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상 반말체로 글을 적어봅니다. 불편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가 투견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화이팅 바람이 라는 만화책을 초등학교 시절 보면서였다.
그 만화 속에 등장했던 진도개와 핏불 테리어, 도사견이라는 개들에 대해 알면서 투견이란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 시기에 일본에서 유명했던 만화 명견 실버 역시 투견 세계에 관심 갖는 데 기여를 한 작품이다.
오늘날 투견을 동물학대로 법적 금지와 제제를 당하는 현실을 돌아보건데 과거는 상대적으로 널럴한 분위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투견을 키운 적도 없고 투견을 즐겨 보러 다닌적도 없다.
내가 투견을 알고 경험한 것은 모두 인터넷이 본격화되던 2000년대 초반이다.
2001년도 당시 여기저기 우후죽순 생겨나던 투견 관련 카페들과 사이트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여러 투견종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공부에 집중하면 어땠을까 싶지만, 당시 나는 공부에 집중할 수도 흥미를 느낄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그 시간을 모두 투견으로 대리만족한 건 아닐까 생각한다.
당시 투견들 중 진투에 대해 기억나는 것은 어떤 맹수 관련 카페에서 명견 후까시 라는 닉네임을 쓰던 분의 글을
보면서였다. 이분은 내 기억이 맞다면 당시 21살이었는데 결혼을 했다고 밝혀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분은 당시 진투를 좋아한다고 관련글을 많이 올렸는데 그때 기억나는 진투가 혈X라는 개다.
이 개를 정확하게 밝혀주시지 않아 진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이 개를 기억하는 건 이분이 올려주신 일화 때문이다.
혈X라는 개가 당시 경비견 도베르만의 배를 갈라 죽인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 글을 보면서 당시 어렸던 내게 떠올랐던 장면은 명견 실버의 캐릭터들이었다.
진투는 아니지만 일본산 스피츠 견종에 해당하는 아키다와 카이견, 기슈견 등이 붉은 곰 잡으러 다니는 작품 속에서
개들이 연출하는 전투를 현실 속의 파편으로 잠시나마 간접적인 경험을 하는 착각마저 일었었다.
물론 나는 그 혈X이라는 진투가 무슨 개인지 알 수 없고, 정말 경비견으로 쓰던 도베르만의 배를 갈라 죽였는지
아는 바가 없다. 당시 저 글을 올린 분이 진투를 좋아하고 키우고 계셨으며 잘 아는 듯 관련글을 올렸기 때문에 기억할 뿐이다.
사실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때부터 진투라는 개의 이미지는 내게 젖어들었다.
도사견과 핏불과는 다른 매력의 투견이라는 이미지 말이다.
당시에는 도사견과 핏불은 각자 키우는 사람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워대던 걸 기억한다. 그땐 나도 어렸기에 여기저기 분위기에 휩쓸리며 인터넷에 도배되던 그 다양한 개들을 추종하곤 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당시 사람들이 투견에 대해 열정은 강했는데 애정은 약했던 것 같다. 오늘날 투견이 이 모양 이 꼴로 무너진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열정만 강하지 애정이 약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것은 진투뿐 아니라 도사견, 핏불 모두 마찬가지다.
나는 투견행위와 투견도박행위는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투견과 투견도박은 같지만 다르다. 투견행위는 동물학대라는 비난에 대해 반론할 말이 있지만, 투견도박은 없다.
나는 도박이야말로 한국의 투견을 오염시키고 망가뜨린 주범이자 원흉으로 본다.
예전에 도사견 원로가 출판했던 애견 1집을 읽을 때 이렇게 적힌 것이 기억난다.
과거와 달리 지금은 투견 도박이 성행하여 사람들이 예전과 달라져서 투견판이 쇠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이 적힌 당시는 80년대로 지금 투견을 아는 사람들이 흔히 전성기라고 부르던 시대였다.
지금은 전성기로 불리던 시대도 알고 보면 당시 원로의 눈에는 그 이전 시대와 달라진 것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 원인은 투견 도박을 지적했고 나는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투견에 도박이 묻으면서 투견이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어딘가에는 있다. 나도 한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단언컨데 도박으로 투견이 쇠퇴하고 무너지고 멸종당했다고 말한다.
도박을 시작하면 멀쩡한 사람도 심리적으로 돈에 집착을 보인다. 사람의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이 집착을 낳고 개보다 돈을 우선시 여겨 할 짓 못할 짓 구분을 못하게 된다. 모든 도박은 예외가 없다. 투견도박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니 투견만 하던 시대와 투견에 도박이 끼어든 시대를 애견 1집의 저자는 정확히 간파하여 담담히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말대로 80년대부터 도사견은 쇠퇴일로를 걷기 시작했으니 90년대부터는 사실상 시대의 뒤편으로 사라질 준비를 하던 시대였다.
누군가는 그 시대의 명견을 운운하며 반론을 제기하고 싶을 수 있지만, 나는 투견이란 주제를 단지 개싸움 따위로 해석하지 않는다. 내가 해석하는 투견은 단순한 개싸움이 아니며, 도박은 더더욱 아니다.
나는 투견을 어떤 형태의 문화 인류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한국에는 인류학이라는 학문조차 제대로 성립된 적 없는 나라이므로 이런 시도는 무의미하다고 누군가 비웃을 지 모르나, 그러기에 더더욱 어떤 형태로든 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고 보는 게 내 생각이다.
투견을 문화 인류학으로 본다는 말에 둘이 무슨 상관이냐고 말할 사람도 어딘가에는 있을 것이나, 사람이 개입하는 모든 행위는 문화 인류학적으로 해석의 여지가 다분하다. 투견도 예외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직접 만들어낸 개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투견의 기질을 보이는 개들을 발견하고 사람들이 개입한 것을 우선할 지, 사람이 주도적으로 더 강한 투견을 만들기 위해 적극 개입한 시기를 우선할 지에 따라서 말이다.
이렇듯 투견은 오늘날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주제이자 동물학대에 불과하다는 편견이 강한 시대이지만, 여기에도 인류학적 해석이 들어가 투견을 재해석할 여지는 있는 것이다.
내가 해석하는 투견의 문화 인류학적 접근에는 다음과 같은 의문과 질문이 섞여 있다.
1) 도박을 제거한 투견 행위를 지속시켰다면 오늘날 투견들은 어떤 변화를 맞이했는가?
2) 도박을 하지 않고 순수 투견 행위로서 자신의 개들을 겨뤘다면 투견을 키우는 인간들은 어떤 문화를 형성했는가?
투견이 무너지고 사라지는 원인에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도박이 이걸 방해하고 파괴하는 원인이다.
그동안 20년 넘게 인터넷에서 투견에 관련된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투견만 관찰한 건 아니다. 사냥개, 진도개 등 잘 알려지고 유행하던 견종 관련해서는 대부분 관찰해본 것 같다) 느끼는 것을 단순히 요약해본다면 이렇다.
투견으로 돈벌 궁리만 할 뿐, 투견 자체에 뜻을 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지금도 도사견이 대회장 문화를 잘 키워나갔다면 그렇게 무너졌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한국 도사견의 역사를 내 식대로 구분해본다면 애견 1집의 저자가 말한 대로 80년대는 도사견의 전성기가 아닌 마지막 시대였다.
80년대를 끝으로 도사견은 내리막길을 걸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사견의 전성기는 언제였을까? 70년대였다고 생각한다.
70년대의 도사견들이 80년대 그 이후의 도사견들보다 강해서? 아니다.
전성기를 논하는 데 있어서 해당 시대의 투견들 누가 더 강했냐는 의미없다. 이것은 투견의 기량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해석하는 투견의 전성기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필요하다.
1-투견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갖고 있는가?
2-돈보다 투견을 더 우선시 하는가?
3-투견과 일상을 얼마나 공유하는가?
4-투견을 위해 인생의 얼마를 헌신했는가?
이런 조건을 설정하고 과거의 투견 시대를 비교해보면 답은 쉽게 나온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저 항목에 해당되는 시대가 나온다. 투견으로 도박을 하지 않던 시대야말로 동물학대라는 비난에 맞설 반론을 준비할 수 있던 시대였다.
개를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아야 투견의 당위성을 설득할 수 있다. 한국은 안타깝게도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투견에 관심을 가질수록 여기에 빠져 사는 인간들이 개에 애정을 갖기보다는 돈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다.
내가 관찰해본 바로는 투견 자체에 애정을 품었던 사람들은 전체의 극소수였고, 이들의 목소리는 투견판을 바꾸기에는 너무도 약했다. 목소리 큰 놈들이 이긴다는 한국 사회에서 당연한 것이다.
내가 기억하고 들었던 유명했던 투견들의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하고 초라했는지 알기에 더더욱 투견에 대해서 오늘날 대중들에게 설득할 방법은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투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독특한 매력과 서사를 보여줬던 개들로 여전히 내 가슴엔 남아있다. 꼭 키워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개판에는 매우 잘못된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개는 키워봐야 안다는 절대적 믿음이 그것이다. 개는 키워봐야 안다는 말을 왜 하는지 이해는 가지만, 그 말에 어떤 모순이 있는가를 의심하는 사람을 아직 본 적 없다. 개를 키워봐야 안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개 키우는 사람들은 왜 다 그 모양으로 행동하는가?
개를 키워봐야 안다면서 정작 하는 행동은 안 키우니만 못한 행동만 보여주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직접 볼 필요는 없다. 인터넷을 통해 그들의 본심과 실체가 글로 다 표현되고 누군가의 글에서 고스란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나는 개를 키워봐야 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장수 같은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들은 그저 개는 키워봐야 안다를 교리처럼 숭배하고 다녀야 하나라도 더 팔아먹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모든 개판이 다 그렇지만 투견쪽도 예외는 아니었다.
투견은 키워봐야 안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사람들 중 정작 투견에 대해 자기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형성, 반죽하고 정립시켜나가는 의식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들의 말에서는 대부분 이 개가 몇 승을 했니, 얼마에 거래됐니, 무슨 개를 이겼니 등등 전적 자랑, 개값 자랑이 고작이었다.
그런 말로는 투견을 싫어하는 일반 대중들을 설득할 수 없다. 혐오감만 부추길 뿐이다.
자신이 키운 투견과 같이 살며 무슨 일이 있었고, 이 투견이 어떤 행동을 해서 놀란 적이 있고, 그 행동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는 둥 어떤 자신과 투견 사이에 공유된 삶의 일부가 드러나는 말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이런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과거로 갈수록 자주 발견된다. 70년대의 도사견을 키우던 사람들, 90년대 진투를 키우던 사람들에서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관심사가 투견의 전적과 개값 따위가 아닌 투견에 개인적 서사와 배경 스토리로 바뀌었다.
개는 키워봐야만 안다는 말에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다.
그렇게 키운 개들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놀랍게도 대부분 이런 말을 하면 모두 판에 박힌 대답만 나올 것이다.
그 대답은 이렇다.
그건 네가 키워보면 안다고.
이쯤되면 이건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개 키우는 것을 마치 벼슬처럼 착각하는 무지한 이들의 우월감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20년 넘게 개를 키우는 인간들을 관찰해본 결과, 나는 개를 키워봐야만 알 수 있다는 말은 더 자세한 해석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개를 몇 마리를 키웠다는 수치 자랑을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한국 개판이라면 더더욱 자세한 해석이 필요하다.
내가 놀던 인터넷 개판은 주로 자신이 개를 얼마나 오래 키웠는지, 혹은 얼마나 많이 키웠으며 얼마나 유명한 개를 키웠는지에 집착하듯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견종을 막론하고 똑같다)
어릴 땐 그런 사람들이 진짜 전문가고, 저렇게 키워야 전문가가 되는 줄 알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일수록 하는 행동은 이상한 경우가 많았다.
나는 개를 100마리 키웠다고 자랑하는 사람보다는 개 1마리를 10년 20년 공들여 키우고 마지막을 함께 한 일반인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투견이나 사냥개가 아닌 믹스견, 유기견을 소중히 키우는 일반 사람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투견은 어떨까? 유명견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었네, 얼마짜리 개를 갖고 있었네, 얼마나 오래 키웠네 등 숫자 자랑은 많이 해도 개 1마리를 얼마나 오래 키우고 마지막을 보내줬네로 자랑하는 사람을 보진 못했다.
바로 이 부분이 내가 느끼는 투견을 향한 애정의 유무다.
개를 소모품으로 여기지 않고 반려견으로 여겼다면 투견이라 해도 그 개가 자신의 기대치에 부족했다 해도 결코 쉽게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개를 마지막까지 잘 키우고 보내줬을 것이다. 그런 문화가 형성되었더라면 투견은 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것을 인식 못하고 마치 투견은 소모품이라는 식으로 대하는 것이야말로 투견을 망가뜨린 마음가짐이다.
그 소모품이라는 인식에는 도박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래서 나는 투견행위와 투견 도박행위를 구분해서 본다. 한국은 투견행위에 주목하지 않고 투견도박행위에 주목했던 나라다. (다른 나라라고 다를 건 없지만, 내가 직접 관찰한 바로는 미국의 몇몇 핏불꾼들만 여기서 예외였다.)
그 결과 한국에서 태어나 이름을 떨친 도사견들의 뿌리도 사라지고, 진투 혹은 밀양견이라 불리던 개들의 정체성도 오염되어 모두 사라지고 만 것이다.
도박만 없었다면 한국의 도사견과 진투는 예외적으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개들이었다. 여러모로 안타깝게 됐다. 인문학적 견해로 투견을 해석하는 건 아마 내가 처음일 것이다. 투견을 하던 사람들도 이런 글은 공감을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낯설고 뜬구름 잡는 소리로 들릴 테니까.
시작은 내가 기억하는 진투들인데 정작 투견 얘기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당연하다. 나는 투견을 키운적도 없고 그저 관찰만 해왔기 때문이다.
이젠 그 관찰을 바탕으로 아무도 생각하지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인문학적 관점으로 투견을 접근, 이해하는 해석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지금은 어디서든 이런 투견 관련글을 올리면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쓸데없는 오해와 조롱섞인 비난을 받기 좋은 글을 어디다 놓고 갈까 고민하다 아무도 오지 않는 이곳이 적합하다 판단하여 놓고 간다.
첫댓글 비수님 글을 한자한자 다 읽어 보았습니다~~~
글이 너무 좋네요^^
헌데 제가 생각하는 것들과의 차이가 좀 나는것들도 있고 비수님의 생각에 공감하는 것도 있네요~~~^^
나중에 비수님의 글에 다시 글을 적어 볼께요~~^^~^^
좋게 읽어주셨다니 감사합니다!
남의 카페에 와서 혼자 멋대로 돌을 던졌으니 어떤 돌이든 맞을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그냥 어딘가에 하고 싶었던 말을 두서없이 써버려서 오해도 쌓일 수 있구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삭제 요청하셔도 좋으니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게 받아들여주셔서 감사하며 여기서라도 뭔가 같은 주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비수 비수님 글을 공지창으로 옮겼습니다^^
우리 회원님들도 보고 한번쯤은 생각을 해도 되는 주세이기도 하구요~~~
약간의 생각의 차이도 있을수 있고, 맞는 말이 있어도 위의 글은 투견인들이라면 한번은 생각을 해 봐야 할 이야기인것 같네요~~~
아마도 우리 회원님들도 좋은 의견이라는 점은 동의를 하실꺼구요^^
멋진글을 올려주신 비수님 감사합니다.