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하면 흔히 마틴 루터, 존 칼빈, 울리히 츠빙글리 등의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밖에도 16세기 종교개혁을 이끈 인물이 많고 대부분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학자, 성직자, 학자 등이었다. 기독교 매체 크리스천 포스트가 그동안 우리가 잘 몰랐던 종교개혁가 5인을 재조명했다.
◇기욤 파렐(1489-1565)
종교개혁가이자 설교가인 기욤 파렐은 불어권 스위스인들에게 종교개혁을 촉구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프랑스 태생인 파렐은 독실한 천주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1517년 파리 대학을 졸업한 이후 종교개혁 지지자로 전향했다. 대립적인 성향의 설교가로 알려진 파렐은 제네바로 이주, 존 칼빈에게 엄격한 개신교 사회 건립 운동에 동참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유명하다.
베들레헴 신학대학의 조너선 바워스 신학 및 철학과 교수는 “사자처럼 담대하고 때로는 분쟁적이었지만 불어권 국가의 영적 활력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라고 파렐을 평가했다. 파렐은 1524년 사도신경과 주 기도문을, 1529년에는 초기 종교개혁 가르침을 불어로 해석하는 등 불어권 종교개혁에 앞장선 인물이다.
◇카스파르 슈벵크펠트(1489-1561)
독일의 귀족 가문에서 출생한 슈벵크펠트는 종교개혁이 일어난 1517년 법원의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발생 직후 종교개혁 움직임에 동참했다. 초기 루터 주의에 접근했지만 성찬론 등에서 이견이 생겨 1526년 독자 종교개혁 노선을 걷기로 결정했다. 슈벵크펠트가 전개한 종교개혁 독자 노선은 ‘그리스도 영광의 고해 신부’(Confessor of the Glory of Christ) 또는 일명 ‘슈벵크펠터스’(Schwenkfelders)로 불렸다.
카톨릭과 루터파의 중간노선을 지향했으나 양쪽으로부터 적지 않은 탄압을 받고 결국 슈벵크펠트는 도피 생활로 말년을 보내야 했다. 슈벵크펠터의 추종자들은 이후 탄압을 피해 1734년 경 펜실베니아로 이주했는데 그의 영향을 받은 커뮤니티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피터 마터 버미글리(1499-1562)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역에서 구두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피터 마터 버미글리는 탁월한 하나님 말씀의 종이자 종교개혁자로서 존 칼빈과 더불어 개혁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신학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버미글리는 1525년 카톨릭 사제로 임명받았지만 1540년 종교개혁의 물결에 동참하게 된다. 고향 이탈리아에서 추방된 버미글리는 중부 유럽에 위치한 스트라스부르를 여행하다 1547년부터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메리 여왕이 즉위한 뒤 카톨릭으로부터의 탄압을 피해 다시 스트라스부르로 돌아왔다.
W. 로버트 갓프리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 박사는 “지금은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당시 경건함과 탁월한 지식 등으로 널리 알려졌던 인물”이라고 버미글리를 평했다. 버미글리의 장례식에서 추도 연설을 맡은 조시아 심러는 버미글리를 ‘다양한 국가와 도시들에 파견된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라고 추도했다.
◇후안 페레즈 피네다(1500-1567)
피네다는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배경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개신교로 전향한 피네다 역시 박해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 지역으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신약 성경과 구약 성경 중 잠언, 개신교 관련 서적을 스페인으로 번역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19세기 문학 평론가 마르셀리노 메넨데즈 펠라요는 피네다의 잠언 번역서를 최고의 스페인어 번역서로 꼽았다. 피네다는 스페인 세빌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을 정도로 스페인 복음주의계에서 여전히 추모되고 있다.
◇필립 멜란히톤(1497-1560)
교육자이자 신학자인 멜란히톤은 독일 태생으로 루터 교회의 신앙 고백인 ‘아우구스브루크 신앙 고백’(Augsburg Confession)의 주요 저자다. 마틴 루터의 친구였던 멜란히톤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Paul’s Letter to the Romans)를 강의했으며 1521년 개신교 최초 조직 신학서인 ‘신학 총론’(Loci communes rerum theologicarum)을 저술했다.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은 신학 총론을 필독서로 지정했고 엘리자베스 여왕 1세는 신학을 자세히 이해하기 위해 신학 총론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다고 한다.
첫댓글짧은 글로 괜찮긴 한데요. 카스파르 슈벵크펠트는 정통 종교개혁보다는 급진 종교개혁에 서있는 인물이므로 주의를 요한다고 봅니다.
"카스파 폰 쉬벵크펠트(Caspar von Schwenckfeld, 1489년 - 1561년 12월 10일)은 독일인 신학자이자, 작가, 그리고 설교자였으며, 개신교 개혁자 및 영성주의자, 실레지아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토마스 뮌처와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를 통하여 종교개혁의 원리를 받았다. 처음에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루터교로 개종하였고 1524년 하늘 육체론(the Heavenly Flesh doctrine)을 주장하면서 루터와 성례전 논쟁을 한 후에는 급진 종교개혁가로 변신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성령론에 대해 보다 개혁적이었으며 개인주의적이었다. 성령의 사역이 개인의 중생체험에 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유아세례를 반대하였다. 아브라함 카위퍼르는 그를 미치광이로 불렀다. 그의 후예들은 독일에서 추방되었으며 유럽에서는 재세례파와 경건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영국의 청교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급진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이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대한 반응으로 또한 루터와 다른 종교 개혁가들에 의한 종교 개혁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들이 급진적으로 종교 개혁 운동을 시도한 것을 말한다.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 토마스 뮌처, 메노 시몬스, 야코프 후터, 츠비카우 선지자들 및 재 세례파, 그리고 메노나이트가 있다."
이 중에서 토마스 뮌처, 츠비카우 선지자들은 극단적으로 과격한 재세례파들로서 문제가 많은 자들이고, 카를 슈타트 등 나머지 인물들은 성서적 재세례파로서 괜찮은 인물들입니다. 신학적으로 급진주의가 있긴 하지만 훌륭한 점도 많이 있습니다. 재세례파는 스펙트럼이 아주 넓습니다.
@코람데오재세례파는 교회론에서 천주교와 상극의 대립을 하고 국가와 정부의 역할에서 정통 종교개혁의 입장을 통렬히 비난했는데.... 그나마 온건한 성서적 재세례파일지라도 칭의론에 있어서는 천주교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마이클 호튼 등의 연구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재세례파는 영혼수면설을 주장하는데요. 육체는 잠을 자지만 영혼이 왜 잠을 잡니까? 영혼수면설은 재세례파를 계승해 현대적 변종이 된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이 주장하는 영혼멸절설에 연결됩니다.
첫댓글 짧은 글로 괜찮긴 한데요. 카스파르 슈벵크펠트는 정통 종교개혁보다는 급진 종교개혁에 서있는 인물이므로 주의를 요한다고 봅니다.
"카스파 폰 쉬벵크펠트(Caspar von Schwenckfeld, 1489년 - 1561년 12월 10일)은 독일인 신학자이자, 작가, 그리고 설교자였으며, 개신교 개혁자 및 영성주의자, 실레지아에서 개신교 종교개혁의 초기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토마스 뮌처와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를 통하여 종교개혁의 원리를 받았다. 처음에 그는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루터교로 개종하였고 1524년 하늘 육체론(the Heavenly Flesh doctrine)을 주장하면서 루터와 성례전 논쟁을 한 후에는 급진 종교개혁가로 변신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성령론에 대해 보다 개혁적이었으며 개인주의적이었다. 성령의 사역이 개인의 중생체험에 보다 강력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유아세례를 반대하였다. 아브라함 카위퍼르는 그를 미치광이로 불렀다. 그의 후예들은 독일에서 추방되었으며 유럽에서는 재세례파와 경건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영국의 청교도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출처-한국어 위키백과
공감합니다.
청교도 영성에 일부 영향을 끼쳤다고는 하지만 슈벵크펠트는 급진 종교개혁이며 재세례파로 분류되는 것이 합당한 인물입니다.
@장코뱅 네, 잘 참고하겠습니다.
급진 종교개혁에 대해서 쉽게 알려면 아래 위키백과를 참고하세요.
"급진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이란 로마 가톨릭 교회의 부패에 대한 반응으로 또한 루터와 다른 종교 개혁가들에 의한 종교 개혁에 만족하지 않은 사람들이 급진적으로 종교 개혁 운동을 시도한 것을 말한다. 안드레아스 카를슈타트, 토마스 뮌처, 메노 시몬스, 야코프 후터, 츠비카우 선지자들 및 재 세례파, 그리고 메노나이트가 있다."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EA%B8%89%EC%A7%84_%EC%A2%85%EA%B5%90%EA%B0%9C%ED%98%81
재세례파는 천주교는 물론이고 정통 종교개혁과도 대립을 하였고요. 과격파와 신비주의자 외에, 성서적 재세례파가 있기는 하지만 칭의론에서는 천주교와 같은 수준에 있었습니다.
이 중에서 토마스 뮌처, 츠비카우 선지자들은 극단적으로 과격한 재세례파들로서 문제가 많은 자들이고, 카를 슈타트 등 나머지 인물들은 성서적 재세례파로서 괜찮은 인물들입니다. 신학적으로 급진주의가 있긴 하지만 훌륭한 점도 많이 있습니다. 재세례파는 스펙트럼이 아주 넓습니다.
@코람데오 재세례파는 교회론에서 천주교와 상극의 대립을 하고 국가와 정부의 역할에서 정통 종교개혁의 입장을 통렬히 비난했는데.... 그나마 온건한 성서적 재세례파일지라도 칭의론에 있어서는 천주교와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마이클 호튼 등의 연구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재세례파는 영혼수면설을 주장하는데요. 육체는 잠을 자지만 영혼이 왜 잠을 잡니까? 영혼수면설은 재세례파를 계승해 현대적 변종이 된 안식교나 여호와의 증인이 주장하는 영혼멸절설에 연결됩니다.
@장코뱅 잘 알겠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재세례파 중에는 천주교 식의 결혼관을 가진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 아담파.
https://cafe.daum.net/1107/YrXT/125
천주교에 대한 과격한 반동(reaction) 작용을 하면서도 천주교와 같은 오류를 답습하는 재세례 분파가 꽤 있었습니다.
네, 주의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구약성서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극단적 성향의 재세례파도 있었습니다.
https://cafe.daum.net/1107/Y4cZ/58
여호와의 증인, 퀘이커, 재세례파의 특징 중 하나는 절대적 평화주의입니다. 이들의 비현실적 주장을 일축하는 웨민 포스팅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s://cafe.daum.net/1107/YcL1/29
다시 잘 읽어 보았습니다.
위 5인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출신의 종교개혁자들이군요. 짧고 간단한 포스팅으로 공부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