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고을 땅이름 / 가남읍(1)
방아 모양의 들이 있어 방아다리
가남읍 / 건장리, 금곡리, 금당리, 대신리, 본두리, 삼군리, 삼승리, 상활리, 송림리, 신해리, 심석리, 안금리, 양귀리, 연대리, 오산리, 은봉리, 정단리, 태평리, 하귀리, 화평리
가남읍이 현재 지도
여주읍내 남쪽이어서 근남면(近南面)
가남읍은 여주군 1읍, 8면의 하나이다.
본래 여주군의 지역으로서 여주읍내 남쪽이 되어 근남면(近南面)이라 하여 안정(安定), 금교(金橋), 동막(東幕), 금곡(金谷), 조촌(朝村), 금대(金大), 송림(松林), 삼장(三莊), 원승(元承), 연대(蓮臺), 귀일(貴日)의 11개 동리를 관할해 왔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개곡면(召開谷面)의 일부 가서곡면(加西谷面)의 일부, 수계면(首界面)의 하거리(下巨里) 각 일부와 음죽군(陰竹郡)의 일부를 병합하여 가서(加西)와 근남(近南)의 이름을 따서 가남면이라 하였다. 가남면은 현재는 가남읍으로 되어 있다.
방아다리의 ‘다리’는 원래 ‘들’의 뜻
현 가남읍의 태평리(太平里)는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명동, 방아다리, 섬배, 신대동, 구장터를 병합하여 대명산 아래 큰 들이라는 뜻으로 태평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한 곳이다.
태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은 섬비라는 마을이었다. 옛 장터였던 구장터가 섬비 남쪽에 있고 동쪽에는 새장터 마을이 있다.
구장터 남쪽의 방아다리 마을은 지형이 방아다리처럼 생겨 이 이름이 나왔다고 하나, 여기서의 다리는 내를 건너는 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말하는 것이다. 즉 방아 모양으로 생긴 들이 있어 거기에 들어선 마을 이름이 방아다리인 것이다.
마구실 마을이 섬비 서쪽에 있는데 대명산 밑이 된다. 마구실은 뒤로 언덕이 막혀 있는 마을의 뜻이다.
막+우(의)+실(마을)=막우실>마구실
마구실 남쪽의 부수골은 언덕 마을의 뜻이다.
상촌(上村), 새산수, 새터(신대동), 아랫거리 등의 마을이 태평리에 있다. 서설미산 밑의 서설미고개는 태평리에서 신해리로 가는 고개이다.
심석리(心石里)는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흑석동을 병합하여 심석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된 곳이다. 여기에는 공시미(공심동], 아랫공시미(아랫말], 웃공시미(웃말), 월편(越便), 정봉(丁峯), 주막거리(酒幕―), 흑석(黑石) 등의 마을이 있다.
동쪽의 양귀리(兩貴里)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산귀동과 근남면의 귀일동을 병합하여, 두 ‘귀’자를 따서 양귀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여기에 있는 구일 마을은 ‘구석마을’의 뜻인데, 여기에는 양달쪽의 양달말과 응달쪽의 응달말이 있다.
심석리 북쪽의 삼군리(三軍里)도 행정구역 폐합 때 삼신동과 색군리를 병합하여 삼군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맹골이라고도 불렀던 맹곡(孟谷)은 삼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그 북쪽에는 색군리(色軍里) 남쪽에는 안산(案山)이라는 마을이 있다.
하귀리(下貴里) 역시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으로서, 귀일(양귀리)의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귀일 또는 하귀동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 때 하귀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건너말, 송촌말, 시꾼이(세군이), 아래귀일 등의 마을이 있다.
역시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이었던 오산리(五山里)는 마을 앞에 동그란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산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오산리회관. 여기에 모인 어른들조차도 오산의 토박이 땅이름 ‘오미’를 모른다.
오산 동북쪽에 영동고속도로의 가남휴게소가 있었는데, ‘가남’이 ‘간암’이 연상된다 하여 여주휴게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새말(신촌),, 아랫모퉁이, 웃모퉁이(마을) 등의 마을이 있다.
그 서쪽의 신해리(新海里)는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헌해동, 태평동 일부와 소개곡면의 일신동 일부를 병합하여 일신과 헌해의 이름을 따서 신해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도두머리, 물방아거리, 양달말, 음달말, 이댕이(물방아거리), 일신(日新), 창골(창곡), 헌바다(헌해동) 등의 마을이 있다.
신해리 북쪽의 상활리(上活里)도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응동과 활산리를 병합하여 상활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금곡골, 꽁지우물골, 당다우골, 돌박재, 동천말, 명막골, 뱀문골, 비렁골, 살미(활산), 서천말, 양달말, 응달말, 잔등골, 토머리(마을) 등의 마을이 있다.
활산 서남쪽의 응암(鷹岩) 마을은 여주와 이천의 경계가 되는데, 이곳은 여주시에 딸려 있다.
그 북쪽에 정단리(鼎丹里)가 있다.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으로서, 소(눞)에다 용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어 솥단이 또는 정단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신동 일부와 수계면의 하거리 일부를 병합하여 정단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그 동쪽에 화평리(花坪里)가 있다.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화련(花蓮)과 평리(坪里)를 병합하여 화평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평리는 토박이 땅이름으로는 벌말이다. ///
여주고을 땅이름 / 가남읍(2)
좁은 지역에 생긴 마을 조기울
해촌조기울과 묘촌조기울로 나뉘어 있어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이었던 본두리(本斗里)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본동, 두리봉리와 근남면의 동막리, 귀일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본동과 두리봉의 이름을 따서 본두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가남읍 남쪽 일대 지도. 국토지리정보원 1:50,000
본두리에는 조기울 마을이 유명하다. 조개울, 조개곡, 소개곡, 소곡동이라고도 하는데, 본두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에 조개울면 또는 소개곡면(召開谷面)이 되었는데, 1914년 군면 폐합 때 가남면(읍)에 편입되고, 현재 해촌조기울, 묘촌조기울로 나뉘어졌다.
이 마을에는 불떨이 또는 낙화라는 동제 의식이 있는데, 해마다 음력 정월 16일 밤에 각 집마다 소나무 껍질과 숯을 섞어 빤 가루를 메밀짚 잿물을 들인 창호지로 싸 말아서 지름 8㎝, 길이 50㎝쯤 되게 만들어서, 마을 한가운데 있는 향나무와 미류나무 사이에 걸쳐 맨 철사줄에 매어달고 불을 붙여 불똥이 떨어지는 밑에 제물을 차려 놓고,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이 헌관이 되어 제사를 지내며 마을의 평안과 만복을 빌었다. 해촌과 묘촌이 해마다 번갈아 가면서 제사를 지냈다.
조기울은 ‘작은 마을’의 뜻이다.
족(좁)+이(의)+울=족이울(조기울)
‘족’이나 ‘좁’은 ‘작음’이 뜻이고, ‘울’은 마을의 뜻이니 ‘작은 마을’ 또는 ‘좁고 길게 뻗힌 마을’의 뜻이 된다. ‘조기울’ 비슷한 이름의 마을로는 ‘조비울’, ‘베비울’ 등이 있다.
본두리조기울 북쪽에 있는 해촌조기울 마을에는 해나무(홰나무)가 있었는데, 옛날에 도승이 심었다 한다. 해나무골이라고도 하고, 해골, 해촌이라고도 한다. 근처에 동막(東幕), 두리봉(斗里峯), 뒷자리(들), 주막거리 등의 마을이 있다.
본두리 남쪽의 안금리(安金里)눈 본래 여주군 근남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정동, 금교동, 동막리 일부를 병합하여 안정과 금교의 이름을 따서 안금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구일, 벌담, 안장골(안장동, 안정동), 한밭 등의 마을이 있다.
안금리 남동쪽의 금곡리(金谷里)는 소일, 쇠일 등으로 불리던 곳이다. 본래 여주군 근남면의 지역으로서 소일, 쇠일 또는 금곡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금곡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금당리(金塘里)는 금곡리 서쪽에 있다. 본래 여주군 근남면의 지역인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안강골, 송당동, 개경주, 골말을 병합하여 금대와 송당의 이름을 따서 금당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개경주, 골말, 떡밭덩이, 소댕이(소댕이)(송당동), 아랫말, 우머퉁이, 학교머퉁이 등의 마을이 있다.
그 서쪽에 있다는 연대리(蓮臺里)는 연대굴, 연대동, 쑥디라고도 하는데, 본래 여주군 근남면의 지역이었다. 연대산 밑 골짜기가 되므로 연대굴 또는 연대동, 쑥디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대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서시리(주막거리), 양지땀(陽地―), 연대굴(蓮臺―), 음지땀(陰地―), 주막거리(酒幕―) 등의 마을이 있다.
동쪽에 송림리(松林里)가 있다. 본래 여주군 근남면의 지역인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어실, 새터, 으능정이를 병합하여 소나무 숲이 무성하므로 송림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새터, 숯고개, 어시리(어실), 으능정이(은행촌) 등의 마을이 있다.,
삼승리(三承里)는 연대리와 송림리의 남쪽에 있다. 본래 여주군 근남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삼장리, 원승리, 송림동 일부를 병합하여 삼장과 원승의 이름을 따서 삼승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삼장이 마을이 원승이 동쪽에 있는데 지형이 삼장(농삼장)처럼 생겼다 한다. 아랫말(하촌), 원승이(元承), 음달말 황터울 등의 마을이 있다.
반은 여주시, 반은 이천시에 있는 마을
여주시 가남읍 남서쪽으로는 건장리, 대신리, 은봉리 등이 있다.
건장리(建章里)는 본래 여주군 가서면의 지역으로서 건쟁이 또는 건장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개곡면의 공심리 일부를 병합하여 건장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골말, 동인말, 묵은터, 새터말(마을) 등의 마을이 있다.
대신리(大新里)는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인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문동, 대사동, 다엽동을 병합하여 대사와 신문의 이름을 따서 대신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다엽동(多葉洞), 댓절(대사동), 새터말 등의 마을이 있다.
같은 소개곡면에 속했던 은봉리(隱峯里)는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주봉리, 흑석동 일부와 가서면의 자은동 일부와 음죽군 근북면의 흑석리, 자은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자은(自隱)과 주봉(周峯)의 이름을 따서 은봉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된 곳이다.
두리봉(주봉동), 목골(목곡동), 신작로께(新作路―), 안말, 안터, 자은동(自隱洞) 등의 마을이 있다. 여주자은동 마을은 검은돌 서쪽에 있는데 여주와 이천의 경계가 되어 반은 여주에, 반은 이천에 딸려 있다. ///
방아 모양의 들이 있어 방아다리
가남읍 / 건장리, 금곡리, 금당리, 대신리, 본두리, 삼군리, 삼승리, 상활리, 송림리, 신해리, 심석리, 안금리, 양귀리, 연대리, 오산리, 은봉리, 정단리, 태평리, 하귀리, 화평리
가남읍이 현재 지도
여주읍내 남쪽이어서 근남면(近南面)
가남읍은 여주군 1읍, 8면의 하나이다.
본래 여주군의 지역으로서 여주읍내 남쪽이 되어 근남면(近南面)이라 하여 안정(安定), 금교(金橋), 동막(東幕), 금곡(金谷), 조촌(朝村), 금대(金大), 송림(松林), 삼장(三莊), 원승(元承), 연대(蓮臺), 귀일(貴日)의 11개 동리를 관할해 왔다.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소개곡면(召開谷面)의 일부 가서곡면(加西谷面)의 일부, 수계면(首界面)의 하거리(下巨里) 각 일부와 음죽군(陰竹郡)의 일부를 병합하여 가서(加西)와 근남(近南)의 이름을 따서 가남면이라 하였다. 가남면은 현재는 가남읍으로 되어 있다.
방아다리의 ‘다리’는 원래 ‘들’의 뜻
현 가남읍의 태평리(太平里)는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대명동, 방아다리, 섬배, 신대동, 구장터를 병합하여 대명산 아래 큰 들이라는 뜻으로 태평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한 곳이다.
태평리에서 가장 큰 마을은 섬비라는 마을이었다. 옛 장터였던 구장터가 섬비 남쪽에 있고 동쪽에는 새장터 마을이 있다.
구장터 남쪽의 방아다리 마을은 지형이 방아다리처럼 생겨 이 이름이 나왔다고 하나, 여기서의 다리는 내를 건너는 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들’을 말하는 것이다. 즉 방아 모양으로 생긴 들이 있어 거기에 들어선 마을 이름이 방아다리인 것이다.
마구실 마을이 섬비 서쪽에 있는데 대명산 밑이 된다. 마구실은 뒤로 언덕이 막혀 있는 마을의 뜻이다.
막+우(의)+실(마을)=막우실>마구실
마구실 남쪽의 부수골은 언덕 마을의 뜻이다.
상촌(上村), 새산수, 새터(신대동), 아랫거리 등의 마을이 태평리에 있다. 서설미산 밑의 서설미고개는 태평리에서 신해리로 가는 고개이다.
심석리(心石里)는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흑석동을 병합하여 심석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된 곳이다. 여기에는 공시미(공심동], 아랫공시미(아랫말], 웃공시미(웃말), 월편(越便), 정봉(丁峯), 주막거리(酒幕―), 흑석(黑石) 등의 마을이 있다.
동쪽의 양귀리(兩貴里)는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때 산귀동과 근남면의 귀일동을 병합하여, 두 ‘귀’자를 따서 양귀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여기에 있는 구일 마을은 ‘구석마을’의 뜻인데, 여기에는 양달쪽의 양달말과 응달쪽의 응달말이 있다.
심석리 북쪽의 삼군리(三軍里)도 행정구역 폐합 때 삼신동과 색군리를 병합하여 삼군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맹골이라고도 불렀던 맹곡(孟谷)은 삼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그 북쪽에는 색군리(色軍里) 남쪽에는 안산(案山)이라는 마을이 있다.
하귀리(下貴里) 역시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으로서, 귀일(양귀리)의 아래쪽이 되므로 아래귀일 또는 하귀동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 폐합 때 하귀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건너말, 송촌말, 시꾼이(세군이), 아래귀일 등의 마을이 있다.
역시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이었던 오산리(五山里)는 마을 앞에 동그란 외딴 산이 있으므로 오미 또는 오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산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오산리회관. 여기에 모인 어른들조차도 오산의 토박이 땅이름 ‘오미’를 모른다.
오산 동북쪽에 영동고속도로의 가남휴게소가 있었는데, ‘가남’이 ‘간암’이 연상된다 하여 여주휴게소로 이름이 바뀌었다. 새말(신촌),, 아랫모퉁이, 웃모퉁이(마을) 등의 마을이 있다.
그 서쪽의 신해리(新海里)는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헌해동, 태평동 일부와 소개곡면의 일신동 일부를 병합하여 일신과 헌해의 이름을 따서 신해리라 하여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도두머리, 물방아거리, 양달말, 음달말, 이댕이(물방아거리), 일신(日新), 창골(창곡), 헌바다(헌해동) 등의 마을이 있다.
신해리 북쪽의 상활리(上活里)도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상응동과 활산리를 병합하여 상활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금곡골, 꽁지우물골, 당다우골, 돌박재, 동천말, 명막골, 뱀문골, 비렁골, 살미(활산), 서천말, 양달말, 응달말, 잔등골, 토머리(마을) 등의 마을이 있다.
활산 서남쪽의 응암(鷹岩) 마을은 여주와 이천의 경계가 되는데, 이곳은 여주시에 딸려 있다.
그 북쪽에 정단리(鼎丹里)가 있다. 본래 여주군 가서곡면의 지역으로서, 소(눞)에다 용제를 지내는 제단이 있어 솥단이 또는 정단이라 하였다고 하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일신동 일부와 수계면의 하거리 일부를 병합하여 정단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그 동쪽에 화평리(花坪里)가 있다. 본래 여주군 소개곡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화련(花蓮)과 평리(坪里)를 병합하여 화평리라 해서 가남면(읍)에 편입되었다. 평리는 토박이 땅이름으로는 벌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