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맡김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큰 기쁨과 행복을 안겨다 주는 것일까?
나와 여러분이 잘나서가 절대 아니다.
이유는 단 하나!
보잘것없는 우리지만
그 부족함마저도 몽땅 하느님께 내맡겼기 때문이다.
과거의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살아왔지만,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죄에 오염된 우리를 ‘나날이 조금씩’ 정화시켜 주시고
지혜를 열어 당신을 알게 해 주시며, 때로는 ‘왕창’ 이끌어 주신다.
하느님의 이끄심에 따라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물을 타고 바람을 타고 하느님 뜻을 타고 ‘하느님 뜻대로 사는 삶’이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인지
나를 알고 있는 모든 분과 정말로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뿐이다.
하느님께 내맡긴 분들은 누구나 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내맡긴 삶이 그토록 은총의 삶인데
왜 그것을 ‘다음’으로 미루는 것일까?
자신에게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가 아직 되지 않았다는 말은
내 경험상 하나의 핑계에 불과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질 때가 언제인지는
우리가 알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하느님의 때는 이미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한시라도 빨리
당신께 내맡긴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하느님 뜻대로 거룩히 살도록 우리를 ‘초대’하고 계신다.
다음으로 자꾸 미루는 것은
하느님의 초대를 거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 뜻대로 살고 싶어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는 것이다.
내 뜻이란 곧 ‘나’이며, 하느님의 뜻은 곧 ‘하느님’이다.
다음은 보장되지 않는다.
‘다음’은 하느님의 시간이다.
하느님의 시간을 넘보는 것은 큰 실례다.
우리의 시간은 오늘도 아닌 ‘지금’뿐이다.
그것도 ‘여기의 지금’일 뿐이다.
그 외의 모든 시간의 주인은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다.
‘지금, 여기’에서만 하느님 나라를 시작할 수 있을 뿐이다.
나와 정을 나누었던 여러분,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아껴 주던 여러분,
나를 알게 될 여러분,
모든 것은 ‘선택’이다.
하느님은 이미 벌써 우리를 선택하셨다.
우리의 선택만이 남아 있다.
‘지금 여기’를 선택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금 여기서 ‘내맡김’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내맡김으로 ‘하느님’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하느님을 소유’하기 바란다.
‘하느님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바란다.
여러분께 하느님의 축복을 보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