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도 북종(北宗)의 개조(開祖), 왕중양(王重陽) 선인(仙人)
왕중양(王重陽) 선인(仙人)의 원 이름은 왕철(王嚞)이고, 본명은 중부(中孚), 자는 윤경(允卿), 도호는 중양(重陽)이며 1112년 섬서성(陝西省) 함양(咸陽)에서 태어났다. 후일 그는 전진도(全眞道) 오조(五祖)의 한 사람으로, 전진도(全眞道) 북종(北宗)을 연 개조(開祖)가 되었다.
그의 조상은 섬서성 함양 지방의 오랜 대족(大族)이었는데, 뒤에 종남현(終南縣) 유장촌(劉蔣村)에 옮겨와 살았다. 그는 과거에 실패하자 문과(文科)를 포기하고 무술을 수련해, 20대에 금(金) 희종 천권(天眷) 원년(1138)에 무과(武科)에 급제하였다. 그후 그는 큰 경륜을 마음에 품었으나 제대로 등용이 되지 않자, 사직하고 나서 산림에 은거(隱居)하였다.
어느 날 왕중양은 깊은 탄식을 했다. “공자는 사십불혹(四十不惑), 맹자는 사십부동심(四十不動心)이라 했는데 지금 내 나이는 이미 48세가 아닌가? 보잘것없이 무위도식이나 하고 있으니, 마치 벌레와 같지 않은가?”
그 후에 그는 스승 여동빈(呂洞賓)을 만나게 되어, 도가(道家)에 입문하고 본격적인 정진수행을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이름을 왕철(王喆), 자를 지명(知明), 호를 중양(重陽)으로 고쳤다.
그의 수련법은 기이하였다. 무덤 속에서 수행을 하며 지내는가 하면, 얼음에 눕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그는 50세부터 52세까지 종남산 자락 남시촌(南時村)의 한 묘지에서 홀로 혹독한 수행을 하였다. 그 때 그는 무덤 봉분 아래로 구덩이를 깊이 파고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위패를 세우고, 스스로 ‘활사인묘(活死人墓)’라 불렀다고 한다. 그는 거기서 치열한 수행 끝에 마침내 대도(大道)를 얻었다. 그리고나서 그는 사람들에게 '장차 세상의 모든 가르침을 하나로 통일하겠다'(吾將來使四海敎風爲一家耳)고 말했다고 한다.
그후 왕중양 선인은 전진도(全眞道)를 산동(山東) 영해(領海)에서 시작하게 된다. 거기서 왕중양 선인은 고명한 제자들, 7인의 선인을 배출하였다. 이들은 바로 마옥(馬鈺), 담처단(譚處端), 유처현(劉處玄), 구처기(邱處機), 왕처일(王處一), 학대통(郝大通), 손불이(孫不二)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북종(北宗)에서 나온 7분의 진인(선인)이라는 의미로 ‘북칠진(北七眞)’이라 한다.
왕중양 선인은 등선(登仙)할 날이 점차 다가옴을 알고는 더욱더 엄혹한 방법을 사용해 7인의 제자들을 단련시켰다고 한다.
금나라 세종(1170) 때 정월(1170년), 마침내 왕중양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나는 이제 스승님들과 만나기로 한 기한이 다 되었다”고 하며, 제자들에게 “절대 울지 말라.”는 말을 남긴 후 바로 숨을 끊었다. 이에 제자들이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왕중양은 홀연히 눈을 뜨고는 “더 이상 이와같이 울지 말라.” 하고 이르고는 수석제자 마단양에게 "이후에 관서(關西)지방으로 가거든, 내 고향사람들을 제도(濟度)해 다오." 하고 말했다. 그리고는 바로 선거(仙去)하였다.
후일 마단양 등 일곱 제자들은 스승의 고향인 종남산(終南山) 기슭의 유장촌(劉蔣村)을 찾았다. 왕중양은 예전에 고향에서 일시 미치광이 짓을 하여, 동네에서 홀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마을사람들은 이때서야 그의 참모습을 알고는 크게 후회하였다. 제자들은 왕중양의 영구(靈柩)를 그의 고향 유장촌에 모셨다. 그리고 그 옆에 띠집을 짓고는 3년간 시묘(侍墓)를 하였다.
그 후에 일곱 제자들은 뜻한 바대로 각기 수행의 길을 찾아 흩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 다 크게 득도하여 선인(진인)의 반열에 올랐다. 후일 제자들은 여러 장소에서 수차례나 생전의 모습 그대로인 왕중양을 만났다고 전해진다. 사람들은 왕중양 선인이 선화(仙化)하였으며, 그 후에도 계속 세상에 와서 중생들을 제도하고 있다고 믿었다.
원나라 세조(世祖) 6년(1269년), 왕중양은 ‘중양전진개화진군(重陽全眞開化眞君)’으로 봉해졌다. 그 후 당나라 무종(武宗) 3년(1310년)에는 ‘중앙전진개화보극제군(重陽全眞開化輔極帝君)’으로 받들어졌다. 민중의 많은 존경을 받은 왕중양 선인은 후대의 많은 문학작품(소설 등)과 영화에도 널리 소개되고 있다.
글; 무 애 (한국선도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