
제가 단 댓글로 이미 아문 상처가 다시 자극되는 건 아닌지 걱정되지만...
글 쓰신 님은 사랑이 가득한 분이라 그 슬픔도 지혜롭게 잘 극복하셨으리라 믿어봅니다.
제가 고등학생때부터 5년간 키우던 진도믹스견(슬기)을 아파트로 이사 가면서 옆집에 준다는 미명하에 버리고 와서
온 가족이 마음이 아파 다시 개를 키우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울 애들이 어찌나 개를 예뻐하는지
6개월 전 큰 맘 먹고 2개월 아이를 데려왔고, 그 후 이러저러 한 반려견 게시물을 보아 오다가
오늘 드디어 여기 들어와서 회원가입을 했습니다.
30여년간 마음속에 짓눌려있던 슬기에 대한 죄책감을 현재 키우고 있는 아이와, 여기에서 알게된 아이들을 사랑하고 후원하는 것으로 승화시켜야겠다고 마음 먹었어요.
앞으로 자주 오겠습니다
함께 하는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몇시간에 걸쳐 이런저런 글을 읽어보며 사무치게 느낍니다 .
@써지니 써지니님, 안녕하세요. 오래 전 게시물에 댓글이 달렸다는 알림이 와서 카페에 들어와보니 이렇게 감사한 글이 있네요. 슬기에 대한 마음을 다른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하여 극복하시려는 써지니님의 노력에 저도 감동을 느낍니다. (요즘은 저도 눈팅회원이 되었지만) 자주 놀러오셔요. 팅커벨에 따뜻한 분들이 많답니다. ^^
공감합니다. 가족으로 살던 아이들이 세상과 인연을 끝내고 먼여행을 떠나는것을 보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제가 거주하는집은 단독주택이다보니 양이들이 수시로 왔다갔다 합니다. 길양이들이지만 정을주면서 동거하다가 세상과 인연을 마친 양이들은 천수경,금강경,반야심경을 들려주면서 간소하지만 장례예식을 치루고 매장을 해주고 있습니다.피피님의 마음 공감하고 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