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자식들? 자정이 넘은 시간에 건장한 남자들이 젊은 여자 둘을 데리고 별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그 별장은 보통 별장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자 서두르자.” 유선우는 지금 막 여자를 데리고 사내들이 들어간 그 건물이 백악관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걸음을 서둘렀다. 지운도 그런 확신이 섰는지 비탈길을 뛸듯이 올라갔다. 가까운 곳에 있는듯 하면서도 백악관 건물은 꽤 높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형, 봐요. 여기 가까이 와서 보니까 과연 흰 건물인데요. 허투로 백악관이란 이름을 붙인 거 아니군요.” 지운이 걸음을 세우면서 유선우에게 말했다. “올라가기 힘드니?” “아뇨. 저쪽에 도로를 가로 질러 올라가는 지름길이 있는 것 같은데요.” 지운이 손전등을 꺼내 나무숲 사이를 비추었다. 숲 사이에 좁은 지름길이 나 있었다. “너, 망원경만 준비한 줄 알았더니 손전등도 가져 왔구나.” “밤이니까 이것도 필요할 것 같더라구요.” “잘 했다.” “또 칭찬인가요?” “들을만한 일 했으까.” 지운이 소리없이 웃고는 손전등을 비추며 지름길로 들어섰다. “조심하세요. 길이 험해요.” “불빛 보이지 않게 전등을 숙여.” “알고 있어요.” 손전등을 든 지운이 앞을 서고 유선우가 뒤를 따랐다. 지름길로 오르자 금방 백악관 정문 앞에 있는 전주 옆으로 나설 수 있었다. 그곳에는 외등이 켜져 있어 사람이 나타나면 건물 안에서 볼 수 있도록 돼 있었다. “아직 문앞으로 접근하지 마라. 지리를 좀 살펴야겠다.” “너무 조용하지요?” “글쎄….” “그런데 아까 별장 입구에 세운 승용차가 안 보이는군요.” “차고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아마 밖에서 눈에 띄지 않게 차고에 넣어 버렸을지도 몰라.” “그랬을 것 같군요. 아무래도 정문 쪽에서 접근하는 것은 안에서 너무 잘 보여 어려울 것 같구…. 형 생각은 어때요, 뒤로 돌아가 보는 것이.” “나도 지금 그 생각 하는 중이다. 예상했던 것 보다 별장 대지가 넓어 보인다. 별장 뒷쪽으로 돌아가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찾아 보자.” 별장 앞으로 난 도로의 아래턱 비탈을 타고 두 사람은 별장 뒤로 돌아갔다. 별장 뒷쪽은 바로 산비탈로 이어져 있어 나무숲에서 내려다 보니 뒷마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군데 군데 보안등이 있었으나 두어 군데만 불이 켜져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일부러 꺼둔 것 같았다. “형, 봐요. 차고가 저쪽 건물 옆에 있어요.” 유선우는 지운이 가리키는 곳을 보고 속으로 그럼 그렇지를 연발했다. 꽤 넓은 차고였다. 승용차가 차고 밖에까지 주차해 있었으나 정문에서는 보이지 않게 차고 옆이 관상수로 덮여 있었다. “고급 승용차가 여러 대 서 있잖니?” “스무 대도 넘겠는데요.” 지운도 적이 놀란 어조였다. “이 별장에 여러 사람이 와 있다는 증거야. 그것도 밤이 깊었는데 말이다. 이것만 가지고도 이 건물안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니?” “영화 촬영이라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영화 촬영중이라면 이렇게 조용할 리 없지. 차고에 고급 승용차가 늘어서 있을 리도 없구.” “그럼 무슨 일일까요?” “몰라. 다만 우리가 보게 되면 깜짝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허풍도에게서 얻은 정보인가요?” “약간은. 자, 차고쪽으로 돌자.”
유선우와 지운은 별장 측면에 자리잡고 있는 차고쪽으로 돌아갔다. 그쪽은 승용차들이 눈에 띄지 않도록 외등을 밝히지 않은데다 차고의 낮은 지붕이 산비탈에서 타고 내려가기 쉬운 구조로 돼 있었던 것이다. 유선우가 먼저 차고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운이 뒤따라 올라와 지붕위에 엎드리며 물었다. “개 같은 게 없을까요?” “글쎄…, 풀어놓은 개가 있었다면 지금쯤 우릴 발견했을 거야. 아직까진 개가 있는 징후는 없어.” “만일 맞닥뜨리면 어떻거죠? 난 개가 무서운데.” “도망치지 마.” “물텐데요.” “개가 사람에게 으르렁거릴 때는 함께 으르렁거려 주면 돼. 그렇게 하면 개도 함부로 물지 못해. 대부분 개에게 물리는 사람들은 등을 보이고 도망치다 물리는 거야. 사람들이 으르렁거리는 개가 무섭듯이 개도 사람이 마주보고 공격 자세를 취하면 두려워지는 거지.” “형은 어떻게 개에 대해 그렇게 잘 알아요?” “개 키우는 사람들에게 들었어.” 그때 지운이 앞마당 쪽을 가리키며 속삭였다. “저기 봐요. 누가 나왔어요.” 앞마당에 사람의 그림자가 나타나 어정거리는 것이 보였다. 사내는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는 마당을 거닐면서 급하게 담배 연기를 몇 모금 빨고 나더니 정문 쪽을 한번 돌아보고 다시 별장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무슨 일을 하다가 잠깐 담배를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나온 사람 같았다. 밖을 살피기 위해 나온 사람이라면 그렇게 급하게 담배만 한 대 피우고 실내로 들어가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경비 보는 녀석은 아닌 모양이다. 일단 지붕에서 내려 가자. 내 뒤만 따라와.” 차고 건물 옆에 서있는 자작나무 가지가 지붕으로 뻗어 있었다. “이 나무를 타고 내려간다.” 유선우가 먼저 자작나무를 타고 땅으로 내려간 후 지운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지운도 나무를 타는데는 그다지 서툴러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자작나무 뒤에 숨어서 별장 건물 뒷쪽에 있는 층계에 시선을 모았다. 차고쪽에서 별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면 그 층계를 이용해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손쉬울 것 같았다. “저 뒷문 보이지?” “글루 갈 건가요?” “그래.” “몸을 낮추고 따라와. 빠른 걸음으로 가야 한다.” 두 사람은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빠르게 뒷문 층계 쪽으로 접근해 갔다. 뒷문 유리를 통해 실내의 불빛이 새어 나왔으나 실내의 조명이 먼 거리에 있는지 밝은 편은 아니었다. 유선우는 층계 밑에 서서 일단 안의 동정을 살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안에 있는 모양인데 너무 조용하다. 너, 무슨 소리 들리니?” 유선우가 지운에게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아무 소리도.” “그게 이상하단 말야. 이제부터 실내로 들어갈 거니까 내 뒤에 바싹 붙어.” “들키면 어떻거죠?” “해치워야지.” 지운은 그 말이 믿기지 않는지 유선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수가 많으면 어떻거죠?” “피하는 게 좋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땐 맞선다. 넌 내가 시키는대로만 해.” “어떻게요?” “사태가 불리하면 내가 너부터 피신 시킬 거니까 정문으로 나가란 말야.”“그런 다음 어떻게 하죠?” “숨겨둔 자동차로 달려가.” “나만 도망가란 말예요? 그럼 형은 어떻게 하구요?” “내 일은 내게 맡겨 두면 돼. 넌 시내로 들어가 라면집에 가 기다리란 말야.” 유선우는 나무 층계로 올라갔다.
지운이 뒤따라 나무 층계를 올라왔다. 유선우는 뒷문 유리에 얼굴을 갖다 붙이고 안을 살폈다. 뒷문은 바로 복도로 통해 있는데 그 복도에 불이 꺼져 있었다. 실내의 불빛이 침침해 보이는 것은 이 복도의 불이 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침침한 복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복도 끝은 한 방문으로 통해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방에선 무엇을 하는지 조금 밝은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유선우는 그 방에서 뭔가가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복도로 들어갈 수 있는 이 뒷문이 열려 있느냐이다. 조금전 한 사내가 앞쪽의 출입문을 통해 마당으로 나온 걸 보면 뒷문도 열려 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런데 유선우가 뒷문을 당겼을 때 그 문은 뜻밖에 너무 쉽게 열렸다. 오히려 누군가가 유선우의 잠입을 미리 알고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일부러 열어 둔 것처럼 쉽게 열렸던 것이다. 유선우는 일단 함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담았다. 하지만 최악의 경우 함정에 빠져 붙들리는 경우가 생긴다 해도 만만하게 손을 들 생각은 아니다. 문을 소리없이 열고 복도로 들어서면서 뒤에 붙어 따라오는 지운에게 소리를 내지 않도록 손으로 신호를 했다. 복도는 길지 않았다. 그것은 이 별장 건물안에 있는 여러 개의 방으로 통하는 통로로 돼 있는 것 같았다. 복도를 끼고 방이 몇개 있는 것 같았으나 대부분의 방에는 불빛이 없었기 때문에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것이 오히려 유선우의 걸음을 더욱 신중하게 만들었다. 유선우는 몸을 낮추고 고양이 걸음으로 복도를 걸어가면서 지운에게 손전등을 내주도록 속삭였다. 지운이 주머니에 넣어둔 손전등을 넘겨 줬다. 복도의 첫번 째 방문 앞에서 유선우는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방문을 슬며시 밀었다. 문은 소리없이 열렸다. 잠시 어둠에 눈이 익기를 기다렸다가 방안을 보았으나 그 방은 빈 방이었다. 손전등을 켜 방안 이 구석 저 구석을 비춰 보았다. 사람이 기거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오랫동안 비어 둔 방으로 보였다. 그러나 방 한쪽에 놓여 있는 탁자와 시트에 손전등을 비춰 봤을 때 그것이 속단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 방에 조금전 사람이 들어왔었다는 증거가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잿털이에 담배 꽁초 두개가 버려져 있었는데 손전등을 비춰 보니 필터에 묻은 침이 아직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더구나 꽁초 가운데 하나는 거의 3분의 1밖에 태우지 않은 긴 꽁초였고 게다가 흰 필터에는 입술 연지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이 방은 사람이 기거하는 방은 아니나 방금전에 한쌍의 남녀가 들어와 이야기를 하다 나간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렇다면 밝은 불빛이 흘러나오는 복도의 끝방에서 뭔가를 하던 중에 두 남녀가 이 방으로 빠져 나와 잠깐 쉬었다 갔거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간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유선우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 빈 방에서 나왔다. 지운이 유선우 앞에 검지와 중지를 세워 보였다. 두 사람이 방에 있었던 게 아니냐고 묻고 있는 제스처였다. 유선우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 복도끝을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그쪽으로 간다는 표시였다. 복도에 면한 방이 둘 더 있었으나 유선우는 곧장 복도끝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던 것이다.
첫댓글 즐감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