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 싫어? 그럼 이건 어때?
올해 1~9월 국산차 판매 1위는 현대 그랜저다.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된 그랜저는 출시 첫 달인 11월을 빼고 지금까지 열 달 동안 베스트셀러 1위 자리에 올랐다. 현대차는 1~9월 그랜저가 모두 10만2098대 팔렸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한 해 동안 10만대 이상 팔린 차는 그랜저가 처음이다. 그랜저는 지난 8월만 빼면 매달 1만대 넘게 팔렸다. 현대가 올해 세운 판매 목표 10만대도 벌써 넘었다. 그러니까 그랜저는 지금 가장 잘나가는 국산차다.
하지만 자동차를 보는 안목이 깐깐한 <모터 트렌드> 독자라면 덮어놓고 잘나가는 차를 사려 하진 않을 거다. 너무 흔해서, 아저씨 이미지라서, 그냥 정이 가지 않아서 그랜저를 싫다고 외치는 사람도 있을 거다. 그래서 살펴보기로 했다. 그랜저 말고 다른 대안은 없을까? 그랜저를 살 돈으로 다른 모델을 사는 건 어떨까? 푸조 508과 닛산 맥시마를 스튜디오로 부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우린 두 차가 그랜저에 대적할 만한 모델인지 꼼꼼히 살피기로 했다. 그랜저를 사려는 사람들이 눈길을 돌릴 만한 일곱 대의 자동차도 짚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거다. 그랜저가 싫은데 꼭 그랜저를 살 필요는 없다.
지금의 그랜저는 한 상 잘 차린 집밥 같다. 국내에서 상품성이나 브랜드 가치, 가격을 따졌을 때 경 쟁 상대를 찾기가 어렵다. 한 브랜드 전체 판매량과 맞먹는 월 1만대 판매를 기록할 정도로 베스트셀러라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만날 집밥만 먹고 살면 질린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외식을 한다. 오랜만에 하는 외식인데 국밥은 좀 그렇다. 미슐랭 스타급의 프리미엄 레스토랑까지는 아니더라도 맛도 괜찮고 분위기도 있는 아담한 카페 레스토랑 정도면 부담도 크지 않다.
이런 의미에 해당하는 모델이 유럽 대중 브랜드들의 중형 세단이 아닌가 싶다. 유럽 브랜드인 만큼 달리는 기본기가 우수하고 자기 색깔이 좀 더 강하다. 준대형, 즉 유럽 E 세그먼트인 그랜저보다 한 세그먼트 작은 D 세그먼트 세단이지만 크게 좁지 않아서 쓰기에 불편하진 않다. 독일 3사와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중형 세단은 확실히 좁다. 유럽 대중 브랜드의 중형 세단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폭스바겐 파사트일 것이다. 2년 전만 해도 한 달에 500대 정도 팔렸으니 괜찮은 성적이다. 하지만 지금은 판매 중단 상태다. 그다음으로는 한 달에 50대 남짓 팔리는 포드 몬데오가 있고, 마지막 하나가 바로 푸조 508이다. 올해 판매량은 왜건 등을 모두 합쳐서 300대가 채 되지 않는다. 한 달에 30대 수준이다. 판매 데이터만 보면 마이너 중의 마이너인 508이 그랜저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대답은 오로지 고객의 관점에 달려 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세계에 눈뜨는 기억이 될 수도, 아니면 왜 이 차를 보라고 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두 가지 반응으로 또렷하게 나뉠 것이다. 그만큼 508은 자기 색깔과 장단점이 분명하다.
그랜저와 같은 대표 모델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 대비 성능과 투자의 안정성, 그리고 운용의 편리함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때 다른 선택은 없는지 찾게 되는데 처음엔 다른 브랜드의 국산차로, 그리고 그다음엔 수입차로 간다. 내구성과 품질이 뛰어난 일본차이든 달리기의 기본에 더 충실한 유럽차이든 수입차에서 바라는 건 기본적으로 ‘다름’이다. 일본차나 독일차는 내구성과 주행 성능 등의 객관적 가치에 더 치중하고 그 ‘다름’의 폭이 그리 크지 않으므로 처음 접하는 합리적인 수입차로 적당하다. 이보다 더 개성이 중요하다면 영국차나 프랑스차 등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푸조의 별명은 프랑스제 독일차다. 개성이 강한 프랑스차지만 엔지니어링의 기본기가 우수하다는 뜻이다. 달려보면 그 느낌이 다르다. 노면을 밟고 달리는 감각이 또렷하지만 노면이 거칠어지더라도 포용할 줄 아는 쫀득함(?)이 독일차와는 확실히 다르다. 게다가 508은 1.6부터 2.0리터 디젤 엔진을 얹는다. 프랑스차다운 고효율이 바탕에 있다. 그랜저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독특하고, 그랜저처럼 넓지는 않지만 더 타고 내리기 쉬운 뒷좌석 같은 의외의 실용성도 지녔다. 그랜저보다 비싼 데다 중고차 값이 크게 떨어지고, 딜러 네트워크도 부족하다는 등 모험 요소가 큰 건 사실이다. 무엇보다 ‘왜 그 돈으로 그랜저를 안사고 이 차를 샀어?’라는 주변의 반복되는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그냥’이라는 대답도 좋다. 그냥 좋다는데 꼬치꼬치 캐물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랜저 고객의 10분의 1이 이쪽으로 오기를 기대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뭔가 색다른 것을 찾는 이에게 기본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맛을 추가하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자동차 시장은 다채로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윤석(자동차 칼럼니스트)
니어 럭셔리(near luxury)라 분류되는 시장이 있다. 말 그대로 입문용 럭셔리카 시장이다. 해외에서 표준 모델을 꼽아보면 렉서스 ES와 BMW 3시리즈가 있다. 물론 3시리즈는 ES에 비해 차체 크기나 실내공간이 더 작다. 그럼에도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는 건 일반 중형 모델엔 없는 부가적인 가치, 즉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이다. 고급화된 인테리어, 역동성과 깊이를 강조한 주행성 등이 바로 그것이다. 국내 모델 중엔 그랜저 IG가 대표적인 니어 럭셔리 세단이다. 대중 브랜드의 중형 모델이지만 고급스러운 실내공간과 편의장비, 주행품질로 쏘나타보다 비싼 가격을 합리화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G70는 3시리즈 부류의 니어 럭셔리 모델이다. 당연히 핵심은 힘센 엔진과 뒷바퀴굴림 구동계가 빚어내는 짜릿한 주행감각이다. 웃돈의 규모에 따라선 가변 기어비 스티어링과 LSD, 전자제어식 스포츠 서스펜션과 천연 나파가죽 등으로 주행성과 고급함의 깊이도 더할 수 있다. 스포츠 슈프림 트림의 3.3T H트랙 시승차는 묵직하면서도 생동감 있는 주행품질이 인상적이었다. 스티어링은 자연스럽고 네 바퀴는 긴박한 산등성이 길에서도 단단한 그립을 유지했으며, 고속 안정감 역시 단연 발군이었다. 하나같이 FF 설계의 그랜저가 갖지 못한 특징들이다. 그랜저 대비 17~20퍼센트 비싼 가격이 정당하다 느껴질 만한 장점들이기도 하고. 좁은 뒷자리? 그것까지 갖췄으면 그랜저가 설 자리가 없지 않겠나. 개인적으로는 G70가 그랜저보다는 폭스바겐 골프와 3시리즈, C 클래스, A4 주력 모델의 소비자를 적잖게 흡수할 거란 예상이다. 김형준
신형 캠리를 사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토요타가 프리우스부터 선보인 새 플랫폼, 토요타 뉴 글로벌 아키텍처(TNGA) 때문이다.7세대까지는 무난한 중형 세단을 추구했던 캠리를 완전히 바꾼 일등공신이다. 구형보다 차고와 시트 포지션을 낮추면서 무게중심을 끌어내렸고, 측면 윈도 라인을 낮게 만들어 시야도 확보했다. 특히 보디와 섀시, 파워트레인의 조화가 좋아 종합적인 핸들링 성능이 크게 개선됐다. 지붕 선을 뒤로 연장해 2열 머리 공간을 챙기고 C 필러를 독특하게 디자인해 쿠페스러운 스포티함도 더했다. 더욱 날카롭게 바뀐 앞모습은 호불호가 나뉠 수 있지만, 품질이 크게 좋아지고 반응이 빨라진 터치 스크린 등 변화가 큰 실내는 분명 장점이다. 그리고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997년 세계 첫 하이브리드 승용차인 프리우스를 내놓은 토요타의 20년 노하우가 그대로 담겼다. 배터리 위치를 트렁크에서 2열 시트 아래로 옮기며 휘발유 모델과 거의 동일한 공간을 갖게 됐는데, 이는 그랜저 하이브리드의 좁은 트렁크와 비교할 때 분명한 장점이다. 경량화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새 2.5리터 엔진 등 전체적인 효율도 좋아졌다. 물론 휘발유 모델도 제어 로직이 바뀐 신형 8단 트랜스미션 등이 더해졌다. 전 모델이 풀 LED 헤드라이트와 차선 이탈 경고,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등을 포함하는 토요타 세이프티 시스템(TSS)을 기본으로 달고 있다. 무엇보다 따끈따끈한 신상이다. 그리고 그랜저보다 크게 작지도 않다.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현대 그랜저가 한 달에 1만대씩 팔리고 있다. 차급과 차종을 막론하고 국내 승용차 소비자 열 명 중 한 명은 그랜저를 산다는 얘기다. 그랜저의 상품성이 뛰어나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역설적으로 대안이 많지도 않거니와 몇 되지 않는 대안마저 소비자를 잘 설득하지 못함을 반증하기도 한다. 간단히 말하면 대다수 소비자에게 그랜저는 보편타당한 선택이다. 그런데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기가 무조건 싫다면? 삐딱한 기준으로 대안을 찾다 보면 눈에 띄는 차가 한둘은 있기 마련이다. 닛산 맥시마도 그중 하나다.
국내에서 맥시마는 그랜저에 비하면 존재감이 희미하다. 그러나 핵심 시장인 미국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그랜저와 같은 시장(대형 가족용 세단)에서 경쟁해왔지만 8세대에 걸친 35년 넘는 역사가 배경으로 작용한 덕분에 인지도는 더 높다. 심지어 2000년대 들어서는 아예 미국 시장에 특화한 미국형 모델이 됐다. 하지만 미국에서 세단 시장은 전보다 위축됐고, 심지어 미국 브랜드들조차 슬금슬금 시장에서 발을 빼는 상황이다. 현대도 지금의 그랜저(IG)는 미국에 내놓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도 굳건히 버틸 만큼 맥시마의 상징성과 경쟁력은 무시하기 어렵다. 물론 어디까지나 미국 얘기지만, 맥시마가 최소한 그랜저와 나란히 놓고 비교할 기본 조건을 갖추고 있음은 분명하다.
수치상으로는 그랜저보다 살짝 작지만 차급이 차급인 만큼 덩치가 작지는 않다. 큰 덩치가 둔해 보이지 않는 건 개성이 뚜렷한 디자인의 영향이 크다.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차’라는 이미지를 벗으려 2014년에 선보인 스포츠 세단 콘셉트카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덕분에, 몇 되지 않는 동급 차들 가운데서도 이만큼 날렵하고 젊어 보이는 차는 없다. 동급 차를 살 만한 국내 소비자의 보편적 정서와는 거리가 있지만 닛산의 의도대로 취향이 젊은 소비자라면 호감을 느낄 수 있다.
실내 역시 콘셉트카와 닮은꼴이지만 겉모습에 비하면 생김새는 점잖고 꾸밈새는 무난하다. 크고 알아보기 쉬운 버튼들, 푹 파인 컵홀더와 수납공간, 시선이 닿는 곳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죽 분위기의 내장재와 진짜 가죽, 가짜인 티는 나지만 나름 세련된 우드 그레인에서는 미국차 분위기가 물씬하다. 지붕 대부분을 덮는 선루프, 앞좌석 열선과 통풍 시트, 블루투스 오디오와 USB 단자, 다기능 컬러 디스플레이와 보스 오디오가 포함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차급에 걸맞은 편의장비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시트는 앞뒤 모두 쿠션이 부드러우면서도 몸을 잘 잡아준다. 뒷좌석도 등받이가 적당히 기울고 앉는 부분이 파여 있어 편안하지만 지붕이 낮은 탓에 앞뒤 모두 머리공간 여유는 적다.
맥시마에서 돋보이는 매력이라고 할 만한 점은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달리는 느낌이다. 닛산이 사골처럼 계속 우려내고 있는 V6 3.5리터 VQ 엔진은 요즘 기준으로는 회전 질감이 약간 거칠지만 부지런히 힘을 뽑아내는 과정은 여전히 즐길 만하다. 특유의 이질감은 남아 있어도 충분히 숙성된 CVT 역시 제법 빠르게 가속페달 조작을 바퀴 회전에 실어 시원한 가속감을 이끌어낸다. 스포트 주행 모드를 선택하면 웬만한 고성능 세단이 아쉽지 않을 만큼 정말 잘 달린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탄탄함과 편안함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은 섀시가 가벼운 느낌이 들지 않는 선에서 쏟아져 나오는 힘을 잘 받아준다.
또 하나의 매력은 흔히 이야기하는 ‘가격 대비 성능’이다. 맥시마의 값은 4370만원이다. 통합제어 단계에는 이르진 않았지만 중요한 ADAS 기능이 대부분 들어 있는데도 그 정도 값이다. 그랜저 최상위 모델인 3.3 셀러브리티의 기본 값은 4160만원으로 그보다 낮지만 맥시마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파노라마 선루프와 주요 ADAS를 묶어놓은 패키지를 추가하면 그랜저가 더 비싸진다. 물론 차의 꾸밈새나 실내 공간, 뒷좌석 편의장비와 유지 관리의 편리함 등에서는 맥시마가 그랜저를 뛰어넘을 수 없다. 그런 이유에서 맥시마는 그랜저를 사려는 사람이 대안으로 선택하기는 어렵더라도, ‘흔해 빠진’ 그랜저가 싫다면 한 번쯤 고려해볼 만한 가치는 있는 차다. 류청희(자동차 평론가)
그랜저의 구매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50대가 가장 많다. 안팎으로 젊은 기운을 잔뜩 불어넣었지만 역시 그랜저라는 이름이 주는 ‘아저씨’ 이미지를 벗기엔 역부족이었다. 커다란 국산 세단을 사고 싶은데 그랜저는 아버지가 타야할 차 같아서 망설여진다고? 30대 초반에 그랜저를 타는 게 겸연쩍다고? 그래서 K7이 있는 거다. 지난해 기아차가 분석한 K7의 구매 연령층은 30대가 31.5퍼센트로 가장 많았고 40대가 31.4퍼센트로 뒤를 이었다. 30~40대가 60퍼센트를 넘는 셈이다. K7은 그랜저보다 길이와 너비가 5밀리미터 길다. 휠베이스도 10밀리미터 길다. 눈곱 만큼이긴 하지만 큰 건 큰 거다(K7은 동급 최대 휠베이스라고 자랑한다). 엔진은 그랜저에 얹는 것과 똑같은 걸 얹는다. 실내 구성은 그랜저와 비슷하게 고급스럽다. 아니, 그랜저보다 더 고급스럽다. 크렐 프리미엄 오디오는 그랜저에 없는 옵션이다. 그러면서 값은 그랜저보다 조금 싸다. 무엇보다 안팎으로 젊은 느낌이 물씬 난다. 각진 헤드램프와 새로운 프런트 그릴이 날렵한 인상을 준다. 지루한 세단 같은 느낌을 덜 준단 얘기다. 둥근 아날로그시계도 대시보드 가운데 있어 덜 거슬린다(그랜저는 마름모꼴 모니터 귀퉁이에 달려있는 게 자꾸 거슬렸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K7을 두고 그랜저를 살 이유가 더욱 적어 보인다. 서인수
그랜저가 딱히 싫은 건 아니다. 넉넉한 실내, 매끈한 주행감각, 적당한 가격, 반듯한 중산층 이미지 등 편안하고 실용적인 세단을 찾는 이에게 이만한 차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이런 합리성이 꼭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그랜저를 살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도 된다. 아직 젊고(?) 미혼인 내게 안락한 뒷자리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그래서 난 그랜저보다는 조금 자극적인 스팅어가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스팅어의 뒷자리가 그리 불편한 편도 아니고. 낮은 루프와 높은 어깨선 때문에 조금 답답한 기분은 들 수 있어도 3인 가족이 쓰기에는 충분하다. 덩치는 비슷하다. 그랜저가 10센티미터 길긴 하지만 스팅어가 조금 넓고 낮은 까닭에 차이가 피부에 와닿지 않는다. 휠베이스도 스팅어가 길다. 가격 차이도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기본형(그랜저 2.4, 스팅어 2.0 터보 GDI)의 경우 스팅어가 445만원 비싸지만 뒷바퀴굴림 방식 고유의 손맛과 운전재미, 그리고 65마력 더 높은 출력 등을 생각하면 감안할 수 있다. 장비 구성도 조금이나마 스팅어 쪽이 나아 보인다. 무엇보다 스팅어는 그랜저처럼 흔하지 않다. 물론 스팅어 대신 제네시스 G70도 고려해볼 수 있다. 250만원가량의 차이가(G70가 비싸다) 아깝지 않을 정도로 주행감각, 승차감, 소재 등 모든 부분이 스팅어보다 고급스럽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스팅어를 고른 건 순전히 개인적인 디자인 취향 때문이다. G70는 수습 못한 면이나 선들이 너무 많다. 반면 스팅어는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고, 말하고자 하는 바도 뚜렷하다. 류민
뜬금없이 SUV냐고 하겠지만 공간 활용이라는 면에서 아직까지 동급의 SUV가 세단보다 우월한 건 절대적인 사실이다. 올해 들어 9월까지 모두 5만7401대가 팔린 기아 쏘렌토는 중형급 SUV의 베스트셀러답게 충실한 장비와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특히 2018년형이 되면서 2.2 디젤과 2.0T 휘발유 모델에 8단 자동변속기가 더해져 상품성이 좋아졌다. 차체가 큰 SUV다 보니 공차중량이 그랜저보다 더 나가 연비에서는 불리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다. 2.2리터 디젤 엔진을 얹고 18인치 휠을 신은 앞바퀴굴림 모델을 기준으로 할 때 그랜저의 복합 연비가 리터당 14.3킬로미터, 쏘렌토가 13.4킬로미터다. 여기에 그랜저는 꿈도 꿀 수 없는 네바퀴굴림을 선택할 수 있다. 쏘렌토 디젤의 최고급 모델인 노블레스 스페셜(3425만원)에 전자식 4WD(210만원)와 와이드 파노라마 선루프(115만원), 스마트 크루즈컨트롤과 안전 보조장비(220만원)를 모두 더하면 3970만원이 된다. 반면 풀 LED 헤드라이트가 포함된 그랜저 3.0 익스클루시브 스페셜(3870만원)에 파노라마 선루프(110만원)와 현대 스마트센스 패키지(160만원)를 더하면 차값이 4140만원이다. 거의 동일한 장비에 네바퀴굴림까지 갖추고도 쏘렌토가 100만원 이상 싸다. 더욱이 높은 시야와 2열 슬라이딩 등 활용성은 더 크다. 왜 고민하시나? 이동희(자동차 칼럼니스트)
그랜저는 참 괜찮은 차다. 예쁘고 잘 달린다. 하이브리드 모델은 연비까지 좋아졌다. 그럼에도 그랜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이유는 아마 공간 때문일 거다. 그랜저도 운전석이나 뒷좌석 같은 실내 공간은 넉넉하지만 세단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SUV에 비해 트렁크가 작고 뒷좌석과 완전히 분리됐다. 트렁크 공간을 확장하려 해도 할 수 없다. 30, 40대에게는 이게 문제일 수 있다. 예전처럼 골프백이 몇 개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요즘은 20대에서 40대까지 아웃도어 레저활동이 많아지면서 그에 따른 장비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크기도 커졌다. 싼타페는 그 은혜로운 공간을 이용해 캠핑용품이든 보드든 무리 없이 넣을 수 있다. 반면 그랜저에 보드를 실었다간 센터콘솔 위로 보드를 걸쳐야만 할 거다(그랜저는 뒷시트를 접을 수 없다). 사실 그랜저는 HG에서 IG로 넘어오면서 특유의 고급스러움이 사라졌다. 특히 소재가 전보다 나아 보이지 않는다. 출시 초기엔 가죽시트가 늘어지는 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이젠 그랜저가 프리미엄보다 대중성을 좇겠다는 현대차의 의지는 알겠지만 그랜저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 가치를 생각하면 아쉽다. 반면 싼타페는 더 프라임으로 부분변경하면서 내실을 잘 챙겼다. 흡음재를 덧대 전보다 엔진 소음과 진동이 줄었고 출력과 연비도 아주 살짝이긴 하지만 어쨌든 개선됐다. 성공적인 부분변경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8년엔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출시된다. 단언컨대 지금 모델보다 훨씬 좋아질 거다. 김선관
5000만원을 넘지 않으면서 크고 듬직한 준대형 세단을 찾는다면 그랜저가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도로에 흔해 빠진 그랜저를 사는 건 죽어도 싫다면? 내 차가 택시로 마구 돌아다니는 걸 보고 싶지 않다면? 그랜저보다 더 크고 듬직한 대안이 있긴하다. 포드 토러스다. 토러스는 길이가 5155밀리미터다. 그랜저는 물론 K7보다 윗급인 K9보다 더 길다. 5000만원이 안 되는 값으로 어깨에 힘주고 탈 수 있는 몇 안 되는 세단이다. 2.0 리미티드 모델은 2.0리터 에코부스트 엔진을 얹었다. 2.4리터 휘발유 엔진을 얹은 그랜저보다 연비는 조금 떨어지지만 출력이 243마력으로 53마력이나 높다. 음, 그건 4500만원짜리 아니냐고? 그 값이면 266마력을 내는 그랜저 3.0 휘발유 모델을 사고도 600만원 남짓 남지 않느냐고? 그랜저가 죽어도 싫은데 3.0 휘발유 모델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현대차는 올해 초 그랜저의 구매 연령층이 젊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주요 구매층은 여전히 50대지만 30~40대 구매 비율이 이전 모델보다 4퍼센트 가까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신형 그랜저는 젊은 층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 요소를 두루 갖췄다. 실내는 완전히 젊은 취향이다. 이에 비하면 토러스는 여전히 중후한 매력이 강하다. 그랜저보다 실내공간은 좁지 않느냐고? 그래도 그랜저보다 크다니까! 서인수
그랜저는 크고 편하고 안락하면서 조용하다. 엔진 가짓수도 많아 선택의 폭도 넓다. 덕분에 시장에서의 반응이 뜨겁다. 지난 9월까지 올해만 10만4246대가 팔렸다. 매달 1만대 이상 팔린 것이다. 쌍용과 르노삼성 전체 판매량을 웃도는 놀라운 수치다. 이렇게 차가 많이 팔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과 소비자들이 그랜저의 상품성을 인정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그랜저가 극구 싫다고 말하는 것은 차의 성능이나 디자인,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판매량이 많은 것이 싫다는 뜻일 게다. 사실 그랜저는 참 많이도 돌아다닌다.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국민차가 돼버렸다. 그러니 보편적인 것을 증오하는, 약간은 변태적(?) 성향을 지닌 사람이나, 남들과는 다르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그랜저가 사랑스럽게 보일 리 없다. 철벽처럼 견고하게 “안티 현대!”를 외치는 이들도 이 차를 싫어할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차를 타게 될까? 시장에서 경쟁 모델이 되는 기아 K7과 임팔라 정도일 텐데, K7은 올해 3만5968대가 팔렸다. 그랜저보다 훨씬 적게 팔렸지만 그래도 많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변태와 관종 그리고 안티 현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차종은 아니다. 그나마 임팔라가 있는데 지난 1~9월 230대가 팔렸다. 판매량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랜저의 출시와 함께 시장에서 잊히는 중이라고 할까? 임팔라는 승차감과 품질, 편의장비 등이 그랜저보다 떨어진다. 결정적으로 그랜저보다 기본가격이 비싸다.
그렇다면 G70와 스팅어? 준대형 세단을 원하는 소비자는 뒷자리 크기뿐 아니라 차체 덩어리감을 중시한다. G70와 스팅어는 그들에게 절대 만족을 줄 수 없는 사이즈다. 싼타페와 쏘렌토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세단과 SUV는 주행감각이 전혀 다르다. 낭창이면서 부드러운 것이 같다고 해도 높이 앉아야 하고 무게중심이 높은 SUV에서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더불어 두 SUV는 그랜저가 가진 준대형 세단의 묵직한 주행감성이 없다. 안정감도 떨어진다. 어코드와 토러스? 이 못생긴 세단들이 다름을 원하는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특히나 실내 디자인과 레이아웃, 소재는 다름이 아니라 ‘틀림’이다. 그랜저보다 많이 떨어진다. 다른 것을 원했다가 틀린 것을 선택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다름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는 건 그만큼 그랜저의 상품성과 가성비가 독보적이라는 말이다. 이미 판매량이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나 또한 그랜저의 대안을 찾기 위해 부산을 떨었지만 현재 대한민국에서 팔리는 차 중에선 적절한 모델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 그랜저를 타는 소비자 중에도 그랜저 외에 다른 대안이 없어서 구매한 소비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지금 시장에선 그랜저가 아닌 다른 차를 찾으려는 대부분의 언변은 옹색한 변명이나 구차한 이유일 뿐이다. 나 또한 길바닥에 너무 많이 굴러다니고 택시로도 사용되는 그랜저를 타고 싶진 않다. 하지만 선택의 폭이 좁은 대안은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랜저를 선택하게 될 것 같다. 이진우
에디터_서인수 / 사진_PENN STU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