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월) 여행 11일차
오늘 저녁도 매리어트 예레반 호텔에서 투숙하니 짐울 꾸리지 않아서 참 좋다. 여행의 고역 중 하나는 가방 풀고 싸기가 아니던가. 호텔식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서기 301년 기독교를 아르메니아 국교로 만드는 데에 기여한 그레고리 신부의 코비랍 교회로 간다.
창밖으로 아르메니아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가까이 아라라트 산도 보인다. 어제보다 거리 상으로는 가까워 보여도 약간 흐린 날씨로 덜 선명하다. 교회를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지점의 길가, 포도나무 과수원에 버스를 세운다. 눈을 이고 있는 아라라트 산과 동산의 꼭대기에 세워진 교회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정말로 사진을 남기기 좋은 곳이다.
이 교회는 터키와의 국경 가까운 곳에 있다. 아르메니아의 그레고리 신부가 13년 간 땅굴 속에 구금되었던 곳에 교회를 지은 것이다.
그레고리 신부는 기독교 전파라는 관점에서 보면 조지아의 성 니노와 같은 존재이다. 그는 아르메니아에서 태어나 지금의 터키 카파도키아에서 자랐다. 당시 카파도키아는 기독교가 융성한 곳이었다. 성인으로 자라 신부가 된 그는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고국으로 되돌아 온다. 기독교를 반대한 국왕에 의해 구금되었다.
교인들이 박해받는 중에도 13년 동안 감시인들의 눈을 피해 음식물을 넣어 주었기에 신부는 살아 남았다. 신부의 구금 기간 중 36명의 수녀가 추가로 파견된다. 36수녀의 순교 이후 국왕은 회개하여 그레고리 신부를 방면하고,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것이 서기 301년이다. 이로써 아르메니아는 최초의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나라가 되었다.
코비랍 교회 주차장에는 많은 잡상인들이 있다. 농산물이나 앞치마 등 잡화품, 조각품이나 도자류 등의 공예품을 파는 상인이 있다. 그 중 특이한 것은 살아있는 비둘기를 파는 상인이다. 새장 속에 비둘기 몇 마리를 넣어 다니면서 팔고 있다. 비둘기를 사서 날리면 나의 때묻은 영혼과 여지껏 지은 죄를 비둘기가 하늘로 날려 보내 없어진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비둘기의 귀소본능을 이용한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
이 교회는 13세기에 지어졌다. 신부가 구금되었던 땅굴 속에 직접 내려가 본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내려가 보니 생각보다 좁지 않다.
교회에서 내려 오니 주차장 옆에는 커다란 공동묘지가 있다. 그리고 엄청나게 넓다. 영험한 성지에 있는 교회의 덕으로 죽어서도 좋은 하늘나라로 갈 수 있다고 여겨 너도 나도 무덤을 쓰다 보니 자연적으로 큰 공동묘지가 되었단다.
묘 앞에는 돌비석인 하치카르가 서 있다. 어떤 묘 앞에는 하치카르와 러시아식 사진 돌비석이 함께 서 있다.
하치카르는 아르메니아에만 있는 독특한 양식의 돌비석이다. 돌의 중심부에 십자가를 새겨 넣고, 원을 그리는 추상적인 문양을 둘러서 새겨 놓았다. 아르메니아 인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묘지 뿐만 아니라 교회 입구 등 교회 주변에도 많은데 왜일까?
속세와 천국을 이어준다는 이 비석은 꽃과 덩굴 문양이 끝없이 이어지는 모양을 새겨 놓았다. 이슬람의 모스크에서의 느낌이 이 묘비석에도 있다.
하치카르는 오렌지 색 돌을 깎아서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크기는 제 각각이다. 내가 본 중에 새 것은 모두 오렌지 색이며, 오래될수록 점차 검게 변한다.
학살 전 아르메니아 인들이 많이 살았던 터키의 아나톨리아 지역에도 아르메니아 인들이 세운 많은 하치카르가 존재한다.
36명의 수녀가 순교하여 묻힌 가이아네 교회를 둘러 본다. 36명의 수녀 순교는 13년 간 갇혀 지냈던그레고리 선교사가 석방되며, 기독교가 아르메니아의 국교로 받아 들여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에키미아진 성 마더 성당으로 간다. 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쉽게 본당은 둘러 보지 못하고 박물관을 둘러 본다. 이 성당은 아르메니아 정교회의 대주교 성당이다. 로마 카톨릭의 바티칸 성당에 해당하는 교회이다. 세계 최초의 공식적인 교회이며, AD 301년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세워졌다.
성당의 부속 박물관에는 예수를 찌른 창과 예수가 못 박힌 십자가의 파편이 보관되어 있다. 십자가의 파편은 눈 크게 뜨고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이쑤씨개 반 정도 크기이다. 나의 눈으로는 진위가 의심스럽지만 그것은 신앙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36명의 수녀 중 가장 예뻤으며, 국왕의 수청 요구를 거절하고 순교한 흐립수민 수녀를 모신 흐립수민 교회도 둘러 본다.
석조건물의 진수인 즈바르트노츠 성당도 있다. 이 성당은 벌판 한 가운데에 파괴된 채로 덩그라니 서 있다. 7세기에 건립되어 10세기 대지진 후 폐허로 남아 있었으나 20세기에 일부 복원되었다. 현재 교회로 사용되지 않고 있으나 교회의 편린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을 정도로는 복원되었다. 와인 저장고 유적과 회랑이 남아 있다.
에키미아진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굉장히 규모가 큰 식당이다. 식당 내부에 기념품점이 있고, 포도주 항아리 등도 전시해 놓았다. 주변에 유서 깊은 교회가 많은 연유로 그런 것인지 대부분의 손님이 관광객으로 보인다. 점심으로는 닭고기 볶음밥과 야채 볶음 등이다. 제법 맛이 있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NOY 양조장 방문이다. 이 나라에는 두 개의 크고 유명한 양조장이 있다고 한다. 노이 양조장은 폐허화 되다시피 한 것을 아르메니아의 한 재벌이 인수하여 되살렸다고 한다. 양조장의 겉 모습은 유럽의 어느 성을 방불케 한다. 젊은 아가씨가 나와서 우리를 인도한다.
이 양조장은.포도주와 코냑을 생산한다. 포도주 시음한다. 다른 포도주애 비해 단 맛이 강하다. 포도주가 단 맛이 강한 것은 사용된 포도의 당도가 너무 높아서 포도당으로 알코홀 발효가 일어날 때 포도당 일부가 그냥 포도당으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르메니아 포도 중 일부는 포도주 만드는 데에 부적합하다. 부적합한 포도로는 포도주를 만 든 후 증류하여 코냑을 만든다.
코냑은 지리적 표시제가 적용되는 품목으로 프랑스의 코냑 지방에서 생산된 브랜디만 코냑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다. 아르메니아 브랜디는 워낙 품질이 뛰어나 프랑스로부터 코냑 명칭을 쓸 수 있도록 허여받아 코냑을 생산한다. 아르메니아는 연간 700만 병의 코냑을 생산하여 구 소련 국가들과 서방으로 수출하고 있다.
지하에 만들어진 양조장의 포도주 저장고 규모나 통의 크기 등이 어마어마하다. 코냑도 시음해 본다. 5년 숙성한 것과 10년 숙성한 것이다. 맛을 보니 그 깊이와 부드러움이 문외한인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차이가 있다. 예전에 마시던 VS급, 혹은 VSOP급이나 XO급도 별 차이를 모르겠던데...
이 양조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질 좋은 코냑을 살 수 있다. 프랑스 산의 절반 이하 가격이다.
호텔로 돌아와 저녁 먹으러 갈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다. 마눌님과 나와 갑장인 선배 부인, 셋이어 시내 구경에 나선다. 예레반의 명동 격인 거리로 간다. 구경과 쇼핑이다. 두 여인은 장신구 몇 점을 산다. 각각 손자들 줄 장난감도 고른다.
저녁 식사하러 간다. 아르메니아 민속 음악 을 연주하는 악단과 가수가 출연한다. 살구나무로 만든 피리인 전통악기 두둑도 연주된다. 한국인들 귀에 익숙한 러시아 민요 등이 귀를 즐겁게 한다. 연주 중간에 갑자기 현지 가이드인 아르미나가 무대로 나가 현란한 전통 춤 솜씨를 보여 준다. 어릴 때부터 20년 넘게 갈고 닦은 실력이란다. 그 솜씨가 프로를 빰칠 정도로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식사에 겯들인 포도주는 내가 쐈다. 여행 기간 내내 포도주를 즐겼는데 부부로 여행 온 사람들이 돌아가며 샀다.
유쾌한 저녁 식사 후 일행들과 함께 호텔로 걸어서 되돌아 온다. 어제 저녁 갔던 그 길이다. 시민들의 모습에서 예레반의 활기찬 모습이 느껴진다.
후속 여행기는 다음 주 금요일에.....
오늘은 삼공구르메의 신년회 겸 2019 일기 출판 기념회가 있는 날이다. USB에 담아 갈 사람은 오면서 갖고 오란다. 노트북 지고 온다 하네. 덕장군은 동원에 3대의 당구대를 준비하고 2시까지 오라고 꼬신다.
구활 하장군의 사진이 단톡방에 뜬다. 아마도 자찍 사진인가 보다. 200에 동원 도착하니 덕장군 혼자다. 일합을 겨루길 청원해서 연승을 올린다. 오랜 만에 당회장 덕장군을 이겨 본다. 태장군과 포장군은 잔차를 끌고 나타난다.
당구장에서 공굴리기 한 게임 후 김치둑딱으로 간다. 모두 15명의 장수가 모인다. 김치찌개에 라면을 넣어 술 한잔하고 공식행사를 진행한다. 은장군 사회로 무대장의 인사에 이어 도장군의 구르메 일기 연혁보고가 이어진다.
무대장으로부터 인쇄를 마친 3권의 일기책 증정된다. 작년 한 해 구르메를 이끌었던 전임 황대장과 일기를 관리해 온 도장군, 매 주 금요일마다 일기를 써온 내가 1권씩 받는다. 무려 972페이지에 달하는 큰 책이다.
구르메 일기의 참여를 높이는 방안에 대하여도 설왕설래. 한 가지 확정한 것은 최다 댓글자에게 일기책을 증정키로 한다. 사실 많은 댓글은 집필자를 신나게 한다. 그리고 집필 지원자를 모집해 보는 방안도 모색해 보기로 한다. 단톡방에서 의논해 보기로....
코비랍 교회로 가는 길가 포도과수원에서.
멀리 아라트 산이 보이고, 동산 위에 코비랍 교회가 서 있다.
코비랍 교회에 있는 그레고리 신부의 초상
교회 아래의 공동묘지에 있는 부부의 러시아식 사진 묘비
가이아네 교회 내부
순교한 36명의 수녀상
예수를 찌른 창
흐립수민 교회
노이 양조장의 포도주를 저장, 숙성시키는 오크통들
시내 구경에 함께한 두 명의 여인
식당에서 음악을 들려준 악단과 가수
그레고리 신부가 13년 간 구금되었던 지하 감옥으로 내려 가는 중
와인 시음. 옆의 아가씨는 양조장 안내원
코냑 숙성고
하치카르
하치카르와 가이드인 블라디미르 박
그레고리 신부와 기독교를 탄압하였다가 추후 국교로 정한 왕의 초상
지진으로 파괴되기 전의 즈바르트노츠 성당 상상도
어키미아진 성당에 있는 문.
2016년 로마 카톨릭의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여 세운 문이다.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은 분리된 후 1천년 넘게 대립해 왔다
첫댓글 2012년 출장시 가본 곳이 코비랍 교회였네?ㅎ~
감사!^^
지금 교정 안 하모 담에 할 기회 없다...
ㅎㅎ. 이제 교정 끝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