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살더라. 민21:4-9
주신 말씀 민21:4-9절을 중심으로[ 모두 살더라]는 제목으로 선포되는 멧세지를 통해 큰 은혜의 시간되시기 원합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수장된 300여명의 귀한 생명을 애도하는 마음과, 그들 모두 살아 돌아왔으면 하는 애타는 심정으로 성경에 죽을 고비에서 산
사람들의 말씀입니다. 산 불뱀에 물린 자들이 죽은 놋으로 만든 뱀을 장대에 매달고 ‘그것을’ 보면 살리라’는 말씀을 믿고 불뱀에 ‘물린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는 본문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은 가데스 집결에서부터 모세의 신명기 설교가 있었던 모압 평지까지의 행군 중에 있었던 기록의 일부입니다.
에돔이 이스라엘의 영내 통과를 거부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으로 가는 빠르고 편한 길 대신에 홍해 길로 돌아가는 것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한 것은 곧 반역행위이므로 하나님께서 불뱀을 보내어 불평하는 자들을 물어 죽도록 징게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중 죽은 자가 많자 백성들이 우리가 범죄하여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는 요구를 받고 기도 즉 테필라 하여 얻은 해답이 바로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자마다 모두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 살아나는 이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보호 안에 살라.(4-6)
영혼의 생명을 노리는 불뱀인 불평 불만을 주의해야 합니다.
4절에서 홍해길은 사해 남부에서 아라바 광야를 거쳐 아가바만의 에시온게벨에 이르는 길로 대부분이 사막지대로써 매우 거칠고 여행하기에 거친 길이었습니다.
홍해길이 거칠고 험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견디지 못하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빨리 들어가기만을 재촉하여 조급해진 상태를 말합니다.
즉 그들이 일세대들이 걸어간 홍해길을 참아내지 못한 것은 그들의 육체때문이거나 길때문이 아니라, 가나안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바라며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했던 그들의 마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영혼의 생명을 노리는 시기는 성공할 때입니다.
우리의 소망이 더디 이루어질때 그 마음이 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이루고 인내하는 자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게 되는 진리를 바로 깨닫고 아무리 극심한 고난 가운데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우리의 중심을 늘 하나님께 향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소망의 항구로 안전하게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건을 통해 우리는 지난 주 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전국민적 회개 운동을 통해 기본과 정직을 회복해야 합니다.
수명이 다한 배를 사다가 개조해서 정원을 늘리고 제대로 고정하지 않고 화물을 초과적재하고 무임승선하고 탑승인원과 화물의 중량을 허위신고 하였습니다. 무리한 출발, 태만한 근무, 무책임한 탈출, 무식한 안전교육씨스템, 과속운행 , 정부의 허술한 대응과 무능, 302명중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안타까운 구조실적이 안타깝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한국호가 침몰하고 있는 위기를 느끼면서도 이러한 수난과 고난을 겪으면서 안전대책이 잘 강구하여 두 번 다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헛되이 버리지 않는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가 건설되는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
진도에 구호품을 전달하고 돌아온 목사님이 ‘현지는 숨을 쉴 수가 없습니다’라는 한마디로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를 전하네요.
이런 와중에 부적절한 처신으로 파면된 공무원들이나 정치인들의 말실수와 사과 등이 반복되고 있고 유언비어가 확대되고 색깔론의 광분과 스미싱까지 활개를 치고 있는데 이를 평론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청해진 해운이 구원파의 세모가 전신이라니 놀라울 뿐입니다.
복음 침례교등 구원파든 이단이든 그냥 기독교로 싸잡아 욕하고 비난합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실종자 가족대표로 활동한 사람이 아산에서 정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예비정치인으로 활동하는 목사라는 사실은 당혹스럽고 수치스런 일입니다.
절망에 빠져 힘들어하고 단장의 아픔을 겪고 있는 실종자 가족들에게 국민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위로하고 치료하고 저들과 아픔을 함께 해야 할 때 본분을 망각한 일부의 몰지각한 행동은 예수님을 욕되게 합니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선진국의 문턱에서 사회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계층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추락한 많은 나라들에게서 의 교훈을 받아 국민적 회개운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자기 본분에 맞게, 사명감과 책임감을 가지고 기본에 충실한 나라정직한 나라 범과 질서가 확립된 좋은 나라 서로 양보하여 통전 통합과 통섭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야 될 줄 믿습니다.
5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항하고 그리고 모세를 대항하여 말했다 합니다.
백성들은 거칠고 험한 길, 물도 없고 식물도 없고 만나에 질렸음을 인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장래에 대한 소망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에 홍해길로 인해 불평했고 불평과 불만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를 범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하찮은 식물을 싫어하노라’는 말하는데 하찮은 식물이란 전통적으로 곡식 대신으로 쓰이는 구황식물이나 맛없는 식물을 가리키는데 여기에서는 구체적으로 만나를 가리킵니다.
싫어하다(קוצ쿠츠)는 말은 싫어하다, 미워하다, 가증히 여기다는 뜻이며 여기에서는 단순히 싫어하는 것을 넘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내며 나아가 그 대상이 없어지고 끊어지기를 바라는 감정적 반응을 나타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난 40여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하늘에서 매일 내려 주시는 만나가 이제 싫증나고 싫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북녘 땅에서는 마음대로 예배도 못하고 찬송도 못하고 성경책도 소유하지도 못하는 생명을 걸고 예배하는데 우리는 기도하지 못하고 예배하지 못하고 찬송하지 못하고 전도도 선교도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처음엔 꿀처럼 달았던 만나를 그들은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지만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질리고 싫어지게 되어 급기야 음식에 대해 불평하게 되었고 , 이 음식을 주신 하나님의 존재와 출애굽 사건 자체마저도 원망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교만한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놀라운 능력을 기억하고 바람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어리석은 성도가 되어선 안됩니다.
불평 불만하여 하나님을 배반한 불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불뱀들을 백성중에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백성 중에 죽은자가 많다고 합니다.
이 불뱀은 아라바 사막에 많은 뱀으로 한번 물리면 순식간에 생명을 잃을만큼 치명적인 독사입니다. 이 불뱀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으로 오해하면 안됩니다. 그 동안도 불뱀은 사막에 득실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뱀들의 입을 봉하여서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물거나 해치지 못하도록 막고 계시다가 보호하시다가 이제 그들이 불평불만하고 불신앙인이 되어가자 보호하심을 울타리를 거두신 것입니다.
우리는 기본적을오 불뱀에 물려 죽게된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보혈의 공로로 예수님 피값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잊고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환난과 시련과 고난 때문에 울며 하나님께 불평하고 불만해선 안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망하고 불평을 일삼음으로 하나님의 보호의 손길이 떠나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감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을 때 생명이 보존되고 형통하며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믿습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 살아나는 이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둘째로 구원의 길로 나아가라(7-8)
7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범죄하였다 합니다.
여기서 죄는 지난주에 말한 죄의 4가지 형태 중 하타트(죄.sin) 즉 관습과 윤리상의 범죄하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빗나갔다는 말입니다.
즉 가나안땅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이 그들에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잠시의 고난을 인내하지 못하였고 ,여호와를 대적하여 교만히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행위는 하나님의 뜻에서 크게 빗나가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된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뱀으로 인한 재난이 자신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깨닫고 고백할 때 용서하여 주시고 품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행하시는 징계는 회유와 권면의 채찍질로써 그들로 범죄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기 위한 선하신 목적으로 사용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백성들의 중재 요청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매”에서 [기도하매;이트팔렐ויתפלל]은 기도하다는 뜻이 다소 변하여 심판하다 중재하다는 뜻을 갖게 됩니다.
중재는 예수님 한분이십니다.
구약에서 예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일하시고 활동하시므로 중재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주의해야할 단어는 [위하여בעד 뻬아드]는 기도 간구등과 관련하여 선지자들을 포함한 지도자들의 중재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전치사이며, 제사장들에게 준 명령에도 이 단어가 사용되어 ~을 위하여 (뻬아드) 속죄하라는 권면이 레 9:7에 나오는 것으로 봐서 모세의 백성을 위한 중보기도라 할 수 있지요.
오늘 우리에게 온 인류의 온전한 중보자 되신 예수님이 계셔서, 예수님 이름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간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시고 감사한 은혜인줄 믿습니다.
딤전2:5 “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합니다.
예수님만이 온 인류의 온전한 중보자임을 믿어야 합니다.
그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온전한 구원의 길을 제시해주는 믿어야 합니다.
8절에서 백성을 위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 재앙으로부터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불뱀을 놋으로 만들어 장대위에 달게하고 그것을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의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이 죄악 가운데서 죽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언제나 모두 살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산 불뱀에 물린자가 죽은 놋뱀을 바라보는 자마다 모두 살더라 합니다.
그래서 구약은 죽은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고 불완전한 모세의 중보기도를 드렸지만 신약은 산제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예수님의 완전한 중보자 됩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영원한 구원의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을 살리시려고 십자가에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게 하시고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는 자마다 구원 얻게 하시어 영원히 살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롬5:8 “우리가 아직 주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시해 주신 구원의 길인 줄 확실히 믿습니다.
불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의 길로 제시된 놋뱀을 바라보고 구원 얻은 것처럼 우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해 주시되 오직 한 길 예수 그리스도만을 구원의 길로 제시해 주신줄 믿고 예수 믿고 모두 다 영원히 사는 영생의 복을 받으시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 살아나는 이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셋째로 십자가의 공로만 자랑하라(9).
장대에 달린 놋뱀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마련하신 구원의 도구로 등장합니다.
이 놋뱀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그 무엇으로도 죽어가는 자신들의 처지를 구원할 수 없었던 우리 인생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셧습니다.
본래 십자가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멸시받는 사형 틀입니다.
그래서 성경 고전1:23 “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니”라 했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러한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의 방편으로 삼으셨는가하면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이루게 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남녀노소 빈부귀천 왕후장상 따로 없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고 그 누구라도 믿지 아니하면 생명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을 일으킨 회사가 오대양 사건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유병헌의 구원파 라 하네요.
이들은 이미 이단으로 치리된 즉 한국교회와 상관없는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박찬X 변호사 같은 이들은 유병헌 목사라하며 기독교를 비난 하네요.
구원파는 기독교 복음침례파의 권신찬 계열에서 한 번 구원 받으면 어떤 죄를 범해도 죄 사함을 받는 다는 도덕 폐기론을 주장하는 이단인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는 결코 버림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믿으며 구원 이후 아무렇게 살되 헌금만 잘하고 충성만 하라는 잘못된 가르침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빠지고 세상적인 복만을 기대하며 교주에게 유혹되어 이단에 들어갔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실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십자가의 공로를 뒤로하고 자신을 자랑하며 자신의 체면과 권위만 내세우려 해서는 안됩니다.
건강한 교회는 교인들 상호간에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섭섭해하고 원망하는 적대감을 갖지 않을뿐더러 ,서로를 믿고 신뢰하며, 상대방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존경하고 위하는 교회입니다.
훌륭한 가문과 학벌 그리고 국적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의 공로 즉 섬기는 교인이 말씀 앞에 순종하는 성도가 사람을 살리게 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썩어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붙잡고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되지 말고 십자가 앞에서 겸손히 엎드려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원 합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희생된 유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최대한 예우와 보상을 해야 하겠지만 국가 전체가 초상집 분위기에서 이제 벗어나 정상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회개 운동을 통해 의식개혁이 일어나 기본이 제대로 확립된 나라 원칙이 준수되는 나라를 건설해야합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을 때마다 구원 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여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날이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어떻게 하면 모두 살아나는 이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보호 안에 살라.(4-6)
둘째로 구원의 길로 나아가라(7-8)
셋째로 십자가의 공로만 자랑하라(9).
믿음으로 구원 받는 다는 진리가 단순하고 일차원적이라 해서 진리가 아니거나 거짓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품성과 인격을 닮아 체질화되므로 언어 행동 하나 하나가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가장 많이 익히는 성경은 개정 개역성경이나 킹제임스 성경이 아니라 바로 성도의 삶이라는 성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은 성도의 삶을 보고 예수님을 하나님을 판단하고 받아들이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 재림하시는 그날 모두 살아나 예수 믿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믿지 않고 불량하게 산 자들은 저주의 부활로 영원히 고통중에 처하게 될줄 믿고 성도는 구별된 성화된 거룩한삶을 살아야 될 줄 믿습니다. 아멘
글쓴이 서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